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스가와라 코시 x 츠키시마 케이
현대au 수영하는 두 사람, 근친 요소 有

 

 1.

 아름다운 츠키시마 아키테루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관람석의 누구나가 숨죽이며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야외 수영장의 수면으로 여름의 태양이 지난하게 내리쬐고, 경기장보다 조금 높은 고도에 앉았던 사람들의 얼굴 위로 하얀 물그림자가 굵었다가 얇아졌다가 하며 일렁였다. 아키테루가 경기장을 반 바퀴쯤 돌았을 때, 힘찬 발길질 때문에 수영장 전체의 물이 일순 술렁였다. 물그림자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멍청하게 입을 벌린 객석 응원단들의 얼굴을 마구 핥았다. 츠키시마 케이는 그들보다 두 칸 뒤에, 그러니까 객석의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었다. 아키테루는 누구보다 먼저 수영장 끝에 닿았고, 수면 위로 한 번 크게 호흡을 뱉은 다음 부드럽게 몸을 웅크렸다. 일련의 과정은 아주 신속하고 부드러웠다. 그는 푸른 타일이 촘촘히 박힌 벽을 차고 용수철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곤 눈 깜짝할 새에 스타트라인으로 돌아왔다. 100m의 수영장을 서너 번 왕복하는 동안 선수들의 움직임은 조금씩 느려지고 뒤쳐졌다. 오로지 아키테루의 속도만이 규칙적이고 줄어들지 않았다. 아키테루가 페이스 조절에 능하다는 것을 감독에게 들은 적이 있다. 츠키시마는 아키테루가 우승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실제로 그는 완만하게 해내고 있어 응원 봉을 들고 온 그의 동생을 민망하게 만들지 않았다. 마지막 바퀴에서 츠키시마는 마구 응원 봉을 흔들었다. 형, 계속 가줘. 형, 멈추지 마! 그 순간, 숙련으로 다져진 페이스를 유지하던 아키테루의 속도가 일순 아주 가팔라졌다. 경기장 골인 지점을 3m도 채 남겨두고 있지 않은, 말하자면 발길질 두 번이면 손끝에 단단한 벽이 닿는 거리였기 때문에 그 순간적인 속력은 객석에서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츠키시마는 아키테루가 아주 짧은 순간 필요이상의 속도를 냈다고 생각했고―필요이상이라 서술한 건 순전히 아키테루가 명확한 일등이었기 때문이다―실제로 그러했던 것 같다. 아키테루가 골인한 후 몇 초 차이로 다른 선수들이 속속들이 들어왔지만 감독은 그것을 기뻐하기보다 염려하는 얼굴이었다. 스탠드에서 일어난 그는 물안경을 벗고 마구 물을 털어내는 아키테루 쪽으로 다가가 무언가를 지적했고, 아키테루는 다 알고 있다는 얼굴로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연거푸 끄덕였다. 그리곤 얼떨떨한 얼굴로 엉거주춤 일어서 있는 츠키시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케이!”

 그가 소리 높여 츠키시마를 불렀다. 여름의 햇살은 물기로 축축한 아키테루의 몸 위로 끊임없이 미끄러져 내려 수십 개의 파편으로 부서졌다. 객석의 모든 시선이 고작 아홉 살 남짓 되는 어린 남자아이, 그러니까 객석에서 유일하게 파란 색 풍선을 들고 온 타교 응원객 츠키시마 케이에게 집중됐다. 그 날 경기는 수영계 유망주 선수가 출전하여 전례 없이 뜨거운 환호를 받고 있었고 츠키시마 아키테루는 변방에서 올라온 이름 없는 학교의 이름 없는 선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아주 아름답고 여유롭게 가장 먼저 물속 마라톤을 끝냈다. 하지만 타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못내 그 질투어리고 호기심 깃든 시선들을 받아내는 과정은 츠키시마 케이에게 자랑스러움과는 아주 동떨어진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경기장 한복판에서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는 형의 축축한 몸을 보던 그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아주 외설적인 장면을 목격한 사람처럼 귓불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아키테루는 손을 흔들다 말고 천천히 거둔 후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세상의 소리가 완전히 멈춘 것만 같았다고 츠키시마 케이는 아주 오랜 뒤에도 그 순간을 그렇게 회고하곤 했다. 지독하게 고요한 나머지 은밀하게 감춰둔 욕망이 몸을 뒤척이는, 그런 관념의 뒤틀림마저 발각될 것만 같았던 그 순간. 곧이어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아키테루는 객석에서 시선을 떼어내고 허겁지겁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들 틈에서 어색하고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서두르지 않은 몸짓으로 물속에서 완전히 몸을 건져 올렸다. 감독이 아키테루의 몸 위로 길고 부드러운 수건을 얹어주었다. 그는 천천히 경기장 바깥으로 퇴장했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 지역 신문의 1면은 모두 츠키시마 아키테루가 장식하게 된다.

 츠키시마 케이는 멍하니 객석에 서있었다. 그리고 그 해의 팔월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잊지 못 했다.

 

 “츳키, 수영장 공사 끝났다더라.”

 점심 도시락을 막 비웠을 때 야마구치가 반으로 찾아왔다. 츠키시마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린 채 의자 등받이로 몸을 기울였다.

 “그래서?”

 “보러가지 않을래? 우리 부 활동… 슬슬 시작할 거라 빈 수영장을 보는 건 한밤중이 아니면 어려울 거야.”

 야마구치 타다시는 고교 입학 후 곧장 수영부에 들어갔다. 츠키시마와는 소꿉친구였는데 어릴 적 아키테루의 시합을 본 후 쭉 수영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현립 아지가사와 고교에는 총 15개의 문화부 활동이 있었는데, 수영부는 그 중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 하는 클럽 활동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올해 고교 임원이 교체되고 현 내 스포츠 고등학교 육성이 활발해지면서 수영부 개편과 수영장 내부 공사가 확정되었다. 야마구치가 아지가사와에 진학한 건 순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식 선수도 아니고, 공식적인 활동 기록도 없이 막연한 동경만으로 수영을 뜨문뜨문 해온 야마구치로서는 수영부 하나를 위해 이사를 하거나 아키테루처럼 먼 학교로 진학할 수도 없었으므로 그 결정은 꽤나 신중하고 적절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수영장 증축 소식에 가장 기뻐한 것도 야마구치였다. 반면 츠키시마는 흥미 없는 투로 “헤에, 그렇구나.”를 연발해 들뜬 야마구치의 기분을 폭삭 식어버리게 했다.

 “츳키, 좀 더 들떠도 괜찮잖아.”

 “난 수영부에 관심 없는 걸.”

 “하지만 아지가사와에 진학하잖아?”

 야마구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츳키는 수영장 때문에 진학하는 게 아니었어?”

 “그렇다고 말한 적 없어.”

 츠키시마는 냉담하게 말했다.

 “야마구치, 넌 넘겨짚는 버릇 좀 고치는 게 좋겠다. 아지가사와에 진학하기로 한 건 우리 집에서 제일 교통편이 좋고 가깝기 때문이야.”

 “츳키, 난 이해할 수 없어.”

 그 때, 야마구치의 표정은 마치 힐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능숙한데 어째서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거야?”

 그 날 둘이 싸웠다거나 그 이후로 사이가 틀어졌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야마구치는 입학식 전까지 동네 수영장을 종종 들락거렸다. 유난히 추운 날엔 축축한 머리가 조금씩 얼어있었다. 츠키시마는 야마구치를 따라 수영장을 두어 번 정도 들락거리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풀장을 가로지르진 않았다. 대신 풀장 근처에 난 조그만 스탠드에 앉아 야마구치가 수영장 끝에서 끝으로 몇 바퀴고 도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야마구치의 실력은 솔직히 말해 좋지 않았다. 수영을 시작한 건 아키테루의 그 해 경기, 그러니까 츠키시마의 형이 지역 신문의 1면을 장식하던 여름이었지만 야마구치는 고교 진학을 앞둔 겨울까지도 페이스를 지키지 못 하고 수영장 끝자락에서 헐떡이며 멈춰 서곤 했다. 칠 년이나 했으면서. 형편없는 실력이란 소리는 아니었다. 야마구치도 초중반 페이스를 지킬 줄은 알았다. 하지만 막바지에 도달하면 몸에 기운이 달려 도중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러니까 발길질 두 번이면 손끝에 단단한 벽이 있는 거리에서. 아키테루가 ‘형, 계속 가줘. 형, 멈추지 마!’란 소리에 급작 스피드를 냈던 그 지점에서. 

 그쯤에서 츠키시마는 천천히 일어난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아주 짧게 건성으로 진행한 후 물속으로 점프한다. 미끄럽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수면 아래로 파고들어가는 모양새다. 그 상태로 오래도록 물위로 올라오지 않고 허리와 다리를 움직여 수영장 중간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파하…… 숨을 몰아쉬며 솟구친다. 팔을 저어 앞으로 나아간다. 순식간에 반 바퀴를 돌고 몸을 웅크려 벽을 박차고 반대편 방향으로 튕겨 오른다. 턴은 부드럽고 군더더기가 없다. 야마구치는 벽에 손을 짚은 채로 츠키시마가 한 바퀴를 완주하는 것을 지켜본다. 츠키시마는 뭍에선 굼뜨고 비척거리지만 물속에선 아주 빠르고 정확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고, 그것 외엔 실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인답다. 츠키시마는 순식간에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고, 물속에서 솟구친 후 물방울을 털어내며 눈가의 물기를 닦아낸다. 츠키시마 케이는 물안경도, 제대로 된 준비운동도 없이 그렇게 빠르게 수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영 내내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야마구치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음에도 수면 위로 솟아오른 직후엔 항상 수영장의 왼쪽, 조금 높은 고도를 바라본다. 동네 실내 수영장의 왼쪽 벽면엔 넓고 하얀 타일이 붙은 벽뿐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매번 수면 위로 솟아오를 때마다 그곳을 바라본다. 그 시선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야마구치는 츠키시마 케이의 그 순간엔 그와 완전히 단절되어 어디론가 동떨어진 장소로 추방되는 느낌을 받았다. 혹은 츠키시마가 너무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 쪽이던 혼자 남겨지는 건 츠키시마 케이인 것 같았다. 야마구치는 떠밀리던 남겨지던 왁자한 소음과 사람들 속에 파묻히고, 츠키시마는 떠밀던 떠나던 외딴 곳에 고립될 사람처럼 보였다. 그것이 야마구치를 못 견디게 무섭게 만들었다. 일방적으로 친구 관계를 자처하며 붙어 다니는 그의 처지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야마구치는 풀을 헤치고 나아가 츠키시마의 팔을 붙잡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츳키, 있잖아… 나는 너랑 같은 고교에 가게 돼서 기뻐.” 그럼 츠키시마는 마치 “네가 성공적으로 숨을 쉬고 있어서 기뻐.” 따위의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야마구치를 흘겨보곤 풀 밖으로 빠져나왔다. 뚝 뚝 물방울을 떨어뜨리며 다시 스탠스 의자에 앉은 츠키시마가, “야마구치, 더 안 할 거야?”라고 물을 땐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응, 아니아니, 더 할 거야.” 야마구치는 그렇게 대답하곤 몇 번이고 풀장을 헤집고 다녔다. 

 츠키시마는 한 번 풀장에 들어가 그렇게 헤엄치고 나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야마구치가 수영을 끝마칠 때까진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함께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겨울 내내 그들은 수영장과 집을 오가며 방학을 보냈다. 야마구치는 츠키시마가 수영을 분명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류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노력해.”라는 대답을 들었다. 형의 이야기를 꺼내도 마찬가지였다. “형과 나는 달라. 형은 재능이 있는 거고, 나는…….” 츠키시마가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나는 그저 두려움이 없는 거라고 형이 말했었어.” 야마구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해한 이후에도 여전히 마음으로 받아들이진 못 했다.

 

 수영장에 고인 물은 아주 깨끗했고 소독약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아직 쌀쌀한 기운이 남은 초봄의 공기 속으로 온화한 햇빛이 투과하고 있었다. 츠키시마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교복 바지에 손을 욱여넣고 있자, 야마구치가 허둥대면서 마구 설명했다. 

 “츳키, 우리 학교는 근처 바닷가에서 물을 끌어올려서 쓴대. 정화조를 거치긴 하지만 소독약을 풀지 않을 때가 많댔어. 운영이 개편된다고 했으니 올해부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정화 해수를 받아놓은 모양이야.”

 그는 깨끗하게 신축된 수영장과 스탠드를 들뜬 얼굴로 뛰어다니며 츠키시마가 느릿느릿 수영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 어때?”

 “어떻냐니…….”

 츠키시마가 시시하단 듯 중얼거렸다.

 “깨끗하고 넓다는 것 외엔 다를 거 없잖아.”

 “여기, 경기장 수영장이랑 구조가 똑같아.”

 야마구치가 눈을 반짝였다.

 “있잖아, 제대로 된 감독이 온다면… 좋겠다, 그렇지?”

 츠키시마 아키테루가 재학하였던 중학교 시절엔 과거 올림픽 선수로 출전했던 선수가 코치로 들어와 있었다. 아키테루는 그의 감독 하에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수영에 익숙해졌다. 그 전까진 수영의 정규 교육 과정을 밟아본 적 없던 아키테루가 그 해 여름 이뤄낸 성과 뒤엔 제대로 된 감독의 지시와 전문화 된 훈련이 있었다. 츠키시마는 야마구치 타다시의 순진한 열정에 헛웃음이 났다.

 “야마구치, 너 정말 선수라도 할 작정이야?”

 “뭐어? 난 그냥 좀 더 제대로 된 수영이 해보고 싶을 뿐이야. 제대로 된 완주를 할 수 있다면 좋겠어.”

 야마구치는 당치도 않는다는 듯 못을 박았다.

 “그리고 그런 건 츳키가 더 어울려.”

 잠시 말이 없어진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풀장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자 잔잔한 수면 위로 물보라가 일었다. 깨끗하게 닦인 새 타일들은 반짝반짝 매끄러워 보였고 깊은 물속으로 수면의 출렁임이 그대로 비쳤다. 야마구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수영, 해볼까?”

 “…….”

 츠키시마가 한순간 망설였다. 하지만 떨쳐냈다.

 “수영복 없잖아.”

 “교복 입은 채로 하는 거야. 뭐 어때. 말리면 그만인 걸. 물도 깨끗해 보이고…….”

 “무리야. 점심시간 끝날 때까지 앞으로 10분도 안 남았어.”

 츠키시마는 완강히 돌아섰다. 아이, 츳키. 한 번만, 이라고 매달리는 야마구치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가자. 그렇게 말하자 야마구치도 더는 조르지 않았다. 교복을 입은 채 수영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충동이었고, 츠키시마를 따라 수영장을 등지자 그것이 충동이었다는 걸 순순히 깨달은 눈치였다. 둘은 점심시간 종이 치기 전 수영부실을 빠져나와 교실로 돌아왔다. 다음 교시에 야마구치는 입부 신청서 두 장을 구해왔다. 츠키시마는 그것을 받아들긴 했지만, 곧바로 접어서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방과 후 즈음엔 그것의 존재를 완전히 떨쳐내는데 성공했다. 하교 직전 야마구치에게 메일을 받았다. 「츳키, 후회하지 않을 결정하기 o(≧▽≦)o」 츠키시마는 그 메일에 답장하지 않고 느릿하게 홀드를 내렸다. 

 츠키시마는 모두가 교실을 빠져나간 뒤에야 가방을 챙겨 나왔다. 복도는 아주 조용하고 보송보송한 기운으로 가득 차있었다. 봄의 햇살엔 응당 그런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이다. 축축함과는 거리가 먼 건조한 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불길하지 않은 느낌이다. 불길하지 않다는 것은 요컨대 건조한 땅과 메마른 풀 따위와는 다른, 진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봄에는 축축하고 차가운 것들을 쓸고 지나간 후에 남는 깔끔한 감각이 있었다. 흘린 물을 닦아낸 직후 보송보송하고 깨끗해진 유리의 표면처럼. 겨우내 쌓였던 눈을 녹이다 못해 지층 아래로 몰아낸 햇살, 싹을 키우는 건조한 흙, 가지 속에서 움츠리던 꽃이 망울을 터뜨리는… 그런 생명력이 봄엔 있었다. 사람들 역시 너나할 것 없이 그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걸지도 몰랐다. 새로운 것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계절에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고 일 년치 예산을 짜고 진도 예습을 하거나 수영부에 입부한다. 야마구치는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츠키시마 케이는 봄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가을과 겨울 그 언저리가 어울렸다. 꿈틀거리는 생명력보다는 익다 못해 고개를 숙여 추락할 것을 기다리는 열매, 혹은 이미 추락이 끝난 이후 말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쨌든 츠키시마 케이가 수영부에 들어갈 일은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그것을 갈망하지도 않았다. 설령 입부한다한들 수영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느낄 수 있는 것은 성취감, 뿌듯함이 아니라 붕 뜬 느낌이리라. 자신이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예감과 함께 그 해 여름이 떠오르는 것이다. 케이! 그렇게 부르며 손을 흔들던 아키테루의 축축한 몸.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이 숨을 죽이는 바람에 세상 모든 외설이 밖으로 몸을 비집고 튀어나오던 그 순간. 자신의 욕망이 적확하게 아키테루의 시선에 포착되었던, 츠키시마 케이 자신조차 깨닫지 못 한 그것을.

 츠키시마의 발걸음이 멈췄다. 복도를 지나 수영장을 돌아가던 구간에서였다. 계단통을 몇 발자국 앞둔 오른쪽 복도의 벽면은 모두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2층이었고 수영장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물그림자가 바닥에서 일렁거렸다. 유리 너머의 수영장 안쪽에 누군가 교복차림으로 서있었다. 츠키시마가 걸음을 멈춘 건 수영장에 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교복이 아지가사와 고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셔츠는 반팔이었고, 바지는 청색이었다(아지가사와 고교는 회색이다). 츠키시마가 잠시 고민했을 때, 수영장에 멀거니 선 소년은 두 손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더니 몸을 한 번 쭈욱 펼쳤다. 스트레칭은 아주 짧았지만 정확했고, 그것이 츠키시마를 사로잡았다. 그건 수영선수들이 경기장에서 흔히 선보이는 다섯 가지의 순서(목-어깨-허리-무릎-손목 발목)를 정확히 지키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무성의하고 무기력해보였다. 그는 발목까지 두어 바퀴를 돌린 후 스타트 라인에 섰다. 그리곤 아주 우아한 자세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츠키시마는 아예 몸을 틀어 수영장 쪽을 보고 있었다. 소년은 오래도록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수영장 중간, 정확히 말하자면 중간보다 좀 더 간 지점에서 조용히 떠올랐다. 파하, 숨을 뱉은 후 능숙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츠키시마가 놀란 건, 그가 벽에 손을 짚기도 전에 턴 자세를 잡았다는 것이다. 몸을 웅크린 채 발을 반쯤 펼쳤을 때의 거리를 계산하고, 발바닥이 벽에 닿자마자 그대로 차고 튀어나갔다. 물살은 갑자기 바뀐 흐름을 견디지 못 하고 파도가 되어 출렁거렸다. 츠키시마의 발목 아래로 고인 물그림자가 마구 발등을 핥아댔다. 소년은 쉬지 않고 세 바퀴를 돌았고, 네 바퀴가 되어서도 흐트러짐 없는 속도를 유지했다. 풀장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순간 겨울 내내 야마구치를 보아온 츠키시마는 순간적으로 호흡을 무너뜨리고 수면 위로 헐떡이며 올라오는 장면을 떠올렸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년은 끝까지 그 페이스 그대로 완주해냈고, 서두르지 않고 수면 위로 천천히 솟구쳤다. 햇빛 아래에서 축축한 은색 머리카락이 윤기 있게 반짝였다. 물에 젖은 얇은 교복이 등판에 달라붙어 있었다. 하아, 하고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어깨가 한 번 들썩이더니, 곧 고개가 움직였다. 그제야 츠키시마는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본인은 걷고 있었으며 그저 지나가는 행인으로서 계속해서 복도를 걸어 나가야 하는 존재였음을 자각했다. 시선이 마주치기 전 츠키시마는 바닥을 보며 재빠르게 통유리로 된 복도를 지나쳤다. 어깨 너머로 시선이 따라오는 게 느껴졌지만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교문을 빠져나온 후에야 ‘수영부인가.’라고 겨우 질문해보았다. 하지만 타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전학생일까? 수영부 개편 소식을 듣고 온 교외 학생일 지도 모른다. 그럴 이유도 없었으면서 츠키시마는 괜히 바지에서 휴대폰을 꺼내 야마구치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야마, 구치, 넌, 정말로……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이유 없이 조금 후들거렸다. 변명거리를 찾지 못 해 불안해하는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2.

 츠키시마 아키테루가 국대 수영 선수를 배출한 고교 진학을 결심한 건 중학교 2학년 겨울 무렵이었다. 사실상 3학년이 되기도 전에 진학 사실을 결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주변에서 우려를 살 법도 한데, 아무도 그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주변인들은 그 해 여름 아키테루가 이룩한 눈부신 성과야말로 그의 전도유망한 미래에 대한 예고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부모는 아키테루를 위해 유명 수영부가 존재하는 현 내 고등학교를 물색한 장본인들이었다. 츠키시마 케이도 그의 형이 착실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의심하지 않고 지지했다. 하지만 막상 그가 아주 먼 곳, 신칸센으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했을 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더는 아키테루의 경기를 가까이서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섭섭함이 컸기 때문이고 아키테루가 기숙사 생활을 결정했으므로 방학 이외엔 그를 볼 수 없었다는 사실도 한몫 했다. 축하해, 형. 그렇게 말하는 츠키시마의 표정이 어지간히 서운해보였던 모양인지 아키테루도 조금 미안하단 표정을 지었다. 케이, 언제든 놀러와.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정말 츠키시마가 찾아올 거라 기대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아직 일 년이 남아 있으니까, 경기도 몇 번 더 할 테고. 그 땐 비디오를 들고 와. 조금 쑥스럽긴 하지만 녹화해두면 네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돌려볼 수 있잖아.”

 그래서 츠키시마는 그렇게 했다. 다음 해 중학교 3학년이 된 아키테루는 춘분 현내 수영대회에서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올렸다. 작년 하계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어 한 번의 예선조차 건너뛴 아키테루를 모두가 경계했다. 이름 없는 고등학교가 배출한―아키테루의 우승 이후 낙후된 교내 수영장 시설과 깨진 타일들은 종종 신문사의 화젯거리가 되어 지역 기사에 실렸다. 이후 재학 중학교는 수영장에 보수공사를 실시했다―천재 수영선수라는 이미지는 강렬했고 결코 추락하지 않았다. 아키테루는 그 해 팔월에 그러했듯 아름답고 완강하게 물속에서 유영하였다. 츠키시마는 언제나 경기장을 한 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고도가 조금 높은 곳에 지어진 객석에 앉아 아키테루의 환상적인 수영을 지켜보았다. 한 손에 비디오카메라를 든 채였지만 생각보다 촬영은 어려운 일이었다. 걸핏하면 화면은 조금씩 흔들리거나 각도가 어긋나거나 응원을 나온 다른 객석의 풍선 봉에 가려져 초점이 나가거나 했다. 집에 와서 돌려보면 초짜의 티가 팍팍 나는 경기용 촬영 비디오물이 완성되어 있었다. 한 가지 만큼은 프로다운 면이 있었는데, 츠키시마가 평정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흥분하는 기색 없이 자리에 침착하게 앉아 있었기 때문에 화면은 조금 흔들리기도, 각도가 기울어지기도, 흐릿해지기도 했지만 마구 뒤틀리는 법은 없었다. 아키테루가 반드시 일등으로 들어올 거라는 확신, 그리고 그 확신이 충족되었을 때의 안도감만이 화면 안에 미세한 떨림으로(그것은 순전히 한숨 때문이었다) 전달될 뿐이었다. 아키테루는 그 해 춘분 대회에서도 순조로운 성적을 냈고, 하계 대회를 쉬는 대신 감독의 영향 하에 계속해서 개인적인 연습을 해나갔다. 아키테루의 페이스가 흐트러지는 법은 없었다. 그 해 팔 월,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눈부시게 물살을 가르다 말고 급작 날카롭게 앞으로 나아갔던 그 순간이 다시 오는 일은 없었다. 츠키시마는 춘분 대회의 모든 경기에 참석해 비디오를 찍었지만, 화면 속 아키테루는 일정한 속도로 물살을 가로지를 뿐이었다. 그 마법 같은 순간이 다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츠키시마 케이는 안도했다. 둘은 여전히 사이좋은 형제였고 아키테루는 연습을 마치고 귀가한 밤이면 욕조에 츠키시마를 앉혀놓고 등을 씻겨 주었다. 츠키시마도 아키테루의 등을 씻겨 주었다. 넓고 판판한 등판에 거품이 부드럽게 벤 타올을 문지르며 손가락으로 위에서 중간까지 더듬어 보기도 했다. 승모근, 날개 뼈, 소원근, 견갑골……. 그런 후에 일상적인 대화를 했다. 형은 수영이 좋아? 응 좋아하는 것 같아. 그렇구나 괴롭지 않아서 다행이야. 가끔 아키테루는 낄낄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츠키시마의 등에 바싹 붙은 아키테루의 가슴이 마구 웅웅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키테루의 목소리 혹은 웃음소리는 언제나 가벼운 느낌으로 츠키시마의 척추를 두드렸다. 아키테루는 크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조근하고 다정하게 습윤한 욕실을 울리면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있잖아, 형. 나도… 형이 있는 중학교에 갈까 봐.”

 츠키시마가 중얼거렸을 때, 아키테루의 손이 축축한 그의 등을 쓸어주다 말고 잠시 멈추어 섰다.

 “너도 수영하려고?”

 “응…… 그렇지만 형처럼 되는 게 목표는 아니야.”

 츠키시마가 웅얼거렸다.

 “나는 그런 거 못 하니까…….”

 “무슨 소리야.”

 아키테루가 제법 엄격한 목소리를 냈다.

 “그런 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케이.”

 얼마 뒤 아키테루는 츠키시마를 데리고 동네에 있는 실내 수영장으로 갔다. 야마구치도 함께였다. 아키테루는 킥보드를 야마구치와 츠키시마의 손에 들려주곤 풀에 들어가 발차기 시범을 보였다. 야마구치는 물에 떠있는 게 힘든지 연거푸 가라앉았다가 바닥에서 콩 콩 튀어 올랐다. 츠키시마는 킥보드 손잡이 부분을 소극적으로 주물거리다가 구석으로 치워놓았다. 거추장스럽다는 느낌이 들었고 오로지 몸과 그것의 움직임으로만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츠키시마는 조심스럽게 손을 떼어내고 풀에 섰다. 몸은 생각처럼 붕 떠주지 않았다. 허우적거리며 중심을 잡을수록 무겁게 가라앉았다. 야마구치의 자세를 봐주고 있던 아키테루가 재빨리 다가와 츠키시마를 건져 올렸다.

 “케이, 힘을 빼봐.”

 의기소침한 츠키시마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두드리며, 아키테루가 덧붙였다.

 “내가 처음 물에 들어갔을 땐 더 꼴사나웠어.”

 츠키시마는 아키테루가 다시 야마구치를 봐주기 위해 수영장 중간까지 나아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손을 올려 아키테루가 두드렸던 뺨에 가져다 댔다가 곧 떼어냈다. 그리곤 다시 풀 안으로 내려와 몸을 움직여보았다. 나아지지 않았다. 가라앉던 몸이 일순 삐끗해 중심을 잃었다. 츠키시마는 눈을 감아버렸다. 둥실 떠오른 발끝이 빙그르르 돌았다. 흡, 숨이 절로 막혔다. 아키테루의 목소리가 떠오른 건 그때였다. 케이, 힘을 빼봐. 목소리는 아주 가까이 있었다. 아까 분명 바싹 붙어서 속삭였던 것 같았다. 귀에 달라붙은 상냥하고 온화하며 은근한 목소리. 척추를 두드리는 가벼운… 크게 말하는 법이 없는 아키테루. 츠키시마의 척추를 타고 찌르르 소름이 돋더니, 이내 항복한 것처럼 축 늘어졌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몸이 붕 떠올랐다. 축축한 물은 아까까지 갈퀴처럼 츠키시마의 발끝을 잡고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는데 일순 태도를 달리했다. 부드럽고 고요하게 츠키시마 케이의 몸을 감싸고 출렁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츠키시마는 기묘한 행복을 느꼈다. 발끝에서부터 오금이 저리고, 몸 한가운데를 아주 부드럽고 연약한 감각이 관통한 것 같은 감각이었다. 츠키시마는 언젠가 이런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그러니까 매일 밤 좁은 욕조에 몸을 욱여넣은 아키테루가 웃음을 터뜨리며 츠키시마의 등을 꼭 껴안을 때마다 느끼던 우애(友愛)와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또 그 감각은 최초의 최초로 거슬러 올라가 그 해 여름, 아키테루가 츠키시마를 향해 손을 흔들던 그 눈부신 순간을 끄집어 올렸다. 그 때, 왜 츠키시마는 불현 듯 아키테루를 바라볼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만 것일까?

 순간 모든 게 깜깜했던 공간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처럼 일순 주변의 공기와 질감이 뒤바뀌었다. 츠키시마가 기침을 하며 눈꺼풀을 열자 공포에 질린 야마구치의 얼굴이 보였다. 츠키시마가 눈을 깜빡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눈앞에 바싹 붙은 아키테루가 뚜렷해졌다.

 “케이, 괜찮아?”

 아키테루가 츠키시마를 흔들었다. 츠키시마가 몸을 움츠렸다.

 “괜찮아, 그냥 떠있었을 뿐이야.”

 “츳키,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어!”

 야마구치가 이를 딱딱거렸다.

 “막, 영화 속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처럼 등만 둥그렇게 떠있었다고!”

 “야마구치가 비명을 질러서 나도… 큰일 난 줄 알았어.”

 아키테루가 멋쩍게 웃으며 츠키시마를 물속에 내려놓았다. 츠키시마는 이제 허우적거리거나 콩콩 뛰지 않고도 물에 둥둥 떠 있었다. 아키테루는 감탄했다.

 “금방 하는 구나. 역시 내 동생은 대단해.”

 고작 물에 둥둥 떠있는 걸 성공한 것뿐이었는데. 유망주이자 수영 천재로 불리던 아키테루가 감흥에 차서 중얼거릴 만한 류의 것은 아니었는데. 그런데도 조금 기뻤다. 사실 아주 많이 기뻤다. 들뜬 츠키시마는 그 날 아키테루에게 자유형을 배웠다. 야마구치는 킥보드를 잡고 발차기를 하며 그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저녁 무렵엔 야마구치도 킥보드를 뗐지만, 숨을 고르지 못 해 곧잘 헉헉거렸다. 반면 츠키시마는 처음부터 호흡 따윈 문제도 아니었다는 듯 물속을 유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야마구치가 “역시 재능은 유전인 걸까.”라고 푸념하자, 츠키시마가 대답하기도 전에 아키테루가 먼저 “재능이 있다면 케이 쪽이 아닐까, 난 물에 익숙해지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거든. 난 재능이랄까, 그냥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몰라. 노력한 것의 성과일 지도.”라고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츠키시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키테루의 손을 힘주어 붙잡았다. 

 

 3.

 아, 스가와라 선배다! 그렇게 외치자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에 붙었다. 누군가 창문을 열어 바람이 마구 들어왔다. 펼쳐놓은 교과서 페이지가 마구 흩날리자 츠키시마는 얼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에 의자를 두고 거꾸로 앉아있던 야마구치가 재빨리 손을 뻗어 츠키시마가 펼쳐놓은 페이지에 자를 끼워두었다.

 “야마구치, 애쓰지 마.”

 츠키시마가 퉁명스럽게 내뱉자 야마구치는 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삼학년이 전학을 오는 건 드문 일이니까… 다들 신기한가 봐.”

 “그렇다고 아주 없는 일도 아니잖아.”

 바람이 세게 불어서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렸다. 츠키시마가 혀를 차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마구치는 허둥지둥 뒤따랐는데, 츠키시마가 창가에 가까이 다가섰을 땐 저도 모르게 팔을 덥석 붙잡았다. “창, 창문 닫으면 다들 기분 상하지 않을까?” “바보냐.” 츠키시마가 면박을 주었다. “그렇게 눈치 없진 않아.” 둘은 왁자한 아이들 틈에 서서 운동장을 내려다봤다. 점심시간마다 이학년 삼학년이 나와 공을 차거나 뒹굴었다. 축구부가 섞여 있기도 해서 지루하지 않았다. 운동장 한가운데를 빠르게 가로지르는 삼학년이 보였다. 공이 패스되자 발 옆에 능숙하게 붙인 채 골대 구역까지 뛰었다.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삼학년은 따라붙은 축구 부 이학년을 능숙하게 재치고 곧장 발을 쭉 뻗었다. 공은 골대 안으로 미끄러지듯 골인했다. 힘차고 강력한 슛은 아니었지만 걸릴 게 없는 깔끔하고 정확한 각도였다. 스가와라 선배! 누군가 이름을 부르자 삼학년이 고개를 돌려 츠키시마네 반 창가를 바라보았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손을 흔들며 웃었다. 무어라 말했지만 거리가 멀어서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스가와라는 츠키시마의 교실 쪽으로 말하는 게 아닐 지도 몰랐다. 그가 입가에 손을 가져다대자마자, “네에? 네? 뭐라고요?” 하고 아래쪽 층계에서도 아이들이 한 무더기로 빽빽거렸기 때문이다.

 “시끄럽네.”

 츠키시마가 중얼거렸지만 야마구치는 창가에 얼굴을 붙인 채 스가와라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금방 경기로 돌아가 아이들 틈에 섞여 운동장을 뛰었다. 야마구치의 시선이 반짝이는 은발을 쫓아 조금씩 이동했다. 야마구치가 불쑥 말했다. 

 “츳키, 있잖아. 스가와라 선배는 어쩐지 미움을 받아선 안 될 것 같아.”

 츠키시마는 스가와라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았지만 그런 건 잘 알 수 없었다. 

 “그런 게 어디 있냐.”

 “잘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든달까.”

 야마구치는 츠키시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어물어물, 그러나 확신에 찬 눈으로 말했다.

 “어쨌든 상냥하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라서. 그래서 그대로 돌려줘야 할 것만 같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야마구치가 스가와라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 학교의 모두가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상냥했다. 입학식이 있고 일주일 뒤 전학을 왔다는 소문의 삼학년은 잘생겼다기 보단 섬세하게 예뻤고, 그런 류의 외모는 또래 학생들이 가지기 흔치 않은 우아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상냥하고 누구에게나 쉽게 말을 걸었으며 또 쉽게 받아주었다. 맡은 일을 척척 해내고 교사들과도 완만했다. 스가와라 선배, 스가와라 선배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츠키시마는 무심한 눈으로 운동장의 은빛 점을 쫓았다. 한 번 더 골을 넣어서 아이들이 꺅꺅거렸다. 이번엔 야마구치도 오, 하고 작게 탄성을 내지르며 기쁜 듯 주먹을 쥐었다. 츠키시마는 정말 바보 같아, 하고 생각했다.

 

 4.

 「츳키, 후회하지 않을 결정하기 o(≧▽≦)o」 

 「야마구치 너는 정말로 끈질기구나.」 

 

 5.

 그 날도 혼자 귀가했다. 야마구치는 부 활동이 시작한 수영장을 보고 싶다며 헐레벌떡 가방을 챙겨 나갔다. 츠키시마는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2층 복도에서 멈춰 섰다. 통유리 너머로 수영장 물이 마구 출렁이고 있었다. 여섯 줄에 각각 한 명씩 들어가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야마구치는 스탠드에 앉아 타이머를 쥐고 있었다. 수영부 활동이 시작된 수영장은 일사분란 했고 사람이 많았다. 물은 잠시도 잔잔하지 못 하고 끊임없이 물방울을 튀기며 이리저리 흔들렸다. 물그림자가 바닥에 넘실거렸다. 츠키시마는 눈으로 은발머리의, 그 날의 뒤통수를 찾았다. 그러니까… 스가와라 코우시를. 그 날의 스가와라 코우시를 찾았지만 그는 없었다. 어쩌면 오늘 오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볼 만한 광경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설령 있었다고 해도 스가와라는 수영복을 입고 있었을 것이고, 교복을 입었더라도 그 날의 교복은 아니니까. 츠키시마는 느릿느릿 복도를 가로질러 층계를 따라 내려갔다. 

 하지만 스가와라는 교문 뒤편에 있었다. 츠키시마는 제법 놀랐는데, 더 놀란 건 스가와라 쪽인 것 같았다. 그는 화들짝 놀라 화단에 무언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츠키시마가 고개를 숙이자 손사래를 쳤다.

 “아, 괜찮아 괜찮아. 내가 주울게.”

 하지만 츠키시마의 팔이 더 길었고 스가와라가 허리를 숙이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수국 가지 사이에 떨어진 것을 주워들었다. 그게 무엇인지 깨달았을 땐 츠키시마 쪽이 오히려 좀 당황했다. 스가와라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고마워, 하고 그의 손에서 담배 갑을 받아들었다. 츠키시마는 스가와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담배 때문에 화들짝 놀란 것이라 생각했는데 들키자마자 뻔뻔해지는 게 이상했다. 스가와라는 가방 안에 담배 갑을 쑤셔 넣곤 츠키시마 쪽을 보며 씨익 웃었다.

 “갈까?”

 둘은 버스정류장까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력으로 걸었다. 교문을 나서자 해안도로, 그리고 옆으로 난 보행자 길이 펼쳐졌다. 푹신푹신한 고무바닥을 걸으며 스가와라가 먼저 이것저것 물었다.

 “이름이 뭐야?”

 알 거 없잖아요, 라고 대답하려다가 순순히 말했다.

 “츠키시마 케이(月島 蛍)요.”

 “아, 츠키시마인가. 달인가, 역시 그렇네.”

 딱히 대꾸할 만한 감탄사는 아니라서 츠키시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둘 옆으로 버스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갔다. 도로는 한산했고 가드레일 너머론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다. 잠시 후, 스가와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집은 여기서 가까워?”

 “여기서 세 정거장 정도…….”

 “아, 가깝구나. 가깝네, 응.”

 스가와라는 츠키시마가 들고 있는 새 가방에 흘끗 시선을 주었다.

 “일학년?”

 “예에, 뭐.”

 “일찍 하교하네.”

 “그런가요.”

 “츠키시마는 부 활동 같은 거 안 하는 걸까~”

 “저기.”

 츠키시마가 멈춰 섰다. 앞서나가던 스가와라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츠키시마가 말했다.

 “말 안 할 테니까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요.”

 바람이 불어 두 사람의 머리가 부드럽게 흩날렸다. 스가와라가 잠시 눈을 크게 떴는데, 아주 한순간이었기 때문에 츠키시마는 순간 헛것을 본 건 아닐까 생각했다. 잠시 뒤 스가와라가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 그런가.”

 아까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상큼하다거나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아까 같았지만 분명 조금은 달랐다. 츠키시마가 다시 앞으로 걸어가려고 하는데, 츠키시마, 있잖아, 하고 스가와라가 재차 말을 꺼냈다.

 “수업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를 보고 있었지?”

 츠키시마가 멈추어 섰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그렇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이제 무언가 ‘발각’되었고 ‘포착한 순간’을 ‘쥐고 흔드는’건 츠키시마의 영역만이 아니게 됐다. 스가와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있지, 츠키시마.

 “나 교복 입은 채로 수영한 것도 비밀로 해줄래?”

 “…….”

 “그냥 그 말이 하고 싶어서. 별 말 하려던 건 아니었어.”

 그리고 그는 다시 앞서서 걸어갔다. 츠키시마가 얼빠진 표정으로 그 등을 바라보았다. 비밀로 지켜달라고 말한다는 건 구라 뻥이고, 그러니까 방금 저 선배는 순전 날강도처럼 협박한 것이다. 분명 그런 의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츠키시마가 엉거주춤 서있기만 하자, 스가와라가 앞서 가다 말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츠키시마, 가자. 버스 오겠다.”

 그리고 다시 예의 그 상큼한 웃음이다. 츠키시마는 스가와라의 웃음 속에서 일종의 배설감과 후련함을 읽어냈고 완전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됐다.

 ‘와. 성격 나빠…….’

 야마구치에게 이 일에 대해 말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스가와라의 뒤를 쫓아가면서 츠키시마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정말 말할 생각은 아니었다. 스가와라를 대화의 바운더리에 넣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뭔가, 스가와라가 ‘상큼하고 멋진 3학년의 그 선배’로만 축약되는 것 같았고 성격이 나쁘다던가, 수영을 했다던가 하는 일은 어딘가로 소실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둘은 그 날 같은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츠키시마가 먼저 내렸다.

 

 6.

 츠키시마가 촬영할 수 있던 아키테루의 경기는 3학년 춘분 현내 대회가 마지막이었다. 하계 대회를 건너뛴 아키테루는 개인 실적을 올리는데 매진하였고 겨울 무렵 현 대회보다 큰 규모의 시합에서 금상을 탔다. 토너먼트가 아닌 단일 경기였고 경기장이 너무 멀어서 츠키시마는 찾아갈 수가 없었다. 신칸센으로 두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에서 열린 시합이었는데, 아키테루가 굳이 그곳까지 찾아간 것은 순전 고교 스포츠 장학생 입학을 위해서였다. 수업시간이 겹쳐 경기를 보진 못 했지만 츠키시마는 하교 후 시간을 맞춰 아키테루를 역까지 마중 나갔다. 아키테루는 물기가 조금 남은 부슬부슬한 머리카락을 문지르다 말고 츠키시마를 보자 두 팔을 벌렸다. 츠키시마가 안겼다. 

 “케이, 너 키가 컸구나.”

 품에서 츠키시마가 떨어지자, 아키테루가 새삼 말했다. 츠키시마는 해실거리며 웃었다.

 “일등 했어?”

 “당연하지.”

 둘은 저녁노을을 등지고 역을 빠져나와 계속해서 걸었다. 겨울의 해는 빨리 졌기 때문에 노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길은 금세 깜깜해졌다. 도로를 지나 집으로 향하는 동안 추수가 끝나 텅 빈 논두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평선으로 땅거미가 사라질 무렵 츠키시마는 아득히 먼 곳에서 깜빡이는 붉은 점을 보았다. 

 “형, 저게 뭘까?”

 아키테루는 츠키시마가 가리킨 지점에서 깜빡거리고 있는 붉은 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글쎄, 아마 송전탑에서 오는 걸 거야. 왜 빛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과연 그렇구나. 츠키시마는 빠르게 납득했다. 까만 산등성이 위로 듬성듬성 세워진 철제 송전탑은 아오모리 현에 아주 많았고, 빨간 불빛은 그들 중 하나가 전송하는 신호인 것이다. 전기를 잘 운송하고 있다. 당신들의 마을을 밝혀줄 전기가 내 몸을 관통하고 있다. 츠키시마는 궁금해졌다.

 “저기 가보고 싶다. 가까이서 보고 싶어.”

 “그럴래?”

 둘은 방향을 꺾어 산등성이 쪽으로 나아갔다. 논두렁이 넓어졌고 외곽 도로에 드문드문 세워진 가로등이 깜빡이다가 팡 하고 빛을 내며 켜졌다. 길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불빛은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귀뚜라미조차 울지 않는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둘은 그 침묵에 맞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시합 이야기, 수영하며 나아가는 순간에 대한 것, 야마구치, 엄격한 감독, 진학할 고교의 현대적이고 전문적인 시설들…… 문득 아키테루가 시간을 보곤 뒤를 돌아 지나온 길을 확인했다. 제법 많이 걸어왔음에도 둘은 송전탑 실루엣조차 보지 못 한 상태였다.

 “케이, 너무 늦었다.”

 아키테루가 메일 알림이 뜬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저녁 밥 다 됐대. 너무 기다리시기 전에 돌아가자.”

 츠키시마는 순순히 그 말에 따랐지만 돌아오는 동안 흘끔거리며 깜빡이는 빨간 불빛을 두어 번 정도 돌아보았다. 종국엔 아키테루가 달래듯이 약속했다.

 “다음에는 꼭 저기 가보는 거야.”

 하지만 그 말투는 언젠가 케이, 언제든 놀러와, 의 그것과 꼭 닮아 있었다. ‘가자고 한다면 가겠지만 당장의 일은 아니야.’라는 것처럼. 츠키시마는 그것이 조금 서글펐던 것 같다.

 

 7.

 스가와라는 예상치 못 한 곳에서 나타났다. 1학년 교실의 뒤편, 연식 야구장과 맞은편엔 야트막한 화단이 있었다. 올해부터 경식으로 바뀐 야구부가 경기장 보강 공사가 끝날 때까지 현 내에 있는 체육관 야구장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 다른 이유가 없으면 그곳에서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츠키시마가 화단까지 화분을 옮겨달라는 번거로운 부탁을 받아들인 건 순전 그런 이유 탓이었는데, 그곳에 스가와라가 있던 것이다.

 “아, 또 마주쳤네.”

 “아…….”

 츠키시마의 떨떠름한 반응에도 스가와라는 크게 놀라는 기색 없이 어깨를 으쓱하곤 말았다. 그리곤 츠키시마의 품에 들린 화분을 턱짓으로 까딱였다.

 “뭐야?”

 “화분이요…….”

 “그거 물어본 거 아니란 거 알잖아.”

 심술부리지마, 라는 말투였으므로 츠키시마는 잠시 한숨을 쉬며 인상을 찡그리다가 대답했다.

 “1학년 B반 교사의 심부름이요.”

 “음, 그러니까 츠키시마는 1학년 B반이라는 거지?”

 스가와라가 웃었다.

 “츠키시마는 담임을 담임(擔任)이라 말하지 않는구나.”

 “별로, 담임이라고 아주 안 하는 것도 아니에요.”

 츠키시마가 대꾸하곤 화분을 내려놓은 후 긴 다리를 접어 쭈그리고 앉았다. 스가와라는 음, 하고 즐거운 기색이었다.

 “숨기고 싶었는데 단박에 알아차려서 싫구나?”

 “그렇게 말한 적 없어요.”

 “츠키시마는 얼굴에서 티가 나니까.”

 츠키시마가 삽을 주워들다 말고 흙더미 속으로 푹 꽂아 넣었다. 스가와라를 올려다보자 시선이 마주쳤다. 스가와라는 피하지 않았고 그 이상 웃지도 않았다.

 “지금 나 귀여워하는 거야.”

 웃기고 있네! 순전 화풀이면서. 츠키시마 케이는 실수를 했다. 그 날 그렇게 말해선 안 되는 거였다. 한순간이었지만 츠키시마는 스가와라가 수비하는 선을 넘었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요”라는 말은 애쓰고 있는 스가와라의 장막을 걷어내고 그를 전면 앞으로 내보냄으로서 치부를 노출시킨 꼴이 됐다. 사실 츠키시마는 그게 치부인지 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스가와라는 명백히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기.”

 츠키시마가 먼저 화단 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다시 삽을 주워들었다. 푹 푹 흙을 쑤시며 말했다.

 “제가…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요?”

 어쩐지 그 말을 하는 동안 스가와라의 표정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츠키시마는 애꿎은 흙을 떠서 한쪽으로 꾹 꾹 눌러 담았다. 스가와라는 평소보다 더 오래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 틈이 ‘정적’으로 인식되기 직전 다시 입을 열었다.

 “담배 피워도 되지?”

 화분에서 자갈을 떠내던 츠키시마의 손이 멈칫했다.

 “피운다, 츠키시마. 망 좀 봐줘. 응?”

 아, 이 사람 피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추격하고 싶진 않았다. 츠키시마는 모종삽으로 흙을 통째로 떠내서 화분에 있는 식물을 구덩이 안으로 흘려보냈다.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라이터 부싯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머리 위로 연기 냄새가 났다. 츠키시마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스가와라는 정말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들키면 저도 혼나요.”

 “들킬 일이 없잖아.”

 스가와라가 연기를 뱉으며 입 꼬리를 올렸다.

 “여긴 사람이 오지 않으니까. 별관이고, 옆은 공사 중이고.”

 “…….”

 아까는 망을 봐달라고 했으면서. 츠키시마가 대답하지 않자 스가와라 쪽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상큼한 얼굴을 했다.

 “너도 그래서 온 거 아니야? 번거롭게 식물까지 데리고.”

 스가와라가 츠키시마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츠키시마는 순간 불쾌함을 느꼈다. 원초적인 부분을 공격받은 기분이고, 웅크린 채 덮고 있던 이불을 예고 없이 열어젖혀진 기분이고, 잘 싸맨 보자기를 통째로 쥐어뜯긴 기분이다. 하지만 고의는 아니었다. 츠키시마는 스가와라의 선을 넘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스가와라는 명백히 고의였지만 츠키시마는 이런 전개를 원하지 않았다. 수습하고 싶었지만 방도를 몰라서 억울해졌다.

 “스가와라 선배.”

 “응.”

 스가와라는 츠키시마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런 일이 많았으니까. 낯선 학생들이 스가와라 선배 혹은 스가와라, 라고 부르고, 그리고 몇 가지 인사와 동경을 나눈 후 들뜬 표정으로 떠나간다. 그러니까 스가와라에게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 사람들. 먼발치에서 구경하고 와아, 박수를 치다 떠나갈 아주 먼 세계의 구성원들. 츠키시마 케이는 그 세계의 가장 바깥쪽에 있었고 심지어 스가와라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스가와라가 아주 좋아하는 부류에 속한다. 하지만 첫 대면이 고약했다. 츠키시마는 사실 세계 가장 바깥쪽을 걷는 게 아닐 지도 모른다.

 “츠키시마, 불렀으면 말을 해.”

 “……아니에요.”

 츠키시마는 화분 옮기는 것을 끝내고 천천히 일어났다. 흙먼지가 회색 교복 바지에서 뿌옇게 떨어졌다.

 “담배 같은 거, 왜 하는 건가요?”

 뜬금없는 질문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물어보고 싶었다. 츠키시마가 스가와라의 얼굴을 살폈다. 스가와라는 금방 눈치 채고 웃음으로 덮었다. 젠장. 츠키시마는 치밀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동족혐오.

 “그런 게 궁금했어?”

 마치 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투였다. 연기가 자욱해질수록 색채가 희박한 스가와라의 모습이 햇살 속에서 점차 흐려졌다. 담배를 피우는 스가와라는 명확한 색채와 대비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홀로 투명도 낮은 수채화로 그려진 것 같다. 사라지기 위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을까? 츠키시마는 문득 생각했다. 그렇다면 스가와라 선배는, 어쩐지 잘 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서서히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몸에 좋지 않잖아요.”

 “걱정해주는 거야?”

 “선배 그런 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헤에,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선배는…….”

 츠키시마는 스가와라가 벽에 손을 짚기도 전에 턴 자세를 잡았던 순간, 몸을 웅크린 채 발을 반쯤 펼쳤을 때의 거리를 계산하고 발바닥이 벽에 닿자마자 그대로 차고 튀어나간 그 순간을 떠올렸다.

 “수영부… 잖아요.”

 잠깐 정적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스가와라가 몹시 즐거운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것처럼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반응을 이해하지 못 한 츠키시마가 머뭇거렸다. 스가와라는 손등으로 성마른 이마를 닦으며 나머지 한 손으로 반쯤 태운 담배를 등지고 있는 건물 위로 지졌다. 바람이 불어 응축되어 있던 하얀 연기가 날아갔다.

 “아하하… 츠키시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츠키시마가 떨떠름하게 되물었다.

 “아닌가요?”

 “아닌데.”

 스가와라는 힘 빠진 웃음소리를 몇 번이고 더 싱겁게 뱉어냈다가 그만두었다.

 “그럼 축구부인가요?”

 “아니!”

 “배구부?”

 “우리 학교에 배구부가 있었나?”

 “테니스부?”

 “땡.”

 “배드민턴부?”

 “츠키시마.”

 스가와라가 말했다.

 “난 귀가부(歸家部)야.”

 츠키시마의 뒤통수가 다시 한 번 얼얼해졌다.

 “예?”

 “너랑 같아.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부 활동 없이.” 

 스가와라는 대수롭지 않은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굴었다. 그리곤 발치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몇 번 실내화로 꾹 눌러 밟은 후 화단을 넘어서 무성히 사라기 시작한 수국의 줄기 아래로 굴려버렸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

 “그야…….”

 당신은 어떻게 자신의 몸을 다뤄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라고 말한다면 변태로 낙인찍힐 것이다. 운동부만 골라 물어본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일단 명제자체부터 맘에 들지 않았지만 만약)스가와라가 수영부가 아니라면, 그는 몸을 쓰는 다른 부에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츠키시마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종이 쳤다.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이며 운동장 쪽을 돌아보았다.

 “아차, 까먹고 있었네.”

 스가와라가 낭패란 표정을 지었다.

 “오늘 시합에 내 이름도 있었을 텐데.”

 “큰일 난 거 아닌가요.”

 츠키시마는 조금 비꼬았다.

 “평판에 문제가 생길 지도.”

 “츠키시마는 그런 거 신경 쓰는 타입이야?”

 이번에도 스가와라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츠키시마는 조금 비꼬려 했던 꼭 그만큼의 수치심을 느꼈다.

 “아니…….”

 “난 아무렴 상관없어.”

 스가와라가 대답했다.

 “…아마도.”

 그런 후 대답도 듣지 않고 화단을 빠져나갔다.

 남겨진 츠키시마가 허리를 굽혀 그가 버린 꽁초를 주워들었다. 아마도, 라니……. 츠키시마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스가와라는 중앙 현관에 도달해 있었다. 멀어져가는 스가와라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중얼거렸다. …아마도. 그건 돌이켜보면 아주 이상한 대답이었다.

 

 신발장에 낯익고도 낯선 신발 한 쌍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츠키시마는 부리나케 운동화를 벗어던지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형.”

 “케이. 왔어?”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움직이던 아키테루가 고개를 돌렸다. 츠키시마의 안면근육이 흐물흐물해졌다. 식탁엔 돈까스와 양배추 샐러드가 얹어져 있고, 거실엔 TV가 켜져 있었다. 그 말은 즉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있을 것이고 어머니는 2층에서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키테루의 귀가는 이런 식으로 가족들을 불러 모으게 했다. 아키테루의 고교 시절, 그가 방학 동안의 연습 기간을 마치고 귀가하는 날이면 온 가족이 집에 모였다. 아버지는 일찍 퇴근하고 어머니는 음식을 만들었다. 아버지가 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어머니가 직접 아키테루가 좋아하는 것들을 튀겼다. 츠키시마도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곧장 집으로 왔다. 온 가족이 그랬다. 고작 일주일 동안인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고작 일주일이었기에 모두가 아득바득 집에 모였던 걸지도 모른다. 아키테루가 대학에 간 이후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고교 때보다 드문 일이 되었지만 현관문 앞에 그 낯설고도 낯익은―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그가 매번 새 운동화를 신었기 때문이다, 보지 못 한 신발의 익숙한 사이즈를 마주하는 건 늘 낯설고도 낯익은 일이었다―신발 한 쌍이 놓인 순간 가족들은 집으로 들어와 각자의 할 일을 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각자의 포지션을 지키며 집에서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다 집안 어딘가에 머물고 있는 아키테루를 마주치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몸은 좀 어때?” 

 츠키시마가 입을 흐물거리며 물었다.

 “형, 몸은 좀 어때?”

 “나야 늘 좋지.”

 아키테루가 쾌청하게 웃으며 맞은편 의자를 발로 밀어냈다.

 “케이, 밥 안 먹었지? 같이 저녁 먹자. 네 몫도 있어.”

 츠키시마는 접시를 덮어놓은 밥과 여분의 돈까스를 들고 아키테루가 밀어놓은 의자에 앉았다. 아키테루는 빠르게 먹었고 츠키시마는 느리게 먹었다. 학교는 좀 어때? 야마구치는? 너도 몸은 괜찮아? 아키테루가 물으면 츠키시마는 모든 질문에 그럭저럭이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것 외엔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수영은 좀 어때?”

 아키테루가 그렇게 물었을 때, 츠키시마는 잠깐 젓가락질을 멈췄다.

 “그냥…….”

 츠키시마가 반찬을 내려다보았다.

 “그럭저럭이야.”

 “그래도 계속하고 있구나, 다행이다.”

 츠키시마는 대꾸 없어 밥알을 마구 씹어서 조금씩 삼켰다. 아키테루가 들뜬 목소리로 몇 가지 일들에 대해 말했다. 국대와 선수촌, 선수단 스카우트 제의와 자퇴 고민에 대한 것이다. 고교 동창이 최근 모교에 돌아가 감독을 뛴다는 이야기를 할 땐 새삼스럽다는 말투를 했다.

 “그 녀석, 선생이라던가 감독 같은 일은 질색했던 주제에 잘도 돌아갔단 말이야.”

 “사실은 그런 일 좋아했던 게 아닐까.”

 “진심으로 질색했었다니까?”

 “잘 숨기는 사람이었나 봐.”

 츠키시마가 말했다.

 “아니면 정말로 마음이 바뀌었거나.”

 “그럴 지도.”

 아키테루가 웃었다.

 “어쨌든 깜짝 놀랐어. 벌써 3년째라는 소릴 들었을 땐 와 장난 아니잖아, 라고 생각했다니까. 천재가 있냐고 물어봤거니, 올해 대단한 녀석이 들어왔다고 하더라. 재능도 있는데 의욕도 있다고.”

 “헤에.”

 츠키시마는 감흥 없이, 그러나 아키테루의 이야기가 지루해서는 아니라는 것처럼 그렇게 감탄했다.

 “형의 화신 같은 건가.”

 “케이도 참, 난 천재가 아니었다니까.”

 아키테루가 민망한 듯 웃었다.

 “여하튼 레귤러 멤버였던 삼학년이 별 불만도 없이 자릴 내줄 정도였다고 하더라. 그 소릴 듣는데 내 학창시절이 떠올랐어. 나도 삼학년 때, 대단한 녀석이 한 학년 아래에 있어서 바로 팀에서 나오겠다고 했거든.”

 “형은… 국대 준비 때문에 그런 거였잖아.”

 아키테루의 말투가 꼭 도망쳐 나왔다는 것처럼 들려서 츠키시마가 변호했다.

 “대학도 있었고, 입시 준비도 해야 했고.”

 “뭐, 그것도 있었지.”

 아키테루는 부정하지 않았지만 완전히 긍정하지도 않았다.

 “압박감도 있었고 피곤하기도 했어. 어쨌든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재능이라던가 천재성이라던가 그런 걸로 경쟁하고 싶진 않았거든. 무엇보다 좋아하는 걸 싫어하게 될까 봐 무서웠어.”

 츠키시마는 말문이 막혔다. 좋아하는 걸 싫어하게 될까 봐. 이번에 츠키시마는 아무 것도 변호해줄 수 없었다.

 “뭐, 여하튼 지난 일이니까.”

 아키테루는 돈까스를 털어 넣고 우물거렸다.

 “밥 다 먹고 수영장 보러 갈래?”

 

 버스를 타고 30여분을 가자 시가지와 넓은 현립 실내 체육관이 나왔다. 두 정거장 앞이 아쿠아리움이라 아이들이 우르르 탔다가 우르르 내렸다. 둘은 정류장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 나갔다. 현립 체육관 근처엔 넓은 잔디장이 있었고 봄의 햇살을 즐기며 뒹굴거나 앉아 있는 사람이 많았다. 아키테루와 츠키시마는 분수대와 유리문을 지나쳐 지하로 내려갔다. 수영장은 아주 넓고 깨끗했다. 100m와 500m 풀장이 둘로 나뉘어 있고 양쪽마다 스탠드가 비치되어 있었다. 아키테루와 츠키시마는 수영복을 가져오지 않았으므로 그저 2층 유리 너머로 그 거대한 공간을 지켜보기만 했다. 둘은 정말 수영장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풀의 시작점에서 도착점으로, 그리고 다시 도착점에서 시작점으로 수영하는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아키테루가 말했다.

 “케이, 나 여름방학엔 집에 올 거야.”

 츠키시마가 고개를 돌려 아키테루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대학 문제도 결정하고, 네가 방학인 동안엔 같이 여기서 수영이나 해볼까하고.”

 아키테루가 고개를 돌려 츠키시마와 눈을 마주치곤 씩 입 꼬리를 올렸다.

 “어때?”

 츠키시마는 달리 어떤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모르면서도 대답했다.

 “그럭저럭…….”

 아니,

 “좋아.”

 “좋다니 다행이다. 부담 주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아키테루가 한숨을 쉬며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부담을 준다는 건 무슨 뜻일까. 만약 츠키시마가 아키테루를 만나기 위해 방학을 쓰게 된다면 반대로 아키테루는 부담스러워 한다는 뜻일까. 거기까지 닿자 츠키시마는 의식적으로 생각을 털어내며 안경테를 매만졌다.

 “방학 때 저녁은 꼭 시간 비워놓을게.”

 아키테루는 대답 대신 츠키시마의 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주무르다가 놓았다.

 지하를 빠져나왔을 땐 햇살이 좀 더 기울어져 있었다. 체육관을 빠져나오던 아키테루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멈추어 섰다. 츠키시마도 반사적으로 아키테루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틀었다. 한 무리의 고등학생을 이끌고 얇은 점퍼를 걸친 청년이 물끄러미 둘을 보고 있었다. 뭐지? 츠키시마가 얼굴을 찡그리는데 아키테루가 먼저 번쩍 손을 들었다.

 “에이토!”

 “아키테루, 역시 너구나.”

 반색을 하며 청년이 다가왔다. 아키테루가 품을 벌려 다정하게 포옹했다. 츠키시마는 경계심을 느꼈다. 아키테루의 어깨를 토닥이던 청년의 시선이 츠키시마에게 닿았다.

 “아, 동생?”

 “응, 케이야.”

 “소문의 츠키시마 동생이구나.”

 잔뜩 날 선 얼굴의 츠키시마를 본 아키테루가 잠깐 묘한 얼굴을 하다가 이내 소개했다.

 “케이, 이쪽은 에이토.”

 “안녕, 아키테루 동생.”

 “미나모토 고교 수영부 감독이야.”

 츠키시마가 흘끗 아키테루의 눈치를 보았다.

 “아까 말했던 그 친구?”

 “응, 그 친구.”

 “뭐야, 아키테루 너 내 이야기 했냐!”

 에이토가 웃음을 터뜨리며 아키테루의 어깨를 치자, 아키테루가 낄낄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순간 츠키시마는 혼자 동떨어진 공간에 버려진 기분을 받았다. 츠키시마는 엉거주춤 서서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별 이야긴 아니었어요.”

 “하긴, 내 이야기는 별 게 아닌 것뿐이지.”

 에이토의 연한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오소소 부서졌다. 그림자 아래에서 그의 저지는 진한 청색으로 보였다. 흰 자수로 미나모토 고교 수영부라고 박혀 있었다. 츠키시마가 그것을 빤히 바라보는 동안 두 사람은 마저 이야기를 나눴다.

 “여긴 어쩐 일이야? 아오모리 현은 아니잖아.”

 “이쪽에서 시합이 있었어. 열차 출발이 저녁이라 그 때까지 현립 수영장 좀 사용할까 하고.”

 “아, 그럼 오늘 그 학생도 온 거야?”

 “누구?”

 “있잖아, 그 천재의…….”

 “아, 토비오? 왔지. 맨 뒤에 있어. 나중에 소개시켜줄까?”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됐어. 뭘 그렇게까지.”

 “쑥스럼 타는 거냐.”

 “아니거든?”

 아키테루가 에이토의 엉덩이를 슬쩍 걷어찼다. 에이토는 낄낄거리며 물러났다.

 “아무튼 다음에 보자. 아키테루, 나중에 술 한 잔 할래?”

 “감독, 몸 안 챙길 거야?”

 “인마, 감독은 수영 안 하거든.”

 둘이 끝까지 티격태격 하는 동안, 츠키시마는 시선을 옮겨 체육관 앞에 깔린 넓은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나무 그늘 아래마다 돗자리가 깔려 있고, 사람들은 어디서든 뒹굴고 있었다. 분수대 물줄기로부터 끊임없이 햇볕이 부서져 반짝였다. 물보라와 희미한 무지개가 걸쳐져 있고, 그 너머로 순간 익숙한 뒤통수가 보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츠키시마가 눈을 가늘게 뜨다 말고 휘둥그렇게 떴다. 둥그스름한 은발이 체육관 근처 쪽을 서성이다 말고 조용히 뒤를 돌았다. 그리곤 가로수길 쪽으로 사라졌다. 츠키시마가 시선을 뗄 줄 모르고 멍하니 분수대 너머의 공간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하고 쳤다. 고개를 돌려 노려보니 에이토가 상쾌하게 웃으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키테루의 동생! 케이라고 했나? 다음에 보자.”

 “아……, 네.”

 츠키시마는 손바닥으로 어깨를 문지르다가, 아키테루가 ‘좀 더 예의를 차려줘 케이’라는 눈으로 바라보자 건성으로 고개를 숙였다. 에이토는 그 성의 없는 인사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에이토, 다음에 연락해.”

 “그럴게, 건강해라.”

 에이토가 가볍게 손 인사를 한 후 그들을 지나쳤다. 뒤따라 미나모토 고교 수영부 학생들이 이동했다. 남색 바지에 와이셔츠를 입고 스포츠 크로스백을 메고 있었다. 옛날 생각나네, 하고 아키테루가 작게 웃었다. 줄의 맨 끝에 섰던 소년이 츠키시마와 눈이 마주치자 어깨를 으쓱이며 짧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ちわっす[치와―ㅅ])”

 돌아오는 길에 아키테루는 아까의 그 학생이 일전에 말한 천재 1학년이라고 말해주었다. 이름 분명 들었는데도 잘 기억이 안 나네. 아키테루는 제법 미안하단 얼굴을 했지만 츠키시마는 별로 미안해 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버스 창가에 턱을 괸 채 헤드폰을 쓰자 음악이 물 밀 듯 밀려들어왔다. 따갑고 휘청거리는 것들이 생각났다. 귓가를 꽝꽝 때리는 날선 리듬 속에서 왜 갑자기 분수대가 흩어놓고 있는 빛의 파편들을(정확히는 그 너머에 있던 누군가를) 떠올렸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츠키시마는 눈을 감았다. 출렁이는 버스 좌석의 각진 움직임은 물속의 곡선형 충격과는 달리 몹시 시끄럽고 정갈하지 않게 느껴졌다. 멀미가 나서 음악을 껐다.

 

 8.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초여름이 시작됐다. 스가와라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츠키시마는 성적표를 책가방에 접어 넣다 말고 그것의 절반을 들었고, 나머지 절반은 야마구치가 말해주었다. 나쁜 소문도 있었고 좋은 소문도 있었지만 대체로 후자였고 어느 쪽이든 융성하고 무수했다.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공통점이 스가와라를 더욱 신비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스가와라 선배는 자기 이야긴 도통 꺼내지 않는다고 하더라.”

 점심시간이면 이따금 스가와라가 운동장에 나와 공을 찼다. 학기 초보단 빈도가 줄었지만 어쨌든 그는 축구부와의 시합에서 종종 어필할 수 있는 용병인 모양이었다. 아이들 역시 학기 초에 비하면 창가에 달라붙지 않았지만, 종종 몇 명은 나와서 구경을 했고 야마구치도 그 중 하나였다. 점심시간마다 츠키시마의 반으로 들어와 창가에 붙어 스가와라의 이야기를 했다. 베일에 감싸인 스가와라. 형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스가와라. 옆 학교에 여자친구가 있는 것 같다는 스가와라. 애인이 있냐 물어봐도 모호하게 웃기만 하는 스가와라. 누군가는 폐가 촌 근처 가게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스가와라를 봤다고 진술했고 누군가는 스가와라가 타 학교 3학년과 교제 중이라고 주장했지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창가에 붙은 야마구치가 떠드는 동안 츠키시마는 딱히 스가와라를 보고 싶지 않은데도 하는 수 없이 옆에 서서 운동장을 보는 처지가 됐다.

 “그러니까 다들 궁금해서 물어보곤 하는데 묘하게 질문을 잘 피해간다고 하더라고.”

 야마구치의 시선이 운동장의 점들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 다녔다.

 “동생이나 형이나… 여하튼 가족 이야기도 그렇고, 전 학교 이야기도 그렇고. 그리고 스가와라 선배는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붕 떠있는 것 같달까? 뭐랄까…… 약간 츳키가 수영장 한 바퀴를 빙 돌고 난 이후에 이따금 멍한 표정을 하잖아? 그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런 표정 지은 적 없는데.”

 츠키시마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야마구치가 조금 억울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츳키, 자기 표정을 자기가 어떻게 알아? 너무 당당한 거 아냐?”

 “애초에 그게 무슨 느낌인데. 예시가 너무 추상적이잖아.”

 “음, 그러니까…….”

 야마구치가 애썼다.

 “약간,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잘 됐네.”

 츠키시마가 운동장을 뛰는 은색 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저 사람은 그런 거 좋아해.”

 슬쩍 덧붙였다.

 “아마도.”

 말하고 보니 이상하게 심통이 난 아이처럼 들려 뜨끔했다. 야마구치의 눈치를 봤지만 야마구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이런 쪽으로 예민할 수 있는 츠키시마가 이따금 필요 이상으로 둔함에 집중한다는 것은 문득 그를 바보같이 만드는 것이다. 츠키시마는 곧 야마구치에게 흥미를 잃고 무의미하게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은색 점은 골대 주변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질문해봤다. 스가와라는 축구를 하지 않는 날엔 무엇을 할까? 어디에서 담배를 피울까? 다른 곳을 찾았을까? 그 뒤에도 츠키시마는 화분 심부름을 받고 화단으로 나가야 할 일이 몇 번 더 있었지만 스가와라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스가와라의 것인지 확실치 않은 담배꽁초가 이틀에 한 번 꼴로 늘어나 수국 아래를 굴러다녔다. 츠키시마는 그것을 주워서 버리기도 하고 근처에 파묻어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런 일들을 그만두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종종 스가와라를 마주칠 때도 있었다. 스가와라가 혼자인 경우는 많지 않았고, 근처엔 후배 혹은 동급생이 붙어 그와 대화를 나눴다. 눈이 마주칠 때도 있었는데 스가와라는 “안녕, 츠키시마”라고 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예의 그 상냥한 웃음으로 “안녕”하고 콕 집어 부르는 그가 인사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처럼 느껴졌다. 스가와라의 예외가 된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츠키시마 역시 묵묵하게 그를 지나쳐 버스를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스가와라와 방향이 같은 사람은 대체로 츠키시마 뿐이라서 버스를 타는 건 곧 그 둘이 되었다. 스가와라가 뒤에 앉고 츠키시마는 보다 앞에 앉았다. 보란 듯이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돌려 듣다가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스가와라를 태운 버스가 멀어질 즈음에야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리곤 질문하는 것이다. 스가와라는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안경을 벗고 잠시 콧대를 주무르고 있는데, 옆에 선 야마구치가 “아!”하고 작게 탄식했다. 츠키시마는 다시 안경을 쓰고 창가 앞으로 보다 가까이 다가갔다. 스가와라가 조금 절뚝거리며 스탠드 쪽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부축하려고 누군가 뛰어오자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아마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다쳤나 봐.”

 야마구치의 말에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오래 은빛 점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었다.

 

 방과 후에 츠키시마는 정류장에서 스가와라를 마주쳤다.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오늘은 스가와라 혼자였기에 드문 일처럼 느껴졌다. 츠키시마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붕대가 둘둘 감긴 스가와라의 무릎으로 쏠렸다. 오늘 스가와라가 혼자라는 사실에 하필, 을 붙이고 싶어졌고 이상한 짜증이 솟았다.

 “안녕하세요.”

 츠키시마가 불렀다. 스가와라는 반대쪽을 보다 말고 응? 하고 고개를 돌렸다. 불러줘서 조금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와, 이런 타이밍이라니.”

 맥락 없는 소리였다. 츠키시마가 붙이고 싶은 “하필”이 생략된 문장일 지도 몰랐다. 하필 이런 타이밍이라니. 하필 이런 날 혼자 있고 네가 내게 말을 걸다니. 그런 의미일까. 알 수 없었다. 불확실함 속에서 츠키시마가 하고픈 말을 골라 불쑥 뱉었다.

 “선배.”

 “수영부에 들어요.”

 옆으로 쏜살같이 직행 버스가 지나갔다. 배기음이 뜨거운 햇살 속에서 뒹굴었다.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이다 말고 씩 웃었다. 불쾌하단 얼굴은 아니었고, 오히려 지극히 스가와라 코우시처럼 보였다. 

 “싫어.”

 “왜요?”

 츠키시마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스가와라가 분명하게 대답해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놀랄 만큼 아름답게 수영장 한 바퀴를 순식간에 가로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데도 싫어, 라고 말해버렸다는 것.

 “선배 고집부리는 것 같아요.”

 “네 이야길 남한테 뒤집어씌우면 못 써, 츠키시마.”

 “수영 좋아하시잖아요.”

 스가와라가 상큼하게 웃어주었다.

 “이상하네. 그렇다고 말한 적 없어.”

 “…….”

 츠키시마는 정말로 궁금해졌다.

 “그렇게 능숙한데 어째서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건가요?”

 그러자 스가와라는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아주 이상하단 얼굴로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질문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 궁금한 건 질문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스가와라가 되물었다. 

 “능숙해서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

 츠키시마는 말문이 막혔다. 버스가 왔다. 스가와라는 가방을 뒤져 카드를 꺼낸 후 버스에 올라탔다. 츠키시마도 뒤따라 올랐다. 스가와라의 옆 자리에 앉았다. 스가와라는 짓궂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얘 좀 봐라, 하는 얼굴이었다.

 “후배님. 어쩐 일이야?”

 “질문에 대답해주세요.”

 츠키시마가 추격하고 있었다.

 “왜 수영을 그만둔 겁니까.”

 “내가 수영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

 스가와라는 능숙하게 도망쳤다.

 “츠키시마는 내버려 두지 않고 많은 걸 생각하는구나.”

 “선배가 말하지 않잖아요.”

 “너도 마찬가지야.”

 스가와라가 눈을 반짝였다.

 “넌 나한테 먼저 인사하지 않잖아. 궁금한 게 있을 때만 그렇게 물어보러 오지.”

 “그런 게 거슬렸어요?”

 “기다린 거야.”

 “아닌 것 같은데.”

 “츠키시마, 다른 애들하고 똑같이 굴지 마.”

 스가와라가 가시를 드러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제대로 물어보라고. 넘겨짚은 후 결과를 따지지 말란 말이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방금까지 그렇게 했잖아.”

 스가와라가 옅게 조소했다.

 “겁쟁이.”

 “선배의 이야기를 남한테 뒤집어씌우지 마세요.”

 “그럼 똑바로 물어 봐.”

 “그대로 돼요?”

 츠키시마가 한 번 더 물었다.

 “정말 그래도 돼요?”

 스가와라의 표정에 균열이 갔다.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입을 다물곤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알고 싶은 게 뭔데?”

 그러자 츠키시마는 머뭇거렸다. 계속 머뭇거렸다. 축축하게 젖은 와이셔츠, 햇볕에 부서지던 은발 머리카락, 습윤한 청색 교복 바지. 놀랄 만큼 빠르고 우아한 턴과 흐트러지지 않는 페이스. 츠키시마는 그 때 걸음을 멈췄다. 수영장에 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교복이 아지가사와 고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츠키시마는 그 교복을 알고 있었다. 스가와라의 그 교복을 언젠가 아키테루가 입었다.

 “선배.”

 덜컹.

 “미나모토 고교 수영부에서 나온 이유가 뭐에요?”

 버스가 과속방지턱을 지나치고 있었다. 덜컹, 하고 차체가 두어 번 크게 흔들렸다. 둘의 몸은 출렁이며 좌우로 비틀거렸다. 어깨가 가볍게 부딪혔다가 떨어졌다. 스가와라가 고개를 돌려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고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적이 있었다. 버스 방송이 띵동, 하고 울렸다. 이번 정류장은……. 다음 정류장은……. 츠키시마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

 “츠키시마.”

 스가와라가 다시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하루 종일 조금 괴로워서 말이야, 공을 차는 동안에도 정신을 빼놓고 있었거든.”

 츠키시마는 스가와라가 도망치고 있어서 실망했다. 그래서 추격하기를 관뒀다.

 “네.”

 “오늘 무척이나 기뻐야 하는 뉴스를 들었거든. 메일로 말이야, 그래서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어쩐지 조금 괴로웠어.”

 스가와라의 시선 너머로 가로등이 연거푸 지나갔다.

 “그래서 계속 다른 생각을 하다가 결국 넘어져서 다리까지 다치게 됐네.”

 츠키시마는 더는 아무 것도 묻거나 대답하지 않았다. 스가와라 쪽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정류장에 도달하자마자 츠키시마는 가방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곤 뒤돌아보지 않고 집까지 걸어왔다.

 

 악몽을 꿨다. 츠키시마는 전철에 있었다. 언젠가의 여름이었다. 에어컨이 나오고 사람들은 적어졌다가 많아졌다가 다시 적어졌다. 츠키시마는 종점에서 한 번 더 갈아타야 했다. 열차에 가장 오래 남아 있었다. 의자의 빈자리가 늘어갈수록 어쩐지 초조해져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바깥엔 지난하게 이어지던 논과 밭이 사라지고 상가 지역이 이어지고 있었다. 종점에 도달했을 때 츠키시마를 포함해 열차 칸에 남아 있던 사람은 단 셋뿐이었다. 츠키시마는 역에서 표를 구입하고 다른 호선으로 환승했다. 그리고 반시간을 더 달렸다. 목적지에 도달할 즈음부턴 익숙한 교복들이 우르르 탔다. 흰 반팔 와이셔츠에 얇은 청색 바지. 한쪽에 가방을 둘러맨, 한 무리의 고교생들.

 미나모토 고교까지 장장 두 시간 사십 분이 걸렸다. 아키테루가 미나모토 고교를 진학한 후 맞이하는 첫 번째 여름이었고 세상은 아주 더웠다. 그 무렵엔 츠키시마의 키가 나무처럼 자랐다. 그것을 아키테루에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아키테루는 “미안, 방학 동안 합숙이 있어서.”라고 해버렸던 것이다. 방학 동안 집에 갈 수 없게 됐다는 전화를 받는 동안 츠키시마는 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주 먼 곳에 드문드문 솟은 아오모리의 송전탑들을 바라보았다. 밤이면 붉은 점으로 깜빡이며 조용히 빛나는, 언젠가 아키테루와 함께 도달해야 할 지점을. 그리고 다음 날 츠키시마는 열차에 올랐다. 두 시간 반 넘게 달려서 미나모토 고교에 왔다. 아키테루의 의사를 묻지 않은 아주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다.

 아키테루는 정말 놀란 눈치였다. 그는 츠키시마가 방문했다는 사실보다 츠키시마가 “혼자” 방문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다.

 “케이, 길이라도 잃었으면 어쩌려고 그래.”

 “형이 보고 싶어서.”

 “그거야…….”

 아키테루는 그 말에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수영장에 일렬로 서서 대열을 지키던 부원들의 시선이 즉각 아키테루 앞에 선 열한 살짜리 소년에게 쏠렸다. 감독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어이, 츠키시마. 동생이냐? 너무 오래 붙잡고 있진 마라. 연습시간이잖냐.”

 “네, 알겠습니다.”

 아키테루가 대답하곤 츠키시마의 어깨를 다정하게 붙잡았다. 물로 축축한 아키테루의 체온은 평소보다 조금 낮고 또 부드러웠다. 아키테루는 츠키시마를 데리고 나와 락커에서 저지를 걸친 뒤 매점으로 갔다. 아이스크림을 계산한 뒤 츠키시마에게 건네주었다. 멜론 맛이 나는 사각형 바였다.

 “한국에서 온 아이스크림이래.”

 아키테루가 말하는 동안 츠키시마는 천천히 바 끝을 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테루가 물끄러미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케이,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거야?”

 아키테루는 정말 궁금해 했다.

 “정말 그냥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응.”

 방학을 맞이한 미나모토 교정엔 인적이 드물었다. 근처 체육관에서 운동화가 바닥과 마찰되어 일어나는 소리, 공이 쿵 쿵 튀기는 소리와 “토스, 한 번 더!” 따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영장 근처에 있는 매점에선 이따금 발차기로 수영장 물이 출렁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츠키시마의 대답에 아키테루는 잠깐 말없이 먼 곳을 응시했다. 바람이 불어서 그들이 등지고 앉은 나무 그림자가 마구 출렁였다.

 “케이는…….”

 바람이 멎었다.

 “나를 좋아하니?”

 츠키시마는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았다.

 “응.”

 아키테루는 그 망설임 없는 대답에 조금 기운이 빠진 듯이 웃었다. 

 “그렇구나…….”

 둘은 잠시 말없이 아이스크림을 베어 먹었다. 아키테루가 일어섰다. 츠키시마가 올려다보자 아키테루는 그의 정수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건 분명 둘 사이에 종종 있는 일이었는데도 분명 무엇인가가 조금 다르단 느낌을 주었다. 츠키시마는 이상할 만큼 노곤해진 기분을 받았다. 눈이 감기고 절로 찌르르해지더니 다리가 스르르 벌어졌다. 머리 위에서 아키테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케이는 겁이 없구나.”

 “나는 그렇게 못 해.”

 “그래서 부럽다.”

 츠키시마가 그 말을 다 이해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아키테루가 단순히 수영에 관한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감 정도는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보태거나 대꾸하지 못 했다. 잠시 후 아키테루의 손길이 멎었다. 이제 가봐야겠다. 아키테루는 시간을 확인하는 눈치였다. 츠키시마는 불에 데인 사람마냥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떴다. 그 때 아키테루가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아키테루의 손이 츠키시마의 뺨을 감싸곤 뒤통수를 가볍게 당겼다. 입술은 희미하게 붙었다가 떨어졌다. 순간, 츠키시마가 몸을 뒤로 뺐다. 아키테루의 손에서 벗어나 원하는 만큼 물러났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츠키시마의 몸이 공중으로 분해되고 있었다.

 아키테루보다 츠키시마가 더 놀란 눈을 했다. 본인이 그렇게 행동했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을 먹은 얼굴이었다. 아키테루는 그런 츠키시마를 내려다보며, 마치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었고 마침내 그 결과를 받아들인 사람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거기엔 일종의 결연함이 있었다.

 “케이, 다음부턴 오지 마. 내가 집으로 갈게.”

 아키테루가 말했다. 츠키시마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렇다고 응, 이라 말하지도 못 한 채 굳어 있었다.

 “형…….”

 츠키시마가 더듬더듬 물었다.

 “우리, 송전탑 보러가지 않을래?”

 아키테루는 환하게 웃었다.

 “약속했잖아. 당연하지.”

 그 말투는 케이, 언제든 놀러와, 의 그것은 아니었다. ‘내가 집으로 갈게’와 닮아 있었다. 츠키시마는 알 수 없는 충만함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게 어디로부터 기인한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정말 두려움이었다.

 “오래 있어주지 못 해서 미안해. 혼자 갈 수 있겠어? 사람 불러줄까?”

 아키테루가 그렇게 물어서, 츠키시마는 고개를 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츠키시마는 창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귓바퀴 끝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고 입엔 멍청하게 보일 만큼 진득진득한 아이스크림이 묻어 있었다. 역내 화장실에서 얼굴을 박박 씻어냈다. 아키테루가 들여다보았던 얼굴이 어땠을 지 확신은 없었지만, 만약 이런 얼굴을 봤던 것이라면 견딜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늦은 저녁 무렵에야 귀가한 츠키시마는 방에 엎어져 기진맥진한 잠에 빠져들었다. 꿈에서 송전탑을 보았다. 츠키시마는 송전탑을 향해 끊임없이 걷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곳에 혼자 도달해버리고 말았다. 황량하고 무기질의, 철의 냄새와 전기의 소리가 나는 공간이었다. 츠키미사는 그것을 악몽이라 생각했다. 츠키시마 혼자 그곳에 도달해버렸기 때문이다.

 

 잠에서 깬 츠키시마가 눈을 떴다. 탁자를 더듬어 안경을 쓰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야마구치로부터 메일이 와있었고(「츳키, 수영부에서 연습경기가 있대.」)오후 여덟 시 반이었다. 아래층에서 밥 냄새가 났다. 츠키시마는 이불을 치우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방을 나서기 전 침대 헤드 옆으로 난 큼지막한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붉은 점이, 도달할 수 없을 것처럼 먼 곳에서 반짝이는 송전탑의 눈들이 츠키시마를 향해 끊임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잠깐 멈추어 섰다가 이내 층계를 따라 내려왔다. 부엌 불이 켜져 있었다.

 “형.”

 츠키시마가 부르자 식탁에 앉아 늦은 저녁을 먹던 아키테루가 고개를 돌렸다.

 “케이,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몸은 좀 어때?”

 “나야 늘 좋지. 저녁 먹었어?”

 “아직. 근데 별로 먹고 싶진 않아.”

 “그래?”

 츠키시마가 의자를 끌어 아키테루의 맞은편에 앉았다.

 “요즘은 자주 오네.”

 “방학 땐 아예 눌러 살 거야.”

 아키테루가 장난스럽게 찡긋거렸다.

 “예전처럼 같이 종종 수영도 하고.”

 “헤에.”

 츠키시마가 무감하게 감탄했다. 젓가락을 내려놓던 아키테루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 컨디션 나빠?”

 “응? 아니 별로…….”

 츠키시마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게 보였어?”

 “텐션이 낮아서.”

 순간 스가와라가 떠올랐지만 곧 털어냈다. 츠키시마는 눈을 내리깔았다.

 “별로… 그렇지도 않아.”

 “그럼 다행이지만…….”

 아키테루가 그릇을 포개며 일어났다. 싱크대에 내려놓고 물을 받아놓았다. 뒤돈 채로 대화를 이어갔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에이토한테 메일을 받았는데.”

 “에이토?”

 “그 있잖아, 미나모토의…….”

 “아.”

 츠키시마가 건조하게 대꾸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걔네 팀, 이번에 우승했다고 하더라. 일학년이 주전이라서 다들 좀 무시하는 기운이 있었는데 완전 꺾어버렸다고. 여하튼 그런 메일이어서 축하한다고 보내줬지.”

 츠키시마는 눈을 깜빡였다.

 “경기가 언제였는데?”

 “음, 그러니까…….”

 간단한 설거지를 마친 아키테루가 젖은 손을 털며 기억을 더듬었다.

 “아마 이틀 전이었을 거야.”

 아키테루는 식탁 위에 어질러진 것들을 정리하고 행주로 한 번 닦아냈다. 그리곤 가방을 챙겨 다시 현관으로 나섰다. 츠키시마가 따라 나왔다.

 “밥만 먹고 가는 거야?”

 “근처에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가 새벽쯤에 돌아올 거야.”

 운동화코를 바닥에 콩콩 두들기며, 아키테루가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부드럽게 펼쳐져 츠키시마의 턱을 스치고 뺨과 목덜미를 붙잡았다. 귓바퀴 뒤의 말랑말랑한 부분을 희미하게 주물거리며 시선을 마주쳤다. 츠키시마는 긴장했지만 눈을 감지는 않았다. 아키테루도 그 이상 다가오거나 무언가를 하진 않았다. 그게 전부였다. 잠시 뒤 아키테루는 손을 내려놓곤 철제문을 열어젖혔다. 여름 밤공기가 조금씩 현관으로 밀려들어왔다.

 “다녀 와.”

 츠키시마가 인사했다. 아키테루는 말없이 웃었다. 쿵, 닫힌 철제문 너머로 느릿느릿 발소리가 멀어졌다. 츠키시마는 좀 더 현관 앞에 머물다가 층계를 올라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컴퓨터 전원을 켰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불조차 켜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자위를 할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방문을 잠글 필요는 없는데도 츠키시마는 괜히 의자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한쪽으로 돌려놓았다. 자리에 다시 앉아 미나모토 고교를 검색해보았다. 최신 기사를 읽었다. 유투브로 가서 현 대회 일정 날짜를 검색했다. 영상 몇 개가 최신 순으로 서너 개 떴다. 츠키시마는 제일 긴 영상을 클릭했다. 미나모토 고교 수영부가 출전한 토너먼트 결승 100m 풀장을 열다섯 바퀴 도는 1500m 자유형. 빠르고 우아한 일곱 명의 선수가 풀장으로 뛰어들어 물속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장장 20분에 걸쳐 찍혀 있었다. 미나모토 고교 출신의 주전 선수는 네 번째 줄에 있었고, 초반 스피드는 그럭저럭이었다. 중반부턴 뒤처지는 듯 느릿해졌다. 중계방송이 “올해 미나모토 고교 쪽은 1학년이 레귤러로 나왔다죠?”라고 덧붙였다. 츠키시마는 의자 위에 웅크린 채로 모니터를 거의 노려보다시피 했다. 후반부에서 미나모토 고교 선수가 스피드를 올렸다. 두 바퀴를 남겨둔 것을 고려하면 정말 놀랄 만큼의 추진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단숨에 경기장 중간으로 나아간 그는 선수들을 제치고 순위권에 진입하더니 마침내는 완벽하게 앞서나갔다. 페이스가 저렇게 들쑥날쑥한 데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중계방송이 감탄과 놀라움으로 시끄러워졌으므로 츠키시마는 볼륨을 줄였다. 에이토와 함께 스탠드에 앉아 있던 몇 명의 선수들이 경기장 끝에서 파하, 고개를 내미는 후배에게 달려 나갔다. 카메라가 클로즈업 되고 그의 얼굴을 비출 때, 츠키시마는 영상을 멈췄다. 까맣고 둥글둥글한 뒤통수의 소년을, 언젠가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을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츠키시마는 스크롤을 내려 영상에 달린 주석을 읽었다. 출전 선수 명단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우승, 카게야마 토비오(影山 飛雄).

 오늘 무척이나 기뻐야 하는 뉴스를 들었거든. 메일로 말이야, 그래서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어쩐지 조금 괴로웠어. 그러니까 스가와라는 도망가지 않았던 것이다. 도망간 적이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을 지도 모른다. 츠키시마는 헤드폰을 벗어놓곤 멍하니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능숙한데 어째서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건가요? 그 말을, 츠키시마는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문 너머로 붉은 점이 끊임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에 조금 부끄러움을 느꼈다.

 

 9.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름의 한복판이었다. 기말고사 기간이 시작되어서 연습경기에 매진하던 야마구치도 책상에 붙어 공부를 시작했다. 운동장에 공을 차러 나오는 사람들이 적어졌다. 스가와라도 도통 보이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필기하고 읽고 쓰고 암기하고 계산하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스가와라 생각을 아주 가끔 했고 동시에 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휴대폰으로 가끔 야마구치와 메일을 주고받고 아키테루가 일방적으로 보내주는 기사 링크며 대학 소식을 들었다. 여전히 수영부에 들지 않았고 좋은 성적을 받았다. 메인 포털 사이트마다 올해 아오모리 현 일대를 강타할 태풍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종종 그 거대한 자연의 응집체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 태풍에는 이름도 붙어 있었다. ‘네파닥.’ 왜 그런 쓸데없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일까? 네파닥이 어디서 온 단어인지 기사 말미에 언급되었는데, 먼 섬나라 미크로네시아가 올해 제출한 이름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미크로네시아란 나라에 네파닥이란 전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듣고 보니 정말 쓸데없는 이름인 것만 같아 어쩐지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츠키시마는, 쓸모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보았고 그러자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츠키시마는 슬픔을 느끼지 않기 위해 많은 걸 억제하거나 줄이거나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네파닥이란 단어를, 그러니까 태풍에게 하필 전사의 이름을 붙여놓곤 대대적으로 기사에 오르락내리락 하게 하는 섬나라 미크로네시아를 이해하지 못 했고 곧 모든 태풍 기사에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남은 시간동안은 정말 아무 것에도 정신을 팔지 않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문학 성적이 아주 높게 나와서 담임에게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 야마구치가 허둥거리며 대단하다고 침이 마르도록 추켜올렸다. 기말고사는 그런 식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 전면으로 재난주의보가 뜨던 날, 츠키시마는 버스정류장에서 스가와라를 다시 마주쳤다. 깜깜하고 넓은 우산을 들고 있었고 츠키시마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도로 쪽을 내다보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츠키시마가 넓은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오자 스가와라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물었다.

 “왜?”

 “제가 죄송하다고 말할 타이밍이죠?”

 평소보다 미묘하게 기가 죽은 목소리였다. 스가와라의 우산이 조금 들렸다가 내려갔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뭐가?”

 “화냈잖아요.”

 “그런 적 없어.”

 “제가…….”

 츠키시마는 우산을 고쳐 쓴 다음 안경테를 매만졌다.

 “제가 화냈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

 “서운하지 않았어요?”

 “응.”

 스가와라가 고개를 돌렸다.

 “기대한 적 없어서 서운하지도 않아.”

 츠키시마는 그 말에 서운함을 느꼈다.

 “그렇군요.”

 잠시 둘은 말없이 서있었다. 빗줄기가 조금 굵어졌다.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정류장 전광판을 확인했지만 잠시 후 도착하는 버스에 그들이 타는 번호는 없었다. 스가와라가 흘끔 츠키시마를 쳐다보았다.

 “츠키시마가 다신 말 안 걸 줄 알았는데.”

 츠키시마는 우산을 접고 정류장 안으로 들어왔다. 스가와라도 곧 우산을 접었다.

 “걔 재수 없더라고요.”

 정류장에 멈추지 않는 직행버스가 빠르게 둘을 지나쳤다. 젖은 도로와 고무가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튀겼다. 츠키시마는 수영장으로 튀는 물방울 입자들, 들쑥날쑥한 페이스의 소유자에 대해 떠올렸다.

 “천재인데 의욕도 있어서.”

 “하하.”

 스가와라가 기운 없이 웃었다.

 “그런가.”

 “네.”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버스 전광판으로 번호가 떴다. 도로 끝에서부터 둘을 태울 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스가와라가 앞으로 나왔다. 

 “츠키시마는 말이야.”

 “네?”

 스가와라가 버스에 올랐다.

 “이제 나한테 궁금한 게 없어?”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쥔 채 버스에 뛰어 올랐다.

 “아뇨.”

 츠키시마가 스가와라의 옆에 앉았다. 스가와라는 츠키시마 쪽을 돌아보지 않고도 나지막이 웃었다.

 “웃지 마세요.”

 “츠키시마, 이런 거에 약하구나.”

 “아니거든요.”

 “창피해하는 거 웃기다.”

 “그러니까, 웃지 마세요.”

 창밖으로 보이는 빗줄기가 보다 굵어졌다. 라디오에서부터 내일 모레, 태풍, 네파닥 따위의 단어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츠키시마가 몸을 뒤척여 자세를 고쳐 잡았다. 왼손으로 의자를 짚었다. 스가와라의 오른손과 조금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러니까 선배는 수영을 했다는 거죠.”

 “그렇겠지.”

 “다행이네요.”

 츠키시마는 어쩐지 그렇게 말했다.

 “다행인 것 같아요.”

 “질문은 그게 끝?”

 “음.”

 츠키시마는 잠시 가늠해보았다. 스가와라가 화를 낼지 내지 않을지. 범주에 있는 질문인지 아닌지.

 “선배, 소문 도는 거 아세요?”

 “다는 몰라. 자기들끼리 워낙 많이들 만들어내서.”

 “엄청 이상한 것도 돌아요.”

 “이를테면?”

 “선배… 이 버스 타고 종점 바로 직전까지 간다고.”

 스가와라가 눈을 깜빡이다 푸스스 웃었다. 그러니까 이 버스의 종점 바로 직전엔 폐가 촌, 재개발이 되다 버려진 구역이 있고 그 앞엔 창녀촌과 술집이 있었다. 치안이 별로 좋지 못 하고 알음알음 다니는 사람이 아니면 그곳에 어슬렁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 츠키시마는 스가와라가 담배를 피우던 게 떠올랐다. 담배와 그런 걸 연결할 수는 없었지만 스가와라가 그 풍경 속에서 얼마나 위태로웠는지, 얼마나 희미하고도 아름다웠는지. 버려진 집과 잿빛의 공간 한복판에 서있는 스가와라를 상상하는 건 어색하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어쩐지 그런 황량한 풍경이 어울렸다. 혼자 마구잡이로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존재가 다른 풍경에 짓눌려선 안 될 것 같았다. 수영장 끝에서 파하… 하고 솟구쳐 오르던 그 몸을 본 이후부터. 스가와라는 츠키시마와 아주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생명력으로 들끓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선배는 어디까지 가는 건가요.”

 츠키시마가 물었다.

 “제 다음 정류장부터는… 집이 없잖아요.”

 “음.”

 스가와라는 뭐가 즐겁다는 건지 모르게 웃고만 있었다. 

 “뭐, 보통 귀가부들은 부 활동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긴 하지.”

 “일해요?”

 절로 스가와라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하긴 해.”

 스가와라가 고개를 돌려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궁금해?”

 “……아뇨.”

 츠키시마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왜, 궁금하잖아.”

 “아니에요.”

 “보러 갈래?”

 “네?”

 츠키시마가 드물게 펄쩍 뛰었다. 스가와라는 박장대소 했다.

 “아하하… 츠키시마 완전 기겁한 표정.”

 “…….”

 버스 방송이 울렸다. 츠키시마가 시선으로 흘끔 뒷문을 바라보았다.

 “저 이번에 내려요.”

 “내리지 마.”

 츠키시마가 일어나려고 하자 스가와라가 손을 뻗어 붙잡았다. 손목을 잡았다가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 손등을 스쳤다. 츠키시마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하고 말았다. 다리에 힘이 절로 풀려 주저앉았다. 스가와라가 키득키득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어쩌라고!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스가와라가 다시 한 번 붙잡고 힘주어 앉혔다. 아귀힘이 생각 이상으로 셌다. 버스가 츠키시마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문이 아무도 내려주지 않고 닫혔다.

 “아, 진짜!”

 츠키시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가와라는 딴청을 피웠다.

 “저, 중간에 뛰쳐나올 거니까요.”

 “마음대로 해.”

 “진짜에요.”

 “아무렴.”

 버스가 덜컹, 과속방지턱을 지나쳤다. 둘을 태우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아쿠아리움 정류장에서 아이들이 제법 탔다. 어리둥절한 츠키시마를 내버려둔 채 스가와라는 우산을 펼치고 정류장에서 내렸다. 츠키시마가 우산을 쥐고 간신히 따라서 하차했다. 

 “선배.”

 츠키시마는 자신에게 발을 맞춰주지 않는 스가와라를 쫓아 겅중겅중 물웅덩이를 뛰어 넘었다.

 “스가와라 선배!”

 현립 체육관만큼이나 넓은 잔디장이 깔려 있고, 아쿠아리움으로 통하는 중앙 길부터는 돌바닥이 이어졌다. 비가 와서 잔디장에 앉은 사람은 없었지만 유치원생들과 학생들은 많이 보였다. 간간이 연인들도 보였다. 중앙 현관은 돔처럼 지어져 있고 입구에 아치형 구조물이 드높게 지어져 있었다. 그곳을 통과하자 매표소와 입구가 나타났는데, 천장이 온통 통유리로 되어 하늘이 훤히 보였다. 스가와라는 익숙하게 척 척 걸어가더니, 매표소를 지나 구석진 문으로 이동했다. 당황한 츠키시마가 허둥지둥 따라 들어갔다. 깜깜한 복도가 이어졌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안내 방송이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익숙한 냄새도 났다. 물비린내였다. 스가와라는 어둠 속에서도 조금씩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결 좋은 은빛 머리카락이 이 어둠 속에서도 어떻게든 희박한 빛 한 줄기를 모아 반사하는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긴 복도를 따라 걷다가 끝에 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츠키시마를 기다려주었다. 츠키시마는 스가와라가 잡아준 문을 통해 아쿠아리움 내부로 들어왔다. 거대한 수조 앞을 관람객들이 느린 걸음으로 지나치고 있었다. 조명 때문에 온통 시퍼렇고 침침하고, 동시에 어떤 부분은 굉장히 밝았다. 눈앞에서 여유롭게 유영하던 가오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츠키시마가 고개를 돌려 자신이 빠져나온 문을 바라보았다. STAFF ONLY. 스가와라는 츠키시마가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츠키시마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파란 조명 때문에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말을 더듬거렸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저는…….”

 츠키시마는 달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츠키시마.”

 스가와라가 손짓했다. 다시 앞서나가며 츠키시마를 불렀다.

 “따라와.”

 츠키시마와 스가와라는 거대한 수조가 양면으로 펼쳐진 일명 ‘바다산책’섹션을 통과해 복도를 따라 계속 나아갔다. 유유히 유영하는 바다거북을 가리키며 유치원생 하나가 감탄하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손뼉을 쳐댔다. 둘은 계속해서 지나쳤다. 상어들만 모인 곳도 있었고 ‘니모를 찾아서’코너도 있었다. 스가와라는 두 섹션을 지나친 다음에야 멈추어 섰다. 그곳은 스넥 바였다.

 “짠.”

 스가와라가 건조하게 소개했다.

 “여기가 내 일터.”

 츠키시마가 조금 멍청한 얼굴로 카페테리아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수조가 전면을 통째로 차지하고, 한가운데에 원기둥 모양의 수조가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 물기둥을 중심으로 의자와 테이블이 일사분란하게 깔려 있었다. 전면 수조 맞은편에 카페와 스넥 바, 그릴 바가 부스 크기로 작게 붙어 영업 중이었다. 방문객들은 이곳에 앉아 바다생물을 구경하며 커피, 콜라, 나쵸와 핫바 등을 먹을 수 있었다. 스가와라가 스넥 바 부스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유니폼을 입은 여학생 한 명이 밖으로 나왔다.

 

 

 

 “스가와라, 어쩐 일이야? 오늘 교대 없을 텐데.”

 “아, 오늘은 잠깐 일이 있어서.”

 스가와라가 츠키시마 쪽을 보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츠키시마, 이쪽은 시미즈. 시미즈 키요코. 시미즈, 이쪽은 츠키시마 케이. 내 후배야. 같은 부 출신.”

 “같은 부?”

 “응, 츠키시마도 귀가부거든.” 

 시미즈가 고개를 돌려 츠키시마 쪽으로 짧게 턱짓을 했다. 진한 흑발에 조용한 미인상이었다. 조곤한 목소리를 냈다.

 “안녕, 츠키시마.”

 “아, 안녕하세요.”

 츠키시마가 얼결에 따라 고개를 숙였다. 스가와라가 마저 소개했다.

 “시미즈는 아지가사와 고교 근처에 있는 히로사키 학원에 다니고 있어. 남자친구 있다니까 흑심 품으면 곤란해.”

 “아…….”

 츠키시마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렇군요.”

 “그럼 내일 봐, 스가와라.”

 시미즈가 손을 가볍게 흔들곤 다시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스가와라가 웃으며 따라 흔들어 주었다. 시미즈는 부스 안에서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다시 유니폼 모자를 썼다. 그리곤 여전하게도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츠키시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문하시겠어요?”

 둘은 카페테리아를 지나 다시 섹션 구역으로 돌아왔다. 수조 너머로 거대한 바다생물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바다거북, 고래상어, 이름 모를 몸집 큰 열대어들…… 츠키시마는 스가와라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츠키시마가 물어보지 않은 것들까지 대답해주고 있다는 것에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츠키시마가 물어보고 싶었던 것. 그런 질 나쁜 소문보다 더 물어보고 싶었던 것. 그러니까 츠키시마는 조금 두려웠다. 스가와라는 어떻게 자신이 그가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우스운 일이었지만 츠키시마는 순간 아키테루의 마법 같은 순간을 떠올렸다.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스피드를 냈던 아키테루. 어쩔 줄 모르며 객석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츠키시마를 포착했던 아키테루. 스가와라는 들쑥날쑥하게 헤엄치는 와중에도 힘을 비축하고 있는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키테루처럼 평이하지만 압도적인 페이스를 지키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렇게나 잘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은 분명 무서운 일이다. 츠키시마는 그런 식으로 헤엄치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나아가야 할 경로가 뒤집어지는 순간에 맞춰 몸을 웅크려 뒤돌아서는 건 스가와라 코우시가 처음이었다.

 “츠키시마.”

 스가와라가 손짓했다. 츠키시마는 생각하는 동안 걸음이 느려졌음을 깨달았다. 스가와라가 저 너머에 있었다. 츠키시마는 빠르고 넓은 보폭으로 그 틈을 줄였다. 스가와라를 쫓아 다음 섹션으로 나아갔다. 스가와라는 츠키시마를 해파리 섹션으로 끌고 갔다. 조명이 달라졌고 주변은 더욱 캄캄해졌다. 눈앞의 수조가 더욱 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들여온 개체가 있대.”

 스가와라는 손으로 수조 어딘가를 덧그렸다. 츠키시마가 멀뚱히 서서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어디 있지, 어디 있더라… 스가와라가 중얼거렸다. 

 “아, 저기.”

 스가와라가 수조의 왼쪽 상단을 가리켰다. 츠키시마가 고개를 들며 안경을 고쳐 썼다. 무수한 해파리들 사이에서 아주 천천히 유영하고 있는 노란색 해파리였다. 유영한다고 표현하기에도 우스웠는데, 그것은 마치 미세한 물살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스가와라가 츠키시마의 손을 잡고 앞으로 끌었다. 해파리는 가까이서 보자 노란색이라기보다 아이보리에 가까운 금색처럼 보였다. 

 “쟤가 말이야, 이름이…….”

 스가와라가 수조 앞에 붙은 이름 판을 훑었다. 제일 끝에 있었다.

 “라스톤 루나래.”

 스가와라가 이름 판 아래에 붙은 설명을 읽었다.

 “라스톤은 개체 이름으로, 라스톤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맹독이 없는 건 총 스무 종의 라스톤 개체 중 위 개체뿐이다. 발광 단백질을 가지고 있어 초저녁부터 밤까지 어스름하게 빛난다. 학계에서 루나(Luna)란 이름을 붙여준 것은 이들이 바닷가에서 유영하는 모습이 마치 달과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가와라는 츠키시마 쪽으로 몸을 틀며 씩 웃었다.

 “츠키시마 같지.”

 “이름 때문에요?”

 “아니.”

 스가와라가 수조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저렇게나 빛나면서 독이 없는 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츠키시마는 그냥 그 순간을 내버려두었다. 둘은 해파리가 가득 담긴 수조 속에서 오직 구석에 처박힌 채 둥둥 떠있기만 하는 라스틱 루나를 올려다보았다. 스가와라가 손을 뻗어 이름표 옆에 붙은 작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수조 속 조명이 꺼지고 깜깜한 어둠이 펼쳐졌다. 투명한 해파리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발광하는 개체 몇 마리만 남아서 빛나기 시작했다. 아주 희미한 빛이었지만 분명했다. 이제 둘은 라스틱 루나를 더 잘 볼 수 있었다.

 “달(月) 같아, 그렇지.”

 스가와라가 나긋나긋 말했다. 라스틱 루나는 희미한 금색으로 수조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둥근 몸집은 정말 보름달처럼 보였다. 츠키시마는 이제 정말 견딜 수 없는 간지러움을 느꼈다. 라스틱 루나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고 발광하는 다른 개체로 눈을 돌렸다. 라스틱 루나보다는 작은, 그러나 어디서 많이 봤음직한 해파리들이 은색으로 희미하게 빛을 내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이름표를 마구 훑어 그것들의 이름을 찾아냈다.

 “스텔로 빅토리아.”

 츠키시마가 읽자 스가와라가 고개를 돌렸다.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형광 단백질 유전물질이 있다. 자극을 받으면 갓 가장자리나 생식선이 발광하는 것으로 유명한 개체다. 희미하고 단편적인 빛을 내기 때문에 독일 학회에서 스텔로(STELO)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스텔로(STELO)는 독어가 아닌 에스페란토어다. 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반짝거리는 개체로 유명하다.”

 스가와라가 빤히 바라보아서 츠키시마는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이건 그럼 선배 같다고 해요.”

 정말 낯간지러운 말이었다. 살면서 이런 플러팅 대사를 쳐볼 일이 더 있을까? 스가와라가 이런 류의 말을 뱉을 땐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았는데 막상 츠키시마가 뱉고 보니 삼류 로맨스 대사처럼 느껴졌다. 스가와라는 조금 얼빠진 얼굴로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츠키시마가 시선을 연거푸 피했다. 

 “그리고, 이건… 약한 독이 있네요.”

 츠키시마가 떠듬떠듬 말했다.

 “그래서 선배 같기도.”

 “하하.”

 스가와라가 헛웃음처럼 뱉었다가 이내 시원하게 웃었다.

 “츠키시마, 본인이 뱉어놓고 부끄러워하지 마. 이런 건 뻔뻔하게 뱉어야 한다고.”

 츠키시마의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 고개를 들어 애꿎은 스텔로 빅토리아들을 바라보았다. 작고 희미하게 반짝이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수조 내부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물살에 휩쓸려 빙글빙글 돌 때마다 발광 량이 더욱 진해졌다. 자극에 따라 빛나는 해파리들이 강한 물살 근처를 맴돌고 있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잠시 후 조명이 들어오고 발광 해파리들을 볼 수 있는 암전 시간이 끝났다. 새파란 조명 아래 물이 찰랑찰랑 흔들렸다. 라스톤 루나와 스텔로 빅토리아는 빛 속에서 하나의 해파리들이 되어 시야 안의 특별함을 잃었다. 스가와라는 평범해진 해파리들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츠키시마, 나를 동정하지 말아줘.”

 츠키시마가 스가와라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스가와라는 몹시 쓸쓸해보였다.

 “그럴 필요는 없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과정이 아니었어.”

 “선배는…….”

 그렇지만 당신은.

 “여전히… 수영을 좋아하잖아요.”

 “예전만큼은 아니야.”

 스가와라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렇지만 정말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여기서 멈춰도 괜찮다고 생각해.”

 츠키시마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동시에 부러움을 느꼈다. 이해할 수 없음은 다름에서 오는 게 아니라 경험의 유무에서 왔다. 츠키시마에게 정말 좋아하던 시절 같은 건 없었다. 정말 좋아하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는 시절로 가득해서 그런 것들을 쟁취해본 적이 없었다. 생명력이라는 건 그런 곳에서 오는 것일까. 그러니까 스가와라가, 포기한 스가와라가 여전하게 빛이 나는 건 그런 시절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츠키시마는 알 수 없었지만 스가와라의 무언가를 ‘자신이 알 수도 있었으나 결국 알지 못 하게 된 것’의 범주에 넣는다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파고들고 싶었다. 어디로 파고드는 지도 몰랐지만 이해해보고 싶었다.

 “선배는 그러니까 도망친 건가요?”

 그러나 그것은 스가와라를 화나게 한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츠키시마를 노려보았다. 아주 날카로운 눈빛은 아니었지만 경고 정도는 됐다. 그쯤 해, 츠키시마. 그런 눈이었다.

 “츠키시마, 그러지 마.”

 목소리는 아주 단호하고 확고했다. 화내고 있었다. 분명한 분노였다. 스가와라는 다시 고개를 돌려 수조를 쏘아보았다. 물이 한 번 출렁거렸다. 해파리들이 일순 물살에 따라 좌우로 기울었다. 마구 모였다가 흩어졌다. 아, 한 평생 이렇게 살아온 생물들이 아쿠아리움의 수조 안에 갇힌 채로 좀 더 좁아진 ‘평생’을 지내야만 하게 된다니. 그것은 정말로,

 정말이지,

 “필사로 필사로 노력했었어. 알겠어, 츠키시마? 난 필사로 필사로, 필사적으로 노력했었다고. 네가 아니야.”

 “…….”

 잠시 정적이 있었다.

 “선배.”

 “응.”

 “선배는 저랑 조금도 닮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럴 지도.”

 스가와라는 먼 곳을 보는 눈을 했다.

 “그래도 네가 제일 가까워.”

 츠키시마는 그 말에 충만함을 느꼈다. 인정받았다는 류의 그런 것. 사랑이라던가 호감보다는 승부욕에 가까운 그것.

 “선배, 제가 궁금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말해주세요.”

 츠키시마가 보상을 바랐다.

 “그럴까?”

 스가와라가 승인했다.

 “이를테면 내가 왜 수영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것?”

 “아무거나요.”

 “음. 나는 말이야.”

 스가와라는 잠시 고민했다가, 천천히 꺼냈다.

 “양수를 기억해.”

 “양수요?”

 “그래, 양막에 가득 찬 따뜻한 액체.”

 츠키시마는 잠자코 들었다.

 “미끄덩하고 점도가 있고. 숨을 쉬어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의 물.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촉각은 기억나.”

 “그게 수영하고 관계가 있나요?”

 “하하, 내가 억지로 엮은 거지 뭐.”

 스가와라가 웃었다.

 “자궁은 어떻게 보면 최초의 풀장 같은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러니까 나는 아주 오래 전 한 번은 물속에 내내 담겨져 있던 거야.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니까 처음 물속에 들어갔을 때도, 이게 정말 처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게 됐어.”

 “…….”

 “그러니까 운명 같은 게 있다고 믿어버린 거야. 그래서 아주 쉽게 좋아하고, 노력하는 게 아깝지도 않고. 조금은 재능이 있었다고 믿은 거지. 그러니까…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을 보지 못 해서.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지.”

 어째서 그런 말을 하고 마는 걸까, 라고 츠키시마는 생각했다. 스가와라의 손을 잡고 싶어졌지만 정말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츠키시마가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모양이다. 스가와라는 뒤돌아 보다 말고 빵 터져서 다시 한 번 깔깔 웃었다.

 “츠키시마, 너무 진지하게 듣지 마.”

 “왜요?”

 “이거 뻥이거든.”

 맥이 빠졌다.

 “거짓말.”

 “아닌데.”

 스가와라가 짓궂게 말했다.

 “나는 아주 거짓말쟁이야.”

 “그런 것 같아요.”

 츠키시마는 힘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쨌든 진짜 같았어요.”

 “츠키시마도 말해줘.”

 “뭘요?”

 “진짜 같은 거짓말.”

 츠키시마는 분위기에 휩쓸려 있었기 때문에 조금 바보 같아 보이는 모든 제안들을 수락하고 싶어졌다. 아니, 상대가 스가와라 선배라서 그런가.

 “좋아요.”

 스가와라 선배 앞이니까 괜찮을 것 같다

 는 감정.

 츠키시마가 말했다.

 “저는 종종 우리 현에 있는 송전탑 꿈을 꿔요.”

 “정말 상상 범주 바깥에 있는 이야기네.”

 스가와라가 감탄했다.

 “아오모리 현 산등성이부터 듬성듬성 세워진 그 송전탑들 말이에요. 제 방 창문으로 보면 거기서부터 오는 불빛이 보여요. 빨갛게 규칙적으로 깜빡여서 그게 뭔지 몰랐을 땐 어디서부터 오는 건지 궁금했었어요.”

 “그게 송전탑의 불빛인지 어떻게 알아?”

 “형이…….”

 아키테루 생각을 하자 입이 깔깔해졌다.

 “형이 말해줬거든요.”

 “아하.”

 “그래서 같이 걸어간 적이 있어요. 거기까지 가서 보고 싶었거든요. 왜인진 모르겠지만… 그냥 그 땐 그러고 싶었나보죠. 그런데 결국 끝까지 못 가고 실패했어요.”

 “왜?”

 “저녁 밥 먹으러 가야 해서.”

 스가와라가 웃었다.

 “아, 말 되네.”

 츠키시마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랑 다음에는 꼭 가자, 하고… 다음엔 꼭이야, 라고 약속했었는데 한 번도 지키지는 못 했어요. 학교에 입학한 이루론 마땅히 걸어가 볼 마음이 들지 않기도 했고… 어쨌든 도달하지 못 한 지점으로서 평생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인데, 종종 꿈에서 그 송전탑이 나와요. 계속 걷다가 가까워져서 코앞에 있게 돼요.”

 꿈은 언제나 들쑥날쑥 찾아왔다. 츠키시마가 불쑥 신칸센을 타고 달렸던 여름의 일부터 악몽까지 보여주기도 하고, 아니면 처음부터 송전탑을 향해 걷는 부분을 꾸기도 했다. 어쨌든 꿈의 말미에서 츠키시마는 그곳에 도달한다. 황량하고 무기질이며 철의 냄새와 전기의 소리가 가득한 지점에.

 “그럼 무서워져요.”

 홀로 그곳에 서서 무한한 공포를 느낀다. 츠키시마는 혼자 그곳에 도달해버린 것이다. 그곳에 아키테루가 없었으므로 그건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정말이지 악몽이라고 밖엔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별로 꾸고 싶지 않은 꿈이에요.”

 “이상한 꿈이네.”

 스가와라가 말한다.

 “보통 영영 도달할 수 없는 쪽이 악몽이잖아.”

 츠키시마가 대답한다.

 “그러게요.”

 해파리들이 마구 떠다니는 가운데 두 남고생은 각자의 생각에 잠겨있었다. 침묵이 유지되었다. 츠키시마는 기다렸다. 아쿠아리움 안내 방송이 울렸다. 말미말 섹터에서 미아를 보호하고 있사오니……. 스가와라가 불쑥 말했다.

 “아깝다.”

 “뭐가요?”

 “츠키시마가 해준 거짓말.”

 “아, 그런가요.”

 “거짓말로 남기기엔 너무 아까운 걸.”

 스가와라가 눈을 반짝였다.

 “직접 가보면 안 되려나.”

 “설마요.”

 “나는 진심인데.”

 스가와라가 츠키시마의 손을 잡았다. 츠키시마가 반사적으로 내려다보았다. 스가와라의 길고 매끈한 손가락이 츠키시마의 손 사이사이로 스며들어왔다. 단단히 깍지를 꼈다. 순간 움찔, 했다. 밀어내지 않았지만 분명 그럴 뻔 했었다. 츠키시마는 고개를 들고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스가와라가 웃었다.

 “응?”

 츠키시마의 안면 근육이 흐물흐물해졌다.

 

 10.

 버스를 타고 츠키시마의 목적지에서 내렸을 땐 비가 그쳐 있었다. 빛이 침잠하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논두렁 속에서 끊임없이 풀벌레들이 울었다. 츠키시마와 스가와라는 마른 우산을 쥐고 걸어 나갔다. 츠키시마가 산등성이를 시선으로 가리켰다.

 “저기 불빛이요.”

 스가와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목을 쭉 빼면서 바라보았다. 정말로 산등성이 곳곳에 듬성듬성 세워진 희끄무레한 실루엣 어딘가로부터 붉은 불빛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스가와라가 감탄했다.

 “아, 그러니까 정말 거짓말은 아니었네.”

 “이제 가요.”

 “그치만 나도 궁금해 졌는걸, 츠키시마.”

 스가와라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 가보지 않을래?”

 츠키시마는 스가와라가 이상한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진심이에요?”

 “응.”

 한숨이 나왔다.

 “그렇지만 정말 멀어서 도중에 돌아오게 될 거예요.”

 “괜찮아, 그냥 가볼 수 있을 만큼 가보는 거지 뭐.”

 스가와라가 손을 뻗었다. 손바닥을 펼치고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츠키시마가 손바닥을 얹었다. 각자의 하얀 손바닥이 도드라졌다. 깍지를 꼈다. 둘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말은 없었지만 계속해서 한 명씩 손을 꼼질거렸다. 그건 말을 주고받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계속해서 풀벌레가 울었다.

 “츠키시마.”

 스가와라가 말했다.

 “오늘 나랑 저기까지 갈 수 없으면 슬퍼할 거야?”

 “아니요.”

 츠키시마가 진심으로 대답했다.

 “어차피 기대하지 않는 걸요.”

 “그건 조금 슬픈 일이네.”

 스가와라의 손이 꼼질거렸다. 츠키시마는 꽉 붙잡았다. 스가와라가 잠시 손 움직이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곤 다시 조금씩 꼼질거렸다. 이번에 츠키시마는 내버려두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재난주의보가 떴었어요.”

 “나도 메일 받았어.”

 “그런데 태풍이 오질 않네요.”

 “아직 바다를 다 넘지 못 했나봐.”

 “그럴까요.”

 “그럼.”

 츠키시마는 고개를 들어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붉은 점은 끊임없이 깜빡이고 있고 자신은 스가와라와 손을 잡고 걷는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고 태풍이 영영 도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츠키시마의 바램이다. 그러니까 이 순간이 멈춰버린다거나 하다못해 느리게 흘러가기를. 열대지방이 키워온 저 거대한 응집체가 다가오지 않기를. 세상을 쑥대밭으로 날려놓는다면 스가와라와 츠키시마의 사이도 전부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이상한 생각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츠키시마는 스가와라를 겨우 붙잡았으니까 놓고 싶지 않았다. 계속 보고 싶었다. 허우적거리거나 질문만 하다가 끝내고 싶진 않았다. 조르고 싶었다. 무엇이든.

 “선배, 너무 늦으면 그냥 집으로 가요.”

 츠키시마가 말했다.

 “지금도 벌써 일곱 시잖아요.”

 “우리 집으로 가려면 아까 아쿠아리움 나오면서 갈아탔어야 했어.”

 스가와라가 작게 웃었다.

 “완전 반대편이거든.”

 논두렁을 계속해서 지나쳤다. 풀들은 하나같이 키가 높았다. 가로등이 팡, 하고 터지더니 몇 번 깜빡이면서 빛을 냈다. 둘이 끊임없이 걷는 동안에도 불빛은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송전탑은 너무 멀리 있었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보다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계속 걷다보면 도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았기에 실망할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츠키시마는 잠깐 멈춰 섰다.

 아키테루로부터 메일이 와있었다. 잠시 만요, 하고 츠키시마가 잡은 손을 빼냈다. 스가와라가 빤히 바라보는 것도 모르고 액정을 두들겼다. 「케이, 언제 와? 오늘 저녁 맛있는데.」 곧 갈게, 혹은 지금은 안 돼. 두 개의 선택지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가와라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츠키시마의 턱을 쥐고 부드럽게 들어올렸다. 당황하기도 전에 스가와라가 고개를 틀었다. 츠키시마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바싹 잡아당겼다. 츠키시마가 뻣뻣하게 끌려왔다. 보송보송한 입술이 맞닿았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풀벌레 소리가 희미해졌다. 세상이 온통 조용해서,

 

 파하…….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츠키시마가 눈을 떴다. 얼떨떨한 얼굴로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얼굴로 끊임없이 열이 올랐다. 스가와라가 키득거리며 츠키시마의 뺨에 제 뺨을 비볐다.

 “츠키시마.”

 스가와라가 속삭였다.

 “츠키시마.”

 손에 힘이 주르륵 빠져나가 휴대폰을 놓치고 말았다. 스가와라가 한손으로 그것을 잡았다. 쥐어 올린 후 츠키시마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이거 떨어뜨렸다.”

 “아…….”

 츠키시마가 허둥거리며 그것을 받았다. 

 “감, 감사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실감나지 않았다. 너무 길고 또 너무 짧은 순간이었다. 꿈은 아닐까? 바보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까 오늘의 꿈은 스가와라 선배와 송전탑까지 걷는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아직 나는 잠에서 깨지 않은 게 아닐까? 츠키시마는 송전탑을 바라보았다. 붉은 점이 깜빡이며 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가와라가 손을 뻗어 츠키시마의 뺨을 부드럽게 눌렀다.

 “키스 후에 바로 고개 돌리는 거 너무하지 않아?”

 “저…….”

 츠키시마가 뱉었다.

 “저희, 벌써 여기까지 온 건가요.”

 “벌써인가?”

 스가와라가 웃었다.

 “츠키시마에겐 ‘벌써’인건가?”

 “그럼 선배는 ‘아직’인건가요?”

 “음, 비슷해.”

 “아하… 농담이죠.”

 “츠키시마, 나는 지금 아주 솔직해.”

 스가와라가 츠키시마의 손끝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부드럽고 불규칙적으로 톡, 토독, 톡, 스쳐갔다. 지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눈을 감으면 스가와라의 손끝을 감싸고 있는 나선형의 흔적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츠키시마는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도 모르면서 아무거나 뱉어보고 싶었다.

 “스가와라 선배는 남자를 좋아하는 건가요?”

 “새삼스럽게 왜 이제 와서 그런 걸 묻지, 츠키시마는.”

 “스가와라 선배는 저를 좋아하는 건가요?”

 “음, 일단 그래서 꼬시고 있는 중이야.”

 “제, 제가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멍청아! 츠키시마는 방금 말을 몹시 후회했다.

 “츠키시마, 방금 자책한 것 같으니까 노코멘트 할게.”

 스가와라가 청량하게 웃었다.

 “계속 걸어갈까, 아님 여기서 끝낼까.”

 츠키시마는 고민하지 않았다.

 “저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 몫은 아니었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그 상태로 굳었다가, 스가와라가 박장대소하며 떨어졌다. 츠키시마는 얼토당토않은 농담을 들은 사람마냥 불만 가득한 얼굴로 서서 그런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스가와라는 자꾸 웃었고, 주저앉아서도 웃었다. 풀벌레 소리보다 더 크게 웃었다. 정말이지 그렇게 웃는 스가와라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았다. 츠키시마는 결국 말을 삼키곤 스가와라에게 손을 뻗었다. 스가와라가 붙잡으며 일어났다. 둘은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집 현관에는 낯설고도 낯익은 신발 한 켤레가 있었고, 부모님의 것은 없었다. 아키테루의 방문이 잦고 짧아지자, 그리고 불규칙해지자 이따금은 이런 날이 있었다. 부모님은 없고 아키테루만 집에 남아 밥을 먹고 다시 외출하는 것이다. 츠키시마와 스가와라가 집으로 들어왔을 때 욕실 쪽에서 물소리가 났다. 츠키시마는 스가와라의 눈치를 보았다.

 “형이에요.” 

 스가와라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신발을 벗었다. 가지런히 놓고 성큼성큼 현관 복도로 들어섰다. 츠키시마는 형이 밥을 먹지 않았으면 기다려야 하나를 고민했는데, 부엌 쪽으로 가자 이미 아키테루가 식사를 마친 흔적이 있었다. 싱크대에 담긴 일인분 양의 접시를 보고 어쩐지 안심했다. 츠키시마는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고 밥통을 열어 따뜻한 밥을 퍼 담았다. 냄비를 열자 김이 펄펄 올랐다. 냄새가 좋았다. 하이라이스 형식의 스튜였다. 국자로 조금씩 퍼서 담았다. 스가와라가 부엌 문지방을 넘었다.

 “나 말이야, 암만 그래도 그것보단 많이 먹거든, 츠키시마?”

 “이건 제 거예요.”

 츠키시마는 자신의 접시 오른쪽에 놓인 밥그릇을 가리켰다. 한가득 밥이 담겨 있었다.

 “선배 건 이거에요.”

 “츠키시마는 그거 먹고 배가 불러?”

 “배부른 느낌 별로 안 좋아해요.”

 둘은 식탁에 앉아 밥을 스튜와 조금씩 비볐다. 스가와라는 그 많은 양을 조금씩 떠서 천천히 끈기 있게 꼭 꼭 씹어 먹었다. 츠키시마는 스가와라만큼 떠서 그것보다 더 천천히 먹었다. 스가와라는 먹는 내내 말수가 적어졌는데, 츠키시마는 그것에 몹시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대화 없는 섭취를 선호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곤 놀랐다. 아키테루나 야마구치와 밥을 먹을 때는 끊임없이 대화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극히 일상이었으므로 불편하다는 인지조차 하지 못 했는데, 스가와라와 고요한 식사를 하는 동안엔 그 이전의 것들이 몹시 불편했음을 깨달았다. 

 둘의 고요한 식사는 아키테루가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비로소 끝이 났다.

 “어, 손님이야?”

 스가와라가 아주 예의바른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츠키시마의 부 선배입니다. 스가와라에요.”

 “아, 안녕하세요, 스가와라 씨. 츠키시마 아키테루입니다. 대학생이에요.”

 아키테루는 조금 어색해했다.

 “케이가 집에 누굴 데려온 적이 거의 없어서…… 와아, 선배라니.”

 그러고 보면 야마구치도 츠키시마의 집에 들어온 적이 거의 없었다.

 “케이, 웬일이야?”

 “웬일이랄 거까진…….”

 츠키시마가 변명할 거리를 찾았다.

 “그냥 어쩌다보니 같이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배가 고파져서 어쩌다보니 온 거야.”

 “츠키시마는 변명도 서툴구나.”

 스가와라가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둘이 친해보여서 좋네요.”

 아키테루가 감화에 젖은 목소리를 냈다.

 “케이, 그래도 부 활동하면서 사람도 제법 잘 사귀고 있구나. 다행이다.”

 “츠키시마, 왕따야?”

 “아니거든요. 친구 있어요.”

 츠키시마가 작게 항변했다. 

 “야마구치라고.”

 “헤에.”

 아키테루가 물었다.

 “부 선배면 스가와라 씨도 수영부겠네요?”

 “음?”

 스가와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시선이 곧장 츠키시마를 향했다. 츠키시마는 시선을 피했다. 의미심장한 낌새였다. 시선이 떨어지지 않자 츠키시마는 불편한 듯 안경테를 매만지며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스가와라는 조금 웃다가, 아키테루를 보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네, 일단은.”

 “아, 그렇군요. 케이는 잘 하고 있나요? 물어봐도 저 녀석, 구체적으론 대답을 안 해서.”

 츠키시마가 식탁 아래로 스가와라의 다리를 툭 걷어찼다. 스가와라는 웃기만 했다.

 “잘해요. 특히 저한테 아주 관심이 많고.”

 츠키시마가 한 번 더 찼지만 스가와라는 아랑곳없었다.

 “제가 오픈플립턴(몸을 둥글게 말아 뒤집으면서 도는 수영 턴 기술 명)을 한 박자 빠르게 하거든요.”

 츠키시마가 더 세게 찼다. 스가와라가 악,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키테루가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표정이 미묘해졌지만 츠키시마는 알아차리지 못 했다. 스가와라가 발목을 쥐곤 주물렀다.

 “음, 츠키시마가 부끄러워하네요.”

 “그런가.”

 아키테루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발목을 문지르던 스가와라가 그 얼굴을 잠깐 바라보았다. 무엇이든 캐묻고 싶어 견딜 수 없다는 눈빛이 스쳐갔다가 이내 수그러들었다. 스가와라는 발을 내렸다.

 “아까 츠키시마가 형이라고 말했을 땐 고교생인 줄 알았는데.”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탐색(探索)적으로 변했다.

 “나이차가 제법 나나 봐요.”

 “아, 일곱… 아니 빠른 년생이니까 여섯 살 차이라고 해야 하나.”

 아키테루가 뜸을 들이다 덧붙였다.

 “그래도 친해요.”

 망설임이라기보다 못 박는 투에 가까웠다. 스가와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츠키시마 쪽을 바라보았다. 

 “아, 그런 것 같았는데 역시 그런 모양이네요.”

 츠키시마는 무엇인가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스가와라가 툭, 식탁 아래로 발을 건드렸다. 츠키시마의 표정이 어쩔 줄 모르고 유순해졌다. 순식간에 흐물흐물해져서 부드러워졌다. 스가와라는 이제 아키테루를 보고 있었다. 츠키시마의 얼굴로부터 무언가를 읽어내는 아키테루. 시선을 떼지 못 하고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아키테루. 표정이 솔직해서 뭔가를 더 캐내고픈 마음도 사라졌다. 표정에 쓰고 다니는 것도 집안내력,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단순했고 추리과정도 싱거웠다. 하지만 긁어보곤 싶었다.

 “오늘 송전탑에 다녀왔어요.”

 스가와라가 그런 류의 말을 꺼낼 줄은 몰랐는지 츠키시마가 훅 고개를 들었다. 변명하듯 입을 뻐끔거리며 시선이 아키테루 쪽으로 옮겨갔다. 아키테루는 조금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아…… 그랬어? 같이?”

 마지막 단어에 실리는 무게가 달랐다. 츠키시마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끝까진 못 갔어. 중간까지 갔다가 돌아왔거든.”

 스가와라가 츠키시마를 나무라듯 바라보았는데, 츠키시마는 아키테루를 살피느라 눈치 채지 못 했다.

 “그러니까, 여전히 너무 멀어서.”

 “나중에 같이 차타고 가자.”

 아키테루의 목소리가 느슨해졌다.

 “걸어가는 거 말고. 나 면허도 있고 졸업하면 친구에게서 빌릴 수 있으니까.”

 “차타고?”

 “응, 같이.”

 같이, 를 말할 때 아키테루의 시선이 잠깐 스가와라에게 머물렀다. 스가와라는 웃기만 했다. 츠키시마의 발등을 약하게 툭, 하고 쳤다. 그만 좀 하라는 듯 툭, 반격이 돌아왔다. 츠키시마가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스가와라가 입모양으로 말했다. 싫어.

 “슬슬 나가야겠다.”

 아키테루가 텐션을 끊었다. 스가와라와 시선을 교환하던 츠키시마가 고개를 들었다.

 “형 오늘도 나가?”

 “응, 금방 들어오겠지만.”

 “그렇구나.”

 츠키시마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스가와라가 몇 번 더 그릇을 끼적이다 일어났다.

 “잘 먹었어, 츠키시마.”

 “아, 네.”

 츠키시마가 따라 일어났다. 싱크대에 남은 찌꺼기를 흘려버리고 물에 접시를 담갔다. 아키테루는 가방을 메고 나갈 채비를 했다. 츠키시마가 접시 통에 물을 받다 말고 뛰어나갔다. 스가와라는 느릿하게 따라 나오다가 현관 복도 중간쯤에 멈춰 섰다. 둘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키테루는 스가와라의 시선을 의식했지만 평소처럼 굴었다. 손을 뻗어 츠키시마의 뒤통수를 붙잡고 목을 주물렀다. 츠키시마가 눈을 내리깔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스가와라와 눈이 마주쳤다. 아키테루가 츠키시마의 시선을 따라 스가와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가와라는 츠키시마 대신 아키테루를 보았다. 시선을 받아치며 웃었다. 성격 나쁜 스가와라의, 배설감과 후련함이 뒤섞긴 예의 그.

 “형, 다녀 와.”

 츠키시마가 고개를 돌려 다시 아키테루를 바라보았다. 아키테루는 웃지 않았다.

 “응.”

 그는 다시 한 번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걸어서 거기까지 간 거면 멀리 간 거라고 생각해.”

 “응?”

 “그러니까.”

 아키테루가 이해하지 못 하고 얼굴을 찡그리는 츠키시마를 다정하게 내려다보았다.

 “송전탑 말이야.”

 스가와라는 이성을 놓고 솔직하게 굴지 잠시간 자신을 저울질했다. 곧 스가와라의 이성이 풍선처럼 위로 붕 떠올랐다.

 “괜찮아요.”

 스가와라가 상쾌하게 말했다.

 “우린 더 먼 곳에 다녀올 거거든요.” 

 

 층계를 올라가는 동안 스가와라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츠키시마에게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츠키시마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스가와라에게 들켜버린 것만 같았고 동시에 들켜버릴 것도 같았다. 하지만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스가와라는 진이 빠진 것처럼 침대에 주저앉아버렸다. 자조적인 목소리를 냈다.

 “아, 답지 않았다…….”

 츠키시마가 불을 키려고 하자 스가와라가 제지했다. 문도 닫아줘. 조용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츠키시마는 어둠 속에서 스가와라의 표정을 읽어보려 애썼지만 실패했다. 스가와라는 정말이지 여러모로 영악하단 생각이 들었다. 약하거나 드러날 땐 숨기거나 어둠으로 숨어버린다. 그런 걸, 왜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만 그것을 독촉하거나 조를 수는 없었다. 츠키시마와 스가와라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고, 사실 세상엔 그것을 요구할 수 있는 관계란 없는 것이다. 연약함이란 결국 자발적 성질을 가지고 있고 원하지 않는 상대에겐 충실히 감춰두고 수비한다. 때론 원하는 상대에게도.

 “선배, 너무해요.”

 “뭐어?”

 스가와라는 기가 차단 목소리였다.

 “츠키시마,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구?”

 “어째서요.”

 “아까 뒤통수 맞은 것 같았단 말이지.”

 스가와라가 몸을 뒤척였다. 츠키시마는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어둠이 눈에 익자 스가와라가 저를 짓궂게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날 멋대로 수영부에 넣어버리다니.”

 “아, 그건……. 형이 그냥 제가 수영부라고 알고 있어서 그래요.”

 “왜?”

 “현상유지… 랄까.”

 츠키시마가 안경테를 매만졌다.

 “형이… 제가 더는 수영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 실망할 것 같아서.”

 “네가 나한테 실망한 것처럼?”

 “좀 달라요.”

 츠키시마는 뜸을 들였다.

 “형이 제가 달라졌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안 될 것 같아서요.”

 “흐응.”

 스가와라가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현상유지구나.”

 “형도 수영을 했었거든요. 저한테 가르쳐주기도 했었고… 어쨌든 따지고 보면 제가 첫 제자인 셈이니까. 첫 제자가 계속 수영을 하고 있는 편이 더 좋잖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츠키시마는 변명도 정말 서투르네.”

 “이번엔 진짜 같은 거짓말이라던가, 그런 생각으로 한 건 아니니까.”

 츠키시마가 책장 쪽으로 손을 뻗었다. 긴 손가락으로 촘촘히 훑었다. 책장 한 칸이 전부 작은 비디오 클립으로 빽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20XX.04.16. 20XX.04.20. 20XX.04.26……. 아키테루의 춘분 대회 기록물이었다.

 “비디오네.”

 “형 거예요. 중고학생 때도 선수였었거든요.”

 츠키시마가 설명했다.

 “중학교 3학년 대회는 전부 제가 찍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츠키시마는 일종의 예감을 받았다. 어쩐지 방금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고개를 돌리자 스가와라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시선이 마주쳤지만 그것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스가와라의 시선을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지, 그래서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지.

 “츠키시마는.”

 스가와라가 몸을 일으켰다.

 “가끔 이상한 쪽으로 둔해서 약 올라.”

 “그런가요.”

 “그래도 화가 나지는 않아.”

 스가와라가 츠키시마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츠키시마가 조금 뒤로 물러났다. 등에 책장이 닿았다. 공간이 없자 몸과 몸이 바짝 붙었다. 스가와라는 츠키시마의 어깨에 손을 얹어놓았다가 미끄러뜨려서 그대로 껴안았다. 츠키시마가 허둥거리며 스가와라의 등을 붙잡았다.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렸다.

 “츠키시마, 계속 하는 거야.”

 속삭임은 경고문처럼 츠키시마의 허연 머릿속으로 까만 글자가 되어 문장처럼 쓰여졌다. 

 “아주 멀리까지 가는 거야.”

 “…….”

 츠키시마는 대답 대신 머뭇거리다가 이내 힘주어 그를 안았다. 스가와라의 낮은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귓가를 간질였다.

 둘은 입을 맞추면서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혀를 섞기 시작하자 정신이 반쯤 날아갔다. 츠키시마는 헐떡거리면서 쫓아갔다. 다리에 힘이 풀릴 무렵 침대 위로 엎어졌다. 스가와라는 위로 올라타자 두 손으로 츠키시마를 가둔 채 천천히 입술을 빨았다. 공들여 머금고 핥고 쑤시고 비볐다. 각도를 비틀며 안경에 닿지 않고도 능숙하게 해냈다. 츠키시마가 더듬거리며 스가와라의 가슴께를 붙잡고 엉성하게 단추를 풀었다. 스가와라가 입을 맞춘 채로 웃었다.

 “애써줘서 고맙네.”

 스가와라는 제 단추 쪽에 붙은 츠키시마의 두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매만지다가 이내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리곤 제 손으로 단추를 풀었다. 여유롭고 허둥거리지 않아서 오히려 능숙하게 보였다. 하지만 츠키시마의 단추를 풀어줄 때는 조금의 허둥거림이 있었다. 둘은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정신없이 호흡을 주고받았다. 뜨거운 아랫도리가 얇은 하복 천 너머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비벼졌다가 떨어졌다가 하면서 애타게 만들었다. 츠키시마가 끙끙거리자 스가와라가 밭은 숨을 뱉어냈다. 눈을 꼭 감고 손으로 더듬었다. 촉수처럼 얼굴과 얼굴을 기며 마구 흘러 다녔다. 둘은 들썩이면서 뒹굴었다. 허물처럼 옷을 벗어던지고 언어 대신 혀를 주고받았다. 몸이 노곤해질 때까지 삽입하지 않고 몸에 물기가 어릴 때까지 구석구석 꼼꼼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신중히 들어왔다. 츠키시마의 눈앞이 허옇게 물들었다.

 “아, 아……!”

 스가와라가 뜨거운 뺨을 비비며 눈을 감았다. 움직일 때마다 허우적거리는 발을 허리에 둘러주었다. 츠키시마는 흔들리면서 손을 더듬거렸다. 붙잡을 것을 찾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승모근, 날개 뼈, 소원근, 견갑골……. 미끄러져 내릴 때마다 등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스가와라가 츠키시마의 손목을 붙잡아 내팽겨 쳤다. 간지럽다는 얼굴로 빤히 내려다보았다. 츠키시마는 얼굴을 찡그렸다. 안경이 어디로 갔는지 시야가 흐릿했다. 스가와라의 얼굴이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스가와라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감각이 붕 떠올라서 끊임없이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공중으로 분해되고 있었다. 흔적이 되어 떠다니고 있었다. 빛이 되어 전송되고 있었다. 붉게 깜빡이며 어딘가로부터 어딘가까지. 아득히 멀지만 누군가가 발견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곳까지.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갈 수 있었을까…….

 둘은 정신없이 뒹굴며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부드럽게 유영하며 출렁거렸다. 츠키시마는 뒤집혀져 스가와라의 위에서 헐떡이는 동안 창문 너머로 깜빡이는 붉은 점을 마주칠 수 있었다. 닿을 수 없는 곳에 닿아버리고 마는 꿈을 꾸었다. 그런 곳을 언젠가는 메워나가야만 하는 것일까? 불확신은 확신으로 극복해야만 하는 것일까? 스가와라의 촉촉한 입술이 닿았을 때, 츠키시마는 눈을 감는다. 그러자 불빛은 없고 어둠만 남았다. 그 속에서 빛을 선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스가와라 뿐이었다.

 

 11.

 태풍 때문에 방학식이 단축되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야 아오모리 현에 닿은 태풍은 인근 앞바다를 완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곤 수천만 엔에 달하는 정화조 기계를 완전 박살내놓았다. 파도에 떠밀려온 해파리 떼들이 파이프와 망 사이사이에 진득하게 들러붙어 작동을 방해했다. 아지가사와 고교 수영부도 근 삼일 간 연습을 쉬기로 결정했다. 야마구치는 수영장에 이물질이 들어와서, 태풍이 지나가면 뜰채로 모조리 건져내고 수영장을 청소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부원들이 엄청 귀찮아해.”

 야마구치가 지역 신문 사이트에서 기사 몇 개를 찾아 츠키시마 앞으로 밀었다.

 “해파리 떼 때문에 난리인가 봐. 우리 수영장에도 들어왔을 지도. 그럼 수포에 쏘이지 않게 조심해야 할 텐데.”

 바람이 아주 세게 불었다. 창가를 두들기는 빗줄기가 요란하다 못해 위협적이었다. 학생들은 강당에 모이는 대신 모니터로 교실에서 방학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창문이 흔들릴 때마다 공포와 걱정이 가득한 눈들이 옆으로 돌아갔다. 츠키시마는 고개를 숙이고 야마구치가 보여준 지역 신문의 헤드라인을 검색했다. 그러니까 먼 바다의 해파리 떼가 정말로 이곳까지 떠밀려 왔다는 것이다. 첨부된 사진 몇 장을 훑다가 홀드를 내렸다. 교장의 훈화가 끝나가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복도 쪽에서 어슬렁거리는 익숙한 더듬이를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자 스가와라가 입모양으로 뻐끔거렸다. 츠키시마, 앞을 봐. 나 들키겠어.

 종이 치자 스가와라는 아이들을 피해 잠깐 계단통 뒤에 숨어 있다가, 츠키시마만 남은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츠키시마는 괜히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어쩐 일이세요.”

 “수영장 가자고.”

 “예?”

 “우리 학교 수영장에 해파리 들어왔다던데.”

 스가와라가 눈을 반짝였다.

 “츠키시마는 몰라?”

 “아니… 듣긴 했는데.”

 츠키시마가 확신 없는 투로 말했다. 

 “꼭 그래야 할까요?”

 “송전탑은 보러가면서 해파리는 싫다, 이거야?”

 스가와라는 과장되게 울상이었다.

 “너무하네, 츠키시마는…….”

 “그게, 아니라요.”

 츠키시마가 변명거리를 찾았다.

 “집에 빨리 가야하지 않나요. 그러니까, 밖이 저렇게 시끄러운데.”

 “재난 같은 건 하나도 무섭지 않아.”

 스가와라가 츠키시마의 손을 끌었다.

 “잠깐만 보고 오면 아무 문제도 없어.”

 둘은 계단을 내려와 2층 복도로 들어섰다. 통유리 너머로 바깥은 난리법석이었다. 과연 태풍의 바람이었다. 수영장 물이 파도치면서 출렁거리고, 사방은 먹구름으로 깜깜했다. 츠키시마, 저기, 하고 스가와라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츠키시마는 통유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눈을 가늘게 떴다. 수면 아래에 무언가 있었다. 츠키시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해파리가, 대충 여섯 마리. 여섯 마리가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막 떠오른 발광 해파리 개체 이름을 불렀다.

 “라스톤 루나?”

 “스텔로 빅토리아일지도.”

 스가와라가 대답했다.

 바람 때문에 문을 열기 쉽지 않았다. 둘은 바람에 맞서며 수영장 안으로 들어섰다. 파도 속에서 출렁거리는 해파리들이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잘 모르겠다, 라고 스가와라가 말했다. 바람소리 때문에 그 뒤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예?”

 츠키시마가 되물었다. 안경으로 자꾸 물방울이 튀어서 세계가 얼룩덜룩해보였다. 스가와라의 등으로 축축한 교복이 달라붙었다. 바람에 마구 은빛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전에 봤던 것보다 빛을 덜 내는 것 같은데.”

 스가와라가 발을 뻗어 수영장 바깥쪽 물을 첨벙첨벙 찼다. 츠키시마가 스가와라 쪽으로 달려와 손을 붙잡았다. 비바람이 마구 둘을 후려쳤다.

 “선배, 위험해요. 우리 그냥 들어가요.”

 “츠키시마, 쟤네 아까보다 더 빛나는 것 같지 않아?”

 츠키시마는 수영장 속의 해파리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것도 같았고 아닌 것도 같았다. 세상이 요란해서 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시시각각 뒤틀리는 풍경 속에서 무언가를 비교하기란 쉽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두려움을 느꼈다.

 “잘 모르겠어요.”

 “한 번만 더 해볼까?”

 츠키시마는 스가와라의 이상한 무모함이 무서웠다.

 “선배, 그냥 들어가요.”

 “한 번만 더 해보자.”

 “선배.”

 “츠키시마, 나는 도망치지 않아.”

 스가와라가 말했다.

 “현상유지 하는 걸 내버려두거나 차를 태워줄 테니 기다려달라고 말하지 않는단 말이야. 알아들어?”

 츠키시마의 몸에서 온 힘이 쭉 빠져나갔다. 스가와라가 가볍게 손길을 뿌리치고 발을 담갔다. 첨벙, 첨벙거리며 마구 휘저었다. 비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츠키시마는 스가와라의 옆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선배, 아니에요.”

 이번엔 츠키시마는 변명하려 하지 않았다.

 “저는, 그러니까,”

 그 때, 스가와라가 미끄러졌다. 놀란 츠키시마가 손을 뻗었지만 곧 함께 휘청거렸다. 두 소년은 비바람에 떠밀려 수영장으로 떨어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순간 세상이 조용해졌다. 번개가 쳤다. 

 틈.

 수면 아래가 일순 허옇게 밝아졌다. 아주 짧은 순간, 물속에서 츠키시마가 눈을 깜빡였다. 스가와라가 고개를 돌려 수영장 한가운데를 보고 있었다. 해파리들이 모여 있었다. 빛을 내지 않았다. 다음 순간 천공이 무너졌다. 굉장한 진동이 수면을 뒤흔들었다. 해파리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츠키시마와 스가와라는 동시에 숨을 멈췄다. 수영장 한가운데로 파도치듯 연약한 몸체 곳곳으로 허연빛이 스며들었다. 은은하게 퍼져나가 출렁이듯 반짝였다. 스텔로 빅토리아들이 마구 촉수를 흔들었다. 스가와라가 고개를 돌려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입가로 쿡, 하고 웃음소리를 닮은 물방울이 떠다녔다. 둘은 수면 위로 솟구쳤다.

 푸하.

 “츠키시마, 봤어?”

 스가와라가 깔깔 웃었다.

 “봤어?”

 츠키시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번 더 번개가 쳤다. 세상이 빛에 감싸였을 때, 츠키시마는 축축한 스가와라를 끌어당겼다. 입을 맞췄다. 천둥이 쳤다. 그것은

 정말이지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요

 

 천공이 무너지다 말고 재조립 되었다. 해파리들이 출렁이는 박자에 맞춰 마구 반짝거렸다. 둘은 다시 숨을 멈췄다. 츠키시마의 혀는 아주 부드럽고 솔직했다. 변명 한 톨 없었다. 혓바닥 돌기 하나하나가 입천장을 쓸고 비볐다. 스가와라가 츠키시마의 두 뺨을 붙잡고 밀어붙였다. 둘은 점점이 반짝이는 수영장에서 그렇게 오래도록 입을 맞추고 있었다. 끝나지 않는 여름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랜 마법이었다.

 

 “수건 네 장인데… 더 드릴까요.”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츠키시마가 물었다. 수영부 락커 문에 명찰이 붙어 있었다. 스가와라는 한자를 읽었다.

 “야마구치…….”

 “타다시.”

 “아, 타다시라고 읽는구나.”

 츠키시마가 스가와라에게 수건 두 장을 건네곤 야마구치의 락커를 닫았다.

 “일전에 말한 그 친구지?”

 “네.”

 “한 명밖에 없는?”

 츠키시마는 조금 열 받았지만 정말이었으므로 달리 반박할 말을 찾지 못 하고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

 둘은 물기를 대충 닦아내곤 축축한 머리카락 위로 수건을 얹었다. 야마구치의 락카에서 뜯지 않은 포카리스웨트 한 병을 꺼내 스가와라에게 내밀었다. 이렇게 마구 써도 돼? 스가와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받아들이곤 뚜껑을 땄다. 츠키시마는 바닥에 주저앉아 통유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허연 물그림자가 바닥 전체에 깔려 출렁이고 있었고 바깥의 바람은 여전히 거세고 위협적이었다. 스가와라도 츠키시마 옆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음료수를 넘겼다. 받아든 츠키시마가 몇 모금 마셨다.

 “엄청나네.”

 스가와라가 수영장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복도는 어두컴컴해서 모든 게 흐릿했다. 복도 끝에서 비상구 등만 녹색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이 빠져나간 학교는 그렇게도 조용했다.

 “저게 학교를 지나가면 밖으로 나가요.”

 츠키시마가 대꾸했다. 뒤집혀지고 흔들리고 휩쓸리고 출렁이는 바깥과는 달리 내부는 몹시 조용하고 고요해서 위화감이 들었다. 아까까지 저 바깥에 있었고 수영장에 퐁당 빠졌다는 게 믿겨지질 않았다. 츠키시마는 음료수를 한 번 더 마셨다.

 “태풍마다 이름이 있다는데.”

 스가와라가 혼잣말을 했다.

 “이번 태풍 이름은 뭐려나.”

 “네파닥.”

 스가와라가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네파닥이래요.”

 츠키시마는 안경테를 매만지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뉴스에서 봤어요. 미크로네시아라고, 섬나라에서 지었대요.”

 “무슨 뜻이래?”

 “그 섬나라의 어떤 전사의 이름.”

 “전사라면, 뭐, 창 들고 싸우는?”

 “네.”

 스가와라는 과연, 하고 중얼거렸다.

 “저런 것에도 이름을 붙인다니, 정말 쓸모없게 느껴진다.”

 “그런가요.”

 “응, 츠키시마라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

 “…….”

 “그래도 이름을 붙이면 뭐랄까, 태풍마다 구분이 되니까 그런 거겠지?”

 “그런 거면 숫자나 알파벳을 붙여도 좋을 텐데.”

 츠키시마가 솔직하게 중얼거리자, 스가와라가 웃었다.

 “그래도 A19이런 것보단 네파닥, 같은 이름이 붙은 게 더 기억하기 쉬워서 그런 게 아닐까?”

 “기억하기 쉬워서요?”

 “응, 기억하려고.”

 둘은 잠깐 말없이 단단한 유리창 너머의 수영장을 바라보았다.

 “있지, 츠키시마. 이번 태풍에 우리도 이름 같은 거 붙여볼까?”

 스가와라가 제안했다. 츠키시마는 어물거렸다.

 “아… 꼭 해야 하나요.”

 “그럼 나 혼자 붙일까?”

 “별로…….”

 “츠키시마라고 붙이면 츠키시마, 질색할 거지?”

 츠키시마가 온힘을 다해 질색했다.

 “싫어요.”

 “그럴 줄 알았어.”

 스가와라의 허연 손가락이 바닥을 두들겼다.

 “음, 그럼 뭐로 하지. 난 츠키시마의 이름을 붙이고 싶은데.”

 “왜요?”

 “이번 여름엔 츠키시마랑 만났으니까.”

 그 말엔 과거의 계절과 앞으로의 계절이 배제되어 있어서 더욱 특별하게, 동시에 더욱 소외감이 느껴지게 만들었다. 츠키시마는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제 이름은 싫어요.”

 “그래?”

 스가와라가 고민했다.

 “그럼 네 이름이 아닌 거면 되는 거지?”

 “아… 그건 들어보고…….”

 “그런 게 어디 있어.”

 스가와라는 이미 마음을 결정한 눈치였다.

 “난 저기에 츠키시마를 닮은 걸 붙일 거야.”

 “뭘요?”

 “내가 찾은 해파리 이름.”

 스가와라가 눈을 반짝였다.

 “라스톤 루나.”

 츠키시마가 태클을 걸 타이밍이었다. 스가와라가 손을 뻗어 츠키시마의 손등 위에 얹었다. 츠키시마는 정말로 약았다고 생각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타이밍이 넘어갔다. 이제 저 태풍의 이름은 라스톤 루나다. 일본 아오모리 현내 아지가사와 고교 3학년 스가와라 코우시 지음. 

 “선배, 저 질문 하나만 더 해도 돼요?”

 “뭔데?”

 “혹시 5월 언젠가에.”

 츠키시마는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

 “현립 수영장에 간 적 있어요?”

 비바람이 통유리를 마구 때렸다. 요란하게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다리를 안은 채로 눈앞의 풍경이 뒤틀리는 걸 가만히 응시했다.

 “츠키시마.”

 스가와라가 입 꼬리를 올렸다.

 “너 진짜 짜증나.”

 “…….”

 “그래도 용서할게.”

 어디서 짜증이 났는지 짐작하지 못 한 츠키시마가 입을 다문 채 잠자코 들었다.

 “그러니까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애쓰진 말아줬으면 해.”

 츠키시마가 달리 할 말을 찾지 못 하고 대답했다.

 “……네.”

 잠깐의 침묵이 있은 후, 스가와라가 자세를 뒤척이며 다리를 쭉 뻗었다. 축축한 교복바지 아래로 발목이 드러났다. 얇고도 단단한 굴곡이 빛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츠키시마가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는데, 스가와라가 입을 열었다.

 “난 가본 적 없어. 네가 잘못 본 거야.”

 “…진짠가요?”

 “그래, 진짜야.”

 스가와라의 목소리에 웃음이 배어있었다.

 “츠키시마를 걸고 맹세할게.”

 “왜 절 거는 건가요.”

 “보통 이런 건 잃기 싫은 걸 걸잖아.”

 바람이 잦아들었다. 츠키시마는 성애(性愛)를 느꼈다. 맥락은 없었고, 머릿속엔 하얀 발목만 남았다.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조용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붙잡고 싶었고 확실히 물어보고 싶었다. 진심을 박제해서 오래오래 마음에 남기고 싶었다. 스가와라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선배.”

 츠키시마가 물었을 때, 창문을 때리던 바람이 일순 고요해졌다.

 “저희 사귈래요?”

 “…….”

 스가와라는 대답이 없었다. 받아준다거나 거절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츠키시마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츠키시마가 마른 침을 삼켰다. 스가와라는 다시 다리를 끌어안고 무릎에 얼굴을 벴다.

 “그 전에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스가와라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건조했다.

 “츠키시마는 나를 통해 누구를 봐?”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츠키시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려 애썼지만 실패했다. 치부를 드러내고 만 사람의 표정이 적확하게 떠올랐다. 스가와라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하하, 건조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러니까 말이야. 왜 나는 라이벌 같은 게 있는 사람을 좋아해버린 걸까.”

 스가와라가 눈을 내리깔고 수영장을 바라보았다. 츠키시마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한 번도 그런 사람 좋아해보려고 노력한 적 없었는데.”

 “…….”

 “왜 츠키시마는 항상 예외가 되는 걸까나.”

 그건 츠키시마도 마찬가지였다. 스가와라는 츠키시마의 예외였고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츠키시마는 스가와라 같은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키테루를 사랑했지만 마음을 방치해버려서 너무 먼 일이 되어버렸다. 잡을 수 있던 타이밍을 놓치고 흘러간 일이 되었다. 츠키시마가 잡으려고 했지만 아키테루가 밀어냈다. 아키테루는 츠키시마에게 자꾸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런 이후론 츠키시마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사랑도 수영도 거리를 두고 싶었다. 익숙해져서 식어버리는 일이 생기고 말까봐 두려웠다. 아키테루의 ‘나중’에 도달했을 때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스가와라는 정말로 모든 마음의 예외였다. 갑자기 나타나서 갑자기 빛이 났고, 한순간에 사로잡아서 그를 쥐고 흔들었다. 담배를 태웠다가, 사라졌다가, 해파리를 보여주겠다고 끌고 갔다가 네가 보고 싶은 걸 보자고 버스를 탔다. 아키테루가 먼 미래를 약속하는 동안 스가와라는 오직 지금, 이라고 말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지금. 그러니까 저 태풍엔 네 이름을 붙일 거야.

 “아니에요.”

 츠키시마가 스가와라를 통해 분명 누군가를 보았더라면 그것은 아키테루가 아니었다.

 그것은 츠키시마 케이였다. 

 “선배, 저는,”

 츠키시마가 바라는 이상의 정점에 스가와라가 있었다. 

 “저는…….”

 “츠키시마.”

 스가와라가 스가와라 코우시처럼 웃었다.

 “괜찮아.”

 태풍의 눈이 지나갔다. 바람이 다시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통유리를 요란하게 때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절망을 느꼈다. 바닥에 구멍이 생겨 한없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스가와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있어.”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12.

 라스톤 루나는 태평양 남서부에서 왔다. 필리핀 동쪽의 해상에서 응집된 저기압은 열대 지방을 차례로 거치며 몸집을 불린다. 그 거대한 응집체는 풍속 35m/초의 나선을 끌고 대만 끄트머리를 거쳤다가 한국을 지나쳐 일본으로 다가왔다. 예고된 경로가 뉴스로 보도되었으므로 재난 대비책이 마련되었고 아오모리 현의 재산 피해는 예상보다 크지 않았는데, 발전기와 정화조 기계의 고장은 꽤나 타격이 있어서 한동안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아지가사와 고교 수영부는 일주일 간 연습하지 못 하고 넓은 파이프 입구 곳곳에 들러붙은 해초와 해파리들을 제거해야 했다. 풀장에서 뜰채로 건져낸 여섯 마리의 해파리들은 봉투에 담겨 어딘가에 버려졌다. 그 해, 라스톤 루나, 그러니까 네파닥이 가진 위력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정말이지 많은 것들이 부서지거나 무너지고 혹은 다치고 죽었는데, 아오모리에 도착한 그것이 입힌 가장 큰 피해는 어떤 마법을 박살낸 것일 것이다. 츠키시마 케이와 스가와라 코우시는 방학 내내 연락하지 않았다. 메일 주소를 알고 있었지만 둘 다 몇 번이고 고민하다 휴대폰 홀드를 내렸다. 전화도 메일도 없는 둘의 관계를 무어라 부르면 좋을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어떤 것은 그 날, 거대한 태풍의 눈이 아지가사와를 지나던 그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주 투명하고도 습윤한 것. 성애 혹은 동경 혹은 사랑, 그리고 확신이 없던 연애 따위라고 불러도 좋겠다. 어쨌든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오모리를 지난 열대지방의 공기는 마침내 중위도의 낮은 바다를 지나 잠열을 잃고 약해지더니, 종국엔 온대성 저기압으로 바뀌며 차차 풀어졌다. 라스톤 루나는 공식적으로 그 해 8월 21일 오후 8시 25분 경 그렇게 세상에서 소멸되었다. 그리고 흐지부지한 가을이 시작되었다. 중간고사가 오고, 기말고사가 왔다. 츠키시마는 여전히 수영부에 들지 않았고 야마구치는 페이스 조절 법을 익혔다. 풀장 시작부터 끝까지 조금 느리지만 꾸준하게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츠키시마는 좋은 성적을 받아 예비 진학 반에 배정됐다. 창가로 보이는 나무들이 조금씩 앙상해졌다. 스가와라가 좋은 대학에 붙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은 대입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초겨울 무렵이었다. 센터 시험을 합격했다고 들었다. 스가와라는 여름 이후 아르바이트를 관둔 것인지 같은 버스를 타지 않았다. 어쩌면 츠키시마 때문에 다른 것을 탑승하는 걸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 뒤에도 스가와라를 마주칠 일은 종종 있었지만 대면할 기회는 없었다. 둘은 악착같이 서로를 피하려고 노력하기 위해 서로를 악착같이 의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츠키시마는 스가와라를 마주칠 때마다 해명하고 싶었고 동시에 그렇게 가버렸기 때문에 영영 입을 다물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니까 츠키시마는 스가와라와 그렇게 된 이후로 여름방학 동안 저녁 시간을 비워놓은 적이 없음을, 아키테루와 수영하기 위해 수영장에 가지 않았음을, 그럴 수 없었음을 스가와라가 알아주었으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무언가를 할 수 있었던 시절은 끝나버렸다. 라스톤 루나는 세상에서 소멸하고 뜰채에서 건져 올린 해파리들은 봉투에 버려지며 스가와라는 대학에 합격한다. 그런 전개가 계속되었다. 아, 삶은 참으로 지루하구나, 라고 말할 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졸업식이 다가왔으므로 츠키시마는 절로 결말을 떠올렸다. 스가와라에게 연락을 해보려 한 건 그쯤이었는데, 결국 메일을 보내지 못 하고 그만두었다.

 졸업식 날엔 짧게 비가 왔고 바람이 조금 불었다. 이른 오후에 그쳤다. 츠키시마는 강당에 앉아 삼학년 졸업반 어딘가에 있을 낯익은 은색 뒤통수를 찾아보려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냈다. 스가와라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조곤조곤 떠들고 있었다. 누군가들은 몇 분 간격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 속의 스가와라는 아주 외로워보였다. 츠키시마는 시선을 떼지 못 하고 바라보았다. 군중 속엔 오직 자신과 스가와라만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나머진 어두운 조명 속에 가려지고 오직 스가와라와 츠키시마만이 양지에 앉아 있는 것이다. 축사와 조례가 끝나고 훈화가 막바지에 달했을 무렵 삼학년 학생들이 일어났다. 스가와라가 몸을 돌려서 츠키시마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곤 할 말을 잃었다. 뒤통수를 몇 번이고 후려 맞은 것 같이 멍해졌다. 스가와라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정말이지 멀쩡해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나 외로워 보이는데. 츠키시마가 없어도 똑같은 얼굴로 웃을 수 있다니. 그런 진부한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츠키시마의 안에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었다. 소멸되지 않은 태풍이 마구 뒤집고 휩쓸고 박살내고 떨어뜨리고 부수고 있었다. 이름이 붙어버려서 잊혀질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는 존재가 한가운데에 있었다. 츠키시마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츠키시마, 하고. 츠키시마, 하고. 츠키시마…… 괜찮아. 그러니까 잘 있어.

 안 돼. 츠키시마가 고개를 들었다. 주먹을 쥐었다. 강당으로 삼학년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스가와라를 쫓아 눈이 정신없이 돌아갔다. 츠키시마가 군중 속으로 달렸다. 야마구치가 당황해서 붙잡았지만 뿌리쳤다. 떠밀려 나가는 머리통 속에 은발이 있었다. 츠키시마가 손을 뻗었다. 

 “선배.”

 입모양이 그렇게 움직였다.

 “스가와라,”

 선배. 어깨를 붙잡았다. 스가와라가 멈춰섰다. 군중들이 둘 사이를 두고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츠키시마가 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스가와라의 고개가 뒤로 천천히 움직였다. 어깨가 들썩이며, 하아. 잠깐 세상이 멈췄다.

 “스가!”

 누군가 앞에서 불렀다. 모든 흐름이 깨지고 군중들이 다시 둘을 두고 흘렀다. 졸업생들이 이상하단 눈으로 츠키시마를 훑고 지나갔다. 스가와라는 앞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동급생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이치, 금방 갈게!”

 그런 후, 스가와라는 너무나도 쉽게 고개를 돌려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츠키시마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어깨에서 주르르 흘러내려 아래로 떨어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스가와라의 표정은 균열 하나 없었고 매끈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불던 바람 하나가 끝나고 츠키시마의 안에서, 혹은 스가와라의 안에서 태풍 하나가 소멸되었다. 츠키시마는 이제 하고픈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건 스가와라 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츠키시마.”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렸다.

 “나중에 연락해.”

 “……네.”

 “연락 오지 않아도 실망은 하지 않을게.”

 “……예.”

 스가와라가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츠키시마는 웃지 않았다. 뒤돌아서 가던 스가와라가 머뭇거리며 다시 뒤를 돌았다.

 “저, 츠키시마.”

 츠키시마가 멈춰 서서 돌아보았다.

 “또 보자.”

 츠키시마는 이번에는 대답하지 못 했다. 

 스가와라가 떠나간 뒤 츠키시마는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시선이 쏠렸다가 수그러들었다. 야마구치가 조금 충격을 받은 얼굴로 물었다.

 “너 스가와라 선배랑 아는 사이였어?”

 츠키시마는 스가와라가 떠나간 장소를 오래오래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냥.”

 또 보자.

 “같은 버스 타고 가던 사이 정도.”

 2학년이 되었다.

 

 아름다운 츠키시마 케이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스탠드의 누구나가 숨죽이며 바라보는 순간이다. 야외 수영장의 수면으로 태양이 지난하게 내리쬐고, 야마구치는 그가 놀랍도록 우아하고 부드럽게 한 바퀴를 가로지르는 것을 내려다본다. 타이머를 쥔 채 시간을 재고 기록하고 달려 나가 츠키시마의 축축한 몸 위로 건조한 수건을 얹어준다. 고교 2학년, 츠키시마는 수영부에 들어왔다.

 야마구치 타다시는 츠키시마 케이와 동급생으로, 그의 형 아키테루를 동경해 그와 함께 수영을 시작했다. 친구 츠키시마는 수영에 센스도 있었고 재능도 있었는데, 작년까지는 수영과 거리를 두고 공부를 해 진학 반에 있었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야마구치 역시 크게 조르지는 않았지만 내심 아쉬워하며 수영부 관련한 일이 있을 때면 꼬박꼬박 메일을 넣곤 했다. 답장은 올 때도 있고 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후자였다. 작년 여름 츠키시마의 형 아키테루가 귀가해 수영을 부추긴 모양이지만 츠키시마는 거절했다고 들었다. 그 땐 제법 놀랐다. 아키테루의 일이면 츠키시마는 때때로 상상이상으로 무뎌지곤 했었고, 설령 좋아하지 않더라도 계속 해나갈 수도 있을 거라고 야마구치는 믿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거리를 두던 츠키시마가 갑자기 수영부에 들겠다고 하다니. 그러니까 야마구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츠키시마를 보아왔음에도 그 변화를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츠키시마는 그렇게 거리를 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능숙하고도 편하게 수영장을 가로질렀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꼼꼼히 진행한 후 물속으로 점프해 아주 깊은 지점까지 몸을 가라앉혔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수영장 중간까지 나아갔다. 츠키시마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는 멀리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실히 순간에 임했다. 그는 한 바퀴고 두 바퀴고 세 바퀴고 돌 수 있는 만큼 돌았다가 헐떡이며 솟구쳤다. 그리곤 야마구치를 향해 시간을 묻거나, 페이스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거나 했다. 더는 수영장의 왼쪽, 조금 높은 고도를 바라보지 않았고 야마구치를 둔 채 아주 먼 곳으로 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야마구치는, 츳키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은 것일까, 라고 고민해보곤 했지만 애초에 야마구치는 그가 질문하고 있었는지, 했다면 무엇이었는지, 답이 있는 질문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으므로 무용한 고민이었다.

 야마구치는 종종 츠키시마가 연습이 끝난 수영장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물안경도 쓰지 않고 수영하는 폼도 아니었다. 그는 그곳까지 잰 걸음으로 나아가선, 몸을 둥글게 말고 힘을 쭉 뺐다. 그 상태로 둥둥 떠있곤 했다. 물살에 따라 몸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축축하게 젖은 등이 햇빛을 받아 빛이 났다. 그 모습은 꼭 양수 안에 웅크린 아이처럼 보였다. 조류에 휩쓸리는 플랑크톤류 동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오래 있진 않았다. 곧 츠키시마도 수영장을 비우고 나와 락카에서 수건이며 비타민 드링크를 꺼내 마셨다. 간간이 야마구치에게 새 드링크를 병째로 나눠주기도 했다. 츠키시마 말론 조금의 빚이 있다고 했지만 그 역시 야마구치는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야마구치는 츠키시마에게 락카 자물쇠를 달아놓으라고 충고했다.

 “도둑이 들더라고. 쪼잔하게 음료수만 마시고… 수건도 막 어지럽혀 놓고 그러더라.”

 그러자 츠키시마는 대답 대신 드링크 하나를 병째로 야마구치의 락카로 우겨넣었다. 야마구치가 허둥거리자 “그냥 조용히 받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츳키는 2학년이 되고나선 조금 달라진 것 같아.”

 야마구치는 그런 일들이 어색했다.

 “그래?”

 “응.”

 츠키시마는 순순히 대답했다.

 “네가 그런 거면… 그런가보지.”

 “이것 봐!”

 “야마구치, 시끄러워.”

 둘은 종종 같이 하교하고 예전처럼 수영이나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끔 츠키시마는 대화를 하다 말고 멈춰서 휴대폰을 바라보곤 했다. 아키테루의 메일인 모양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답장을 보내지는 않았다. 사실 야마구치는 츠키시마가 메일을 받았을 때 바로 답장을 보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멈춰서, 오래 읽고, 홀드를 내리려다 한 번 더 읽었다. 

 “형이야?”

 그럼 츠키시마는 느릿하게,

 “응…….”

 이라고 대답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 그렇게 물으면 

 “그냥, 대학 이야기.”

 라고 대답했다. 그런 싱거운 이야기들을 몇 번 주고받은 이후엔 야마구치도 메일들에 관해서는 관심을 끊어버렸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츠키시마는 계속해서 수영을 했고, 야마구치도 마찬가지였다. 선수로 나갈 생각은 없다고 츠키시마가 애초부터 자리를 물렸기 때문에 야마구치는 주전이 되었다. 시험 성적이 조금 떨어졌지만 대회에 나가 동상을 탔다. 츠키시마는 경기를 보러 와줬다. 그러나 돌아갈 즈음 메일 하나를 받더니 “오늘은 같이 못 가겠다”라고 말했다.

 “일 있어?”

 야마구치가 서운한 기색 없이 오직 호기심으로 그렇게 물었다. 츠키시마는 산등성이 쪽을 바라보며, “어, 약속이 생겨서.”라고 대답했다. 그렇구나. 야마구치는 별로 아쉬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봐, 츳키. 츠키시마는 손을 건성으로 흔들다가 정류장 쪽으로 걸어 나갔다.

 

 13.

 「츠키시마, 만날래? 송전탑 앞에서.」

 

 14.

 츠키시마는 혼자 논두렁 샛길을 걸어 나갔다. 시간은 오후 여섯시가 조금 넘었고 아직 해가 지지 않아 주변이 밝았다. 하지만 멀리서부터 땅거미가 기어오르고 하늘이 차츰 하늘색에서 분홍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휴대폰을 몇 번 들락거리며 메일을 연거푸 확인하고 다시 내리고 또 다시 확인하고를 반복했다. 마음으론 계속 망설이고 있었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츠키시마는 키를 키우고 있는 벼와 웅장해지는 나무 그림자들을 계속해서 지났다. 산등성이가 아주 미세하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송전탑들이 드문드문 그 위에 얹어져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주변이 점점 더 빠르게 어두워졌으므로 먼 어귀에서 깜빡거리는 붉은 빛을 더 잘 볼 수 있었다. 츠키시마는 그 지점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아주 먼 시간이었다. 너무 조용하고 긴 길이었다. 츠키시마는 그 길을 혼자 걸어 나갔다. 가로등 불빛이 팡, 하고 켜질 무렵 작은 구멍가게를 지나친 츠키시마는 뒤를 돌아 지나온 길을 바라보았다. 흙바닥 사이로 드문드문 잡초가 올라오고, 어둠이 지속되려고 하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빛으로 얼룩이 져있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더니 일곱 시가 훨씬 넘어있었다. 츠키시마는 한 시간 반이나 걸어온 것이다.

 눈앞에 송전탑 실루엣이 우뚝 들어서 있었다. 붉은 불빛이 보다 가까운 곳에서 깜빡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츠키시마는 구멍가게를 지나쳐 계속 걸었다. 논이 끝나고 샛길만 연거푸 이어졌다. 귀뚜라미들이 울기 시작했다. 츠키시마는 풀이 무성한 잡초들 사이에 선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송전탑 앞으로 철망이 쳐져 있고,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 앞에 스가와라가 서있었다.

 “오.”

 스가와라가 기대서있다 말고 일어섰다.

 “차타고 올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요.”

 츠키시마가 주춤거리다 말고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스가와라는 기억 속에서보다 더 키가 큰 것 같았다. 여전히 츠키시마보다 조금 작았지만 어쩐지 그렇게 느껴졌다. 

 “키… 크신 것 같아요.”

 “그래? 안 재봐서 난 잘 모르겠다.”

 스가와라가 손을 털며 츠키시마 쪽으로 다가왔다. 츠키시마는 엉거주춤 서서 스가와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여기서 보자고 하신 거예요?”

 “그냥 문득.”

 스가와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궁금해서.”

 “뭐가요?”

 “불빛이.”

 스가와라가 웃었다.

 “여기까지 갈 수 있나, 하고.”

 “우리가요?”

 “아니, 각자가.”

 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스가와라가 고개를 돌려 철망 안쪽을 가리켰다.

 “츠키시마, 나 저 붉은 빛이 뭔지 알았어.”

 스가와라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메모를 읽더니 다시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액정 빛이 도드라졌다.

 “가공 지선이래.”

 “가공 지선이요?”

 “도선 다발 위에 부착된 도체라더라.”

 “……왜 빛을 낸대요?”

 “응, 그거 말이야. 내가 알아봤는데, 원래 가공 지선은 항상 빛나는 게 아니래.”

 스가와라가 고개를 돌려 산등성이 너머로 이어지는 송전탑들을 바라보았다.

 “봐, 저기 있는 것들은 빛나지 않는데 여기만 그렇잖아.”

 츠키시마는 눈앞의 송전탑을 올려다보았다. 꼭지 부분에서 깜빡이는 붉은 빛이 꼭 야행성 파충류의 눈처럼 보였다.

 “번개로부터 도선 다발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빛을 내지 않는다더라.”

 “그럼 저건요?”

 “내 생각엔 전선에서 흘러나온 전류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

 스가와라가 개인적인 소견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쟤는, 전선에서 흘러나온 전기를 번개로 착각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저건 고장 난 것이로군요.”

 “그래, 번개도 맞지 않았는데 빛이 나니까.”

 츠키시마는 갑자기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그렇구나.”

 츠키시마가 한 번 더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귀뚜라미들이 더욱 맹렬하게 울어댔다. 땅거미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스가와라는 잠시 츠키시마가 무언가를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츠키시마는 송전탑을 올려다보다 말고 천천히 물러났다. 흙을 뒹굴던 돌멩이들이 운동화 아래에서 천천히 뭉개졌다. 흙먼지가 일었다.

 “이제 가요.”

 츠키시마가 말했다.

 “그래.”

 스가와라가 대답했다.

 

 둘은 서로가 다른 시간대에 지나온 같은 길을 함께 걸었다. 송전탑을 등지고 천천히 멀어졌다. 스가와라와 츠키시마의 사이로 무성한 잡초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둘은 구멍가게를 지나쳐 가로등이 듬성듬성 나있는 구역으로 들어섰다. 낡은 트럭 하나가 일차선 도로를 따라 조용하게 지나갔다. 논두렁이 나왔다.

 “대학은 어때요.”

 츠키시마가 물었다.

 “그냥, 잘 지내고 있단 이야기밖엔 없어서.”

 “아, 응. 잘 지내고 있어. 정말 그래서 그렇게 쓴 거야.”

 스가와라가 대답했다.

 “뭐, 내 주변엔 늘 사람이 많으니까.”

 “인기쟁이시네요.”

 “응, 쓸데없을 만큼.”

 스가와라는 농담처럼 흘렸다.

 “고백도 받았는데…….”

 “아.”

 츠키시마는 건조하게 대답하기 위해 노력했고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렇군요.”

 “그렇지.”

 스가와라는 츠키시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푸스스 웃었다.

 “받아주지 않았어.”

 “…….”

 츠키시마는 이번엔 건조해지는데 실패했다.

 “그래요.”

 츠키시마의 목소리를 들은 스가와라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츠키시마의 걸음이 잠깐 멈췄다. 그러나 이내 다시 걸어 나갔다. 이제 스가와라가 조금 앞서고 츠키시마는 뒤에 있었다. 나란했던 행렬이 조금 어긋났다. 스가와라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고 츠키시마는 서두르지 않았다. 둘의 틈은 보다 벌어진 채로 유지되었다.

 츠키시마는 가로등 불빛 아래서 희미하게 보이는 스가와라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역시 스가와라는 키가 큰 것 같았다. 그리고 어딘가 조금은 달랐다. 츠키시마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깨달았다. 스가와라가 예전만큼 빛난다거나 기묘해 보인다거나 붕 떠 보이지 않았다. 세계 어딘가에 잘 정착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 같았다. 사라지기 위해 담배를 피우지는 않을 것 같았다. 

 “츠키시마는 말이야.”

 “예?”

 “어쩐지 황량한 풍경이 어울리네.”

 츠키시마의 발걸음이 다시 한 번 멈추어 섰다. 스가와라가 그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아까 송전탑에서 말이야. 그런 생각을 했어.”

 “…….”

 “아, 본인이 황량하단 소리는 아니야.”

 스가와라가 조금 허둥거렸다.

 “뭐랄까, 다른 것에 묻혀버려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알아요.”

 츠키시마가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거 뭔지 알아요.”

 “…응, 다행이네.”

 둘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 츠키시마는 아주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스가와라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에 대한 혼란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스가와라는 여전히 스가와라 코우시다. 인기가 많고, 사람들로 감싸여 있고, 존재는 희박해보이면서 존재감 자체는 공고하다. 어쩌면 츠키시마가 수영을 시작해버렸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달라진 것은 츠키시마일 지도 모른다고. 그런 예감이 들자 아키테루가 떠올랐다. 츠키시마는 그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스가와라 선배.”

 “응.”

 “대학에서도 수영은 안 하는 거죠.”

 “응, 그렇지.”

 “제가 수영부에 들었다고 말했었나요.”

 “진짜? 몰랐네.”

 스가와라는 별로 놀라는 투는 아니었다.

 “그렇구나.”

 “네.”

 “나는 사학을 배워.”

 “그렇군요.”

 “응, 인문학 쪽이라 이것저것 연계해서 배울 수 있어서 좋아.”

 “즐거워요?”

 “그럭저럭.”

 “다행이네요.”

 “응, 그렇지.”

 논두렁이 더욱 넓어졌다. 목가적인 풍경에 도시적 요소들이 하나씩 추가되고 주택이 드문드문 들어섰다. 시원한 저녁 공기 틈틈이 밥과 된장국 냄새가 스며있었다. 츠키시마가 보폭을 빨리해 스가와라의 옆에 나란히 섰다. 골목길이 나왔지만 둘은 계속 한 길로만 걸었다.

 “츠키시마.”

 “네.”

 스가와라는 여전히 앞을 보며 말했다.

 “우리 사귈래?”

 츠키시마가 고개를 돌렸다.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골목 어귀의 주택 마당에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

 스가와라는 기다렸다. 둘은 멈추어 섰다. 밤공기의 바람을 맞았다. 한 번 더 개가 컹, 하고 짖었다. 

 츠키시마의 주먹이 둥그렇게 말렸다.

 “죄송…해요.”

 “…….”

 스가와라가 고개를 돌려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츠키시마가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스가와라는 푸스스, 힘없이 웃었다. 

 “그런가.” 

 츠키시마가 마른 침을 삼켰다.

 “……네.”

 “그래도 계속 걸어가자.”

 “……예.”

 그래서 둘은 계속 함께 걸었다. 논두렁은 정말이지 넓고 끝이 보이질 않았다. 어쩌면 송전탑을 향해서가 아니라 논두렁의 끝을 향해서 걸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츠키시마가 눈가를 훔쳤다. 훔치면서 생각했다. 스가와라가, 스가와라가 이 순간 울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스가와라가 울어주지 않는 사람이어서 츠키시마는 좋아했던 것이다. 그것을 동경했다. 스가와라를 원했다. 그렇게 되고 싶었다. 따라잡아서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 여름이 분명 있었다.

 “츠키시마.”

 스가와라는 츠키시마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는 것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수많은 송전탑 중 오로지 한 불빛만을 쫓았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던 거야”

 스가와라의 목소리는 낙인을 찍는 것처럼 결연했다.

 “우리는 거기 도달했던 거야.”

 츠키시마의 어깨가 마구 들썩였다. 두 손으로 울음소리를 떠내어 얼굴에 묻었다. 그러나 걷는 것을 멈추지는 않는다. 스가와라 역시 왜 울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혹은 그만 울라고 말하지 않는다. 꾸준히 어딘가로 걷는다. 그래서 츠키시마는 울음을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정말로.

 

15. 테마곡

모든 거짓속에도
나의 진실한 날을
이젠 잊혀졌겠지만
모두 희미해져있지만…
너와 함께한 그 날에
우린 아직 거닐고 있어
그 날

(중략)

너에겐 스쳐간 바람이겠지만
너와 나의 그 노래를 기억해
너에겐 수많은 흔적들 중 하나겠지만
너와 나의 그 노래를 기억해

 

분명 우리는 교감했던 것 같은데, 뭔가가 우리 사이에 있었던 것 같은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분명 이곳에 있었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어쩔 수 없는 예감이라는 게 있어서, 우리는 잘 되지 못 하고 스쳐간다. 한 시절을 통과한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것은, 예전과 다른 내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보이지 않는 재난들을 겪어나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 나는 이런 감성을 좋아하는데 이 글은 그 감성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함.

먼 훗날엔 두 사람 모두가 어른이 된 채로 만날 지도 모르고 그 무렵에는 츠키시마도 수영을 관두고 다른 삶을 살아갈 테니 어쩌면 그 때의 두 사람은 잘 될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선 이 글은 해피엔딩임.

 

2017/05/26

comments + 0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