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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날과 칼날이 부딪힐 때 들리는 격동의 소리, 날붙이를 망치로 내려칠 때 튀어 오르는 불꽃, 갈등을 고조시키는 흥분의 감정들. 전사의 운명을 타고난 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바르바라가 읽을 수 있는 것들. 하지만 마리안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바르바라가 떠올린 것은 불꽃이 아닌 얼음이었다. 

 바르바라는 마리안을 술집에서 처음 보았다. 생선요리가 유명한 곳이었고, 바르바라는 늦은 저녁에 혼자 식사를 하려고 그곳을 방문한 참이었다. 마리안은 바르바라의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리퍼코트를 입은 동료들을 앉혀놓고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가게는 조용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았다. 생선살을 잘라 먹던 바르바라는 건너편 테이블에서 점점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의식하고 시선을 돌렸다. 마리안이 빈 잔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남자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얼큰하게 취한 목소리가 고조되어 끊임없이 한탄과 욕을 쏟아냈다. 바르바라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생선의 뱃살을 잘라 포크로 집어먹었다. 한니발, 사슴, 사냥, 그리고 개자식. 바르바라는 천천히 생선의 맛을 음시하며 건너편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별히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마리안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 테이블에서 떠드는 건 오로지 마리안뿐이었다. 다른 목소리가 감히 끼어들 수 없었다. 사연은 다시 한니발, 사슴, 사냥, 그리고 개자식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러다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누군가 마리안의 빈 술잔에 맥주를 채웠던 것이다. 마리안은 자신을 둑처럼 취급하며 그 안으로 술을 퍼담았고 그 바람에 기나긴 한탄이 일순간 끊어졌다. 바르바라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식사를 이어나가며, 마리안의 키워드 순서를 올바르게 나열해보았다. 사슴, 사냥, 개자식, 그리고 한니발. 사실 모든 단어가 한 사람으로 이어져있었다. 

 얼마 뒤에도 바르바라는 우연하게 식사를 하다가 몇 테이블 건너에 앉은 마리안을 마주쳤다. 마리안은 그 때와는 다른 사람들을 앉혀놓고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중에 바르바라는 마리안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녀와 술을 마시다 질린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꼭 이런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그놈의 한니발.” 

 하지만 마리안과 정식으로 만났을 때, 바르바라는 그녀로부터 전혀 다른 인상을 받았다. 우선 마리안은 말수가 적었고 경계심이 짙었다. 바르바라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한 번의 곱씹는 과정을 거쳤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질문을 자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멍청하거나 둔한 것도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마리안이 수행하고 있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관찰, 경계가 아니라 사냥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리안이 기사단에 들어와 세운 업적들은 전부 짐승을 제압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바르바라는 켈커스 지방의 사람들이 이따금 입에 올리곤 하던 산지벽촌의 아주 작은 마을들을 떠올렸다. 그곳의 주민들은 숙련된 사냥꾼들이었고, 사람보다 짐승에 익숙했으므로 사람의 언어를 잘 사용하지 않았다. 마미사 할머니도 그런 마을들의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런 마을에서 온 남자를 만난 적이 있지. 그가 쓰는 말투는 막 깎은 새 지팡이처럼 투박하더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미사는 너무 많이 문질러서 반들반들해진 체사레 집안의 지팡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르바라는 마리안이 사냥꾼의 마을에서 왔을 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써드빌 뒤쪽으로 이어지는 숲에 늑대가 출몰해 목축을 방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마리안을 떠올렸다. 바르바라는 마리안을 자신의 동행자로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고참이었고 이런 일에는 어느 정도 선택권이 있었다. 마리안의 의사를 묻는 대신 서류에 마리안의 이름을 적어 넣는 바르바라에게 동료 기사가 염려의 말을 남겼다. “난나, 마리안 에이어는 임무 중에도 술을 마셔요.” 이런, 그건 좀 심각한 걸. 하지만 겨울의 사냥꾼들은 추운 숲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조금씩 술을 마시고, 두꺼운 털옷을 입은 채로도 토끼의 눈을 향해 화살을 쏜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바르바라는 자신이 마리안을 이미 사냥꾼이라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리안은 풀풀 술 냄새를 풍기며 등장했다. 바르바라는 늑대를 잡는 임무에 마리안 역시 동행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마리안이 경계하며 얼굴을 찡그리자, 바르바라는 자신이 짐작한 그녀의 배경을 상기시켜주었다. 넌 사냥꾼이잖니. 마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숲으로 이동하면서 늑대를 잡으러 가자는 말을 한 번 더 반복했을 때, 비로소 마리안이 입을 열었다. “나를 알아?” 그렇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마리안보다 오히려 한니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니발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있었다. 겨울 숲에서 살아가는 짐승들, 한밤중에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 이따금 캄캄한 나무 틈 사이로 빛나는 한 쌍의 눈동자… 원한다면 더 나열할 수도 있었다. 바르바라가 알고 있는 것들. 그것들이 있어 켈커스 지방의 겨울밤은 때때로 영원할 것만 같았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바르바라는 어린 시절 나무작대로 들개를 패서 쫓아낸 적이 있었지만 한 번도 그것에 자만해본 적이 없었다. 밤에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와 창문 바깥을 흘끔거리며 자신이 안전한 곳에 있음을 상기했다. 겨울 숲에는 필연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켈커스 지방에는 바로 그 필연적인 위험에서 비롯된 무수한 괴담들이 있었다. 주민들은 자신이 해치울 수 없는 두려움에 형태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여, 그것을 초자연적인 존재로 재탄생시킴으로써 극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괴담을 파괴하는 이들도 있다. 바르바라가 한니발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사냥꾼들이 사냥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이룩하는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사냥꾼들은 초자연을 탄생시킨 자연의 존재를 향해 화살을 쏘는 이들이다. 사냥이란 나그네를 잡아먹는 괴물 버나디가 되었던 어두운 숲속의 그림자가 내일 아침에는 한 마리 늑대 시체로 되돌아오는 사건을 의미했다. 사냥꾼들은 우리의 괴담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형태를 부여하는 작업이 아니라, 형태를 가진 존재를 오히려 알 수 없는 정체로 둔갑시키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럼 주민들은 그들이 가져온 짐승의 가죽을 벗이고 그것을 박박 씻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두려움이란 괴담으로든 가죽으로든, 다시 말해 무형으로든 유형으로든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한 두려움에 잡아먹히는 일 따위는 없는 것이라고. 바르바라는 마리안이 술을 마시고 휘청거리다 종국에는 환각까지 보게 된다 한들 화살만큼은 빗맞히는 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유형의 존재를 무형으로 만들 수가 없는 사람이다. 증오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먼 이전의 일로 흘려보내,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무엇으로 만들기보다 끊임없이 입으로 반복하여 그 존재를 상기하는 사람이다. 한니발의 형체가 흐물흐물해지지 않도록 지겹게 복기하는 사람이다. 바르바라는 한니발에게 욕지거리를 하던 마리안을 잊지 않았다. 개자식이라는 욕설이 하나의 단단한 화살처럼 한니발의 이름에 내다꽂혔던 매일 밤. 구 애인을 씹어대는 마리안의 음주는 추운 숲에서 술을 마시고 체온을 유지하는 행위처럼 보였다. 밤의 마리안은 낮의 마리안보다 훨씬 사냥꾼처럼 보였다. 그래서 마리안이, “나를 알아?”라고 물었을 때, 바르바라는 

 “짐작한 거란다.” 

 라고 대답하면서 속으로는 

 “판단이란다.” 

 라고 대답했다. 

 

 2. 

 두 사람은 말을 달려 닷새 동안 늑대를 쫓았다. 숲으로 들어가 발자국을 쫓고, 나무에 남은 발톱자국을 손으로 쓸어보면서 늑대의 이동거리를 짐작했다. 마리안은 바르바라의 판단대로 사냥꾼이었다. 짐승을 쫓기 위해서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마리안의 뒤를 쫓으며 그녀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고, 그 행동을 복기하기에 앞서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하려고 했다. 이를테면 나무에 남은 발톱자국을 살피는 일은 늑대가 언제 그곳을 할퀴었는지를 알고자 함이 아니라 어째서 그곳을 할퀴었는지를 알고자 함에 가까운 일이었고, 사냥의 과정은 짐승을 죽이는 과정이 아니라 짐승을 이해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바르바라는 마리안과 끊임없이 거리를 유지하며 마리안의 습성을 훔쳐 사용했다. 마리안은 바르바라를 몰이꾼이라고 불렀다. 

 “사냥꾼이 아니야?” 

 “그래.” 

 맞는 말이었다. 바르바라는 짐승을 사냥하는 자가 아니라 짐승으로부터 비롯된 괴담을 읊는 자들의 곁에서 자랐고, 분명한 진실을 모호한 은유로 풀어내는데 더 능숙했다. 반면 마리안의 언어는 거칠고 투박한 지팡이를 만지는 것 같았다. 바르바라는 체사레의 언어를 반들반들한 지팡이 머리처럼 문지르며, 활을 든 마리안과 함께 어두운 숲속을 걸었다. 이따금 숲속의 어딘가에서 길게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거나 근처의 풀숲이 들썩이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면 바르바라는 마리안, 혹은 마리안이 들고 있는 화살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나는 두려움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마리안이 늑대가 아닌 바르바라에게 더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사냥을 시작한지 이틀째 되던 밤이었다. 그녀는 술을 마시려고 습관처럼 주머니에 손을 가져가다 말고 의식적으로 떨어뜨렸다. 바르바라는 담요를 두르고 오두막집의 천장에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숲 인근의 작은 오두막집에 앉아 있었고, 연기를 염려해 불은 피우지 않았다. 마리안이 어둠 속에서 바르바라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다 다르게 당신을 부르던데. 난나는 무슨 뜻이고, 바랴는 또 무슨 뜻이야?” 

 마리안은 또 이런 질문을 했다. 

 “난나라고 부를 때 당신은 조금 더 크게 움직여. 응답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바랴라고 하면 조용히 호응해. 당신에겐 무슨 차이야?” 

 혹은 이런 질문도 했다. 

 “기사단에 들어오기 전에는 뭘 했어?” 

 혹은 이런 질문도. 

 “아침에는 항상 일찍 일어나?” 

 이런, 이건 좀 심각한 걸. 바르바라는 마리안이 차라리 술을 마시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술을 마신 그녀는 언제나 한니발을 사냥한다. 그렇다면 술을 마시지 않는 때에는 바르바라를 사냥하기로 마음이라도 먹은 것일까. 마리안이 늑대를 잡아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사실 그런 건 마리안에게 문제도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바라는 자신을 숨기는데 익숙했고 마리안에게는 반드시 그럴 생각이었지만, 마리안은 바로 그 지점 때문에 바르바라를 늑대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늑대는 유형의 존재지만 바르바라는 그렇지 않았기에. 바르바라가 형태를 갖춘 명징한 존재로 남지 않았기 때문에 마리안은 바르바라를 사냥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바르바라가 거리를 두면 멀어지는 보통의 존재들과는 달리, 마리안은 바르바라가 거리를 두면 그것을 추적하고 싶어 했다. 바르바라는 사냥꾼을 다루기 위해서는 체사레의 언어를 보다 신중히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마리안에게 대답했다. 

 “나는 사냥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다.” 

 “그럼 뭔데?” 

 “네 동료지, 에이어.” 

 그건 늑대를 잡는 현재의 임무에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다음 날 아침 마리안은 어제보다 술을 줄였고 말을 타고 달리면서 바르바라의 곁에 따라붙었다. 바르바라는 마리안이 자신을 주시하는 것을 의식하면서 먼 풍경을 보았다. 숲을 조금만 더 달리면 넓게 이어지는 들판이 나왔고, 들판은 키 큰 풀로 온통 장관이었다. 바람이 불 때면 파도가 들이닥치는 것처럼 거대한 녹색의 물결이 굽이치며 앞으로 혹은 뒤로 돌진했다. 바르바라는 말을 멈추고 천천히 자리에 멈추어 서서 그 풍경을 보았다. 마리안도 말을 멈추었다. 한동안 두 사람은 녹색의 물결이 일렁이며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고 또 돌진하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마침내 바르바라가 작은 목소리로 솔직하게 중얼거렸다. 방금 아름다웠지. 마리안은 말없이 바르바라를 응시했다. 이번에 바르바라는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을 받아쳤고, 마리안이 이것으로 만족하기를 바랐다. 자신을 향한 추격을 멈추는 편이 이롭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랐다. 의미심장하고 수상쩍게 보이는 바르바라가 정말로 감추고 있는 건 이런 것들이라는 사실을. 들판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기에 말을 멈추고, 오두막집에 떨어지는 달빛을 지켜보는 모습이 바르바라의 전부라고 착각하기를 바랐다. 

 물론 바르바라의 내면에는 사라진 아들과 어두컴컴한 숲에 대한 이야기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결코 마리안에게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다. 바르바라는 마리안에게 사냥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마리안을 통제할 자신이 있었다. 실제 그랬다. 

 

 3. 

 닷새째에 두 사람은 결국 늑대를 잡았다. 호수와 가까운 수풀에서였다. 마리안이 늑대를 쏘았고, 그건 바르바라가 처음부터 마리안에게 기대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바르바라는 늑대를 보자마자 뽑아들었던 검을 도로 집어넣고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두 사람은 호숫가 앞에서 늑대를 처리했다. 마리안이 가죽을 벗기고는 바르바라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바르바라는 켈커스 땅에서 벌어지던 사냥꾼과 주민의 관계를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의 바르바라는 늑대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것으로 괴담을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것이 필요 없었다. 

 임무를 마친 두 사람은 써드빌로 복귀했고 그 날 밤에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둘 다 같은 테이블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앉았다. 마리안은 술을 많이 시켰고, 또 많이 마셨다. 지난 닷새간 끊었던 만큼의 분량을 오늘 밤 들이마시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바르바라는 아주 가끔씩만 술을 홀짝이며 마리안의 이야기를 들었다. 술이 들어가기 시작한 마리안의 입에서 또 그 이름이 나왔다. 한니발. 

 마리안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할 정도로 끊임없이 말했다. 한니발과 사냥을 나갔던 일을 늘어놓다 말고 불현 듯 분노가 차올라 한니발을 미친 개자식이라고 불렀다. 그런가하면 한니발의 외모를 묘사하며 꿈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맥락도 없이 사슴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바르바라는 마리안의 입에서 불덩이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슴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을 뱉어내고 그것이 제대로 식고는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식을 때까지 연거푸 뱉어내 그 온도를 확인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르바라는 마리안의 눈을 볼 때마다 얼음조각을 떠올렸다. 공중에서 흩날리는 눈발과 겨울 숲을. 때때로 바르바라가 마리안에게 찬물을 줄 때도 있었다. 술잔이 비면 술을 채워주고, 마리안이 이야기 도중 더듬거리면 그녀가 헷갈리고 있는 단어를 불러주었다. 테이블에 엎어진 채 앓는 소리를 내는 마리안의 어깨를 쓸어주기도 했다. 바르바라. 마리안이 술김에 자꾸만 중얼거렸다. 알고 있어? 한니발은…, 그럼 바르바라는 대답했다.  그럼. 알고 있단다, 에이어. 네가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겠구나. 

 늑대를 잡는 임무가 끝난 후, 두 사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때때로 두 사람은 같은 조에 배치되어 잡일을 수행했고, 이따금 짐승과 관련된 일을 하러 떠날 때도 있었다. 그 때마다 마리안은 임무 도중 느닷없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했다. 바르바라의 지시를 따르는 대신 단독으로 움직였다가 위험에 처해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술을 마신 채 나타나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마리안은 엉망으로 굴었다. 자신이 기사가 아니라 여전히 사냥꾼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 때마다 바르바라는 마리안의 손을 붙잡고 손등을 가볍게 내리쳤다. 성가신 아이를 훈육하듯이 마리안을 다루었다. 

 하루는 마리안이 임무 도중 갑자기 사라진 일이 있었다. 바르바라는 그녀를 찾아 언덕으로 올라갔다가 울타리 아래로 이어지는 가파른 절벽에 몸을 기울이는 마리안을 발견하고는 쏜살같이 내달렸다. 마리안은 자신을 구조한 바르바라의 일그러진 표정을 올려다보고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분에 못 이긴 듯 말했다. 

 “너는 역시 그냥 내가 한 말에서 장난치고 있을 뿐이지?” 

 바르바라가 마리안의 질문에 제대로 답해주지 않는 걸 불평하고 있는 것이었다. 혹은 그렇게 거리를 두는 주제에 대체 왜 나의 파괴에 개입하는 것이냐고 불평하는 걸지도 몰랐다. 바르바라는 제멋대로인 마리안에게 짜증이 나있던 참이어서 자못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침착하게 쏘아붙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놀리고 싶었다면 네 말 따위가 아니라 너와 함께 놀아났을 거야.” 

 “…….”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쏘아보았다. 마리안이 몸을 걸친 울타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음 순간, 갑자기 마리안이 바르바라에게 덤벼들어 입을 맞추었다. 바르바라는 밀려나지 않기 위해 손을 뻗어 울타리를 움켜쥐었다. 마리안이 혀를 내밀었지만 바르바라는 입을 다물었다. 울타리를 쥔 손이 하얗게 물들었다. 

 마리안의 혀가 입술을 마구 핥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바르바라는 인중에 내려앉는 마리안의 숨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마리안이 천천히 물러나자 바르바라는 울타리를 쥐던 손을 놓고는 마리안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어느 때보다 힘을 주어 찰싹 내리쳤다. 

 “마리안.” 

 바르바라가 단호하고 부드럽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당장 입을 맞춘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로 가까워질 수는 없어.” 

 우리가 동료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손을 붙잡는다. 내리치는 건 그것을 상기하지 못 한 마리안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바르바라가 수행하는 훈육은 공동체의 유대를 강조하면서도 그 유대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체벌이 동시에 존재했다. 바르바라는 한니발이 마리안에게 이와 비슷한 짓을 했다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손등을 내려칠 때마다 마리안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마리안을 통제하기 위해 한니발의 이미지를 훔쳐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람이 불자 마리안의 침으로 축축한 자신의 입술이 느껴졌다. 바르바라는 손등으로 그것을 훔쳐내고 고개를 돌렸다. 

 “가자.” 

 그런 후 두 사람은 함께 돌아왔다. 

 그 뒤에도 종종 마리안은 엉망으로굴었고 때때로 바르바라에게 덤벼들었지만, 바르바라는 마리안의 손등을 내리치며 그녀를 훈육했다. 거리감을 상기시켜 우리가 동료임을 알게 했다. 언젠가의 나날을 보내며, 마침내 마리안은 그것을 이해했다. 

 어느 순간부터 마리안은 엉망으로 굴기를 그만두었고 다른 기사들과 어울리며 바르바라에게서 멀어졌다. 어느 날이었나. 훈련장을 지나치다 말고 바르바라는 리온과 함께 있는 마리안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 뒤 아무 말도 없이 천천히 그곳을 스쳐지나갔다. 

 

 4. 

 서네스섬에서 돌아온 이들이 숙소를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바르바라는 집무실에 있었다. 그러다 오즈가 마침내 일이 끝났다고 말했고, 바르바라는 그 뜻을 이해했다. 시간을 벌기 위해 시간을 쓰던 일들이 끝났다는 말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사무실을 나와 다른 곳에 처박혀 있기 시작했다. 주로 휴게실에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인적이 드문 바닷가 절벽에 있었다. 휴게실에 있을 때에는 마리안과 체스를 두었고, 절벽에 있을 때에는 궐련을 물거나 수평선을 응시하며 앞으로의 일을 계산했다. 바르바라는 마법없이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을 때와 마법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을 때를 번갈아 저울에 재보았다. 어느 쪽도 썩 유쾌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바르바라는 요 며칠 다섯 달의 시간을 함께 보내온 몇몇이 대련장에 들어서서 시험 삼아 검을 휘두르거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해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려 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법이 거래되고 있었다. 사용할 때마다 주인의 생명을 갉아먹는 그것이. 손잡이 없는 칼을 쥐듯 사람들이 마법을 쥐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손은 단단한 굳은살로 판판했고 살결은 반질반질했다. 피투성이가 되지도 않았고, 새로운 상처가 생기지도 않았다. 

 ‘두려움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바르바라는 생각했다. 

 ‘마법은 두려워할 만큼 대단한 것도 못 된다.’ 

 

 5. 

 바르바라가 마리안과 마지막 체스를 두던 날, 마리안은 게임을 하다 말고 바르바라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그러더니 곧 바르바라에게 부탁을 했다. 

 “내가 또 멋대로 굴면…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줄래? 나를 거절해줄래?” 

 바르바라는 고개를 들어 눈을 가늘게 뜨고 마리안을 응시했다. 자신이 마리안을 거절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바르바라는 마리안이 울타리에서 떨어지는 걸 거절했고, 그녀가 기사가 아닌 사냥꾼으로 남는 것을 거절했고, 마리안과 입 맞추는 것을 거절했고 그녀와의 섹스를 거절했다. 한니발처럼 그녀를 훈육하면서도 한니발이 되는 것을 거절했다. 그리하여 마리안은 정말 그렇게 되었다. 울타리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기사들과 사교하기 시작했으며, 바르바라와 혀를 섞지 못 했고 더 이상 그녀와 섹스하자고 조르지도 않았다. 마리안이 살아남아 마리안 에이어로서 나아갔던 일들을 생각한다. 더 이상 자신의 훈육이 필요 없게 된 나날들을. 바르바라는 마리안이 훈육을 부탁하고 있음을 알아들었다. 언젠가처럼 자신을 통제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리안은 다시 사냥꾼으로 돌아간 것일까? 무형의 형식으로, 구전으로, 전설로 내려오던 마법을 손에 넣어서 그것을 유형의 방식으로, 사냥으로, 현실로 전복시키고자 하는 것일까. 바르바라는 방금의 부탁으로 마리안이 마법을 얻었다는 사실을 눈치 챘지만 구태여 되묻는 대신 말을 움직였다. 마리안이 마법사를 만지작거리다 말고 기사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체스는 종종 은유로 읽힌다.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그렇게 할게, 내 시선이 닿는 한.” 

 바르바라는 울타리에 위태롭게 걸쳐져있던 마리안과 그 아래로 펼쳐진 낭떠러지를 기억한다. 

 “이것도 내가 멋대로 구는 거야?” 

 “어느 정도는.” 

 B5의 마법사와 H4의 기사가 기로에 놓였다. 바르바라는 손등을 매만지듯 마리안에게 선택지를 주고는 고개를 묻은 채 웃었다. 고민하던 마리안은 기사를 움직였다. 꽤나 기특한 선택이었다. 마리안이 현명하게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자, 바르바라는 그대로 손등을 내려치듯 자신의 졸을 C6으로 움직여 위험을 상기시켰다. 

 “기억해야 해 마리안. 자신은 스스로 지키는 거야. 너라면 알 거야.” 

 마리안은 대답 대신 말을 움직였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마리안의 대답이었다. 

 체스가 계속되었다. 바르바라는 늘 그렇듯 여왕을 움직여 차례로 말을 잡아냈다. 마리안은 자꾸만 기사를 움직였다. 지루해진다고 생각하던 바르바라는 어느 순간 턱을 괴던 자세를 고쳐 똑바로 앉았다. 마리안이 사냥꾼처럼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마리안의 부탁이 자신이 생각한 의미와는 다른 뜻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마리안은 이전과는 다르다. 마법을 얻었다고 해서 그 시절로 복귀하지는 않는다. 마리안의 수를 읽다가 그만둔 바르바라가 마리안의 여왕을 잡자, 마리안이 마침내 바르바라의 왕을 잡아냈다. 체크메이트. 바르바라는 왕을 잡은 마리안의 말을 확인했다. 마법사였다. 

 “교묘해졌구나, 마리안.” 

 마리안이 긴장을 풀고 의자에 누웠다. 

 “그건 칭찬이야?” 

 “칭찬 같니?” 

 “그렇진 않은데.” 

 “네가 그렇다면 그렇게 두렴.” 

 마리안의 피를 타고 흐르는 마법을 생각한다. 생명을 깎아 사용하는 것치고 마법은 썩 대단치도 않았다. 수지에 맞지 않는 거래다. 기적이 아니라 사기에 가깝다. 바르바라는 아까의 체스를 떠올렸다. 자신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꺼내들었던 마법사를 생각했다. 마법을 선택해야 한다면 가능한 마지막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 그러나 동시에 마리안이 마법을 선택했기 때문에 자신은 마법을 선택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이기 이전에 두 사람은 사냥꾼과 주민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만물을 무형으로 빚는 자와 무형으로 빚은 만물을 현실로 복귀시키는 자. 아침이면 마리안이 들고 돌아올 가죽을 생각했다. 발가벗겨진 마법을 바르바라는 찬물에 연거푸 씻어내 말릴 것이다. 그러고는 생각하겠지. 두려움을 구분해야 한다고. 

 “내가 나의 적일수도 있잖아. 무슨 뜻인지 알지?" 

 한니발을 괴담이 되게 내버려두지 않는 마리안. 무형의 존재를 향해 화살을 쏘는 마리안. 마법을 받은 마리안. 하지만 본래 사냥꾼은 자신의 일을 하는 법. 마리안이 바르바라를 필요로 하듯 바르바라는 마리안이 필요했다. 

 “알지. 알고 말고, 나의 동지.” 

 바르바라는 그 말의 뜻을 마리안이 완전히 이해했을 거라고 믿었다. 

201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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