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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다감 «나이 먹기»
1차/old 2019. 10. 8. 18:33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이삼신은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봤다. 
 운동장엔 몇 백 명의 학생이 빽빽하게 서서 앞을 보고있다. 징글징글할 정도로 많은 정수리들이다. 신입생들은 헐렁하고 빳빳한 교복 같은 표정을 짓고, 윗 학년들은 자세를 풀고 늘어져있었다. 삼 년 동안 딱 세 번만 견디면 다 되는 일인데 그걸 참기가 힘들다. 하긴, 그렇게 치면 시험도 일 년에 고작 두 번이다. 하기 싫은 일은 설령 백 년에 한 번이라도 참기 힘들겠지. 뭐 그렇게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개가 짖었던 것이다. 
 ‘컹!’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삼신은 분명히 들었다. 빽빽한 정수리 가운데 머리 하나가 먼 풍경으로 팩, 젖혀졌다. 
 갈색일까? 아니, 까만색일 것이다. 이 동네 갈색 개들은 다 캉캉 짖는다. 컹컹 짖는 건 까만 놈들이다. 털처럼 소리도 짙고 우렁찬 것이다. 삼신이 매일 저녁밥을 먹이고 있으니 목청도 분명 그 밥심 덕일 테다. 학교 오르막길을 내려와 좁은 골목길을 누빌 때면 떠돌이 개들이 귀신같이 삼신 냄새를 맡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지갑이 여유로운 날엔 대형마트에 들러 애견용 간식을 샀지만, 대게는 그렇지 않아서 삼신은 그들을 향해 빈 두 손을 흔들어 보이곤 했다. “미안한데 오늘은 네들 몫이 없다.” 그래도 개들은 멈추지 않고 삼신의 뒤를 따라왔다. 이발소를 지나고 전봇대를 지나면 낡은 동네 목욕탕이 나왔다. 굴뚝에서 연기가 펄펄 솟으면 영업을 하고 있다는 소리다. 동네 어르신들이 ‘빠께스’를 들고 벅벅 때를 밀고 가는 곳이다. 삼신의 집은 목욕탕 건물 삼층이다. 삼신은 고개를 들어 옥상에 옷이 널려있나 확인한다. 하지만 쌍둥이 여동생들은 집안일에 보탬이 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옥상에 옷을 너는 건 항상 삼신 몫이었다. 
 그 때까지 따라온 개들이 목욕탕 입구에서 컹컹 캉캉 짖어대면 삼신은 손을 흔들었다. “안녕. 여긴 따라오지 마. 얼른 가.” 떠돌이 개들은 조금만 잘해줘도 꼬리를 흔들어서 좋았다. 백 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줘 봐야 동생들은 삼신 속만 긁는데, 개들은 아니었다. 삼신은 동생들 밥 챙기는 일보다 마트에서 개껌 사는 일이 더 즐거웠다. 취직하면 이놈의 집을 박차고 나와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면 밤에도 공부를 할 마음이 생겼다. 일학년 성적은 좋았으니 이 년만 더 잘하면 됐다. 개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할 것이다. 이미 멘트는 다 준비해뒀다. 편식심한 우리 막내 남동생이 남긴 밥을 해치워줘서 고마웠어. 너희들 덕분에 음식물 쓰레기봉투 값도 아끼고 좋았단다. 20리터 한 장에 570원이나 하거든. 모쪼록 다들 개장수 조심하고 열심히 살길 바란다. 
 어쨌든 개들은 헤어질 때도 만날 때도 컹컹 캉캉 짖어대는 정다운 짐승들이다. 이삼신은 이 동네 떠돌이들의 ‘짖음’을 먹여 살리는 일꾼이었다. 컹컹이든 캉캉이든 다 좋았다. 어디서 울려 퍼지던 귀를 기울여 들을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 목욕탕 꼭대기 옥탑 방을 떠나게 되면, 동생들이야 울며불며 매달리겠지만 개들은 늘 그랬듯 컹컹 울어줄 것이었다. 정다운 짐승들. 울음소리를 들으면 이삼신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이따금 밤마다 우우우, 컹컹컹 짖는 놈들의 연설에 함께하고 싶었다. 짝짓고 머물고 떠돌고 배를 굶주리고 배를 채우는 삶에 대한 연설 말이다. 튼튼한 발바닥을 가진 떠돌이 개들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삼신에게도 튼튼한 발바닥이, 삶에 대한 굳은살이 필요했다. 하지만 삼신은 사람이고 학생이라서, 혀를 쭉 내밀고 거리를 쏘다니는 걸론 그 굳은살을 키울 수가 없었다. 대신 그녀는 등급과 내신, 모의고사와 싸웠다. 붐비는 학원버스가 제 또래 학생들을 가득 태우고 사거리로 떠날 때, 채점하다 아는 문제를 틀렸을 때, 밤마다 초등학교 영어교실에서 받아온 시험지를 채점할 때, 가슴은 느닷없이 답답해졌다가 아주 단단해졌다. 삼신은 그게 자신의 굳은살이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입학식 때 말이다. 그 느닷없는 컹! 이 들이닥쳤을 때, 삼신은 가슴이 뛰었던 것이다. 교정에 맑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고, 교장의 훈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새 학기가 되고 후배가 생긴다는 건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열심히 살면 복이 오겠지. 돈도 많이 벌고 개도 키워야지. 성장은 가진 로망을 깨부수면서 찾아온다는 점에서 불유쾌하지만, 성인이 된다는 건 결국 제 한몫을 해내기 위해 집을 나서야 하는 일이다. 굳은살을 충분히 만들어 놓지 않으면 어디를 떠돌아야 하는 지도 모르고 짖는 법도 잊다가 개장수에게 끌려갈 것이다. 
 이삼신은 성공할 것이다. 컹! 이 살아있는 한은. “취직하면 이놈의 집을 박차고 나와야지.”는 삼신의 컹컹컹이었고, 아직 그녀는 짖는 법을 잊지 않았다. 그걸 잊지 않으려고 열심히 산다. 좋은 일인진 모르겠다. 
 이 학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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