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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열한 살쯤 어른이 된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이불을 걷었더니 거시기에 털이 나있었다. 빨랐던 건가? 남들에게 거시기 털이 몇 살쯤 났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영영 알 수가 없을 테다.

 그 해 겨울에는 원인 모를 병이 돌아서 거리의 많은 거지들이 죽었는데, 나의 스승 이곤도 거지였다. 그의 시체가 열흘 동안 골목 구석에 누워있었다. 열흘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그를 수레에서 찾았다. 마침 시체를 쌓으러 가는 길인데, 아는 사람이냐고 수레지기가 물어보았다. 나는 그 놈의 다리를 힘껏 걷어 차주었다.

 그의 몸이 기억난다. 고양이처럼 웅크린 채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나는 잘 때 왼쪽으로 웅크리고 자는 버릇이 있는데, 이곤은 자는 게 아니라 죽은 것이다. 그것의 차이는 간단하다. 나의 이마는 잘 때마다 모락모락 열이 피어오르는데, 죽은 이곤의 이마는 딱딱하고 차갑다. 그의 눈을 감겨줄 때, 이마를 만져보았다가 그 온도에 깜짝 놀랐다. 그 전까지 나는 시체를 가까이서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마흔한 살 먹은 장성을 업고 언덕을 오르는 일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혼자 걸을 땐 금방인데, 등에 시체를 지고 있으니 세 배는 더 걸렸다. 죽은 스승이 나의 등에서 어린 아이처럼 늘어졌다. 오르막을 오르는 내내 등 뒤에서 질질 발 끌리는 소리를 들었다. 언덕에 도착하고 나서 이곤의 왼발에 신겨져 있던 구두가 사라졌음을 알았지만, 되돌아 갈 힘이 없어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돌아올 때 찾아보았는데, 못 찾았다. 아무래도 누가 가져간 것 같다. 어쨌든 난 그를 바다가 보이는 높은 언덕에 묻었다. 이곤의 영혼은 이베르타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베르타에서 죽었으므로, 그가 축복을 받았다면 에온과 같이 있을 것인데, 구두가 한 짝뿐이니 내내 깽깽이 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조금 눈물이 났고, 이곤에게 미안해졌다. 그러니까 나는 열한 살 겨울에 영영 지울 수 없는 마음의 빚이 생기고 만 것이다.

 열두 살에는 항구에서 제일가는 무법자가 되었다. 남자애들이고 여자애들이고 할 것 없이 내 막대기 앞에서 바짝 쫄아 꽁무니를 빼기 바빴다. 스승을 잃었지만 나는 무사하였다. 계속해서 싸우고 지배하고 정복하고 또 자비를 베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사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쨌거나 나는 인생에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열두 살 가을 무렵에는 말이 필요해서 트리아즈 상단을 습격했다. 거기서 쫓겨나는 대신, 나는 유리아를 만나게 되었다. 유리아는 트리아즈 상단주였고, 재미있는 일을 찾고 있었는데 때마침 내가 나타나 기분이 퍽 유쾌해보였다. 유리아는 말을 거저 주는 대신 몇 가지 조건을 걸었는데, 나는 그것을 내기로 이해하였다. 이겼는지 졌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이겼을 것이다. 유리아는 나에게 말을 고를 기회를 주었고, 나는 당나귀를 골랐다. 나는 나의 당나귀에게 과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열세 살에 나는, 단단하고 낡은 나무작대와 튼튼하고 어린 당나귀가 있었고,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나의 스승이 묻힌 바로 그 장소에서, 종종 엉덩이를 깔고 먼 바다를 보았다.

 나는 바람이 결을 나누는 곳을 보았다.
 나는 배가 떠나고 돌아오는 곳을 보았다.
 나는 이단자들의 무덤을 보았다.

 
 그 무덤은 나의 스승을 묻은 곳처럼 판판하고 반듯하지 않았다. 필시 시체가 너무 많은 탓일 테지. 시체가 많은 구덩이는 아무리 다져도 판판해질 수가 없지. 무엇으로 가득 찼다면 반드시 부풀어 오를 테지. 요컨대 저 바다도 분명 부풀고 있을 것이다. 요컨대 바다는 판판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세상에 끝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갈 수 있을 때까지는 가봐야지. 열세 살의 나는 마침내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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