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티스토리 뷰

Hello, Stranger! «개인의 역사»
1차/old 2019. 10. 9. 19:48

 내가 가장 처음에 방문했던 차원은 우리의 차원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빛과 어둠의 구분이 명확했고, 살아있는 존재들은 그 안에서 번성했으며, 그들이 사회를 이루고 지식을 세대에 걸쳐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구의 차원도 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므로 빛과 어둠을 구분하고자 생겨난 인식이 세대에 걸쳐 지식으로 확장되는 건 어느 차원에서든 동일한 과정일 지도 모른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의 차원에서 누군가 자리를 비우는 일은 심심찮게 일어났으므로 그것은 특별히 안타깝거나 공허한 사건은 아니었다. [  ]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먼저 갈게. 다시 만나.” 그러니까 나는 [  ]이든 <  >이든, 언젠가 모두는 이곳에서 떠날 때가 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의 차원에서는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루함을 견디고 있었는데, 특히 떠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도착한 줄 알았다. 그곳이 끝없이 어두웠고 침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내가 떨어진 구역이 바깥이 아닌 내부, 그것도 누군가의 내부인 것을 깨닫고는 솟구쳐 올랐다. 진득진득한 액체가 나를 잡아당기듯 끌려올라가다 뚝 끊어지더니 아래에서 철퍽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을 틀어 그들을 내려다봤다.

 그들은, 그러니까 그 차원의 거주민들 말이다,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었냐면, 붙어있었다. 하나의 덩어리로 붙어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서로가 뭉쳐 만들어진 거대한 몸 덩어리 안으로 작은 덩어리들이 흘러 다니는 것이 보였는데, 아마 그 작은 덩어리들이 개개인, 요컨대 인격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은 몸을 하나로 뭉쳐놓고 그 안에 사회적 시설을 건설해 나누어 쓰고 있었다. 육신으로 거대한 방어막을 만들고, 인격(아마 인간들은 이것을 영혼이라고 할 것이다)이 그 안을 흘러 다니며 생활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과 비슷한 몸을 흉내 내어 만든 뒤 자진해서 그 안으로 떨어졌다. 철퍽, 소리와 함께 몸이 퍼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갑자기 모든 감각이 말도 안 되게 아주 커지고, 넓어지고,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이 하나가 되는 감각이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었다. 아래로 흘러가던 작은 덩어리 하나가 천천히 부유해 표면에 붙어있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 자가 말을 했지만, 알아듣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잠시 후 이곳의 언어를 어느 정도 터득한 내가 물었다. 안을 보고 싶은데, 이 모습이 아니면 안 되는 거니. 그러자 그 자가 말했다. 안 될 것도 없지. 그런 후에 덧붙였다. 대신 를 놓아야만 해. 그러자 갑자기 그 안을 흘러 다니던 모든 자들이 나를 향해 그것을 반복했다. 안 될 것도 없지, 대신 를 놓아야만 해. 안 될 것도 없지, 대신 를 놓아야만 해.

 나는 살면서 수많은 차원을 넘나들었는데, 내게 있어 가장 최초의 차원은 바로 우리의 차원이었고, 두 번째 차원은 하나의 덩어리들이 군집해 사회를 이루는 차원이었으며, 세 번째 차원이 바로 지구의 차원이었다. 우리의 차원과 두 번째 차원의 동일한 점은 분쟁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일시적으로 뒤섞이는 방식 도덕으로써 성취했지만, 두 번째 차원의 거주민들은 완벽히 하나가 됨으로써 그것을 성취했다. 하나의 몸을 구성하고 동일한 육신 안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점차 그 육신에 필요 없는 것과 필요한 것의 구분이 명확해졌고, 대신 개개인의 기호와 사상은 희미해졌다. 어쨌든 그들은 행복해보였다. 마법사들처럼 지루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곳에서 내가 알아낼 수 있던 건 다만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하나의 몸이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재미있어보였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그러니까 나는 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인식하기에 비로소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을, 그게 나의 욕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의 차원과 지구의 차원의 동일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개인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 ‘가 있다면 가 있고, ‘우리가 있다면 그들이 있다. 다만 인간들은 마법사들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쉽게 분쟁하고 증오한다. 하지만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개인을 유지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인간들 역시 마침내는 도덕에 대한 논의 끝에 도달할 거라고 믿는다. 다만 그 과정을 나는 태어나서 겪어본 적이 없다. 우리의 존재는 선함을 타고나 끝없이 도덕을 배우며 자라왔다.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선조가 획득한 지식을 전승받아 그것에 기반해 우리를 정체화 한다. 우리에게는 고난이나 투쟁이라 할 게 없었다. 개인으로 존재했지만 개인이 획득할 수 있는 역사가 많질 않았다. 어쩌면 우리의 지루함이란 그 상태를 의미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마법사 개인이 느낀 감정과 사상과 입장을 제외하고, 결국 마법사라는 존재가 공통적으로 가진 지루함이란 마법사 전체의 역사다. 그리고 그 지루함을 해소하고자 끊임없이 움직여온 나의 역사 역시 마법사의 역사다. 나의 집단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다.

 어쩌면 이제 그것에 지루함이 아니라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개인이 개인의 역사를 찾고자 하는 욕망을 지루함이라 부르지 않기 위해 지구에 왔다. 여러분을 만났다. 인간의 사회를 알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지구에서의 나의 역사는, 나의 집단이 아닌 나 개인의 역사로 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나를 포함해 지구로 내려온 나의 친구들은 확실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존재의 모습을, 인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마법사라는 집단에서 멀어져 있다. 이렇게나 오래 멀어진 적이 없었다. 난 어느 때보다 로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니, 나의 역사는 내가 힘썬으로 존재하기로 결심한 후부터 새롭게 다루어져야만 한다.
 나는 그것을 개인의 역사로 부를까 한다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이 교탁을 내려와 하게 될 이야기는 바로 여러분과의 이야기다.

190131

comment

티스토리 뷰

 힘썬은 난초방에 배정되어 기뻤다. 그곳에 강아와 닻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두 사람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방으로 들어온 첫날, 힘썬은 짐을 정리하는 강아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자신이 도와줄 일이 없냐고 물었다. 닻이와 힘썬은 마법사였으므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던 것이다. 강아는 이미 거의 다 끝냈으니 괜찮다고 씩씩하게 웃었다. 날이 좋아 태양빛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속에 서있는 강아는 정말이지 반짝반짝 빛났다. 힘썬은 기쁨으로 얼굴이 흐물흐물해지는 걸 느끼면서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닻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우리가 열심히 해야겠다고 속삭였다. (뭘 열심히 해? 그것은 힘썬 자신도 잘 몰랐다.)

 원래 차원에서는 공간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누군가 한 자리에 오래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자리가 아니라 그 자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 혹은 그 자가 가장 자주 발견되는 자리로 이해되었다. 방을 배정받는다는 것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특정한 공간을 보장받는다는 의미와 비슷했다. 힘썬은 침대를 나누고 칫솔이나 양치 컵을 지정하는 과정이 새로웠다. 닻이에게 닻이 몫의 칫솔을 건네주면서 그녀가 했던 말은 이것이었다 : 나는 이것을 건드릴 수 없어. 사용할 수도 없어. 왜냐하면 이건 닻이 네 거든. 그런 후 덧붙였다. 정말 신기하지? / 뭐가? / 소유하는 거 말이야.

 하지만 방이라는 게 힘썬에게 소유의 과정만을 학습시킨 것은 아니었다. 세 사람은 한 공간을 공유하며 여러 가지를 했다. 침대에 누운 채 대화를 나누거나 샴푸 혹은 린스를 번갈아 나누어 쓰는 일들. 힘썬은 배구수로 빨려 들어가는 강아의 머리카락 한 올을 집어 올리며, 공유 이후에 남는 흔적의 개념을 배웠다. 마법사들은 한 장소에서 쏜살같이 벗어날 수 있었고,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마법사들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자신이 나누거나 사용한 장소에 남기고 떠났다. 힘썬은 강아의 머리카락, 강아가 사용하는 침대 주변을 거닐면 맡을 수 있는 냄새들, 강아가 사용하다 조금씩 부러뜨린 샤프심 따위를 경험하며 강아가 남기는 흔적을 오래 기억하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새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이고, 강아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녀의 파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힘썬이 학습한 것은, 강아라는 존재가 가지는 무궁무진한 호기심과 가능성이 그녀를 더욱 빛나보이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강아는 정말이지 힘썬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힘썬이 살아가던 차원, 다녀본 곳, 그곳의 언어, 행동양식, 사회구조, 개체 수 처음에는 생물학적이거나 통계적이거나 사회적인 질문이 주를 이었지만, 마침내 강아는 이런 것들을 물어보게 되었다.

 “마법사들도 특별히 소중히 여기는 단 하나의 존재가 있어?”

 “마법사들도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껴?”

 “마법사들은 누군가를 어떻게 추억해?”

 “너는 슬퍼한 적이 있니?”

 그것은 상냥함에 대해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었으므로 힘썬은 종종 침대에 두 다리를 뻗고 누워 강아의 호기심에 심취했다. 힘썬 역시 강아에게 학생들의 관습, 행동, 벌점제도(이제는 폐지되었지만 말이다), 유행가 따위를 물어보기는 했지만 그것이 강아에게 어떤 감화를 줄 수 있는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드러내는 질문이 아니라 인간세상을 관찰하고 적응하는데 필요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썬은 언젠가는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강아에게 상냥함을 전달할 수 있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강아가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말했을 때, 힘썬은 혈연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인간은 직접 번식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대에 물려주며 대를 이어가는 존재이므로 갑자기 나타나는 마법사와는 달랐다. 그러니까 마법사들은 특별히 누군가와 가깝게 지내야만 한다는 의무도 없었고, 서로의 특징을 물려주어 닮아있는 자들 역시 없었다. 힘썬은 강아에게 물었다.

 “강아에게도 개인적인 관계의 혈육이 있니?”

 분명 있을 것이다. 강아가 대답했다.

 “가족 말하는 거지? 있지! 우리 부모님이랑, 동생이 하나 있어.”

 “동생?”

 “. 여동생 말이야.”

 강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힘썬에게 물었다.

 “마법사들은 가족이 없어?”

 힘썬은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활동하기는 하지만, 인간들의 가족 공동체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말해주었다. 마법사들에게는 형 누나 동생의 구분이 없다는 것도. 서로를 닮은 존재 역시 없다는 것도.

 “강아, 너의 동생이 궁금하다. 너를 조금은 닮았겠지?”

 힘썬은 속으로 강아를 축소시킨 뒤에 조금 더 어린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강아의 크기와 나이만을 줄여놓은 것뿐이지 개별의 존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강아의 동생은 강아의 분신이 아니라 별개의 존재다.

 강아가 대답했다.

 “주변에서 닮았다고 많이 말해.”

 그러자 힘썬은 강아의 동생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보고 싶어.”

 힘썬이 다시 한 번 말했다.

 “보고 싶어!”

 “좋아.”

 강아는 기쁜 듯 흔쾌히 수락했다.

 “그럼 이번 주 주말에 내가 소개시켜줄게.”

 힘썬은 주말을 기다리느라 그 주에는 한숨도 자지 않았다. 어차피 숙면을 취하지 않아도 특별히 피곤하거나 괴롭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몸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썬은 밤에도 원한다면 언제든 깨어있을 수 있었다. 생각할 거리가 있다면 말이다.

 주말이 다가오자 힘썬은 아침부터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뒤에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강아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강아의 침대에서 하품 소리가 들리자, 힘썬은 헤드에서 고개를 내밀고 강아를 내려다보았다.

 “강아.”

 강아가 기지개를 켜며 응? 하고 대답했다.

 “주말이야.”

 힘썬이 말했다.

 “이제 가도 되니?”

 강아는 잠이 덜 깬 얼굴로 푸스스 웃다가 눈을 비비고는 예의 그 반짝반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나 준비할게. 조금만 기다려줘.”

 강아가 세수를 하고 양치를 끝낸 뒤에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힘썬은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아는 가방을 챙기면서 외출증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힘썬은 비장한 얼굴로 품에서 두 개의 외출증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마치 은밀한 거래를 하는 것처럼 소리 없는 움직임이었다. 강아는 힘썬이 내민 외출증을 읽어보았다. 재구 선생님이 끊어주신 거였다.

 두 사람은 아직 조금 쌀쌀한 초봄의 거리를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힘썬은 교복을 전부 차려입었고, 강아는 사복차림이었다. 힘썬은 하나도 춥지 않았지만 강아는 몇 번 정도 그녀에게 정말 추운 거 아니지? 정말이지?”라고 물어보았다. 강아의 코끝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중에서 외투를 입지 않은 사람은 힘썬뿐이었다.

 ‘다음에는 코트를 만들어서 입고 나와야겠다.’

 힘썬은 거리의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며 생각했다.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가지 않아서 내렸다. 걸으면서 강아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힘썬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강아랑 비슷한 사람이 보이는지 연거푸 확인했다. 혹시라도 지나칠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강아는 동생에게 제대로 문자를 보냈고, 동생은 약속장소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힘썬은 몇 발자국을 남겨두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강아가 손을 들면서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단미야!”

 단미가 고개를 돌렸을 때를 힘썬은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강아가 아주 작아진 모습이 거기 서있었기 때문이다.

 힘썬은 할 수 있는 한 눈을 크게 뜨고 온 힘을 다해 단미의 얼굴을 샅샅이 뜯어보았다. 단미는 강아에게 달려오다가 뒤에 우두커니 서있는 힘썬을 보고 머뭇거렸다. 잠시 후 단미가 강아의 종아리 뒤로 몸을 숨겨버렸다. 힘썬은 정신을 차렸다. 버스가 지나가며 매연을 날리는 바람에 주변이 잠시 희뿌옜다.

 “안녕!”

 힘썬이 큰 소리로 말했다.

 “들리니?”

 단미는 여전히 강아의 종아리 뒤편에 숨어있었다.

 힘썬은 잠시 고민하다가 강아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

 강아가 몸을 비켜주었다. 단미는 아까보다 낮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힘썬을 올려다보았는데, 아마 단미 눈에 힘썬은 거인으로 비추어졌을 지도 모른다. 힘썬은 손을 뻗을지 말지 고민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단미가 힘썬의 종아리로 옮겨가 눈치를 보며 달라붙었다. 힘썬의 머리카락이 기쁨으로 쭈뼛 섰다. 강아가 힘썬의 머리카락을 신기한 듯 만지기 시작했다.

 “안녕, 난 힘썬이야. 네 이름은 뭐니?”

 힘썬은 아까 강아가 단미를 부르는 것을 들었음에도 그렇게 물었다.

 단미는 수줍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단미.”

 “단미!”

 단미는 가까이서 보니 정말 강아와 똑 닮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수줍음을 타고 관계에 소극적인 지점은 강아와 무척이나 달랐다. 그래서 힘썬은 단미가 강아로부터 떨어져 나온 강아의 분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차이가 힘썬을 설레게 했다. 그녀가 단미의 머리통을 부드럽게 잡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하자, 단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힘썬을 올려다보았다.

 “언니.”

 “.”

 힘썬이 황급히 손을 떼어내고는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허락 맡는 걸 잊고 말았어.”

 단미는 둥그렇고 축축한 갈색 눈동자로 힘썬을 꼼꼼히 살폈다. 힘썬은 어쩐지 긴장하게 됐다. 잠시 후 단미가 힘썬에게 고개를 젖히더니 입을 가리며 소곤소곤 말했다.

 “언니는 빛이 나는 것 같아.”

 힘썬은 눈을 크게 떴다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단미를 꽉 끌어안아주었다.

 “맞아, 나는 빛이었어.”

 단미에게서도 강아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미묘하게 달랐지만 분명 비슷한 지점이 있었다. 힘썬이 기숙사를 드나들 때마다 맡았던 그 냄새의 특징이다. 힘썬은 단미가 성격 말고는 모든 게 강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이렇게나 같다면 서로에 대한 공감능력이나 대화의 방식이 발달해있을 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단미를 껴안은 채로 강아에게 물었다.

 “강아, 혹시 너희 둘은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니?”

 강아는 잠깐 고민하다가 능청맞게 오, 하고 대답했다.

 “맞아, 알아차렸구나? 우리 둘은 텔레파시를 써.”

 단미가 톡톡 힘썬을 두드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이야, 힘썬 언니.”

 “단미야, 넌 너무 양심적이야!”

 강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힘썬은 이 대화의 흐름을 한 박자 늦게 이해하고는 단미의 정직함에 감사하면서 강아에게, 혹시 방금 그것이 강아의 농담이었는데 자신이 못 알아듣는 바람에 강아를 거짓말쟁이라고 만든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까까지는 마냥 즐겁던 강아가 갑자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강아가 말했다.

 어쨌든 세 사람은 만났고 힘썬은 기분이 좋았다. 단미 역시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오늘 강아 언니와 언니의 친구와 함께 놀이동산에 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아는 익숙하게 단미의 손을 잡고 앞으로 끊임없이 걸어 나갔고 힘썬은 일부러 발을 늦추면서 두 사람을 하나의 풍경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가족, 혈육, 더 좁게 말해 자매의 관계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다. 모두가 사이가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비슷한 흔적을 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명 힘썬은 결코 알 수 없을 감정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힘썬은 강아가 가족으로 인해 행복한지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상냥함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질문을 던지지 않고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이었구나. 라고 힘썬은 생각했다.

 단미가 손을 뻗었으므로 힘썬이 앞으로 내달렸다. 그녀는 작은 단미의 손을 붙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강아에게 말했다.

 “나도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그래?”

 “, 또 강아가 내 가족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강아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놀이동산에 가서 3인 가족처럼 실컷 놀자고 말했다. 힘썬은 낄낄거리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3명이서 그것을 하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강아는 상냥하므로 분명 그것을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힘썬은 3명이서 츄러스를 나누어 먹는 일이라고 대답할 생각이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야! 어쩌면 단미도 츄러스를 좋아할지 모르겠다.

190126

comment

티스토리 뷰

Hello, Stranger! «마음의 거리»
1차/old 2019. 10. 8. 23:32

 최초로 만난 인간은 남성이었고, 열다섯 남짓 먹은 유라시아인이었다. 그때는 인종이나 성별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으므로 이것들은 훗날 알게 된 사실이다. 눈앞의 존재가 너무나 신기해 어쩔 줄 몰랐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힘썬은 얼굴을 바짝 붙이고 엄지로 그 아이의 턱을 들어 올린 뒤, 큰 손바닥으로 뺨을 어루만졌었다. 그것이 무례한 일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어린 유라시아인은 힘썬의 행동에 무척 당황해 굳어 있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기겁해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그때까지도 힘썬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할 만큼 무지했다. 이제 힘썬은 지구의 대부분의 지성체를 만날 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함을 알고 있다.

 심요한을 처음 보았을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힘썬은 궁금하기 짝이 없다는 손길로 요한의 얼굴을 들어 올리고 눈꺼풀을 열어보거나, 고개를 숙여 공기가 드나드는 콧구멍의 모양새를 관찰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초의 실수를 반복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힘썬은 심요한이 눈을 굴리거나, 느리게 호흡하거나, 턱을 괴는 일 따위를 아주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다. 요한이 힘썬 바로 옆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힘썬은 외교 특별반 첫날의 풍경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교실에는 마법사들이 먼저 도착해 자리에 앉아있었다. 힘썬은 교탁을 중심으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를 골랐다. 누군가 반드시 자신의 옆 자리에 앉게 될 거라 기대했고, 그렇게 되면 누구보다 상냥하게 대해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등교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정확히 817명의 짝꿍을 상상했다. 마침내 인간 학생이 1학년 1반 교실 문을 열고 등장했을 땐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다른 마법사들도 힘썬과 비슷한 기분을 느낀 것 같았다. 제각각 창가, 맨 뒷자리, 맨 앞자리, 중간 자리를 차지하며 앉아있던 마법사들이 동시에 열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간 학생은 아무도 없는 교실을 한 바퀴 빙 둘러보고는 마음에 드는 자리를 발견했는지 2분단으로 이동했다. 마법사들은 인간 학생이 아직 자신들을 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옆 자리에 앉게 될 지도 모를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교실에 가장 먼저 도착한 친구의 이름은 이동아였다.) 동아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책가방을 정돈하고는 이어폰을 꼈다. 동아 옆 자리에 앉아있던 마법사가 신기하다는 듯 그의 귀에 걸린 이어폰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힘썬은 짝꿍을 가지게 된 그 마법사가 부러웠다. 다음에 도착할 친구가 자신의 옆에 앉아주었으면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다시 교실 문이 열렸다.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교실에 덩그러니 앉은 동아를 한 번 쳐다보고는 별 고민도 없이 맨 뒷자리에 가방을 놓고 앉았다. 힘썬의 분단이었지만 두 자리나 떨어져있었다. 힘썬은 생각했다. ‘내 예상에, 다섯 번째로 도착하는 친구가 내 옆에 앉을 것 같아.’ 하지만 다섯 번째로 도착한 남학생은 벽 쪽에 바짝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휴대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일곱 번째.’ 힘썬은 정정했다. ‘일곱 번째 친구가 내 짝꿍이 될 것 같아.’ 그 뒤에도 그런 일들이 반복됐다. 심요한은 훨씬 나중에 등장했고, 그 즈음 힘썬은 예측하기를 관두고 턱은 괸 채 창가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옆 자리에 요한이 털썩 걸터앉았을 때는 머리카락이 쭈뼛 솟아오를 만큼 놀랐다. 책상은 그런 식으로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느닷없이 채워졌다. 힘썬은 바로 그때 심요한이라는 인간을 처음 보았다.

 심요한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변재구로부터 마법사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에도 크게 기뻐하거나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힘썬은 책상에 엎드려 서약서를 읽는 요한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거절할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YES를 바라고 이곳에 온 건 아니었다. 심요한은 아예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는데, 마법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눈치가 아니었으므로 힘썬을 다소 초조하게 만들었다. ‘서명해!’ 힘썬은 고개를 들고 심요한의 손아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서명하고 나를 만나!’ 돌이켜봐도 심요한은 싱거울 정도로 손쉽게 서명했다.

 힘썬이 요한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녀는 허리를 펴고 꼿꼿하게 앉아있었고 눈은 기대감으로 반짝반짝했다. 심요한은 아까보다 제법 놀란 표정이었다.

 “안녕?”

 힘썬은 심요한에게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나는 힘썬이야.”

 잠시 후 심요한이 입을 쩍 벌렸다.

 “-.”

 ‘대박은 좋은 말이지.’ 힘썬은 흡족했다.

 번갈아가며 자기소개를 할 생각이었으나 심요한이 갑자기 코앞으로 휴대폰을 들이미는 바람에 힘썬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심요한이 대뜸 말했다.

 “, 너 이름이 뭐라고? 방금 그거 다시 해봐, 빨리빨리.”

 힘썬은 당황했는데, 준비한 자기소개의 서두가 지금의 돌발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힘썬이 되물었다.

 “그거가 뭔데?”

 “방금 네가 한 거 있잖아!”

 “, 내 이름은 힘썬이야.”

 “그래, ! 방금 네가 팟-하고 순간 이동한 거 다시 좀 보여줘 봐봐.”

 그런 후 심요한은 힘썬의 대답도 듣지 않고 갑자기 혼잣말을 시작했다.

 

  REC

 요한 : 자자,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귀염둥이 도리예요! (흔들리는 화면) 제가 지금 상황이 조금 급해서, 우선 영상부터 확인하고 우리 평소처럼 만나보도록 할까요? (카메라가 돌아가자 옆 자리에 앉은 힘썬이 보인다)

 힘썬 : (어리둥절하게 카메라를 보고 있다)

 요한 : (입모양으로) 아 빨리!

 힘썬 : (고개를 기울여 휴대폰에 가려진 요한을 보려고 하자)

 요한 : ~ 우리 마법사 친구, 아까 해봤던 순간이동 깜...! 다시 한 번 해볼까요?

 힘썬 : , 일단- 나는 순간이동을 하지 않고 처음부터 여기 앉아있었어. 그리고 그건 다시 할 수 없어. 난 이미 등장했잖아.

 

 시야를 반쯤 가리고 있던 카메라가 아래로 치워졌다. 심요한은 다시 그 심드렁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힘썬은 심요한이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몇 번 만지더니 영상을 삭제하는 걸 보았다. 그제야 요한이 무언가 기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네 이름은 뭐니?”

 힘썬은 요한의 명찰을 확인했음에도 대답이 듣고 싶어서 그렇게 물었다.

 요한은 휴대폰을 만지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심요한.”

 잠시 후 요한이 고개를 들고 아까보다는 밝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 다른 건 할 수 있어? ? ? 마법사라며?”

 “으으음, 아니.”

 힘썬은 덧붙였다.

 “지금은 마법이 필요한 타이밍이 아니니까, 쓰지 않을래.”

 요한이 그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힘썬은 그 뒤에도 몇 번 정도 요한에게 말을 걸었지만 심요한은 길게 대답하지 않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카메라로 자기 자신을 찍으며 멘트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힘썬은 생각했다. ‘말은 나중에 다시 걸어봐야겠다.’

 힘썬이 사인판을 들고 교실 몇 바퀴를 돌고 돌아왔을 때, 요한은 자리에서 완전히 이탈해 사물함 앞에 있었다. 요한은 아까보다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고, 카메라를 향해 발랄한 멘트를 조잘대고 있었다. 힘썬이 요한에게 다가가 물었다.

 “뭘 하고 있니?”

 

  REC

 요한 : (카메라가 돌아가 힘썬을 비춘다) 이야~ 제 짝꿍이네요. 이 친구도 마법사예요. 머리카락 숱이 엄청 많죠? 눈동자도 완전 신기! (렌즈를 힘썬 눈 가까이로 들이댄다)

 힘썬 : (화면을 가득 채운 힘썬의 눈동자) 누구에게 말하는 거니?

 요한 : 구독자분들에게 하는 거지~ 여러분, 이 참에 마법사도 심돌이로 만들기, 도전?

 힘썬 : 구독자들이 여기 있어? (두리번거리면)

 요한 : 마법사라서 유튜브의 개념을 잘 모르는 모양이네요~ 한 번 이 도리가 알려줘 보도록 하겠습니다!

 힘썬 : 도리가 누구야? 혹시 네 또 다른 이름이니? 하지만 심요한 도리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없는 걸!

 요한 : …….

 

 요한은 투덜거리며 촬영을 중단했다.

 “그렇게 질문만 하면 진짜 노잼이거든?”

 힘썬은 요한의 표정이 다시 시큰둥하게 돌아온 것을 보았다카메라를 들었을 때의 요한과 들지 않았을 때의 요한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었다힘썬은 그 차이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고 싶었다둘 다 요한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면어느 쪽이 요한의 평상시 모습인지도 알고 싶었다.

 힘썬이 물었다.

 “노잼이 뭐니?”

 “아 지금 이런 거!”

 힘썬이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기울이자, 요한이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정정했다.

 “재미없다는 뜻!”

 그러니까 NO와 재미가 합쳐진 단어로구나. 힘썬은 요한의 말을 통해 정확하게 유추했다.

 힘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어. , 그리고 그 문제는 우리가 직접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인 것 같아. 나도 지금 그렇게 재미가 있지는 않거든! 내 말은- 심심하다는 뜻이야.”

 힘썬은 요한의 표정에서 순간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스치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 감정의 이유를 잘 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요한이 곧 표정을 갈무리했으므로 제대로 물어볼 틈도 없이 어영부영 지나가게 되었다. 요한은 구시렁거리면서 휴대폰을 만지더니 또다시 영상을 삭제했다.

 잠시 후 요한이 한결 밝은 얼굴로 물었다.

 “너 휴대폰 있어?”

 힘썬은 있다고 대답했다.

 요한은 힘썬의 휴대폰으로 유튜브 어플을 연 뒤, 무언가를 검색해 돌려주었다. 힘썬은 액정을 들여다봤다. 그것은 도리티비라는 이름의 유투브 채널이었다.

 “너도 심심하면 심돌이가 되어 봐~ 오케이?”

 요한은 구독하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힘썬의 등을 가식적으로 두들겼다.

 “뽜이팅!”

 

 그 날 기숙사로 돌아온 힘썬은 이어폰을 끼고 침대에 앉아서 도리티비 채널에 올라온 모든 영상을 하나하나 시청했다. 영상의 썸네일은 이목을 끌 수 있도록 화려하게 제작되어 있었고 영상 제목도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열어보면 그렇게 정보 값이 풍부한 영상들은 아니었다. 도리티비의 영상 대부분이 누군가를 주제로 삼아 일시적인 호응을 유도하고, 더는 분위기를 끌어갈 수 없을 것 같으면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라기보다 도구를 사용하는 태도에 가까웠으므로 힘썬은 영상을 보는 내내 생각에 잠겨있었다.

 

 다음 날 힘썬은 학교에서 요한에게 말했다.

 “나 도리티비 전부 봤어!”

 요한은 휴대폰 게임을 하다말고 고개를 들었다.

 “구독했어?”

 “했어.”

 “축하~ 너도 이제 심돌이임.”

 힘썬은 이제 심돌이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되물어 볼 필요가 없었다. 그 외에도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힘썬은 도리티비 속 요한이 보통보다 기분이 (이상할 만큼)좋아 보인다는 것, 모두가 도리를 좋아하고 있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도리티비의 댓글 창에서는 종종 사람들이 싸워댔다. 그런데도 영상은 꾸준히 올라왔다. 별로 쓸모 있는 영상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있잖아, 도리.”

 힘썬은 요한을 도리라고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인지 확인하려고 요한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요한은 휴대폰 게임을 하느라 제대로 들은 것 같지 않았다.

 힘썬이 물었다.

 “왜 그런 영상을 만드는 거야?”

 “뭔 소리야~ 내 영상이 노잼이라고 시비 거는 건가요?”

 “, 그렇지 않아. 재미있는 영상도 있었어.”

 “좋아요 꾹 눌렀어?”

 “재미있는 영상에는 눌렀어. 나는 한국 역사랑 위인들 설명해주는 게 재밌더구나.”

 하지만 요한은 그런 영상들을 만들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이제 요한은 친구 사생활을 떠들거나 한밤중에 라면을 먹는 걸 찍는다(힘썬은 왜 이것을 방송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요한은 힘썬이 재미있다고 고른 영상을 노잼영상이라고 말했다. 그런 걸 만들면 구독자 수가 줄어든다고 했다. 그런 걸 만들면 구독자 수가 줄어든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유잼 콘텐츠를 위해 매일같이 노력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더니 마법사 세계에서도 돈이 중요하냐고 물었다. 힘썬은 자신의 차원에서는 화폐가 아무 가치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부럽다.”

 요한은 처음으로 썩 가볍지 않은 투로 그렇게 말했다.

 “마법사 애들은 그런 걸 전혀 생각하지 않겠네?”

 그 순간 힘썬은 지금 요한의 말에 긍정한다면 무언가 실수하는 기분이 들 거라 강력히 예감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 역시 없었기에 긍정했다.

 “맞아,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실수라고 할 만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오니, 요한이 칠판 앞에서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힘썬은 요한의 한껏 고양된 목소리와 꾸며낸 말투를 통해 그가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했다. 요한은 힘썬을 보고 카메라를 돌렸다. 힘썬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요한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REC

 요한 : 이야~ 저기서도 마법사 친구가 오네요! 이 친구에게도 한 번 물어볼까요?

 힘썬 : (렌즈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요한 : 마법사들은 사실 인간처럼 생기지 않았다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우리 힘썬 친구?

 힘썬 : (고민하다가) 맞아.

 요한 : 우와~ 너무너무 놀랍다~ 그럼 본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여러분, 궁금하시죠? (목소리 톤을 높이며) ~! (다시 원래 톤으로) 여러분들의 뜨거운 성원에 이 도리, 감동했습니다. , 마법사 친구~ 본 모습 딱 한 번만 특...개 해보도록 할까요?

 

 “사실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 아니지?”

 힘썬이 요한의 카메라를 가리며 물었다. 요한은 몸을 뒤로 빼면서 능청스레 말했다.

 “아니, ~ 겸사겸사 궁금하기도 한 거지.”

 “카메라 끄고 나랑 대화하자, 요한!”

 힘썬이 요한 앞에 가까이 붙었다.

 “너 카메라를 켜놓고는 나랑 제대로 대화하지 않잖니!”

 “아 언제! 내가 너 말을 씹은 것도 아니고!”

 요한이 질겁했지만 힘썬은 요지부동이었다. 제일 가까이 앉아놓고 제일 멀게 느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왜 인간들에게는 아주아주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걸까. 왜 질겁하며 도망치려 하는 걸까.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의 문제는 아닐 지도 모른다. 요한은 대뜸 카메라를 들고 가까워지지만 힘썬이 요한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다고 해서 두 사람이 자기소개를 나누거나 제대로 대화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것은 힘썬이 환산할 수 없는 거리일 지도 모른다.

 “, 나는 내 본 모습 같은 거, 절대 안 보여줄 거야.”

 힘썬이 반짝반짝한 눈으로 요한에게 선언했다.

 “네가 카메라를 끄지 않는 이상은!(이 말은 사실상 마법사를 돈벌이로 여기는 걸 포기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림잡을 수조차 없는, 마음대로 좁히거나 벌릴 수 없는 그 거리를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알아내면 그만이다.

190121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