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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타지아는 이따금 다리를 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바르바라는 그녀가 때때로 아주 느닷없이 다리를 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타지아에게 묻거나 혹은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대신 바르바라는 타지아가 다리를 절을 때면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 할 만큼만 느리게 걸었다. 타지아가 비틀거린다는 사실을 자신도 알고 있다고 그녀의 눈앞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리를 절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르바라는 자신의 마을에서 절름발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여관집에서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목수 아르뎅 아저씨는 이리에게 다리를 물려 힘줄이 끊어졌다. 옆집에 사는 미세스 소네토의 아이는 사다리를 오르다 떨어져서 다리를 접질렸다. 그런가하면 바르바라의 작은 이모 라이라는 어릴 때 열병을 앓은 후 아예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아르뎅 아저씨는 그녀에게 의족을 만들어주려다 라이라 이모가 다리를 잘라낼 의사가 없음을 알고는 바퀴를 단 나무의자를 만들어주었다. 그건 수레처럼 생겼는데 뒤에 손잡이가 달려있어서 체사레 식구들이 라이라 이모를 앉혀놓고 의자를 밀어서 어디든 데리고 다닐 수가 있었다. 라이라 이모는 스무 살이 좀 넘었을 무렵에 지금 달린 것을 떼어내고 자신이 직접 밀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바퀴를 달아달라고 했다. 아르뎅 아저씨는 그렇게 해주었다. 그 뒤로 그녀는 혼자 의자를 밀어 계단이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닌다. 

 하지만 켈커스 지방의 여러 권세 있는 집안 중에서도 특히 유복한 편에 속하는 페트로프 가의 둘째 딸 타지아 계나디 페트로프가 다리를 전다면 그것은 분명 이리에게 물리거나 사다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타지아는 아주 튼튼한 아이였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열병을 앓은 적도 없었다. 바르바라는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타지아가 미세하게 다리를 절기 시작하는 날에는 활동량이 적어도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만 갔다. 보통 두 사람은 시장 뒤편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뒷골목이나 오르막이 가파른 산의 언덕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타지아가 다리를 절게 되면 바르바라는 그녀를 여관방이나 여관 인근의 주민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서 북쪽지방의 신화를 결합한 괴담을 들려주거나 다른 주민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생활을 위해 아등바등 하는 것을 구경하고는 했다. 제일 자주 가는 곳은 라이라 이모의 바퀴의자를 만들어준 아르뎅 아저씨의 작업장이었다. 바르바라는 목수들의 손놀림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녀 혼자 작업장을 기웃거리면 목수들은 위험하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멀리 내쫓아버리곤 했다. 하지만 타지아를 데리고 가면 모두들 입을 다물고 이따금 두 사람을 흘끔거릴 뿐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작업에 몰두하려 애썼다. 페트로프 가의 아가씨에게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주민들의 터전이나 작업장이나 일터도 그런 식으로 드나들었다. 바르바라는 타지아를 어디든 통과할 수 있는 마법의 승인 문서처럼 달고 다녔다. 

 타지아는 자신의 집안 영지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인간사를 무척 재미있게 생각했다. 닭을 잡기 위해 칼을 갈고 있는 사람이나 간이상점을 열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있는 사람을 봐도 눈을 빛내면서 바르바라를 마구 흔들고 때렸다. 

 “저길 봐, 난나! 저 사람 좀 봐!” 

 그럼 바르바라는 건성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가 짚은 풍경을 대략적으로 훑어본 후에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러게. 저기에 사람이 있네.” 

 그럼 타지아는 너무너무 신이 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찬사를 쏟아 부은 후 “너무 멋있다!”라고 외쳐대곤 했다. 

 타지아가 그런 풍경을 재미있어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그 풍경의 일원이 되어본 적이 없는데다가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르바라에게 있어 룬넨 마을은 그녀의 생활공간이었고 닭을 잡거나 나무를 자르는 일은 전부 언젠가 그녀가 해보았거나 하게 될 일이었다. 그녀는 일상을 하나의 특별한 풍경으로 생각할 일이 별로 없었다. 무언가를 특별하게 여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거리가 필요한데 마을의 인간사는 모두 바르바라와 너무 가까이 밀착되어 있었다. 

 바르바라가 타지아의 동떨어진 감수성을 밥맛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바르바라는 자신의 별 볼 일없는 공간과 생활양식에 온갖 찬탄을 멈추지 않는 타지아를 재미있게 여겼다. 타자의 시선으로 포착된 자신의 일부가 화려한 언변에 감싸여 재탄생 되는 순간을 경이롭게 느꼈다. 바르바라는 타지아가 한바탕 떠들고 간 날이면 홀로 언덕 높은 곳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고는 했다. 그러고는 타지아가 짚어준 골목과 인간군상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따금씩 어떤 특별함을 희미하게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특별함은 바르바라가 무언가의 언어로 포착해보려 시도하기도 전에 물속으로 가라앉은 타다 만 성냥개비의 불씨마냥 비실비실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타지아의 다리에 대한 의문은 열세 살 때까지 이어졌다. 바르바라는 전혀 예상치 못 한 사건으로써 그 의문을 풀게 되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바르바라의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한동안 바르바라는 타지아만 생각하면 마치 그녀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 자신과 동화라도 된 것처럼 스스로 다리를 절었다. 

 그 사건은 바로 타지아가 머리띠를 잃어버린 날에 일어났다. 귀족집안의 자제답게 타지아는 여러 벌의 드레스와 외투와 장갑과 구두와 머리띠와 머리끈과 머리핀을 가지고 있었다. 타지아가 가장 즐겨 하는 장신구는 머리띠였는데, 타지아는 그 중에서도 잘 마름질한 가죽에 부드러운 담비 털을 매달아놓은 머리띠를 가장 좋아했다. 바르바라도 그 머리띠를 좋아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타지아는 어느 날 바르바라에게 그 머리띠를 씌운 후 바르바라가 여왕이고 자신은 시녀로 시중을 드는 연극놀이를 했다. 일주일 동안 그것을 빌려주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바르바라가 도둑질을 일삼는 사기꾼 집안의 딸인 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 머리띠는 체사레 집안이 도둑질을 해서 사라진 게 아니라 타지아의 부주의로 인하여 사라지고 말았다. 머리띠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기 직전까지 타지아와 바르바라는 눈 덮인 설원을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타지아가 습관처럼 정수리를 더듬거리다 말고 우뚝 멈추어 섰다. 바르바라는 몇 걸음 더 앞서다 말고 타지아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덩달아 멈추어 서서 뒤를 확인했다. 

 타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머리카락을 마구 뒤적이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없는 무엇인가가 자신의 필사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갑자기 그 존재감을 발휘해 무사히 손아귀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머리띠가 사라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하자, 타지아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바르바라는 서두르지 않고 타지아에게 다가갔다. 타지아의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있었고 벌어진 턱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타지아의 이런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타지아는 아무리 위험천만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과장된 비명을 지르거나 바르바라에게 매달렸을 뿐이지 정말로 그 상황에 겁을 집어먹은 적은 없었다. 그녀는 모든 것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 사람처럼 구는 것에 더 익숙했다. 하지만 머리띠를 잃어버린 타지아는 거의 패닉상태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주변을 불길하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바르바라는 타지아를 잡고 흔들었다. 

 “얘, 타지아. 타지아!” 

 타지아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불현 듯 차가운 얼음에 닿은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바르바라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난나, 나랑 같이 머리띠를 찾아줘. 만약에 못 찾으면 나랑 같이 성으로 가줘. 내 손을 놓으면 안 돼. 부탁이야. 중간에 돌아가면 안 돼. 내 방 앞에 도착하면 그 때는 돌아가도 좋아. 막지 않을게. 하지만 지금은 나랑 같이 있어줘야 해.” 

 말을 너무 빨리 해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바르바라는 타지아가 헐떡이는 바람에 그녀의 입김이 자꾸만 토막 나는 것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머리띠를 잃어버린 일이 타지아에게는 끔찍할 만큼 심각한 일인 듯싶었다. 귀족 자제의 물욕이라기보다는 좀 더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바르바라는 타지아가 지나치게 음울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해가 지기 전까지 눈 속을 뒤지며 돌아다녔지만 머리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바르바라는 약속대로 타지아의 손을 잡고 페트로프 성으로 갔다. 걷는 내내 타지아의 손은 시종일관 바르바라의 손을 세게 쥐고 있었다. 성으로 다가갈수록 타지아의 손이 점점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바르바라는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손바닥을 타고 연거푸 느껴지는 타지아의 감정 때문에 결국은 그녀와 함께 이유도 모를 압박감에 시달렸다. 

 타지아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연회장을 지나서 중앙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분명 곳곳에서 사용인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을 텐데도 성은 소름끼칠 만큼 적막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공기와 죽은 색처럼 보이는 붉은 카페트들과 허옇게 눈을 뜬 초상화들이 두 사람을 따라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타지아는 가장 먼저 아버지의 방으로 향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자리에 없었다. 사용인으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들은 타지아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다행이라고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러더니 익숙한 것처럼 아래층에 있는 자신의 오빠의 방으로 이동했다. 바르바라는 대체 그녀가 뭘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 타지아는 바르바라를 문 앞에 내버려두고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타지아는 힘주어 바르바라의 손을 붙잡았는데 어찌나 세게 붙잡았던지 바르바라의 손도 타지아의 손만큼 창백하게 질릴 정도였다. 

 “이제 가. 고마워, 난나.” 타지아는 그렇게 속삭였다. 

 바르바라는 타지아가 들어간 문에 귀를 바싹 대고는 숨을 죽였다. 안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타지아의 오빠의 목소리를 바르바라는 그 때 처음 들었다. 머리띠라는 단어가 들리자 바르바라는 숨을 멈추었다. 

 “그건 평민들이 두 달을 벌어먹어야 간신히 만져볼 수나 있는 머리띠란다. 알고 있니?” 

 “알고 있어요.” 

 타지아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런데 너는 평민도 아니면서 평민 계집아이들처럼 뛰어다니다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말이구나.” 

 타지아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못 했다. 낮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계나디, 우리는 귀족이고 그들의 귀감이 되어야 한단다. 너는 네 위치를 알아야해. 우리가 걷고 먹고 마시는 모든 행 위를 평민들이 지켜본다고 생각하렴. 현명하게 행동해라. 하다못해 친구를 선택할 때에도.” 

 그런 뒤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가 아주 거칠게 다른 무언가를 후려치는 소리였다. 바르바라는 얼어붙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타지아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한 번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또 다시. 또 다시. 

 바르바라는 몸부림치면서 뒤로 물러났다가 문 옆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문 너머에서 일어난 사건을 그녀가 겪은 것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얼마 뒤 타지아가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나오다 말고 바르바라와 눈이 마주쳤다. 바르바라는 타지아의 손을 낚아채고 쏜살같이 타지아의 방까지 달렸다. 오로지 그녀의 방 만이 이 성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힘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줄 수 있는 것처럼. 두 사람은 계단을 날듯이 내려와 초상화들이 걸린 긴 복도와 텅 빈 응접실을 지나 타지아의 방에 도착했다. 

 바르바라는 거칠게 문을 닫고 타지아의 얼굴을 더듬거렸다. 타지아는 무표정하게 서있었다. 바르바라는 타지아의 몸을 손으로 훑고 매만지면서 어떤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갑자기 단추를 뜯어내고 옷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보들보들한 드레스를 그녀의 몸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속옷을 벗기고 두 팔을 들게 했다. 타지아가 흐느끼기 시작했지만 바르바라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타지아는 거의 전라 상태가 된 채로 바르바라의 앞에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바르바라는 큰 충격을 받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친구의 몸을 뚜렷이 응시했다. 타지아의 몸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는 수차례 가해진 매질의 흔적이 새하얗게 남아있었다. 

 

  2. 

 “나는 모두가 그런 줄 알았어.” 

 타지아는 그런 후에 말을 조금 고쳤다. 

 “내 말은, 나는 귀족이니까 조금 더 엄격한 거라고 생각했어.” 

 바르바라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창밖을 쏘아보고 있었다. 화를 간신히 억눌러 참는 얼굴이었는데 무척이나 서늘한 표정이었다. 타지아는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 후에 바르바라를 올려다보았다. 

 “난나.” 

 타지아가 물었다. 

 “너도 맞아본 적은 있지?” 

 “아니.” 

 바르바라가 쏘아붙였다. 

 “우리 가족은 나를 건드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맹세컨대 그 누구라도 내 몸에 손을 댔다간 나머지 가족들이 그 년의 손목을 자른 후에 짐승들 먹이로 던져버렸을 거야.” 

 바르바라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타지아 앞에서 욕설을 사용하고 말았다. 타지아는 작게 웃다가 갑자기 훌쩍이기 시작했다. 타지아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마구 화를 냈다. 난나네 가족이 유독 이상한 거지 나머지 아이들도 한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거라고 했다. 자기 앞에서 욕을 사용하지 말라고도 했다. 다른 때는 괜찮지만 지금은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음을 그치곤 돌변해서 자기 집안은 그만큼 품위가 있고 엄격하다고 말했다. 타지아가 감정기복을 보이는 동안 바르바라는 그녀의 침대 맡에 앉아 타지아의 오빠를 상상했다. 타지아와 똑같이 금발이고, 사파이어 같은 눈을 가졌고, 귀족적인 자태를 가진 남자를. 그 남자의 주먹에는 흉물스러운 털이 나있어서 마치 짐승의 발같이 보였다. 바르바라는 그 손을 잘라버리는 상상을 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기사도 아니고 사냥꾼도 아니어서 그것을 해낼 수가 없었다. 

 “네 오빠가 너를 자주 이렇게 대하니?” 

 “아버지가 없을 때만 대신하는 거야.” 

 타지아가 이불 속에서 꿈틀거렸다. 

 “아버지가 하면 오빠는 하지 않아.” 

 “영주가 돌아오면 또 너를 그렇게 할까?” 

 “아니, 한동안은 둘 다 날 건드리지 않을 걸.” 

 타지아가 들뜬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가 성을 비웠다는 건 곧 손님과 함께 돌아올 거라는 뜻이거든. 손님이 오면 두 사람 모두 나를 건드리지 않아.” 

 그런 후 타지아는 눈물 젖은 얼굴을 익살스럽게 일그러뜨렸다. 

 

 3. 

 페트로프 영주는 그로부터 열흘 뒤에 돌아왔다. 타지아의 말대로 손님과 함께였는데 타지아가 나중에 설명해주기를 페트로프처럼 부유하지는 않지만 귀족의 이름을 유지하고는 있는 가문의 손님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자신의 가문과 급은 다르지만 어찌되었든 귀한 손님으로 모실 예정인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얼마 뒤 룬넨 마을을 감싼 산맥의 도로를 따라 마차 한 대가 들어왔고, 그 마차는 곧장 페트로프 성으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은 방문객에 대한 싱거운 추리를 몇 번 하다 말고 각자의 일터로 돌아간 뒤 아예 신경을 꺼버렸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본래 남에게 무관심한 면이 있었다. 바르바라 역시 마차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귀족출신이라면 어차피 체사레 여관에 머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쟁취하기 어려운 난나(한 건)였다고나 할까. 체사레 식구들 역시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끝이었다. 그들 모두가 익숙한 듯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며칠이 지난 뒤 타지아가 바르바라를 찾아왔다. 타지아는 평소보다 배로 들떠있었고 다리를 절지도 않았으며 무척 쌩쌩했다. 타지아는 바르바라를 껴안으며 비명을 지르다가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서 맑고 높은 목소리로 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이반!” 

 소년은 서두르지 않고 두 사람 쪽으로 걸어왔다. 타지아는 바르바라의 팔짱을 끼고는 그녀 곁에 밀착했다. 바르바라는 소년을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훑었다. 소년은 부츠를 신고 따뜻한 바지를 입고 부드러운 모피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눈은 눈청색이었다. 타지아는 바르바라를 조금 앞으로 끌고 오더니 그녀에게 소년을 소개했다. 

 “난나, 얘는 노이어 남작의 첫째야. 우리보다 한 살 많아.” 

 “안녕.” 

 바르바라는 예의 그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소년은 바르바라를 머리부터 발끝으로 훑었다. 그러더니 타지아를 쳐다보았다. 

 “너 평민이랑 친구야?” 

 바르바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때 갑자기 소년이 고개를 돌려 다시 바르바라 쪽을 바라보았다. 할 말을 마치고 다시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표정을 미처 숨기지 못 한 바르바라의 미묘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너 화가 났구나.” 

 이반 슈타겐 노이어는 그때 열네 살이었다. 

201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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