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티스토리 뷰

 1. 
 바르바라는 사람들과 함께 우두커니 서서 해안에 정박하는 배를 보았다. 수평선에서부터 나타난 까만 점이 써드빌로 다가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가까워진 배의 갑판을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조금 들어야했다. 바르바라는 갑판 위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얼굴들을 보았다. 
 해변의 기사들과 갑판의 기사들은 동시에 숨을 죽였다. 놀란 표정이 교환되고 잠시간 침묵이 있다가 마침내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들이 돌아왔어. 갑판 위에 선 동료들이 모래톱으로 뛰어내렸다. 몇몇이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뛰쳐나갔고, 몇몇은 망연하게 제자리에 남았다. 바르바라는 후자였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을 준비가 필요했다. 불과 이틀 전에 섬에 남겨진 자들을 완전히 마음 바깥으로 떠밀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틀 전에 이미 그들의 장례를 치른 참이었다. 하지만 바르바라는 늘 그렇듯이 곧 정신을 차렸다. 
 이반이 자신을 끌어안았을 때, 바르바라는 이반을 밀쳐내야 하는지 아니면 얌전히 안겨있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자신이 화가 나는지 우울한지 괴로운지를 확신할 수가 없었다. 모든 일들이 공중에 붕 떠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았다. 이반은 바르바라를 힘주어 꽉 끌어안았다. 그 힘에 들려서 바르바라의 발끝이 땅과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바르바라는 모든 일들이 바로 그 발끝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공중에 간신히 붙어서 땅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바르바라는 생각했다. ‘이반이 살아 돌아온 게 맞는 건가?’ 다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무척 현실적이었다. ‘그럼 선써드의 모든 기사들이 수도로 올라가게 되는 건가?’ 
 바르바라는 이반에게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어야하나 고민했지만 이반은 들뜬 건지 아니면 제정신이 아닌 건지 자꾸만 다른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바르바라는 얌전히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자꾸만 전쟁 생각을 했다. 
 정말 다섯 달이야? 그래서 머리가 이렇게 길었구나. 오년쯤 지난 뒤에 왔으면 널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 우리가 제때 도착했어. 다행이다. 
 제때 도착했다는 건 무슨 뜻일까. 너 전쟁에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 알고 있니? 너는 앞으로 나보다 더…, 바르바라는 이반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을 쏘아보다 말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전쟁 이야기는 나중에 누군가 알아서 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쌀쌀한 바람 때문에 앞 머리카락이 자꾸만 흩날렸다.
 “돌아오니 정말 좋은데.” 
 “응, 알아.” 
 바르바라는 왼손을 뻗어 이반의 뺨을 미약하게 어루만지다가 고개를 돌렸다.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돌아와서 기뻐, 내 친구.” 
 내부의 통증을 숨기며 바르바라가 작게 속삭였다.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이반이 모래톱을 밟으며 다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을 즈음에야 바르바라는 이반의 몸이 자신과 다르게 무척 따뜻했음을 상기했다. 방금의 이반이 정말로 기뻐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바르바라는 이반의 뒷모습을 한 번 흘끔거리다 고개를 돌렸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바르바라는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바르바라는 그들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죽었을 거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굳힌 이후로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을, 혹은 그런 비슷한 것들조차 상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가 없는 것들이 있었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는 사실들이. 바르바라는 모래톱을 마저 내려오다 말고 갑판에서 뛰어내리는 길리언을 발견한 그 순간 그 사실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칼날을 겨누는 것을 격렬하게 느꼈다. 길리언이 중심을 잡기 위해 몇 번 비틀거리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바르바라는 그 자리에 오래 서있었다. 이번에는 북풍이 불어서 바르바라의 머리카락이 전부 길리언이 서있는 방향으로 흩날렸다. 파도소리가 들렸다. 길리언은 천천히 바르바라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의 거리가 점차 좁혀졌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의 갈색 머리카락과 나란한 두 개의 점과 순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길리언이 바르바라를 내려다보다 말고 고개를 숙였다. 바르바라는 두 손을 뻗었다. 길리언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바르바라.” 
 바르바라는 두 손으로 길리언의 머리카락을 쓸어보다가 그대로 미끄러뜨려서 얼굴을 더듬거렸다. 길리언의 둥근 이마와 긴 속눈썹과 콧잔등과 인중과 입술과 턱을 매만지고 탐색하고 확인했다. 길리언이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살아있나? 실체를 갖춘 무엇인가? 따뜻한가? 모든 것을 확인한 바르바라의 손이 마침내 힘 빠진 것처럼 스르르 미끄러졌다. 
 바르바라가 고통스럽게 속삭였다. 
 “네가 더 오래 살아야한다고 생각했어…,” 
 …. 
 “너무 어리다고…,” 
 섬에 남은 사람들의 죽음을 내제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중에 가장 어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바르바라가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었던 건, 그가 길리언이었다는 사실이다. 길리언을 제자로 두지 않았더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바르바라는 인간이고 부끄러움을 안다. 책임감을 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소년에게 부채감을 가질 줄 안다. 
 “고통스러웠니?” 
 그건 사실 바르바라 자신에게 묻는 말에 가까웠다. 
 길리언은 바르바라의 손끝을 붙잡았다가 놓으면서 중얼거렸다. 
 “네.” 
 길리언이 속삭였다. 
 “네, 스승님.” 

 2. 
 두고 왔던 절반의 기사들이 돌아왔다. 비워놓은 방에 다시 사람이 들어찼다. 귀환자들이 마을에 모습을 드러내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이따금 술잔을 비운다. 일상이 돌아왔다. 다섯 달 동안 남은 자들이 결코 되찾지 못 한 일상이 돌아오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숙소로 돌아가는 대신 하루의 대부분을 오즈의 사무실에 처박혀 일을 하는데 보냈다. 귀환자들이 써드빌로 가지고 온 것은 기쁨과 충격, 놀라움과 고통, 그리고 마법과 서류뭉치들이었다. 알렉스가 돌아왔지만 바르바라는 다섯 달 동안 지속해서 처리 중인 수십 가지 종류의 서류를 알렉스에게 떠맡길 수 없음을 알았다. 게다가 가만히 있으면 머리가 아팠다. 생각해야 할 것들이 무척 많았는데, 바르바라는 그 생각에 떠밀려가기보다는 어딘가에 붙어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실제로 현명한 판단이었다. 바르바라는 남은 이들의 생환 이후에도 사무실에 붙어 말없이 전투적으로 일을 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이따금 사무실로 누군가 찾아올 때도 있었다. 오즈월드를 찾는 사람일 때도 있었고 바르바라를 찾는 사람일 때도 있었다. 바르바라는 누군가 오즈월드를 찾을 때에는 얌전히 자리를 비켜주었지만 자신을 찾는 사람일 때는 지금은 바쁘다는 식으로 그들을 돌려보냈다. 오즈월드는 그 때마다 서류뭉치에서 고개를 들고 바르바라를 바라보았다. 
 “피하는 건가?” 
 한 번은 그런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다. 
 “말이라고 하니.” 
 바르바라는 서류를 넘기며 부드럽게 시치미를 뗐다.
 “할 일이 너무 많잖니, 오즈.” 
 바르바라는 서류 위로 글씨를 작성하면서 중얼거렸다. 
 “여기 있는 편이 차라리 마음이 편해.” 
 진심이었다.

2018/08/06

comment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