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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에피소드 : 닥터후 시즌 3 10화, Blink (The Weeping Angel)
맷닥 x 스타트렉 비욘드 이후 

 

 날씨 순환 장치가 고장 났을 때, 요크타운의 밤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24시간의 순환 법칙을 어긴 적 없던 정교한 과학적 산물의 기기가 조절 능력을 잃는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해가 떠오른 지 불과 3시간 만에 다시 깜깜한 세상과 마주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스위치를 내린 것처럼, 빛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공허한 침묵이 남는 거대한 도시. 영화관에서 종종 경험하던, 갑작스러운 빛의 부재. 요크타운의 주민들은 그 때, 저마다의 일상을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다. 키우던 관엽식물에 물을 주다가, 반려견과 함께 도로를 걷다가, 사랑하는 이에게 입술을 내밀다가, 작동되지 않는 알림로봇의 옆구리를 발로 차다가 말고 그들은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진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놀란 주민들이 약속이나 한 듯 요크타운을 감싼 거대한 막을 올려다보았다. 쉴드는 내려가 있었고, 인공태양은 거기 없었다. 대신, 광활한 우주가 펼쳐졌다. 별과 행성들, 미확인 성운들의 군집이 촘촘하게 퍼져있는 그 거대하고 깜깜한 공간. 파랗고 보라색이며 노랗고 절묘하게 붉은 그 빛 무리들. 그 한순간 요크타운의 모든 천공은 우주 그 자체를 비추고 있었다.

 출근 중이던 바바라 O는 그 갑작스러운 요크타운의 정전 사태에 짜증을 느꼈다. 그녀의 업무 시간은 이미 10분이나 지체된 상태였고, 공용 트랜스포트의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스템 복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멍청한 얼굴로 작동이 중지된 트랜스포트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는 성큼성큼 줄에서 나와 센트럴 플라자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머리 위론 광대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지만, 바바라 O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요크타운 중앙에 위치한 센트럴 플라자, 그녀의 근무지는 바로 이곳이다. 모든 인공식물들은 반짝반짝하게 닦여있으며, 바바라 O는 그녀의 심미적인 감상을 토대로 플라자 주변 환경과 조형물을 구상하고 설치하는 일을 담당한다. 스타플릿 소속 USS 엔터프라이즈호가 요크타운에 가해진 대규모 생화학 테러 사건을 저지한 이후, 센트럴 플라자의 사장은 스타플릿 소속 전 대원들에게 (어디까지나 서비스 홍보와 수요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상태에서)시즌 한정 세일 쿠폰을 발행했다. 내일은 바로 그 주 고객이 될 스타플릿 대원들을 위한 시즌의 축제 발족식이 있는 날이다. 그 말은 즉 바바라가 아주 바빠진다는 소리였다. 지난 일주일동안 그녀는 플라자 근처 환경을 재구성하느라 혼신의 힘을 다했다. 플라자는 ‘고객 동선의 편리함을 목적으로 한 여백의 미’따위를 강조했고, 그 일주일동안 바바라가 골머리를 썩인 것은 곳곳에 위치한 조형물들을 ‘얼만큼 제거할 것이냐’였다.

 그러니까 출근 시간에 10여분 정도 지각한 바바라가 마침내 센트럴 플라자 정문 계단 앞에 도착했을 때, 계단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천사형상의 동상을 보고 당황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어제까진 이런 조형물이 없었으며, 인파가 몰리게 될 정문의 계단의 모든 조형물은 깔끔하게 치워져 있어야 했다. 더군다나 이 천사상은 아주 오래되었고, 새로 들여놨다고 보기에도 어려웠다.

 “어, 클라리스?”

 통신기를 든 채 바바라는 천사상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본 동상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통신기 너머로 사무적이고 딱딱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네, 바바라.”

 “플라자 정문 계단에 놓인 천사상 말이야. 어제까진 없었잖아?”

 “5분 전 스캐너의 결과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류겠지. 게다가 지금 정전이잖아.”

 “전력 문제와 시스템 오류는 서로 상관없는 일이에요.”

 “아무튼 확인 좀 해줘. 거기도 정전인가?”

 “아뇨, 플라자 내의 배터리로 재가동 중에 있습니다.”

 “빠른 확인 좀 부탁할게.”

 천사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바바라는 통신기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천천히 손을 뻗어 동상을 만졌다. 아주 차갑고 단단한…… 바바라는 얼른 손을 내렸다. 돌로 만들어진 건 확실하군. 맙소사! 개인용 트랜스포트라도 있나? 이걸 대체 누가 하루 만에 가져다 놓는단 말이야? 통신기가 울렸으므로 바바라는 다시 통신기를 들었다.

“바바라, 스캐너엔 여전히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카메라엔 뭔가 보여요. 계단 한가운데에 있는 것, 그리고 그 앞에 선 당신 말입니다.”

 “그래, 그럼 확실히 스캐너 오류인 모양이지.”

 바바라는 동상에서 시선을 떼지 못 한 채 중얼거렸다.

 “혹시 모르니 플라자 조형물 리스트를 확인해봐.”

 그리고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변화를 알아차리기엔 아주 미미했다. 바바라는 얼굴을 찡그렸다. 천사상이 아주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다.

 “클라리스?”

 바바라가 물었다.

 “이상한 질문처럼 들릴 건 알지만… 혹시 동상 위치가 변했나?”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바바라. 줌도 되지 않고, 시야 보정도 되지 않습니다. 당신 얼굴은 또렷한데 그 옆은 노이즈가 많아요. 모니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스크린을 두들기는 소리가 통신기 너머에서 요란했다.

 “바바라, 검색이 완료되었습니다. 천사상은 플라자 조형 목록엔 없어요.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등록되지 않은 불법 전시물입니다.”

 “그렇겠지. 관리로봇 두 대만 보내줘. 이것 좀 치워버려.”

 바바라는 통신을 종료했다.

 자, 이 천사상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자아가 비대한 무명 예술가의 것일 수도 있고, 대형 쓰레기 배출에 난감해진 어느 행성의 주민의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걸 요크타운의 중심지에 위치한 거대한 센트럴 플라자의 정문 계단에 던져놓는다는 것은 불법적인 일이다. 그러니 그걸 치운다한들 바바라가 고소를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바바라는 천사상을 지나쳐 정문을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벌써 열한시 십 분이었다. 아직까지 하늘은 깜깜했고, 요크타운의 시스템은 복귀될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바바라는 인공 태양이 사라진 천공을 잠깐 바라보다가, 무언가 긁히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바바라를 향하고 있는 천사상이 있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정문을 등지고 섰던 그 낡은 천사 동상은 이제 약 세 칸 정도를 올라온 상태였고, 한손은 그녀를 향해 길게 뻗어있었다. 바바라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은 채 헐떡이며 주머니를 더듬었다. 통신기는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을 굴렀다.

 “오, 세상에.”

 바바라가 다급하게 고개를 숙여 통신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천사상은 바바라의 코앞에 놓여있었다.

 “클라리스!”

 천사상의 텅 빈 눈이 바바라를 향하고 있었다.

 “클라리스! 내 말 들려?”

 꼼짝할 수 없었다. 통신기 너머로 잡음이 가득했다가, 이내 끊어졌다. 사방이 조용했고, 하늘은 여전히 깜깜했다. 빛이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무섭진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꿈이 아닐까? 그러나 단단하고 차가운 팔이 바바라의 옷가지를 붙잡고 있었다.

 “클라리스!”

 단단한 벽이 등에 닿았다. 주춤거리며 물러나던 바바라는 헐떡이며 침을 삼켰다. 통신기는 먹통이고, 천사상과의 거리는 불과 이십 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힌 그녀는 손을 마구 휘저으며 천사상을 떼어내려고 애썼다. 그리고 다음순간…… 사라졌다.

 

 요크타운의 정전 사태는 불과 사십 분 만에 종료되었다. 공용 트랜스포트에 불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쉬며 거리로 쏟아질 때, 센트럴 플라자의 정문 계단 앞엔 관리로봇 두 대가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지정좌표에 도달해선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 했다. 대신 계단 근처에서, 플라자 소속 직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통신기 하나를 발견했다. 덧붙일 말도 없이 명백히도 바바라 O의 것이었다.

 오후 1시 경, 요크타운의 치안 관리 센터에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다. 자신을 센트럴 플라자 소속 직원 클라리스 제인이라 밝힌 그녀는 플라자의 조형 관리 치프였던 바바라 O가 갑작스럽게 실종되었다고 전했다. 클라리스는 실종 직전의 영상과 통신 기록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조회 결과 그런 기록은 일체 존재하지 않았다. “기계 문제일 거예요.” 라고 클라리스는 단언했다. “센트럴 플라자의 시스템은 요크타운의 데이터베이스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아까의 정전 사태 때문에 전산 기능에 오류가 생긴 겁니다. 영상을 조회할 수 있도록 요크타운에서 책임을 지고 조치를 취해주세요.”

 

 한편 요크타운의 중앙 관제실은 이 갑작스러운 대규모 정전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 해 절절매고 있었다. 날씨 순환 시스템, 인공 태양, 공기 순환 장치의 오류는 요크타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문제다. 최근 크롤-발타자르 에디슨의 사건이 종결된 이후 이 문제는 특히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었다. 원인도 파악하지 못 한 관제실이 이 문제를 책임지고 싶지 않음은 당연한 말이었다. 결국 그들은 스타플릿에 이 책임을 넘겼는데, 그들이 지목한 사람은 ‘느닷없이 쳐들어온 붉은 셔츠의 그 남자’였다. 총 이 백여 개에 달하는 안전장치를 간단히 해킹해버리고 중앙 관제 시스템에 접근해 공기 순환 장치를 멈추려고 했던 그 남자, USS 엔터프라이즈 호의 기관실장 몽고메리 스콧 말이다.

 그리하여 스코티가 중앙 관제실로 향하고 있을 때, 시간은 벌써 오후 2시 반이었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제작 기간 동안 얻은 모처럼의 달콤한 휴식을 잃어버린 남자의 표정은 몹시 퉁명스러웠다. 술이나 진탕 퍼마시려고 했더니만, 이게 무슨 일이래! 이젠 아주 기계 수리공으로 부려먹으려고 하시는 건가? 내가 뭘 했다고! 억울한 듯 허공에 팔을 들어 올렸지만 울분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스코티는 씩씩거리며 가장 가까운 공용 트랜스포트로 향했다. 그는 관제실에 도착하자마자 이 시스템 오류가 자신과는 하등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고 자신을 지목한 직원 모두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 채 돌아가겠다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다음에 벌어진 풍경은 스코티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묵직하고 거센 기계음(그건 흡사 브레이크를 올린 채 워프를 작동시킨 함선의 소리와 비슷했다)과 함께 소용돌이가 들이닥친 것이다. 바람의 블랙홀 같았다. 어떤 지점에서 공기의 흐름이 완전히 비틀려 흐르고 있었다. 공용 트랜스포트 바로 옆에서 말이다. 스코티는 얼빠진 얼굴로 멈춰 섰다. 눈앞에 파란 경찰 박스가 있었다.

 23세기에 파란 경찰 박스라니? 경찰 박스는 아주 구시대적인 상상이자 문물이었지만, 스코티는 그런 것들을 사랑했다. 낡은 찻잔과 라디오, MP3플레이어 따위들 말이다. 몽상가적 기질을 충족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아이템들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파란 경찰 박스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어릴 적 들춰보며 자랐던 기계의 역사 책 따위에서나 볼 수 있는 완벽한 모양새. 오즈의 마법사 속 인물이 된 기분이었다. 바람과 함께 등장한 경찰 박스 한 대, 비록 아무도 깔려죽지 않았지만, 어쨌든 스코티는 멈춰 섰고 꿈은 아니었다. 귀를 거슬리게 하는 기계음의 근원지는 경찰박스였다. 브레이크라도 풀지 않은 모양이지. 스코티는 무의식중에 그렇게 생각했다. 박스 내부에서 빛이 쏟아졌다. 뜨거운 것도 아니었고 차가운 것도 아니었지만 스코티는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벌컥 문이 열렸다.

 “아, 또 이러는군.”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누군가 툴툴거렸다. 스코티는 한 발 더 뒤로 물러났다. 빛이 강해서 눈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휘적거리는 긴 팔과 함께 한 남자가 경찰 박스에서 뛰어내렸다. 나비넥타이. 남자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손으로 제 넥타이를 잘 매만졌다.

 “후, 이것 좀 봐! 제 때 도착한다고 서둘렀더니 모든 게 엉망이지. 아, 거기 안녕하세요?”

 “오, 그래요. 안녕하시오?”

 스코티는 약간 멍청하게 대답했다.

 “귀를 보니 벌칸족은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래? 21세기 경찰 박스라니!”

 “타디스가 좀 섹시하긴 하죠.”

 남자는 정신 사납게 사방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고개를 돌리며 왼쪽, 오른쪽, 위, 아래, 옆, 그리고 스코티 앞에 다가와 눈, 어깨, 발, 다시 가슴께까지. 아니, 잠깐. 방금 저 사람 내 냄새를 맡은 건가? 스코티가 질색했다. 남자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곧장 허리를 펴곤 두 손을 펼쳤다.

 “좋아요! 그럼…… 어딨죠?”

 “뭘 말이오?”

 “그거요!”

 “그러니까 대체 뭘요?”

 이 남잔 마치 오래 전 내게 물건이라도 맡겨놓은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이런 뻔뻔한 느낌이 낯설지 않은데. 스코티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당신 소속이 어디오?”

 “이상한데…….”

남자는 스코티를 한 번 더 쭉 훑었다. 퉁명스러운 얼굴, 붉은 셔츠, 가슴에 달린 기관실장 뱃지. 기관실장?

 “아, 당신 스타플릿 소속이로군!”

 “난 방금 당신 소속을…….” 

 “잘 된 일이야! 정전! 어디 정전에 대해 물어보자고. 지난 이틀 내로, 이곳의 에너지가 도둑맞은 적이 있습니까?”

 “이 봐요!”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라구요, 기관실장!”

 “내가 기관실장인 걸 아는 걸 보니 지구 소속이긴 한 거죠?”

 “묻는 말에 대답 좀 해봐요!”

 “당신부터 하라고!”

 스코티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요크타운 시스템이 일시 다운이 된다 한들 경비 시스템마저 오류가 날 리가 없어! 그리고 당신은 요크타운 거리 한복판에 아주 갑자기 나타났지. 경찰박스처럼 생긴 우주선을 들고 말이오. 그럼 답은 워프인데, 요크타운에 경비 로봇이 아직까지 당신을 발견하지 못 했다는 건 기술적으로 경비 스캐너를 피하는 쉴드가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고, 당신이 가진 우주선은 요크타운의 시스템을 뛰어넘는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데…….”

 “아, 요크타운 시스템이 일시 다운된 적이 있었군. 언제지? 하루? 이틀? 지금이 몇 시지? 오…… 그럴 리가 없어. 세 시간은 늦었잖아!”

 남자는 스코티의 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산만하게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박수를 치며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센트럴 플라자 벽면에 달린 시계를 가리키며 스코티를 바라보았다.

 “아하! 하루는 안 지난 모양이군! 우리가 너무 늦은 건 아닌 모양이야. 그렇지?”

 스코티는 얼결에 대답했다.

 “그렇겠죠.”

 “오, 괜찮아, 아주아주 나쁜 사태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기관실장님. 당신은 문제를 해결할 거예요. 함선이 건조 중이던 걸 봤는데 당신은 여기 있지. 그렇다면 당신은 대기 중인 함선의 기관실장이거나 실직한 기관실장이란 소리인데, 대기 중인 함선은 한 대도 없었으니 후자란 소리겠지. 복직하길 원해요?”

 “잘린 적 없거든요!”

 스코티는 곧 정정했다.

 “아, 한 번 아주 잠깐 그랬던 적은 있지만.”

 “자, 그럼 이제 요크타운의 중앙 관제실로 갑시다!”

 “대체 왜요? 물론 난 가는 길이긴 했지만, 어쨌든 당신과는 관계없어요!”

 “한두 시간 전에 요크타운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있었겠죠? 혹은 시스템 전산 오류라던가. 그래서 당신이 여기 있는 거고, 난 박스 하나와 함께 당신 가던 길에 떨어진 미친놈이고, 맞죠?”

 “본인이 미친 걸 부정하진 않네.”

 “자, 그럼 갑시다.”

 “잠깐, 잠깐! 대규모 정전 사태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알지? 당신이 저지른 짓은 아니겠지?”

 스코티는 이제 남자에게 거의 반말을 쓰고 있었다. 남자는 어, 하고 뜸을 들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내 책임은 아니지만, 어쨌든, 책임이 있죠.”

 “하!”

 “Ah, Come on. 빨리 와요. 우린 벌써 세 시간이나 늦었다구요.”

 남자는 갈팡질팡하는 아이마냥 부산스럽게 고개를 돌리다가 이내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정확히 중앙 관제실 방향이었다. 대체 어떻게 요크타운의 길을 알고 있는 거지? 스코티는 혼란스럽게 남자가 버려둔 파란 경찰 박스와 앞서 가는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대체 당신 정체가 뭡니까?”

 황당하다는 듯 스코티가 물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스타플릿 소속이오? 이름은?”

 “소속! 정체! 이름!”

 남자는 고개를 돌려 스코티를 바라보았다. 아이 같이 장난스러운 웃음이 얼굴에 만연했다. 반짝이는 영민한 눈, 부산한 갈색 머리. 그리고 나비넥타이. 요크타운의 행인들이 무심하게 둘을 스쳐지나갔다.

 그가 대답했다.

 “난 닥터입니다. (I am the Doctor.)”

 이번에야말로 스코티는 허공으로 두 팔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201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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