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노나임을 매만지며 어머니는 말했다, 꿈에는 마아가의 의지가 깃든단다.

 사르다르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머리를 대면 아무 곳에서나 금방 잠이 든다. 눈을 감고 어둠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은 쉽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없어? 눈을 질끈 감고 사르다르의 무릎을 베고 누운 어린 동생들은 묻는다.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없지만 없다고 대답할 수는 없다. 왜? 그렇게 물어본다면 성가셔지니까. 영원히 잠들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던 동생들도 결국은 조용해진다. 무릎이 무거워지면 사르다르는 그들의 머리를 치우고 일어난다. 자고 있는 아이들의 몸은 뜨겁고 끈적끈적하다. 사르다르는 자신이 잘 때도 저렇게 뜨겁고 끈적끈적해지는지 궁금하다. 그는 잠든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르다르는 일찍 깼다. 노을이 지고 있었지만 모래는 아직 뜨거웠다. 머리를 정돈하고 매무새를 가다듬은 그는 항아리를 안고 마을 외곽으로 나왔다. 꿩에게 물을 먹이는데 마을 중심지에 있는 오아시스를 이용하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 사르다르는 자신이 보살피는 꿩들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이름을 붙여주긴 했지만 크게 의미가 없어, 사르다르는 종종 이이를 오오라고 부르거나 일오일오를 칠칠로 불렀다. 그는 짐승들에게 애착을 갖는 또래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그들 같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직 하루가 제대로 시작되지 않은 마을 외곽은 조용했다. 우물가에도 인적이 없었다. 항아리를 두고 담을 짚자 발등에 끼치는 기묘한 냉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르다르는 서너 번쯤 박을 내렸다 잡아당겼다 하면서 들고 갈 수 있을 만큼만 항아리에 물을 채웠다. 쏟아지는 물에서 거품이 일고 항아리에 갇힌 물살이 찰랑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다가왔다. 여느 때처럼 차분하고 침착한 기분인데도, 사르다르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몸이 위험을 감지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고, 그래서 그는 어떤 일을 직감했다.

 박을 우물 안으로 던지면서 고개를 들자, 막 별이 뜬 하늘이 보였다. 오리온자리의 허리 위가 잘려있고 모래의 풍경이 이어진다. 누군가 눈 끝에 매달린 실을 잡아당기듯 사르다르의 시선이 서쪽으로 이동했다. 그는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지평선이 끓고 있었다. 경계가 매순간 망가지는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기도 전에 발등을 덮던 냉기가 뒷걸음질 치듯 우물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갑자기 공기가 미지근해졌다.

 이제 지평선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망가졌다. 냉기가 어느새 그의 등 뒤로 이동해 있었다. 사르다르는 반사적으로 흠칫 떨었다. 거의 동시에 이명이 시작됐는데, 무언가가 말을 걸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사르다르는 형제자매에게서 오는 말에도 크게 마음을 쏟는 편이 아니었다.

 잠시 후 발밑이 쑥 꺼지고 방향감각이 사라졌다. 지평선도 더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됐다. 떨어지는 동안 사르다르는 ‘이거… 무슨 느낌이었더라’하고 생각했다. 어렵지 않게 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잠들기 직전에 느끼는 잠깐의 낙하 감각이었다.

 

 모닥불이 타오르는 작은 방 같은 것을 본 기분이다. 앉아서 공간을 둘러보던 사르다르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눈을 깜빡이자 곱게 흙을 바른 벽이 보였고, 그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열매 굽는 냄새를 맡는 동안 정신이 점점 또렷해졌다. 사르다르를 발견한 것은 모퉁이를 돌던 카디야와 아이들이었다. 항아리를 든 채 우두커니 서있는 사르다르를 보고 카디야가 가장 먼저 멈추어 섰다.

 “뭐야?”

 사르다르는 항아리를 내밀었다. 기막히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카디야가 그러려니 들고 있는 동안, 사르다르는 소매를 털고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팔에 쥐가 나는 바람에 그의 동작은 평소보다 매우 굼떴다.

 “이 물 하나도 못 쓰겠다, 사르다르.”

 카디야가 품에 들린 항아리를 들여다보았다.

 “응.”

 사르다르가 손을 내밀어 항아리를 다시 건네받았다.

 “나누어 들어줘서 고마워.”

 “우리 집 벽은 왜 보고 있던 거야?”

 “음… 거미가 있길래.”

 카디야가 벽을 쳐다봤다.

 “없는데.”

 “응.”

 “사르다르 너 무슨 일 있구나.”

 아이들이 말했다.

 “그래, 곤경에 처했어.” 사르다르가 말했다.

 “물을 다시 떠와야 하잖아. 도와줄래?” 

 “양 치러 가던 길이야.”

 카디야가 대답했다.

 “매정한 걸….”

 “사르다르 너도 방금 이상한 일을 겪은 거지?”

 아이들 중 이스와드가 말했다.

 “어떤 일?”

 “요즘 다들 이상한 경험을 해.” 아이들 중 마마슈타라가 말했다.

 “난 새끼 양이 갑자기 겁에 질려서 달아나는 걸 봤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말이야.”

 “난 오아시스에 달이 비치지 않는 걸 봤어. 잠깐이지만.”

 “카디야는 끝나지 않는 꿈을 꾸었대.”

 사르다르는 카디야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둘은 곧 마주보았다. 아이들도 사르다르에게 집중했다.

 “넌?”

 어떻게 전달해야 아이들을 흡족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 뒤, 사르다르는 말했다.

 “난 방금 물을 뜨러 나갔다가 기절했어. 정신을 차려보니 벽 앞에 서있었어.”

 아이들이 멀뚱멀뚱 서있자, 그는 덧붙였다.

 “구울라에게 홀린 것 같아.”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는데, 그것은 환호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

 “정말 무서웠겠다, 사르다르!”

 “그래, 정말 무서웠지.”

 한 박자를 쉰 사르다르는 좀 더 생동감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니까!”

 “이제 양을 치러 가야겠다.”

 카디야는 하늘을 확인했다. 사르다르도 고개를 들었다. 오리온자리의 허리띠가 반짝이고 있었다. 지평선은 그대로 거기 있었고, 그는 기묘한 일이 끝났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참 전에 떠온 물처럼 모래먼지가 수면을 옴폭 파내며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선 채로 기절하거나 낯선 곳에서 깨어나는 건 무서워해야 하는 일이었구나.’ 사르다르는 생각했다.

 

 그 날 새벽, 놀랍게도 그는 꿈을 꾸었다. 사르다르는 소박한 방에 앉아있었다. 모닥불과 작은 작업대가 보였다. 거의 완성한, 그러나 얼마 전에 고의적으로 열 줄을 풀어버린 사르다르의 노나임도 보였다. 그는 평소처럼 턱을 괴려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눈을 깜빡이거나, 옆에 갑자기 생겨난 항아리를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숙일 수는 있었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지만 특별히 이상하게 느껴질 만 한 건 없었다.

 수면에 비친 소년은 어딘지 맥 빠져 보이고, 머리카락은 짙은 남색으로 보인다. 밝은 회색 눈은 은빛이고 표정은 탐색하는 듯하다. 사르다르가 자신의 얼굴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눈썹이다. 끌어당기거나 내리면서 모호한 의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눈썹을 이용해 표정을 만들었고, 그것이 수용의 얼굴인지 거절의 얼굴인지 알 수 없을 때까지 올렸다 내렸다 했다. 인기척이 들려서 그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사르다르의 앞에 남자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는 너무 가까워서 허리 위가 전부 시야 밖에 있었다. 사르다르는 그의 허리띠를 보았다.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선 남자는 어딘지 사르다르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사르다르는 항아리 쪽으로 고개를 수그렸다. 수면에 비친 상을 보고 남자의 얼굴을 파악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물에는 뿌옇게 모래먼지가 껴있었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들자, 그새 이동한 것인지 남자는 한 발짝 정도 가까워져 있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갑자기 사르다르는 눈을 감았다 떴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남자는 서서히 목표를 드러내고 있었다. 천천히 앞으로 뻗어 나온 오른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르다르는 이번에 고의로 눈을 감았다 떴다.

 남자는 이제 사르다르의 시야 전부를 꽉 채우고 있었다. 달려드는 거미처럼 활짝 펼쳐진 남자의 오른손이 사르다르의 얼굴을 감싸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때 사르다르는 항아리 속에 든 물이 아까 저녁에 퍼 올린 첫 번째 물이라는 것을 상기해냈다. 그는 이게 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남자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럼 이건 무서운 꿈인가?’ 어쩌면 사르다르는 아직 기절해있는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와 누운 기억이 없었다. 그는 아직 항아리를 들고 사프란의 벽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우물에서 박을 올리고 있는 중이거나. 무거운 것을 받쳐 든 듯 팔이 저려오기 시작했고, 남자는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으니 아무렴 상관없었다. 꿈에는 마아가의 의지가 깃드는 법이니까. 사르다르는 눈을 감는다. 그러니 신이여 뜻대로, 당신도 당신 마음대로.

 

comments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