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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는 아름다운 풍선을 만들고 있었다. 열여덟 살 때다. 날씨가 좋았다. 피치파 마을의 바람은 후덥지근한 법이 없고 서늘하고 건조해서 언제나 창문을 열어놓을 수 있었다. 창가에 기대어 황금빛 액체를 머그컵에 넣고 흔들고 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듣고 있던 건 무슨 과목이었지?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약초학 강의는 아니었다. 졸고 있지 않았으니까.

 한창 수업 중인 강의실 문을 두들긴 것은 당시 지지를 담당하던 해던 교수였다. 그가 지지를 찾았다. 그는 그때 지지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호명했는데(“지지 헌팅턴 학생을 불러주세요”), 지지는 아직도 해던 교수가 사용하던 어투에 담긴 무게, 그 무게로 감지할 수 있는 비일상의 전조를 잊지 못한다.

 계단식 강의실을 천천히 내려와 교단을 지나치는 동안 지지는 등이 차갑게 굳는 것을 느꼈다. 그때까지 그녀는 부고를 가져오는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 뒤의 일은 너무나 생생한 나머지 오히려 소설 속의 장면처럼 편집되어있다. 지지는 다소 멍한 얼굴로 교수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응당 그녀가 거쳐야 할 장소들로 조금씩 이동되었다. 빨간 눈가를 숨기면서 이를 악물던 오빠와, 지지의 얼굴을 보며 오열하던 동생을 번갈아 안아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이게 다 무슨 소란이지?’ 어떤 사건이 벌어졌지만 그 경과는 그녀의 발밑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깊은 슬픔의 시기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지지에게는 편지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굉장한 위안을 준다. 특히 편지를 쓰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때로 살아가는 일은 상처받은 마음을 감추고 살아가는 자신을 견디는 일이지만, 엄마가 죽었을 때 지지는 그 무게가 지겨웠다. 하지만 걸핏하면 울음을 터뜨리고 싶지도 않았다. 울음을 터뜨릴 때면 죽음이 더 무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죽음의 의미는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다. 때로는 우는 자신을 위해 우는 것만 같았다. 불행의 저울 위에 슬쩍 추를 하나 얹어놓는 것만 같은 나날이 있었다.

 

 복도를 걷다가 쓰레기통 곁을 굴러다니는 그 구깃구깃한 편지조각을 주웠을 때, 지지는 그 깊은 슬픔의 구렁에서 올라오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왜였을까? 지지는 그때까지 머시 멧갈프에 대해 크게 신경써본 적이 없었다. 지지가 머시 멧갈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약초학에 엄청나게 재능이 있었지!” “조금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혓바닥이 빛나서 재밌어!”가 전부였던 것이다. 아카데미 재학 기간 동안 머시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2년 동안 아카데미의 사건사고와 동떨어진 생활공간에 있었던 지지로서는 머시가 다소 먼 후배처럼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편지를 주워버리다니.

 ‘어쩌면 좋지?’

 머시를 찾아 아카데미를 헤매는 동안, 지지는 자신의 지나가버린 어떤 슬픔의 시절과, 그를 통과한 오늘날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굳은살, 슬픔을 다루는 제 나름의 능숙함을 떠올렸고, 마침내는 머시 멧갈프에 대한 감상에 한 가지를 덧붙이게 되었다. “신경써주고 싶어.”

 하지만 어쩐담? 눈치도 센스도 눈곱만큼도 없는 선배로 유명한 지지가 전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정평이 난 저 머시에게 어떻게 말해야만 이 마음을 능숙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어쨌든 지지는 말을 걸었고 머시는 그에 응답했다. 그럼 이제부터 챙겨주면 되는 건가? 잘 모르겠다. 지지는 그런 쪽으론 영 재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말을 걸었기 때문에 지지가 알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머시는 이상하고, 무시무시하다는 소문과 달리 상냥한 아이라는 것이다. 어쩔 줄 모르고 단어를 고르는 머시의 표정을 들여다보며, 지지는 머시가 무척이나 좋아졌다.

 “그건 저도 선배님과 같은 이유인 것 같아요. 작문 같은 건 취미가 없지만 그래도 조금 쓰니까 낫더라구요.”

  어쩐지 책상에 앉아 머리를 부여잡고 편지를 몇 번이고 고치는 머시가 떠올라, 지지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야.”

 지지가 말했다.

 “나는 머시가 이 편지를 불태우지 말고 잘 간직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앞으로도 가끔씩이나마 써보는 걸 추천할게! 편지는 읽는 상대를 전제로 쓰는 거니까, 쓰다보면 결국 엄청나게 솔직해지는 거 있지? 게다가 보낼 수 없는 편지는.”

 지지는 잠깐 어물거리다 덧붙였다.

 “읽히지 않을 편지라서 훨씬 더 솔직해지곤 하는 것 같아. 때로는 위험할 정도로 말이야. 그런 문장은 처음 읽을 땐 마음이 따끔따끔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속 시원해지는 구석도 있지만? 어떻게 써야할지 모를 땐 내가 도와줄게!”

 머시의 손등을 부드럽게 감싼 지지가 가볍게 눈을 감았다. 잠깐이지만 맞댄 두 사람의 손 틈으로 바람이 불었다. 그 깊은 슬픔의 구렁에서 올라온 습윤한 바람처럼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것은 피치파 마을의 바람이다. 서늘하고 건조해서 언제든 마음을 활짝 열어놓을 수 있는 바람이다.

 지지가 눈을 떴다. 머시의 두 손에 들린 편지는 구겨진 구석 하나 없는 말끔한 종이로 돌아가 있었다.

 “편지쓰기,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구?”

 밤을 새서 편지를 쓰고 아침이 되면 꺼내어보았다. 어느 날은 상자를 활짝 열어놓고 하나씩 모조리 읽었다. 고통 속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지지의 열여덟 살은 비로소 끝날 수 있었다. 슬픔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함께 삶의 곁을 흘러가는 것임을. 그러니까 이것이 지지가 그 날 채 다 만들지 못한 아름다운 풍선일 지도 모른다. 슬픔과 씁쓸한 감상 위로 삶을 들어올리는 마법같은 풍선 말이다. 그녀는 머시가 자신만의 풍선을 만들기를 바랐다. 날아가는 머시를 보고 싶었다.

 머시의 풍선은 어쩐지 기묘한 녹색 가스를 뿜어내는 빨간 색일 것만 같은 걸.

 아차, 지지는 또 너무 많은 상상을 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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