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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다르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리하구나. 그런 뒤에는 그의 머리를 차례로 쓰다듬는 손이 있다. 키가 장대만한 어른들의 얼굴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로 칭찬을 받고 있었는지도 희미해져, 지금은 단지 그 순간의 의문만이 남아있다. 영리하다니. 무엇에 대한?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페네쿠스의 할라는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잿빛 실타래의 라이한은 누구나 만족시킬 맛좋은 요리를 한다. 곧은 물병자리의 타드나는 놀라운 솜씨로 장신구를 엮고, 바람거미의 테르마는 아름다운 바구니를 만들 수 있다. 사르다르가 생각하고 판단하기로 마을에는 영리한 아이들이 많다.

 

 그는 자신이 영리한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르다르는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그는 방의 모서리에 서있었고, 그 때문에 시야가 넓었다. 좌측에는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마니와 그 옆에서 작고 반질거리는 돌(아까 마니가 빨고 있던 것이다)을 쥐고 흔드는 슈슈카, 모닥불이 놓인 우측에는 갓난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종려나무의 제드냐와 그녀의 무릎에 매달린 아브틴, 아슬람, 아즈바바가 있다. 각각의 사건은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공간적 개념으로 파악되어, 사르다르는 동시에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집안에서 곧바로 르샤흐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시야를 반쯤 가리는 바구니를 끙끙 들어 옮기는 동안, 르샤흐는 그 호리호리하고 큰 키로 누구보다 빠르게 이 간단한 일을 해치우고는 종적을 감추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런 일은 드물지 않았다. 이전에도 사르다르는 르샤흐와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웃어른들에게 특히 눈길을 받는 아이였던 그는, 또한 마찬가지의 사정이던 사르다르와 결국 팀으로 묶이게 되었다. 이 시기에 어른들은 두 사람이 얼마큼의 일을 해내는지 한 번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이 묶이는 일은 줄어들었고, 이제는 노인 곁에서 돌아가며 육아를 맡을 때나 순번이 겹쳐 만나는 식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그러하듯, 사르다르는 르샤흐에게도 특별히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르샤흐가 남겨놓았던 것─제대로 엮이지 않은 바구니와 곡식을 흘린 항아리, 놓쳐버린 꿩의 발자국과 굳이 가까이 있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르다르는 서툰 아이를 보조하는 일에는 불만이 없었으나, 르샤흐가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건 마아가도 아실 일이다.

 

 밖으로 나온 사르다르는 아직 모래가 따뜻한 오아시스 근방에서 르샤흐를 찾아냈다. 그는 종려나무 아래에 등을 보이고 앉아있었다. 그늘이 더는 필요 없는 시간, 그늘이 사라진 장소에서, 르샤흐는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뒷모습이 뻔뻔할 만큼 느긋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가는 사르다르의 마음도 무척이나 평온했다. 두 사람 간의 거리가 충분히 좁혀지기도 전에 르샤흐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발소리로 사르다르를 알아차린 것이다. 그는 노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평소의 얼굴로 돌아가서 “사르다르”하고 불렀다. 사르다르는 르샤흐 앞에 멈추어 섰다. 그를 이런 식으로 내려다보는 건 처음이었다.

 “돌아가자.”

 사르다르가 말했다.

 “응.”

 르샤흐는 대답하더니 벌렁 누웠다.

 사르다르는 그가 말을 듣지 않는 새끼 양처럼 느껴졌다. 무리를 빠져나온 짐승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사르다르는 그들을 안아 올린 뒤 억지로 무리에 데려다놓고는 했다. 하지만 르샤흐를 안아 올리기엔 너무 무겁다. 그렇군, 그는 새끼 양은 아니다.

 사르다르는 르샤흐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하고 싶지 않구나. 하지만 해야만 해.”

 “맞아, 큰일이야.”

 “네 일을 대신 해주지는 않을 거야. 마을의 규칙이 아니야.”

 “속옷은 모두 정리되었고, 당장은 내가 필요하지 않잖아.”

 르샤흐는 이제 눈을 감고 있었다. 사르다르는 화가 난 척을 할지 고민했다. 그럼 르샤흐는 마지못해 일어날 것이다. 모래를 털고 비척거리며 따라나설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바람이 사구를 옮기듯 어느 순간이 오면 그는 또다시 사라질 것이다. 때로 사르다르는 르샤흐가 언젠가 사막을 건너가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아이들은 이따금 그와 같이 권태감을 갖고 있었다.

 정신이 다른 곳에 있거나 마음을 묶어두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을 잡아놓는 건 마을에 있지만 마을에 없다고 믿어지는 것들인 듯했다. 큰 단위의 숫자(이스니야에는 큰 계산이 필요치 않았고), 그를 이용한 계산(노인들은 대부분 간단한 셈을 가르쳤다), 별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시기(음, 이건 중요하지), 매어놓고 다음 교역을 기다리는 낙타들(하지만 이스니야로 돌아올 짐승들). 더 넓은 세상이라는 지표들(그래, 결국 여기다). 저 멀리 있다고 믿어지는 것들. 사르다르는 그런 아이들을 반드시 찾아내서 결국 데리고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찾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얼마나 떠나게 될까? 얼마나 돌아오게 될까? 사르다르는 눈을 감고 누워있는 르샤흐의 얼굴을 거꾸로 내려다보면서 무릎을 굽혔다.

 “르샤흐. 여긴 재미없어?”

 르샤흐가 눈을 떴고, 사르다르는 흠, 하고 말을 이었다.

 “나도 재미있어서 하는 건 아니야. 해야 해서 하는 것뿐이지.”

 “재미없어?”

 “그래.”

 르샤흐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모래를 털면서 사르다르에게 물었다.

 “그럼 뭐가 재미있는데?”

 사르다르는 르샤흐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그네이의 불평, 네가 만든 이야기.”

 르샤흐가 사르다르의 손을 잡았다. 사르다르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시하브의 계산, 주술사 바르바의 별 읽기, 음. 네가 모래에 써놓고 떠난 문제를 고민해보는 것도 재밌어.”

 사르다르는 르샤흐가 손을 붙잡고 일어서는 것을 도왔다.

 “몇 갠 어렵더라. 오아시스 가장자리의 깊이를 계산하는 거 말이야.”

 거기까지 이야기한 사르다르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쓸모없는 걸 만들지?”

 르샤흐가 사르다르를 쳐다봤다.

 모래 위에 남겨진 숫자를 그저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들이 사르다르 말고도 몇몇은 더 있을 것이다. 그걸 풀 수 있는 아이들 역시 드물지만 사르다르 말고도 몇몇은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에 필요한 건 아니다. 이건 영리함을 판단하는 일과 연결된다. 사르다르는 어느 순간에는 생각을 멈추고 손을 움직인다.

 그는 자신이 영리한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손해 보는 건 싫고 복잡한 일에는 발을 빼고 싶었으니까. 어른들은 경작하고 재배하고 보살피고 만든 것을 나누고 음식이 생기면 어떻게든 이웃집을 돌아다녔지만 사르다르는 가끔 자신만의 것을 갖고 싶었고 애써 찾은 건 혼자 누리고 싶었다. 그 역시도 모래 위에 때로 무용한 걸 쓰곤 했었다. 아주 어릴 때의 일이고, 더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재미있는 건 쓸모없는 거야?”

 르샤흐가 악의 없이 되물었다. 사르다르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음….”

 꽤 오랜 시간을 질질 끌다가 대답했다.

 “고민해본 적 없어. 그건 다음에 대답할게.”

 르샤흐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이제 가야해.”

 주변이 어두웠고, 바람집으로부터 어렴풋한 불빛이 보였다. 사르다르가 앞장섰고 르샤흐가 털레털레 따라갔다. 보폭을 금방 따라잡혔지만 르샤흐는 늘 그렇듯 서두를 생각이 없어보였다. 두 사람은 지평선을 등지고 나란히 걸었고, 바람집에 도착하자마자 자연스럽게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놓고 떠났던 바구니를 들면서, 사르다르는 르샤흐가 이번에는 얼마큼의 일을 해내고 홀연히 사라질지 궁금했다. 언젠가는 이스니야를 벗어나나. 결국 모래 위에 쓰인 질문들이 아이들을 이끌게 되나. 르샤흐를 이끌어 도르시트로, 혹은 그 너머로 데려다놓을까. 사르다르는 확신하지 않는다. 질문하기보다 규칙과 분위기에 따른 지 오래 되었다. 그것이 유용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유용하다는 건 대강 비위를 맞추고 얻는 한 번의 이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이익이 되는 것을 말한다.

 쉽게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 굶주리지 않아도 되는 것, 슬프지 않은 것, 마주보며 웃거나 손뼉을 맞출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사르다르만이 아니라 모두의 사항이었다. 이스니야에서 가장 흔하게 나눔 되는 건 즉물적인 게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다. 사르다르 역시도 가까운 누군가의 슬픔을 위해 고개를 숙이거나 손등을 매만지는 일에 기꺼웠다. 그런 건 아깝지 않았다. 사르다르는 그것이야말로 유용함이고 영리함이라 믿었다.

 ‘오늘 정말 쓸모없는 소릴 많이 했네.’

 하지만 이번에도 질문은 남았다. 르샤흐가 사르다르의 발밑에 남겨놓았으니 그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무용한가? 그건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가 모래 위에 남겨두곤 했던 다른 질문들처럼.

 바구니를 내려놓은 르샤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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