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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소문의 신삥은 미남이었다. 

 바르바라도 세이런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가 입단식을 마친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선배 기사들은 신입이 들어오면 당사자들보다 더 신이 나서 “신삥”소문을 물어 나르곤 했는데 이번의 경우도 그러했다. 그들은 세이런에 대해 피부가 하얗고 어딘지 귀족적이니 분명 집안에서 뛰쳐나온 귀한 자제거나 유배지를 써드빌로 정한 데아의 기사일 지도 모른다고들 떠들어댔다. 

 바르바라는 선루스 써드빌 기사단 본부 앞에서 세이런을 처음 보았다. 처음에 바르바라는 그가 어두운 금발인 줄 알았는데 건물로 들어간 후에야 그가 브루넷이라는 걸 알았다. 세이런은 그녀의 뒤를 조용히 쫓아왔다. 질문을 하거나 호기심을 보이며 주변을 열심히 관찰하지도 않았다. 조용한 편이네. 바르바라는 그의 이름에 붙은 반나절짜리 추측과 소문을 한쪽으로 치워버리며 생각했다. 

 바르바라는 그 날 세이런을 데리고 기사단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설을 소개하고 유념해야 할 간단한 사항과 자주 마주치게 될 고참 기사들에 대한 짧은 신상정보를 설명해주었다. 나머지는 세이런이 알아서 터득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가… 식당이고 안내는 여기서 끝이야.” 

 바르바라는 식당 입구 앞에 멈추어 서서 손바닥으로 주방과 테이블과 배식구역을 짚으며 점심·저녁 시간에 대해 안내한 뒤 온화한 웃음을 단 채 세이런을 돌아보았다. 바르바라는 신입에게 가능한 상냥하게 구는 경향이 있었다. 세이런은 바르바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절하게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뒤 세이런은 아까 지나쳐왔던 기사단 숙소로 돌아갔다. 

 바르바라가 초면인 신입에게 유독 상냥하고 꼼꼼하게 구는 이유는, 한 번 설명할 때 빠짐없이 설명해주는 편이 사후의 일을 처리하는데 더욱 편리했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입단 초기에 자신의 아래기수에게 바로 그런 식으로 굴었다가 오밤중에 자신을 찾으며(난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도와주세요, 제발요!) 방문을 두들겨대는 후배로 인해 큰 고통을 겪었던 것이다. 그 뒤로 바르바라는 동행하는 신입 기사들이 자신이 떠먹여주는 설명조차 제대로 이해를 못 할 만큼 어지간한 돌대가리가 아니기를 바라며 기사단을 관광지마냥 소개시켜주었다. 세이런은 멍청한 인상이 아니었으니 잘 해낼 것이다. 

 그녀의 믿음에 보답하듯 침묵의 신삥 세이런은 한밤중에 그녀의 방문을 두들기지도 않았고 다급한 기색으로 사방팔방 “난나!”를 외치며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바르바라는 흡족한 상태로 며칠을 보내다가 곧 그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며칠째 신입기사들의 단골 근무지로 손꼽히는 ‘잡퀘스트스팟1(시장이다)’ ‘잡퀘스트스팟2(골목이다)’에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마음에 좀 걸리긴 했지만, 아마 어딘가에서 잘생긴 얼굴을 햇볕에 쏘이며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써드란 원래 업적을 세우기보다는 잘생긴 얼굴을 구릿빛으로 태우거나 아름다운 금발을 과시하기에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ex.오즈) 

 세이런이 바르바라를 찾은 건 일주일 쯤 뒤의 일이었다. 둘 다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접시를 들고 바르바라 옆에 앉은 세이런이 포크로 완두콩을 굴리다말고 그녀를 불렀다. 

 “저기,” 

 바르바라는 세이런을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그를 알아보지 못 한 것처럼 굴었다가 불현 듯 떠오른 것처럼 입에 미지근한 미소를 달고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콩이 제대로 안 익은 건 어디에 이야기하면 되나요?” 

 바르바라는 세이런의 포크 아래에 있는 덜 익은(것으로 추정됨) 완두콩을 내려다보다 말고 자신의 접시에서 손도 대지 않은 말랑말랑한 완두콩을 덜어주었다. 

 “다음에는 가서 새로 달라고 하면 돼.” 

 바르바라가 말했다. 

 “완두콩 아까 배식 받을 때보니 얼마 없더라. 오늘은… 이걸 먹어.” 

 그런 후 바르바라는 세이런의 접시에서 그의 완두콩을 덜어먹었다. 완두콩은 딱딱했다. 정말로 덜 익었던 것이다. 만약 덜 익은 게 아니었다면 바르바라는 세이런에게 완두콩을 처음 먹어보는 거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바르바라는 딱딱한 완두콩을 마치 나무열매 먹듯 꿋꿋하게 씹고는 감자를 으깨어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폴나폴 걸어서 식당을 빠져나오는데 뒤에서 세이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바르바라는 반쯤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세이런은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혹은 바르바라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녀에게 말을 거는 후배들은 그녀를 쉽게 찾으면서도 정작 얼굴을 마주보면 종종 긴장하곤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귀찮다는 표정을 일부러 드러내놓을 때가 왕왕 있어서일 것이다. 어쨌든 세이런은 식당에서 쏟아지는 빛과 조금 빗겨난 지점, 그러니까 문의 모양에 따라 기울어진 네모난 빛 덩어리보다 한발 짝 나와 있어서 표정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세이런이 차분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쭤볼 게 있어서요.” 

 “완두콩에 대해서?” 

 바르바라는 농담으로 던진 건데, 세이런은 심각하게 받았다. 

 “그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세이런은 잠시 뜸을 들였다. 

 “일을 안 주는데 뭘 해야 하나요?” 

 바르바라는 세이런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렸다. 

 “아하….” 

 바르바라는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고개를 젖히곤, 정작 그것보다는 맥없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감탄을 내뱉었다. 

 “아하…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그냥 놀아도 좋다고 말했을 것이지만 그건 아마 세이런이 원하는 대답이 아닐 것이다. 농땡이를 치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바르바라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써드빌의 해변 아래에서 피부를 태우거나 유흥을 즐기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시간을 보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 신삥은 굳이 바르바라를 찾아와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이 없어요.’ 오즈가 이 친구를 얼굴만 보고 뽑은 게 아닌 모양이다. 성실하기도 하지! (하지만 선써드에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음) 

 바르바라는 세이런에게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그에게 일을 주기로 했다. 

 “나를 따라와.” 

 바르바라가 말했다. 

 두 사람은 접수창구까지 걸었다. 주민들의 민원과 사소한 호소가 집결되는 장소였다. 신삥들에게 일을 주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바르바라는 창구에 앉은 이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넨 후 썩 무겁지는 않은 서류뭉치를 집어 들고는 몇 개를 대충 훑어보았다. 세이런에게 시킬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잠시 후 바르바라는 적당한 걸 찾아냈다. 

 “월튼 씨네 마구간 지붕이 무너졌는데, 중심기둥이 무거워서 옮겨줄 사람이 필요하다네.” 

 바르바라는 나긋나긋 읊은 후 세이런을 바라보았다. 

 “이게 좋겠다.” 

 그렇지? 라는 의미가 내포된 말이었다. 세이런은 좋지도 싫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너무 사소한 일이고 크게 까다로운 일도 아니었으니 특별히 좋거나 싫다고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바르바라는 깃펜을 들고 서류 위에 본인의 이름을 썼다. 바르바라 체사레. 그런 후 세이런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네 이름이 뭐였지?” 

 “세이런 멜라우드요.” 

 바르바라는 그의 이름을 마저 적었다. 

 “그래, 멜라우드.” 

 그녀가 말했다. 

 “이제 기둥을 들어주러 가자.” 

 그렇게 두 사람은 안온한 기사단을 나와 남의 집 마구간을 향해 뙤약볕 아래를 걷기 시작했다….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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