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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나타난 곳은 유독 오목하고 경사진 지대로, 눈을 뜨자마자 앞으로 나아가려던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떨어질 뻔했다. 곤두박질치기 일보직전의 순간이었다. 어둠이 바로 내 아래에 깔려있었다. 나는 여섯 개의 손을 만들어 뾰족 튀어나온 부분을 붙잡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내가 전혀 겁을 먹지 않았던 게 기억난다. 온힘을 다해 그곳에 매달리던 순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실행했다. 그 행위는 아주 손쉽고 자연스러웠으며, 훗날 당신들이 ‘마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허공을 물처럼 가르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만큼 솟구쳐 올랐을 때, 나는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점점이 모여 나를 보고 있었다. 큰 자도 있었고 작은 자도 있었다. 눈이 부신 자가 있는가 하면 그닥 밝지 않은 자도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그 꼭짓점에서, 그들을 구성하는 수십억 개의 입자와 빛깔을 낱낱이 보았다. 그들이 제각각 일렁이며 팽창할 때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훗날 나는 그것이 집단에서 개인을 인식하는 개념을 깨닫는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나를 보살피기 위해 다가왔을 때, 나는 또한 그들에게서 뜨겁고 차가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곳에서는 온도라고 부르는 것이며, 또 어떤 곳에서는 피부라고 부르는 것이다. 개중에서 가장 차가운 자가 나에게 먼저 다가왔으므로 나는 내가 뜨거운 축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과 우리가 될 만큼 뒤섞였다. 우리는 기뻐했고 소리 쳤으며 비명을 지르더니 흐느끼기도 했다. 우리는 소리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을 교환했으며 종국에는 모두가 같은 온도가 되었다. 겪고 보니 나는 그렇게 뜨거운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한바탕 뒤섞였다 떨어졌다.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그들이 말했다. “너는 이제 곧 떨어질 거야.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알려줄게.” 내가 온몸으로 그것을 궁금해 하자 그들이 대답했다. “너를 움직이는 방법을.” 그들은 내가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너를 유지하는 방법을.”

 솟구치는 일은 겁 없이 할 수 있는 행위였지만 떨어지는 일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두려움을 느끼며 곤두박질쳤다. 그들이 나를 부드럽게 받쳐주었다. 그들은 내가 다치지 않게끔 보호했고 내가 두렵지 않도록 환하게 빛을 냈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 떨어지게 된다면 나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

 

 나는 자랐다. 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단어를 익혔으며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활용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이 전부 가르쳐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소리나 활자를 통해 구현되는 언어를 배우는 일이 우리의 사회에서 필수적인 사항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현 상태에 가장 가까운 단어를 고르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는데, 그것마저도 상대에게 온전히 이해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언어란 본질에서 오해를 확장시키는데 기능하고 있었다. 그것은 대화에 상상력을 동원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는 만들어주었으나, 소통의 도구로는 다소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더 좋은 방식이 있었다. 사실상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일은 언어가 가진 오해의 가능성을 깨닫는 과정에 가까웠다.

 나는 스물한 살에 처음 인간을 보았다. 차원을 두 번째로 넘었을 때의 일이었고, 그때 나는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자로 다른 자들에 비해 지독하게 심심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내가 그곳으로 이동한 건 순전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나의 상태로 존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 문제는 내가 몸을 갖추면서 해결되었다. 어떤 모습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으므로 나는 단지 덩어리가 되어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런 후 그곳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가장 먼저 나타난 존재의 모습을 흉내 냈다. 나는 땅을 딛을 두 갈래의 다리와 빛을 인식하는 눈, 만지기 위해 필요한 두 팔과 공기를 마실 두 개의 구멍, 그리고 난데없이 벌어진 큰 입을 만들어냈고 그 기관들을 사용하며 새로운 기분을 맛보았다. 나는 공기가 내 안을 드나들 때마다 몸이 부풀어 올랐다 꺼지는 것을, ‘움직이겠다’고 생각하면 한참 후에야 몸이 움직이는 것을(그 과정은 언어의 기능과정과 비슷했다, 언어보다 훨씬 더 빠르게 기능하고 있었지만), 두 손으로 물건을 집어 올렸을 때 가해지는 무게감에 근육이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폴짝폴짝 뛰었고 아무거나 맛보았고 땅바닥에 뒹굴기도 해보았다. 그러다 걷기 시작했고 내가 흉내 낸 자들과 만났다. 그들이 바로 인간이었다.

 그 후에도 종종 나는 인간들의 차원을 방문했다. 항상 인간으로 있지는 않았다. 때로 나는 다른 존재로서 태평양에 있었고 또 어떤 때는 작은 존재로서 땅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일 적에 벌어지는 일들이야말로 혼란의 연속이었으며(그래서 재미있었다) 여러 일을 겪으며 나는 인간사회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노소와 남녀의 구분이 있었고 어린 아이보다는 성인이, 여성 보다는 남성이 드나들거나 발언할 수 있는 장소를 많이 소유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보다는 노인으로, 남자보다는 여자로 있는 것을 좋아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되자 남성으로 더 자주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시 인간사회로 내려가야 했을 때, 다만 이번에는 인간이 아닌 마법사로서 인간의 흉내를 낸다는 조건 하에 내려가게 되었을 때, 나는 인간 여자의 모습으로 나를 만들어냈다.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얼마 전까지 나와 함께한 자들, 그들, 그 빛 무리들, 나의 일원들, 우리들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그곳은 어린 인간들을 가르치고 교육시키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교육은 내가 겪어온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소 비효율적이면서 느린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이해했고, 그래서 나를 보호하고 ‘책임’지게 될 그를, 변재구를 만났을 때 자연스럽고 익숙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가 떨어지는 누군가를 반드시 붙잡을 우리들과 같았기 때문이며, 그가 내 미소를 보고 따라 웃어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음, 좋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오, 저도 좋아요.”

 변재구는 내 대답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지만 종이를 매만지며 할 말을 이어갔다.

 “음, 그러니까… 힘썬. 썬이. 이름 썬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그때 내 머리카락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나는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빗으며 당황한 변재구를 안심시켰다.

 “오, 괜찮아요, 이건- 정전기 때문이에요.”

 변재구는 전혀 안심하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보였다.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게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고, 내 모습이 마치 인간들의 괴담 책에나 나올 법한 크라켄 같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는 결국 마법을 썼다. 내 머리카락 위를 부유하던 전기는 모조리 사방팔방으로 흩어졌고 나는 다시 단정한 모습으로 면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말했다.

 “좋아요.”

 그래서 변재구는 다시 내게 이름에 대해 물었다.

 나는 가능하면 그가 내 모든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한국에 거주하는 인간의 통상적인 이름으로 보이기 위해 일부러 두 글자로 맞추어 작명했기 때문이다. 변재구는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보통 ‘우리 같은 사이’에서도 존칭을 쓰냐고 물었고, 변재구는 이번에도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글쎄요… 저는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요.”

 물론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처음이다.

 “음, 어쨌든 여러분과 한 명씩 면담을 해야 한다고 들어서, 제가 질문을 준비해봤어요.”

 변재구가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가 직접 질문을 하나하나 적어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편은 아니었다.

 “우선… 인간 친구들과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나는 손바닥을 펼치고 네 가지 정도를 말했다.

 “음악을 배우고, 수영을 하고, 농담을 배우고 싶어요. 하지만 대화를 많이 하고 싶군요.”

 나는 덧붙였다.

 “가능하다면.”

 변재구는 나의 대답에 여태껏 빳빳이 들어 올리고 있던 어깨를 쭉 내렸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가 물었다.

 “힘썬이는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죠?”

 나는 이번에는 두 손바닥을 전부 펼치고 두 번에 걸쳐 손가락을 전부 접었다 펼쳤다. 스무 개 정도의 장점을 말하고, 가장 잘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오, 저는 정말 훌륭히 관찰해요. 절대 실수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 변재구의 어깨가 빳빳이 올라갔지만 이번에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헛기침을 한 후에 이번이 마지막 질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물었다.

 “음, 힘썬이는 인간들의 차원에 방문해본 적 있나요?”

 물론이다.

 “나쁘지 않았어요.”

 나는 그에게 내 방문기에 대해 늘어놓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것이 그를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변재구가 종이를 내려놓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제가 면담을 잘 해냈나요?”

 직접 목소리를 내고 보니 그것이 무척이나 걱정스럽게 들려 나는 적잖이 놀랐다. 변재구는 내 감정적인 동요에 조금 놀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 그 역시 나의 목소리에서, 나의 불안에서, 나의 기대감과 동요에서 내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느낌을 받은 듯했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구석이 많고, 누군가 떨어지면 반드시 붙잡을 자라는 것이다.

 “물론이죠.”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잘 지내보자.”

 

 학교 앞에서 나는 돗자리를 깔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신구를 팔고 있는 늙은 여인을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돈을 주고 머리 삔 하나를 샀다. 그것을 내 손으로 뭉갠 다음,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었다. 내 머리카락이 다시 솟구쳐 오르고 있었으므로 나는 재빨리 삔을 꼽고 머리를 하나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러자 내 머리카락이 다시는 솟구쳐 오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날아올랐다. 몸을 돌려 내려다보면 내 발 아래에는 높은 빌딩 몇 채와 아파트, 주택단지와 구불구불한 도로가 있었고, 남쪽으로는 넓게 경작된 땅이 펼쳐져 있었다. 전부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행성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유지하고 있는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들고,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는 존재에 대하여. 발생하지 않고 탄생하는 이들에 대하여. 어둠 속에서 태어나 축축한 상태로 몸을 구성해가는 그들에 대하여. 자궁에서부터 벗어나 다리 사이로 떨어지는 당신들의 태어나는 두려움을 생각했다. 태어나는 외로움을 생각했다. 그러자 떨어지거나 솟구치는 일은 실상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인간 역시 ‘그들’이 아닌 ‘우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 당신들을 ‘우리’로 부를 수 있었다.

 따라서 나는 결코 멀거나 상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며, 어깨를 움츠리거나 빳빳하게 세울 미지가 아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이웃이고 앞으로 당신들 역시 우리를 이웃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가까이서 왔다.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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