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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일리가 바르바라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지나가던 메이지가 장작을 던져 불꽃을 살려주었다. 바르바라는 어두컴컴한 풍경을 응시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메이지를 바라보았다. 메이지의 뒤에는 이반이 서있었다. 

 “고마워. 산책 가니?” 

 “응, 근처를 둘러보다 올 생각이야.” 

 “다녀오렴.” 

 두 사람은 멀어졌고 바르바라는 다시 밤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따금 무릎 위로 헤일리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바르바라는 손가락을 뻗어 제자의 머리카락을 조용히 쓸어주었다. 

 바르바라는 노이어 영지에 대한 이야기들, 어둠과 괴담, 축축하고 음침한 성질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주변이 밝아진 것도 모르고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마침내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나무 근처에 길리언이 기대어 앉았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생각과 상상의 지점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오다 말고 주변이 아까보다 밝고 따뜻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길리언과 눈이 마주치자 표정이 저절로 부드러워졌다. 모닥불의 불꽃이 살아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바르바라는 주변의 빛을 몰고 온 게 길리언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정말 그럴 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 사람은 모닥불 앞에서 몸을 녹이느라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장작 불씨가 탁,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헤일리는 옅은 잠에 빠져서 숨소리가 느리고 규칙적으로 변했고, 길리언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길리언이 느닷없이 번쩍 고개를 들고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 

 바르바라는 동시에 세 가지 일을 했다. 손으로는 헤일리의 눈 위를 가렸고, 입으로는 쉿, 소리를 냈으며, 시선으로는 길리언의 안색을 살폈다. 

 “왜 그러니?” 

 “무슨 소리 안 들렸어요?” 

 “소리?” 

 길리언은 손등으로 왼쪽 귀를 문질렀다. 

 “누가 옆에서 웃으면서…,” 

 “피곤하니? 너도 쉬어야겠구나.” 

 바르바라는 길리언의 손등에 남은 불똥 자국을 응시하다 말고 시선을 돌렸다. 바르바라와 시선이 마주친 길리언이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그쵸.” 

 “그래, 눈 좀 붙이렴.” 

 바르바라가 눈짓했다. 

 “이리오렴, 무릎이 남았단다.” 

 그래서 마침내 길리언도 바르바라의 곁에 앉았다. 하지만 길리언은 바르바라의 무릎을 베는 대신 바르바라의 다리에 기대는 쪽을 택했고, 결론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두 제자를 무릎과 옆구리에 두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다. 바르바라는 이따금 한 손으로는 헤일리의 머리카락을, 다른 한손으로는 길리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면서 침묵을 지켰다. 생각에 잠기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모닥불에서 불씨가 탁, 하고 솟구칠 때마다 상념이 끊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바르바라는 길리언이 잠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제자의 피로하고 불안한 몸뚱이가 느껴졌다. 무겁거나 가볍지 않고… 그러나 사라져서는 안 되는 무게들도 있다. 

 문득 길리언이 깜짝 놀라던 순간이 떠올랐다. 바르바라는 (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자신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노이어 영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하늘이 어두컴컴해지자 어느 것이 숲이고 어느 것이 하늘인지가 불분명했다. 음침하고 황량해보였고 무엇이든 존재할 것처럼 느껴졌으나 그곳에 웃는 얼굴은 없었다. 바르바라는 작게 웃으며 다시 모닥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주문처럼 속삭였다. 

 “만약 곁에 있다면 내 귀에 바람을 불어주렴.” 

 주변은 조용했다. 바르바라는 헤일리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면서 작게 자장가를 흥얼거렸다. 바르바라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은 노이어의 땅이었으므로. 바르바라는 괴담의 온상지가 가지는 힘이 제대로 발휘되기를 기대했다.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잠시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마차에서 오즈월드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두 제자를 부드럽게 흔들어 깨웠다. 

 “일어날 시간이 된 것 같구나. 편한 곳으로 가자.” 

 헤일리와 길리언이 잠이 덜 깬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헤일리는 기지개를 켰고 길리언은 하품을 했다. 바르바라는 두 제자의 머리통을 가볍게 끌어안아주고는 치마를 털면서 일어났다. 오즈월드가 세 사람을 보았다. 세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오즈월드 쪽으로 걸었다. 오즈월드는 그들을 성 안쪽으로 보냈다. 

 “노이어 경이 잠자리를 마련해주셨어. 고마운 일이지.” 

 오즈월드가 말했다. 

 “그래, 이곳은 우리의 잠자리가 아닌가보구나. 우리가 방해한 걸지도 모르겠어.”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성문 안으로 완전히 들어서기 전, 바르바라는 두 제자(특히 길리언)의 코트 상태를 보고는 노이어에서 외투를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자고 말했다. 사실 바르바라의 옷 상태도 썩 좋지는 않았다. 선써드의 대다수가 간밤의 화재로 그을린 옷을 입고 있었다. 멀리서 보았더라면 모닥불 위를 구르고 온 사람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 후 바르바라는 길리언의 손등을 붙잡았고, 두 제자가 무언가를 눈치 채기도 전에 재빨리 그것을 해결했다. 가벼운 마법. 그리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의 손등을 놓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두 제자를 안으로 물렸다. 

 “먼저 들어가렴.” 

 바로 그 때 느닷없이 거센 바람이 불었다. 금발이 사방으로 나부끼면서 바르바라의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바람이 자꾸만 바르바라의 등을 성안으로 떠밀었다. 바르바라는 얼굴을 찡그리며 뒤를 돌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바람이 멎더니 공기가 잠잠해졌다. 주변은 금세 고요해졌고 밤하늘에는 별이 반짝였다. 멀리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메이지와 이반의 실루엣이 보였다. 꿈이라도 꾼 것 같은 얼굴로 바르바라가 움직이는 두 실루엣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공기가 서늘해졌다. 바로 다음 순간, 누군가 바르바라의 귓가에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바르바라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는 있었다. 

 바르바라는 귓가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아, 이런 곳에서 자랐단 말이지.” 

 과연, 켈커스 출신도 아니면서 그렇게나 적응이 빠르더라니. 룬넨마을에도 유령과 괴물은 있다. 혹은 그 무엇도 아닌 것들 역시 차고 넘친다. 황량하고 메마른 땅에서는 무엇이든 자라고 죽는다. 바르바라는 노이어에 도사리고 있는 무형의 것들을 어쩔 수 없이 감지해냈으나 의식적으로 털어내곤 몸을 돌렸다. 등 뒤로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바르바라는 천천히 복도를 가로질러 노이어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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