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스콧른 게스트북 원고
───────

 

 로비에는 어림잡아 서른 명 정도의 아이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목에는 스타플릿에서 나눠준 명찰을 걸고, 한 손에는 랩 지도를 쥔 채 교사의 지시에 따라 앞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눈으로 훑던 스콧은 어깨를 으쓱이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붉은 생도복 위에 흰 가운을 걸친 스콧은 스타플릿 아카데미의 학생이라기보다 연구자에 가까워보였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움직이죠. 섹터 B부터 D까지 한 시간 안에 돌아봅시다.”
 “한 시간 안에?”
 조이가 얼굴을 찌푸리자, 스콧은 어깨를 으쓱이며 정정했다.
 “한 시간 반.”
 스타플릿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견학 프로그램은 학교가 방학을 앞둔 여름과 가을에 각각 한 번씩 진행되었다. 견학생들에게 랩을 안내하는 것은 생도들의 의무사항이었다. 따로 지원자를 받지는 않았고, 순번제였다. 운이 좋으면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었다. 스콧은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해에 결국 일을 받았다. 그는 가운을 걸치고 목에 플라스틱 명찰을 단 후, 조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확성기도 챙겨야 할까?”
 그는 시끄러운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스콧이 예상하는 것보다 시끄럽지 않았다. 확성기를 통해 설명하지 않고선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소란스러움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질서정연했고, 예의도 발랐고, 아무 곳으로나 흩어지지도 않았다. 스콧은 침착하게 B섹터를 돌며 유리창 너머의 생도들이 최첨단 기계를 만지고, 실험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모습을 손으로 짚으며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아이들은 유리창에 거의 달라붙다시피 하며 한 마디씩 떠들어댔다.
 “끝내준다.”
 “저게 드릴이라고?”
 “우주선은 어디 있지?”
 이건 예상한 소란스러움이었으므로 스콧은 견딜 수 있었다. 조이가 아이들에게 기계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하는 동안, 그는 한쪽으로 물러서서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유리창 너머의 생도 하나가 멈추어 섰다. 스콧이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쳤다. 생도는 이죽이며 그와 아이들 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가 입을 빠끔거렸다. ‘어울리는데, 스콧 선생.’ ‘입 닥치고 꺼지시지!’ 스콧은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생도는 스콧과 몇 번의 수신호를 더 주고받다 말고 스콧의 어깨 너머를 응시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내렸다. 스콧은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를 확인했다. 한 아이가 그를 보고 있었다.
 “뭘 보냐.” 
 스콧은 당황스러움을 숨기기 위해 툴툴거렸다.
 “스물여덟 살쯤 먹었으면 욕 정도는 할 수 있는 거라고. 알겠니, 꼬맹아?” 
 아이는 대답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B섹터를 지날 무렵 스콧은 뒤를 돌아 아이들의 수를 확인했고, 왜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는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 했지만, 시선으로 아까 자신을 바라보았던 아이를 찾아냈다. 그 소년은 그 어떤 무리에도 끼지 않은 채 가장 끄트머리에 서서 소극적으로 걷고 있었다. 스콧은 소년에게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야 소년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5살은 어려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월반인가?’
 스콧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적어도 자신이 기억하는 한 그는 머리가 무성해질 무렵부터 제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는데, 전적으로 그가 너무 똑똑했던 탓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아이들이 모두 스콧보다 멍청했던 탓이었다. 그는 또래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 기쁨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생도들과 거의 사적인 교류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콧이 아는 한 그들은 여전하게도 스콧보다 멍청했다.
 지적인 기쁨만이 전부였다. 타고나기를 공식과 우주, 첨예한 첨단기술과 물리학적 가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스콧은 타인보다 영리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거듭 경험했다. 인간관계란 자발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을 억눌러야 진행될 수 있는 하위의 임무에 불과했다.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말을 우선 접어둬야했다. 아름다운 공식과 가설을 복잡하게 생각하고, 조롱말곤 달리 떠오르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논문 앞에서 입을 벌리는 타인들을 위하여. 그리하여 스콧의 일방적 희생-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을 통해 진행된 인간관계가 가져다주는 것은 결국 일시적 충족감과 긴 회의뿐이었다. 천재들은 고립을 택하고, 그 고립이 그들에게 썩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보다 나은 선택지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의 다 자란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무감한 눈으로 랩을 둘러보는 어린 금발 소년의 태도는 스콧에게 어떤 말할 수 없는 미묘한 자국을 남겼다. 그래서 전혀 스콧답지 않게도, 그는 명단을 뒤져 그 아이의 이름을 찾아냈다. ‘파벨 체콥.’ 러시아에서 왔군. 스콧은 다시 명단을 옆구리에 꼈다. 소년은 스콧이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어렸다. 체콥은 이곳에 모인 아이들보다 7살은 어렸다.
 “스콧 선생님.”
 한 소년이 스콧에게 다가와 알짱거렸다. 스콧은 시선만 움직여 그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이지?”
 그가 덧붙였다.
 “난 교사가 아니야.”
 “스콧 선생님은 애인이 있나요?”
 고개를 들고 자신을 쳐다보는 조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스콧은 아이 앞에서 굳이 경멸의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여기 와서 궁금한 건 그것뿐이냐?”
 “어, 저는 그냥. 미남이시길래요.” 
 소년이 어깨를 으쓱이며 ‘아시잖아요?’하고 눈빛을 보냈다.
 스콧은 혀를 찼다.
 “스타플릿에 연애하러 들어오는 얼간이들은 보통 한 학기 만에 낙제하고 떠나기 마련이지. 쥐도 새도 모르게 말이다. 넌 최첨단 연구소를 둘러보고 있는 와중에도 시시껄렁한 게 궁금한 모양이구나.”
 아이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질문한 소년은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다물었다. 스콧이 만족스럽다는 콧소리를 내자, 허겁지겁 다가온 조이가 그의 발을 힘주어 밟았다. 스콧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물러났다. 조이가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잘 좀 해. 여기서도 밥맛으로 굴 거야?”
 “엿이나 먹어.” 
 스콧이 으르렁거렸다.
 섹터 C는 조이의 담당이었으므로 스콧은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아까보다 스콧에게 관심을 덜 가졌고, 그를 훔쳐보던 소녀들도 아까의 일로 그에게 시선을 거뒀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콧은 길쭉한 몸으로 위풍당당 걸어 다녔다.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남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처럼. 섹터 C의 생도들이 이따금 스콧을 흘끔거리며 지나갔다.
 섹터 D에는 로비가 있었고, 견학 일정 상 아이들은 그곳에 모여 자유행동을 할 수 있었다. 로비에는 견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모의 프로젝트 기계와 가상 우주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섹터를 둘러보며 구경했던 장비의 기초 버전을 직접 시연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아이들은 이 스케줄을 가장 고대하고 있던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재빨리 로비 입구에서 학생용 실험 가운을 걸치고, 자신이 연구원이 된 것처럼 뿔뿔이 흩어져 기계를 만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스콧은 자신이 염려한 데시벨만큼 치솟는 소음을 맛보았다. 아이들이 무서운 기세로 떠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스콧은 피곤하다는 얼굴로 벽에 기대어 섰다. 아이들은 필요한 일이 있을 때면 조이를 찾았다. 스콧을 찾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스콧은 길게 하품하곤 시계를 확인했다. 중앙로비에서 출발한지 딱 한 시간째였다. 30분이면 이 짓도 끝날 것이고, 스콧은 개인 연구실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스콧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누구의 부름도 받지 않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그는 혼자서도 모든 것을 잘 할 자신이 있었다. 지루한 눈으로 왁자한 로비를 바라보던 스콧은 화들짝 생각에서 깨어났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어떻게든 동떨어지기 위해 벽에 기대어있는 스콧처럼, 혹은 그보다 더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벽에 등을 맞대고 서있는 소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스콧은 파벨 체콥이 혼자 있는 것을 보았다.
 체콥은 심지어 가운을 입지도 않았다. 들어올 때와 똑같은 회색 스웨터 차림이었다. 무료하고 지루한 눈빛에는 어떤 참담함이 섞여있었는데, 어쩐지 몹시 슬퍼보였다. 스콧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았다. 그는 슬퍼하기보다 분노하는 쪽이었다. 타인의 무지가 주는 외로움에 대하여 화를 내던 나날들. 체콥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소년은 아까부터 부러운 눈으로 아이들이 둘러싸고 있는 첨단 기계를 하나하나 응시하고 있었다. 그 수많은 섹터를 거쳐 오는 동안 그렇게나 무감하게 굴었으면서! 연구소 시스템에는 무관심해도 그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끝장나는 장비와 기술력 앞에 마음을 빼앗긴 걸까? 그렇다면 체콥 역시 엔지니어를 지망하고 있는 것일까? 스콧 역시 엔지니어였다. 그는 단언컨대 스타플릿이 배출한 엔지니어 중 가장 전도유망한 인재가 될 것이었다. 스콧은 체콥을 위해 자신이 무언가 해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체콥은 다가오는 그림자의 끄트머리를 보곤 고개를 들었다. 둘은 오래 시선을 마주쳤다. 체콥은 스콧을 올려다보는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어떠한 말이라도 나누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그러나 스콧이 이렇게 입을 열었을 때, 체콥은 마치 그 질문을 듣기 위하여 오늘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대답했다.
 “양자의 핵을 분리하는 에너지의 생산 원리를 우주선의 엔진에 달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우주선의 98%가 방사능 덩어리가 돼요. 제외된 2%는 4중 격폐처리된 엔진 냉각수의 제어봉 때문이에요.”
 스콧은 체콥의 눈동자가 빛나는 것을 보았다.
 스콧은 구석에 처박힌 책상을 앞으로 끌어온 뒤 의자 두 개를 놓았다. 체콥은 의자에 앉았고, 스콧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스콧을 꿰뚫었다. 소년은 전적으로 스콧에게 관심을 쏟고 있었고 스콧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심심하니?”
 “잘 모르겠어요.” 
 체콥이 대답했다.
 “하지만 할 일이 생긴다면 잘 할 수 있어요.”
 “그럼 할 일을 만들어주마.”
 스콧이 말했다.
 “난 네가 재밌어 할 만한 걸 알겠거든.” 
 체콥은 그 말을 이해했다. 
 스콧은 자신이 들고 있던 플라스틱판에서 명단을 통째로 떼어낸 후, 그 중 한 장을 뒤집었다. 그리고 가운에서 만년필을 꺼내, 그 여백에 큰 사각형을 그렸다. 스콧은 사각형을 가로로 뻗는 여덟 개의 직선으로 나눈 후, 세로에도 똑같은 작업을 했다.
 “체스판이군요.” 
 체콥이 말했다.
 “둔하지는 않구나. 하지만 이건 네가 아는 그 체스는 아니야”
 스콧이 사각형을 칠하며 대답했다.
 스콧은 그들 사이에 그 체스판을 놓고, 손가락으로 그 중 한 사각형을 짚었다.
 “말은 하나야.” 
 스콧이 설명했다.
 “그리고 매 턴마다 오직 한 칸씩 움직일 수 있는데, 두 칸씩 대각선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문제를 내는 거야. 퀴즈지. 상대가 문제를 내고, 네가 그것을 맞추면, 넌 두 칸씩 전진할 수 있어. 맞추지 못 하면 넌 한 칸씩 움직일 기회조차 잃는 거지.”
 “그럼 서로 도망 다니기만 하잖아요.”
 체콥이 말했다.
 “-그래서.” 
 스콧이 대답했다
 “너는 나를 쫓아야 하는 거지.”
 “스콧은 도망가고요?”
 스콧은 체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
 스콧이 덧붙였다.
 “애라고 봐주지는 않을 거야.”
 체콥은 눈을 굴리다 말고 어깨를 으쓱였다.
 “할래요.”
 그래서 둘은 더는 체스라고 할 수 없는 그 게임을 시작했다.
 체콥이 먼저 움직였다. 스콧은 그에게 물리학 기초 이론에 대해 물었고, 체콥은 얼굴을 찡그리곤 스콧을 올려다보았다.
 “그 정도는 알아요.”
 “그럼 대답하고 말을 옮기지 그래.”
 그래서 체콥은 그렇게 했다. 말이 두 개뿐이었으므로 두 사람은 굳이 말을 형상화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각자의 말이 어디에 있는지 판 위를 차례로 짚으면 됐다.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 잊어버릴 리도 없었다.
 체콥은 말을 옮기며 스콧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밥맛으로 굴어요?”
 스콧은 콧방귀를 뀌었다.
 “밥맛으로 보였냐?”
 “굳이… 밀어낼 필요는 없잖아요?”
 스콧의 차례였다. 체콥은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내세운 원자 모형에 대해 물었고, 스콧은 어깨를 으쓱이곤 정답을 말했다. 그는 말을 옮기며 체콥의 질문에 돌려 대답했다.
 “그렇다고 밀어내지 않을 필요도 없지.”
 스콧은 도망가는데 성공했다. 이제 체콥의 차례였다. 
 “넌 그럼 밀어내지 않는 모양이구나, 체콥.”
 스콧은 그에게 대각선으로 움직일 것이냐고 물었고, 체콥은 판을 들여다보다가 이번엔 한 칸만 움직이겠다고 대답했다. 체콥은 자신의 말을 한 칸 전진시켰다.
 체콥이 말했다.
 “밀쳐지는 것뿐이에요.”
 스콧은 얼굴을 구겼다.
 “저 애들은 멍청해.”
 “알아요.”
 “사람들에게 상냥할 필요는 없어.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알랑거리지만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침을 뱉으며 떠나지. 너를 이해하지 못 할 사람들이 네게 저지를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너를 할퀴는 일뿐이야.”
 체콥은 스콧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스콧은 밀치며 살아온 건가요?”
 스콧은 대답 대신 턱을 문질렀다.
 잠시 후 스콧이 말했다.
 “난 대각선으로 도망칠 테니 너는 질문하렴.”
 “왜 파동함수에 모순이 있는지 설명해주세요.”
 스콧은 체콥을 흘끔거린 후 말을 움직이며 대답했다.
 “애초에 그건 아무도 모르는, 정의할 수 없는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수학적 언어기 때문이다. 양자의 비밀을 전혀 밝혀내지 못 한 그들이 미지를 설명하기 위해 수학을 끌어들였던 거야. 함수라는 게 넣으면 답이 뿅 튀어나오는 마법상자라도 되는 줄 알았던 거지. 그들은 상자를 이루는 질서를 존중하지 않았어. 핵심이 되는 언어가 가장 불확실한 줄도 모르고. 그래서 문제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지. 파동함수에는 물리적 의미가 없어. 다만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할 뿐이지. 그건 수학이 아니야. 인문학이지.”
 스콧이 말했다.
 “네 차례다.”
 “저도 움직일래요.”
 체콥은 추격하겠다고 대답했다. 스콧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느 물리학자가 그놈의 인문학으로써 주장한 게 있을 거야, 꼬맹아.”
 “불확정성의 원리.”
 체콥이 스콧이 도망친 방향으로 말을 움직였다.
 스콧이 어깨를 으쓱였다.
 “설명할 수 있니?”
 “그 원리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줬어요.”
 체콥은 스콧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건 양자를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니었나요?”
 “그럼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지?”
 “사람들.”
 그러니까 체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양자가 아니야.”
 스콧이 말했다.
 스콧의 차례였다. 스콧은 질문을 받지 않고 한 칸을 움직였다. 다시 체콥의 차례가 되었다. 체콥은 판을 내려다보았다. 체콥의 말은 두 번만 대각선으로 움직이면 스콧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스콧은 도망갈 것이다. 체콥은 스콧이 대답하지 못 할 공식을 고민해보았다. 그러나 공식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스콧의 탈출구가 될 것이다.
 체콥은 질문을 받지 않고 한 칸을 움직였다. 이제 다시 스콧의 차례가 됐다. 체콥이 물었다.
 “도망칠 거죠?”
 “질문하렴.”
 “저 사람.”
 체콥이 시선으로 조이를 가리켰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스콧은 침묵했다. 체콥이 그를 바라보았다. 스콧은 얼굴을 찡그리곤 턱을 문질렀다.
 “서른 둘?”
 “서른이에요.”
 스콧은 말을 움직이지 못 했다. 이제 체콥의 차례였다.
 “전 계속 추격할 거예요, 질문해주세요.” 
 스콧은 로비를 훑어보다 말고 덩치 큰 남자 아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 친구 이름이 뭔지 알고 있냐?”
 체콥은 뒤를 돌아 소년의 얼굴을 확인한 뒤, 어깨를 으쓱이곤 대답했다.
 “제임스.”
 스콧은 남은 명단에서 제임스를 찾아냈다. 체콥이 맞았다. 소년의 이름은 제임스였다.
 체콥은 말을 움직여 스콧의 말과 가까워졌다. 이제 다시 스콧의 차례였다. 스콧은 질문을 받는 대신 이번에도 스스로 한 칸을 움직였다. 그는 이제 질문으로부터도 도망치고 있는 셈이었다.
 “질문하세요.”
 체콥이 어깨를 으쓱였다.
 “참고로 전 애들 이름을 다 알고 있어요.”
 “너 완전 밥맛이구나.”
 “스콧보단 아닐 걸요.”
 스콧은 이번에도 양자역학에 대한 질문을 했고,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이번에도 체콥은 훌륭히 정답을 맞췄다. 체콥은 놀랄만큼 예상한 것 이상으로 영특했다. 생도들이 절절매는 질문에도 서두르지 않고 간결하고 분명한 답을 내놓았다. 당황하긴커녕 새로운 공을 선물받은 것처럼 점차 빛났다.
 체콥이 스콧의 말을 추격하고 있었다. 이제는 세 칸밖에 남지 않았다. 스콧은 도망칠 수 없었는데, 그의 말이 구석에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판에는 끝이 있고 도망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자신을 추격해온 말에게 지켜온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스콧은 더는 대각선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말을 어쩔 수 없이 한 칸 전진시켰다. 그는 이제 완전히 코너에 몰렸다. 다음 차례가 온다고 한들 더는 움직일 곳이 없었다. 체콥이 다음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대도 결과는 똑같았다.
 “그래도 제가 움직일 수 있게 마저 질문해주세요.” 
 체콥이 말했다.
 스콧은 어깨를 으쓱이곤 질문했다.
 “내 이름이 뭔지 알고 있니?” 
 체콥이 대답했다.
 “몽고메리 스콧.”
 “요르겐센.”
 스콧이 정정했다.
 “몽고메리 요르겐센 스콧.”
 체콥의 말은 전진하지 못하고 스콧의 말과 마주보며 섰다. 게임이 끝났다. 체콥이 이겼다. 체스는 체콥의 승리로 끝났다.
 스콧은 시계를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됐구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꼬마 엔지니어씨.”
 “엔지니어를 할 생각은 없는데요.”
 “그럼 어디를 지망하지?”
 잠시 고민하던 체콥이 대답했다.
 “조타수요.”
 아이들은 걸었던 순서대로 D섹터에서 C섹터로, C섹터에서 다시 B섹터로 돌아갔다. 그리고 A섹터와 B섹터를 연결하는 중앙로비에 모여 인원수를 체크한 후, 스타플릿이 제공하는 기념품을 한 명씩 받아갔다. 스콧은 기념품을 챙겨 체콥에게 다가갔다.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조이에게 몰려갔으므로, 스콧에게 기념품을 받기 위하여 기다리는 아이는 체콥뿐이었다.
 “체스는 재미있었니?”
 “네.”
 체콥이 기념품인 조립식 우주선 모형을 받으며 대답했다.
 “마치 연애 같던 걸요.”
 스콧이 비웃었다.
 “연애해본 적은 있냐?”
 “도망치고 추격한다는 점에서 연애와 스콧의 게임은 다를 바가 없어요.”
 체콥이 똘똘하게 말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렇지 않나요?”
 스콧은 낄낄거렸다.
 “그럴 지도 모르지.”
 체콥은 기념품을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스타플릿의 엔지니어가 되면 무엇을 하고 싶어요?”
 스콧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름다운 함선 가장 깊숙한 곳에 처박혀서 내가 할 일을 하고 있을 거다.”
 “그럼 저는 그 함선의 브리지에 앉겠어요.”
 “그리 어려운 목표도 아니구나.”
 “하지만 저는 오늘 스콧을 추격하는데 성공하지는 못했는걸요.”
 “시간이 더 있었다면 잡을 수 있었어.” 
 체콥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연애에도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 법이에요. 놓치면 영영 붙잡을 수 없는 거예요. 코앞에 있어도.”
 “사랑 고백을 듣는 것 같군.”
 스콧은 기발하고 재밌는 농담을 던진 것처럼 낄낄거렸지만, 체콥은 진지한 얼굴로 가방을 메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체콥이 고개를 들었다.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데 고개 좀 숙여주세요, 미스터 스콧.”
 그래서 스콧은 그렇게 했다. 그의 뺨에 물기어린 감촉이 조심스럽게 닿았다 떨어졌다.
 체콥이 속삭이며 당부했다.
 “다음에 또 봐요. 저를 잊지 마세요, 미스터 스콧.”
 스콧은 대답 대신 작별했다.
 “잘가렴, 파벨 체콥.”
 “안드로비치.” 
 체콥이 덧붙였다. 스콧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벨 안드로비치 체콥.”
 그렇게 두 천재는 헤어졌고, 각자의 체스판으로 돌아갔다. 스콧은 그 뒤에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정신이 쏙 빠졌고, 이 어린 천재의 존재를-그의 당부에도 불구하고-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체콥은 시큰둥한 얼굴로 랩을 돌아다니는 밥맛의 미청년을 잊지 않았고, 그리하여 언젠가 둘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함선에서 재회할 운명이었다. 그러니까 체콥은 마침내 스콧을 추격하는데 성공할 운명인 것이다. 이 체스는 전적으로 파벨 안드로비치 체콥의 승리로 끝난다.

comments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