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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처음에 방문했던 차원은 우리의 차원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빛과 어둠의 구분이 명확했고, 살아있는 존재들은 그 안에서 번성했으며, 그들이 사회를 이루고 지식을 세대에 걸쳐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구의 차원도 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므로 빛과 어둠을 구분하고자 생겨난 인식이 세대에 걸쳐 지식으로 확장되는 건 어느 차원에서든 동일한 과정일 지도 모른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의 차원에서 누군가 자리를 비우는 일은 심심찮게 일어났으므로 그것은 특별히 안타깝거나 공허한 사건은 아니었다. [  ]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먼저 갈게. 다시 만나.” 그러니까 나는 [  ]이든 <  >이든, 언젠가 모두는 이곳에서 떠날 때가 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의 차원에서는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루함을 견디고 있었는데, 특히 떠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도착한 줄 알았다. 그곳이 끝없이 어두웠고 침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내가 떨어진 구역이 바깥이 아닌 내부, 그것도 누군가의 내부인 것을 깨닫고는 솟구쳐 올랐다. 진득진득한 액체가 나를 잡아당기듯 끌려올라가다 뚝 끊어지더니 아래에서 철퍽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을 틀어 그들을 내려다봤다.

 그들은, 그러니까 그 차원의 거주민들 말이다,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었냐면, 붙어있었다. 하나의 덩어리로 붙어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서로가 뭉쳐 만들어진 거대한 몸 덩어리 안으로 작은 덩어리들이 흘러 다니는 것이 보였는데, 아마 그 작은 덩어리들이 개개인, 요컨대 인격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은 몸을 하나로 뭉쳐놓고 그 안에 사회적 시설을 건설해 나누어 쓰고 있었다. 육신으로 거대한 방어막을 만들고, 인격(아마 인간들은 이것을 영혼이라고 할 것이다)이 그 안을 흘러 다니며 생활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과 비슷한 몸을 흉내 내어 만든 뒤 자진해서 그 안으로 떨어졌다. 철퍽, 소리와 함께 몸이 퍼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갑자기 모든 감각이 말도 안 되게 아주 커지고, 넓어지고,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이 하나가 되는 감각이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었다. 아래로 흘러가던 작은 덩어리 하나가 천천히 부유해 표면에 붙어있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 자가 말을 했지만, 알아듣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잠시 후 이곳의 언어를 어느 정도 터득한 내가 물었다. 안을 보고 싶은데, 이 모습이 아니면 안 되는 거니. 그러자 그 자가 말했다. 안 될 것도 없지. 그런 후에 덧붙였다. 대신 를 놓아야만 해. 그러자 갑자기 그 안을 흘러 다니던 모든 자들이 나를 향해 그것을 반복했다. 안 될 것도 없지, 대신 를 놓아야만 해. 안 될 것도 없지, 대신 를 놓아야만 해.

 나는 살면서 수많은 차원을 넘나들었는데, 내게 있어 가장 최초의 차원은 바로 우리의 차원이었고, 두 번째 차원은 하나의 덩어리들이 군집해 사회를 이루는 차원이었으며, 세 번째 차원이 바로 지구의 차원이었다. 우리의 차원과 두 번째 차원의 동일한 점은 분쟁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일시적으로 뒤섞이는 방식 도덕으로써 성취했지만, 두 번째 차원의 거주민들은 완벽히 하나가 됨으로써 그것을 성취했다. 하나의 몸을 구성하고 동일한 육신 안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점차 그 육신에 필요 없는 것과 필요한 것의 구분이 명확해졌고, 대신 개개인의 기호와 사상은 희미해졌다. 어쨌든 그들은 행복해보였다. 마법사들처럼 지루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곳에서 내가 알아낼 수 있던 건 다만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하나의 몸이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재미있어보였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그러니까 나는 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인식하기에 비로소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을, 그게 나의 욕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의 차원과 지구의 차원의 동일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개인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 ‘가 있다면 가 있고, ‘우리가 있다면 그들이 있다. 다만 인간들은 마법사들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쉽게 분쟁하고 증오한다. 하지만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개인을 유지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인간들 역시 마침내는 도덕에 대한 논의 끝에 도달할 거라고 믿는다. 다만 그 과정을 나는 태어나서 겪어본 적이 없다. 우리의 존재는 선함을 타고나 끝없이 도덕을 배우며 자라왔다.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선조가 획득한 지식을 전승받아 그것에 기반해 우리를 정체화 한다. 우리에게는 고난이나 투쟁이라 할 게 없었다. 개인으로 존재했지만 개인이 획득할 수 있는 역사가 많질 않았다. 어쩌면 우리의 지루함이란 그 상태를 의미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마법사 개인이 느낀 감정과 사상과 입장을 제외하고, 결국 마법사라는 존재가 공통적으로 가진 지루함이란 마법사 전체의 역사다. 그리고 그 지루함을 해소하고자 끊임없이 움직여온 나의 역사 역시 마법사의 역사다. 나의 집단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다.

 어쩌면 이제 그것에 지루함이 아니라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개인이 개인의 역사를 찾고자 하는 욕망을 지루함이라 부르지 않기 위해 지구에 왔다. 여러분을 만났다. 인간의 사회를 알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지구에서의 나의 역사는, 나의 집단이 아닌 나 개인의 역사로 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나를 포함해 지구로 내려온 나의 친구들은 확실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존재의 모습을, 인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마법사라는 집단에서 멀어져 있다. 이렇게나 오래 멀어진 적이 없었다. 난 어느 때보다 로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니, 나의 역사는 내가 힘썬으로 존재하기로 결심한 후부터 새롭게 다루어져야만 한다.
 나는 그것을 개인의 역사로 부를까 한다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이 교탁을 내려와 하게 될 이야기는 바로 여러분과의 이야기다.

19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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