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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베가에 도착하자마자 위에나는 복잡한 도시 생활이 그리워졌다. 슈텐에는 어디를 가도 최소 2층짜리 건물이 세워져있었고 길도 편리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칼베가에도 포장된 도로가 있기는 했지만 가장자리 군데군데가 깨져있어 마차가 활발히 지나다니기 힘들고 도시 자체가 구식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위에나는 도시 입구까지 도보로 30여분 정도 걸어온 상태였는데, 마차사고가 있어 그녀를 태운 마차가 진입할 길목이 완전히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나는 너무 피곤한 상태로 이곳에 도착한 나머지 모든 게 나빠 보이기만 했다. 아무리 애써도 이 도시를 도무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무의식이 어떻게든 트집을 잡기 위해 도시의 풍경을 둘러보는 동안 주변은 점차 어두워지고 위협적으로 변했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자 위에나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얼른 숙소로 가야해. 편지에 뭐라고 적혀 있었더라.’

위에나는 준비해둔 우산을 펼쳤다. 기둥을 미끄러지듯 통과하면서 경쾌한 팡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우산머리와 대가 분리되었다. 위에나가 한숨을 쉬며 머리를 주우려는 순간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우산은 그녀의 손아귀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거리를 데굴데굴 구르는가 싶더니 그대로 붕 떠올라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방금 벌어진 일이 너무 황당한 나머지 위에나는 한 손에 우산대를 쥔 채 망연히 서있었다.

시발.’

그녀는 물을 먹기 시작한 가죽 트렁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기온이 놀랄 만큼 떨어지고 있었다. 슈텐에선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바람이 몸을 에워싸자 덜컥 겁이 났다. 아무튼지 간에 재빨리 숙소로 가야할 듯싶었다. 슈텐을 떠나기 전에 칼베가에 위치한 숙소를 찾아서 편지를 부쳐두고 답장을 받은 상태였으므로 상황이 완전히 절망적이지만은 않았다. 일단 거기에 도착하면 무엇이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위에나가 추위로 덜덜 떨면서 물건이 쏟아지지 않게 트렁크를 조금만 열고 손목을 집어넣어 짐을 뒤지고 있을 때,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누군가 등 뒤로 다가왔다. 그녀는 동작을 멈췄다. 그녀의 상상력이 가장 음습하고 위협적인 지점에 떨어졌다가 튕겨져 올라왔다. 다음 순간 위에나는 쏜살같이 구부정한 몸을 일으키면서 팔꿈치로 뒤편의 사람을 가격했다.

어이쿠.”

남자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벼락처럼 움직였던 위에나는 자신의 공격이 실패한 것을 깨달았다. 남자는 별로 아파보이지도 않았고 위에나에게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어둠 에 싸인 남자를 어떻게든 식별하기 위해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둠이 충분히 눈에 익은 것 같은데도 남자의 머리통은 새까맣게만 보였다. 푸른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도와드릴까요?”

남자가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웠다. 자기도 모르게 얼떨떨한 목소리가 위에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머나.”

얼굴이 수치심으로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스스로에게 화가 난 것처럼 위에나가 중얼거렸다.

, 그래요. 아니, 괜찮아요. 저는,”

그 순간에 운명이 마지막 주사위를 굴린 듯했다. 당황한 나머지 뒤로 물러나던 그녀의 허벅지에 부딪쳐 중심을 잃은 트렁크가 활짝 열리면서 짐이 쏟아졌다. 머리 위로 굵어진 빗방울이 빠르게 우산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아니요.”

이번에 위에나는 단호하게 말한 뒤 트렁크를 눕히고 재빠르게 짐을 주워 넣기 시작했다. 남자는 한동안 우산을 들어주더니 결국 허리를 굽히고 물건을 함께 주워 넣었다. 이제 위에나는 정말로 창피해져서 그에게 매정하게 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몸을 숙이고 짐을 주워들던 남자의 어깨에서 뭔가가 굴러 떨어지더니 위에나의 구두코에 부딪쳤다. 위에나는 손을 더듬어 그 물건을 주웠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 익숙한 촉감이었다. 그것은 나무로 만든 반듯한 상자였던 것이다.

위에나는 그에게 상자를 돌려주면서 말했다.

당신 거예요.”

, 고마워요.”

상자를 돌려받으며 그는 미소를 지었는데, 그런 게 습관인 듯했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의 곤경을 알아차리고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워주는 남자의 호의는 슈텐의 공방 근처에서였다면 그러려니 넘겼을 테지만 이곳은 너무나 춥고 낯선 도시여서 위에나는 그를 여전히 경계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트렁크를 닫은 뒤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여긴 처음이라 잔뜩 곤두서있었어요.”

공교롭네요. 저도 그래요.”

그렇군요.”

위에나는 거리를 둘러보고 트렁크를 들었다.

그럼 안녕히.”

고개를 까딱여 인사한 뒤 그녀는 재빨리 비를 맞으며 거리를 빠져나왔다. 아까보다 기운이 났고 머릿속으로 숙소 주소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남자가 우산을 씌워준 덕분인 것 같았다. 대가없는 호의를 받으니 내심 안도하게 된 듯했다. 어둠이 깔린 광야가 펼쳐진 도시 뒤편의 풍경이 운치 있게 느껴졌다. 비정할 만큼 날카로운 바람을 뚫고 그녀는 무사히 숙소를 찾아냈다. 현관에서 물기를 털어내고 보니 손등이 딱딱하게 얼어있었다.

방에는 낡은 침대와 창문을 마주보며 배치된 작은 책상이 있었다. 위에나는 램프에 불을 붙이고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인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짐을 풀었다. 반쯤 젖은 옷가지와 장신구, 손톱을 다듬는 우드파일(위에나가 만든 것이었다)을 침대에 늘어놓던 손이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뻗어나갔다. 위에나는 낯선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세로 길이가 팔뚝만하고 가로 길이가 한 뼘만 한 크기로, 집어 들자 안에서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위에나의 상자가 아니었다. 아까 그 남자의 것과 자신의 상자가 뒤바뀐 거였다.

위에나는 책상에 앉았다. 상자를 바닥부터 모서리까지 훑어보았다. 손바닥으로 표면을 쓸자 마감이 잘 된 나무가 반드시 선사하는 특유의 시원한 촉감이 느껴졌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게 짜여 경첩에만 슬쩍 못질이 된 상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만을 사용해 퍼즐처럼 짜 맞추는 위에나의 방식과는 조금 차이가 있긴 했지만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 물건이라는 것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상자의 제작자는 분명 꼼꼼하고 성실한 사람일 것이다. 아까의 남자가 만든 것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이 장인에 대해 많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상자를 흔들던 위에나가 뚜껑을 열었다.

황당하게도 거기엔 당근 하나가 덩그러니 들어있었다. 위에나는 상자를 기울여 안쪽을 살폈다. 작은 깃털 하나가 당근에 눌려 있는 게 보였다. 깃털을 치우자, 짙은 갈색으로 번지듯 눌러쓴 누군가의 이름이 나타났다. , , ,라고 읽혔다. 저거 피로 쓴 건가? 그렇다면 아마 이 상자는 기적을 부르는 장인의 상품일 것이다.

무엇이 깃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에나는 턱을 괴고 나머지 손으로 깃털을 돌렸다.

, 그러고 보니.’

내 상자를 가져간 그 남자는 어쩐다?

호신용 상자였는데, 큰일이네.”

캄캄한 어둠에 감싸인 낡은 도시가 끝없이 젖어들고 있었다. 그 순간 위에나는 일종의 예언적인 기분을 감지했다. 그래서 그녀는 기다렸다. 장인으로서, 그녀는 미안함을 느꼈다. 다음 순간 거대한 짐승의 무시무시하고 우렁찬 사자후가 도시 저편에서부터 솟구쳤다. 강력한 파동이 웅웅 소리를 내며 도시 곳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거리 전체를 장악했다. 당황한 남자가 상자를 닫아버린 듯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뚝 끊어졌다. 창틀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위에나는 보이지 않는 파동이 다음 골목으로 지나갈 때까지 잠자코 있었다.

,” 하고 그녀는 깨달았다.

깃털을 주워든 그녀가 말했다.

이거 맷비둘기의 깃털이구나.”

그렇다면 이 사람의 공방은 숲속에 있겠구나. 머릿속으로 상자를 맞추고 경첩을 매달고 있는 엘피스라는 장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째서인지 그는 까만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한 채였다. 그녀는 자신의 무의식이 아까 그 남자의 모습을 끼워맞춘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상자를 만드는 자들이 그렇듯, 마지막 나무 조각을 짜 맞출 때 뚝 하는 소리가 나면서 모든 일이 제대로 마무리되었다는 기분 좋은 확신을 경험해본 이들에게만 주어진 그러한 직감이 위에나를 사로잡았다-그것은 예언적이지 않았다, 성실한 생활에 깃든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시시하긴 했으나 훨씬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위에나는 그 직감을 존중하기로 했고, 그리하여 그녀의 기억 속에서 엘피스라는 그 남자는 우산을 접고 어둠에 싸인 거리를 빠져나와 빛이 드는 아름다운 숲속의 공방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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