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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그를 토미라고 불렀다.

 

 2

 알렉스는 크리스마스가 되기 꼭 일주일 전 그 골목에서 취직했다. 파트타이머가 오토바이에 치여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된 자리였는데 카페철의 황금기라고도 할 수 있는 대목을 앞두고 생긴 공석이 오래 갈 리 없었다. 알렉스는 적재적소에 등장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채용되었다. 매니저는 이런 일에 오래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크리스마스는 정말 바빴다. 가장 구석진 곳에 박힌 카페였는데도 연인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돌이켜보니 바로 그 이유로 더 붐볐다. 알렉스는 히터로 건조한 실내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커피를 나르고 쓰레기를 주워 담고 매장을 쓸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내렸다 그쳤다 했다. 원래부터 강수가 변덕스러운 고장이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런던 사람들은 비가와도 서두르지 않고 걷고 눈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안개와 강수의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공평하게 무거워지고 젖는 것에 익숙했다.

  손님이 드나들면 차가운 공기가 히터바람을 밀어냈다. 그 때마다 고개를 들고 의무적으로 밝은 인사를 해야 했는데 근무시간이 길어질수록 활기를 잃어갔다. 카페가 아늑해서 한 번 들어온 손님들이 오래 빠져나가지 않았다. 창문에 블라인드를 내리고 오렌지색 조명을 달고 크리스마스라고 곳곳에 포인세티아 리스를 걸어놓아서 확실히 좋은 인상을 주긴 했다. 대신 하루 종일 카페에 박혀 있는 직원들은 날씨가 어떤지 확인할 수 없었다. 손님들의 머리카락에 눈송이가 붙어있으면, 눈이 오는구나. 그러다 또 아무 것도 붙어있지 않으면, 눈이 그쳤구나. 크리스마스 내내 알렉스는 그런 식으로 날씨를 가늠했다. 저녁에는 S가 잠시 들렀다. 카라멜 마끼야또를 주문하면서, “날 사랑하는 만큼 휘핑크림 좀 얹어줘.”하고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S의 머리카락에 붙은 눈송이가 오렌지색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알렉스는 S의 톨 사이즈 컵에 그란데 사이즈 컵만큼의 분량으로 하얀 크림을 잔뜩 얹어주었다. 당연하지만 뚜껑을 닫을 수는 없었다. S는 트레이를 받자마자 웃는 것 같은 비명을 질렀다. 알렉스가 낄낄거리며 S의 보조개에 입을 맞추자, 매니저가 못 본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토미와 남자가 나타난 건 영업 시간이 15분 정도 남았을 때였나.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알렉스는 둘이 오래 앉아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카운터로 나왔다. 둘은 메뉴판 앞에서 고민했다. “뭐 마실 거야?” 토미의 팔짱을 낀 남자가 물었을 때, 토미는 프라푸치노 코너를 살피고 있었다. 크림을 잔뜩 얹은, 혀끝이 녹아내릴 정도로 달달한 음료들.

 “넌 뭘 마실 건데?” 토미가 묻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아메리카노. 이것저것 시럽 넣고 크림 범벅된 건 커피라기엔 좀 그렇잖아.”

 알렉스는 S의 카라멜 마끼야또를 떠올려야 했다. 남자가 말하는 ‘좀 그런’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토미는 슬그머니 프라푸치노 코너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나도 아메리카노 마실게.”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남자가 주문했다.

 “차가운 걸로 드릴까요, 뜨거운 걸로 드릴까요?”

 “뜨거운 걸로.”

 “두 잔 다요?”

 “당연하죠.” 남자는 토미에게 묻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알렉스는 카드를 받고 영수증을 넘겨주었다. 사인을 하던 남자가 그제야 고개를 돌려 토미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거 괜찮지?”라고 너무 늦은 물음을 던지자 토미는 그저 어깨만 으쓱였다. “응, 괜찮아.” 둘은 그런 게 익숙해보였다.

 컵을 닦는 동안, 알렉스는 곁눈질로 구석에 앉은 둘을 흘끔거렸다. 토미는 머그컵을 아주 오래 감싸고 있었다. 연인이 좀처럼 말하지 않는 탓에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사람으로 보이는 맞은편의 남자는 다리를 떨면서 내내 떠들어댔다. 영업시간이 5분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알렉스는 그들에게 매장이 곧 문 닫을 시간이라고 알려주었다.

 “아, 그렇군요.”

 그렇게 대답하고 남자는 일어났다. 슬그머니 팔짱을 끼고 나가는 둘을 카페 직원들이 지그시 응시했다. 알렉스는 거의 입도 대지 않은 토미의 머그컵을 그대로 개수대에 쏟아버렸다. 마지막 설거지를 하는 동안 매니저가 블라인드를 올려서 바깥이 훤히 보였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발이 점점 굵어져서 퇴근할 무렵엔 쌓이기 시작했다. S의 아파트로 향하는 골목에 두 사람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알렉스는 아까 그 둘인가, 하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발자국은 나란하지 않고 큰 쪽이 종종 앞서 나갔다. 뒤쳐진 쪽은 큰 발자국보다 깊은 그림자가 고였고 더 촘촘히 찍혀 있었다. 코너를 돌기 직전에 가로등이 켜져서 거리가 탁한 오렌지색이 됐다. 그쯤에 유난히 깊게 찍힌 부분이 있었다. 아마 멈춰 섰던 거겠지. 지독하게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망설임 없이 코너를 돌 때, 남겨진 사람은 그렇게 서있었을 것이다. 알렉스는 트레이를 받던 토미의 축축한 머리카락과 바깥에서 아주 오래 기다린 것 같은 발간 손과 코끝, 부르튼 뺨을 곱씹어 보았다. 그러자 그와 대조되던 남자의 건조한 머리카락과 좋은 혈색이 돌던 손, 건너편에 앉은 연인을 향해 미지근하게 웃어주던 미소가 떠올랐다. 한 방향으로 뻗은 사랑의 비극성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 날 밤에는 S와 침대에서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알렉스는 S에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연인을 본 것 같다고 고해해보았다. 그리고 맹세컨대 자신은 그 반대편에 S를 데려다놓겠노라 고백해보기도 했다. 그게 얼마나 텅 빈 말인지 알면서도 말이다.

 봄이 오자 런던에는 다시 눈 대신 비가 내렸다. 여전히 내렸다 그쳤다 변덕스러웠는데 S와 알렉스의 관계도 꼭 그랬다. 2월 초에는 S가 경찰서를 다녀왔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를 빌미로 알렉스는 지지부진한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마지막에 S에게 물어보았다. “왜 말하지 않았어?”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알았지만 그런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 S는 별로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네가 그 카페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잖아. 내 아파트 근처에 있다는 이유로.” 괴물 보듯 하는 알렉스의 시선에도 S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바퀴로 그냥 살짝 스치게 만든 거야. 나 운전 잘하는 거 알잖아. 너도 들었지, 걔 다리에 금만 조금 갔다니까.”

 알렉스는 S의 귀에 매달린 무수한 피어싱과 왼쪽 코에 박힌 작은 비즈 알갱이, 손목을 감싸는 문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전에는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특징들이 그녀를 특정 짓고 있었다. 사랑이 소멸된 지 오래되었는데 그걸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내렸다. 알렉스는 호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W에게 문자를 보낼 생각이었다. S와 사귀는 도중에도 W와 몇 번 섹스를 한 적이 있었다. 아마 S도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S의 아파트에서 종종 낯선 트렁크와 드로즈를 발견하곤 했었다.

 돌이켜보면 S와의 교제는 오로지 부정을 저지르고 그것을 은닉하는 재미로만 유지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연애사가 그랬다. 알렉스의 가벼움을 납득하지 못 하는 연인도 있었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연인도 있었고,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연인도 있었고, 애원하면서 욕지거리를 내뱉거나 때리고 협박하는 연인도 있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모두 알렉스를 붙잡지는 못 했다. 끝이 항상 나쁜 건 아니었다. S처럼 깔끔하게 보내주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건 사랑이 없을 때나 가능한 결말이었으므로 가장 최악의 엔딩일 지도 몰랐다. 그래도 알렉스는 그 편이 제일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코너를 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풍경의 물리적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알렉스 인생의 코너에 대한 문제다. 그 뒤로 사랑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알렉스의 무수한 X들이 들었더라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였던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토미가 때마침 그 코너 너머에 서있었다. 그렇게 왔다. 알렉스의 사랑을 위하여 적재적소에 배치된 사람처럼. 한참 나중에야 알렉스는 그걸 운명이라고 간신히 불러보았다.

 토미는 노란 우비를 뒤집어 쓴 채 사차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시시한 연인도 함께였다. 둘이 팔짱을 끼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뭔가 말을 하기는 했다. 알렉스는 W에게 문자를 보내려다 그만두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았는데, 순전 오랜 경험에 의한 감이었다. 그는 잠자코 둘을 지켜보았다. 남자가 토미에게 말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질 않아서 대화는 이어졌다.

 여전하게도 토미는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대답하면서 그에 응하고 있었는데, 남자의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천천히 고개를 젖혀 눈앞의 연인을 바라보는 눈이 마구 흔들렸다. 답을 구하는 입술이 희미하게 달싹이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신호가 바뀌었다. 건너가야 할 때가 왔으므로 남자는 손을 흔들었지만 토미가 움직이질 않자 내버려두었다. 중간까지 가서 그가 토미를 한 번 돌아보기는 했다. 그러나 곧 그대로 걸어 나갔다. 멀어지는 걸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는 신호가 바뀌어서 돌아올 수도 없게 되었다. 코너를 돌기 전, 남자가 한 번 더 손을 흔들었다. 안녕, 이라고 말한 것 같았다. 어쩌면 잘 지내, 라고 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토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층 관광버스가 둘 사이를 오래 가로막았다. 버스가 지나갔을 땐 남자도 없었다. 둘의 끝은 S와 알렉스의 그것만큼이나 싱겁고 밍밍했다. 그게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조차 그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스는 그 말을 꼭 붙이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횡단보도로 뛰어온 여자가 급하게 택시에 탑승했다. 자전거를 끌고 멈추어 선 학생도 있었다. 개를 안은 노인과 아이 둘도 보였다. 횡단보도에 다시 행인이 찼고, 건너편도 그랬다. 남자는 떠나고 토미는 남았지만 거리의 운영에는 문제가 없었다. 신호가 바뀌자 건너편과 이곳의 사람이 교환되었다. 토미는 교환되지 않았다. 그는 전신주처럼 서있었다. 녹색 불이 깜빡이다가 다시 빨간 불로 바뀌었다. 얇은 빗방울이 쉴 새 없이 내렸다. 건물, 거리, 보도블록과 코트, 신발 따위가 탁한 채도로 천천히 젖어들었다. 세 번째 신호가 바뀌었을 때, 알렉스는 다가가서 토미를 툭 건드렸다. 꼭 물 먹은 종이를 만진 것 같았다. 토미는 울고 있지 않았다. 흐물거리는 몸을 바로 잡아 세우자, 매서운 손길이 날아왔다. 토미는 알렉스를 뿌리친 후에도 몇 번 더 비틀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나중에, 토미가 말하길, 그 남자, 그러니까 X와의 연애는 꼭 유예 기간이 있는 데이트 서비스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아주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했다고. 언제쯤 이별의 순간이 올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그저 기다려야 했다고 말이다. 물론 행복한 순간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실망할 때가 더 많았다. 전자는 이별을 버터기 위한 힘으로, 후자는 이별을 납득하기 위한 힘으로 비축되었다. 그 때, 두 번의 신호를 떠나보내면서, 토미는 그 힘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다 소진해버려서 X를 제대로 떠올릴 수가 없게 되었다고. 알렉스의 연애사만 기가 막힌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그런 연애도 있었다.

 

 3

 그러나 이를 특별히 가엾게 여긴 적은 없다. (토미라는 이름도 그가 붙여주었다)

 

 4

 토미를 다시 만난 건 3월의 일이었다. 포인세티아 리스를 떼어내고 블라인드를 올린 창가로부터 진한 햇살이 떨어지던 오후에 문을 열고 나타났다. 알렉스는 카운터에 기대어 아무하고나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특별히 외로워서나 재미있어서 하고 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습관이었다. 앞치마에 휴대폰을 쑤셔 넣자 순식간에 주머니가 미지근해졌다. 알렉스는 고개를 들어 의무적으로 인사했다. 그리고 시선이 마주쳤다.

 이번에 토미는 혼자였다. 크리스마스 이후로 통 보이질 않았으니 올해로는 최초의 방문인 셈이 된다. 그 때 애인과 헤어지고 영영 다시 만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운터로 천천히 걸어온 토미가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머리카락이 젖지 않고 건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한참 서서 그러고 있더니 고작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차가운 걸로 드릴까요, 뜨거운 걸로 드릴까요?”

 “뜨거운 거요.”

 토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기어 들어간 나머지 움푹 들어간 블랙홀을 떠오르게 했다. 무한한 중력 때문에 목구멍 안으로 몸도 따라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너무 작은 목소리여서 사실 잘 들리지도 않았는데, 알렉스는 그냥 뜨거운 것이려니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메리카노를 머그잔에 담아 트레이로 옮기자 토미가 인사하지도 않고 받아서 구석 자리로 갔다. 언젠가 둘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진심으로 구질구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타임에 근무하는 동료 P가 토미를 기억하곤 대신 경악해주었다. 크리스마스에 카페를 방문한 동성연인이 그 둘뿐이었기에 매니저도 P도 어렵지 않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다들 아, 그 때… 하더니 말끝을 흐렸다.

 아마도 아메리카노를 마셔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버렸다. 30분도 채 되지 않아 가게를 떠난 토미의 자리에서 거의 마시지도 않은 머그컵을 들어올렸다. 개수대에 커피를 쏟는데, 그제야 P가 대단하다 정말, 하고 입을 열었다. 손님이 몰려서 토미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자리로 돌아간 P는 커피를 내리고 알렉스는 매장 쓰레기통을 비웠다. 쉬는 시간에 스테프룸에서 W와 통화를 했다. W는 잘 지내고 있다고 했고, 알렉스가 보고 싶다고 웃었다.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연락을 끊었다. 손을 내려다보니 쓰레기를 치우다 묻은 커피 찌꺼기에서 아메리카노 향이 났다. 알렉스는 연인과의 추억으로 목이 메어 마실 수 없는 커피 한 잔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 후 토미는 자주 카페에 왔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후 참을성 있게 앉아서 그것을 홀짝이거나 들이켜 보다가 어김없이 실패하고 나갔다. 앉는 건 늘 그 자리였다. 그 일이 서너 번 반복되자 카페에 근무하는 모두가 토미를 알게 되었다. P는 토미가 언제까지 이 카페에 올지 내기를 걸었다. 어쩌면 새 애인을 데리고 나타날 지도 몰라. P가 흥미진진한 듯이 말했는데, 무엇이 흥미진진한 건지는 본인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저 신나보였다. 매니저는 토미가 구질구질하다고 말했다. 분명 애인에게 호되게 차인 거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목소리에 의외로 연민이 묻어 있었다. 알렉스는 매니저의 의견에 대체로 공감하였다. 그렇다고 불쌍하게 여겼냐면 그건 아니었다. 연민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감의 산물이다. 상상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영역에 있다. 무수한 연애를 거치긴 했지만 알렉스가 토미를 위한 상상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가엾게 여길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애초부터 토미는 불가해의 영역에 존재했다. 알렉스는 남자로부터 성적인 끌림을 경험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 했고 평생 알지 못 해도 상관없다는 쪽이었다. 이따금 런던에서 작은 시위가 벌어지곤 했지만 게이, 동성애, 성소수자, 같은 단어를 신문에서 가볍게 넘기는, 알렉스는 한평생 그런 인간이었다.

 그래도 매일 같이 카페에 와서 마시지도 못 할 커피를 시키고 오래 지키지도 못 할 자리에 앉아있는 토미를 보는 일을 가볍게 넘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제법 관심이 갔고 지루하지 않았다. 거기 가만히 앉아 있는 그를 보고 있자면, 그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가 무언가와 싸우고 있음이 느껴졌다. 매일이 격전이었고 패잔병처럼 떠났다. 그야말로 Tommy(영국 병사)였다.

 이주일 쯤 되었을 때, P는 내기를 철회하고 그 일에 완전히 손을 뗐다. 대신 알렉스가 그렇게 부르듯, 그를 토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며칠 후엔 매니저도 그렇게 불렀다. 얘, 오늘은 토미 안 온대니? 혹은, 토미 왔었어? 그런 식으로 통용되었다.

 토미는 왔다. 계속 왔다. 멈추지 않고 왔다. 거의 한 달을 꾸준히 드나들었고 그 날도 그랬다. 알렉스는 그 때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었다. 허리를 펼치자 쇼윈도우 너머로 비 내리는 런던 거리가 보였다. 끝에서부터 익숙한 인영이 나타나더니 점차 가까워졌다. 토미는 천천히, 좁은 보폭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비를 다 맞아가면서 달팽이처럼 왔다. 그걸 보는데 갑자기

 아, 참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참아왔는지도 몰랐는데 감히 그렇게 느꼈다. 날씨 탓에 바깥이 캄캄했다. 카페 벽지가 유독 침침해보였고 토미가 앉는 기둥 근처에 포인세티아 리스를 달아놓았던 흔적이 도드라졌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에도 카페는 한동안 그것들을 떼어내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그러다 알렉스가 말한 것이다. 철 지난 거 언제까지 촌스럽게 달고 있을 거예요? 알렉스는 그런 것들을 참지 못 했다. 시간감각을 어수선하게 만드는 물품과 사람들. 보내줘야 할 때를 알지 못 하고 구질구질 매달리던 지난 연인들처럼, 크리스마스가 떠난 자리에도 남아있던 리스가 꼴 보기 싫었다. 토미가 유지하고자 하는 시간들은 2월 어딘가에서 끝났는데 아직까지 걸려 있었고 리스가 떨어진 기둥 아래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거슬린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의식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리스 같은 걸로 취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는 돌아오지만 연인은 유통기한이 있고 사랑은 재활용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토미가 그만했으면 싶었다. 미련하다고. 그 날도 토미는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알렉스는 포스기에 아무것도 찍지 않고 그대로 서있었다.

 “그거 잘 못 마시지 않나요.”

 알렉스의 말에 토미가 고개를 들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것처럼 알렉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가 알게 될 징조를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네, 잘 마시지 못 해요.” 하고 토미가 대답했다. “익숙해져볼까 했는데 잘 되지가 않네요.”

 “마시고 싶은 걸 마셔요.” 알렉스가 말했다.

 “역시 그게 좋겠죠.” 토미는 납득했다.

 그래서 토미가 드디어 프라푸치노를 주문했다. 자바칩에 휘핑을 잔뜩 얹어달라고 말하는 토미의 눈이 오렌지색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처음으로 생기 있는 눈을 본 것 같았다. 알렉스는 트레이에 컵을 올려놓고 벨을 울리는 대신 직접 토미 앞으로 그걸 가지고 나갔다. 토미는 이번에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때까지 인사하지 않았고, 이제 와서 인사를 했고, 고맙다고 했는데, 알렉스는 그 사실을 알아차린 자신에게 놀랐다. 이제까지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섬세해본 적이 없어서 그 경험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연인들이 있지, 나 머리 잘랐는데, 할 때마다 잘 모르겠다는 말로 심드렁하게 넘겼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건 명백히 새로운 사건이었고 기쁨을 느낄 차례였다. 그런데 알렉스는 그걸 토미가 고맙다고 해서가 아니라, 그 인사에 특별함을 알아차린 자신에 대한 놀라움이라고 믿어버렸다. 프라푸치노를 건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알렉스는 사랑에 빠져놓고선 자신에게 눈이 멀어 이상한 포인트에 도취되고 말았다. 그 멍청이에게, 토미는 희미하게 웃어주었다. 어떤 비극이 다시 시작되려고 했는데 거절하지 않았던 셈이다. 트레이를 가져가려는 알렉스에게 토미가 작게 중얼거렸다. 사실 커피를 남긴 건 말이에요, 그냥 써서 그랬던 거예요. 그 말에는 당신들이 나를 무엇으로 봐왔으며 어떻게 연민했는지 알고 있다는 정보가 명확하게 담겨 있었다. 알렉스는 엉거주춤 서서 ‘다음 프라푸치노에는 휘핑크림을 그란데 사이즈만큼이나 담아주겠다’고 멋쩍게 웃었다. 둘은 싱거운 대화를 몇 번 더 주고받다가 손님이 오는 바람에 헤어졌다. 토미는 자리에 앉아 알렉스가 바쁘게 매장을 돌아다니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알렉스가 고개를 들었을 땐 의자가 이미 비어있었다. 나중에 P가, ‘어쩐 일로 토미가 평소보다 몇 분 더 길게 앉아있었다’고 전해주었다.

 무언가 시작되어 버린 것 같다는 감각을 깨달았을 땐 3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W와 섹스하던 알렉스는 어느 순간부터 그녀와 사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가끔 E나 A같은 친구들이 먼저 연락해오면 뿌리치지 않고 받았다. 모텔이나 E 혹은 A의 아파트에서 옷을 벗고 허겁지겁 정사를 나누며 4월을 보냈다. 매트리스에 엎어진 나신으로 담배를 피우며 W의 취조를 요리조리 빠져나가곤 했다. 섹스파트너로 시작한 여자 친구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지옥에 갈 것 같지는 않았다. 이때까지 저질러온 게 있어서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따금 견딜 수 없는 불안이 찾아왔다. 이를테면 토미가 오렌지색 조명을 받으며 눈동자를 반짝거릴 때, 톨 사이즈 컵에 그란데 사이즈만큼으로 휘핑크림을 잔뜩 얹어주면서 시선이 마주칠 때. 알렉스가 먼저 웃어주거나 아주 가끔 토미가 먼저 웃어주곤 하는 순간들. 그건 그냥 일상이었는데 일상으로 치부할 수가 없었다. 일상이라면 지루해야만 했는데 지나치게 생기가 있어서 비일상적이었다. 이대로 내버려두어도 괜찮은 것인가 싶을 정도로 싱싱한 고양을 느꼈다. S의 컵에 휘핑크림을 얹어주거나 W와 섹스하거나 A의 아파트에서 거짓말을 할 때도 그렇게까지 즐겁거나 기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권태롭기만 했고 연애가 다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토미는 아니었다. 그런데 토미와 뭔가 하고 있지는 않았다. 일상에서 맞이하는 기쁨이라는 게 뭔지 몰라서 알렉스는 자꾸만 허둥지둥했다. 그걸 간직해도 되는 것인지, 아님 그냥 흘러가게 두어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 그 마저도 불가능했다. 토미는 예나지금이나 불가해의 영역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매번 제시간에 와서 그 자리 그대로 앉아 음료를 주문했다. 그런데 참을 수 없지 않았다. 커피에서 음료를 주문한다는 것만 달랐는데도 그랬다. 그 변화를 알아차린 자신이 두려워졌다. 깊은 불안을 자주 느끼게 되었다. 인생에 토미가 들어와 있었다. 그것을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었다’ 쯤으로 가볍게 말할 수 없었다. 토미는 남자였고 연인이 아니었고 그럴 일도 없었고 그렇기에 S도 W도 될 수 없었다. 토미는. 토미는… 그냥 거기 있을 뿐이었다.

 

 5

 토미에 대한 이미지로는,

 건너가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다 교환되지 않는다 저항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뿌리칠 수 있는 사람

 따위를 쓸 수 있었다.

 

 6

 알렉스의 첫 연애는 열두 살 때였다. 또래들에 비하여 조숙하게 진행되었는데 혀를 섞으며 입술을 포개는 법을 터득했을 즈음 헤어졌다. 여자애의 이름도 모습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금발이었던가? 까만 머리였던 것도 같았다. 어쩌면 동양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모르겠다.

 그 뒤로 많은 여자들이 알렉스를 거쳐 갔다. 다들 거대한 전철역을 지나는 기분으로 그를 대했을 것이다. 반드시 거쳐 갈 수도 있고, 또 거쳐 가는 게 나쁜 것도 아니었지만, 확실히 종착역은 아니다. 알렉스 자신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열차들은 달려 나가고 역은 남는다.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새로운 기차가 온다. 헤어 디자이너와 교사, 파트타이머, 쉐프, 미대생… 운 좋게 모델도 사귀어 보았다. W가 그 모델이었다. 모델을 두고도 그 여성편력을 고치지 못 해서 이 사단이 났다. 여름 무렵에 결국 꼬리가 잡혔다. W는 구질구질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알렉스를 흠씬 두들겨 팼다. 배신감이라기보다 자존심에 가까운 감정으로 보였다. 모델이었으니까. A나 E가 W보다 특별히 예쁘거나 잘나지는 않았으니 이해는 갔다. 맞아주고 나와서 A나 E에게 연락을 하려다 길거리에 서있는 다른 여자에게 번호를 땄다. 잘생겨서 편리한 일들이 있었는데 알렉스는 자신이 가진 걸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지나치게 잘 알고 있는 편에 속했다.

 한여름이 오자 카페는 차양을 치고 테라스에 의자와 테이블을 놓았다. 원래 그렇게 해왔으니까 토 달지 말라고 매니저가 눈치를 줬는데 아무래도 리스 사건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알렉스는 그런 문제로 투덜거렸던 건 아니라고 해명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테라스가 열리자 토미는 종종 야외로 나갔다. 그 기둥을 벗어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알렉스는 그것으로 시간의 환기와 계절감을 느꼈다. 좀 덥지 않아? 아니, 괜찮아. 저녁 바람을 맞는 일이 좋아. 그 무렵엔 둘 다 말을 놓고 있었다. 확실히 토미의 모습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비스듬한 햇발을 받으며 이따금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면 밝은 자갈색, 황금색, 빨간색 따위로 빛났다. 보기가 좋아서 근무 중에도 종종 바깥을 내다보았다. 블라인드를 떼버리는 게 어떠냐고 건의를 했다가 매니저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휘핑크림을 한가득 얹은 프라푸치노를 일부러 테라스까지 들고 나가서 토미 앞에 내려놓을 때마다 신경 써서 미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매번 어색하기만 했다. 여자 앞에서는 잘만 되었는데. 남자라 그런 거라고 애써 다독여봤다. 딱히 꼬시려고 그런 건 아니었기에 스스로 썩 납득되지는 못 했다. 그러다 하루는 정말 꼬셔보려고 근무가 끝나면 기다려줄 수 있겠다고 내뱉었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는데 토미는 정말 기다려주었다. 알렉스는 그 날 A와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술집 같은 곳을 데려갈 생각이었는데 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냥 근처 공원을 갔다. 도시 한복판에 있어선지 관리가 잘 되어서 깨끗하고 고즈넉했다. 출근할 때마다 지나갔었는데 한 번도 가볼 생각을 못 했었다. 토미가 아니었으면 영영 출입해 볼일이 없었을 것 같았다. 둘은 노을이 지는 도시의 공원을 걸었다. 인공적으로 잘 닦긴 길을 어렵지 않게 누비며, 토미가 말한 초여름 저녁의 바람을 맞아보았다. 그 말 그대로 좋았다. 하늘은 비비드에 가까운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공원 한가운데에 작은 둔턱이 있었는데, 그곳을 넘어선 공간은 온통 살구에 가까운 오렌지색이었다. 변화무쌍한 노을의 서쪽으로 선선한 공기가 끊임없이 넘어오고 있었다. 둘은 대화를 했다. 주로 알렉스가 떠들어댔는데 토미 쪽이 말수가 적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 알렉스는 그들의 두 번째 만남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냈다. 횡단보도 앞에서 자신을 뿌리치던 토미의 얼굴이 몹시 쓸쓸했던 것에 대하여. 신호를 두 번이나 놓친 토미의 빤한 고의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 고의 속에 담겨 있었을 어떤 감정들. 토미를 카페까지 이끌었던 그 격전의 순간들. 쭉 궁금해 했노라 내뱉고 나서 알렉스는 그렇게까지 토미를 곱씹고 있던 자신에게 놀랐다. 별로 궁금해 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문장으로 내뱉고 나니 마음에 깊게 남았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문장 자체가 쪼글쪼글 주름져 있었다. 너를 궁금해 했어, 라는 말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토미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찬찬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무엇인가 알게 될 징조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리곤, “알렉스 네가 잡아주지 않았더라도 나는 충분히 비틀거렸을 거야.”라고 대답했다. 토미는 그런 식으로 이상하게 말할 때가 있었다. 잡아주었다, 가 아니라 잡아주지 않았더라도, 라고 했다. 세상이 당연하게 정해놓은 법칙과 상식의 선 바깥에서 사고하고 답을 내렸다. 네가 붙잡은 덕분에 살았어, 가 아니라 네가 붙잡았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어, 따위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알렉스는 토미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바람이 불어서 머리카락이 둥그런 이마 위로 나부끼고 있었다. 찡그린 눈썹 위로 가로등의 불빛이 떨어졌다. 알렉스는 토미가 어쩌면, 방금 자신을 조금 밀쳐내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밀쳐져 본 적이 없어서-알렉스는 주로 밀쳐내는 쪽이었으므로-그게 맞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랬구나.” 대답했다. 그랬구나. 내가 붙잡지 않았더라도 너는 그 길을 외롭게 걸어 나갔겠구나.

 “그래도 내버려 둘 수는 없었어.”

 “응.”

 토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알렉스는 지난 몇 달 치의 많은 토미를 떠올렸다. 신호등 앞에 전신주처럼 서있던 토미, 알렉스를 뿌리치던 토미. 단 한 모금도 마시지 못 한 아메리카노가 식기를 기다리던 토미. 좀 더 나아가면 코너 앞에 쓸쓸하게 찍혀 있던 깊고 작은 발자국이 있었다. 그런데 토미는 단지 원래부터 휘청거릴 예정이었거나 쓴 것보다 단 것을 더 잘 마실 뿐이었다. 공원을 느리고 천천히 걸었다. 실연한 오기로 억척스럽게 붙들고 있는 미련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이때까지 착실하게 봐온 게 X의 그림자가 아니라 토미 그 자체였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자 갑자기 토미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새삼스럽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전혀 거북하지 않고 오히려 다소 부족하게 느껴져서 곤란할 정도였다.

 그 날 공원을 도는 내내 알렉스는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다 마침내는 X에 대해 묻기 시작했는데 토미는 마치 언젠가 알렉스가 그것을 물어올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준비된 대답을 늘어놓았다.

 X는 토미의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대학도 가까운 곳으로 진학했기 때문에 졸업 이후에도 종종 만나던 친구였다. 갑자기 그런 마음이 생긴 건 아니었고 차차 무르익은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토미가 말이다. X쪽이 어땠는지에 대해 토미는 확신하지 못 하고 말을 흐렸다. 한 땐 연인이기까지 했으면서 우스운 일이었다. 그만큼 확신도 없이 시작해버린 일이었기에 끝이 좋지 않았던 거라고, 토미는 덤덤하게 말했다. 퀴어 동아리를 하고 그런 류의 시위를 몇 번 나갔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말한 적이 있는데 X가 의외로 그래? 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돌려서 떠본 거였기에 집으로 돌아와 혼자 가능성에 대해 점쳐보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떠보고 점쳐보았다. 아무리 애써도 백 퍼센트로 치닫지는 못 했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어느 날 고백했는데 X가 알겠다는 대답을 내놓아 깜짝 놀랐다. 그리고 사귀게 되었는데 예전과 별 반 다를 건 없었다는 이야기까지. 사실 좀 상투적인 전개긴 해, 하고 토미가 덧붙였다. 같이 있는 게 편해서 그걸 사랑이라고 쳐도 좋을 것 같았나 봐, 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걸 디나이얼의 반대라고 하는데 커뮤니티에선 왕왕 있는 일이란 것이다. 마음에 확신이 없고 갈팡질팡하거나 아무렴 어떠냔 모험심으로 상대의 진심을 우선 받아보는 헤테로들. 알렉스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생각했다. 어느 연애에서든 마음이라는 것은 결국 권력이 되는구나. 거기에 성별이 덧입혀지면 더 아프고 유난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알 수 없었기에 묻고 싶었다. 너도 그랬냐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S와 W가 생각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고통을 궁금해 할 자격이 되는 지가 의심스러웠다.

 토미는 어떤 말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알렉스는 그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노을이 다 져버려서 공원이 어두워졌고 가로등 탓에 완벽히 다른 분위기가 되었다. 고즈넉 하다기 보다 좀 더 은밀해졌다는 편이 어울렸다. 풀벌레가 울기 시작했다. 둘은 벤치 근처에 멈추어 섰다. 건너편 화단으로 조깅하는 남자가 희미한 음악소리를 달고 지나갔다. 알렉스는 손가락을 매만지면서 입을 열었다.

 “…걔랑 잤어?”

 다시 생각해도 끔찍할 만큼 멍청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알렉스가 하려던 말은, 너도 외롭고 아팠냐는 것이었는데, 그러려면 연애다운 뭔가를 해봤을 테고, 연애라는 건… 보통 그런 거니까. 어쨌든 많은 게 생략되어 무례해졌는데도 토미는 화내지 않았다. 그런 게 익숙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응.”

 “아팠겠구나.”

 “그렇지.”

 “여러가지로.”

 “응, 여러모로.”

 그리고 둘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그대로 공원을 빠져나왔다. 토미의 빌라로 갔다. 토미의 거실은 복층이었고 방은 제법 넓었다. 유복함의 상징이었는데도 넓다기보다 비어 보인다는 인상을 줘서 무신경하고 외로워보였다. 꼭 지 같은 방에서 자네. 방문을 닫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거기서 알렉스 인생 최악의 섹스를 했다. 기분이 나빴던 건 아니고 순전 알렉스의 서투름 탓이었다. 여자를 안는 거나 남자를 안는 거나 삽입하는 쪽이라면 거기서 거기일 줄로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 콘돔이 똑같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을 땐 제법 놀랐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땐 그렇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던 토미가 흔들리거나 혼란스러워 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 과정을 말로 설명해주었다. 매트리스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알렉스는 속에 블랙홀을 삼킨 것 같은 말투로 가끔 대답했다. 응, 응, 알겠어. 기억해볼게. 좋아, 알겠어.

 토미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옷을 벗기고, 다리를 벌린다. 콘돔을 손가락에 끼우고 구멍을 헤집는다. 도무지 상상해본 적이 없는 영역으로 발을 내딛었는데도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이런 건가? 따위의 생각이 들었다. 토미는 끙끙거렸고 가끔 물기 있는 소리를 뱉으면서 고개를 젖혔다. 단단한 가슴팍을 바싹 붙이며 언젠가 넘겨버린 신문의 기사들을 생각했다. 플랜카드를 들고 무지개 깃발 아래서 소리치던 사람들. 그 속에 토미도 있었을까. 읽었더라면 더 빨리 알 수 있었을까. 더 빨리 이런 것들을 알아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었을까. 이 애를 더 기분 좋게 해줄 수 있었을까. S나 W의 가슴은 둥글고 풍만해서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자꾸만 틈이 생겼는데 토미는 아니어서 심장이 자꾸만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도 틈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랬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네 번이나 했다. 녹초가 되어 쓰러진 토미의 젖은 머리칼을 쓸어주면서, 알렉스는 자꾸만 품으로 그 애를 끌어당겼다. 아팠어? 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내뱉고 보니 “외로웠어?”였다. 그제야 제대로 물어보았는데 하필 섹스 이후라는 게 지극히 알렉스다웠다. 토미는 숨을 고르느라 가슴을 자꾸만 움직이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나도 외롭지 않았어. 왜? 걔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해서. 그게 더 외롭지 않아? 그렇지 않아. 사랑은 불확실한 것에 자꾸 마음을 거는 거잖아.

 그 때, 그건 아마 사랑고백이었을 것이다. 알렉스가 대답할 차례였는데 그냥 껴안았다. 그러자 두 납작한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두 다리가 얽혀서 매트리스 바깥으로 조금씩 걸쳐졌다. 토미는 발가락만 걸쳤다. 알렉스는 어떤 확신을 느꼈다. 다시 이곳에 와서 이런 일을 하게 되면 이번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예감. 토미가 다시 초대해준다면 이번엔 올바른 타이밍에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토미가 대답할 테고,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고. 그런 다짐을 하며, 품속의 그 애를 아주 오래오래 껴안았다. 다음 날 일어났더니 A나 E나 G로부터 문자가 몇 통이나 쌓여 있었다. 알렉스는 연락처를 비웠다.

 

 7

 토미 (TOMMY)

 1. <명사> 영국 병사

 2. <상태> 움직이지 않다, ~와 교환되지 않다, ~에게 저항하지 않다

 3. <명사> 뿌리치는 사람

 

 8

 알렉스는 토미가 깨어나기 전에 빌라를 나왔다. 새벽이어서 거리엔 사람이 드물었다. 가게들은 아직 문을 열기도 전이었다. 알렉스네 카페도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다. 건물들의 꼭짓점을 완만하게 만들 만큼 코너를 돌고 또 돌면서 서서히 동이 트는 걸 구경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간밤의 일을 자꾸 곱씹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난 간밤에 남자랑 잤는데 말이야, 세상은 멀쩡하다. 아니, 멀쩡하지만 여전한 건 아니었다. 확실히 무엇인가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시작되었음을 넘어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을 방치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가슴에 뭔가 걸린 것처럼 매스껍고 묵직했다. 토미를 그렇게 내버려두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는 후회가 뒤늦게 들었다. 외로웠냐고 물어놓곤 그 큰 방에 잘도 버리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서서 그 애를 오래 정의해보았다. 인생에 갑자기 들어찬 불가해한 존재의 이름과 뜻을 고민해봤다. 갑자기 패잔병처럼 나타나 격전하고 자신을 뿌리치고 또……. 이상한 기분이 든다. 간밤에 그 애가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알렉스는 죄책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자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옥에 자리 하나가 마련되었는데 조만간 거기 떨어질 것 같았다. 그제야 토미로부터 오던 깊은 불안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내내 미안해하고 있었다. 무엇을 미안해하는 줄도 모르고, 그저 사랑을 철학하면서 자꾸만 미안해했다. 토미에게. 시작하거나 끝내지 않을 자신을, 미안해했다. 그리고 간밤에 토미가 그것을 물었다. 언젠가 X에게 그랬던 것처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떠보고 점쳐본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애써도 백 퍼센트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알렉스가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동이 다 터오를 쯤부터 출근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서서히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행인들이 이따금 알렉스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알렉스는 고개를 숙이고 발가락을 움츠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어떤 다짐을 했다. 사귈래 혹은 사랑할래. 아마 후자가 더 좋을 거라고, 왜냐하면 전자는 조금 유치해보이니까. 그런 이상한 고민과 결론을 내리고 카페가 문을 열 때까지 오래 서있었다.

 

 9

 마땅한 구실이 없다. 그런 식으로 알렉스는 종종 책임을 회피하고 인연을 방기했다.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관계에서는 그걸 계기로, 시작해서 끝난 관계에서는 그걸 자신의 못남으로 읽었다. 우리가 그럴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었잖아, 혹은, 내가 너무 못나서 그렇지 뭐. 확실하게 상대의 공격과 방어를 차단할 수 있는 가장 비겁하고 좋은 변명이었다. 구실이라는 건 알렉스의 연애사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다. 기록되지 않아도 몸속에 켜켜이 축척되어 그의 인격을 만들어왔다. 어느 순간부터 구실은 사랑의 필수조건이 되었다. 사랑을 시작할 때도 끝낼 때도 항상 필요했다. 알렉스는 여태껏 그것을 요령껏 사용해서 곤란한 순간을 벗어나왔는데 종국엔 그게 모든 걸 망쳐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알렉스는 그 순간을 아주 많이 후회했다.

 토미는 평소보다 좀 더 이른 시간에 왔다. 좀 피곤한 얼굴이었다. 간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 알렉스가 휘핑크림을 탑처럼 쌓았다. 트레이에 얹자 중심을 잡기 힘들어 마구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토미가 그 모습을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알렉스는 웃을 생각이 아니었는데도 그 얼굴을 보니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가게 되었다. 발가락이나 손가락 같이 꼼질거릴 수 있는 모든 부위를 가만둘 수가 없었다. 알렉스는 평소보다 정신 사납게 움직이며 토미 앞을 왔다갔다했다. 그게 꼭,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말을 걸 구실이 없으니까 네가 먼저 걸어주면 안 될까, 쯤으로 읽혔다. 토미는 그 무언의 몸짓을 받아주었다. 힘없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

 “음, 안녕.”

 알렉스는 토미가 무어라 묻지도 않았는데 변명부터 했다.

 “깨우기엔 뭐해서, 먼저 나갔어.”

 “응.”

 “너는…….”

 알렉스가 우물쭈물하자 토미가 대답했다.

 “괜찮아.”

 “음… 그렇구나.”

 알렉스는 멋쩍게 입을 다물었다. 더 대화하지 않고 매장 음악이 공백을 채웠다. 토미가 정말 괜찮은지가 궁금했는데 그보다는 중요한 할 말이 있어서 우선 그것부터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타이밍을 잡기 위하여 공백 속에서 자꾸 틈을 노렸다. 쉽지 않았다. 이때까진 지나칠 만큼 쉬웠는데 밀쳐진 난이도가 이 순간을 위하여 투자되었던 것 같았다. 침묵이 점점 묵직해지는데, 있지, 하고 토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있지, 알렉스. 그 애는 처음으로 알렉스의 이름을 불렀다. 트레이에 얹어놓은 휘핑크림이 녹아내릴 것처럼 달달한 음료 안으로 침몰하듯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컵 표면에 붙은 물방울이 지나치게 무거워져서 언제든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다시 여기 오지 않을 건데, 넌 어떻게 생각해?”

 주르륵, 트레이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알렉스는 토미의 프라푸치노를 내려다보다가 쇼윈도우를 보다가 했다. 토미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랬다. 여태까지 쭉 도망쳐왔기에 이럴 땐 어떻게 받아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창밖으로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소나기처럼 보였다. 햇빛이 여전하게 들어서 카페가 밝았다. 토미는 침착하게 기다렸고, 마침내 알렉스가 고개를 돌려 토미를 마주보았다.

 토미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사람으로 보였다. 어떤 말이든 해달라는 눈으로 알렉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이 몹시, 불안하고 위태롭게 느껴졌다. 토미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이런 일엔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무엇이든, 심지어는 말도 안 되는 것들에까지 익숙하게 굴었으면서도. 트레이에 잔뜩 물이 고여 있었다. 알렉스가 입을 벌리곤 어, 하고, 간신히 입을 떼었다.

 “난, 나는 네가 왜 그런 소릴 하는지.”

 잘, 모르겠어. 까지 말하고 나서야 번쩍 깨달았다. 실수했다고. 하고 많은 대답 중에서도 제일 얼간이 같은 대답을 내놓았고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이 애를 실망시켜버렸다고. 또 미안한 일을 만들어버렸다고. 알렉스는 토미를 내려다보았는데, 토미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어쩐지 아주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이라고 바보같이 믿으면서 따라 희미하게 웃어보았다. 그게 비웃음이라는 걸 한참 나중에야 알았다. 그렇게 믿었다.

 

 10

 토미가 카페를 뛰쳐나왔을 때, 하늘은 밝고 곳곳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동시에 가느다란 빗방울이 떨어졌다. 지극히 연약한 나머지 어딘가를 적시거나 고이거나 범람할 수 없을 것 같은 수분의 조각들이 쉴 새 없이 내렸다. 알렉스가 뒤늦게 따라 뛰쳐나왔는데 토미는 벌써 성큼성큼 거리의 절반까지 나아가있었다. 카페 앞치마를 하고 정신없이 달려 나가는 알렉스를 행인들이 흘끔거리다 지나쳤다. 비가 내리는데도 모두 서두르지 않고 걸었기 때문에 따라잡으려는 알렉스와 떠나가는 토미만이 동떨어진 풍경으로 콜라주된 것처럼 보였다.

 토미를 따라잡은 건 코너를 돌아 나오는 횡단보도 앞에서였다. 잡고 보니 언젠가 서있던 바로 그 거리였다. 코너 이전에는 토미가 겨울 무렵 진한 발자국을 남기고, 코너 너머에선 토미가 봄 무렵에 잔인하게 걷어차였다. 알렉스는 순간 토미가 거기 멈춰서 있지는 않을까 얕은 기대를 했는데, 곧 신호가 빠르게 바뀌어서 행인들과 떠밀렸다. 토미는 멈추지 않고 걸어 나갔다. 알렉스가 허겁지겁 신호에 편승하였으나 너무 늦어버렸다. 깜빡이던 신호가 재빨리 빨간불로 바뀌어서 덩그러니 도로 한가운데에 남겨지게 되었다. 승용차가 빵빵거리며 엑셀을 밟는 바람에 알렉스는 더 나아가지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토미가 건너편 거리를 걸어 나가고 있는 게 보여서 소리쳐 부르려고 했다. 토미, 하고 부르려는데 그제야 문득, 토미의 이름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토미라고 불렀는데 정작 누구의 토미도 아니었다. 토미는 알렉스가 자신을 토미라고 부른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도 알렉스는 달리 외쳐 부를 이름이 없어서 엉겁결에 “토미!”하고 불렀다. 당연하게도 토미는 돌아보지 못 했다. 이층 관광버스가 지나가는 바람에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고, 그 버스 뒤로도 고층 버스가 몇 대나 더 서있었다. 그 버스가 지나고, 그 다음 버스가 지나는 짧은 틈마다 멀어지는 토미의 뒤통수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봤다. 바람이 불었는데 선선하지 않고 온통 매연이었다. 버스와 버스의 틈마다 토미의 뒤통수가 바뀌었다. 노란 우비를 입고 있다가, 티셔츠를 입고 있다가, 마침내는 목도리에 코트를 껴입고 있었다. 빗방울이 순식간에 눈송이로 바뀌었다. 알렉스는 발자국을 찍으며 돌아가는 토미를 보았다. 길게 이어지는 촘촘하고 깊은 발자국이 코너를 돌 때까지 주욱 늘어졌다. 언젠가의 알렉스가 뒤늦게 그 발자국을 좇으며 생각했었다. 용케 그런 얼굴을 마주보면서 연애를 하는 구나. 했었다. 용케 혼자 코너를 돌아 마저 걸어갔구나. 그런데 너 정말 외롭지 않았니.

 신호가 바뀌어 녹색불이 되었지만 교환되지 않은 알렉스가 얼굴을 두 손으로 묻었다. 그게 꼭 전신주처럼 보였다. 무엇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울었다. ■

 

* 자국 [명사]

1. 다른 물건이 닿거나 묻어서 생긴 자리. 또는 어떤 것에 의하여 원래의 상태가 달라진 흔적.

2. 부스럼이나 상처가 생겼다가 아문 자리.

3. 발자국

4. 무엇이 있었거나 지나가거나 작용하여 남은 결과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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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핀리 최애 자작곡 <imprint>를 테마로 썼다. 핀리 진짜 지 같은 거 부르는 것 같음... (당연하지 자작곡인데...) 해리랑 무대 한 번만 서달라고 물 떠놓고 빌었었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음. 하지만 해리가 인터뷰에서도 핀리 자작곡 언급했었기 때문에 아주 근본도 없는 소망은 아니었음 진짜임.

1-1. 부제목 : 이상한 기분이 든다. 간밤에 그 애가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2017/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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