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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알렉스는 집을 그리워했다. 그에겐 형이 있었고, 크지 않은 집 거실엔 피아노가 있었다. 아버지는 치과 의사였다. 시골에 병원을 차리고 시가지보다 싼 가격에 진료를 했다. 그 거실에 햇볕이 잘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어머니는 파이를 잘 구웠다. 디저트를 먹는 동안 형이 종종 피아노를 쳤다. 그는 음대를 지망하고 있었고 꽤 연주를 잘 했다. 대체로 들어줄 만한 연주였다. 가끔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 나이 대 아이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알렉스는 진심으로 형을 선망했다. 아이들은 성인은 아니되 어른의 경계선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내주기 마련이다. 너무 동떨어지지는 않았으나 자신과는 분명히 다른 형의 연주는 분명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고백하자면 알렉스 역시 피아노를 치고 싶었다. 몰래 건반을 눌러본 적도 있다. 그러나 그가 제대로 오선지를 읽어보기도 전에 일이 터졌고, 알렉스는 건반을 누르는 대신 트리거를 당겨야 했다. 독일이 세계를 침략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알렉스는 운명을 선택하기도 전에 끌려나온 셈이다. 시대의 비극은 종종 이런 식으로 계승된다.

 그는 노르망디로 전송되었다.

 알렉스는 낙하산을 짊어져야 했다. 그건 분명 운 나쁜 일이다. 공수 부대에 배치된 것 역시 알렉스의 선택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비행정에 올라타지 않았더라도 그 이후의 일들은 언제든지 운 나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공수 부대가 아니었다면 함선에 탑승해야 했을 것인데, 알렉스는 이미 독일의 U보트가 얼마나 공포스러운 존재인지 알고 있었고 침몰하는 함선 속에서 익사의 위기를 다시 한 번 맛보느니 하늘에서 폭탄처럼 떨어지는 편이 낫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공수 훈련을 하는 동안 날씨가 몹시 쾌청했다. 노르망디에 상륙하기 전까지 그들은 도버 해를 떠돌면서 낙하산을 펼치고 뛰어내리는 일을 훈련이랍시고 반복한 후, 곧장 비행정에 태워져 명령을 기다렸다. 그러나 악천후가 시작되었다. 상륙작전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바다는 잠잠해질 틈이 없었다. 작전이 미뤄지는 것처럼 보였다. 알렉스는 진지에 웅크린 채 몰아치는 비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공수부대에 배치된 건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다고, 함선에 오르는 대신 비행정에 오른 건 기회였을 거라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작전은 강행되었다. 비행정에 올랐을 무렵엔 그럭저럭 기분이 누그러져 있었다. 긴장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모든 가능성에 “설마”를 붙일 만큼의 여유가 생긴 알렉스가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설마 내가 제일 운이 나쁘겠어. 설마 돌아가지 못 하겠어. 그의 옆자리에 앉은 미군은 이를 딱딱거리고 있었다. 알렉스의 비행정은 가장 마지막에 출발할 예정이었고 자유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몇 명 탑승한 미군 부대의 것이었다. 알렉스는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고 오직 자신에게 중얼거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알렉스 역시 결국 고도로 긴장해있던 셈이다. 비행정이 출발했을 땐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바람소리는 끔찍했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알렉스는 풍경이 그렇게도 멀고 작게, 동시에 빠르게 스쳐갈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누군가 비명을 지르지 않았더라면 알렉스는 낙하산 줄을 펼치는 것도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는 긴장하면 순간적으로 백지 상태가 되는 습관이 있었다. 피아노를 치지 못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피아노. 알렉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떨어지는 순간 언젠가 형이 거실에서 쳤던 이름 모를 곡을 떠올렸다. 곡 이름이 뭐였지? 아니,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나는 떨어지고 있다. 누군가 비명을 지르고 있으므로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된다. 알렉스는 버튼을 눌러 낙하산을 펼쳤다. 중력과 가속의 법칙에 의해 포탄마냥 땅으로 내다꽂던 몸이 일순 위로 잡아당겨졌다. 허공에 붕 뜬 발을 마구 자맥질했다. 알렉스는 이제 직각이 아닌 직진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제대로 떨어지지 않으면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다는 공포감 때문에 발끝을 노려보며 점점 가까워지는 풍경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공수부대가 뿔뿔이 흩어지고 있음을 그가 알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는 숲속에 떨어졌고, 낙하산은 가지에 걸렸다. 알렉스는 다리 부상 없이 무사히 착륙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지상에 무사히 발을 디디고 나서야 또 다른 공포감이 엄습했다. 알렉스는 혼자 있었다. 공수부대와 합류하지 못 했다. 비행정이 잘못된 장소에 내려주었거나, 그가 실수한 것이다. 원인을 알 수는 없었다. 알렉스는 오래 고민하지 않으려 애썼다. 생각을 하면 죽는 곳에 도착해버렸기 때문이다. 총을 쥐고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다리를 다치지 않은 것을 행운으로 여기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위안이었다.

 알렉스는 숲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 했다. 그는 코탕탱 반도 동쪽에 있었고, 야트막한 숲이 끝나면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프랑스 서부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숲을 헤매다가 사살당할 수도 있었다. 운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숲에서 재회한 공수부대도 있었지만(그들은 급조 전투 부대를 만들었다) 알렉스는 생트메르에글리즈 뒤쪽에 도착할 때까지 홀로 움직여야 했다.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 해 사살당하지 않고 마을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러나 행운은 그게 끝이었다. 그곳엔 독일군들이 포진해 있었다. 빈 집에 성공적으로 숨어들기까지 알렉스는 총살당해 걸레짝이 될 자신의 시체를 생각하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 했다. 벌벌 떨면서 기어갔다. 울타리의 개구멍으로 몸을 욱여넣고 최대한 사물에 붙어 있었다. 독일군들이 그가 웅크린 울타리 너머를 지나갔다. 누군가 소리를 쳤다. 독어로 말했다. 독일군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달려갔다. 알렉스는 더는 기어가지 못 하고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멀리서 총성이 울렸다. 어쩌면 마을엔 알렉스 말고 다른 공수부대원들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 독일군들은 그들을 한 명씩 색출해 죽이고 있었다. 한 번 더 먼 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이번엔 연달아 울리고 있었다. 알렉스는 거의 울 것처럼 헐떡이다가 죽을 각오를 하고 문을 열어 빈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다행히 근처의 독일군들은 전부 총성의 출처지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발견되지 않았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알렉스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숙이고 헛구역질을 했다. 아무것도 게워낼 수 없음에도 그렇게 했다. 무엇이든 게워내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그렇지 않고선 도무지 견뎌낼 수가 없었다. 먼지가 마구 날아다녔다.

 고개를 들었을 때, 뒤통수에 차가운 금속이 닿았다. 알렉스는 얼어붙었다, 찰칵, 소리가 굉장히 익숙했다.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들어올렸다. 손끝이 벌벌 떨렸다. 먼지가 뽀얗게 다시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공기가 차가웠다. 누군가는 쏘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굳어 있다가 천천히 총구를 내렸다. 알렉스는 헐떡이면서 숨을 고르다가, 속으로 셋을 세고 둘에 뒤를 돌았다. 덤벼들었다. 누군가의 멱살을 쥔 채 소리 없이 엎치락뒤치락했다. 둘은 빈 집의 바닥을 뒹굴었다. 알렉스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아래에 짓눌린 소년이 헐떡이며 늘어져있었다. 얼굴을 알아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얼굴을 알아보았다, 는 사실이 알렉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그는 토미의 멱살을 쥐고 있었다.

 “토…….”

 창문 너머의 발소리들이 가까워졌다. 알렉스와 토미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창가 아래에 바싹 붙어 있었다. 알렉스는 그대로 엎어져 토미를 짓눌렀다. 최대한 바닥에 붙어 숨을 죽였다. 토미의 입술이 알렉스의 뺨 아래에서 마구 뭉개지고 있었다. 불규칙한 숨소리가 잔뜩 기를 죽인 채 알렉스의 얼굴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토미의 인중을 들락거리는 숨의 기운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발소리들이 멀어지고 다시 한 번 멀리서 총성이 울렸다. 그들은 소리가 지나간 후에도 한동안 자세를 유지하며 바싹 붙어있었다. 먼저 긴장이 풀린 쪽은 알렉스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토미를 내려다보았다. 둘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거의 한 몸처럼 보였다. 알렉스의 입술이 토미의 입술 끝을 스쳤다가 닿았다가 다시 떨어져나갔다. 알렉스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가 비틀거리며 다시 주저앉았다.

 “……토미.”

 알렉스가 뱉어냈다.

 “토미.”

 이번엔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는 것에 가까웠다. 너는 죽지 않았구나, 하고 확인하는 절차처럼 들렸다. 토미는 천천히 일어나 알렉스 쪽으로 기어갔다. 벽에 기대고 앉았다. 숲에서 내려왔어. 토미는 말했다. 둘은 침묵한 채 그렇게 오래 앉아 있었다. 발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지만 먼 곳에서 이따금 총성이 들려왔다. 해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알렉스는 시선으로 집을 훑어보았다. 그들은 거실에 있었다. 전체적인 집 크기에 비해 거실이 컸다. 피아노가 있었다. 그랜드 피아노는 아니었다. 피아노, 하고 알렉스는 한 번 더 머릿속으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기억 속에서 파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형을 떠올리지는 못 했다. 그는 노르망디에 없었고, 그렇다고 평화로운 어딘가에 있지도 않았다. 전쟁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아니었다. 세계의 모든 비극이 그곳에만 있는 건 아니다. 알렉스는 형이 그렇게 된 게 결론적으로 굉장히 나쁘지만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형은 공포에 떨지는 않았다. 비통과 상실감에 젖기는 했지만, 죄책감을 가지거나 스스로를 증오하거나 야비해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정말이지, 그랬다. 지망대학에서 떨어지는 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살아있다면 다음 해가 올 것이고 그렇다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을 수도 있었는데. 왜 그래야만 했을까? 바보 같은 형. 바보 같은 칼라일.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일이었다. 머리에 구멍을 내면 사람이 죽는다. 그 사실을 알렉스는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깨달아야만 했다. 사람은, 누군가는, 살아가다 문득 스스로를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알렉스는 결국 형에 대해 생각해버리고 말았고 곧 고개를 숙였다. 눈가가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토미는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알렉스의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쯤은 분명 눈치 챘을 것이다. 알렉스가 겁을 먹어서 울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알렉스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울음이 잦아들자 코를 삼키곤 우물거렸다.

 “무서워서 운 건 아니야.”

 토미가 고개를 돌려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알렉스는 손등으로 인중과 뺨을 훔치곤 한숨 같은 숨을 뱉어냈다. 시선이 거둬지지 않았다. 알렉스는 결국 고개를 돌려 토미를 마주보았다. 시선이 부딪혔을 때, 토미는 알렉스의 손끝을 건드렸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어.”

 멀리서 다시 한 번 총성이 울렸다. 발소리는 없었다. 독일군들이 분명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쩐지 안전하게 느껴졌다. 잠시 그랬다. 알렉스는 어쩔 줄 모르며 시선을 헤매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 번 코를 삼켰다.

 “그래.”

 햇빛이 완전히 기울어졌다. 알렉스는 울음을 완전히 그쳤다. 먼지가 금빛으로 산란하면서 창문 근처를 날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알렉스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래서.

 “너도 공수부대였군.”

 “운이 좋은 건 아니었지.”

 “아닐 수도 있어.”

 알렉스는 입술을 비틀었다.

 “U보트는 지긋지긋하잖아, 안 그래?”

 토미는 잠시 침묵했다가, 수긍했다.

 “그래.”

 “배에 탔으면 벌써 죽었을 지도 몰라. 배는 늘 우릴 죽일 뻔했잖아.”

 “배가 없었으면 우린 죽었어.”

 “…그건 그래.”

 잠시 침묵이 있었다. 발소리는 없었고 총성도 더는 울리지 않았다. 주변이 고요했다.

 알렉스가 다시 불쑥 말했다.

 “어쩌면 그 때 죽었어야 했는지도 몰라.”

 토미는 대답 대신 알렉스의 손끝을 치워냈다. 알렉스는 자신이 멀리 밀쳐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변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끔찍하잖아.”

 토미는 수긍하는 눈치였지만 그 불길한 말에 무언가 보탤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는 창가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어느 쪽이든 죽는 건 최악이야.”

 이번엔 알렉스가 그 말에 수긍했다. 반박할 여지도 없었고 자명했으며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살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더 이상 나쁜 말을 해서는 안 됐다. 알렉스는 벽에 기댄 채 몸을 조금 뒤척였다.

 “집(home)에 가면 뭘 할 거야?”

 “조국(home)?”

 토미가 되물었으므로 알렉스는 정정해야 했다.

 “아니, 너희 집(home).”

 “아.”

 토미는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따뜻한 걸 먹고 싶어.”

 “그거 좋지.”

 “수프 같은 거.”

 “난 파이가 먹고 싶다.”

 “그리고 푹 자고 일어났으면 좋겠어.”

 “당연한 거 아니야?”

 “그리고 또…….”

 토미는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알렉스가 보챘다. 또?

 “피아노를 쳐보고 싶어.”

 알렉스의 표정이 잠깐 무너졌다가 돌아왔다.

 “칠 줄 알아?”

 “아니.”

 토미는 제법 딱딱하게 대꾸했다.

 “그냥 배우고 싶어서.”

 “언제부터 그랬는데?”

 “그냥…….”

 토미가 말끝을 흐렸다.

 “난 악기를 한 번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어. 그럴 기회가 없었거든.”

 해가 지기 직전의 볕은 오렌지 빛을 띄고 있었다. 빛을 반사하면서 피아노의 표면이 매끄럽게 반짝였다. 먼지가 쌓여있었지만 황금색 로고가 선명했다. 유명한 회사였다. 알렉스도 알고 있었다. 그의 거실에도 동일한 브랜드가 있었다. 알렉스가 말했다.

 “저건 좋은 피아노야.”

 “나도 알아.”

 토미는 입술을 물었다가 몸을 뒤척였다.

 “제기랄, 그러니까, 언젠가는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 마을의 악기상은 성질이 나빠서 고객이 아니면 악기 가까이 가지도 못 하게 했거든. 원래 멀리 있으면 더 궁금해지잖아. 그렇다고 눈에서 아예 안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알렉스는 형을 떠올렸다. 어리석은 칼라일. 그를 사랑했으므로 진심으로 어리석다고 폄하할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가선 안 됐다. 멀리 있기에 동경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멀리 있지도 않았기에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너무 먼 곳에 있다.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알렉스가 대답했다. 토미는 다시 피아노를 보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굉장히 좋은 피아노가 있어. 하지만 조금도 두들겨보지 못 하잖아. 튜닝이 잘 되었다거나, 역시 좋은 음을 낸다던가, 그런 걸 알 수는 없어. 하지만 가까이서 봤어. 그게 다야.”

 “그래서?”

 토미는 벽에 머리를 기댔다.

 “난 살고 싶어.”

 알렉스는 그 순간 거의 토미의 손을 잡을 뻔 했다. 대신 그는 말로써 다독이는 법을 택했다.

 “돌아가면 피아노를 칠 수 있어.”

 “아마도.”

 토미는 피아노의 미래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 하는 투였다.

 “잘 모르겠어. 그냥 살고 싶어. 피아노를 못 쳐도 상관없어.”

 그리고 다시 침묵이었다. 창 근처는 온통 산란한 먼지로 금빛이었다. 노을 속의 피아노는 아주 고급져 보였다. 알렉스는 어깨에 기댄 토미의 무게가 조금 더 묵직해지는 걸 느꼈다. 그러나 알렉스가 다시 손을 뻗기도 전에, 토미가 몸을 뒤척여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알렉스는 고개를 돌렸다.

 “치고 싶은 곡은 있어?”

 “아는 곡은 있어.”

 토미가 대답했다.

 “하지만 곡 제목을 몰라.”

 “내가 가르쳐줄 수 있어.”

 알렉스는 다소 허풍을 보탰다.

 “난 피아노 조금 칠 줄 알아.”

 토미는 찡그린 얼굴로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야. 형이 음대 출신이거든.”

 “그래?”

 “멘체스터 음대에 들어갔어. 명문대야. 난 잘 모르지만, 그렇대. 거길 가려고 디저트를 먹고 매일 피아노만 쳤어.”

 이제 방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새빨간 거짓말을 하기에 시기적절한 타이밍인 것이다. 그렇다고 믿었다.

 “지겨울 정도였어. 어머니는 불평도 안 하고 파이를 구웠지. 난 의자에 앉아서 듣기만 했었어.”

 파아노를 치는 형은 거실의 역광을 받아 빛에 감싸인 그림자처럼 보였다. 그 아름다운 곡은 대체 어디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일까? 악보와 악기만으로 그런 시간을 이룩할 수 있다니. 형의 연주엔 그런 힘이 있었다. 알렉스는, 그 힘이 좋았다. 그 힘은 주먹보다는 무수한 촉수에 가까워서 단단히 뭉치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솜씨 좋게 마음을 더듬거리고 만졌다. 그럼 알렉스는, 영혼이 거기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영혼이 얌전히 거기 들어있고, 전혀 금이 가거나 부서지지 않은 채로, 무사히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에 안정감을 느꼈다. 그리고 칼라일, 피아노 앞에 앉은 그의 형은 아주 멀리 가있었다. 늘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알렉스의 이정표가 되었던 그는 그 순간 아주 멀리 떠나서 음악이 되어있었다. 영혼이 얌전히 거기 있음에 그치지 않고, 방출하여 세계 곳곳을 떠돌고 있었다. 오, 칼라일. 그건, 그건 다시 생각해보면 죽음처럼 보였다.

 “어떤 날은 내가 조르기도 했어. 가르쳐 달라고 말이야. 그럼 형은 나를 앉혀두고,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어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줬지. 감각적이었어. 난 악보부터 외워야 하는 줄 알았거든.”

 그건 봄의 일이었다. 전쟁의 징조조차 없었던 오후에, 피아노를 쳐도 총살당할 위험 따위가 없는 그 때. 알렉스는 떼를 썼다. 피아노를 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칼라일은 다소 귀찮아했고 대게는 그런 부탁을 무시하곤 했으나 어쩐 일인지 그 날은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알렉스를 앉혀두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도와주었다. 어느 건반에서 어느 건반으로 이동해야 하는지, 얼마나의 힘으로 눌러야 하는지 가르쳐주었다. 알렉스는 그 날 거실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형의 손가락에 맞춰 신중하게 녹턴을 쳤다. 녹턴. 알렉스는 이제 그 곡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녹턴.”

 알렉스가 중얼거렸다.

 “그걸 쳤었어.”

 얼마 후 칼라일은 권총자살을 했다. 알렉스는 그가 대학에 떨어졌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영혼이 거기 있었는데, 얌전히 알렉스의 속에 들어있음을 말해줬는데. 나중에야 알았지만 칼라일은, 무대 위에서 아무 곡도 치지 못 했다고 한다. 머릿속이 새햐얘져버려서 도무지 아무 것도 칠 수 없었다고. 알렉스에겐 낙하산이 있었고, 그건 간단히 버튼만 누르면 됐다. 그러나 칼라일이 가진 악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고 건반을 누르는 건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영혼을 깨우는 일이 버튼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버튼이 할 수 있는 건 영혼이 깨지지 않도록 낙하산을 펼치는 일뿐이니까 말이다. 칼라일은 추락했고, 그를 건져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거실로 나와 피아노를 한 번 바라본 후, 벽난로 안에 있던 권총을 꺼내 방으로 돌아갔다. 칼라일은 머리에 구멍을 내는 일을 선택했다.

 “형은 연주를 아주 잘해서, 대학을 다니면서도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있어.”

 알렉스는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토미는 진중하게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알렉스는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토미와 눈이 마주치자, 알렉스는 애써 어깨를 으쓱였다.

 “끝이야.”

 “나쁘지 않네.”

 “뭐가?”

 “네가 배운 방식.”

 알렉스는 토미의 말을 중얼거려보았다.

 “내가 배운 방식.”

 “…….”

 “내가 배운 방식.”

 토미가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뚜껑이 열려있었으므로 건반이 훤히 보였다.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총성이나 발자국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독일군은 어쩌면 전부 철수해버린 건 아닐까? 그럴 지도 몰랐다. 토미가 손을 들어서, 허공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피아노 건반은 멀리 있었으므로 손가락이 건반 세 개 정도를 가리고도 남았다. 알렉스는 그 손을 잡아끌었다.

 “줘봐.”

 토미의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벗겨져 있었다. 알렉스는 그 위에,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얹어놓았다. 토미의 옆으로 보다 바싹 붙어 건반 쪽을 바라보았다. 알렉스는 토미의 손가락을 건반처럼 누르며 허공을 움직였다. 두 명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건반을 누르며 조금씩 날았다. 토미가 물었다.

 “뭘 치는 거야?”

 알렉스가 대답했다.

 “녹턴.”

 파이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알렉스는 눈을 감지 않아도 모든 걸 그려볼 수 있었다. 볕이 잘 드는 따뜻한 거실, 부드러운 가죽 의자와 그랜드 피아노, 칼라일…… 너무 멀리 가버린 칼라일과 그의 연주, 그것을 가만히 들었던 알렉스. 거기 얌전히 있던 영혼. 영혼들. 너무 많은 영혼들. 알렉스의 가슴이 진동하고 있었다. 토미의 손가락은 움찔거리면서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들의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고 있었다. 노르망디 해협을 건너서, 도버 해안으로, 절벽으로, 절벽 너머의 항구로, 기차로, 플랫폼으로, 집으로, home. 맙소사, 집이었다. 정말로 집이었다……. 알렉스는 텅 빈 거실 한가운데에 앉은 형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오래된 풍경이었다. 형이 피아노에 앉아 녹턴을 치고 있었다.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상상을 했다. 그는 거실 구석에 박힌 벽난로로 다가갔다. 허리를 숙여 재를 뒤집어쓴 무언가를 꺼냈다. 권총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알렉스는 총탄을 빼내기 위해 그것을 분리하였다. 그러나 그 안은 텅 비어있었다. 놀란 알렉스가 고개를 돌려 거실을 바라보았다. 피아노 앞엔 아무도 없었다.

 총성이 들렸다.

 토미의 손가락이 멈췄다. 알렉스는 꿈에서 깨어났다. 먼 곳에서 한 번 더 총성이 울렸다. 토미는 알렉스에게 기댔던 몸을 떼어내고 웅크렸다. 발자국 소리가 나지는 않는지, 둘은 침묵한 채 귀를 기울였다. 독일군은 여전히 주변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둘은 더 이상 허공의 피아노를 치지 못 하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알렉스는 생각했다. 이런 상황은 정말이지 원하지 않았어. 정말이었다. 알렉스는 전쟁 같은 걸 원하지 않았다. 누가 그런 걸 원하겠는가? 죽음을 목격하는 행위로만 영혼이 자신의 안에 제대로 붙어 있음을 확인하는 일 같은 건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끔찍하기만 했다. 죽음으로 영혼을 확인하는 일. 칼라일은 어째서 그것을 선택했을까? 그의 형은 죽음을 선택했다. 돌아오지 않았다. 알렉스는 돌아오지 못 할지도 모른다. 그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알렉스는 그 시절 그가 느낄 수 있었던 자신의 영혼이 더는 고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형이 죽음으로써 알렉스의 일부 역시 죽어갈 운명이 되고 만 것이다. 알렉스는 그런 녹턴을 칠 수 없었다.

 갑자기, 토미가 말을 꺼냈다.

 “알렉스.”

 알렉스는 한 박자 느리게 반응했다.

 “응?”

 “아까 말이야.”

 “그래.”

 “피아노를 쳤잖아.”

 알렉스는 눈을 깜빡였다.

 “그렇지.”

 “영혼을 믿어?”

 맥락이 없는 것처럼 들렸지만 알렉스는 이해했다. 말문이 막히지는 않았으나 목이 막혔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토미, 하고 알렉스가 불렀다. 토미. 토미.

 “영혼을 느꼈어?”

 그는 속삭였다.

 “거기 있었어?”

 멀리서 한 번 더 총성이 울렸다. 토미는 뒤척이지도 손을 내치지도 않았다. 알렉스가 토미의 손끝을 붙잡았다가 놓았다. 거기 얌전히 있었다. 토미의 영혼은 거기 있었다. 살아있었다.

 “아까 그 곡 이름이 뭐라고 했지?”

 “녹턴.”

 “녹턴.”

 토미가 중얼거렸다.

 “무슨 곡인데?”

 달빛이 들어서 이제 먼지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피아노도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 알렉스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더 짙은 어둠으로 기어들어갔다. 아주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그 속에서 토미의 손끝이 등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풍등처럼 위태로운 불빛으로 알렉스의 영혼을 비추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금 간 영혼을 벌어지지 않도록 오므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세레나데.”

 알렉스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세레나데라고 들었어.”

 영혼은 아직도 거기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배경
고증 안 되어있음

20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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