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티스토리 뷰

 1

 눈을 떴을 때, 그는 거적에 말려있었다. 불편한 자세였다. 그 다음으로 느낀 건 추위였다. 발끝이 너무 차가워서 고통조차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발가벗고 있다고 느꼈다. 바람을 막아줄 만한 옷 같은 게 몸에 걸쳐져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거적에 말린 채로 그레인은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손가락을 조금 꼼질거리려고 했을 뿐인데 시간이 갑자기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움직여지지 않고 있거나, 움직이는 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들고 있는듯했다. 결국 그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걸 포기하고(손가락은 실제로 조금 움직이기는 했지만, 감각이 없었으므로 그는 느끼지 못했다) 잠시간 그대로 누워있었다.

 얼마 뒤 졸음이 몰려왔다. 그는 덜컥 겁이 났다. 다시 몸을 움직여보기로 했다. 온몸을 통나무처럼 굴려보자 과연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한참 후, 그레인은 거적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거적에 엎어진 채 헐떡이다가 천천히 바닥을 짚고 엎드려 앉았다. 이제 보니 그는 얇은 하얀색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바람이 숭숭 들고 있었지만 어쨌든 최소한 발가벗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옷은 누군가 벗겨간 것 같았다. 속옷까지 전부 벗겨졌다. 그레인은 자신이 투기된 것을 깨달았다. 주변에는 인적이 없었다. 눈이 차곡차곡 쌓인 나무들은 바싹 마른 가지를 하늘로 쳐들고 있었고, 바람은 살을 에는 듯 칼날 같았다. 소리를 쳐도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이 산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이 산은 아무도 오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이곳은 신의 산이었다.

 

 2

 그레인이 기억하기로 마을 사람들은 환희로 가득 차있었는데, 낫과 쇠고랑과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그레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른 뒤에, 그가 집에서 나오지 않자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그때 그레인은 뒷마당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것도 당연하지만 듣지 못했다.

 앞장 선 사람은 사요코 아주머니였다. 이 모든 걸 주동한 사람도 그녀였다. 기름을 먹은 나무 몽둥이로 그레인의 뒤통수를 힘껏 후려쳤다. 그레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모로 쓰러졌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의식이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허겁지겁 그레인을 빙 둘러싸고 그가 기절했는지 확인했다. 사요코 아주머니가 그를 발로 뒤집으려 했다. 그레인이 순순히 뒤집히지 않고 땅에 버티고 누워있자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손으로 뒤집어 얼굴을 확인했다. 의식이 있는지 뺨을 치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렀다. 그에게 의식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자 남은 마을 사람들이 수를 썼다. 가지고 온 무기를 유감없이 그 용도에 맞게 사용했다. 심지어는 손도 쓰고 발도 썼다. 하지만 몸을 크게 훼손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바닥에 피를 흩뿌리지 않고 사람을 훼손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재앙을 겪어온 마을은 그런 일들을 익숙하게 할 수 있었다.

 

 ‘시발.’

 너무 춥고 졸려서 그레인은 다시 엎드렸다. 눈을 감자 모든 게 귀찮아졌다. 등을 에는 바람은 이제 바람이 아니라 날붙이처럼 느껴졌다. 잘 벼린 칼로 등을 조금씩 포로 떠내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너무 차가워져서 이젠 입김도 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숨을 갈수록 천천히 내쉬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했다. 억울함조차 느껴지지 않았는데, 몸에 힘이 너무 빠져서 그런 것 같았다.

 어렴풋하게 어떤 소리가 들렸다. 설명하기 힘든 소리였다. 그것이 뿌리를 뛰어넘고 바싹 마른 대지를 가로질러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빠르고 경쾌했다. 마침내 그것이 그의 앞에 멈추어 섰다. 그쯤에 그레인은 몸이 너무 뻣뻣해져서 고개를 들 기운조차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것을 확인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쩌면. 그래서 그는 고개를 들었다.

 

 3

 그것은 발이 달린 메기였다. 시큰둥하고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입을 열었을 때, 그레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그는 그것이 말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임메?”

 그것이 말했다.

 그레인이 답하지 않자 그것이 한 번 더 물었다.

 “다섯 번째임메?”

 이상한 일이었다. 무력한 상태로 맞이하는 죽음의 권태에 패배해 누워있던 그레인은 기묘한 상황에 이끌려 조금 더 살고 싶어졌다. 눈앞의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잠시 후 그레인이 물었다.

 “너는 누구야?”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그가 조용히 덧붙였다.

 “鯰尾山의 신이야?”

 그때 산 끝에 닿았던 바람이 두 사람에게로 돌아왔다. 어떠한 힘에 거슬러 올라온 것처럼, 그 보이지 않는 차가운 칼날이 두 사람을 에워싸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시간을 역행하고 재앙을 수복하는 권능의 힘이었고 동시에 모든 것을 파괴하는 자연의 힘이었다. 그러면 그 바람을 따라 눈발은 벚꽃처럼 사방으로 흩날리고 또 흩날리는 것이었다.

 그것이 다시 입을 연 건 그 모든 눈발이 그들 앞에 엎드리고 난 후였다.

 “그렇담메.”

 나마즈오鯰尾가 대답했다.

 

 4

 자신을 신이라고 소개한 그 메기는 그레인을 다시 거적에 말았다. 그레인은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얌전히 거적에 말렸는데 일단 몸에 힘도 없었거니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묘한 사건에는 죽음만큼 강력한 힘이 있었는데 사람을 순응하게 만드는 어떤 운명적인 기운이 바로 그것이었다.

 얼마 뒤 그레인은 메기의 신분을 의심하게 됐다. 자신을 짊어지고 세 발자국이나 걸었을까, 별안간 눈밭에 주저앉더니 기절해버린 것이다. 얼어붙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꺼풀을 힘겹게 열어 그 꼴을 확인해보니, 나마즈오의 눈이 뒤집어지고 입에는 거품을 물었다. 도무지 신처럼 보이지 않는 모양새였다.

 아, 나는 이대로 메기랑 얼어 죽는 건가?

 “메메메메메, 죽지 않는담메!!”

 벌떡 몸을 일으킨 나마즈오가 거칠게 그레인 보쌈을 들어올렸다. 여전히 눈이 뒤집힌 상태로 봐선 의식이 사라진 것으로 보였지만, 아까와는 다른 기세로 그를 들쳐 메더니 단숨에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돌로 깎은 불상처럼 몸이 한 덩어리로 굳어져있던 그레인은 이대로 잘못해서 나무에 부딪치기라도 하는 날엔 산산조각 나버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동굴 앞에 도착한 나마즈오는 그레인을 안쪽에 내려놓고 예의 그 기묘한 발소리를 내며 몇 발자국을 더 걷더니 꽈당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이번엔 진짜로 움직이지 않았다.

 …….

 저거, 진짜 신일까?

 

 5

 깨어난 나마즈오는 그레인이 자길 동굴까지 옮겨준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름이 뭐람메?” 

 불에 장작을 던져 넣으면서 메기가 물었다.

 그레인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하나 잠시간 고민했다.

 “그레인.”

 물에 방구 뀌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저 자식, 방금 웃은 거지?

 “이름이 그게 뭐람메?”

 “네 이름은 뭔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고개를 돌리니 나마즈오가 그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불 그림자가 일렁이는 그 얼굴이 조금 무서워보여서 그레인은 내심 당황했다.

 잠시 후 나마즈오가 몸을 돌려 앉았다. 구석에서 냄비를 꺼내오더니 불 위에 지지대를 새워 매달았다.

 “이름이 그런걸 보아하니 너는 물 건너 사람인가봄메?”

 “. 그런 것 같아.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의 부모님은 그가 다섯 살 때 죽었다. 어머니는 돌림병으로, 아버지는 실종이었다. 아마 아버지 쪽은 재물이 되었을 것이다 라고 현재 비슷한 일을 당한 그레인은 추측했다.

 “마을에서 쓰는 이름은 코우센이야.”

 “코우센 쪽이 부르기엔 훨씬 낫담메.”

 “마음대로 해라.”

 나마즈오가 진흙색으로 굳어진 된장을 냄비에 집어넣었다. 그레인은 발끝이 조금 녹은 것을 느꼈다. 손가락을 꼼질거리자 움직임이 느껴졌다. 불꽃 때문에 다른 의미로 아까와는 다르게 노곤해지고 있었다. 나마즈오는 서두르지 않고 국자로 냄비를 휘휘 저었다. 지나치게 느긋하고 여유로운 몸짓이었다. 발소리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코우센은 마을에 배신당했음메?” 

 그레인은 말문이 막혔다.

 “그래.”

 “니네 마을도 참 바보같담메.”

 나마즈오가 국자를 퍼서 뭔가를 맛보았다. 꼬리를 부르르 떨더니 눈이 게슴츠레해졌는데 그러자 조금 똑똑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

 그레인이 물었지만 나마즈오는 된장을 조금 더 집어넣을 뿐이었다

 그레인이 한 번 더 물었다.

 “바보 같다니?”

 호록호록 된장죽을 퍼먹던 나마즈오가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 다 된 것 같담메.”

 “너는 실은 신이 아니야?”

 “그릇을 줄 테니까 좀 먹어보람메.”

 “……고마워.” 

 그레인은 죽을 먹었다. 더럽게 맛없었다.

 “확실히 요리의 신은 아니구나.”

 “얻어먹는 주제에 말이 많담메.”

 나마즈오는 자신의 수염을 매만지며 투덜거렸다.

 “확실히, 나는 너희들이 기대하는 그런 능력은 없담메.”

 ‘신이 아니었구나.’

 죽을 조금씩 홀짝이며 그레인은 생각했다. 몸이 녹기 시작하니 육신의 시간과 함께 멈춰있던 고통도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얻어맞은 등이 욱신거리고 반쯤 뜯긴 발톱에서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다. 바늘 수 천 개로 찌른 발가락을 쇳물에 담근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고통으로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그레인은 죽 그릇을 내려놓았다. 어느새 나마즈오는 그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 저렇게 말없이 바라보면 멍청해 보이면서도 표정이 없어 제법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말이지.

 나마즈오가 다가왔다.

 “나는 비를 내리게 하진 못한담메.”

 축축한 지느러미가 뺨을 매만지는 게 느껴졌다. 그레인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득해지는 정신속에서 나마즈오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인정머리가 없진 않담메.”

 입술에 축축한 감각이 닿는 것도 같았다.

 잠시 후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고,

 그레인은 기절했다.

 

 

지인네 빛전 자유리퀘스트 받아서 썼음

나마즈오야마에 인신공양당한 그레인과 신인지 허접메기인지 모르겠는 나마즈오의 만남au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