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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 날 밤, 삼신은 꿈을 꿨다. 삼신은 바다에 있었다. 놀랄 만큼 헤엄도 잘 쳤다. 이삼신은 인어가 됐던 것이다. 지느러미는 아주 크고, 가슴을 억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은 아주 차갑고 고요했다. 그리고 아주 어두웠다. 삼신은 어둠 속을 마구잡이로 헤엄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문득 솟구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삼신은 사실 대부분의 꿈속에서 하늘로 솟구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삼신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육지는 모두 사막이었고 바다의 파도는 아주 높았다. 삼신은 파도를 타고 앞으로 나아갔다. 모래사장엔 큰 바위가 있었다. 그 위엔 교복 차림의 희가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파도가 솟구쳐 바위 끄트머리를 철썩 때렸다. 삼신은 파도가 물 아래로 빠질 때 바위를 붙잡고 위로 기어 올라왔다. 육지의 열기는 혹독했지만 햇볕에 데워진 바위는 따뜻했다. 삼신은 지느러미가 거슬려 인간이 되기로 했고, 곧 말짱한 두 다리가 생겼다. 삼신은 축축한 전라의 몸을 끌고 희의 위로 올라왔다. 희는 하복 차림이었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팔에 빽빽하게 칼자국이 나있었다. 삼신은 너무 놀라서 희를 마구 흔들었는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서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희는 눈을 뜨지 않았다. 희의 팔 안쪽을 매만지며 몸을 숙이자, 피가 속눈썹과 뺨에 닿았다. 삼신은 얼굴을 비비며 소리 없이 그 애를 불렀다. 희의 팔에 맺힌 피가 웅덩이가 되고 뚝 뚝 바위 아래로 떨어졌다. 새파란 파도가 쳤다. 삼신은 자기가 울고 있음을 깨달았는데, 갑자기 뺨이 너무 뜨거워져서였다. 삼신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희를 끌어안았다. 그리곤 인간의 언어를 하나 배웠다. 죽지 마! 라고 삼신이 외쳤다. 희는 가느다랗게 눈을 떴다. 삼신은 그 애가 죽을까 봐 입을 맞췄다. 그리곤 그 애 안에 가득 들어있는 죽음을 빨아 당기기 시작했다.

희는 그걸 뺏기기 싫어서 몸부림 쳤다. 인간의 언어로 마구 욕하고 할퀴었다. 하지만 삼신은 인간의 욕설을 몰랐다. 그래서 그건 삼신을 상처 입힐 수 없었다. 삼신은 혀로 희의 입속을 샅샅이 긁었고, 영혼을 습윤하게 만들었고, 죽음을 물렁하게 만들어서 자기 입으로 들어오게 했다. 삼신은 그걸 잠깐 삼켰는데, 곧 너무 고약한 맛이 나 뱉어냈다. 희가 마구 기침했다. 삼신은 그 애의 얼굴을 젖은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희는 너무 피를 많이 흘렸고 기침도 너무 많이 한 까닭에 지쳐가고 있었다. 삼신은 제 뺨을 희의 뺨에 가져다 댔다. 희가 눈을 뜨고 삼신을 바라봤다. 삼신은 인간의 언어를 하나 더 배웠다. 안녕. 삼신이 말했다. 희가 말했다. 안녕.

둘은 바위 위를 뒹굴며 죽음과 계속 맞서 싸웠다. 희는 삼신의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삼신의 등에 박힌 가시를 하나씩 뽑아주었다. 그리곤 눈꺼풀을 핥아 속눈썹 곳곳에 말라붙은 피딱지를 없애주었다. 삼신은 희의 눈을 가리곤 물었다. ‘눈을 감아 봐. 뭐가 보여?’ 희가 대답했다. ‘그냥 깜깜하기만 해.’ ‘거기가 내가 있던 곳이야.’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왔어.’

삼신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너와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삼신이 그 꿈에서 마지막으로 배운 것은 물거품이 되는 감각이었다.

 

삼신이 꿈에서 깼을 때, 옆에선 은주가 잠을 자고 있었다. 삼신은 사타구니에서 손을 떼어내고 슬그머니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그리곤 세면대에서 끈적끈적한 손을 마구 씻어냈다. 그리곤 물기가 마르지 않은 축축한 손에 얼굴을 묻었다. 다리 사이가 아직도 화끈거렸다.

이삼신은 착잡하게 중얼거렸다.

“아, 내가 무슨 사춘기 남학생도 아니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부스스 깬 동래가 조금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누나, 아파? 아까 끙끙거렸어…….”

삼신은 이불을 뒤집어쓰며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거 아냐. 그냥 자.”

가족들이 아니었다면 이불을 찼을 것이다. 이삼신은 눈을 감고 창피함을 달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곤 이내 잠이 드는데 성공했다. 이번엔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

 

 

6.

그 다음 날 삼신은 희의 집에 놀러갔다. 꿈 때문은 아니고 원래 약속되어 있던 것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마구 비가 내렸다. 소나기인 줄 알았지만 집에 들어오자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무서운 비바람이었다.

삼신은 언젠가 그랬듯이 거실을 돌아다니며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가 TV를 틀어 영화를 봤다. 희는 삼신 옆에 앉아 가끔 몇 마디를 덧붙였다. (“쟤 이제 죽는다.” “스포 하지 마, 미니야. 네가 쟤보다 먼저 죽는 수가 있어.”) 둘은 영화가 끝나기 전 너무 많이 말해버린 나머지 줄거리를 쫓아가는데 실패했고, 결국 TV를 켜둔 채 앉아만 있었다. 삼신이 비바람과 천둥과 번개가 치는 바깥을 바라봤다. 희가 사는 아파트 유리창은 두껍고 튼튼해서 바깥에서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결코 흔들리거나 깨지지 않을 것 같았다. 삼신은 희가 적어도 비바람에 있어서 안전하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어젯밤 꿈이 생각났다. 이삼신은 조급함을 느꼈다. 그것은 희가 세상 그 너머로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비슷했다. G와 밀고 당기기를 할 때는 G가 어디로 사라져도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민 희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면 견딜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미니야.”

천둥이 쳤다. 삼신은 희를 붙잡고 늘어졌다.

“미니야아.”

희가 물끄러미 삼신을 바라봤다. 삼신은 힘주어 희의 얼굴을 당겼다.

“미니야!”

“왜?”

희가 물었다. 삼신은 대답했다.

“나는 지금 세상과 맞서 싸우고 싶어졌어!”

“어떻게?”

삼신은 희를 잡아끌었다. 희는 목줄이 없어도 삼신이 손을 잡아당기면 그대로 끌려오는 것이다. 둘은 침대로 갔다. 그리곤 삼신의 꿈속만큼 했다. 꿈속과 다른 게 있다면 둘이 옷을 전부 벗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희가 삼신의 위로 올라탔다는 것만 달랐다. 하지만 때때론 삼신이 위에 있기도 했다. 비바람이 끊임없이 희의 방 창문을 두드렸다. 삼신은 오르가즘을 느꼈다. 번개가 쳐서 방 안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천둥이 콰르르 쏟아져 내렸다. 삼신은 작게 흐느끼면서 희의 가슴 위로 쏟아졌다. 희가 고개를 들어서 삼신에게 입을 맞춰줬다. 삼신은 깔깔 웃으며 희의 목을 물었다. 희가 기겁했다.

“야, 왜 그래!”

“너무 좋은데 달리 표현할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 잠시 짐승이 됐어!”

이삼신은 벌어진 셔츠를 추스르곤 희의 위에서 내려와 기진맥진하게 눈을 감았다. 비바람이 잦아들었지만 천둥은 계속해서 방을 흔들었다.

“희야.”

삼신은 눈을 감은 채로 불렀다. 희의 손가락이 삼신의 얼굴 위로 머뭇거리며 지나갔다. 닿지는 않았고 그냥 그 위를 서성거리다 돌아간 것이었다.

삼신은 어젯밤 꿈이 떠올랐고 하고 싶은 말도 떠올랐다. 그래서 그것을 말했다.

“나는 가장 야한 방식으로 너를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일단은.”

“일단은?”

“일단은!”

삼신은 눈을 뜨고 단호하게 단언했다.

“우리가 평생 사귈 순 없잖아.”

“너 정말 무드 없다…….”

“하지만 널 평생 기억할 수 있을 거야.”

삼신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웃었다.

“너도 살면서 때때로 다른 누군가를 찾겠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네. 일단은.”

“일단은?”

“일단은.”

삼신은 희 쪽으로 몸을 돌리곤 턱을 괬다. 그리곤 장난스럽게 찡그렸다. 마구 헝클어진 포니테일이 어깨선을 따라 미끄러졌다.

“그렇지만 넌 다신 나처럼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여자애를 찾진 못 할 거야.”

천둥이 쳤다. 희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럴지도…….”

희는 잠깐 누워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것처럼 말했다.

“키 좀 더 컸으면 좋겠다. 누우니까 차이도 안 느껴지는 것 같아.”

“그래? 그런가?”

삼신은 별 다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넌 언젠가 키도 품도 더 클 테고 사실 여기서 멈춰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왜?”

“네 침대에선 네 냄새가 나서 여기서 섹스하면 네 품이 정말 크게 느껴지거든. 위 아래로 안긴 느낌이랄까.”

“난 모르겠는데.”

“우리 집엔 침대 없어.”

삼신은 유감스럽다는 투로 비장하게 말했다.

“근데 원한다면 금은동 내쫓고 우리 집에서 하자. 이불 위라서 좀 아플 거야.”

“생각해볼게.”

희가 삼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삼신은 손을 들어서 아주 큰 손바닥으로 그 정수리를 슬슬 쓰다듬어줬다. 그러자 발가락 끝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삼신은 아, 물거품이 될 차례인가, 라고 생각했다. 한여름에 꿀 수 있는 꿈들은 결국 사라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신은 사라지는 대신 기진맥진해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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