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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바라는 선루스 써드빌 기사단의 새로운 단장을 책상에서 맞이했다. 그녀가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다. 오즈월드는 바르바라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로 “안녕,”이라고 말했을 때에도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누군가 바르바라의 임신 사실을 알려준 것일 지도 몰랐다.

 “이름이 뭐니?” 

 바르바라가 서류를 작성하면서 물었다. 

 “오즈월드. 자네는?” 

 “바르바라야.” 

 바르바라는 작성한 서류를 서랍에 집어넣고는 다른 서류 한 장을 꺼내어 일을 시작했다. 

 “오즈월드… 오즈라고 부르면 되겠니?” 

 “편할 대로 하게.” 

 오즈월드가 사무실을 시선으로 훑는 게 느껴졌다. 단장의 사무실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단장의 책상 옆에 중간 사이즈의 책상을 두고 서류 작업을 하고 있는 바르바라의 근처는 다소 난잡했다. 한쪽에는 이미 작성한 서류가, 다른 한쪽에는 이제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뭉텅이로 쌓여있었다. 빈 잉크병이 책상 한쪽에 밀려있었고, 새 잉크병은 손을 휘둘러도 쏟지 않을 위쪽에 얹어져있었다. 선써드의 단장이 공석이 된 이후로 서류작업은 항상 손이 능숙한 자들이 돌아가며 맡고 있었지만 바르바라가 임신한 이후로는 모든 서류가 그녀의 손을 통해 전달되었다. 매번 들어오는 신입들이 그녀에게 인사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아왔다. 바르바라는 오즈월드 역시 그 신입들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새로 온 단장임을 알았더라면 그런 식으로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르바라가 급한 서류를 모조리 처리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오즈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그녀를 향했다가 빗겨나갔다. 바르바라는 손을 내려서 자신의 둥근 배를 감쌌다. 오즈월드는 창 너머로 보이는 써드해의 해변을 응시하다가 바르바라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바르바라는 작게 웃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게 물어보렴, 오즈.” 

 동시에 바르바라는 오즈가 새로 온 단장임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상냥한 어투로 대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사와 친근해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 

 바르바라가 임신한 것은 그녀가 스물두 살 때의 일이었다.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바르바라는 진심으로 괴로워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던 일이 일어나고 만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납작한 배를 내려다보면서 바르바라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거지. 그녀는 아직 낳지도 않은 아이가 끔찍했다.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선택으로 벌어진 결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의 존재가 저주처럼 느껴졌다. 임신을 하고 그 과정에서 맞이할 몸의 변화가 두려웠다.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그 무렵에는 타지아가 써드빌로 내려와 바르바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타지아는 바르바라의 임신 소식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바르바라는 해맑게 웃는 타지아의 얼굴을 볼 때마다 비틀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욕지거리를 하고 싶은 충동을 다잡느라 애를 썼다. 이 아이는 사실 잘난 네 약혼자의 아이야. 그런 말을 하면 타지아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바르바라는 늘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자신이 낳게 될 아이를 타지아를 욕보이게 만드는 수단으로 쓰고 그녀에게 온갖 상처를 안겨주고 떠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타지아를 보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임신초기에 바르바라는 타지아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을 넘나들며 자신의 충동과 분노를 다스리느라 진을 뺐다. 임신중반부터는 그럴 힘도 사라졌는데, 다름 아닌 몸의 변화 때문이었다. 바르바라는 정말로 자신의 내부에서 어떤 생명이 태동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고 거부감은 점점 심해졌다. 자주 구역질을 하거나 신경질을 부렸는데 곧이어 차분해져서는 평소의 말투로 상냥하게 떠들어대기도 했다. 그 무렵의 바르바라는 도무지 스스로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평생 스스로를 능숙하게 통제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그 퉁제력으로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스스로를 통제할 수가 없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인지하는 것뿐이었다. 

 검 대신 펜을 잡고, 대련장에 올라가는 대신 사무실에 앉아있기 시작한 것은 결과적으로 그녀의 그런 변덕을 다스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몸의 변화에 맞추어 환경을 가꾸기 시작하자 불현듯 몰려오는 분노와 좌절감도, 후회와 스스로에 대한 증오심도, 타지아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도 전보다 훨씬 능숙하게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래서 바르바라는 이 일련의 환경 변화를 ‘주저앉혔다’고 표현했다. 무거워지는 몸이 그녀를 의자에 주저앉혔다. 숨겨야 할 감정이 많아졌으므로 진심을 주저앉혔다. 출산을 상상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주저앉혔다. 바르바라는 출산이 기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차라리 낳다가 아이가 죽는다면? 혹은 낳기 전에 죽는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오즈월드를 처음 보았을 때에도 서류작업을 하면서 내내 그런 생각들을 했다. 모체에서 자발적으로 아이를 분해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들을 상상하면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게 물어보렴, 오즈 

 라고 말했다. 

 

 3. 

 오즈월드는 다음 날부터 단장의 사무실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 바르바라와 함께 서류업무를 시작했다. 바르바라는 오즈월드에게 몇 가지 간단한 지시사항을 알려주고는 본인 일에만 착수할 생각이었는데, 예상 외로 오즈가 기사단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기사단의 규모, 숙소의 빈 방의 갯수, 예산과 관련된 모든 것들… 관련된 서류가 있냐고도 물어보았다. 바르바라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천천히 몸을 움직여 서랍에서 장부를 꺼내고 관련 서류를 넘겨주었다. 오즈월드는 그것들을 받아 눈으로 살펴보았다. 

 ‘신참인 줄 알았는데.’ 

 바르바라는 생각했다. 

 ‘그냥 서류작업 거들어온 사무원인 모양이지.’ 

 그 오해는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바르바라는 오즈에게 자잘한 서류를 일방적으로 떠넘기거나 오즈의 이름을 부르면서 반말을 쓰고 이따금 그의 실수를 지적하며 은근하게 놀렸다. 가벼운 농담을 하다가도 갑자기 기분이 바닥을 쳐서 입을 다물기도 했다. 본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던 사무실에 고작 한 사람 늘었다고 변덕이 다시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바르바라는 날선 기분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오즈월드와 대화를 나누었다. 오즈월드는 대체로 바르바라보다 일찍 퇴근했다. 혹은 훨씬 늦게 퇴근할 때도 있었는데 그 때는 기사단의 장부를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바르바라가 대체 왜 오즈월드의 직위를 눈치 채지 못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스스로의 몸에 너무 많은 신경을 쏟느라 미처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해가 종식된 건 오즈월드가 선루스에 들어온 지 정확히 일주일 째 되던 날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같은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퇴근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두 사람을 자꾸만 돌아보았다. 그러다 주민들이 먼저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은 오즈월드를 보면서 도련님이라고 말했다. 바르바라가 얼굴을 찡그린 채 오즈월드를 올려다보았다. 오즈월드는 부정하지 않았다. 당황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그 호칭에 자연스러웠다. 바르바라는 기시감을 느꼈다. 그 기시감이란… 타지아와 타지아의 약혼자, 혹은 그녀가 살면서 마주친 이들의 권위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 기시감은 오즈월드의 발걸음이 써드성 방향으로 이어질 즈음에 선명한 사실이 되었다. 바르바라는 성으로 향하려고 인사를 나누는 오즈월드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말씀을 안 하셨죠?” 

 오즈월드는 오히려 바르바라의 반응에 당혹스러워했다. 

 “왜 갑자기?” 

 “잡일꾼인 줄 알았어요.” 

 “모르고 있었나?” 

 오즈월드도 바르바라 못지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표정을 갈무리하더니 적당한 텐션으로 돌아왔다. 

 “이제 알았으니 해결됐군.” 

 바르바라는 지난 일주일간의 대화를 빠르게 되짚어보았다. 오즈월드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바르바라가 날이 서있을 때에도 상대하지 않고 부드럽게 빠져나가는데 능숙했다. 비슷한 연배에서 오는 관록쯤으로 생각했는데 되짚어보니 도련님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성질과 더 가까웠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바라는 금방 표정을 갈무리하고 시선을 흘겼다. 

 “편하게 대했었는데.” 

 “나도 자네가 말을 높이는 게 어색할 다름이야. 여긴 원래 다 그런 줄로만 알았지.” 

 “농담하지 마시길.” 

 그런 후 바르바라는 배에 손을 얹었다가 힘을 주어 아래로 쓰다듬었다. 습관이었다. 그것은 보듬는다기보다 이대로 그 속에 담긴 존재가 뭉개지기를 바라는 것에 가까웠다. 

 “한 번 더 이런 농담을 들었다간 제 아이가 주저앉아버리겠어요.” 

 바르바라가 이죽거렸다. 

 “이런,” 오즈월드가 바르바라의 농담 같지 않은 말에 짧게 대꾸했다. 

 “사과해야 하는 건가?” 

 “농담은 정말 그만두시는 게 좋겠네요.” 

 바르바라가 단호하게 대꾸하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 

 “도련님이라고 불러드려요?” 

 “오즈라고 불러도 좋아.” 

 오즈월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바르바라 네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편하게 대해도 좋다는 말이야.” 

 “아하,” 

 바르바라는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리며 지난 날 자신의 행적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오즈, 이것 좀 해줘. 오즈, 좀 빨리 처리해줄래? 오즈, 손이 느리구나…, 오즈, 괜찮아. 이건 내가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게. 바르바라는 되짚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럼, 오즈.” 

 바르바라는 고개를 들어 오즈월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일 사무실에서 보자.” 

 “조심히 들어가게.” 

 오즈월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미약하게 내려서 바르바라의 배를 응시하다 올라왔는데 어쩌면 그건 바르바라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임신한 이후로 바르바라는 자신을 향한 모든 걱정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아이의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주 느리게 걸으면서, 바르바라는 노을에 물든 오즈월드의 금발과 한 쌍의 푸른 눈을 떠올렸다. 오즈월드를 그런 식으로 올려다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러고보니 얼굴 하나는 잘생겼었지. 귀족들은 원래 얼굴도 타고나는 건가. 적어도 바르바라가 만나온 귀족들은 하나같이 출중한 얼굴이었고 오즈월드는 그 중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뜯어보면 오즈월드의 모든 것들이 귀족적인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도 바르바라는 전혀 알아보지 못 했다. 심지어는 오즈월드를 올려다보게 된 그 순간에조차 오즈월드가 자신과 너무 먼 사람이라기보다 생각 이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 이유를 고민하면서 바르바라는 느리게, 아주 느리게 집으로 돌아왔다. 

 

 4. 

 바르바라는 ‘편하게 대하라’는 오즈월드의 말을 지켰다. 다음 날 책상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서류업무를 하면서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바르바라는 그를 여전히 오즈라고 불렀고, 편한 어투를 선호했으며 경어를 쓰지 않았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 드나들었다가 때때로 사적인 이야기들이 튀어나왔고 그럴 때면 대화는 몸집을 불렸다. 바르바라는 오즈월드가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느긋하면서도 일처리에 허술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바르바라에게 관심이 없었다. 바르바라의 임신에 대해서도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출산 이후 벌어질 일들을 “아이가 아주 예쁠 것”이라던가 “건강하게 낳을 것”이라던가 “영특한 아이일 것”이라는 말로 축복하지도 않았다. 그는 필요한 일을 했고 이따금 내키지 않을 때만 바르바라에게 떠넘겼다. 바르바라는 기꺼이 그 일들을 해주었다. 오즈월드의 서류업무는 할 수 있는 한 자신이 해결했다. 돌이켜보자면 알렉스 레밍턴의 고통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예견되어 있었는데, 순전 바르바라가 오즈월드의 버릇을 잘못 들여놓은 탓이었다. 물론 바르바라가 그 일을 유감스럽게 생각한 적은 없다. 어차피 본인이 그 뒤로 오즈월드의 사무실에 앉아 있을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알렉스가 서류더미 속에서 고통 받고 있을 때 바르바라는 아마 한두 번쯤은 농땡이를 치는 오즈월드에게 가벼운 농담을 하거나 그와 함께 슬그머니 기사단 본부를 빠져나와 갈림길로 빠져보았을 것이다. 

 첫 태동을 느꼈을 때, 바르바라는 책상을 거의 발로 찰 뻔했다. 오즈월드의 앞에서 거의 욕지거리를 할 뻔했다. 그녀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다 말고 손바닥으로 그 위를 덮었다. 갑자기 들썩이다가 조용해진 바르바라의 낌새를 이상하게 생각한 오즈월드가 고개를 들었다. 바르바라는 표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냥 그 자리에 뺨을 대고 엎드렸다. 오즈월드가 바르바라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반대방향으로. 

 “무슨 일이지?” 

 “아무것도.” 

 바르바라가 책상에 얼굴을 붙인 채 조금 웅얼거리는 투로 대답했다. 

 “개인적으로 끔찍한 일이었을 뿐.” 

 “몸이 안 좋은가?” 

 오즈월드는 바르바라가 몸을 엎어놓은 것에 대해 그렇게 물었다. 바르바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오즈월드를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겁에 질린 표정을 지우고 탐색의 시선을 하면서 대답했다. 

 “아니, 아니야, 오즈… 그냥 내 안의 그게 좀 움직였을 뿐이야.” 

 바르바라는 아이를 그것이라고 불렀다. 오즈월드가 무언가 말하려는데 바르바라가 제지하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넌 모르겠지만, 이런 일들이 끔찍한 사람도 있어.”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아이를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는 게 아니라, 오즈월드에게 신경질을 부리거나 날을 세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였다. 바르바라는 오즈월드와의 거리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선을 넘는 건 스스로 판단했을 때 무척이나 멍청한 짓이었다. 바르바라는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해놓고도 말을 그런 식으로 뱉었다. 넌 모르겠지만. 

 바르바라는 고개를 들고 서류를 제 앞으로 끌어왔다. 

 “미안… 이제 일하자.” 

 바르바라는 빠르게 수습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오즈월드의 책상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서류 소리를 냈다. 바르바라는 시선을 내리깔고 깃펜을 힘주어 쥐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 수치를 느꼈다. 임신을 하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자신을 통제하지 못 하고 휘둘리는데서 오는 수치와 분노와 무력감이었다. 정작 남들이 보기에 바르바라의 모든 동요는 미약하게 외부로 표출되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녀는 잘 해내고 있는 것이었을 테지만, 어쨌거나. 

 이런 일들이 끔찍한 사람도 있어. 

 맞는 말이다. 

 그렇기에 바르바라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오즈월드와 함께 앉아 업무를 보았던 그 무렵을 상기했다. 그리고 변덕이 극심하게 바르바라를 공격하던 그 시기의 오즈월드가 과연 바르바라의 날선 태도를 어떤 식으로 피하고 관여하지 않았는지를 되짚어보고는 했다. 

 

 5. 

 섬에서 돌아온 직후에 바르바라는 보고를 올리기 위해 오즈월드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런 후 한동안 그곳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고 해변을 걷거나, 숙소에 머물거나,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정도 머릿속이 정돈되고 선명해졌을 무렵부터 자신이 미루어 둔 할 일을 돌보기 시작했다. 바르바라는 기사단을 돌아다니며 후배 기사들을 격려하고 올바르게 사고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한산한 대련장에 쓰러진 무기들을 정리하고 바닥을 쓸었다. 숙소의 방을 정돈하고 쓰레기를 비웠다. 오즈월드의 사무실이 떠오른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그녀는 오즈월드의 책상 옆에 다시 책상을 놓을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알렉스 레밍턴은 그 섬에서 돌아오지 못 했기 때문이다. 오즈월드가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을 것을 바르바라는 알고 있었다. 그가 혼자 서류업무를 처리하지 못 할 거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오즈월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본 적도 없고, 같은 귀족도 아니고, 특별한 사건이 강렬하게 남아있지도  않았지만 바르바라는 오즈월드라는 사람을 적어도 ‘단장’이라는 직위의 영역 내에서는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사실 더 알고 있다고 대답할 수도 있었다. 칠 년은 그 정도 대답하는 게 민망하지는 않을 만큼의 시간이었고 바르바라는 애초부터 그를 기사단장으로만 대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바르바라는 써네스 섬에서 귀환한지 세 달이 다 되어갈 무렵 책상을 들고 오즈월드의 사무실에 나타났다. 오즈월드는 신경질적인 얼굴로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바르바라에게 제대로 인사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바르바라는 오즈월드가 무척이나 바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좀 더 일찍 오는 편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사단에 일이 생겼을 때, 서류작업에 공석이 생겼을 때, 오즈월드가 없다면 그 일은 선써드의 고참들에게 돌아갔고 다시 말해 그 일의 대부분은 바르바라가 해결했다. 좀 더 일찍 오는 편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고쳐야 했다. 어쨌든 그녀는 그 누구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민망할 만큼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온 사람이었다. 십일 년이라면 무기력함에 조금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바르바라는 말없이 오즈월드의 책상 옆에 자신의 책상을 놓고는 오즈월드 앞에 섰다. 오즈월드는 뒤늦게 바르바라에게 아는 체를 했다. 

 “왔나?” 

 오즈월드는 ‘무슨 일인가?’라던가 ‘도와주려는 건가?’라고 묻는 대신 ‘왔나?’라고 말했다. 바르바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부터 하면 되니?” 

 오즈월드는 바르바라에게 서류뭉치를 넘겨주었다. 

 두 사람은 익숙한 것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업무를 보았다. 이따금 오즈가 바르바라의 책상을 넘어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건 순전히 새 서류뭉치를 넘기기 위함이었다. 두 사람은 평소처럼 일했고 평소처럼 대화했지만 바르바라는 미묘하게 침체되어 있었고 오즈월드는 날이 서있었다. 

 서류는 정말 끔찍할 정도로 많았다. 기밀로 부쳐야 하는 게 많았으므로 바르바라가 전부 처리할 수는 없었다. 오즈월드가 세 달 간 대체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왔는지가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돌아오지 못 한 단원들의 실종에 괴로워 할 시간 같은 게 있기는 했을까? 바르바라는 오즈월드와 같이 자신의 영역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남에게 시선을 주기보다 자신의 내부를 살피는 게 더 적성에 맞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괴로웠다. 십일 년의 이력은 그녀에게 책임을 묻게 만들었다. 괴로운 자신을 느끼고, 그것을 인정하고, 머리를 비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오즈월드는 어떠한가. 그는 단장이다. 원하지 않아도 책임을 물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바르바라 역시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죄책감을 맞이했듯이. 

 하지만 그런 걸 구태여 입으로 내뱉어서 위로하지는 않겠어. 바르바라는 생각했다. 나는 내 할 일을 하면 그만이다. 

수도에서 또 다른 왕명이 내려오기 전까지 바르바라는 오즈월드의 옆에 붙어서 어마어마한 분량의 서류를 처리했다. 이따금 오즈월드가 외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지역으로 건너가 선루스 기사단끼리 집합을 하거나 써드성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일이 생겼을 때의 일이었다. 그런 때에 바르바라는 그를 기다리면서 사무실을 정돈하고 어지러운 책상을 치우고 서류를 묶어서 깔끔하게 나열했다. 서재의 먼지를 털고 커튼을 빨고 헐거워진 의자를 교체했다. 오즈월드는 얼마 뒤에 돌아와서는 또다시 서류더미에 파묻혀야 했는데 바르바라는 처음으로 그가 좀 측은하게 느껴졌다. 오즈월드가 날이 서있기는 했어도 대체로 평소와 같이 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외부적 상황이 변했을 때 평소처럼 굴기 위해서는 얼마큼의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상황이 자신을 주저앉혔을 때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얼마큼 신경을 써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으로부터 자신의 통제권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사흘 간 자리를 비웠던 오즈월드가 돌아왔을 때, 바르바라가 그의 얼굴에 드리운 피로를 눈치 채고는 말을 걸었다. 

 “표정이 나쁜 걸.” 

 “개인적으로 골치 아픈 일이 있었을 뿐.” 

 “몸은 좀 괜찮니?” 

 “말이라고 하나.” 

 오즈월드는 사무실로 들어오다 말고 자신의 책상에 가지런히 쌓인 서류더미를 보고는 표정을 굳혔다. 바르바라가 깔끔하게 정돈해놓은 것이었지만 그런 식으로 쌓아올려진 서류더미는 어지럽혀졌을 때의 그것보다 훨씬 방대해보였다. 

바르바라는 곁눈질로 오즈월드의 시선을 따라가며 말했다. 

 “내가 열어볼 수 없는 서류가 많더라.” 

 “내 업무가 늘어났다는 말이로군.” 

 오즈월드가 질색했다. 

 “원한다면 도와줄게, 내가 볼 수 있는 부분은 따로 떼어놔. 지금은 내가 열어볼 수가 없어서 전부 올려놨지만.” 

 “안 그래도 그렇게 할 작정이었어.” 

 오즈월드는 그렇게 말해놓고는 창밖을 응시하다 말고 별다른 말없이 다시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문이 쾅 닫히면서 생긴 바람이 바르바라의 앞머리를 흔들었다. 바르바라는 동요 없이 앉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서류를 처리했다. 오즈월드는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다가 밤이 될 무렵에 나타나서는 외투를 한쪽에 벗어던지고 책상에 앉았다. 그러고는 아까의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곧장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바르바라도 구태여 그런 것들을 묻지는 않았다. 오즈월드의 변덕이나 날 선 감정들을 능숙하게 피하고 관여하지도 않았다. 

 바르바라의 균열이 오밤중에 그녀를 바다로 이끌었던 것에 반해, 오즈월드는 자신의 균열에 몸을 휘둘릴 새도 없이 외부의 부름을 받고 시도 때도 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두 사람 모두 이 모든 일에 명백한 내적 변화를 겪었지만 바르바라는 그 변화에 휘둘릴 만큼 자신을 버려둘 여유가 있었다. 오즈월드는 아니었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란스러운 일들에 오즈월드의 의지는 단 한 줌도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자신이 임신했을 때를 떠올렸다. 아이를 가지게 된 것, 아이를 뱃속에 넣고 길러온 것에 바르바라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임신했을 때 자신의 몸이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무거웠으며 매순간 벌어지는 일들이 그녀의 자제력을 시험했는지를 기억했다. 오즈월드가 그 시절을 함께 보내주었다는 것 역시 기억했다. 바르바라는 오즈월드의 지금이 그 때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게 있다면 서로의 입장이 뒤바뀐 것뿐이었다. 오즈월드의 짜증과 변덕을 처리하는 일이 두렵지 않았다. 그런 건 그녀에게 흠집을 낼 수 없었다. 

 

 6. 

 지금쯤이면 나의 고향에 이른 눈이 내릴 거야, 라고 바르바라가 사무실 바깥을 응시하며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정말로 켈커스에는 이른 눈이 내렸다. 한편 몬테나에 동부에 드로키스의 병사들이 말을 끌고 등장했다. 바르바라는 전쟁이 정말로 일어날 것인지를 점쳐보면서 서류를 써내려갔다. 써드빌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으므로 저녁이 일찍 오는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점쳤다. 해가 질 무렵 바르바라는 커튼을 치고는 자리에 돌아왔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바르바라가 중얼거리자, 오즈월드가 다소 딱딱한 어투로 대답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이다. 

 “사방이 칼날로 만든 길이지.” 

 “기밀서류가 갈수록 늘어나네.” 

 “나를 가만 둘 생각이 없으니.” 

 “섬에 남은 이들, 다 죽었을 거야, 그렇지?” 

  바르바라가 그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을 꺼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서류를 작성하던 오즈월드의 깃펜이 조금 좌측으로 꺾였다. 바르바라는 오즈월드의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을 시선으로 흘겨보았다. 

 “그 애들의 죽음도 기밀이 되니?” 

 “바르바라.” 

 오즈월드가 냉담하게 대꾸했다. 

 “알고 있는 걸 구태여 나에게 묻지 마.” 

 “구태여 물어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야, 오즈.”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돈이…,” 

 바르바라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다음 말을 내뱉기까지 꽤 힘겨워했으나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뜸을 들이는 시간도 아주 짧았다. 

 “…보수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 그것뿐이야.” 

 임무가 기밀이 된다면 보수금은 어떻게 되는가. 출정할 때 들어간 비용과 출정 이후 돌아온 절반의 사람들이 근근이 메꾸고 있는 비용은 어떻게 되는가. 장부는 몇 달 전부터 힘겹게 숫자를 이어오고 있었고 바르바라는 감정적이고 인도적인 문제를 한쪽으로 치워놔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직시했다. 그녀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바르바라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깃펜을 쥔 손이 다소 창백했다. 

 오즈월드는 잠시 침묵했다. 

 “그래, 곤란한 문제지.” 

 오즈월드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써야 할 문제야. 곧 한 번 더 알아보도록 하지.” 

 “고마워.” 

 바르바라는 속으로 소용돌이를 삼켜버린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외부의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바르바라와 오즈월드는 지면을 통해 전쟁의 징조를 가장 먼저 접한 사람들이었다. 그 무렵 바르바라는 마음을 정리하고 차분함을 되찾은 상태였으므로 냉정하게 앞으로의 상황을 분석해볼 수가 있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기사단들은 징발될 것이고 아마도 오즈월드 역시 바르바라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수도로 가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들 어떻게 될까. 바르바라는 자신의 검술을 되짚어 볼 수밖에는 없었다. 사람을 베어내게 될까? 죽게 될까? 

 바르바라는 서류를 넘기며 오즈월드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즈, 정말로 전쟁이 다가오니?” 

 오즈월드가 부드럽게 서류를 넘기며 대답했다. 

 “응. 바르바라. 바로 네 뒤에 있어.” 

 “너를 따르게 되겠구나.” 

 바르바라가 덧붙였다. 

 “단장으로서.” 

 “그렇게 되겠지.” 

 “난 존경심도 충성심이 없는 걸.” 

 기사감은 아니지, 라고 중얼거리며 바르바라가 덧붙였다. 

 “참, 그거 아니? 난 이곳에서 네가 뽑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란다.” 

 오즈월드는 말없이 서류를 넘기다 말고 느닷없이 고개를 들어 바르바라를 바라보았다. 바르바라가 그 시선을 똑바로 받아쳤다. 두 사람은 키 차이가 많이 났지만 앉아있으면 눈높이가 엇비슷해서 그 누구도 고개를 들거나 숙이지 않아도 되었다. 오즈월드와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바르바라는 이 눈높이에 익숙했다. 올려다봄으로써 그를 더 낯설게 만드는 것들-귀족적인 외모, 여유로움에서 오는 능청스러움과 자애 따위를 체감하는 일보다 비슷한 눈높이에서 오즈월드의 인간성을 목격하는 일이 더 익숙했다. 칠년 간 바르바라가 오즈월드를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가. 오즈월드가 어째서 귀족 출신의 상사임에도 그렇게까지 멀게 느껴지지 않았는지를 고민하며 돌아오던 언젠가의 그 날 바르바라는 결국 어떤 판단을 내렸는가. 명확하게도 바르바라는 오즈월드를 또래의 친구 비슷한 것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난 반 년 간 다시 그의 사무실을 지켜준 것은 상사의 명령을 지키는 부하가 아니라 친구끼리의 그것에 가까웠다. 

 “전쟁은 충성과 존경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 

 오즈월드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써드빌의 도련님에게 충성하거나 존경을 표하지 않는다한들 전쟁이 벌어진다면 바르바라나 다른 사람들에게 선택지는 없을 것이었다. 세상에는 개인의 감정과 통제력으로는 도무지 막을 수 없는 재앙이 존재하는 법이다. 

 “오, 오즈. 오즈.” 

 내가 어쩔 수 있겠니. 바르바라가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나는 너와 나를 묶을 때 ‘우리’라는 단어를 쓴단다.” 

 오즈월드의 사무실에서 책상을 덜어내는 게 언제쯤일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종국에 ‘우리’ 두 사람은 써드빌을 떠나게 될 것이었고 바르바라의 상상 속에는 결국 두 개의 책상이 그대로 남겨진 사무실 풍경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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