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인어의 말

 알렉스가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그것은 일자형 수조에 갇혀 있었고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항구는 인어를 잡아왔다는 소문에 줄줄이 모여든 사람들로 빽빽했다. 알렉스는 인어보다는 사냥꾼이라는 남자가 먼저 보고 싶었다. 그러나 까치발을 들어도 인파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저리 좀 비켜 봐요. 몸을 비집어 넣고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다가 철퍽 엎어졌다. 군집의 행렬은 끝나있었고 고개를 들자 천막을 씌운 거대한 수조가 시선 위로 솟구쳐 있었다. 수조를 지키던 무뚝뚝한 남자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알렉스는 남자의 가슴에 매달린 목걸이를 보았다. 조개처럼 보였으나 좀 더 편평하고 납작했다. 빛이 바랐지만 아름다웠다. 신비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조심하렴.”

 남자가 말했다. 그 순간, 천막 너머의 수조에서 탕탕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알렉스는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안에서부터 자그맣게 속삭임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수중에 응집되어 기포와 함께 희미해진 발음이었다.  그래도 가까이 서있던 남자와 알렉스에게는 똑똑히 들렸다. 그것은 말하고 있었다.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나를 풀어준다면.’

 ‘너는 죽이지 않을게.’

 “신경 쓰지 마라.” 

 남자는 냉랭하게 대꾸하며 알렉스를 내려다봤다.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두렵지 않았다. 그것은 수조에 갇혀있고 알렉스는 그것을 도울 생각이 없었다. 조금도 없었다. 그보다, 저 안에 든 저게 정말 인어일까?

 “정말 죽이려 들면 어쩌죠? 제가 듣기론 인어들은 힘이 무지막지하게 세다고 하던데요.”

 탕. 수조가 덜컹거리면서 좌우로 흔들렸다. 안에서 작게 쇠사슬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남자는 응수하듯 수조를 주먹으로 쿵 내리쳤다.

 “인어의 말은 믿지 마라.”

 남자는 경고하듯 씹어뱉었다.

 “그것들은 전부 거짓말만 한단다.”

 “당신이 저걸 잡아온 사냥꾼인가요?”

 알렉스가 물었다.

 “그래.”

 “기분이 어때요?”

 남자는 대답했다.

 “실망스럽구나.”

 알렉스는 얼굴을 찡그렸다.

 “왜죠?”

 “내가 찾던 게 아니었어.”

 알렉스는 수조를 담은 수레를 끌고 상인의 무리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남자의 어깨를 오래도록 응시했다. 실망스럽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는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를 지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찾던 것은 아니었다. 이름답지 않은 인어기 때문일까? 그는 무엇을 찾았던 걸까?

 경매가 시작되자 구경꾼이 몰렸다. 알렉스는 인파를 헤집으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수조를 실었던 수레를 밟고 올라가기로 했다. 남자는 여전히 수조 옆에 있었다. 보물을 소개하는 보석상보단 장례식 첫날을 맞이한 상주의 표정을 하고. 경매 주최가 몇 가지를 과장되게 떠든 후 남자를 돌아보자, 그는 수조를 덮은 덮개의 끝과 끝을 쥐곤 한 번에 벗겨냈다. 그 순간 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수조가 크게 흔들렸다. 수조에 반사된 빛 때문에 모두가 움츠렸다. 알렉스는 실낱같은 눈을 뜨고 몸을 곤두세웠다. 그는 그 자리에 서있던 구경꾼 중 가장 처음으로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남자였고 지느러미와 양손에 무거운 사슬을 차고 있었다. 어둠속에 잠겨있다 말고 느닷없이 빛에 노출된 사람의 표정 같은 것을 하고, 경멸스럽게 수조 옆을 지키는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물이 찰랑거려서 머리카락이 해초처럼 부드럽게 유영했다. 지상의 성질이라고는 할 수가 없는 속도로 상하좌우, 천천히 퍼졌다가 하나도 뭉쳐지면서. 그리고 그것이 돌아보았다. 시선이 사격되었다. 보이지 않는 화살이 구경꾼들을 제치고 곧장 어딘가로 와박혔다. 그것은, 수레를 밟고 올라간 열여덟 살짜리 소년 알렉스를 철저하게, 가차 없이, 무자비하게 관통했다. 알렉스는 이상한 고통을 느꼈다. 죄를 지은 사람처럼 내려앉은 심장이 막 건져올려진 생선마냥 토막토막 펄떡거렸다. 관념적인 고통이었다. 그것이 알렉스를 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알렉스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고통은 깔끔하게 뽑혀나가긴 커녕 대신 선명한 상처로 남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한 공격이 있었다. 알렉스는 가슴 언저리를 괜히 더듬거렸다. 그런 주제에 고개를 돌린 그것으로부터 눈을 떼지도 못 했다. 자기도 모르게 죽일 거야, 라고 읊조리게 되었다. 저것은, 저것은, 무엇이든 죽이고 말 거야. 중얼거린 후 그는 생각했다. 저것은, 저것은, 아름다운 촉을 가지고 있으니까.

 알렉스는 그것에게 무가치한 존재거나 혹은 흥미 밖의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내리깐 눈동자 위로 허연 물그림자가 져있었다. 알렉스는 바랐다. 가장 높은 고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지상의 존재인 자신을, 저렇게도, 저렇게도 어릴 줄이야… 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경매도 금방 끝나고 말았다. 인어는 마을 제일의 부호에게 팔렸다. 누군가 액수를 더 부를 엄두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전례 없는 가격이었다. 수도의 부르주아들이 와도 그만큼은 부르지 못 했을 테였다. 그가 마을의 운하사업을 맡은 후 거래처와 결탁해 떼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인어를 사들이고도 휘청거리지 않는다면 정말일 것 같았다. 인어는 그렇게 알렉스에게 화살 하나를 날래게 박아놓고, 책임지지 못 할 상처를 남겨놓고, 부호의 집으로 이송되었다. 멀어지는 수조를 보며 알렉스는 다시 한 번 가슴 언저리를 더듬었다. 그곳엔 그가 박아놓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이상한 촉이 박혀 있었다.

 

 운하사업

 알렉스가 살고 있는 공간은 앞으로 바다를, 뒤로 산맥을 등진 작은 시골 어촌이었다. 그러나 지방자치를 맡던 시장이 임기를 마치고 재산을 정리해 내려온 후 급하게 재개발 되고 있었다. 그가 바로 인어를 사들인 부호였다. 그는 이 마을을 관광지로 유치시키고 싶어 했다. 대중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안다고 유세를 내걸었다. 이 어촌이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슬로건을 사방에 붙여놓았다. 생선 비린내와 작살에 지친 주민들이 손을 벌려 환영했다. 운하사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에 그는 산맥 어귀에서부터 바다까지 이어지는 인공 수로를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비용은 고사하고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는지 계획이 도중에 수정되었다. 그는 운하 사업의 규모를 반으로 줄이고, 대신 최초 계획으로 얻어낸 예산의 4할을 그대로 삼켰다. 그 돈이 없었다면 인어를 살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굉장한 액수였다. 그는 운하 사업을 더욱 축소하기 위해 건설을 맡은 거래처와 결탁해 뇌물을 더 끌어들였다. 사업은 더 줄어들었다. 이제 인부들은 운하가 아닌 연못을 만들고 있었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신전처럼 지어진 부호의 집을 중심으로 층층이 내려다보이는 집 마당마다 거대한 구덩이를 팠다. 부호의 궁전에서 그곳을 내려다보면, 거대하고 둥그런 접시 같은 구덩이가 순차적으로 고도를 낮춰가며 계단처럼 이어졌다. 거기에 물을 채우고 물고기를 기를 거라고 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수로를 개방해서 부호의 집 수영장에서부터 물을 연못과 연못으로 이어 보낼 계획이었다. 그림만 생각하자면 근사한 사업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그는 그렇게 사업의 맥을 망치지 않고도 돈을 챙겨서, 그 돈으로 인어를 샀다.

 그는 인어를 위해 자신의 수영장을 확장시켜서, 마치 테라스처럼 꾸며놓았다. 그리고 그 위를 단단한 철망으로 씌웠다. 멀리서 보면 그것은 거대한 새장 혹은 흉물스러운 돔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바다의 존재가 살고 있었다. 갇혀 있었다.

 알렉스는 자전거를 타고 저녁마다 그 근처를 지나쳤다. 운이 좋으면 내리막을 내려가는 동안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깊고 어두컴컴한 바닷속, 판과 판이 갈라진 지구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져 올라오는 것만 같은, 누군가의 수렁을 닮은, 고요하고 음울한 목소리였다. 그것은 아름답기보다 끔찍했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유독한 목소리가 내리막길을 내달리는 알렉스의 서늘한 가슴으로 끊임없이 스며들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 분명히 꿰뚫렸던 가슴 언저리를 휑하니 스치고 있었다. 그것이 멈추지 않고 노래하고 있었다.

 인간은 인어를 강간할 수 없어
 인간은 인어를 가질 수도 없어
 인간은 오로지 인어를 불태울 수만 있어
 인간은 오로지 인어를 파괴할 수만 있어

 너를 죽일 거야, 라고 언젠가는 그렇게 말했었다.

 

 Tommy

 유난히 춥고 어두컴컴한 날 보름달이 떴다. 차가운 공기는 금속과 날카롭게 벼려진 것들, 섬세하고 유려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추운 날엔 유독 달이 하얗고 서늘하게만 보였다. 알렉스는 내리막길을 위해 자전거를 끌고 자꾸만 높은 곳으로 향했다. 운하 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집 곳곳에 거대한 흙더미가 쌓여 있었다. 밟을 때마다 우드득, 돌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났다. 알렉스는 부호의 새장 근처에서 비로소 멈추어 섰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선 달빛에 부서지는 밤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귀를 기울였지만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올 정도로, 고요했다. 그 때, 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큰 진동이 일었다. 쾅! 알렉스는 소스라치게 놀라 자전거를 내던지고 부호의 새장으로 달음박질했다. 철옹성 같은 철제 돔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렸다. 쾅! 알렉스는 부호의 저택을 빙 둘러싸고 있는 정원목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엎어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쾅! 알렉스는 숨을 고르며 발을 끌고 기다시피 돔 앞으로 기어갔다.

 그곳에는 인어가 있었다.

 바짝 돔 앞에 몸을 붙인 채, 지그재그로 얽힌 철망을 붙잡고 죽일 듯이 알렉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알렉스는 그것의 눈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노여움과 두려움, 힐난과 그리움이 혼재한 눈동자는 달빛 속에서 녹색도 파란색도 아닌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물을 강하게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알렉스의 시선이 비로소 그것의 얼굴 너머, 허리 아래부턴 도무지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구역으로 이동했다. 지느러미는 은빛이었고 방금 전까지 언덕에서 내려다보던 밤바다 위의 달을 꼭 닮아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달빛을 받아 도무지 달, 혹은 빛으로만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의 것처럼 반짝일 때, 알렉스의 눈으로 물이 튀겼다.

 “윽, 하지 마.”

 알렉스가 고개를 마구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그것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지 몰랐으므로 중얼거린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행동을 멈추고 알렉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알렉스는 중얼거린 게 아니라 말한 것이 되었다.

 “왜 왔어?”

 인어가 딱딱거렸다. 알렉스는 물기를 닦아내며 돔 앞에 바싹 붙었다.

 “소리가 나서.”

 “날 도와줄 거야?”

 “아니.”

 알렉스가 입술을 찡긋거렸다.

 “그런 짓 했다간 내 목이 날아가. 널 배상할 돈이 없거든. 그리고 설령 시도했어도 힘들었을 거야.”

 “왜?”

 “이거.”

 알렉스가 둥글게 얼기설기 얽힌 돔을 가리켰다.

 “강철이거든. 그냥 강철도 아니고 아주 특수한 강철이라고, 지상에서 단단한 모든 걸 녹여 만든 거라고 네 주인이 그랬어.”

 “난 주인이 없어.”

 “한 달 전에 생겼어.”

 알렉스는 그렇게 말해놓고 괜히 분한 마음이 들었다. 분하다니, 무엇을? 그는 빈털터리 고아였고 신문사의 다락방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인어를 가질 수 있는 자본 따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눈앞의 인어를 보면 재물을 마주한 것처럼 탐이 났다. 재물일 수 없었으나 재물로 취급되고 있는 존재를. 가지고 싶었다.

 “인어는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오, 나도 알아.”

 알렉스는 기묘한 허밍 음을 내며 한쪽 눈을 찡그렸다.

 “인간은 인어를 가질 수도 없어…….”

 인어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알렉스는 흘끔, 그의 눈치를 보며 노래를 중단했다.

 “네가 매일 부르잖아. 아니야?”

 “맞아.”

 “앞부분은 까먹었어, 미안.”

 “인간은 인어를 강간할 수 없어.”

 인어가 말했다.

 “그 뒤도 알아?”

 “알아.”

 알렉스는 어설프게 노래를 불렀다. 인간은 오로지 인어를 불태울 수만 있어. 인간은 오로지 인어를 파괴할 수만 있어……. 인어는 아까보다 누그러진 기색으로 돔에서 천천히 떨어져 수영장 바닥에 얼굴을 뉘였다.

 “너 정말 노래 못 부른다.”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서 그래.”

 알렉스가 항변했다.

 “그런 걸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어.”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어?”

 “조금?”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배우지 않아도 상관없어.”

 “왜?”

 “그런 일들이 많았으니까.”

 알렉스가 대답했다.

 “그리고 배운다고 해도 잘해내진 못 할 거야.”

 “너 인어한테 노래를 배우면 누구보다 노래를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거 알아?”

 인어가 천천히 물에서 반쯤 빠져나왔다. 지느러미를 걸친 채 알렉스 쪽으로 가까이 붙었다. 알렉스는 마른 침을 삼켰다.

 “들어본 적 없는데.”

 “나처럼 부를 수 있어.”

 인어가 속삭였다.

 “약속을 하자. 매일 밤마다 여기로 와줘. 나랑 대화를 하면 노래를 가르쳐줄게.”

 “무슨 대화?”

 “이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

 인어는 눈을 깜빡였다. 아주 슬퍼보였다.

 “평생 여기에 있어야만 하는 운명이라면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

 “좋아.”

 알렉스는 약속했다.

 “매일 올게.”

 “그래, 너 잊지 마.”

 “알렉스야.”

 알렉스가 인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인어는 한참동안 답이 없었다. 파도소리와 함께 희미한 바람소리가 들렸다. 짠 내가 났다. 마침내 인어가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수영장에 온몸을 천천히 담그며 중얼거렸다.

 “토미.”

 인어의 눈동자가 형형히 빛났다.

 “내 이름은 토미야.”

 그렇게 알렉스는 인어의 이름을 획득하게 되었다.

 

 Alex

 그는 원래 고아가 아니었다. 모친이 알렉스를 출산하자마자 죽긴 했지만 그에겐 아버지가 있었다. 여덟 살 때까지 알렉스의 꿈은 그의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는 것이었다. 고전문학에 줄곧 등장한 거대한 참치를 잡는 꿈을 좋은 꿈이라고 여겼다. 그런 꿈을 꾼 날 아버지에게 달려가면 길몽이라며 동전을 주었다. 알렉스는 꿈을 판값으로 사탕을 사먹거나 과자를 집어먹었다. 그의 아버지는 알렉스가 열 살에 여느 때처럼 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시체조차 건질 수 없었다. 뱃사람에게는 진부한 죽음이었다. 그것을 언제나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굉장히 슬펐다. 알렉스는 한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은행원들의 방문에 비로소 문을 열었다. 신탁계좌를 만들 거란다. 그들은 설명했다. 네가 성인이 되면 작은 돈이긴 하지만 네 아버지 재산을 모두 돌려줄 거야. 알렉스는 곧 기운을 차렸다. 그가 집안에 틀어박힌 채 맞서 싸워온 건 아버지의 부고로 인한 슬픔이 아닌 그 부재로 인한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활의 유지와 자립에 대한 걱정이 신탁계좌라는 단어 아래에 잘 정돈되었다. 알렉스는 추모를 그만두고 밖으로 나와 어디에나 취직했다. 빵집에도 취직했고 꽃집에도 취직했고 창고에도 취직했고 교회에도 취직했다. 그가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그는 마을의 조그만 신문사에 취직해서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날랐다. 마을 가장 높은 곳-부호의 집에서부터 시작해 차례로 내려가면서 페달을 밟고 신문을 솜씨 좋게 집집마다 던져 넣는 일은 보람도 무엇도 없었지만 알렉스는 그 일을 좋아했다. 부호의 집 앞을 어슬렁거릴 수 있는 적당한 핑계거리가 생긴 까닭이었다. 아침이던 밤이던 간에 신문사 로고가 붙은 자전거 하나만 있으면 그럴싸한 이유를 댈 수 있었다.

 토미와의 첫 대면 이후, 알렉스는 약속대로 매일 돔 앞까지 왔다. 밤마다 걸어서 풀숲을 헤치고 왔다. 토미는 언제나 그 소리에 맞춰 지느러미를 움직여 넓고 깊은 수영장의 끝에서부터 끝으로 쏜살같이 헤엄쳐왔다. 첨벙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알렉스의 가슴이 부풀었다. 신비하고 존귀한 존재가 자신을 기다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물소리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토미는 알렉스의 혓바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눈여겨보면서 발음과 음의 고도를 가르쳤다. 높은 음을 어떻게 뱉고 낮은 음을 어떻게 긁어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인간은 오로지 인어를…….”

 “그 뒤는 힘주지 마.”

 “……불태울 수만 있어.”

 “응, 그렇게.”

 토미는 눈을 깜빡이며 알렉스의 얼굴과 떨리는 입천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알렉스가 입을 다물고 그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너 정말 아름답구나.”

 토미는 그것을 역겨운 말처럼 대했다.

 “매일 들어. 별로 좋아하는 말이 아니야.”

 “누구에게?”

 “날 산 남자에게.”

 토미는 수영장 끄트머리에 세워진 작은 의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앉아서 매일 그 소리를 해.”

 “그럼 다른 말을 할게.” 

 알렉스는 고민하다가 진중하게 속삭였다.

 “넌… 달 같아.”

 “어떤 달?”

 “보름 달.” 

 그러자 토미가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알렉스를 응시했다.

 “너 인어를 알아?”

 “음, 아니.”

 알렉스는 다소 멍청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대답했다.

 “네가 처음이야.”

 “모든 인어는 보름달을 좋아해.”

 “왜?”

 “인간이 될 수 있거든.” 

 알렉스는 놀랐다.

 “거짓말.”

 “딱 하루야. 딱 그날 밤이야.”

 “그럼…….”

 알렉스는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더듬거렸다.

 “그럼 왜 그 날엔 계속 인어였는데?”

 “여긴 바다가 아니잖아.”

 토미가 대답했다.

 “바다가 아닌 곳에 사는 인어가 어떻게 인어라고 할 수 있어?”

 토미의 눈은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차있었다.

 “나는 이제 인간도 인어도 아닌 존재가 된 거야.”

 알렉스는 토미의 고통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면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그는 다소 방어적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이곳에 올게.”

 “그건 약속한 거잖아.”

 토미의 지느러미가 물속에서 달빛을 받아 느릿하게 반짝였다.

 “내가 노래를 가르쳐줬으니 이제 마저 약속을 지킬 차례야.”

 “엄.”

 알렉스는 뜸을 들였다.

 “네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할지 모르겠어. 그냥 마을 이야기면 돼?”

 “글쎄.”

 토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짧게 대꾸했다.

 “네가 알아서 해.”

 “음.”

 알렉스는 이야기를 고민해보았으나 잘 되지는 않았다. 처음에 그는 지리 이야기를 했다. 산을 등지고 바다에 맞서는 작은 고장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이 고장에서 가장 큰 집의 이야기가 나올 땐 토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시한 이야기라며 끝을 흐렸다.

 “음, 물론 너도 잘 알겠지만. 위넌트는 제일 부자고.”

 “왜 그렇게 돈이 많은데?”

 “어… 운하산업 때문에?”

 알렉스는 토미와 마주보던 제 몸을 한쪽으로 비켜 세우고 흉물스럽게 층층이 늘어진 구덩이들을 보여주었다. 구덩이의 나열은 해변의 작은 집 마당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끝났다. 밤이라 잘 보일지 의문이었다. 구덩이는 어둠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밤 속에서 포착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으니. 그러나 토미는 철창을 붙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 후 수영장 아래로 펼쳐진 그 풍경을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를 포착하려 애쓰는 눈동자가 어둠속에서 공간을 꿰뚫었다.

 “사람들은 위넌트가 돈을 꿍쳤다고 하더라.”

 알렉스가 구멍 뚫린 풍경 곳곳을 훑어보며 바람에 눈을 찡그렸다.

 “저걸 하면서 엄청 돈을 벌어서 원래 부호였지만 이제는 엄청난 부호가 되었대.”

 “너희 집은 어딘데?”

 토미가 속삭였다.

 “너희 집 앞에도 저런 게 있어?”

 “음, 아니.”

 알렉스는 솔직히 대답했다.

 “난 이제 집이 없어.”

 “왜?”

 “부모가 없거든. 그리고 아버지가 남긴 돈은 전부 은행 신탁계좌에 있지. 그것도 몇 푼 되는 건 아니지만. 어머니는 날 낳다가 죽었는데, 아버지도 대충 내가… 아마 아홉 살쯤이었을 거야. 아마도. 사실 잘 기억 안 나. 여하튼 배를 타고 생선을 잡는 사람이었는데, 뻔하지만 배를 타다가 죽었어. 누군가 인어가 잡아먹었을 거라고 하더라.”

 알렉스는 마지막 말을 뱉어놓고 후회했다. 그러나 토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것이 알렉스를 두렵게 했다.

 “토미.” 

 “말해.”

 “사람을 먹어본 적 있어?”

 그러자 토미가 매섭게 알렉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고요하게 알렉스를 응시했다. 맹수의 그것처럼…… 알렉스는 엉거주춤 자세를 흐트러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미안.”

 “알면 됐어.”

 토미는 다시 물로 되돌아갔다. 지느러미를 박차고 수영장의 끝에서부터 끝까지 빠르게 왕복하고 돌아왔다. 알렉스는 넋이 나간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말이지 그가 헤엄을 칠 때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토미의 말이 맞았다. 그는 이곳에서 나가야만 했다. 이런 조그만 곳에 갇혀있으면 안 됐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가 정말 이곳을 나가게 된다면 알렉스는… 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남겨지는 걸까? 인어가 없는 이 고장에 그가 남아있을 이유가 대체 뭐가 있을까?

 “알렉스.”

 “응?”

 토미는 물속에서 고개를 들고 천천히 눈을 떴다. 시선은 알렉스를 향해있었지만 눈동자는 텅 비어있었다.

 “나를 꺼내줘.”

 알렉스가 말을 흐렸다.

 “내가 할 수 없는 거 알잖아…….”

 토미는 눈을 감았다.

 “그래, 알아.”

 그는 중얼거렸다.

 “잘 알고 있어.”

 토미는 잠수했고 오랫동안 솟아오르지 않았다. 알렉스는 쭈그려 앉은 채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토미는 올라오지 않았다. 기포도 없고 숨이 담긴 물방울도 없었다.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존재는 단순히 머리를 집어넣었을 뿐인데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었다. 한참을 외롭게 기다리던 알렉스는 결국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리막길로 되돌아가기 위해 풀숲으로 들어섰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등 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첨벙, 첨벙, 거리면서 수영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좁아터진 수조를…… 토미는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야겠지.

 그렇다면 난 토미를 평생 볼 수 있는 걸까.

 해서는 안 될 생각을, 죄를, 저질러버린 것 같은 기분으로, 알렉스는 뒤돌아보지 못 하고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사냥꾼의 노래

 운하산업이 중간으로 접어들었을 무렵, 알렉스는 신문을 던지다 말고 그를 만났다. 수조 앞을 지키던, 토미를 물위로 끌어올린 그 남자, 이 고장의 명성 높은 사냥꾼. 그는 대문 앞에서 굴러다니는 신문을 집어 들곤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걸친 알렉스를 무미건조하게 바라보았다. 알렉스는 적잖이 놀랐다. 그의 집은 대부호에게 인어를 팔아넘긴 사람치곤 지나치게 볼품없고 초라했다. 돈을 다 어디다 쓴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알렉스가 먼저 인사했다. 남자는 멍하니 바다 쪽을 응시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인사하지 않았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어, 목걸이가 멋지네요.”

 알렉스는 남자의 목에 걸린 그것을 시선으로 가리켰다. 남자가 손가락으로 느릿하게 결을 더듬거리며 목걸이를 문질렀다.

 “조개인가요?”

 “아니.”

 남자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개는 아니다.”

 “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알렉스는 잠시 고민했으나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어 바다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알렉스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음, 인어를 잡으셨잖아요.”

 “그래.”

 “작살로 잡은 건가요?”

 “아니.”

 “그물로 잡은 건가요?”

 “그것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그랬지.”

 “그럼 어떻게 가까이 다가오게 했는데요?”

 남자는 대답했다.

 “노래를 불렀다.”

 “오.”

 예상치 못 한 대답에 알렉스가 우물쭈물했다.

 “그렇군요.”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앞으로도 인어를 사냥하러 나가실 건가요?”

 그러자 남자는 굉장히 공허하고 끝없는 눈으로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알렉스는 그 눈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것들, 부서지는 파도와 어두컴컴한 바다, 그 바다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생물들의 꿈틀거림을 보았다. 알렉스는 시선을 피했다.

 “아니. 이젠 포기했다.”

 남자가 무겁게 대꾸했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인어를 잡는 노래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마.”

 알렉스는 고개를 돌려 남자를 응시했다. 그러나 곧장 대답하지는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남자는 신문을 옆구리에 꼈다.

 “잘 있어라.”

 그런 후 남자는 문을 열고 집안으로 사라졌다. 작게 음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쾅, 문이 닫히자 멜로디는 희미해졌다. 알렉스는 하얗게 질린 채로 내리막길을 쏜살같이 내려왔다. 남자의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귓바퀴를 자꾸만 맴돌고 있었다. 알렉스를 겁에 질리게 하고 있었다.

 

 꿈

 내가 살던 곳은 따뜻하고 고요해. 바닷물이 바닷물 속에 고여 있는 거야. 요람처럼.

 잘 상상이 안 돼.

 눈을 감아 봐. 뭐가 보여?

 그냥 깜깜하기만 한데.

 거기가 내가 있던 곳이야.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왜?

 ‘ .’

 마지막 말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이야기, 이야기들

 어릴 땐 참치 잡는 꿈을 꿨었어. 아주 큰 참치. 어, 그러니까 지금 내가 너한테 동족상잔을 고백하고 있는 건가? 오, 아니구나. 참치 좋아한다고? 그래… 토미 너도 참치를 먹는 구나. 여하튼 아주 큰 참치였어. 나는 그걸 작살로 잡아서 배에 힘겹게 끌고 와… 집에 도착하는 거야. 아버지가 식탁에 앉아있다 말고 나를 반기지. 그리고 나와 함께 그 무겁고 거대한 참치를 헹가래 하는 거야. 왜 하필 내가 아닌 참치를 헹가래 하는 걸까 고민해본 적도 있어. 하지만 꿈속의 아버지는 나보다는 생선이 좋았던 모양이야. 어쩌면 실제로 그랬는지도 모르지. 생선을 잡으려고 바다에 나갔다가 나를 두고 죽었으니까. 소중한 게 있으면 악착같이 살아 돌아오잖아. 인간은 그렇거든.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서… 사실, 소중한 걸 뺏길까 봐 그런 걸 거야. 죽으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잖아. 내가 주인이었는데 내가 사라지니까……. 아버지는 내 주인이었던 셈이지. 그러니까 나도 언젠가는 너처럼 누군가에 의해 가둬지고 키워지고 영영 나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던 거야. 하지만 아버지는 나보다 생선이 더 소중해서 죽고 말았어.

 토미가 물었다. 위넌트도 죽게 될까? 뭐, 그도 인간이니까. 언젠간 죽어. 알렉스가 대답했다.

 내 이야기는 그 뒤론 정말 재미없어. 하루 종일, 거의 평생, 일만 했거든. 돈을 벌지 않으면 사람은 죽고 마니까.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돈이야. 지금도 난 돈을 벌고 매일 밤 너를 만나러 오는 거야. 너도 알겠지만. 난 신문을 배달해. 신문이 뭐냐면… 어, 다른 사람들이 간밤에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나 모두에게 알려주는 종이야. 생선 값이 오늘은 얼마고, 내일은 얼마가 될 것 같고, 그런 것들도 알려줘. 운하 산업에 대한 이야기도 해. 너 전에 물어봤었지? 이제 구덩이를 다 파서 내일이면 물을 채워 넣는대. 신문에서 그러는데 대충 일주일이면 될 거라고 하더라.

 한 곳에 고인 물은 썩어. 토미가 말했다. 알렉스가 동의했다. 그래, 내 생각에도 그래.

 이번엔 토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에겐 섬이 있어.

 우리?

 그래, 우리.

 네 친구들?

 그래, 많진 않아.

 너 말고 또 다른 인어가 있는 거구나.

 그래. 난 혼자는 아니야.

 외롭지 않겠네.

 그렇지 않아.

 토미가 말했다.

 난 외로워.

 알렉스는 그 말에 외로움을 느꼈다.

 그렇구나.

 그래… 난 섬으로 돌아가고 싶어.

 거기가 어디 있는데?

 설명할 수 없어. 하지만 여기서 아주 멀어.

 거기서 뭘 하는데?

 노래를 부르지. 그리고 보름밤이 되기를 기다려.

 인간이 되려고?

 그래, 두 다리가 생기길 기다려.

 왜?

 새끼를 치려고.

 이번에 알렉스는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어… 그렇구나.

 토미는 희미하게 웃었다.

 넌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못 하는 구나.

 거짓말이었어?

 아니.

 토미는 출렁거리며 물장구를 치다가 유유히 되돌아왔다.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자.

 “왜?”

 “노래 가르쳐줄게.”

 인어는 정말 제멋대로구나. 알렉스는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인간은 인어를 강간할 수 없어, 인간은 인어를 가질 수도 없어…….”

 “계속 불러.”

 “인간은 오로지 인어를 불태울 수만 있어… 인간은 오로지 인어를 파괴할 수만 있어.”

 알렉스는 노래를 멈췄다.

 “위넌트가 너를 강간하기도 해?”

 토미는 대답 대신 물속에 얼굴을 반쯤 집어넣은 채 투명하게 알렉스를 올려다보았다. 눈동자에 물기가 어려 있었지만 슬픔에 젖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토미, 대답해줘.”

 알렉스는 알 수 없는 질투를 느꼈다. 그 질투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고 괴로운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토미.”

 “빨아줘.”

 토미가 물속에서 속삭였다.

 “안 그럼 그가 나를 아프게 해.”

 “위넌트가 너를 불태우기도 해?”

 토미는 대답하지 않고 물속에서 손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알렉스의 앞으로 가져다놓았다. 알렉스가 돔에 바짝 붙어 섬세하고 단단해 보이는, 조각상 같은 손을 들여다보았다. 손가락들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잔뜩 부풀어 있었다. 누군가의 손자국의 모양 그대로 손목을 감싸고 있었다.

 “인간들은 뜨겁거든.” 

 토미가 말했다.

 “내겐 불덩이 같아.”

 “나는 너를 만지지 않을게.”

 알렉스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제발 나를 싫어하지 마.”

 “너도 인간이야.”

 토미가 부드럽게 타일렀다.

 “그리고 넌 날 만지게 될 거야.”

 “왜?”

 “넌 나를 보면 위넌트와 똑같은 눈을 해.”

 “그렇지 않아.”

 알렉스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을 거야.”

 “그렇지 못 한 것뿐이지.”

 토미는 천천히 물러났다.

 “하지만 괜찮아… 난 이제 그 섬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잊어버렸어.”

 달빛 속에서 토미의 지느러미가 형형하게 빛났다. 아름답게 부서지고 있었다.

 “알렉스, 넌 인간 중에서도 가여운 편에 속한다고 생각해.”

 토미가 말했다.

 “나는, 너의 가엾음을 인정해…….”

 알렉스는 그 말에 큰 상처를, 동시에 큰 위안을 받았다. 저절로 손이 가슴 언저리를 쓰다듬게 되었다. 언젠가 토미가 분명하게 박아 넣었고, 점유했고, 뽑아냈음에도 분명한 상흔이 남은 영혼의 구멍을.

 토미는 수면 위로 카펫 같은 주름을 잔잔하게 띄우며 천천히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인간은 인어를 강간할 수 없어

 운하 사업이 마무리에 접어들고 있었다. 인부들은 몇 갤런의 물을 깊고 깊은 구덩이로 쏟아 넣었다. 흉물스러웠던 앞마당마다 아름다운 연못이 생겼다.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알렉스는 페달을 밟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다. 갈매기들이 낮게 날고 있었다. 폭풍우가 올 거야. 편집장은 재난 경보를 실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르막길을 오르자, 굉장한 광경이 펼쳐졌다. 알렉스는 자전거에서 내린 후 뜀박질로 더 높게 올라갔다. 부호의 궁전까지, 위넌트의 감옥까지, 가장 높은 곳으로……. 그리고 내려다보았다. 테라스처럼 솟은 인어의 수조 아래로, 계단처럼 층층이 깎아지른 무수한 연못들의 향연을 보았다. 바다를 향해 이어지는 그 둥근 접시들, 한밤의 달을 담을 물웅덩이를 바라보았다……. 그 때,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알렉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토미의 목소리였다.

 알렉스는 허겁지겁 정원을 헤치고 나아갔다가, 이내 천천히 멈추어 섰다. 낯선 자의 목소리가 함께 뒤엉켜 있었던 까닭이었다. 알렉스는 숨을 죽이고 엎드렸다. 천천히 기어 풀을 치워냈다. 돔 근처에 다다르자 목소리들은 뚜렷해졌다.

 “이리 와.”

 알렉스는 토미의 팔을 마치 물건 다루듯 쥐어 올린 위넌트를 보았다. 그는 꼭 거대한 생선을 건져 올리는 것과 같은 폼이었다. 토미는 위넌트에게 쥔 팔목을 잡아 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서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위넌트가 토미를 물속에서 잡아끌자, 토미의 지느러미가 마구 꿈틀거리며 수면을 사방으로 후려쳤다. 물방울이 강하게 튀겨서 엎드린 알렉스의 뺨에도 몇 방울 튀겼다.

 “이리 오라니까.”

 위넌트가 으르렁거렸다. 토미는 길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런데도 단 한 마디 꺼내지 않았다.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증오한거나 죽여버린다거나, 그런 저주의 말도 없었다. 완강히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젓고 있었다. 위넌트는 토미의 얼굴을 붙잡아 제 가랑이 사이로 처박았다.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토미가 고개를 저었다. 위넌트는 참을성 있게 그를 짓눌렀다. 양손을 촉수처럼 뻗어 토미의 뒷덜미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토미가 흐느끼면서 고개를 박았다. 고통으로 빳빳하게 굳은 지느러미가 한 번 부르르 경련하다 말고 물속에 축 늘어졌다. 토미가 억지로 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욱… 아헥…… 어흑……. 헐떡이는 소리에 구역질과 질척한 점성이 뒤엉켜 엉망이었다. 알렉스는 입을 틀어막았다. 구토감이 올라와 견딜 수 없었다. 토미는 위넌트의 성기를 빨다 말고 견딜 수 없다는 듯 힘껏 고개를 젖혔다. 그러자 위넌트가 토미의 머리통을 붙잡고 쳐올리기 시작했다. 토미는, 결코 허우적거릴 수 없는 존재였음에도, 분명하게 허우적거렸다. 고통으로 울고 있었다. 잠시 후 위넌트가 사정했다. 그가 놓아주자마자 토미는 튕겨져 나가듯 그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토미는 뚝 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벌건 눈과 코로부터 끊임없이 액체가 줄줄 샜다. 위넌트는 바지를 추슬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택 안으로 사라졌다. 알렉스는 헛구역질을 하며 풀숲에 고개를 박았다. 토미가 흐느끼는 소리가 돔 안에서 잔잔히 들려왔다. 알렉스는 젖은 입술로 고개를 들었다. 돔 앞으로 기어나갔다.

 “토미.”

 “어흑…….”

 “토미.”

 토미는 고개를 들고 증오스러운 눈으로 알렉스를 쏘아보았다. 벌건 눈에 주렁주렁 진주가 매달려 있었다. 진주는 알알이 수면으로 쏟아졌다. 반짝반짝하고 은은했다, 끔찍할 만큼… 정액을 닮아 있었다. 토미가 물속으로 허연 침을 뱉었다.

 “왜 왔어?”

 “내가 너를.”

 알렉스가 헐떡거리며 돔의 철창을 세게 쥐었다.

 “내가 너를 구해줄게.”

 알렉스가 마구 약속했다.

 “정말로 너를 이곳에서 구해줄게.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토미. 정말 미안해, 토미.”

 “어떻게?”

 “잘 모르겠어…….”

 알렉스는 절박하게 중얼거렸다.

 “잘 모르겠어, 토미… 그래도 너를 구해줄게. 약속해. 약속해, 토미.”

 토미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몇 번 자맥질을 하려다 포기했는지 그대로 물 안으로 고꾸라져 가라앉았다. 낮이었으므로 알렉스는 물속에 쓰러져있는 토미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수조… 바닥은 온통 허옇고 반짝반짝했다. 알렉스는 밤이었으므로 결코 알지 못 했다. 결코 보지도 못 했다. 그곳은 온통 진주투성이였다.

 “인간은 결코 인어를 강간할 수 없어….”

 알렉스가 속삭였다.

 “인간은 결코 인어를 가질 수도 없어…….”

 물속에서 희미한 물방울이 올라왔다. 알렉스는 눈물을 닦아냈다. 토미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바닥을 짚고 일어나 천천히 알렉스 쪽으로 헤엄쳐왔다.

 “이제 형편없지는 않구나.”

 토미가 팔을 겹치고 얼굴을 얹었다. 그리고 알렉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진주가 가득 담겨있었다.

 “가져.”

 토미가 말했다.

 “난 필요없어.”

 “나도 필요없어.”

 알렉스는 모욕을 당한 기분을 느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걸 원한 게 아니야.”

 “알아.”

 토미가 속삭였다.

 “그렇지만 위넌트에게 주긴 죽기보다 싫어. 무슨 뜻인지 알지…… 알고 있지, 알렉스.” 

 토미가 애원했다.

 “빨리 받아.”

 알렉스는 딱딱하게 굳은 채 토미의 손에 쌓인 진주알갱이들을 바라보았다.

 “부탁이야?”

 “그래.”

 “너를 꺼내달라는 부탁은 안 해?”

 “말했잖아.”

 토미가 중얼거렸다.

 “이제 그 섬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희미하다고.”

 알렉스는 눈가를 힘껏 닦아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양손을 모아 토미의 손 아래로 오므렸다.

 “네가 쏟아줘.”

 알렉스가 말했다.

 “난 널 만지지 않을 거야.”

 그래서 토미는 그렇게 했다.

 

 전설

 인어는 힘이 세다
 인어의 눈물은 무엇이든 치유한다
 인어의 눈물은 굳으면 진주가 된다
 인어의 진주는 세상 그 어떤 진주보다 값비싸다
 인어의 진주는 녹이면 강한 독이 된다
 인어의 노래는 누군가를 홀려 죽일 만큼 아름답다
 인어에게 노래를 배우면 인어처럼 노래하게 된다
 인어는 자신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인어의 고기를 먹으면 불로장생하거나 평생 저주 받는다
 인어는……,
 인어는…….
 알렉스는 진주의 전설을 안다.

 

 인간은 오로지 인어를 불태울 수만 있어

 그날 밤, 알렉스가 거대한 유리병을 짊어지고 오르막길을 올랐다. 만월이었다. 등 뒤로 새하얗고 서늘한 보름달이 떠있었다. 연못마다 조금씩 나누어 담겨져 있었다. 알렉스는 위넌트의 저택 앞에 자전거를 내팽겨 치고 유리병을 짊어진 채 풀숲을 헤치고 달려 나갔다.

 토미는 알렉스가 정원을 가로질러 뛰어오는 것을 보았다. 알렉스의 눈을 보았다. 그는 정말로, 진심으로…….

 “토미.”

 알렉스가 속삭였다.

 “뒤로 물러나.”

 달빛 아래서 유리병에 담긴 액체가 진득하게 출렁거렸다. 그것은 꼭 달빛과 꼭 닮아있었다. 토미의 지느러미를 닮아있었다. 토미가 물었다.

 “그게 뭔데?”

 알렉스가 대답했다.

 “네 독.”

 토미는 알렉스의 손이 형용할 수 없는 모양새로 짓물러있는 것을 보았다.

 “그걸 짊어지고 왔어?”

 “그래. 이제 비켜줘.”

 알렉스가 이를 갈았다.

 “이건 지금 아주 뜨거워.”

 토미가 뒤로 참방거리며 물러나자, 알렉스는 유리병을 열고 바닥을 고쳐 잡았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나머지 한손으로 주둥이를 붙잡았다. 독소에 쏘인 것처럼 손가락이 순식간에 부식하기 시작했다. 살타는 냄새가 났다. 토미가 눈을 찡그렸다. 알렉스는 신음하면서 있는 힘껏 진주의 액을 철장 안으로 내던졌다. 돔이 크게 흔들렸다. 길게 늘어진 토미의 지느러미가 불에 데인 것처럼 화들짝 놀라 마구 파닥거렸다. 액이 튀긴 자리가 조금 녹아있었다. 토미는 녹아서 납작해진 제 비늘을 손가락으로 훑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숨을 삼켰다.

 돔의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하얗고 눅진한 액이 달빛에 반짝이며 천천히 돔과 함께 녹아내리고 있었다. 구멍 너머로 하얀 달이 보였다. 토미는 찰랑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알렉스는 헐떡거리며 유리병을 집어던졌다. 손가락 마디마다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피와 살덩이가 엉겨 붙어 온통 엉망이었다.

 “토미, 넌 자유야.”

 알렉스가 중얼거렸다.

 “젠장… 너는 자유라고.”

 돔을 녹이던 진주의 액이 흘러내리다말고 딱딱하게 굳었다. 토미는 알렉스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는 힘껏 손을 펼쳤다.

 “알렉스.”

 “잠시만.”

 알렉스는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자전거 뒤에 담요를 실어놨어. 가지고 올게… 그럼 넌 화상을 입을 필요도 없이 바다로… 내가 바다로 데려다줄 수 있을 거야.”

 “알렉스.”

 토미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 괜찮아. 이리와.”

 알렉스는 천천히 돔 앞에 바싹 붙었다. 토미가 펼친 하얗고 섬세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토미가 알렉스의 손을 시선으로 가리켰다. 알렉스는 머뭇거리며 상처로 엉망진창인 제 손을 엉거주춤 펼쳐 그 앞으로 가져다댔다. 토미는 다정하게 그곳에 뺨을 가져다댔다. 돔의 철장을 사이에 두고 아주 조금의 열기가, 그리고 알렉스에게는 조금의 축축함이 전달되었다.

 “고마워.”

 토미가 속삭였다.

 “소원을 들어줘서 고마워.”

 “별 거 아니야.”

 알렉스가 몹시 지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는 울고 있었다.

 “이제 내 소원을 들어줄래?”

 “뭔데?”

 “이게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알렉스는 애원하듯 신음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아. 하지만 너를 가지고 싶어.”

 토미는 희미하게 웃었다. 알렉스는 이번에는 토미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느꼈다. 토미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물러났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로… 뒤로 물러났다. 알렉스가 벌떡 일어났다.

 토미는, 있는 힘껏 지느러미를 박차고 솟구쳐 올랐다. 둥근 포물선을 그리며 녹아내린 돔의 구멍을 지나, 하늘 끝으로 날아올랐다. 달빛 위로 매끄러운 실루엣이 선명하게 반짝였다. 토미는 천천히 공중에 머물러 있다가, 곧 중력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추락했다. 그 일련의 과정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알렉스는 토미가 저택 바로 아래에 펼쳐진 넓은 연못으로, 운하사업으로 지지부진하게 파헤치던 물웅덩이로 떨어지는 것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풍덩… 소리와 함께 거센 파동이 일었다. 잠시 후, 연못 속에서 토미가 다시 솟구쳤다. 그는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가…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그 아래의 연못을 향해 떨어졌다. 이제 연못은 토미를 위한 바다의 계단이었다.

 알렉스는 훌쩍임을 멈추고 길가로 달려갔다. 아무렇게나 엎어진 자전거를 타고 페달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토미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풍덩… 소리와 함께 토미가 위로 솟구치면, 알렉스가 고개를 젖히고 달빛 속에서 빛나는 그의 눈부신 인어를 바라보았다. 풍덩… 쏴아아……. 풍덩… 쏴아아……. 알렉스의 옆으로 나무와 집이 마구 뭉개졌다. 토미는 규칙적으로, 서두르지 않고 바다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토미가 마지막 연못에 다다랐을 때, 알렉스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가속 때문에 쉽사리 밟히지 않아 마구 쇳소리가 났다. 알렉스가 쉰 목소리로 찢어져라 외쳤다.

 “토미!”

 그 순간, 토미가 그 어떤 때보다 높게, 아주 높고 아름답게 솟구쳤다. 그리고 공중에서 한 바퀴를 매끄럽게 돈 채로, 사방에 눈부신 물방울 조각을 뿌리며, 그렇게 멈추어 있다가…… 바다로, 그의 고향으로…… 떨어졌다. 브레이크가 걸렸다. 자전거는 급하게 멈추어 섰다. 알렉스는 자전거를 내팽겨 치고 모래사장으로 뛰쳐나갔다. 파도가 무서운 소리를 내며 돌진했다가 부서졌다. 알렉스는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닥쳤다. 그는 먼 바다로부터 몰려오는 거대한 먹구름의 운집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달을 가리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밀려오고 있었다. 우르릉, 소리를 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번개가 번쩍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배경을 등진 채, 파도 속에서 누군가 천천히 허리를 펼치고 일어났다. 알렉스는 못 박힌 듯 자리에 서서 달빛 아래 빛나는 그 실루엣을 응시했다. 그것은 두 다리로 단단히 모래를 버티고 선 채, 물을 떨어뜨리며 다가왔다. 보름달이 환하게 작열하고 있었다. 토미는 그렇게 인간이 된 채, 알렉스의 앞으로, 느긋하게, 걸어왔다. 알렉스는 눈을 감았다.

 둘은 전라가 된 채로 모래 위를 뒹굴었다. 시시각각 닥쳐오는 재난과 맞서 싸웠다. 토미는 알렉스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다정하게 비비며 입을 맞췄다. 알렉스는 토미를 허겁지겁 탐하면서 자꾸만 품으로 끌어당겼다. 토미는 놀랄 만큼 차가웠고 무서울 만큼 딱딱했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알렉스가 핥은 자리마다 눅진한 화상자국이 남았다. 아프지 않아? 아파. 토미는 눈을 감았다. 너는 불덩이 같구나. 뜨거운 뱀처럼 나를 파고드는구나. 섬세한 속눈썹마다 촘촘히 물기와 작은 진주알갱이가 박혀 있었다. 알렉스가 울었다. 너를 만져서 미안해. 토미는 아물어가는 알렉스의 손을 다정하게 붙잡았다. 괜찮아. 토미의 가슴언저리에 강렬한 화상자국이 남아있었다. 평생 남길 생각으로 너를 각오했어.

 토미는 쾌락에 젖은 울음소리를 냈다. 차갑고 단단한 다리가 알렉스의 허리를 감았다. 번개가 번쩍였다. 알렉스는 절정을 느꼈다. 천둥이 콰르르 무너졌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토미가 알렉스에게 짓눌린 채 헐떡였다. 파도가 가까워져서 이제 물은 그들의 다리언저리까지 차있었다. 알렉스가 속삭였다.

 “넌 어디로 가?”

 “내가 태어난 곳.”

 “거기가 어딘데?”

 토미는 알렉스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가까이 끌어 당겼다.

 “눈을 감아 봐. 뭐가 보여?”

 “그냥 깜깜하기만 한데.”

 “거기가 내가 있던 곳이야.”

 알렉스는 데자뷰를 느꼈다.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알렉스는 왜, 라고 묻지 않았다.

 그래서 토미가 말한다.

 “너와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파도가 그들을 덮쳤다. 흰 거품이 갈퀴처럼 토미의 다리를 적셨다. 토미는 허벅지를 더듬어 납작하게 녹은, 작은 조각을 알렉스에게 건네주었다. 비가 쏟아져서 사방은 이제 온통 물로 출렁이고 있었다.

 “선물이야.”

 “이게 뭔데?”

 “네가 영원히 상처 낸 내 비늘.”

 알렉스는 뒷말이 듣고 싶지 않아 토미에게 입을 맞췄다. 혀로 토미의 곳곳을 헤집고 자꾸만 습윤하게 만들었다. 토미는 밀치지 않고 무력하게 그 사랑을 받아주었다. 둘은 한 번 더 뒹굴었다. 폭풍우가 아주 가까이 있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알렉스는 녹초가 될 때까지 토미를 안았다. 그리고 그대로 엎어졌다. 토미는 축축한 뺨을 알렉스의 뺨에 마주 대며 속삭였다.

 “안녕, 알렉스.”

 “…토미, 가지마.”

 “보름달이 뜨면 너를 보러 올게.”

 “약속해줘.”

 토미는 대답 대신 알렉스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큰 파도가 둘을 덮쳤다. 토미는 물거품처럼 그곳에 휩쓸렸다. 알렉스가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토미는 온데간데없었다.

 “토미!”

 비바람이 우우, 불었다. 하늘엔 더 이상 보름달도, 빛도 없었다.

 “토미!”

 천둥이 쳤다. 알렉스는 흐느끼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러다 차가운 촉감을 느끼며 손을 떼어냈다. 번개가 번쩍였다. 알렉스는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조개처럼 보였으나 좀 더 편평하고 납작했다. 빛이 바랐지만 아름다웠다. 폭풍우 속에서도 신비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파도의 결과 결 사이로 희미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은 인어를 강간할 수 없어
 인간은 인어를 가질 수도 없어
 인간은 오로지 인어를 불태울 수만 있어
 인간은 오로지 인어를 파괴할 수만 있어……

 

 알렉스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그 노랫소리는 언젠가 사냥꾼이 흥얼거렸던 그것과 꼭 닮아있었다. 실망스럽구나, 라고 언젠가 그가 그랬다. 실망스럽구나. 왜요? 내가 찾던 게 아니었어.

 파도가 부서지고 있었다.
-

 눈을 감아 봐. 뭐가 보여?
 그냥 깜깜하기만 한데.
 거기가 내가 있던 곳이야.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너와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中

comments + 0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