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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엘렉트라>를 관통하는 주제는 복수다. 작중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엘렉트라, 클리탐네스트라, 아이기스토스와 오레스테스, 크리소테미스 모두는 이 복수라는 욕망 하에 움직인다. 이 극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신화 속 엘렉트라와 그녀의 남동생 오레스테스가 결국 복수에 성공하고, 심지어는 그 죄를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미루어볼 때, 연극 <엘렉트라>의 인물 중 그 누구도 복수에 성공하지 않는다는 각색 방향은 이 극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짐작케 한다.

 <엘렉트라>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당위를 가지고 복수를 정당화하고 있다. 복수가 그들에겐 곧 정의 혹은 행동방향의 지표가 된다. 그러나 그들의 복수극은 전쟁으로 무너진 성전 아래, 즉 이미 정의가 무너진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모순을 피할 수 없다. 엘렉트라와 그녀의 형제자매들의 정의가 더 이상 정의가 아닌 그 무엇, 일종의 광기로까지 비춰지는 건 바로 이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성전이란 단순히 신을 모시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소망과 염원을 기원하는 공간이다. 이 때, 엘렉트라와 형제자매들이 몸을 의탁하는 성전의 잔해 아래는 복수를 성공시킴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길 기원하는 그들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을 위탁할 수 있는 안정과 평화의 공간은 이미 전쟁 때문에 파괴되었으며, 이 전쟁은 다름 아닌 엘렉트라의 복수로부터 기인한 비극이다. 요컨대 그들은 정의를 찾기 위해 그들의 공간을 스스로 파괴한 꼴이 된 것이다. 엘렉트라와 형제자매들의 몰락은 이미 막이 올랐을 때부터 암시되어 있던 거나 다름없다. 게다가 엘렉트라는 자신의 성전을 찾기 위하여 만인의 성전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이미 복수의 정당성을 박탈당한지 오래다. 작중 엘렉트라가 부추겨 전쟁에 투입된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는 언급이 등장하는 것은 결코 이 성전의 의미와 다르지 않다. 엘렉트라가 무너뜨린 성전은 무고한 이들의 평화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무너진 성전의 잔해는 희생자들의 시체를 연상케 한다. 엘렉트라는 그들의 시체를 밟고 복수와 정의를 외치고 있었다. 몰락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외치던 것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었다.

 이 극의 흥미로운 지점은 복수의 대상이 되었던 클리탐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의 발화 내용이다. 작중 프로타고니스트인 엘렉트라의 발화는 격양되어 있고, 무조건적인 정의를 외치고, 자신의 욕망을 부르짖는다. 그녀는 자신의 정의가 정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정조차 하지 않는다. 죄를 죄라고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반면 그녀의 안타고니스트인 클리탐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는 자신의 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의 죄 이전에 누군가의 죄가 존재했기에 자신은 신으로부터 사함을 받았거나, 혹은 그것이 정당했다고 주장한다. 정당화와 정의는 다른데, 그들은 자신들이 이루어 마땅한 짓을 저질렀다고 발화하기는 하나 그것을 정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엘렉트라의 복수극 역시 죄라는 것을 꼬집고, 그녀의 복수극이 진행되는 공간이 다름 아닌 무너진 성전임을 거듭 엘렉트라에게 환기시킨다. 그들은 엘렉트라의 복수를 가로막는 게 아닌, 그녀의 복수가 정의가 아님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안타고니스트가 된다. 엘렉트라의 욕망은 궁극적으로 정의를 수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엘렉트라와 대척점에 있던 이 두 인물이 신을 믿었다는 점이다. 엘렉트라의 어머니 클리탐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의 복수를 신들에게 사함 받았다고 언급하며, 클리탐네스트라의 연인 아이기스토스는 엘렉트라에게 신의 징벌을 운운한다. 반면 엘렉트라는 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을 징벌한다”는 요지의 답변을 내놓을 뿐이다. 그러나 이 차이점이 그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신을 믿은 클리탐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는 무너진 성전에 끌려와 죽임을 당하고, 신을 믿지 않고 성전을 파괴한 엘렉트라는 알 수 없는 외부의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 때, 무너진 성전은 누군가의 죄를 사하거나 징벌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의 부재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극이 현대로 각색되었다는 점 역시 주목하고 싶은데, 나는 엘렉트라가 알 수 없는 외부의 적에 의해 살해당하는 결말방향이 바로 이 신의 부재, 혹은 신의 대체를 암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개개인의 복수를 무력화하는 절대적 힘, 요컨대 신의 권력이 다름 아닌 사회, 혹은 그보다 더 거대한 외부적인 흐름, 그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비극이라는 것임을 말이다. 이 때, 작중 무너진 성전은 평화의 공간이 파괴되었다는 관념적인 의미와 동시에 신의 공간이 파괴됨으로써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직관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성전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남긴다. 희생이 수반된 복수란 정당한가? 그리고 우리의 삶을 궁극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오늘 날의 권력이란 과연 무엇인가?(작중 소년병으로 추측되는 워커의 존재는 이 두 개의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작중 굳이 워커를 각색하여 집어넣은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이 두 가지의 질문은 궁극적으로 연극 <엘렉트라>가 말하고자 하는, “복수의 무의미함”을 더욱 강화시키게 된다. 개인적으로 복수에 냉소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는 극으로 느껴졌는데, 그를 위해 가장 고전적인 복수의 원형을 가지고 왔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와 흥미를 동시에 느꼈다. 그러나 캄캄한 조명, 암울한 전쟁의 분위기, 등장인물 간의 쟁쟁한 대립과 설전이 쉴 틈 없이 진행되는 극의 전체적 분위기가 내게 무척 피로하게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다. 여러모로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극이었다. 그러나 고전적인 논쟁 중 하나인 “복수는 정당화 될 수 있는가/복수는 정의실현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는 점에서 이 극의 고전성이 원본과 아주 동떨어져 있지는 않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작가는 결국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성전을 파괴했던 것이다. ■1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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