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티스토리 뷰

Edge of Daybreak «로그잇기 2»
1차/old 2019. 10. 22. 15:04

 회를 떴다.

 배를 까보니 흰 살 생선이었다. 보통 속에 붉은 기운이 도는 생선이 가장 고소하다. 흰 살 생선은 회를 뜨는 것보다는 구워먹는 편이 더 맛있었다.

 ‘하지만 이미 잘라냈는 걸 뭐 어쩌겠어.’

 바르바라는 그 생각으로 사소한 문제를 일축했다. 날을 눕혀서 뼈와 살을 분리하고, 대가리를 분리시켜서 통에 던져 넣었다. 갓 잡아 올린 물고기에서는 비린내 대신 신선한 짠 내가 났다. 바르바라는 내장을 분리하고 살덩어리를 꺼낸 뒤에 어슷하게 썰기 시작했다. 너무 얇지는 않게 그러나 씹기 힘들만큼 두껍지는 않게.

 그녀는 호밀 빵 덩어리를 화덕에 집어넣고는 꿀통에서 꿀을 몇 스푼 퍼 올렸다. 바질과 치즈를 으깨어 꿀과 함께 적당히 섞고, 그 위에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고소한 냄새가 나자 바르바라는 빵을 꺼냈다. 그것을 반으로 나누었다. 바삭바삭한 겉면을 손가락으로 조금 눌러보다가 위에 신선한 양상추와 토마토를 번갈아 올렸다. 마지막으로 가장 위에는 막 썰어놓은 쫄깃쫄깃하고 신선한 회를 얹었다. 바르바라는 빵을 다시 얹기 전에 자신이 앞서서 만들어놓은 소스를 위에 잘 펴 발랐다. 완성이다. 이것은 바르바라가 때때로 해먹는 회 샌드위치다.

 바르바라는 완성된 샌드위치를 다시 반으로 자른 뒤에 종이에 잘 쌌다. 그리고 회를 뜨며 버린 뼈와 장기를 양동이에 모은 뒤 외출했다. 고양이 골목으로 갈 생각이었다. 원래는 이런 것들을 모아두었다가 제 때 제 때 버리는 편이지만 훨씬 유용한 곳에 쓰인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아직 아드리안 덕분에 만진 고양이의 정수리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다.

 골목에는 아드리안이 없었다. 고양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아드리안이 없기 때문에 고양이도 없는 걸지도 모른다. 아무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양동이 냄새를 맡으면 알아서들 몰려오겠지. 어쩌면 바르바라 때문에 근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양동이를 내려놓았을 때, 근처 풀숲에서 작게 야옹 소리가 났다.

 그 고양이는 (아드리안의 말에 따르면)키키의 2세였다. 일전에 바르바라에게 정수리를 허락해준 자비로운 고양이였다. 왜 혼자 있니? 바르바라는 중얼거리면서 양동이에 손을 집어넣어 내장을 꺼냈다. 키키 2세가 달려들었다. 바르바라는 근처에 양동이를 두고 앉아 키키 2세가 맹렬한 기세로 내장을 뜯어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고양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이게 웬 생선이냐고 생각하고 있나 봐요.”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말했다.

 바르바라는 고개를 돌렸다. 아드리안이 무릎을 조금 숙이고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온화한 웃음을 달고 있었다. 언제 뒤에서 나타난 건지 모르겠다. 고양이에게 너무 정신을 팔았던 걸지도.

 “내 생각이 들렸니?”

 바르바라는 그게 우연인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데요?”

 아드리안이 묻자, 바르바라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니야.”

 아드리안이 다가와 양동이를 내려다보았다. 신선하게 반들거리는 내장과 아직 몸이 채 다 마르지 않은 축축한 생선의 대가리들.

 “무언가를 손질한 모양이죠?”

 “맞아. 뼈와 머리를 주려고 가지고 온 거야.”

 바르바라는 덧붙였다.

 ”하지만 살로 만든 건 인간의 음식이야.”

 “전에 먹었던 그건가요?”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회고 톤으로 돌아갔다. 아드리안은 그 때 바르바라가 썰어준 신선한 회를 집어먹으며 눈을 빛냈다. 맛있는 것을 먹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바르바라는 회가 그의 입맛에 맞았음을 알아차렸고, 그것을 잊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아까 만들어놓은 샌드위치의 반쪽을 내밀었다.

 “일전의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단다.”

 바르바라가 웃었다.

 “먹어볼래?”

 “저 주려고 만드신 건가요?”

 “그럼.”

 하지만 아드리안과 만나지 못 했다면 두 쪽 다 바르바라가 먹었을 것이다.

 아드리안은 바르바라가 넘겨준 샌드위치를 받았다.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르바라는 조금 물러나서 근처에 앉아, 한쪽으로는 내장을 정신없이 뜯어먹는 고양이를, 다른 한쪽에는 자신이 만든 샌드위치를 감싼 포장지를 천천히 벗기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아드리안은 샌드위치를 보며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눈을 빛냈다.

 “얼른 한 입 먹어봐.”

 바르바라가 말했다.

 아드리안은 입을 벌렸다.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의 튼튼한 두 턱이 크게 벌어져, 마침내 호밀 빵을 무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 든 신선한 야채와 소스와 그녀가 낚아 올린 생선의 희고 고운 살이 두 동강 나는 장면을 아주 천천히,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음미하다가, 마침내 그 소리를 들었다.

 와삭.

 아드리안은 샌드위치를 베어 먹었다.

2018/07/10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