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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Daybreak «기억»
1차/old 2019. 10. 22. 14:55

 첫 출산의 기억이 아랫배에 있다. 그것이 때때로 머리를 타고 아랫배까지 흘러내려온다.

 바르바라 체사레의 아이는 써드빌의 바닷가의 바람을 맞으며 태어났지만 정작 바르바라는 눈 속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체사레 집안은 써드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켈커스 지역의 작은 마을 출신으로, 그곳에는 전나무가 많고 사람이 적고 들짐승이 들끓었다. 세미니온 반도에서 그나마 추운 지역이었지만 겨울이 혹독하지는 않았으므로 주민들은 추위에 얼어 죽는 대신 들짐승에게 뜯어 먹혀 죽었다. 때때로 영주가 나서서 들짐승을 잡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기사들이 이따금 주민들의 오두막 앞에 가죽을 놓고 갔다. 고기를 놓고 가는 경우는 없었는데, 아마 기사들끼리 나누어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가죽을 놓고 가는 건 사실상 긍휼을 베푼다는 취지보다는 고기와 뼈를 발라먹고 남은 찌꺼기를 던져놓고 가는 행위에 가까웠다. 주민들은 기사들이 놓고 간 거친 가죽을 잘 마름질하고 두드리고 빨아서 부츠나 코트로 만들어 입고 다녔다.

 바르바라가 태어난 날에는 드물게도 눈이 많이 내렸다. 체사레 집안사람들은 아이가 신 에아의 축복을 받은 거라고 생각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그들의 오두막으로 나그네들이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두막에 찾아든 손님들에게 이층의 빈 방들을 내어주고 물과 음식, 장작 개수마다 가격을 붙여 숙박비를 받아냈다.

 체사레 집안의 또 다른 사업방식은 모두 깊이 잠든 새벽이나 투숙객이 자리를 비우는 낮에 방으로 들어가 금품이 있는지를 뒤져보고, 돈이 될 법한 몇 가지를 슬쩍 챙겨 나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숙련된 사기꾼이었고 억세고 자기주장이 강했다. 억지를 부리며 말을 지어내고 뻔뻔스럽게 혀를 내두르는 것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체사레 부인은 물품이 도난당했다고 항의하는 손님들에게 되려 화를 내며 내쫓아버리고는 어린 바르바라에게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곤 했다. “삶의 방식을 배우도록 하렴.” 그녀가 아이에게 말했다.

 바르바라는 그 집안에서 가죽을 손질하고 마름질하는 법, 핏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옷을 벅벅 씻는 법을 가장 먼저 배웠고, 그 다음에는 장부에 이름을 적고 금액을 계산하는 일을 배웠다. 체사레 식구 중에서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그녀의 할머니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썩 시원치는 않았고, 그 아래에서 배운 바르바라의 글씨체는 언제나 악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제대로 쓰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 했다.

 너는 체사레 집안 핏줄을 타고난 아이야. 그들은 종종 입을 모아 말했다. 얼굴을 보렴, 우리 집안사람들은 대대로 사람을 무장 해제시키는 낯짝을 타고났지. 우리는 사람을 부릴 줄 아는 마법을 가진 사람들이란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 바르바라는 온순하고 상냥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고, 금품 도난 사건으로 항의하는 손님에게 우물쭈물한 태도를 보이며 경계를 누그러뜨릴 줄도 알았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은 태도였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타인의 태도가 쭉 그 모양이었기 때문일 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녀는 자신이 핏줄을 타고난 거라고 믿었다. 모두가 그렇게 입을 모아 말해주었기 때문에.

 바르바라가 정말로 상냥해질 필요가 있는 사람을 만난 건 그녀가 열 살 때의 일이다. 영주의 딸이 실종되었다고 온 마을이 떠들썩하던 날, 바르바라는 전나무 가지를 주우러 산으로 올라갔다가 굶주린 들개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금발머리의 소녀를 보았다. 바르바라는 들고 있던 가지 중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들고 다가가 개를 두들겨 팼다. 개가 낑낑거리며 도망칠 때까지 절대로 가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굶주린 짐승들은 굴복하는 듯싶다가도 틈을 보이면 덤벼들었고, 재수 없는 사람들은 곰이나 늑대가 아니라 들개 따위에게 최후를 맞이했다. 바르바라는 거기서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개를 죽을 때까지 패려고 들었다. 마침내 개가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것을 추격하려는데, 웬 하얗고 보드라운 손이 가지를 든 바르바라의 손을 붙잡고 늘어졌다. 바르바라가 고개를 돌리자, 폭력을 휘두르는 동안 잊혀 진 폭력의 원인이 된 소녀가 겁먹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그녀는 더 이상 개를 패지 말라거나, 너무 한다거나 하는 말 대신 그렇게 말했다. 그 바람에 억척스럽게 가지를 들고 있던 바르바라의 손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소녀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가니 기사가 달려와 소녀의 몸을 샅샅이 살핀 후 안위를 묻고 안전을 확인했다. 그런 후 소녀는 물론이고 (조금 탐탁찮은 기색이기는 했지만)바르바라까지 영주 앞으로 데려갔다. 바르바라는 소녀가 영주의 딸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들개를 죽을 때까지 패려고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별한 보상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자칫 방관했다가 스스로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영주의 앞에 도달하자마자 조금 겁을 먹었다. 저 애가 다친 걸까? 내가 들개와 싸우는 사이에 무릎이라도 긁힌 건가? 그러나 영주는 바르바라의 정수리에 손을 얹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 딸을 구해줘서 고맙구나.” 그제야 바르바라는 일이 제대로 풀릴 것을 예감했다.

 타지아는 바르바라처럼 금발이었지만 훨씬 결이 부드럽고, 노란빛으로 찬란한 머리카락을 가진 동갑내기 소녀였다. 영주의 푸른 눈을 쏙 빼닮은 데다가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온 자녀들 특유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체사레 집안의 좋지 않은 소문을 신경 쓰지 않고 바르바라에게 매달려왔다.

 “나는 내 또래의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 우리 오빠는 바빠서 나랑 놀아주지도 않는 걸.”

 타지아는 바르바라를 마치 에아가 내려준 운명의 단짝처럼 여기는 듯했다. 바르바라는 그녀가 싫지 않았다. 귀족이 자신에게 매달리는 것 역시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좋았다. 그래서 타지아가 하자는 대로 순순히 이끌렸다.

 우선 타지아는 바르바라에게 제대로 글을 가르쳐주고 싶어 했다. 바르바라가 바닥에 쓴 글씨를 보고 속으로 적잖이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평민의 부족한 교육수준을 비웃거나 멸시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받은 것인지 애써 티내지는 않았지만, 바르바라는 자신의 글자를 내다보는 타지아의 눈에서 충격과, 동시에 그 충격으로부터 오는 조금의 우월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타지아는 자신의 가정교사를 바르바라에게 ‘나누어주고’ 싶어 했다. 나누어주고 싶다는 표현은 타지아의 단골 멘트였다. 그녀는 바르바라에게 무언가를 베풀거나 나누는 자신의 모습에 큰 만족을 느꼈는데, 아마도 도덕적인 면모를 중시하는 귀족 집안의 분위기가 그런 성격을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나싶다. 물론 그녀의 첫 번째 긍휼은 집안의 반대로 거절당했다. 체사레 집안의 소문 때문이겠지. 바르바라는 막연히 생각했고, 가정교사를 구하지 못 한 것에 별다른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사건으로 타지아는 바르바라에게 꼭 글자를 가르쳐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어느 날 타지아는 체사레 오두막으로 노트와 책을 가지고 왔다. “실례합니다. 바비를 만나러 왔어요.” 체사레 식구들은 현관 앞에 나타난 영주의 딸을 무슨 희귀생물 보듯 했다. 흰 늑대나 거대한 곰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어두컴컴한 오두막집의 현관 앞에 선 타지아의 밝은 금발, 붉은 뺨과 하얀 피부가 체사레 집안의 분위기와 완벽히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비를 불러주실 수 있나요?” 타지아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길을 오히려 조금씩 즐기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체사레 부인이 층계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난나, 내려와!” 바르바라는 서두르지 않고 계단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타지아는 바르바라를 따라 방으로 올라가며 물었다. “왜 어머님이 너를 난나라 부르니?” “우리 집안 사투리인데 축복 받은 애라는 뜻이야.”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사실상 난나의 뜻은 ‘한 건’에 가까웠다.

 그 뒤로 타지아는 바르바라에게 직접 글을 가르쳤다. 바르바라의 글씨가 점점 올곧고 아름답게 변할 때마다 타지아의 뺨이 기쁨으로 물들었다. 바르바라는 그녀의 오지랖이 좋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그녀가 기뻐하는 것은 좋아했다. 언젠가 타지아는 다정하게 바르바라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얹어놓고는 좌우로 문지르며 말했다. “난나, 너는 정말 멋진 일을 하게 될 거야. 더 좋은 장소에서….” 타지아는 평민을 평등하게 대하는 자신에게 좀 심취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바르바라는 ‘더 좋은 장소’에 내포된 ‘현재의 장소’에 대한 비하를 놓치지 않았고, 타지아를 맹랑한 귀족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런 건 귀족의 태생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르바라는 자신이 타지아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몇 번 정도 타협한 이후에야 이 모든 번뇌와 고민을 마음 뒤쪽으로 밀어놓을 수 있었다.

 

 어쨌든 타지아의 말은 바르바라의 가슴 속에 남아있었다. 머리에 남는 기억이 있다면 가슴에 남는 기억도 있는 법이다. 이후 체사레 부인이 집안에서 떨어져 나와 남쪽으로 이동했고, 그녀의 딸인 바르바라 역시 그녀를 따라 남쪽 동네로 내려왔다. 그들은 몬테나를 거쳐 에이브리스로 내려온 후에, 몇 번의 사건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써드빌에 도달했다. 체사레 부인은 평화로운 해변이 보이는 곳에 작은 집을 사놓고는 고향 땅에서 그랬듯이 여관을 열었다. 하지만 몇 번 도둑질이나 사기를 친 후에는 더 이상의 범죄를 그만두었다. “난나, 이곳은 억척같이 살기에는 시시하구나.”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바르바라는 어머니가 온난한 기후와 바다의 잔잔한 물결에 길들여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그랬다.

 바르바라가 어머니의 모습에 질린 것은 그녀가 17살 무렵의 일이었다. 그 무렵 어머니는 바르바라는 앉혀놓고 바르바라의 출생에 대해 몇 가지 설을 떠들어대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바르바라의 친부는 귀족인데 바르바라가 태어난 줄도 모르고 있을 거라고 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놈 꼴이 영 못 미더웠지. 분명 권력이 미미한 서출이거나 셋째 아들쯤 됐을 거다. 안 그럼 우리 오두막집에 묵을 이유가 뭐가 있었겠니?” 친부가 짐승에게 뜯겨 죽었을 거라고만 짐작하던 바르바라에겐 꽤나 모욕적인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어머니는 그 어떤 사람의 주머니도 털며 살아왔는데 결국 어떤 남자, 그것도 별 볼 일도 없는 귀족에게 마음을 빼앗겨 자신을 낳았단 말인가. 자신과 정을 맺은 여자가 임신한 것도 모르고 편안한 보금자리로 돌아가 버린 사내 따위와. 바르바라의 마음속에서 한 가지 목표가 뚜렷하게 발생한 것은 그 때였다. 어머니처럼 살지는 말아야겠어. 사실 그것은 대다수의 딸이 가슴 속으로 품게 되는 최종적인 목소리였고 바르바라 역시 그 모두가 거친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 그녀의 사춘기는 그런 식으로 왔다. 그리하여 여관집 딸의 신세에서 벗어나고자 바르바라는 좀 더 괜찮은 일을, 타지아가 언젠가 읊었던 좀 더 좋은 장소의 일을 찾고자 했다. 그녀가 썬서드에 입단하고자 한 건 조금 더 뒤의 일이다. 마음을 먹은 후에는 한동안 체력을 단련하며 이 년 간 입단 준비를 했다. (일 년째에는 떨어지고 말았지만 결국은 붙었다.)

 그러나 이제 부모를 닮게 되는 자식이란 운명의 일부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르바라는 남자 없이 아이를 낳았고(그녀는 어머니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는 평화로운 곳에 앉아 낚시를 하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처럼 온난한 기후와 평화에 길들여졌다). 하릴없이 검을 휘두르다가 때때로 갑옷을 닦아서 입고는 수면에 비친 모습을 보며 다리를 흔든다. 타지아의 희망을 예언으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처럼. 어쨌든 두 여자가 바르바라에게 미친 영향은 그녀를 기사단으로 떠밀었지만, 그것이 나쁜 선택이었는지 좋은 선택이었는지를 바르바라는 확신할 수가 없다. 다만 지금은 만족한다. 그것에 불만을 가질 만큼 곤란했던 적이 없다.

 그러나 이따금, 눈을 감을 때마다 그녀의 실수에 대한 기억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마침내는 흘러내리는 것이다. 그 기억은 목덜미를 타고 척수 곳곳에 스며들었다가 진득진득한 형태로 아랫배까지 내려와 배꼽 아래에 고인다. 그러면 바르바라는 자신의 배를 몇 번 슥슥 만져보고는 낚시를 하러가는 것이다. 어머니처럼 살지는 말아야겠어. 하지만 바르바라는 첫 임신의 기억을 영영 잊지 못 할 것 같다. 잡아 올린 고기를 양동이에 던져 넣으면서 과거의 기억이 잊혀져 마침내는 완전히 소멸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평화롭기 그지없는 해변가에 앉아, 검을 휘두를 일보다 찌를 던지는 일이 잦은 이곳에서 그것은 무용한 소원일 지도 모르겠다. “난나, 이곳은 억척같이 살기에는 시시하구나.” 어머니 말이 맞다. 써드빌에는 빈틈이 너무 많다. 빈틈을 타고 흘러넘치는 평화와 권태들… 마치 타지아처럼.

 맞아, 타지아처럼 말이다. 

201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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