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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병갑의 아버지는 복어를 먹고 죽었다. 회사가 막 세워진 참이었다. 전날 회식에서 경영권을 두고 고병철과 짧은 다툼이 있었다. 그의 쪽에서 먼저 공동 회장 소리에 발끈해 병철의 멱살을 잡았다고 주변 사람이 증언했다. 장례식장에 나타난 병철은 눈물을 보였다.

 “병갑아, 이제 우리 둘뿐이다.”

 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에서도 꿋꿋하게 울음을 참던 병갑은 그 소리에 눈물을 흘렸다. 모로 쓰러져 울면서 병철의 어깨를 붙잡았다. 삼촌, 아부지가 하필이면, 하필이면 왜……. 병철의 크고 투박한 손이 병갑의 팔을 토닥였다. 병철의 목소리에는 영악하면서도 다정한 면이 있었다.

 “사업 때문에 우리가 당분간 바쁠 거야. 넌 어리니까 뭘 모를 테고, 그 때까지 좀 내려가 있어라.”

 병갑이 조금만 더 나이를 먹었더라면 “우리”가 누구인지 한 번 더 곱씹어 보았을 테다. 그러나 병갑의 아버지는 복어를 먹고 죽어버렸다. 수산업을 시작한다는 사람의 최후치곤 지나치게 희극적인 면이 있었다. 생선 한 번 제대로 접해보기 전에 비린내 나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그 냄새는 지독하기 짝이 없어서 음모와 의심을 덮어놓았다. 경영권을 잃은 회사에는 당장 노르웨이 선박과 계약한 고등어 2톤과 오징어 몇 백 박스가 있었다. 키 잃은 배를 버리기엔 너무 많은 화물이 실려 있던 셈이다. 합법적 절차에 따라 경영권을 넘겨받은 병철은 마치 준비되어있던 선장마냥 모든 인수인계를 빠르게 마치고 진행 중인 사업의 맥을 이어나갔다. 누구도 그 과정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못했던 걸지도 몰랐다. 고병철의 결백은 그렇게 얼렁뚱땅 증명되었다. 얼마 후 병철은 병갑 아버지의 이름을 붙였던 수산 회사의 이름을 오세안으로 정정했다. 그리고 병갑을 경기도 구석에 박힌 고아원으로 보내버렸다. 배웅은 없었다. 병갑을 그곳에 데려다준 것은 아버지 시절부터 그를 실어주던 운전기사였다. 병갑은 장례식 때와 똑같이 울지 않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병철이 기약 없이 예고한 “좀”을 믿었다. 좀만 있으면 삼촌이 데리러 오겠지. 좀만 있으면 집으로 돌아가겠지. 그러니까 좀만 버티자. 그것은 아버지를 독살했다고 알려진 복어의 맹독처럼 병갑을 조이는 맹독이 되었다. 그래서는 안 됐으나 병갑은 배신감을 느껴야 하는 일에도 서운함을 느끼는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그 성장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복수 대신 용서를 구하는 법뿐이었다. 그러니까 종국에 병갑은 그 독에 죽게 될 운명이었다.

 경기도 구석에 박힌 고아원은 평당 육십 제곱미터 정도 되는 모래밭과 녹슬어 가는 놀이기구를 방치한 채 서서히 부식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버려지고 또 그 와중에도 살아남아 벌레처럼 자라는 존재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고아원이 운영하는 건물은 총 두 채였다. 한 채는 신생아부터 영유아기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라 병갑이 접근할 수 없었다. 그가 배정받은 곳은 소년기부터 성인을 앞둔 청소년들의 쉼터였다. 이름과 달리 그곳은 수용소에 가까웠다. 감옥처럼 설계된 방에 서너 명의 아이들이 몸을 욱여넣은 채 서로를 증오하며 지냈다. 그들에겐 특별한 사춘기 없이 매일이 격동기였다. 걸핏하면 싸움이 났고 그럼 주먹질을 했다. 병갑은 가능하면 조용히 지내고자 노력했다. “좀” 머물다 가는 놈으로 서열에 의미를 두고 싶지도 않았고 괜히 덤벼들어 몸을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지옥에 “좀” 머물기만 하는 놈이라고 생각하는 건 병갑뿐인 것 같았다.

 방을 배정 받은 지 일주일째에 찾아온 한 무리의 소년들이 이유도 없이 병갑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병갑은 얼굴을 맞으면 얼굴을, 복부를 맞으면 복부를 가렸다. 무엇이든 가리고 방어해야 했으나 종국에는 무엇 하나 가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너덜너덜해지는 와중에 병갑은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면서도, 병철에 의해 철저히 버려지면서도 보이지 않던 눈물을 보였다. 서럽게 울면서 구질구질하게 외쳤다. 이 씨빡 새끼들아, 나한테 왜 그래. 씨발, 나한테 왜 그래 이 개새끼들아. 그들은 멈추지 않고 주먹질을 했다. 병갑이 욕을 할 때마다 입을 걷어찼다. 병갑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입에서 자꾸만 침이 왈칵왈칵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병갑이 더는 비명을 지르거나 꿈틀거리지 못 할 때까지 그를 짓밟고 무력하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병갑이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모든 폭력을 멈추고 침을 뱉었다.

 “야. 좆만아.”

 그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놈이 입을 열었다. 병갑은 비실비실 간신히 눈을 떠 그를 응시하려고 노력했다. 놈은 남색 후드를 입고 병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을 밝힌 형광등의 불빛이 흐릿하고 붉게 보였다. 피가 흐르다 딱지가 앉은 모양이었다. 병갑이 눈을 자꾸만 끔뻑거리는 것을 후드가 킬킬거리며 바라보았다.

 “앞으로 우리 보면 인사해라. 너가 첨 와서 여를 잘 모르는 모양인디, 원래 우리한텐 인사를 딱 해야 하거등. 너 같은기 눈깔 딱 뜨고 복도 지나다니니까 좆같잖아.”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그들에게 병갑이 인사하지 않았다. 인사하지 못 하고 지나쳐버렸다. 지나침으로써 그들을 짜증나게 했다. 그런 이유로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였다. 병갑은 이 좁아터진 지옥에 적용되고 있는 사회를 철저하게 이해했다. 억울하고 분하고 고통스러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병갑은 혼자였고 그들은 셋이었다. 병갑이 머뭇거리면서 천장을 응시하고 있자, 후드 옆에 서서 껌을 씹던 소년 하나가 힘껏 옆구리를 걷어찼다. 억, 소리가 절로 났다. 병갑은 웅크린 채로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 침 흘린다, 하고 그들이 와르르 웃어댔다.

 “잘 해라, 알겠지?”

 그런 후 그 묻지 마 폭력범들은 방을 나갔다.

 병갑은 그 날 갈비뼈가 나갔다. 쉼터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엔 아무도 마주칠 일이 없어 인사를 할 일도 없었다. 불 꺼진 병실 천장 위로 솟아오르는 낡은 가습기의 물줄기를 보며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사회와 규칙에 대한 일들이었다. 쉼터에도 나름의 사회와 규칙이 있었다. “곧”을 위해 병갑이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몇 가지가 그를 두들겨 팬 그들에겐 중요했을 게 분명했다. 그들, 그중에서도 후드는 아마 그 사회의 기득권자일 테였다. 세금이 없는 대신 인사와 공포를 거둬가고 있었다. 병갑은 의도치 않게 위법 행위를 저지른 걸지도 몰랐다. 조용하게 살기 위해선 성공적으로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마침내 병갑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병실을 나온 병갑에게 굴욕적인 나날이 이어졌다. 병갑이 자진해서 몇 명의 아이들에게 고개를 숙이자 평소 주먹을 쓰지 않던 패거리까지 그를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잘못된 계산을 하고 말았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디서든 시비가 걸려왔고 어디서든 맞았으며 어디서든 너덜너덜해졌다. 쉼터의 사회는 약육강식이란 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른들이 소유하고 건설한 바깥사회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 사회를 유지하고자 마련된 안전망과 규칙, 최소한의 시민의식과 도덕성이 부재한다는 점에서 무법지대에 가까웠다. 병갑은 폭력에 대한 인내를 배웠지만 그것은 울분을 삭히는 일이었기에 결과적으로 아무 도움도 되지 못 했다. 맞을 때는 울음 한 번 나오지 않다가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울음이 터져 나오는 식이었다. 괜찮아 보였으나 점점 곯아가고 있었다. 인정해야만 했다. 병갑은 밑바닥이었다. 버려졌고 비참했다. 아버지도 없었고 고아들보다 못난 처지였다. 영영 벗어날 수 없을 지도 몰랐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병철에겐 여전히 연락이 없었고 병갑은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 계절이 바뀌어 배정받은 방과 생활하는 아이들의 짝이 바뀌었다. 병갑에게 그것은 새롭게 배정된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한동안 돌아가며 맞고 지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기대는 없었다. 방을 빼면서 물건 몇 가지를 조용히 챙겼을 뿐이었다.

 복도로 나왔을 때 아이들의 낌새가 이상했다. 하나같이 창문에 달라붙어 바깥을 보고 있었다. 병갑은 감히 그들 사이에 낄 생각은 못 하고 얼핏 보이는 창문 틈을 기웃거렸다. 누군가 서서 부원장과 대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년이었고 병갑보다 몇 살 더 많아보였다. 쉼터로 찾아올 나이도 아니었을 뿐더러 완전히 혼자였다. 신입은 저렇게 오지 않는다. 경기도 시에 소속된 봉고차를 타고 임시 쉘터에서 이쪽으로 마치 죄수처럼 이송되어 온다. 그게 아니라면 병갑처럼 타인의 차를 타고 와 쓰레기를 투기하듯 버려진다. 어느 쪽이든 그들은 차에서 내려 원장실로 보내진 뒤, 다시 병실로 옮겨져 간단한 신체검사와 성의 없는 건강 검진을 거친 후 이곳으로 “투하”된다. 그러나 이 고아원의 아이들이 집중하고 있는 소년은 딱히 버려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차로부터 투기된 쓰레기도 아니었으며 배가 고픈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꾀죄죄하거나 가난에 삭혀진 몸뚱이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부원장이 직접 대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행색은 더욱 특별하고 기묘하게 느껴졌다. 돌이켜 보자면 그 첫인상은 많은 소년들에게 일종의 각인처럼 선명한 이미지로 남았다. 소년의 서열은 올 때부터 어느 정도는 점쳐져 있던 셈이었다.

 부원장과 간단한 대화를 마친 소년은 곧장 창문에 벌레처럼 달라붙은 아이들을 시선으로 훑었다. 창문 너머에 있는 병갑은 그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쪽을 바라보았을 때 일종의 전율을 느꼈다. 그 많은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창가에 붙어 있지도 않았고 그저 등 뒤에 서있기만 했을 뿐인 자신에게 그 시선이 닿았을 리가 만무했으면서도 분명 소년은 병갑의 존재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년이, 한재호가 고아원으로, 득실거리는 쉼터로, 그 지옥으로 걸어 들어왔다.

 소년 고병갑은 그 날을 영영 잊지 못 했다.

 

 2.

 여기 사미터 담벼락 안에는 딱 두 가지 종류 새끼들밖에 없어.

 건드려도 되는 새끼들. 그리고, 건들면 안 되는 새끼들.

 나는 그 기준을 정하는 사람이다.

 

 3.

 한재호는 산을 넘어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 발로 넘어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개장수와 있었다. 적은 월급 대신 먹이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그곳에서 이 년 정도를 일했다. 열세 살 때부터 열다섯 살 때까지 산 중턱에 있는 작업장에서 살았던 셈이다. 개장수의 자택은 일층 옥상에 좁은 다락이 있는 구조였는데, 그 위에 서면 병갑이 수용되어 있는 지옥 같은 쉼터가 얼핏 보이곤 했다. 맑은 날에는 좁아터진 모래밭에서 냄새나는 소년들이 주먹다짐을 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개장수는 재호가 작업장에서 개를 한 마리씩 놓칠 때마다 그곳에 보내버리는 수가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특별히 몸집이 크지도 않고 유달리 잘 싸울 것처럼 보이지도 않던 재호에게 협박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걸지도 몰랐다. 물론 작업 초반에 있던 일이었을 뿐 정말 그가 재호를 그곳에 보내는 일은 없었다. 재호는 일을 잘했다. 망설이지 않고 개의 모가지를 치고 매달아 가죽을 벗겼다. 몇 달이 지나자 재호가 끌고 들어간 개새끼들 중에서 작업장을 탈출하는 놈들이 없게 되었다. 깽깽거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재호에게 언젠가는 개장수가 물었다. 너 여기 오기 전까지는 무슨 일 했니. 재호는 무뚝뚝하게 열두 살에 부모를 잃고 하릴없이 거리를 전전하며 뻑치기를 했다고 대답했다.

 작업장은 좁고 지저분하고 똥냄새가 났다. 반 평 남짓 되는 철창 안에 똥오줌으로 파리가 날리는 개들이 여섯 마리씩 갇혀 있었다. 개장수는 매주 주말마다 트럭을 끌고 나가 시장과 골목 곳곳에서 개를 스물 마리 정도 데리고 돌아왔고 매주 스물 마리 정도씩을 잡아 고기로 만들었다. 그가 데려오는 놈들은 대체로 늙고 지친 잡종견들과 패배한 투견들이었지만 가끔 재수 없게 잡혀온 애완견들도 섞여 있었다. 새로 들어온 개들은 물 먹인 개 사료를 들고 마당으로 나올 때마다 날카롭게 짖어댔다. 밤이면 목청을 높여 우우, 컹컹컹 울부짖기도 했다. 그러나 일주일 쯤 지나게 되면 좁은 공간 속에서 오줌과 똥을 지리며 순순해졌다. 한재호는 종종 이유 없이 밖으로 나가 개새끼들을 구경하곤 했다. 투견들은 대체로 짖는 법이 없었다. 재호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도 으르렁거리기를 반복할 뿐 경박스럽게 입을 벌려 이빨을 드러내거나 침을 튀기지도 않았다. 곧 죽어 가죽이 벗겨질 몸인데도 불구하고 출신의 남다름을 자랑하고 싶어 그런 걸지도 몰랐다. 한재호가 투견들로부터 얻은 세상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패배한 자들이 흘러들어오는 세계에서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왔던 얼마나 화려하게 싸워 이겨왔던 간에 몽둥이로 대가리를 때리면 똥개도 투견도 애완견도 다리를 벌린 채 실금하며 기절하고 말았다. 요컨대 죽음 앞에는 무엇이든 공평했다.

 한재호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부터는 일거리가 늘어났다. 개장수는 자택 뒤편에 작은 터를 마련해두고 풀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열 갈레의 자잘한 잎사귀를 가진 듣도 보도 못한 과부털이란 풀이었다. 뿌리가 깊지 않아 조금만 힘을 줘도 쉽게 뽑혔다. 첫 재배에서 한 번의 실패를 겪은 개장수는 재호를 끌어들여 밭 관리를 시켰다. 일은 많지 않았다. 물을 주고 검은 천막으로 위를 덮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가끔 개장수는 시험 삼아 몇 잎을 개한테 먹여보기도 했다. 며칠 말린 과부털의 풀잎을 감기약 몇 알과 함께 가루로 빻아 물에 타면 개들은 혀로 조금만 찍어먹었을 뿐인데도 자지러져 바닥을 뒹굴었다. 한재호는 개장수가 불법과 합법의 선을 드나들던 지난한 날들을 벗어나 마침내 완전히 법망 바깥에 서있게 됐다고 예감했다. 과부털이 대마의 은어였음을 알게 된 건 좀 더 나중에의 일이었다.

 한재호는 자진해서 산을 내려왔다. 개장수가 따로 연락을 취해주었지만 법적 보호자가 아니라 효력이 없었다. 부원장이 직접 재호의 얼굴을 확인하러 내려왔다. 한재호는 자신을 보기 위해 창문 곳곳에 다닥다닥 날파리 떼처럼 붙은 아이들을 눈으로 무심하게 훑었다. 소년들은 철창에 갇힌 개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에게나 짖고 밤에는 울면서 언젠가는 몽둥이에 맞아 다리를 뻗고 죽을 운명들처럼 보였다. 한재호는 이 년 동안 개들의 지옥에서 도살과 살육을 도맡은 심판관이었다. 인간세상으로 돌아왔다면 그 룰을 어떻게 인간에게 적용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강자가 될 생각이 없었다. 한재호가 원한 것은 오직 심판관의 자리였다.

 

 4.

 한재호가 배정받은 방은 스무 개의 방 중에서도 제일 좁고 작은 스무 번째 방이었다. 병갑은 열아홉 번째 방이었고 룸메이트로 둘이 배정되었으나 재호에겐 세 명이 배정되었다. 첫 날, 주먹을 휘두르거나 시비를 붙일 기미가 없는 한재호에게 그 셋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패로 밀어붙이는 일은 이 고아원의 유구한 정통인 모양이었다. 한재호는 주먹으로 그 셋을 완전히 때려눕혔다. 병갑이 한밤중에 비명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복도로 나온 소년들이 문밖으로 얼굴을 기웃거리는 동안 지도감독이 달려와 피투성이가 된 패거리 한 명을 짐짝처럼 끌어냈다. 열린 문으로 난잡하게 뒤엉킨 운동화 몇 켤레와 혈흔이 틘 이불가지가 보였다. 옆방이었던 병갑은 슬리퍼를 끌고 천천히 다가가 그 앞에 섰다. 한재호는 쓰러진 소년들 틈바구니에서 시큰거리며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표정은 서늘했고 놀랍도록 차분했다.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자신의 몸속에 켜켜이 쌓아온 폭력의 역사에 비하면 이 모든 일은 야만의 시대에 멈춰 있을 뿐이란 듯이, 한재호는 단 한 구석도 훼손되지 않고 자리에 똑똑히 박혀 있었다. 병갑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병갑은 화들짝 불에 덴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재호는 피를 뱉으며 문 앞으로 다가왔다.

 “뭐, 왜. 구경하러 왔어?”

 고개를 숙인 병갑에게 재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재호의 발은 넓게 벌어져 쓰러진 소년 둘을 넘고 천천히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병갑 앞에 섰다. 병갑은 재호가 저를 한 대쯤 갈겨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폭력에는 그 어떤 이유도 붙을 수 없었기에 동시에 그 어떤 이유든 붙일 수 있었다. 병갑이 맞을 이유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지만 재호가 원한다면 수백 가지의 이유가 생겨날 것이었다. 그러나 몸을 잔뜩 움츠리고 눈조차 마주치지 못 하는 병갑을 내려다보며, 한재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쫄았니?”

 바람이 잔뜩 든 발음이었다. 병갑은 머뭇거렸다.

 “아니, 나는…….”

 재호의 발이 조금 움직이자 병갑이 반사적으로 힘껏 어깨를 움츠렸다. 몹시 굴욕적인 순간이어야 마땅했으나 병갑은 굴욕감 대신 호기심을 느꼈다. 때릴 생각이었다면 진작 맞았을 것인데 한재호는 아직도 주먹을 쓰지 않고 있었다.

 “야야, 안 때려, 안 때려.”

 한재호는 병갑의 머리 위에서 낄낄 웃었다.

 “야, 뭘 그렇게 쫄고 그러냐. 주먹도 안 쥔 사람 민망하게……. 여, 고개 들어봐.”

 병갑은 한참 눈치를 보았다. 불신과 불안 속에서 머뭇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한재호는 병갑과 키가 비슷했다. 눈높이도 나란했으나 어쩐지 크게 느껴졌다. 비율이나 분위기 때문일 지도 몰랐다. 병갑이 눈을 끔뻑거리는 동안 재호의 눈이 병갑의 얼굴을 이곳저곳 뜯어보았다.

 “야, 넌 맞고 사나보다.”

 재호가 심심한 감상을 내놓았다. 병갑은 입술을 쭈그리며 머쓱하게 제 뺨에 진 멍과 얼룩을 훑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맞지도 않았는데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병갑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넌 왜 나 안 때리냐.”

 “나?”

 등 뒤가 소란했다. 소식을 듣고 몰려든 고아원의 소년들이 벌떼처럼 이십 번 방 앞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재호는 걸작을 보는 관람객 같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들 전부를 훑었다. 그리고 다시 병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리를 떨면서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이제 한재호의 관객은 병갑 한 사람이 아니라 고아원 전체가 되고 있었다.

 “야, 난 원래 저기 산에서 살았거든? 개 잡고 고기 쑤시고 살았다 이거야.”

 병갑이 훌쩍였다.

 “근데?”

 “개장수들도 나름 규칙이라는 게 있어요. 뭐, 우리가 아무 때나 아무 개나 잡으면, 그게 직업이냐? 소명의식이 또 나름 있어야 할 거 아냐.”

 “씨바 뭔 소리야, 진짜…….”

 “무식한 새끼… 소명의식이 뭔지도 몰라가지고, 에이그.”

 재호는 어깨춤에 손을 올리고 손가락으로 문 앞에 빽빽이 선 고아원의 소년들을 훑으며 혀를 찼다.

 “야, 니들도 소명의식이 뭔지 모르지. 내가 좀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이거는 내 규칙이야. 잘 들어.”

 모두가 한재호를 보고 있었다. 한재호의 눈이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형형하게 빛났다. 번들거리는 흰자위가 재호의 웃음에 반쯤 접혀 올라갔다.

 “난 꼬리 말고 있는 개새끼는 안 팬다.”

 그것은 선전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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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한당 보고 온 날부터 재호현수 생각하며 썼던 것. 장편으로 연재하려고 했는데 금방 식어서 관뒀다. 한재호가 지배하는 밤에서 조현수가 원하지 않는 새벽으로 넘어가는 방향의 큰 플롯과 고병갑의 개인서사에 대한 날조를 계획했었다. 콘티가 있길래 뒤져보니 마지막 문장이 적혀있다. '조현수의 새벽이 오고 있었다.'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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