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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2학년 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사카에구치 유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라운드에서 연습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사카에구치는 외야수로 뛰는 칸타와 벤치를 지키는 타쿠미와 함께 시니어 여름 합숙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이기기 위하여 연습을 하고, 새벽에는 그라운드를 뛸 생각이었다. 하고자 하는 일이 분명했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사카에구치는 그렇게 말하다 말고 아버지가 커다란 벚나무 아래에 우두커니 서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나무 그늘 속에 숨어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벚나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천천히 걷는 동안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나쁜 예감이 들어서였다. 아버지가 이름을 부르거나 손을 흔들지 않았다. 사카에구치는 주먹을 쥐고 뛰기 시작했다. 아버지 앞에 멈추어 섰을 때, 바람이 불어서 꽃잎이 후두둑 떨어졌다. 벚나무 가지에 꽃이 빽빽하게 피어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아버지의 눈 밑에 유난하게 고인 분홍색을 보았다. “유토.”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물기로 반들반들 했다. 사카에구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때까지 사카에구치는 어른이 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리사가.” 아버지는 거기서 잠시 멈추었다가, 헐떡거리며 뱉어냈다. “…죽었다.” 쏴아아, 매달린 게 많은 나무여서 바람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리사가 / 죽었다. 아버지는 아주 짧은 문장을 두 토막 냈다. 그건 아주 다른 이야기처럼 들렸다. 사카에구치가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리사가 누구였더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머리 위로 벚꽃이 흩날리는 동안 아버지는 다른 말도 했다. “미안하다.” “유토, 정말 미안하다.” 아버지가 미안해 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죽음은 누군가를 미안하게 만든다.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네 엄마가 죽어서 미안하다. 내 아내가 죽어서 미안하다. 모든 것을 이해한 사카에구치의 어깨에서 스포츠백이 흘러내렸다.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 중학교 1학년 언젠가에 타쿠미가 물었다. 8회 말을 마친 벤치에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내놓곤 사카에구치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스스로 대답했다. “난 없어.” 타석으로는 3학년 료타 선배가 올라갔다. 선배는 배트를 휘두르면서 기합을 질렀다. 그 경기는 료타의 시니어 마지막 무대였다. 이번 경기가 끝나면 선배는 그라운드를 내려와 고교 입학시험을 준비할 테였다. 선배가 떠나면 공석이 생겨서 만년 벤치였던 타쿠미가 배트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좀 더 기뻐하고 있을 줄 알았다. 사카에구치는 타쿠미를 바라보았다. “료타 선배 때문에 슬퍼?” 타쿠미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타쿠미가 대답했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벤치를 바라보아도 더는 료타 선배가 없겠지.” 깡, 배트에 맞은 공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료타 선배가 안타를 쳤다. 바깥으로 떨어지는 포물선을 보고 벤치의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떨어져라! 떨어져라! 타쿠미는 벤치에 매달려 고함을 질렀다. 공이 떨어지자 관중석에서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료타가 있는 힘껏 1루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카에구치는 그대로 앉아있었다. 이 시합은 이길 거야. 타쿠미의 등을 바라보면서 사카에구치는 생각했다. 그래도 타쿠미는 울게 될까.

 그런 일이다.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 사카에구치는 생각해본 적 있다. 타쿠미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타석에 오른 타쿠미가 이따금 벤치를 바라본다는 것을 사카에구치는 알게 되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타쿠미와 료타 선배는 연습이 끝난 후에도 그라운드에 남아 종종 타격 연습을 했다고 한다. 외동인 타쿠미를 외동인 료타 선배가 동생처럼 생각했을 것이라고 가정해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타쿠미는 료타 선배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벤치의 빈 공간에 세워두고 그려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구나. 남의 일처럼, 사카에구치는 생각했다. 떠나보내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구나.

 중학교 2학년 봄. 장례식을 치른 후 사카에구치는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배트를 휘두르거나 앞으로 내밀어서 날아온 공을 치거나 굴린다. 그런 식으로 상대편을 벤치로 더 많이 돌려보내면 이기는 게임을 했다. 사카에구치의 타율은 특별히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았다. 감독은 걱정했다. “정말 괜찮은 거냐. 힘들면 언제든…….” 그럼 사카에구치는 아. 하고 잠시 멈추어 섰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 말은 평소보다 한 박자 느리게 나왔다. 중학교 2학년 여름 초에는 현 대회를 나갔다. 사카에구치는 8번으로 타석에 섰다. 배트를 만지작거리다 관중석으로 몸을 틀었다. 습관이었다.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고개를 돌린 후였다. 사카에구치는 어머니가 앉아 있지 않은 관중석을 보았다.

 공백. 공석. 空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무엇이든 떠올랐다. 사카에구치는 챙을 쥐고 모자를 눌러썼다. 햇빛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바보 같다… 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렇게나 휘둘렀는데 깡, 소리가 나서 마구 달렸던 기억이 난다. 루를 코앞에 두고 한바탕 뒹굴었다. 입으로 흙이 잔뜩 들어갔다. 사카에구치는 입을 꾹 다물고 심판을 올려다보았다. 판정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느껴졌다. 마침내 심판이 손을 저었다. “아웃!” 반대편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사카에구치는 입가를 훔치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푸, 하고 흙을 뱉어냈다. 맞은편 관중석에서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분하거나 아쉽지 않았다. 발밑이 텅 비어있는 것 같았다. 사카에구치는 자신의 몸이 붕 떠올라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있을 여름 시합과 연습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사카에구치는 배트를 잡고 그라운드에 서있거나 타석을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관중석으로 고개를 돌린다. 타쿠미가 벤치를 바라보았던 것처럼, 사카에구치도 분명 그렇게 할 것임을 알았다. 사카에구치는 관중석에서 빈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놓을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슨 의미로 야구를 하고 있는 것일까. 타쿠미와는 달랐다. 타쿠미가 가진 구멍은 상실이 아니라 부재였다. 그러나 사카에구치의 구멍을 부재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존재를 안고 살아나가야 한다. 앞으로 그런 야구를 해나가야만 한다. “유토.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타석을 내려오면서, 사카에구치는 아버지가 어째서 미안해했는지 깨달았다. 미안하다. 그 말은 사카에구치의 마음을 끝없는 오목함으로 짓눌렀다. 혼자 있게 된다면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벤치로 돌아왔다. 그 날의 경기는 콜드로 졌다.

 사카에구치는 그 해 여름의 절반을 방구석에서 보냈다. 합숙을 불참하고 그라운드로 나가지 않았다. 한동안 팀메이트들로부터 메일을 받기도 했다. 칸타와 타쿠미도 메일을 보냈다. 다들 사카에구치를 걱정했다. 둘은 사카에구치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름이 길어지면서 연락도 끊겼다. 사카에구치는 야구를 그만두었고, 그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들은 바빴다. 사카에구치는 바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잠을 자거나 거실에 앉아 TV를 보았다. 아버지는 사카에구치에게 아무런 참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따금 퇴근 후 거실 소파에 앉은 아들과 마주치게 되면, 도무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가만히 서있었다. 그전까지 사카에구치는 연습을 한다고 자주 저녁에 집을 비웠었다. 거실에 얌전히 앉아있는 사카에구치는 어딘지 어색했다. 여름방학 동안, 사카에구치는 울거나 떼쓰지 않는 대신 나사 하나가 빠진 것처럼 보였다. TV를 보다가도 고개를 숙이고 다른 생각을 했다. 엉엉 울면서 직장에 있는 아버지에게 시시때때로 전화를 거는 동생과는 전혀 달랐다. 아버지는 울지 않고, 떼쓰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는 사카에구치를 많이 걱정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도 도무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미안하다는 말 외에 사카에구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해 여름.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아가기 위하여, 남은 가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나갔던 것임을 사카에구치는 이제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번쯤은 다 함께 울어도 좋았을 거야.’ 사카에구치는 종종 생각하곤 한다.

 방학이 끝날 무렵, 사카에구치는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려서 집안일을 시작했다. 그러자 야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예전과 똑같아졌다. 누나는 기숙사에 들어가고, 아버지와 사카에구치는 돌아가며 아침을 했다. 파를 썰어서 말랑말랑한 계란말이를 하고, 무를 얇게 친 맑은 된장국을 올린 후 따뜻한 밥을 가득 퍼 담았다. 가끔 생선을 굽기도 했다. 사카에구치는 동생 옆에 앉아서 가시를 발라주었다. 모든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어머니가 사카에구치에게 해주었던 것이다. 보드랍고 하얀 생선살을 발라서 따뜻한 밥 위에 얹어주면, 사카에구치는 맛있게 먹고 야구를 하러 나갔다. 어머니는 반투명한 생선가시를 접시 끄트머리에 잘 모아두고, 알은 가장 마지막에 젓가락으로 골라냈다. 사카에구치가 알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여나 세게 쥐어서 알이 터지면 곤란하니까 말이야. 생선에 젓가락을 사용하는 데에도 스킬이 있단다. 엄마의 스킬이지.”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카에구치는 알을 품은 부분만 빼고 살만 싹싹 발라 먹었다. 아버지와 동생은 사카에구치와는 달리 알을 잘 먹었다. 그래서 ‘엄마의 스킬’은 엄마의 스킬로 남았고, 사카에구치는 그것을 몹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야구부를 그만둔 사카에구치는 연습이 없었기 때문에 동생과 함께 등교하고 하교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저녁을 만들고, 남은 시간동안 동생과 놀거나 공부를 하면서 가을을 보냈다. 벚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학교와 집을 오락가락 했다. 성적이 많이 올랐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반에서 상위권에 들어 깜짝 놀랐다. 소식을 들은 칸타가 반으로 찾아와 사카에구치를 불렀다. 방학식이 막 끝났을 때였다. 교실이 빌 때까지 기다리던 칸타는 아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이제 정말로 야구는 안 하는 거냐.” 그 말에 사카에구치가 하하,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칸타는 잠시 욱하는 기색이었다. “농담하는 거 아니야. 우리, 마지막 여름 경기에서 콜드로 이겼다. 우리도 콜드로 이기기도 한다. 우리 팀은 앞으로도 이길 거야. 유타, 그만두지 마. 남은 일 년은 같이 하자.” 사카에구치는 칸타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칸타의 어깨는 사카에구치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칸타가 아주 멀게 느껴졌다. “미안.” 손이 차가워서 주먹을 쥐었다. “괜찮아, 나는 이제 관둘 거야.” “진심이야?” “응, 미안해.” 사카에구치가 말했다.

 칸타는 인사도 없이 쿵쾅거리며 돌아갔다. 그 애가 화가 나있다는 걸 알았다. 사카에구치는 계단을 내려가는 칸타의 어깨를 내려다보면서 축축한 손바닥을 허벅지에 비볐다. 그리고 입으로 다시 한 번 중얼거려보았다. 이제 나는 야구를 관둘 거야. 가슴이 자꾸만 오목해지는 것 같았다. 사카에구치는 손바닥을 펼쳐서 심장에 대보았다. 그곳에 구멍이 나있었다. 무엇이든 빨아들이고 없애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공백이 그곳에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몹시 슬프고 화가 났다. 어째서 나는 어머니도 야구도 잃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야구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칸타도 사카에구치도 그것을 조금씩은 알고 있었다. 분노와 슬픔의 방식으로밖엔 대응할 수 없는 공백이었기에, 화를 내거나 슬퍼하던 소년들. 사카에구치는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에서 내려 벚나무 아래를 걸어 나갔다. 꽃잎 대신 낙엽을 맞으며, 앞으로의 일을 계획해 보려 애썼다. 그러자 야구를 하지 않는 자신이 야구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남았다. 핸들을 잡은 손에서 자꾸만 땀이 배어나왔다. 야구가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난 이제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사카에구치는 눈물을 흘리는 법을 다시 배우고 싶었다. 울어야 하는 순간을 오래 전에 놓치고 만 것 같았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을 때, 사카에구치의 자전거에 펑크가 났다. 수리를 받으러 근처 철물점에 다녀오는 동안 공터를 지나게 됐다. 원래 빌라를 짓기 위해 마련되었는데, 공사가 미뤄지면서 주민들의 체육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었다. 사카에구치의 동생이 친구들과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자전거를 세우고 그것을 잠시 구경했다. 아이들은 잘 던지지는 못 했지만, 즐겁게 던지는 법을 알고 있었다. 동생도 웃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동생은 언젠가부터 더는 울지 않았다. 아마 여름방학이 끝날 쯤 부터였을 것이다. 사카에구치가 정신을 차리고 원래대로 굴기 위해 애쓰자, 동생도 씩씩해졌다. 동생은 어머니가 있었을 때도 캐치볼을 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없어도 캐치볼을 할 수 있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어찌되었든 내가 잘해야 해.’ 사카에구치는 생각했다. 이듬해에도 동생의 저녁을 챙겨야 한다. 그 다음 해에도. 그 다음다음 해에도. 동생이 조금 더 크면 함께 챙기게 될 것이다. 누나나 아버지가 가끔 돕기도 할 것이다. 사카에구치는 생각에 잠겨서 집을 지나치고 말았다. 어머니와 야구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야구를 생각하면 어머니가, 어머니를 생각하면 야구가 떠올랐다. 사카에구치는 계속 걸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카에구치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완만한 언덕이었다. 가장자리에 하수도로 이어지는 홈이 나있고, 그 홈 안에 얼음이 얼어 있었다. 길 양옆으로 앙상한 나무들이 몇 그루씩 이어졌다. 벚나무인 것 같았다. 사카에구치는 멈추지 않고 벚꽃동산을 올랐다. 언덕이 높지 않아서 길이 금방 끝났다. 그러자 학교가 나왔다. 교문이 열려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교문에 붙은 학교 이름을 읽었다. 현립 니시우라 고등학교. 입구에 도서관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현립 건물이라서 방학이면 주민들을 위하여 도서관을 개방하는 모양이었다. 사카에구치는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도서관에 들어가 보았다.

 도서관은 크지 않았지만 몹시 깨끗했다. 난방 덕분에 따뜻한 대신 건조했다. 창가에는 하얀 블라인드가 달려 있었고, 사서 테이블에는 작은 가습기가 놓여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문학 코너와 과학 코너를 빙글빙글 돌았다. 열람실에는 학생들 말고도 주민들이 드문드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세 바퀴 째 돌던 사카에구치는 사서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멈추어 섰다. 그리고 당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아무 책이나 뽑아들었다. 과학 코너 앞에서였다. 사카에구치가 펼친 장에 커다란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까맣고 거대한 구덩이처럼 보였다. 사카에구치는 사진 옆에 붙은 주석을 읽었다. 그것은 블랙홀이었다. 사카에구치는 책을 뒤집어 보았다. <코스모스의 비밀>.

 니시우라 고교에서 내려오는 길에, 사카에구치는 그라운드를 보았다. 제 1그라운드는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미식축구…인가. 이곳에는 미식축구부도 있구나.’ 그런 후에 조금 더 지나쳤더니 제 2그라운드가 나왔다. 사카에구치는 녹슨 자물쇠가 걸려 있는 그라운드 입구 앞에 누군가 서있는 것을 보았다. 여자인 것 같았고, 키가 크지 않았다. 사카에구치보다 조금 작아보였다. 왜 저기 서있는 걸까. 사카에구치는 정돈되지 않은 제 2그라운드를 흘끔거리다 그녀를 지나쳤다.

 그 날은 꿈을 꾸었다. 사카에구치가 유체이탈을 했다. 눈을 떴을 때, 사카에구치는 둥둥 떠있었고, 자신의 몸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자신의 팔을 꼬집어보았다. 고통이 느껴지긴 했지만 어쩐지 남의 몸처럼 느껴졌다. 이상한 기분이었는데, 언젠가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였더라. 기시감을 더듬어가던 사카에구치가 그 해 여름의 마지막 경기를 기억해냈다. 8번 타석으로 안타를 치고, 내야수에게 잡혀서 아웃을 당했다. 격려의 박수를 쏟아내던 관중석. 그 때, 사카에구치는 막연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없는 관중석을 앞으로 평생 등에 지고 살아가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야구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보냐.’ 이전에는 앞으로의 일들을 떠올리는 게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없는 미래를 떠올리는 게 두려워졌을 때, 사카에구치는 막막함이라던가 막연함이라던가. 감히 그런 말로도 일컬을 수 없는 공백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미래가 너무 거대해서 현재를 멀리 밀쳐놓았다. 자신의 몸이 꼭 남의 몸처럼 느껴지던 계절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지난여름, 사카에구치는 내내 유체이탈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나는 무엇에 밀쳐진 것일까.’ 영혼의 상태로 사카에구치는 생각하였다. 사카에구치의 몸은 뒤척이지도 않고 얌전하게 정자세로 누워 있었는데, 두 손을 가슴 위에 가만히 포개고 있었다. 꼭 관에 들어간 사람처럼 보여서 기분이 이상했다. 사카에구치는 몸 위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손목을 붙잡아 두 손을 내렸다.

 어마어마한 바람이 불었다. 깜짝 놀란 사카에구치의 영혼이 튕겨져 올라오다 말고 천장에 부딪혀 데굴데굴 굴렀다. 쩍 쩍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책상에 쑤셔놓았던 프린트물과 얇은 파일이 마구 팔락거렸다. 방 안의 가구들이 모두 들썩이고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까맣고 거대한 구멍을 보았다. 사카에구치 유토는 자신의 가슴을 누르고 있는 거대한 블랙홀을 보았다. 그 구멍은 <코스모스의 비밀>에 나온 한 장면과 똑같았다. 무엇이든 빨아들이고, 무엇도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시공간이 방의 모든 것을 삼키려 들고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없애고 싶은 것을 떠올려 보았다. 잊거나 없던 일로 해버리고 싶은 것……. 사카에구치는 벽장으로 날아가 문을 열었다. 배트와 오래된 미트, 실밥이 조금 터진 야구공이 구석에 박혀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그것을 차례차례 자신의 블랙홀 속으로 던져 넣었다. 가장 먼저 배트, 그리고 미트였다. 공을 던질 때는 캐치볼을 하는 것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는 힘껏 던졌다. 블랙홀은 사카에구치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꿈속에서 사카에구치는 야구를 한 적이 없는 소년이 되었다.

 다음 날, 사카에구치는 다시 니시우라 언덕을 올랐다. 이번에는 자전거를 끌고 가지 않았다. 도서관은 따끈따끈했고 어제보다 사람이 적었다. 이번에 사카에구치는 빙글빙글 돌지 않고 곧장 과학코너로 갔다. <코스모스의 비밀>을 펼쳐서 블랙홀에 대하여 읽어보았다. 네 문단부터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음 장을 넘기자 새로운 도면이 나왔다. 블랙홀의 도면이었지만 조금 달랐다. 사카에구치는 블랙홀과 블랙홀이 어떤 구멍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도면 끝에 매달린 주석이 그것이 웜홀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끝에 매달린 또 다른 블랙홀은 사실 블랙홀이 아니라 화이트홀이었다. <코스모스의 비밀>에 따르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것들은 사실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라, 웜홀이라는 통로를 지나 언젠가 화이트홀을 통해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런 건 우주도 할 수 없는 건가. 죽음만이 할 수 있는 건가. ‘떠나보내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라고 사카에구치는 생각했다. 도서관을 나오며, 어제처럼 그라운드를 지났다. 오늘은 두 그라운드 다 텅 비어있었다. 사카에구치는 제 2그라운드의 자물쇠가 사라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다음 날에도 사카에구치는 니시우라 도서관에 나갔다. 그 다음 날도 나갔고, 그 다음 날도 나갔다. 겨울 동안 사카에구치는 언덕을 오르내리며 <코스모스의 비밀>을 읽고, 하나도 이해하지 못 한 채 그라운드를 지나 집으로 돌아갔다. 이따금 그라운드 앞에 멈춰서 무언가를 구경하기도 했다. 주로 미식축구였지만 좀 더 다른 것을 볼 때도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텅 빈 제 2그라운드에 누군가 남겨놓고 간 흔적 같은 것을 보았다. 자물쇠가 떨어진 이후로 누군가 부지런히 들락거리는 것 같았다. 눈이 내렸을 때는 제 2그라운드 위에 한 쌍의 작은 발자국이 찍혀 있기도 했다. 아마 그 여자일 것이다. 사카에구치는 언젠가 보았던 뒷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굳게 닫힌 그라운드 앞에서 무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던 사람. 혹은 무언가 준비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하튼 사카에구치와는 달랐다. 그는 떠돌고 있었지만 그녀는 심지가 강해 보였다. 니시우라에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면 필연적으로 그 뒷모습을 떠올리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중학교 3학년 봄. 사카에구치는 고교 견학 신청서에 니시우라를 적고 다시 한 번 그 언덕을 올랐다. 이번에는 도서관에 가지 않고 곧장 그라운드로 걸었다. 제 2그라운드에는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펜스 앞에 멈추어 섰다. 정비되지 않은 경기장의 가장자리는 이미 제법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했다고 하기엔 믿기 어려운 분량이었다. 아마 땅이 녹자마자 시작했을 것이다. 사카에구치는 손을 호주머니에 욱여넣고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 그렇게 강렬한 욕망은 처음이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막연했다. 가슴이 텅 비어있었다. 사카에구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밤, 사카에구치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유체이탈을 했다. 같은 꿈이라는 걸 손쉽게 알 수 있었다. 가슴 한복판에 난 거대한 블랙홀이 울고 있었다. ‘그렇지만 더 버리고 싶은 게 없는데.’ 사카에구치는 생각했다. 벽장은 텅 비어 있었고, 사카에구치는 이제 버리는 대신 채우고 싶었다. 바람이 마구 불었다. 사카에구치는 블랙홀이 고오오 우는 소리를 들었다. 고오오. 사카에구치는 귀를 기울였다. 고오오, 하고 울던 블랙홀의 울음소리가 중간에 자꾸만 끊어졌다가 이어지고 있었다. 고오. 메응. 네.

 ごめんね.

 ‘유토, 미안해. 미안하다.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사카에구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몸이 붕 떠올라서 양수에 담긴 것처럼 부유하게 되었다. 아주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았고, 어디로든 돌아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사카에구치는 아버지가 울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때, 사카에구치는 너무너무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 “거짓말이에요.”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안하다.” 어떤 말을 해야만 했을까. 사카에구치는 아버지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 후에도 자신이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이 있기는 했다. 감독이 괜찮냐고 물었을 때, 그리고 칸타가 다시 야구를 하자고 말했을 때다. 사카에구치는 괜찮다는 말을 자신에게만 사용하였다. ‘네, 계속 야구를 해도 괜찮습니다.’ ‘아니, 나는 이제 야구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 감독이나 칸타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괜찮아요, 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감긴 눈이 뜨거워져서 사카에구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더니 공중에서 벚꽃 잎이 되었다. 사카에구치는 눈을 떴다. 방 안이 꽃잎으로 가득 차서 눈이 부셨다. 그것들은 소용돌이치며 침대 위에 누운 사카에구치의 몸으로, 가슴을 누르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블랙홀이 사카에구치가 흘린 눈물을 모조리 빨아들여 없던 일처럼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래서 꿈속의 사카에구치는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꿈속의 사카에구치는 벚꽃이 되었던 것이다.

 봄이 끝나기 전, 사카에구치는 니시우라 언덕을 다시 오르기로 결심했다. 그라운드가 보고 싶어서였다. 제 2그라운드 주변에는 학생들이 몇 명 모여 있었다. 그곳에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방수용 스포츠백을 메고 있었는데, 아마 수영부 같았다. 그들은 정비 중인 그라운드를 한 번 바라보곤 수영장 쪽으로 걸어 나갔다. 한 사람이 중학교 교복을 입은 사카에구치를 흘끔거리긴 했지만 곧 흥미를 잃었다. 사카에구치는 그들이 떠날 때까지 엉거주춤 서 있다가, 천천히 펜스 앞으로 다가갔다.

 그 사람은 거기 있었다. 그라운드는 이미 삼분의 일 정도 보수가 끝나 있었다. 그라운드의 잡초는 반쯤 뽑혀 있고, 설비 시설이 반들반들 닦인 채 햇빛에 천천히 데워지는 중이었다. 사카에구치는 그녀가 꾸준히 ‘혼자’ 일하고 있음에 놀랐다. 그 때, 그 사람이 기합을 지르며 몸을 힘껏 일으켰다. 사카에구치는 주춤거리며 물러나다 말고 딱딱하게 굳었다. 여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게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잠시 정적이 있었고, 새가 울면서 날아갔다. 어색한 분위기를 뚫고 갑자기, “와!”하고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안녕!” 사카에구치가 얼결에 고개를 숙였다. “안녕, 하세요.” “들어와!” 그녀가 말했다. “들어오라고요?” “일을 시키려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녀는 호탕하게 웃었다. “정말이야. 이 때까지 혼자서도 잘 해왔는 걸.”

 사카에구치는 그라운드로 들어와 엉거주춤 섰다. 그녀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다른 손 손바닥으로 차양을 만들었다. “중학교 교복이네. 전철에서 본 적 있어. 견학 온 거니?” “음, 그런 셈이에요.” “니시우라에 올 거니?”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그렇구나.” 사카에구치는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그라운드를 훑어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아직 뽑지 않은 잡초의 뿌리가 흙을 들어 올리며 흔들리고, 깨끗해진 그라운드 위로는 흙먼지가 불었다. 가까이서 본 그라운드는 굉장히 깨끗해지고 있고, 제대로 갖춰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가꿔온 사람의 애정과 기대가 느껴졌다. “이곳에서 무엇을 할 건가요?” 사카에구치가 물었다. “야구.”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야구를 할 거야.” 그녀의 이름은 모모에 마리아였다.

 돌아가기 전, 사카에구치는 그녀와 짧게 캐치볼을 했다. 모모에는 공을 잘 던졌다. 마지막으로 던질 때는 전력투구를 해도 되냐고 물었다. 사카에구치는 미트를 벌리고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모모에가 한 발을 들어 올리고 투구 폼을 취한 후, 굉장한 기세로 팔을 휘둘렀다. 그 순간, 사카에구치는 하얗고 거대한 구멍을 보았다. 그것은 모모에의 등 뒤에 있었다. 그 다음 순간, 모모에의 손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공의 잔상만 남았다. 사카에구치는 화이트홀의 정중앙을 뚫고 돌진하는 야구공을 보았다. 야구공의 실밥이 터져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그 공을 본 적이 있었다. 꿈속의 사카에구치가 그것을 던져 넣었다.

 공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미트를 쳤다. 마법 같은 순간이 끝나고, 현실이 그를 복귀시켰다. 가슴으로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이쿠.” 모모에가 손바닥을 털어냈다. “괜찮니?” “괜찮아요!” 사카에구치는 미트를 벗고 얼얼해진 손바닥을 쥐락펴락 해보았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손가락들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찌릿찌릿하고 좋은 기분. 사카에구치는 하고 싶은 것을 떠올려 보았다.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야구를 할 거야.’ “저도 야구를 하고 싶어요.” 사카에구치가 말했다. “그래, 그거 좋겠다.” 모모에는 기분 좋게 웃었다. “너는 니시우라에서 야구를 하게 될 거야. 여차하면 마음 놓고 비빌 언덕이 됐으면 좋겠네.”

 니시우라 언덕에는 벚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벚꽃동산을 내려오면서, 여차하면 비빌 언덕이란 무엇일까에 대하여 사카에구치는 생각했다. 그런 게 있다면 자신은 한 번 잃어버렸던 것일 테다. 바람이 불자 우수수 벚꽃 잎이 떨어졌다. 사카에구치는 눈을 감고 바람소리를 들었다. 나무가 마구 흔들리며 꽃을 떨어뜨리는 소리를 들었다. 눈을 감아도 니시우라 언덕이 환히 그려졌다.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뻔질나게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넓은 언덕 입구는 좁은 통로처럼 줄어들었다가, 교문 앞에 다다라서 다시 넓어졌다. 꼭 웜홀 같이 생겼다. 그게 정말로 통로였다면, 사카에구치는 결국 돌려받은 걸지도 모른다. 버리고 싶었지만 야구를 버릴 수 없었다. ‘그렇구나.’ 사카에구치는 생각했다. 나는 잊고 싶고, 없던 일로 하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화가 나고 슬펐던 거다. 엄마의 죽음을 없던 일로 할 수 없어서, 야구를 하던 자신을 잊을 수가 없어서, 나는 견딜 수 없었던 거야. 사카에구치는 또 생각했다. ‘그렇지만 없던 일로 할 수 없는 것은,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야.’ 마찬가지로 야구를 없던 일로 할 수 없는 것은,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화이트홀이 둥그런 비행접시처럼 떠올랐다. 사카에구치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쳐들고, 화이트홀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 잎을 맞았다. 세상이 사카에구치에게 무언가를 돌려주고 있었다. 그래서, 사카에구치 유토는 조심스럽게 불러보았다. 엄마…. 옴폭 들어간 가슴의 구멍으로부터 무엇인가 솟아오른 것 같았다. 블랙홀이 닫히고 무한한 에너지가 소멸되더니, 바람이 마구 흩날렸다. 쏴아아, 하고 엄마가 응답하였다. 사카에구치가 작게 중얼거렸다. “안녕….” 그러자 눈물을 흘리는 법을 돌려받은 기분이 들었다. ■

 

 

(리디북스 e북 캡쳐본)

엄마를 잃고 야구를 그만둔 사카에구치 유토가 모모에 감독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 사카에구치가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방학 때 홀로 그라운드를 정비하던 모모에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상하면서 썼음. 후리전력봇의 '언덕'을 주제로 쓰다보니 비빌 언덕이라는 표현을 빌리게 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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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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