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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나에와 그를 가리켰다. 사르다르는 자신을 가리킨 어른을, 그 다음에 나에를 확인했다. ‘황금 전갈의 막내딸… 조용한 편이지.’ 사르다르는 이 조합에 만족했다.

 그는 나에를 알고 있었다. 면식이 있는 것은 좁고 가까운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므로, 사르다르가 그녀를 알고 있다는 것은 최근 나에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고, 또 그녀가 남자형제들과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타인에게 무심한 그는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많은 정보를 금방 잊어버리곤 했지만-기억은 사르다르에게 있어 두 손바닥으로 떠놓은 모래알과 같다, 그들은 서서히 빠져나가고 사르다르는 그것을 바라본다-주변을 파악하는데 능숙한 성정이 소문과 사정에 밝은 주변머리를 지탱해주었다. 현재와 가장 가까운 이야기들을 통과해가며 이해하는 매순간, 사르다르의 타인에게는 현장성이 생겼다. 하지만 나에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길고 지난한 이야기인데, 정작 말로 정리하면 짧고 사소할 뿐이다. 또한 이것은 사르다르 자신으로 연결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복잡하지만 간단하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것, 이야기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았던가?

 

 하늘이 아직 채 다 어두워지기 전부터 사르다르와 나에는 수로를 향해 걷고 있었다. 어둠은 정말로 신화의 한 장면처럼 망토를 덮듯이 찾아왔고, 두 사람이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에는 머리 위가 어두침침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겁에 질린 양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사르다르는 건물과 나무의 그림자가 늘어나다 못해 기형적인 모양으로 눕고, 마침내는 부피를 늘려 서서히 이스니야 곳곳을 잡아먹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눈을 찡그리거나 손바닥을 이마에 붙여 차양을 만들지 않아도 태양을 똑바로 관찰할 수 있는 경험이라는 데에 생각에 미치자, 사르다르는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섰다. 그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살피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주의 깊게 기다렸다. 하지만 소음, 오로지 소음, 마을 곳곳에서 어둠과 함께 닥쳐온 혼란과 무질서의 소음이 솟구쳐 오를 뿐이었다.

 “이거 조금 섬뜩한 걸.”

 전혀 겁에 질리지 않은 목소리로 사르다르가 말했다. 나에는 딱히 그에 대해 할 말이 없는듯했다.

 “응.”

 그녀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바짝 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닌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어둠이 깔린 골목은 어딘지 낯설었다. 분명 이만큼 걸었으면 수로에 도착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도달하기는커녕 돌아야 할 모퉁이가 두 개나 남아있었다. 밤에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깜깜하고 어두컴컴한 것, 차갑고 냉기가 서린 것, 불이 필요한 공간 따위는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다. 그러므로 골목의 어둠이 두 아이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나에는 확실히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앞서 걷기 시작하더니 호기심이 들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손을 뻗거나 보폭을 크게 만들기도 했다. 사르다르가 위아래로 고개를 움직이는 동안, 나에는 좌우로 시선을 움직여 발과 손이 닿는 환경의 현상을 감지하고 제 나름 판단을 내린듯했다. 반면 하늘이 언제 다시 밝아질 수 있을지 계산하는데 실패한 사르다르는, 현상을 자신의 이해 안에 끌어올 수 없음을 깨닫자 조금 불편해졌다. 그는 앞서 걷는 나에의 등을 보며 물었다.

 “수로 가본 적 있어?”

 나에는 고개를 돌리더니 사르다르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응.”

 나에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보폭을 맞추어 함께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수로를 따라 내려오는 동안 두 사람은 어딘가를 흘끔거리거나 자신의 생각에 가득 차있는 것도 아니면서, 단지 걷고 있을 뿐인 상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다만 그 상태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나에 역시 비슷한 사정인 듯 했다. 마침내 수로가 보일 즈음, 먼저 질문했던 사르다르에게 공을 던지듯, “다 왔네.”하고 나에가 말을 돌려주었을 뿐이다.

 “그러게.”

 이번에는 사르다르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수로에 앉아서 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정말 이상했다. 정수리와 마주보는 꼭대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까만색으로 물들어있는 반면, 둥근 접시를 모래에 엎어놓았을 때 테두리 부분만이 모래알과 접촉하는 것처럼, 땅거미가 지는 지평선의 끝은 누리끼리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침침한 지평선 위로 갑작스럽게 어두워진 하늘이 쪽빛으로 퍼져나가다 까만 부분과 만나고 있었는데, 그 일대가 어떤 자연스러운 과정이 생략된 채 이루어진 불길한 어둠처럼 보였다. 저 어둠 속에서라면 여태껏 감지할 수 없던 세상의 이면이 몸을 뒤척이는 것 하나하나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르다르는 낮이 오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러자 다시 차분해졌다. 이제 사르다르에게 남은 건 이 시간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뿐이었다. ‘노나임 가지고 올 걸.’ 그는 생각했다. 손을 움직일 거리만 있다면 시간을 얼마든지 빠르게 흐르도록 만들 수 있었다. 나에의 손에 들린 노나임을 보자 그 생각은 곧 순간적인 후회가 되었다.

 “무서워?”

 나에는 어느새 사르다르를 보고 있었다.

 “뭐… 무섭지.”

 평온한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그럼 지루한 거야?”

 “응.”

 이번에 사르다르는 정직하게 대답했다.

 “넌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사르다르가 나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어딘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응. 밤이 일찍 찾아온 것 같아. 그래서 신기하네.”

 나에는 담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둠이 눈에 익어, 이제는 나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사르다르는 그녀의 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낮에는 이것보다 빛이 났었지?’하고 생각했다. 그는 곧 시선을 거두었고, 나에도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침묵에 편안하게 몸을 맡긴 채, 각자의 방식으로 어둠을 관찰하며 한동안 시간을 죽였다. 하늘이 이 이상 어두워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자 사르다르는 마을의 풍습 이야기를 꺼냈다. 이쯤 되면 적절하게 실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그는 풍습에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무척 품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을 치고, 울타리를 보수하고, 낙타의 젖을 짜내고, 기름을 굳히고, 노나임을 짜는 일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야기를 전하고, 이야기를 보존하는 일 역시도 이스니야를 유지하는 한 과정이다. 사르다르는 그 과정에 동참할 의지가 있었다. 그런 것을 귀찮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였다.

 사르다르는 자신의 좋은 기억이란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좋은 기억이란 열거될 수 있는, 현재와 가깝게 붙은 사소한 일화들이다. 일상의 순간들. 마법적인 것은 거기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영괴의 밤을 몰아낼 수 있을까? 마음에 빛이라는 게 있다면, 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부싯돌의 번쩍임이 아니라 모닥불에 가까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르다르는 결국 더 먼 곳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기억하기로 꽤 오래 전의 일 중에서도 가장 빛으로 가득 차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나 건져 올렸다. 사르다르는 나에에게 자신이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응, 들을게.”

 나에가 말했고, 둘은 조금 더 가깝게 붙어 앉았다.

 “자드나와 나에 대한 이야기야.”

 사르다르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드나란 샴쉬르 두 자루의 자드나를 말한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사르다르를 낳았고, 그 뒤로 더는 아이를 낳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르다르는 자드나가 어린 자신을 앉혀두고, 문을 활짝 열어 그 앞에 걸린 노나임을 걷어내던 풍경을 기억한다. 노나임을 둘둘 마는 동안 자드나의 주변으로 피어올랐던 작은 먼지, 역광에 감싸인 그녀의 엄숙한 표정 따위가 과장된 채 머릿속에 남아있다.

 “달라질 것은 없단다.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것이 달라질 거야.”

 자드나는 사르다르 앞에 자신의 노나임을 펼쳐놓고, 손가락으로 그 끝을 짚으며 실을 푸는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서둘러 함부로 뜯어내서는 안 된다. 손바닥으로 표면을 쓸어, 매듭이 숨은 지점을 찾아내, 적당한 힘으로 잡아당긴 뒤 재빨리 끊어내야만 한다. 자드나의 부부관계가 그렇게 끝났다. 어느 날 자드나는 집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오더니, 자신이 더는 아즈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반려의 마음을 난도질한 뒤 벌어질 일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않는 것 같다’는 모호한 문장 속에 숨어버리지도 않았다.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를 더는 사랑하지 않았다. 자드나에게는 손바닥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몇 번이고 쓸어보면서 얻어낸 확신이 있었다. 당시 구석에 누워 자고 있던 사르다르는 자드나의 확신의 순간, 매듭을 끌어내 적당한 힘으로 잘라버리던 그 순간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아즈문으로부터 전해들은 그 순간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재구성하면서 사랑에 대한 믿음과 자드나에 대한 인상을 나름대로 재정리했다.

 “하지만 내게는 네가 있고, 난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자드나가 노나임의 매듭을 잘라내며 말했다. 그러더니 노나임의 절반을 풀어 사르다르를 조금 놀라게 했다. 곧이어 그녀는 풀어헤친 실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천천히 짜내려가기 시작했다. 색이 여섯 가지가 되었다. 파란색이 가장 많았다. 자드나는 사르다르에게 “조금 이르지만,”하고 말을 꺼내더니 “이렇게 하는 거란다.”하고 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에게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 둥근 고리를 만들고, 그 안에 실을 집어넣고 당겨 한 영역을, 그리고 다음 영역이 들어올 공간을 만드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뒤 시범삼아 매듭을 만들었다가, 조심스레 집어올린 뒤 단호하게 잘라냈다.

 “하지만 오래된 매듭은 잘라낼 수가 없어. 그럼 전부 엉킨단다. 조심하렴.”

 자드나가 말했다.

 “하지만 아즈문은 가장 끝에 있었어.”

 그래서 잘라낼 수 있었다.

 “나는 여기에 새로운 문양을 넣을 생각이야.”

 자드나가 손으로 가운데보다 조금 쳐진 위치를 가리켰다.

 아마 그때 그녀는 여섯 살짜리 아들을 다리 사이에 앉혀두고 자신의 삶을 풀어헤친 뒤 나름대로 정리해보려고 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르다르가 다섯 살 때의 이야기고, 그것은 그녀에게 조금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이별을 통보받은 아즈문은 그 뒤에도 종종 사르다르를 위해 집을 방문했다. 별거하기 시작한 두 사람은 생각보다 침착하게 서로를 맞아주었다. 아즈문은 말했다. “언젠가는 끝이 있기 마련이란다. 그러므로 때로는 무용하지. 내 마음을 아프게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고통은 결국 유용한 기억에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니었나? 사르다르는 모든 일을 노나임의 끝으로 미루어두고 싶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잘 쓸어내고 신중하게 골라, 필요한 순간에 잘라낼 자신이 있었다. 사르다르는 자드나를 닮았고, 자드나도 그 사실을 알았다.

 “자드나는 아즈문이랑 헤어지면서 노나임을 풀었어. 그리고 새로 짠 노나임의 중앙 아래에 큰 샴쉬르와 작은 샴쉬르를 교차해서 넣었어. 작은 샴쉬르가 나야. 지나가면서 본 적 있을 거야.”

 사르다르는 나에의 황금 전갈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때 나는 매듭을 푸는 일이 쉽다는 걸 알았어. 이게 내 좋은 기억이야.”

 원한다면 사르다르는 자신이 연거푸 노나임을 풀고 새로운 문양을 반복해서 짜 넣고, 또 짜 넣는다는 이야기를 덧붙일 수도 있었다. 그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고, 사르다르로 들어가는 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길고 지난한 이야기이고, 동시에 사소하니까. 게다가 이제는 나에가 말할 차례였다. 밤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네 이야기를 해줘.”

 사르다르가 말했다.

 

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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