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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Daybreak «세이런 멜라우드»
1차/old 2019. 10. 22. 15:06

 그 소문의 신삥은 미남이었다. 

 바르바라도 세이런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가 입단식을 마친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선배 기사들은 신입이 들어오면 당사자들보다 더 신이 나서 “신삥”소문을 물어 나르곤 했는데 이번의 경우도 그러했다. 그들은 세이런에 대해 피부가 하얗고 어딘지 귀족적이니 분명 집안에서 뛰쳐나온 귀한 자제거나 유배지를 써드빌로 정한 데아의 기사일 지도 모른다고들 떠들어댔다. 

 바르바라는 선루스 써드빌 기사단 본부 앞에서 세이런을 처음 보았다. 처음에 바르바라는 그가 어두운 금발인 줄 알았는데 건물로 들어간 후에야 그가 브루넷이라는 걸 알았다. 세이런은 그녀의 뒤를 조용히 쫓아왔다. 질문을 하거나 호기심을 보이며 주변을 열심히 관찰하지도 않았다. 조용한 편이네. 바르바라는 그의 이름에 붙은 반나절짜리 추측과 소문을 한쪽으로 치워버리며 생각했다. 

 바르바라는 그 날 세이런을 데리고 기사단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설을 소개하고 유념해야 할 간단한 사항과 자주 마주치게 될 고참 기사들에 대한 짧은 신상정보를 설명해주었다. 나머지는 세이런이 알아서 터득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가… 식당이고 안내는 여기서 끝이야.” 

 바르바라는 식당 입구 앞에 멈추어 서서 손바닥으로 주방과 테이블과 배식구역을 짚으며 점심·저녁 시간에 대해 안내한 뒤 온화한 웃음을 단 채 세이런을 돌아보았다. 바르바라는 신입에게 가능한 상냥하게 구는 경향이 있었다. 세이런은 바르바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절하게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뒤 세이런은 아까 지나쳐왔던 기사단 숙소로 돌아갔다. 

 바르바라가 초면인 신입에게 유독 상냥하고 꼼꼼하게 구는 이유는, 한 번 설명할 때 빠짐없이 설명해주는 편이 사후의 일을 처리하는데 더욱 편리했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입단 초기에 자신의 아래기수에게 바로 그런 식으로 굴었다가 오밤중에 자신을 찾으며(난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도와주세요, 제발요!) 방문을 두들겨대는 후배로 인해 큰 고통을 겪었던 것이다. 그 뒤로 바르바라는 동행하는 신입 기사들이 자신이 떠먹여주는 설명조차 제대로 이해를 못 할 만큼 어지간한 돌대가리가 아니기를 바라며 기사단을 관광지마냥 소개시켜주었다. 세이런은 멍청한 인상이 아니었으니 잘 해낼 것이다. 

 그녀의 믿음에 보답하듯 침묵의 신삥 세이런은 한밤중에 그녀의 방문을 두들기지도 않았고 다급한 기색으로 사방팔방 “난나!”를 외치며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바르바라는 흡족한 상태로 며칠을 보내다가 곧 그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며칠째 신입기사들의 단골 근무지로 손꼽히는 ‘잡퀘스트스팟1(시장이다)’ ‘잡퀘스트스팟2(골목이다)’에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마음에 좀 걸리긴 했지만, 아마 어딘가에서 잘생긴 얼굴을 햇볕에 쏘이며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써드란 원래 업적을 세우기보다는 잘생긴 얼굴을 구릿빛으로 태우거나 아름다운 금발을 과시하기에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ex.오즈) 

 세이런이 바르바라를 찾은 건 일주일 쯤 뒤의 일이었다. 둘 다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접시를 들고 바르바라 옆에 앉은 세이런이 포크로 완두콩을 굴리다말고 그녀를 불렀다. 

 “저기,” 

 바르바라는 세이런을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그를 알아보지 못 한 것처럼 굴었다가 불현 듯 떠오른 것처럼 입에 미지근한 미소를 달고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콩이 제대로 안 익은 건 어디에 이야기하면 되나요?” 

 바르바라는 세이런의 포크 아래에 있는 덜 익은(것으로 추정됨) 완두콩을 내려다보다 말고 자신의 접시에서 손도 대지 않은 말랑말랑한 완두콩을 덜어주었다. 

 “다음에는 가서 새로 달라고 하면 돼.” 

 바르바라가 말했다. 

 “완두콩 아까 배식 받을 때보니 얼마 없더라. 오늘은… 이걸 먹어.” 

 그런 후 바르바라는 세이런의 접시에서 그의 완두콩을 덜어먹었다. 완두콩은 딱딱했다. 정말로 덜 익었던 것이다. 만약 덜 익은 게 아니었다면 바르바라는 세이런에게 완두콩을 처음 먹어보는 거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바르바라는 딱딱한 완두콩을 마치 나무열매 먹듯 꿋꿋하게 씹고는 감자를 으깨어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폴나폴 걸어서 식당을 빠져나오는데 뒤에서 세이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바르바라는 반쯤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세이런은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혹은 바르바라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녀에게 말을 거는 후배들은 그녀를 쉽게 찾으면서도 정작 얼굴을 마주보면 종종 긴장하곤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귀찮다는 표정을 일부러 드러내놓을 때가 왕왕 있어서일 것이다. 어쨌든 세이런은 식당에서 쏟아지는 빛과 조금 빗겨난 지점, 그러니까 문의 모양에 따라 기울어진 네모난 빛 덩어리보다 한발 짝 나와 있어서 표정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세이런이 차분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쭤볼 게 있어서요.” 

 “완두콩에 대해서?” 

 바르바라는 농담으로 던진 건데, 세이런은 심각하게 받았다. 

 “그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세이런은 잠시 뜸을 들였다. 

 “일을 안 주는데 뭘 해야 하나요?” 

 바르바라는 세이런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렸다. 

 “아하….” 

 바르바라는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고개를 젖히곤, 정작 그것보다는 맥없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감탄을 내뱉었다. 

 “아하…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그냥 놀아도 좋다고 말했을 것이지만 그건 아마 세이런이 원하는 대답이 아닐 것이다. 농땡이를 치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바르바라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써드빌의 해변 아래에서 피부를 태우거나 유흥을 즐기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시간을 보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 신삥은 굳이 바르바라를 찾아와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이 없어요.’ 오즈가 이 친구를 얼굴만 보고 뽑은 게 아닌 모양이다. 성실하기도 하지! (하지만 선써드에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음) 

 바르바라는 세이런에게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그에게 일을 주기로 했다. 

 “나를 따라와.” 

 바르바라가 말했다. 

 두 사람은 접수창구까지 걸었다. 주민들의 민원과 사소한 호소가 집결되는 장소였다. 신삥들에게 일을 주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바르바라는 창구에 앉은 이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넨 후 썩 무겁지는 않은 서류뭉치를 집어 들고는 몇 개를 대충 훑어보았다. 세이런에게 시킬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잠시 후 바르바라는 적당한 걸 찾아냈다. 

 “월튼 씨네 마구간 지붕이 무너졌는데, 중심기둥이 무거워서 옮겨줄 사람이 필요하다네.” 

 바르바라는 나긋나긋 읊은 후 세이런을 바라보았다. 

 “이게 좋겠다.” 

 그렇지? 라는 의미가 내포된 말이었다. 세이런은 좋지도 싫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너무 사소한 일이고 크게 까다로운 일도 아니었으니 특별히 좋거나 싫다고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바르바라는 깃펜을 들고 서류 위에 본인의 이름을 썼다. 바르바라 체사레. 그런 후 세이런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네 이름이 뭐였지?” 

 “세이런 멜라우드요.” 

 바르바라는 그의 이름을 마저 적었다. 

 “그래, 멜라우드.” 

 그녀가 말했다. 

 “이제 기둥을 들어주러 가자.” 

 그렇게 두 사람은 안온한 기사단을 나와 남의 집 마구간을 향해 뙤약볕 아래를 걷기 시작했다….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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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Daybreak «로그잇기 2»
1차/old 2019. 10. 22. 15:04

 회를 떴다.

 배를 까보니 흰 살 생선이었다. 보통 속에 붉은 기운이 도는 생선이 가장 고소하다. 흰 살 생선은 회를 뜨는 것보다는 구워먹는 편이 더 맛있었다.

 ‘하지만 이미 잘라냈는 걸 뭐 어쩌겠어.’

 바르바라는 그 생각으로 사소한 문제를 일축했다. 날을 눕혀서 뼈와 살을 분리하고, 대가리를 분리시켜서 통에 던져 넣었다. 갓 잡아 올린 물고기에서는 비린내 대신 신선한 짠 내가 났다. 바르바라는 내장을 분리하고 살덩어리를 꺼낸 뒤에 어슷하게 썰기 시작했다. 너무 얇지는 않게 그러나 씹기 힘들만큼 두껍지는 않게.

 그녀는 호밀 빵 덩어리를 화덕에 집어넣고는 꿀통에서 꿀을 몇 스푼 퍼 올렸다. 바질과 치즈를 으깨어 꿀과 함께 적당히 섞고, 그 위에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고소한 냄새가 나자 바르바라는 빵을 꺼냈다. 그것을 반으로 나누었다. 바삭바삭한 겉면을 손가락으로 조금 눌러보다가 위에 신선한 양상추와 토마토를 번갈아 올렸다. 마지막으로 가장 위에는 막 썰어놓은 쫄깃쫄깃하고 신선한 회를 얹었다. 바르바라는 빵을 다시 얹기 전에 자신이 앞서서 만들어놓은 소스를 위에 잘 펴 발랐다. 완성이다. 이것은 바르바라가 때때로 해먹는 회 샌드위치다.

 바르바라는 완성된 샌드위치를 다시 반으로 자른 뒤에 종이에 잘 쌌다. 그리고 회를 뜨며 버린 뼈와 장기를 양동이에 모은 뒤 외출했다. 고양이 골목으로 갈 생각이었다. 원래는 이런 것들을 모아두었다가 제 때 제 때 버리는 편이지만 훨씬 유용한 곳에 쓰인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아직 아드리안 덕분에 만진 고양이의 정수리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다.

 골목에는 아드리안이 없었다. 고양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아드리안이 없기 때문에 고양이도 없는 걸지도 모른다. 아무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양동이 냄새를 맡으면 알아서들 몰려오겠지. 어쩌면 바르바라 때문에 근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양동이를 내려놓았을 때, 근처 풀숲에서 작게 야옹 소리가 났다.

 그 고양이는 (아드리안의 말에 따르면)키키의 2세였다. 일전에 바르바라에게 정수리를 허락해준 자비로운 고양이였다. 왜 혼자 있니? 바르바라는 중얼거리면서 양동이에 손을 집어넣어 내장을 꺼냈다. 키키 2세가 달려들었다. 바르바라는 근처에 양동이를 두고 앉아 키키 2세가 맹렬한 기세로 내장을 뜯어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고양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이게 웬 생선이냐고 생각하고 있나 봐요.”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말했다.

 바르바라는 고개를 돌렸다. 아드리안이 무릎을 조금 숙이고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온화한 웃음을 달고 있었다. 언제 뒤에서 나타난 건지 모르겠다. 고양이에게 너무 정신을 팔았던 걸지도.

 “내 생각이 들렸니?”

 바르바라는 그게 우연인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데요?”

 아드리안이 묻자, 바르바라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니야.”

 아드리안이 다가와 양동이를 내려다보았다. 신선하게 반들거리는 내장과 아직 몸이 채 다 마르지 않은 축축한 생선의 대가리들.

 “무언가를 손질한 모양이죠?”

 “맞아. 뼈와 머리를 주려고 가지고 온 거야.”

 바르바라는 덧붙였다.

 ”하지만 살로 만든 건 인간의 음식이야.”

 “전에 먹었던 그건가요?”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회고 톤으로 돌아갔다. 아드리안은 그 때 바르바라가 썰어준 신선한 회를 집어먹으며 눈을 빛냈다. 맛있는 것을 먹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바르바라는 회가 그의 입맛에 맞았음을 알아차렸고, 그것을 잊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아까 만들어놓은 샌드위치의 반쪽을 내밀었다.

 “일전의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단다.”

 바르바라가 웃었다.

 “먹어볼래?”

 “저 주려고 만드신 건가요?”

 “그럼.”

 하지만 아드리안과 만나지 못 했다면 두 쪽 다 바르바라가 먹었을 것이다.

 아드리안은 바르바라가 넘겨준 샌드위치를 받았다.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르바라는 조금 물러나서 근처에 앉아, 한쪽으로는 내장을 정신없이 뜯어먹는 고양이를, 다른 한쪽에는 자신이 만든 샌드위치를 감싼 포장지를 천천히 벗기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아드리안은 샌드위치를 보며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눈을 빛냈다.

 “얼른 한 입 먹어봐.”

 바르바라가 말했다.

 아드리안은 입을 벌렸다.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의 튼튼한 두 턱이 크게 벌어져, 마침내 호밀 빵을 무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 든 신선한 야채와 소스와 그녀가 낚아 올린 생선의 희고 고운 살이 두 동강 나는 장면을 아주 천천히,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음미하다가, 마침내 그 소리를 들었다.

 와삭.

 아드리안은 샌드위치를 베어 먹었다.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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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Daybreak «로그잇기 1»
1차/old 2019. 10. 22. 15:03

 술집에서 주먹질이 오가고 있었다. 신고를 받고 도착한 바르바라는 난장판 앞에서 무엇부터 수습해야 좋을지 몰라 그대로 우뚝 멈추어서고 말았다.

 테이블이 엎어져 있었고, 깨진 술잔 몇 개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카운터 뒤로 몸을 숨긴 직원들은 얼굴만 빼꼼 내민 채로 눈앞의 싸움판을 구경하다말고 바르바라를 발견하자 입모양으로 ‘기사님, 빨리요! 빨리요!’를 외쳤다.

 두 술꾼은 가게 한가운데에서 서로 멱살을 틀어쥐고 씩씩거리며 욕지거리를 퍼붓고 있었다. 그들의 주변은 마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온전히 서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바르바라는 누굴 먼저 떨어뜨려야 좋을지 고민했다. 주먹질이나 술 취한 사내의 체취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불쾌함의 문제였다. 바르바라는 최대한 그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물론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바르바라는 혼자였고 저들은 둘이었는데 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검집을 움켜쥐고 두 남자에게 다가갔다. 술 냄새가 진해졌다. 걸출하게 마신 남자들의 피부에서는 땀 대신 술이 흘러나오는 걸지도 모른다. 코를 찌르는 시큼한, 그러나 어딘지 맥 빠진 냄새. 바르바라는 남자들의 욕지거리 속에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상대에게 술값을 떠맡기려다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알고 싶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멱살을 쥔 두 사람의 주먹을 붙잡고 힘주어 분리시켰다. 남자들이 힘에 떠밀려 강제로 주춤거리듯 밀려나자, 바르바라는 빈 검집을 들어 키가 큰 쪽의 목덜미에 겨누었다.

 “두 분 다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때요?”

 머리 위에서 비웃는 소리가 났다. 바르바라는 눈앞의 남자보다 두 뼘이나 작았다. 그러나 그녀는 기사단 복장을 입고 있었고, 방금 그들을 손쉽게 떨어뜨렸다. 남자는 술에 취해서 사리분별이 안 되는 것일까?

 “넌 또 뭐야.”

 등 뒤에서 작은 키의 남자가 거칠게 바르바라를 낚아챘다. 바르바라는 다리에 힘을 주려고 했으나, 그대로 떠밀렸다. 어깨를 붙잡힌 바르바라에게 키 큰 남자가 주먹을 날렸다. 바르바라는 허리를 숙여 피했다. 키 큰 남자는 작은 키의 남자의 얼굴에 그대로 주먹을 꽂아 넣은 꼴이 됐다. 상황파악을 하는 짧은 침묵이 흐른 뒤, 두 남자가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꼭 돼지 같구나.’

 바르바라는 두 남자를 피해 가게를 뛰어다니며 생각했다. 지원이 오지 않을까? 혼자 힘으로는 무리일 것 같다. 바르바라는 남자들을 다치게 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대지 않고 제압하려면 적어도 한 사람이 더 필요했다.

 다른 생각에 잠겨있던 그 때, 누군가 바르바라의 뒤통수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바르바라는 정신을 차렸다. 신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남자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신경질적으로 눈을 떴다.

 ‘손뼈를 부수든 눈에 혹을 달아주든 네게 손 댈 기회 같은 거 주지 마, 바랴.’

 바르바라는 이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남의 상처 같은 건 생각해줄 필요가 없어.’

 바르바라는 몸을 비틀었다. 남자를 마주본 후에 그의 배를 정확한 속도로 걷어찼다. 머리카락이 뜯겨져나가는 감각이 생생했다. 남자가 바닥에 나뒹굴며 쓰러졌다. 키 큰 쪽이었다. 작은 키의 남자는 카운터 근방에 쓰러져있었다. 제 풀에 지쳐 쓰러진 것이거나 아까 얻어맞은 주먹의 후유증 때문일지도 몰랐다. 바르바라는 시큰거리며 숨을 골랐다. 다시 온화한 얼굴을 하려고 눈을 감아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사람이 증오스러웠다.

 술집을 나오는 길에 어떤 계시처럼 이반을 만났다. 지원을 나왔다고 했다. 바르바라는 사건이 이미 끝났고 남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해주었다. 이반은 바르바라의 얼굴을 살피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바랴, 너 화났구나.”

 “그렇지 않아…,”

 바르바라는 중얼거리다 말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티나?”

 “머리 꼴은 또 왜 그래?” 이반은 다른 주제로 옮겨갔다.

 “괜찮아, 응징했어.” 바르바라는 많은 정보를 건너뛰었다.

 “기회를 주었어?” 이반이 물었다.

 “정신을 놓고 있었어.” 바르바라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지. 그래서 모든 걸 수습했고. 그게 다야.”

  바르바라는 이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는 사실을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이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뜨뜻미지근한 햇빛 아래를 걸었다. 평소보다 곤두서있던 바르바라는 이반의 손등에 새로운 멍이 들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평화롭기 때문에 업무 중에서조차 긴장을 놓거나 곧잘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금세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술꾼에게 머리채를 쥐어 잡히는 것이다. 바르바라는 이반이 어떤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지를 생각했으나 곧 그만두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일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다. 이반이 옳다. 남의 상처를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바르바라가 뒤통수를 매만지자, 이반이 한 마디를 얹었다.

 “역시 넌 너무 착해, 바랴.”

 바르바라는 비웃는 것처럼 입 꼬리를 올렸다가 결국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야, 나는 나를 건드린 사람들에게 관대하지 않아.”

 아까 그 사람들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조그맣게 덧붙이자 이반이 작게 웃었다.

 “원래 그렇게 느닷없이 진심을 이야기하는 거야?”

 “통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술집이나 소란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언젠가 밤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둘은 다음에 또 그렇게 하자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처럼 주고받으면서도 실제로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크게 슬퍼하지는 않을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마도 두 사람은 또다시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에 앉아 주전부리를 씹고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이반과 헤어지기 전에 바르바라는 눈가가 부드러워졌음을 느끼고는 온화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반은 바르바라에게 화가 풀렸냐고 물어보았다. 바르바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겠어.”

 “다음에는 샌드위치도 가져가자.”

 이반은 또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래.”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그렇게 하자.”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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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Daybreak «대련로그 단문»
1차/old 2019. 10. 22. 15:02

 노을이 지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성곽에서 보초를 서다 말고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장이 파하고 사람들이 움직이고 개가 골목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곧 있으면 주변이 놀랄 만큼 조용해질 것이다. 해가 지면 대부분의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침묵과 어둠에 감싸인 거리와 점점이 밝아오는 별들. 파도소리.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을 바르바라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졸기 시작할 것이다. 

 “노을이 참 따숩지라.” 

 뒤에서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르바라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대꾸했다. 

 “그러니?” 

 “그라제. 오늘따라 유독 더 이뻐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트윙클은 언제든 활기찬 기운을 뿜는다. 해가 질 시간인데도 그녀는 점심을 막 배불리 먹고 나온 사람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어서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나부끼었다. 바르바라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에 걸면서 트윙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미스(Ms).” 바르바라가 그녀를 불렀다. 

 “와?” 

 트윙클이 눈을 끔뻑이자, 바르바라가 나른하게 웃었다. 

 “우리 가위바위보 하자.” 

 “갑자기 뭐꼬!” 

 “내가 이기면 내가 삼십분 자고, 미스가 이기면 미스에게 삼십분 농땡이 칠 시간을 줄게.” 

 “졸리면 쪼매 눈 붙이라! 뭘 그리 번잡시럽게 해샀노.” 

 “그럼 불공평한 것 같잖아.” 

 물론 가위바위보로 농땡이를 부리는 것부터가 잘못되었지만. 

 바르바라는 트윙클의 다음 말을 기다리지 않고 손부터 뻗었다. 아마도 그녀는 바르바라가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이고 또 어쩌면 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 하나, 둘.” 

 셋. 

 바르바라는 주먹을 냈다.

20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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