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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던 시대였다. 나는 이제 그 시대의 끝물을 살고 있고, 지금도 종종 내 주변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안다. 그러나 적어도 내 삶 안에서, 기적이나 마법 혹은 재앙은 유통기간이 다 된 깡통과도 같다.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1939년 내가 포르티스에 배치를 받았을 때, 리더는 나를 곧장 바깥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화물용 창고처럼 보이는 대기실(그곳에 비행정들이 있었다)이 있었고, 풀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기지가 곳곳에 천막을 쳐놓았고, 몇몇 천막 앞에 간의의자를 두고 앉은 공군들이 보였다. 리더와 나는 줄지어 이어지는 천막들을 지나 거의 마지막쯤에 있는 천막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파리어 대위를 처음 보았다. 파리어 대위는 소파에 앉아서 RAZZLE을 읽고 있었다. “신입이에요?” 파리어 대위가 턱짓으로 나를 가리켰고, 나는 그를 의식해서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그래, 콜린스야.” 리더가 말했다. 그는 파리어 대위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파리어 대위는 한동안 거기 앉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 어깨를 으쓱였다. “반갑습니다.” 그러자 파리어 대위가 RAZZLE을 덮고 일어나 내 어깨를 툭툭 쳤다. “파리어 대위다. 오래 살아라.” 그가 말했다.

 그 때, 나는 파리어 대위가 말한 “오래 살아라”의 의미가 “행운을 빈다”와 비슷한 뜻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곧 문자 그대로 오래 살아남으라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교육을 마치고 들어온 상태였고, 포르티스에 배치될 만큼 엘리트였지만, 비행정에 앉아 임무에 투입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 했다. 리더와 대위는 한동안 나를 햇병아리 취급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나는 들어오자마자 스핏파이어를 몰았다. 리더와 파리어 대위는 그 전까지 허리케인을 몰았고, 내가 들어올 즈음부터 스핏파이어를 몰기 시작했다. 허리케인 전에는 하우커를 몰았다. 나는 세 대의 비행정을 조종할 수 있는 고참들의 날개 사이에서 비행할 수 있음에 자부심을 가졌다.

 나의 첫 번째 출격지는 포크스톤과 몇 십 마일 떨어진 해안으로, 포르티스 외 다른 한 팀(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과 함께 날았다. 나는 고도로 긴장한 상태였기에 리더의 무전을 두 번이나 놓쳤다. 중간 정도 날았을 때, 후발로 날아오던 비행정 한 대가 격추되었다. 파리어 대위가 무전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콜린스! 맹세컨대, 파리어 대위가 포르티스 2나 코드명 따위로 나를 불렀다면, 나는 그가 누구를 부르는지 알아듣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파리어 대위는 나를 콜린스라고 불렀고, 그의 목소리는 벼락처럼 내 머릿속에 전짓불을 밝혔다. 나는 정신을 차렸고, 해야 할 일을 알았다. 교육을 받는 동안 지겨울 정도로 외웠던 매뉴얼이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머리가 깨어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방향을 틀고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흩어진 채로 무전을 기다리며, 주의 깊게 창공을 살폈다. 누가 추락했는지 몰랐으나 포르티스 조가 아니었다. 리더의 무전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적이 근처에 있으니 잘 살피도록 해.” 그러나 그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실상 도움이 되는 무전은 아니었다. 얼마 뒤 나는 북서쪽으로 날아가는 전투정 한 대를 포착했다. 구름을 빠져나오는 순간 날개가 반짝이는 걸 놓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몸체의 전대 코드를 확인했고, 리더에게 무전으로 위치를 쳤다. 격추시킨 건 파리어 대위였다. 돌아오자마자 나는 잔디밭에 엎어져 빈속을 게워냈다. 긴장이 풀리자 바짝 쪼그라들었던 위가 요동치고 있었다. 누군가 내 콕핏 근처로 다가왔다. 나는 그의 발치를 볼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파리어 대위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스크를 벗으며 장갑을 낀 다른 한손으로 내 어깨를 두들겼다. “할 만 하지?” 장갑 때문일지도 몰랐지만, 그의 손길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부드럽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누가 죽었냐고 물었다. 파리어 대위는 어깨를 으쓱이곤,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신만이 아실 일인데, 추락한 부근이 바다나 독일이 아니니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그것이 일어나기 어려운 기적임을 알고 있었고, 파리어 대위는 내가 아는 바로 무교였다.

 공군으로 있으면서, 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종종 보았다. 특별히 공군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전쟁이 있던 시대였고, 대다수의 일이 많은 이들에게 납득되지 못한 채 비극이 되었다. 징병, 어린아이들의 죽음, 런던 폭격… 지하철에 숨었던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비행정에 올라타지 않고, 총을 들지 않아도, 모두가 독일과 어떤 식으로든 맞서 싸우던 시기였다. 우리는 비행정에 탑승했고, 그게 다였다. 더 일찍 죽을 수도 있었지만, 그리고 실제로 그랬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남들보다 더 고생했거나 공을 세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RAF의 자부심은 그런 곳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본격적인 항공전이 시작되자 파일럿이 부족해진 RAF에도 징발된 청년들이 등장했고, 그중에는 청년이 아닌 자발적 지원자도 더러 있었다. 기수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짧은 기간을 두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군이 되었다. 잦은 출격 명령이 있었고, 조종사들은 아예 대기실로 나와 잔디에 앉아 있곤 했다. 나머지들은 천막 안에서 카드 패를 돌리거나 체스를 뒀다. 대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도 대체로 거기 있었다. 대기실 내부에는 그 날 임무에 투입될 예정인 항공기와 조종사 명단을 적은 칠판이 걸려 있었고,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콜을 기다렸다. 전화벨이 울리면 바로 뛰쳐나가 캐노피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잔디밭에 엎어진 공군들은 하나같이 메이 웨스트 구명조끼를 정복 위에 걸쳐 입었는데, 입기 까다로워 시간이 꽤 걸렸던 탓이었다. 콜이 울렸을 때부터 우리에겐 꾸물거릴 시간이 별로 없었다.

 정말이지 미치광이 같은 전화벨이었다. 나는 그저 해가 내리쬐는 잔디밭에 앉아 있었는데, 하늘 어딘가 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잔디밭에 내내 앉아 전화벨을 기다렸음에도 종종 믿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지만, 콜을 받으면 일어나 스핏파이어로 달렸다. 필요한 곳까지 재빨리 날아가서 비행정을 격추시키거나, 무사히 살아남았다. 때때로 콜이 시시각각 울릴 때도 있었다. 한 시간 단위, 심지어는 몇 분 단위로 울렸다. 많은 사람들이 비행정으로 달려갔고 돌아오지 못했다. 전화벨이 항상 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 전화인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벨소리가 똑같았으므로 전화가 울리면 우선 모두 엉거주춤 일어날 태세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콜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울렸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 있었는데, 전화를 받은 머클 중위가 데이빗을 불렀다. 천막 안에서 허겁지겁 데이빗이 뛰쳐나왔다. 그는 전화를 받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초조하게 매만졌다. 이따금 “그래, 나도 알아. 곧 갈게, 지금은 당장 갈 수가 없어.”하고 대답하는 것을 모두가 지켜보았다. 그가 전화를 끊었을 때, 파리어 대위가 물었다. “급한 전화였나?” 데이빗은 아내로부터 장인의 부고소식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잔디밭 중간쯤에 서있던 누군가 달려와, 데이빗에게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그런 미친 일도 있었다. 이 일화는 그만큼 우리가 전화벨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어쨌든 데이빗은 돌아갔고, 주먹을 맞은 일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한 게 없는 것으로 안다. 그는 살아남았고, 주먹을 지른 남자는 죽었다. 그것으로 그 이야기는 닫혔고,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콜이 너무 자주 울릴 때는, 그냥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시간차를 두고 비행정에 올라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제 막 배치를 받은 신입들이 인사조차 하지 못 하고 전투정에 올라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리더들은 천막 혹은 잔디밭에 남은 낯선 새 가방과 보급품을 확인하고, 돌아오지 못 한 비행정의 이름을 리스트에서 찾은 후, 뒤늦게 신입의 이름을 읽었다. 전쟁 초반에, 나는 다른 팀의 리더가 칠판 앞에 우두커니 서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허리케인을 몰았다. “오늘 허리케인은 다 돌아오지 않았어요?”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돌아오지 못 한 허리케인이 한 대 있어.” 그는 발치에 놓인 보급품을 내려다보곤,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브라이언. 나는 이 놈 얼굴도 확인하지 못했어.” 당시에는 출정하자마자 전사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가 그것을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건, 그게 너무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비극은 그렇게 지나칠 만큼 자주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 시대를 말도 안 되는 시대라고 불렀다. 내가 서두에서 붙여둔 것은 나 혼자만의 작명이 아니었던 셈이다.

 주변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포르티스 팀은 오래 버텼다. 오래 살았다는 뜻이다. 우리의 마지막 출정은 다이나모 작전이라고 불렸고, 파리어 대위와 나는 프랑스의 덩케르크까지 날았다. 리더는 프랑스까지 가지 못 했다. 출정 중이었기에 우리는 충분히 슬퍼하지 못 했고, 그저 계속 날았다. 나중에 나는 바다를 보면 종종 그 날 푸른 물결 위로 출렁거리던 리더의 스핏파이어, 파도에 따라 언뜻 드러나는 몸통에 칠해진 익숙한 전대 코드, 햇빛에 반짝이던 날개의 잔해를 떠올리곤 했다. 전쟁은 많은 것을 앗아갔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악독한 착취를 꼽자면 바로 추모의 시간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전우들이 추모할 시간조차 가지지 못 하고 히스테릭과 PTSD, 노이로제와 각종 정신질환 속에서 죽어갔다. 그럼에도 우리가 RAF에 자긍심을 가진 건, 돌이켜보면 그저 국가의 프로파간다와 이데올로기였을 지도 모르겠다고 누군가 말했다. 전쟁은 미친 짓이고, 사람이 죽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나는 어떤 말에는 동감을, 어떤 말에는 유감을 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핏파이어를 몰았던 사실에 자긍심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리더를 그리워할 수 있다. 나는 포르티스의 모두를 그리워했고, 특히 그를, 파리어 대위를 아주 오랜 시간 기다렸다. 파리어 대위는 내가 자신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았을지 몰라도, 그게 얼마나 절박했는지는 결코 알지 못 했을 것이다.

 나는 파리어 대위가 바닥을 드러낸 연료통과 함께 덩케르크 해변의 상공을 날아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중에 직접 보고를 받았지만,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그를 덩케르크에서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문스톤호라고 불리는 작은 요트에 타고 있었고,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연료(아마 당시엔 10갤런도 채 남지 않았을 것이다)로 선회하여 내 눈앞에서 폭격기 한 대와 호위기 한 대를 격추시켰다. 그가 탄 스핏파이어가 그를 다시 영국으로 돌려보내줄 수 없음을 알았다. 울지 않았던 건, 앞에서 말했듯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스톤호에는 마흔 명이 넘는 보병들이 타고 있었고, 바다는 온통 기름으로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파도 아래 어딘가에는 U보트가 있었고, 격추된 독일 전투기로부터 불꽃이 피어올랐다. 나는 배를 돌리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전투정을 만났지만, 요트를 몰던 두 도슨 가 사람들이 현명하게 대처한 덕분에 아무도 죽지 않았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미친 시대였음에도 종종 행운과 기적이 일어나던 때였다. 나는 피터 도슨이라고 하는 소년을 바로 그 요트에서 만났다. 그의 형이 허리케인을 몰았다. 피터는 그의 형이 전쟁 초기에 전사했다고 말했고, 그것을 과거형으로 말했다. 그는 떠나보내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허리케인의 리더가 칠판 앞에서 읊던 이름을 떠올렸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배에서 내린 후에도 소집 명령을 받기 전까지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도슨 가에 따로 찾아가지는 않았으나, 나는 피터의 친구, 내가 문스톤호에 오르자마자 뱃바닥에서 마주한 소년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피터는 나를 알아보았지만 장례식 내내 말을 걸지 않고 앉아 있었다. 조지 밀스. 단상에 올라간 그 애가 천천히 발음했다. 나의 친구, 나의 용감한 친구, 조지 밀스. 그 애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애가 단상을 내려왔을 때, 다가가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곧 그 애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깨달았다. 나는 그 애의 어깨를 두들겼다. 언젠가 파리어 대위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내가 장갑을 끼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피터의 어깨를 토닥이려 애썼다. 그 애가 얼마나 용감했는지 신이 아실 거야. 네 조지는 분명 행복할 거다. 나는 실제로 그렇게 말했고, 나는 크리스천이었으며, 신을 믿었다. 피터는 끝까지 울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애가 분명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었을 것이며, 그렇지 못 했다면 죄책감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창공을 바라보며 파리어 대위를 응원할 때, 우리의 발밑에서 조지 밀스가 죽어가고 있었다. 피터 도슨은 친구의 임종이 진행되던 순간 자신이 어쩌면 그와 아무것도 상관없는 상황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브라이언의 죽음은 전화 한 통과 전보로 이루어졌으나, 조지 밀스의 죽음은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에는 육체성이 있었다. 피터는 시체를 눈앞에서 보았고, 심지어 그 시체는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그의 눈앞에서 입을 달싹이고 있었으며, 그는 시체이기 이전에 피터의 오랜 벗이었다. 나 역시 떠나보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심지어 죽지도 않은 사람을 눈앞에서 떠나보냈던 상태였다.

 공군으로 돌아온 후에도 콜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는 스핏파이어에 탔다. 파리어 대위를 매순간 기다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생존에 급급했고, 매순간 추격하고 격추했고, 동시에 후퇴하고 선회했다. 전우라고 부를 수 있는 많은 이들이 죽었다. 나와 같은 기수로 불리던 사람은 나를 포함해 둘뿐이었고, 그 역시 종전 직전에 전사하였다. 놀랍게도 나는 살아남았고, 파리어 대위를 기다린 것은 그 뒤의 일이다. 그전까지 내가 기다린 것은 죽음과 생존, 비극과 기적뿐이었다.

 마지막 출격이 있기 전 야간에 비행을 할 일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대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재편성 되어 새로운 리더와 함께였고, 그는 나의 포르티스 리더의 선임이었다. 그가 왼편에, 내가 오른편에 있었다. 가운데에 랜디 소위가 있었다. 콜린스 대위님. 그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언젠가 내가 그의 자리에 날면서, 무전을 통해 파리어 대위를 그렇게 불렀던 일이 떠올랐다. 대위님. 나는 그의 이름을 잘 부르지 않았다.

 새 리더가 서쪽으로 좀 떨어져서 날고, 나는 랜디 소위와 붙어 이따금 무전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다 내가 좀 더 고도를 높이자고 말했고, 랜디가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달을 보라고, 얼간아. 여기서 적이 나타나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냐.” 랜디와 나는 조금 더 높게 올라갔고, 구름 바로 위에서 달을 보았다. 특출 나게 크지는 않았다. 나는 땅에서 보는 달과 하늘에서 보는 달의 크기 차이가 실상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크지 않지?” 내가 랜디 소위에게 말했다. 그건 파리어 대위가 언젠가 내게 했던 말과 똑같았다. 나는 파리어 대위를 흉내 내고 있는 것이었다. 랜디는 한동안 무전하지 않다가, 다시 고도를 낮춰 내려갈 즈음에 이렇게 말했다. “네. 하지만 아름답네요.” 나는 파리어 대위에게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파리어 대위가 특별히 감상적이거나 섬세한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는 덤덤하고 무감한 편에 속했고, 감정을 어떻게 숨겨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주변 사람보다 훨씬 무던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종종 남이 자신보다 훨씬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추측하거나 어림잡았다. 그는 나를 처음 본 이례로 쭉 나를 햇병아리 취급하면서(마침 머리색도 딱이군. 그는 리더와 함께 입을 모아 자주 그렇게 말했다) 내가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인 것처럼 취급하곤 했다. 매번 그러던 것은 아니었지만,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할 때면 그가 나를 어떤 인간으로 보고 있는지가 여실히 느껴졌다. 불쾌한 느낌이 아니었지만, 불편하기는 했다. 실제로 나는 제법 뾰족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고, 종종 그곳에 무게를 실어 몸을 움직였다. 그래서 파리어 대위가 나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게 느껴질 때면, 그가 내 사관학교 시절 내가 동기 몇 명을 주먹으로 때려눕혔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실제로 알고 있었다고, 파리어 대위가 재회 이후 말해주었다. “그러나 너를 취급하는 일과 그 일은 별개였어.” 그가 말했다.

 어쨌든, 그는 나를 달과 보다 가까운 곳으로 데려갔다. 우리의 스핏파이어는 부드럽게 솟아올랐고 놀랄 만큼 구름 위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리더는 우리보다 아래에서, 내가 랜디 소위를 데리고 솟아오를 때 새 리더가 그랬던 것처럼 서쪽으로 비행정을 몰고 있었다. 대기가 차가워서 캐노피에 김이 서리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파리어 대위가 무전으로 말했다. “봐.”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위성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하늘 속에 둥그렇고 거대한 조명 하나를 띄워놓은 것 같았다. 암청색 창공이 빛 무리에 따라 보라색으로 희미하게 일렁였고, 구름은 천처럼 출렁이며 몇 마일까지 아득하게 이어졌다. “생각보다 크지 않지?” 파리어 대위가 말했다. 나는 어쩐지 목이 메었다. “아뇨.” 나는 대답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충분히 대단합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한동안 거기 떠있었다. 뒤늦게 덧붙이지만, 리더의 무전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 리더가 올라오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는 너무 멀리까지 나가선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후발로 오는 다른 팀과 함께 붙어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곳엔 온전히 나와 파리어 대위만이 머물러 있었고, 함께 말없이 달 아래를 날았다. 나는 그 순간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파리어 대위가 무전으로 어떤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숨소리를 들었다. 나의 첫 키스는 열여덟 살 때다. 동네에서 가장 아름답던 스무 살짜리 여인과 했다.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어깨를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는데, 그런 내가 우스웠던지 그녀가 숨과 숨의 틈으로 작게 웃었다. 그 소리를 기억한다. 바짝 다가선 사람이 조용하고 은은하게 터뜨리는 숨의 탄성을. 그 때 나는 바로 그 소리를 파리어 대위의 무전으로부터 들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나는 잠깐이지만 그와 키스한 거라고 생각했다. 키스한 것이나 다름없는 어떤 순간이 있었고, 방금 지나갔다. 그리고 달이 아름답다. 그 순간을 잊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비행했다. 그 날은 아무도 죽지 않았고, 비행이 끝났을 때 나는 콕핏 아래에 주저앉았다. 내 어깨를 두들기던 파리어 대위의 손이 기억난다. 그는 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드럽고 친밀했으며, 어떤 은밀한 애틋함이 숨겨져 있었다. 달을 다녀온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아주 미약하게, 애정이 뒤척였다.

 랜디는 1943년에 죽었다. 새 리더는 살아남았지만, 1944년 공중에서 추락했다. 나는 여전히 대위였고, 마지막으로 항공전을 치를 때 거의 죽을 뻔했지만, 어쨌든 살아남았다. 거의 죽을 뻔했다는 것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사실, 나는 한 번 죽었다 돌아온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비행사들의 무덤에 다녀왔다. 실제로 그것을 보았다. 이 역시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비행사들의 무덤(혹은 비행정의 무덤이라고도 불렸다)은 RAF들뿐만 아니라 비행정을 모는 모든 파일럿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우리는 신의 존재가 불확실하고 확증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희망하고 저주하고 사랑하곤 한다. 비행사들의 무덤은 바로 그 신처럼, 미신을 넘어선 어떤 강한 희망이자 저주였고, 돌아오지 못 한 비행정을 위한 일종의 괴담이었다. 비행기를 몰던 사람들이 가는 장소. 그곳은 가장 높은 고도에 있으며, 바람이 불지 않고 캐노피가 없어도 얼지 않는다. 하늘에서 전사한 모든 이들이 그곳으로 간다. 타고 있던 비행정이 영혼을 태운 채 위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이는 추락한 위치를 기록했음에도 해당 장소에서 비행정 혹은 시체를 발견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누군가가 붙이기 시작한 가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라진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빤한 이야기지만, 어쨌든 RAF에서도 유명한 미신이었다. 파리어 대위도 종종 내게 그 이야기를 했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산채로 비행정 무덤에 끌려가는 수가 있어. 그럼 나는, “미신으로 겁을 먹기엔 제가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대위님?”하고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내가 틀렸다. 나는 겁을 먹었고, 파리어 대위는 그걸 알았다. 그는 덩케르크로 출정하던 그 날에도 콕핏 앞까지 쫓아와 내게 겁을 주고 떠났다. 그는 나를 어떻게 하면 놀릴 수 있는지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대체로 나에 대해 지나치게 잘 알고 있는 편에 속했다.

 나의 마지막 항공전은 치열했고, 나는 그것을 정확히 기억할 수가 없다. 눈을 감으면 바람소리와 함께 스핏파이어가 통째로 흔들리며, 마치 기갑부대의 탱크처럼 탈탈거리던 소리가 떠오른다. 장면은 뭉텅이로 잘려있고 단편적인 이미지만이 기억난다. 나는 발포하고 연료 계를 잠갔다가, 다시 열었다. 조명탄 총이 부츠를 자꾸만 쳐서 엄지발가락이 얼얼했던 것, 내 옆으로 폭격기가 날았던 것, 무시무시한 총소리가 났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아군이고 적군이고 할 것 없이 공중에서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고, 뒤집혀진 채 상대가 누구인 줄도 모르고 총격을 가했다. 전대 코드를 확인하기 위하여 몸통을 볼 틈이 없었다. 비행정들은 너무 빠르게,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총알을 다 소진한 후에도 스핏파이어를 험하게 몰았고, 어느 순간부터 졸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그랬다. 늦은 오후였고 나는 삼일 동안 단 한숨도 자지 못 한 상태였다. 녹초가 되어 어느 순간 조종기를 놓았던 기억이 난다. 손이 미끄러지면서 기체에 부딪혔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도 스핏파이어가 제대로 중심을 잡으며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었다. 잠결에도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 그대로 기대어 있었다. 잠시 후 중력이 붕 뜨는 것이 느껴졌고, 빠른 속도로 고도가 상승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스핏파이어를 잡아 올리는 것 같았다. 내가 한참 졸았다고 생각한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내가 너무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도계를 확인하곤 눈을 깜빡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달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캐노피는 깨끗했다. 김이 서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화들짝 잠에서 깨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위는 어두컴컴했고, 달은 아주 거대했다. 암청색의 하늘이 달빛 때문에 온통 보랏빛으로 울렁거렸다. 구름은 단 한 줄기를 제외하면 모두 스핏파이어 아래에 얌전히 깔려 있었다. 잘 경작된 밭처럼, 판판하고 드넓게, 몇 백 에이커, 아니 수백 헥타르에 달하는 구름이 대지처럼 끝없이 펼쳐졌다. 나는 달 위로 흐르는 기묘한 구름 한 줄기를 보았다. 그것은 북쪽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점점이 작고 흰 무언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때때로 그것들은 반짝이기도 했다. 그 구름은 여름날의 작은 강줄기처럼 보였고, 혹은 토성의 고리처럼 보였다. 내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데,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구름 위로 몇 대의 비행정이 솟아올랐다.

 나는 랜디의 스핏파이어를 보았다. 몸통의 전대 코드를 확인한 후, 나는 캐노피 안에 누가 앉아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것은 틀림없는 랜디였다. 나는 랜디 심슨의 매부리코 모양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코 모양 때문에 마스크가 조금 아래로 처지던 것을 기억한다. 랜디는 그곳에, 조금 처진 마스크를 쓰고 스핏파이어에 앉아있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는데, 그는 이미 1943년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나의 오른편으로 다른 한 대의 스핏파이어가 솟아올랐다. 나는 이번에도 전대 코드를 확인했고, 캐노피 안에 앉아있는 새 리더를 보았다. 나는 내게 일어난 일을 이해했다. 내가 죽었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앞으로, 색이 바란, 아주 오래된 스핏파이어 한 대가 솟아올랐다. 나는 비행정의 날개로부터 물이 떨어지고 있는 것, 그리고 군데군데에 하얀 거품이 굳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캐노피 안에 나의 리더가 앉아 있음을 확인하지 않고도 알았다. 코끝으로 열이 몰리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잠자코 앉아 있었다. 나는 마지막 스핏파이어 한 대를 기다린 것이다. 그 때까지도, 나는 파리어 대위가 덩케르크 해변에 불시착하지 않았다면, 그 근방을 날던 독일 전투정에게 격파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스핏파이어는 솟아오르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비행정 네 대가 그렇게 구름의 평원 위에 떠있었다. 잠시 후, 랜디의 스핏파이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나는 랜디의 비행정이 달을 향해 자꾸만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랜디는 마침내 구름의 유수에 닿았고, 그 일부가 되었다. 그는 북쪽으로 흘러갔다. 그 다음엔 새 리더의 스핏파이어가, 그리고 마침내 영원한 나의 포르티스 리더의 스핏파이어가 차례로 솟아올랐다. 그들은 직각으로, 마치 누군가 그들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부유했고, 구름의 한줄기가 되어 랜디를 따라 북쪽으로, 어딘가로 흘러갔다. 나는 달빛에 반사된 스핏파이어들을 볼 수 있었다. 그 구름 한 줄기 속에 얼마나 많은 파일럿들이 앉아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파리어 대위의 목소리가 떠오른 건 그 때였다. 봐, 라고 언젠가 그가 그랬다. 생각보다 크지 않지? 나는 거대한 달 아래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목 같은 게 메지 않았다. “아뇨.” 나는 대답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충분히 대단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르겠다. 난 죽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연료가 반도 채 남지 않은 스핏파이어를 타고 홀로 바다 근처를 부유하고 있었다. 어떤 정신으로 그걸 몰아 귀환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는다. 어쨌든 난 살아남았고, 파리어 대위 역시 살아있음을 알았다. 그는 구름이 되지 않았고, 독일 어딘가에 포로로 잡혀 있었다.

 나는 종전 당시를 자세히 서술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기쁘기보다 피로한 상태로 작은 해방감만을 맛보았다. 정복을 벗고 침대에 누웠는데, 한밤중에 무려 다섯 번이나 허겁지겁 깨어났다. 거실로 달려가 수화기를 들고, 오래도록 거기서 신호음을 들었다. 전화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내 스스로에게 확인시켜 주었으나 몸이 제대로 납득하지 못했다. 한동안 그랬고, 그 후에도 그랬다. 아주 오래도록 나는 전화벨 노이로제와 맞서 싸웠다.

 파리어 대위를 다시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그는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왜소하고 수척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파리어.” 내가 말했다. “파리어, 파리어…….” 그는 대답 대신 팔을 벌려 나를 껴안았다. 그는 이전보다 작아진 것 같았는데도 힘은 여전히 장사였다. 내 어깨를 으스러질 정도로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파서 눈물이 핑 돌 정도였는데, 그가 나를 품에서 놓아줄 즈음 나는 정말 울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비로소 그 때서야 울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고, 아무도 어리둥절하게 죽지 않을 어느 여름, 나는 그의 품에서 아이처럼 흐느꼈다.

 우리는 조지 밀스의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도버를 방문하였다. 내가 조지 밀스의 장례식을 기억하고 있는 건 순전히 문스톤호에서 만난 피터 도슨 때문이었다. 나는 그 배에서 가장 먼저 구출된 사람이었고, 피터가 믿은 어른이었다. 그 때, 그 애가 내게 조지의 상태를 묻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축축하게 젖은 내 정복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눈으로 이렇게 묻고 있었다. 뭔가를 알고 계시다면 무엇이든 말해주세요. 그런데 나는 그 애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 모르겠구나.” 그 뒤의 말은 현명하게 뱉었다고 생각한다. “넌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어.” 나는 오래도록 전자의 말 때문에 그 아이에게 부채감이 있었지만, 정작 다시 만났을 때 피터는 후자의 말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애는 그 말이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 때의 친절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콜린스. 제 친구의 장례식에 와주신 것도요.” 피터가 그렇게 말했을 때, 파리어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도버의 LOCAL HERO라고 기려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조지 밀스만의 추모식이 아니었다. 도슨 일가는 가장 앞줄에 앉아 있었고, 조지 밀스의 부모로 보이는 두 사람이 그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이따금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서로의 손을 잡았다. 파리어와 나는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그가 손끝으로 내 손등을 가만히 쓸어보았다. 그 때마다 나는 주변이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려 애썼다.

 피터 도슨이 단상 위로 올라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도슨 일가는 이 전쟁으로 가까운 두 사람을 잃었고, 특히 피터는 그랬다. 그는 길지 않은 추모사를 들고 있었다. 서류 한 장 분량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긴장한 얼굴이 아니었지만, 추모사를 읊기 전에 군중을 조용히 훑어보았다. 그러다 어느 한 곳을 응시하면서 잠시 머뭇거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당황한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마이크를 앞에 두고 추모사를 읽어나갔다.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 한다. 추모식 이후에도 오랜 시간, 나는 필사적으로 전쟁을 떨쳐내고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폭력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싸웠다. 파리어도 파리어 나름대로의 전쟁이 있었다. 우리는 함께 이겨나가려 애썼지만, 어떤 것은 결국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것을 패배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파편들은 단지 거기 있을 뿐이다.

 분명히 기억하는 건 피터 도슨이 조지 밀스를 부를 때, 그가 군중 속 어느 한 곳에 종종 시선이 머물렀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에 떨리는 목소리를 내다가, 마지막에는 놀랄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나는 나중에 피터 도슨이 바라보던 그 장소에, 언젠가 문스톤호에서 만났던 남자가 서있는 것을 보았다. 뱃머리에 쭈그리고 있다가 나중에는 보병들의 구조를 도왔던 바로 그 남자였다. 피터는 또, 조지 밀스 외에 다른 이름을, 이번에는 파리어도 알고 있는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이 호명될 때, 우리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이언, 그 애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줄곧 우리의 어떤 시대에서 그 이름을 불러냈다. 브라이언 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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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레이먼드 카버의 에세이 <내 아버지의 인생>의 마지막 문단을 차용해서 썼음. 내용은 전혀 다르나 장례식장에서 이름을 호명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인용하여 글에 맞게 꾸려 썼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붉은 돼지>의 세계관도 차용해서 씀. 비행정 무덤 장면에서 얼마나 전율했는지..그러니까 이 글은 내가 쓴 글이지만 온전히 내 글은 아님.

 1-2. <마지막 문장의 원문>
 "레이먼드, 장례식장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줄곧 내 유년기에서 그 이름을 불러냈다. 레이먼드.“

2. 덩케르크 오피셜 비하인드에서 피터의 형 이름이 브라이언으로 밝혀졌다. 그것을 기념하여 쓴 글이다.

201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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