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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내기 길리언이 목검을 쥐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대련장이 훤히 보이는 위치에 쌓인 나무판자 탑 위에 올라가 앉아있었다. 덩치가 큰 기사들이 진작부터 앞으로 치고 나와 대련장 아래에 촘촘히 모여 서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근처에 포진하여 대련을 관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손바닥으로 차양을 만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강렬했고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번 신입의 첫 검술 대련식은 멋진 하늘과 풍광을 배경으로 기억될 것이다. 바르바라의 대련식 때에는 비가 내렸다. 

 대련장에 올라온 길리언의 상대는 어깨가 길리언의 두 배만했다. 그림자가 길리언을 통째로 덮었다. 길리언은 상대의 덩치를 확인하고는 쥐고 있는 목검에 힘을 주었다. 바르바라는 몸을 숙이고 대련장을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 길리언 쪽이 대답하는 것 같았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의 움직이는 입모양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대련장에 올라왔던 덩치가 내려오고 구경꾼들이 전부 고개를 들었다. 그들전 부가 두리번거리다 말고 바르바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르바라는 허리를 펼치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 능청을 떨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들 보시나 몰라….” 

 “난나, 내려와.” 

 덩치가 말했다. 

 “네 땅에서 온 녀석이야.” 

 길리언이 켈커스 출신이라는 소리였다. 

 바르바라는 상자에서 뛰어내린 후에 느긋하게 대련장으로 올라왔다. 검을 잡으면서 생각했다. 그 추운 땅을 떠나온 지 이제는 거의… 10년도 넘었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켈커스는 그녀의 땅이라고 불린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의 목검 날에 자신의 목검 날을 대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길리언은 긴장된 표정으로 바르바라를 훑어보았다. 바르바라는 자세를 고치지 않고 서서 길리언이 자신을 충분히 파악하고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기다렸다. 길리언은 바르바라를 오래 쳐다보지 않았다. 곧이어 검을 고쳐 잡더니 인사했을 뿐이었다. 

 “잘 부탁드려요.” 

 “그래, 신입.” 

 바르바라는 목검을 시험 삼아 흔들면서 뒤로 물러났다. 발뒤꿈치에 걸리는 허공이 느껴졌다. 바르바라에게는 물러날 공간이 얼마 없었다. 반면 길리언에게는 대련장의 3분의 2정도 되는 공간이 있었다. 처음 올라올 때부터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진지하게 할 생각도 없었다. 바르바라가 길리언에게 패배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길리언이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들어왔다. 지나치게 정직하고 무거운 움직임이었다. 바르바라는 고개를 숙여 검날을 피했다. 그러고는 옆으로 발을 쭉 뻗어서 길리언의 사정거리로부터 벗어났다. 길리언은 잠시 주춤거리다가 다시 바르바라의 방향으로 검을 찌르고 들어왔다. 둔중한 공격이었지만 허술했다. 바르바라는 짧게 뒤로 스텝을 밟았다가 다시 옆으로 이동했다. 이따금 길리언이 목덜미 쪽을 노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바르바라는 발을 굴러 점프를 하거나 허리를 숙여 공격에서 벗어났다. 기사의 품위가 느껴지기보다는 검을 오래 잡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유연한 꼼수 같은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런 식으로 대련장을 반 바퀴 돌았다. 바르바라는 지나치게 건성으로 하고 있었고 길리언은 지나치게 열심히 하고 있었다. 바르바라의 태도 때문에 길리언의 몸짓이 더욱 도드라졌다. 구경꾼들이 와와 박수를 치며 바르바라와 길리언을 번갈아 부추겼다. 바르바라는 검을 쥔 채 고개를 쳐들었다가 천천히 팔을 내리고는 길리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디서 왔어?” 

 “제 고향에 대해 물으시는 건가요?” 

 “그래, 네 땅에 대해서.” 

 길리언은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헐떡였다. 

 “킬케니에서 왔어요.” 

 “어딘지 알겠어.” 

 바르바라가 중얼거렸다. 

 “그곳의 언덕을 알고 있어.” 

 그런 후 처음으로 바르바라가 덤벼들었다. 

 길리언이 넘어졌을 때, 바르바라는 대련장을 내려가려고 진작부터 방향을 틀고 있었다. 하지만 길리언이 고개를 번쩍 쳐드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바르바라는 길리언 쪽으로 되돌아와서 손을 내밀었다. 길리언은 바르바라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고마워요.” 

 “바르바라 체사레야.” 

 “길리언 아든이에요.” 

 “알고 있어.” 

 바르바라는 모든 신입의 이름을 기억한다. 

 “다들 날 난나라고 부르지만 너는 좋을 대로 하렴.” 

 “애칭인가요?” 

 바르바라는 고민하다가 비웃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응.” 

 “그렇군요.” 

 길리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바르바라는 뒤늦게 길리언이 켈커스 땅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상기했다. 길리언이라면 난나의 뜻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련장을 벗어나는데 길리언이 계단을 뛰어내려오더니 바르바라의 등 뒤에서 물었다. 

 “아까 그거 어떻게 했어요?” 

 길리언은 바르바라의 마지막 공격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었다. 혹은 대련장을 빙빙 맴돌며 시간을 벌었던 여유로운 꼼수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바르바라는 고개를 돌려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길리언을 응시하다 말고 다시 고개를 돌려 앞서서 걸어 나갔다. 길리언은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쫓아왔다. 

 “네?” 

 바르바라는 으음, 하고 고개를 젖히고 말끝을 흐리다 대답했다. 

 “그냥… 감?” 

 “감이요?” 

 “너도 언젠가는 하게 될 거야.” 

 정식 검술을 배우지 않은 채로 오래 검을 잡고 있던 평민들은 보통 바르바라와 같은 꼼수를 쓰고는 했다. 바르바라는 많은 꼼수를 쓸 수 있었다. 써드빌에 10년 이상 머물면서 체득하고 쌓아올린 관록이었다. 바르바라 정도의 짬을 먹게 되면 분명 길리언도 바르바라와 같은 검을 휘두를 것이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길리언은 바르바라의 대답에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그녀를 쫓아왔다. 그러더니 검술을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대련 상대가 되어주세요.” 

 바르바라는 정말 귀찮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켈커스 출신이라고 하면 어김없이 돌아보게 된다. 바르바라의 습성 같은 것이었는데, 스스로 오래 전에 그 땅을 떠나왔음에도 그곳에 남기고 온 것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향수병과는 조금 달랐다. 애틋하기보다 회한이 흘러넘쳤다. 돌아갈 마음은 없었지만 그곳에서 비롯된 흔적을 지속적으로 마주치고 자신의 안에 깃든 무엇인가를 상기시키고 싶었다. 써드빌은 최남단이고 켈커스는 최북단에 위치한 곳이었으므로 바르바라는 기사단에 입단하고부터는 켈커스의 조각들을 자주 마주칠 일이 없었다. 길리언은 그녀가 오랜만에 마주친 조각이었다. 추운 바람과 설산, 쌓여있는 눈의 반짝임에 길들여진 소년이 이곳까지 내려온 이유가 무엇일지가 궁금했다. 길리언이 켈커스 출신이 아니었더라면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을 가르쳐보기로 결심했다. 

 검술을 제대로 가르쳐주겠다고 마음먹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바르바라는 헤일리 이후로는 누군가를 책임지고 검술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누군가 부탁하면 무조건 귀족 출신의 기사들에게 떠넘겼다. 헤일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제자가 될 줄 알았는데. 하지만 길리언을 가까이 두고 보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길리언을 가르치는 일이 헤일리보다 힘들지도 않을 것이다. 바르바라는 헤일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스스로 공부해 귀족적인 검술을 터득했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는 재미있던 만큼 힘에 부치는 일들이 많았다. 스스로에게 노력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길리언에게 그런 검술을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었다. 바르바라가 길리언에게 가르쳐줄 것은 꼼수였다. 흔히 야매검술이라고 불리는 것 말이다. 촘촘하게 쌓아올린 관록을 양피지처럼 펼쳐놓고 하나하나 읊어가면서 자신이 몸으로 부딪히며 배워온 것들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길리언은 자주 넘어졌다. 자주 목검을 놓쳤다. 자주 비틀거렸다. 

 길리언이 배우는데 꿈 뜬 학생이라는 건 얼마 가지 않아 밝혀졌다. 진도가 너무 느렸다. 길리언은 걸핏하면 실수를 남발하거나 빈틈을 보였다. 그러지 않으려고 어느 정도 노력은 했지만, 바르바라는 결국 우수했던 자신의 첫 제자를 떠올릴 수밖에는 없었다. 헤일리 때에는 이런 고생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헤일리는 한 번 알려주면 유심히 살펴보고 덤벼들어서 기어코 그 날 모든 것을 배워갔다. 길리언과는 달랐다. 헤일리는 영특했고 필요할 때에는 영악했지만 길리언은 첫날 보여준 그대로에서 조금씩 나아갔을 뿐 다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순진하거나 투명하거나 아둔했다. 하지만 근성이 있었다. 헤일리보다 칭찬해주고 싶은 길리언의 장점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바르바라는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길리언의 올곧은 눈, 빛나는 얼굴,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는 두 다리를 훑어보고는 다시 검을 잡았다. 바르바라. 길리언은 항상 그녀를 이름으로 불렀다. 오늘도 잘 부탁드려요. 그런 후에 덤벼들었다가 다시 넘어지기 일쑤였다. 바르바라는 매번 길리언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워주면서 무릎을 흘끔거렸다. 상처가 늘어나는데 왜 실력은 이렇게 더디게 나아갈까? 바르바라는 다시 헤일리 때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이 조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이 브루넷인데다가 녹안이었다. 얼굴에 나란한 점도 가지고 있었다. 바르바라의 첫 번째 두 번째 제자들은 그런 식으로 조금씩 외모부터 풋내기였다는 지점까지 닮아있었는데 정작 내적인 부분에서만큼은 공유되는 공통지점이 없었다. 헤일리에게는 정석적인 귀족의 검술을 가르쳐놓고 길리언에게는 꼼수를 가르치고 있는 현 상황이 암시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길리언은 자신의 제자가 될 흐름을 타고났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바라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의 검술을 두 사람에게 각각 나누어 가르쳤으니, 길리언은 정말로 바르바라의 마지막 제자가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 그랬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을 반 년 정도 가르쳤다. 길리언의 더딘 솜씨가 그의 검에 녹아들 때까지 참을성을 가지고 인내했다. 하지만 가르친 지 세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에는 진지하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그 때 한 말… 정정할게.” 

 “어떤 말이요?” 

 “너도 언젠가는 하게 될 거라는 말.” 

 바르바라는 목검을 내리고는 다른 한손으로 길리언을 일으켰다. 바닥에 엎어져있던 길리언이 작게 신음하면서 두 다리를 반듯하게 세웠다. 이마를 타고 투명한 땀방울이 후드득 떨어져 바르바라의 손등에 튀었다. 바르바라는 시선으로 손등 위에 맺힌 길리언의 근성을 내려다보다 말고 어깨를 으쓱였다. 

 “너는 이런 방식이 무리일 지도 모르겠구나.” 

 길리언은 별로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길리언은 침착한 눈으로 바르바라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럼 그건 바르바라의 방식이었겠네요.” 

 바르바라의 방식이란 무엇일까. 유연하거나 재빠른 것. 약삭빠르고 영악한 것. 크게 힘들이지 않고 여유를 부리면서 상대의 빈틈을 찌르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그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라면 바르바라의 방식이 아니라 켈커스의 방식이라도 해도 좋았다. 척박한 땅에서 온 자들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상기하고 있었다. 눈 아래에는 바스러진 풀과 나무의 뿌리가 단단히 움켜쥔 대지가 숨어있고, 어두운 숲속에는 굶주린 들짐승들이 어슬렁거렸다. 사기꾼들이 돌아다니고 사냥꾼들이 날고기를 씹어댔으므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몇 세대에 걸쳐 내려온 으스스한 괴담을 들려주며 바깥의 위험을 상기했다. 그런데 길리언이라면 그 모든 걸 알고 있었을 텐데도, 왜 하필 켈커스의 방식이 아닌 바르바라의 방식인가. 대련장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바르바라는 그 점을 몇 번이고 곱씹어보았다. 

 

 얼마 뒤에 대련장으로 올라온 바르바라는 길리언에게 무거운 목검을 던지고는 본인이 가벼운 검을 쥐었다. 그전까지는 길리언에게 더 가벼운 검을 주었다. 길리언의 몸동작이 굼떴기 때문이다. 검이라도 가벼우면 조금 달라질까 싶어 선택한 사항인데 그날만큼은 무거운 검을 쥐게 하고 길리언에게 직접 감상을 물었다. 

 “어때?” 

 길리언은 시험 삼아 무거운 목검을 몇 번 휘둘러보더니 별 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 하겠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손에 감기는 느낌이 조금 다르지만 비슷해요.” 

 “그러니.” 

 그런 후 두 사람은 대련을 시작했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이 공격을 하도록 내버려두면서 가볍게 움직였다. 길리언을 대련장 중앙으로 유도하면서 뒤로 물러났다가 옆으로 빠지기를 반복했다. 길리언은 조금 혼란스러워했다. 그전까지는 바르바라가 찌르고 들어오면 길리언이 지금의 바르바라가 하는 것처럼 스텝을 밟으며 유연하게 도망치는 것을 훈련 중이었는데 오늘의 대련에서는 모든 게 반대였던 것이다. 마치 두 사람의 대련 첫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바르바라가 왜 그렇게 넋을 놓고 있냐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네? 길리언이 다소 얼빠진 얼굴로 되묻는데, 대뜸 바르바라가 맥락도 없이 내뱉었다. 

 “내 방식을 써보고 싶다고 했지?” 

 다음 순간, 바르바라의 눈이 가늘게 뜨이더니 검이 길리언의 옆구리 사이를 찌르고 들어왔다. 길리언이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재빨리 물러났다. 

 “지금 일부러…,” 

 빗나가게 한 건가요? 바르바라는 대답 대신 다시 한 번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각도였다. 길리언이 펄쩍 뛰었다. 놀랍도록 가볍고 재빠른 스탭이었다. 바르바라가 첫날 보여주었던 바로 그 스탭. 길리언은 주춤거리며 물러나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 자신이 해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제가 방금…,” 

 그러나 다음 순간 바르바라가 반 바퀴를 돌며 검을 쳐들었다. 강한 스윙으로 공격을 가하려는 폼을 취했다. 길리언이 얼결에 자신의 무거운 검을 들어 얼굴을 가로막았다. 목검이 정통으로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길리언은 그 상태에서 바르바라의 검을 밀어냈다. 정통으로 받아친 공격이 그 힘에 떠밀려 뒤로 후퇴했다. 그런 방어 형태는 바르바라가 가르쳐준 적 없는 방식이었다. 빈틈이 많았으나 솔직하고 올곧은 몸짓이었다. 1:1에서 이런 방어에 튕겨져 나온다면…. 생각이 거기서 끊어졌다. 바르바라는 자신의 손이 허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를 돌아 대련장을 확인했더니 바닥에 자신의 검이 떨어져있었다. 

 길리언이 헐떡였다. 

 “제가… 이긴 건가요?” 

 바르바라는 숨을 고르느라 잠시 뜸을 들였다. 

 “그래.” 

 길리언의 얼굴을 타고 기쁨과 성취감이 흘러넘쳤다. 바르바라는 다시 고개를 돌리다 말고 그 얼굴과 정통으로 마주했다. 속수무책으로 그 감정에 압도당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그녀는 동요하지 않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길리언과 거리를 두었다. 그런 후 길리언 역시 자신의 제자라는 것을, 그리하여 제자를 들이고 가르칠 때마다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이러한 순간들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만끽했다. 길리언에게 잘해왔노라고 격려해야했다. 그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야했다. 그러나 바르바라는 그렇게 하는 대신 길리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정수리를 향해 손을 올렸다가, 천천히 거두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를 애송이로 취급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바르바라는 손바닥을 넓게 펼쳐 길리언의 허리를 툭 하고 가볍게 쳤다. 길리언이 바르바라를 내려다보았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켈커스 땅에서나 볼 수 있는 녹색을 떠올렸다. 진한 색깔의 키가 크고 뾰쪽하게 솟아난 풀들을. 그런 풀들이 부드러운 눈에 덮여서 자취를 감춘다. 두 사람은 그런 땅에서 왔다. 그러나 길리언은 날카로운 것을 눈 속에 숨기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그대로 보여준다. 많은 것을 부드러움 속에 숨기고 있는 바르바라와는 다르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을 보면서 여명이 밝아오는 전나무 숲을 떠올렸다. 빛이 터 오르고 모든 것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길리언의 방식은 언젠가 바르바라가 숨기고 있는 것을 파헤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바르바라가 공들여 쌓아놓고 결단코 녹이지 않을 거라 마음먹은 만년설을 기어코 녹이고는 그 속의 날카로운 풀을 들춰내어 밟고 걸어갈 것이라는 예감이. 바르바라는 자신의 검이 멀리 날아가 버린 것을 상기했다. 길리언이 길리언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대응했을 때, 자신은 결국 패배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바라가 물었다. 

 “난나의 뜻을 알고 있어?” 

 길리언은 바르바라를 똑바로 내려다보면서 대답했다. 

 “네, 알고 있어요.” 

 바르바라는 길리언으로부터 떨어졌다. 그러고는 검을 줍기 위해 대련장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길리언이 그녀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별다른 말없이 숙소까지 함께 걸었다가 짧은 인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길리언이 바르바라에게만 검술 지도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도 대련하면서 이런 저런 충고를 듣고 연거푸 폼을 고쳤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이 자신과 대련하는 매순간 자신이 알려주지 않은 방식을 시도해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의 방식을 흉내 내려는 길리언을 제지하고 좌절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길리언은 그런 것들에 서툴렀다. 바르바라가 길리언에게 흔들리는 순간은 언제나 길리언이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들 때 찾아왔다. 길리언이 길리언의 방식을 자신도 모르게 발휘하는 순간이 그 때였다. 올곧게 치고 들어오거나 올곧게 막아서는 방식에는 꼼수가 통하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자신이 이때까지 발휘해온 방식이 켈커스의 방식이 아니라 정말 바르바라 자신의 방식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바르바라가 길리언의 방식에 속수무책으로 검을 놓치게 된다면 그녀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 궁극적으로 켈커스의 방식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바르바라가 길리언에게 알려주려고 한 것은 바르바라의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을 찾는 바로 그 과정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길리언은 처음부터 그런 것을 원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건 바르바라의 방식이었겠네요’라는 말에는 바로 그런 뜻이 함의되어 있었다. 바르바라가 길리언에게 평소보다 무거운 검을 쥐어준 것도 결국은 길리언의 방식을 찾아보기 위함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언젠가는 하게 될 거야. 바르바라는 언젠가의 말을 마음속으로 이렇게 정정했다. 너도 언젠가는 찾게 될 거야. 

 

길리언이 그 뒤로 바르바라를 이긴 적은 없었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의 방식으로 인해 당황한 순간에도 그의 검을 능숙하게 쳐내고는 했다. 경험과 시간의 차이였다. 두 사람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승리하고 패배하는 일보다는 검술을 점검하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에게 더디지만 꾸준히 실력을 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길리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계속 할게요. 그런 후 두 사람은 켈커스 지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설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따금 켈커스 지방에서 내려온 괴담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하게 되는 것들은 그들이 두고 온 친구의 이야기였다. 길리언에게는 루스라는 친구가 있었다. 길리언이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바르바라는 자신 역시 사랑하는 친구가 있노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문드문 바람이 부는 날에는 길리언과 성곽에 걸터앉아 바다를 보면서, 타지아라는 이름을 몇 번 중얼거렸다. 길리언은 그 때마다 바르바라를 바라보았고, 바르바라는 뒤를 돌아 돌로 쌓은 담장을 흘끔거렸다. 길리언에게 어떤 것들을 들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었다. 그런 감정은 그녀가 살면서 몇 번 겪어보지 못 한 것이었다. ‘들키고 싶지 않다’는 말에는 상대가 자신을 파악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숨어있었다. 이미 상대에게 함락당할 것을 염두 해놓고는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길리언이 자신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바르바라는 그런 식으로 부정했다. 타지아를 입에 올릴 때마다 자신이 가느다랗고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을 덮고 있는 부드러운 눈이 녹아내리고 그것이 감추고 있던 예리한 풀들이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지금 길리언을 쳐다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녀는 항상 고개를 돌려 담장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틈에 대해서 생각했다. 길리언과 바르바라가 얼마나 다른지를. 둘 사이에 어떤 돌을 잘 손질해 끼워 맞춘다고 해도 필연적으로 발생할 틈이 얼마나 많은지를. 저 담장이 꼭 길리언과 자신 같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했다. 길리언은 매번 고개를 끄덕이며 바다를 보았다. 파도치는 바다와 하얀 거품이 일어나는 물결 같은 것들을. 그들이 두고 온 것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것들을. 

 

 길리언에게 화를 냈을 때, 바르바라는 침착하게 대꾸하는 길리언보다도 길리언에게 화를 내고 있는 자신에게 놀랐다. 그런 식으로 감정을 내보이거나 동요한 적이 없었는데. 길리언 같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바르바라는 멈출 수 없었고 독사처럼 혓바닥을 놀려서 길리언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격렬하게 찔러댔다. 마침내 길리언이 단호하게 말을 끊어냈다.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돼요. 길리언이 똑바로 바르바라를 쳐다보았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바르바라는 천천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사과 같은 걸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자신이 지나치게 흥분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길리언이 분노했다는 사실 역시 직면했다. 하지만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그 날 혼자 해변을 따라 기사단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르바라는 손을 뻗어서 담장을 만졌다. 손가락으로 흐르는 돌의 결과 울퉁불퉁한 모래를 느꼈다. 이따금 움푹 파인 홈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바르바라는 멈추어 서서 그 홈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바위의 안으로 흐르는 바람들. 돌과 돌 사이의 틈이 길리언과 자신의 거리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바르바라 자신의 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리언은 이미 자신의 눈 더미를 녹이고 날카로운 풀 한 포기를 밟고 있던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게 언제였지. 언제 그런 걸 내가 허락해준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바르바라는 화가 난 길리언과 자꾸만 멀어지며 걸어 나갔다.

2018/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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