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티스토리 뷰


 18.07.04

 아주 오래 전부터 작가 안에 내제된 이야기임이 분명한, 지극히 현실적인 그러나 반드시 소설인 작품. 페란테가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그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녀의 인생이 소설을 추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덧붙여 그녀 자신에 대한 것은 이미 소설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궁금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진실하고 그렇기 때문에 충격적이다. 매료되는 것을 넘어 빨려들어가 읽었고 매순간 전율했다. 절대 이 책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지만 결국 끝나버리고 말았다. 책이 끝났단 게 서운해서 처음으로 울어보았다.

 나는 릴라보다는 레누차에게 더 이입했고, 특히 작중 레누차(특히 4부)의 소설쓰기에서 페란테와 무척 밀접한 지점에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4부의 레누차는 페란테 그 자체로 봐도 무방할 듯 싶다. 레누가 릴라와의 이야기를 차츰 소설로 끌어오게 되면서부터 벌어진 딜레마와 여러 갈등들은 레누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페란테의 경험과 삶에서 비롯된 재료들임이 느껴졌다.


 <나의 눈부신 친구> 

 큰 굴곡이 있기 전이고 사소한 일들이 팽창되어 하나의 마법처럼 느껴지기 때문인지 4부작 중에서도 가장 애정이 간다. 마지막 부분에서 안 된다고 소리지르며 읽었던 듯. 좋았던 구절이 너무 많은데 읽으면서 메모를 안 해놔서 옮기기는 힘들 것 같다. 아래는 당장 기억나는 부분들을 옮겨보았다.


 3월 12일이 되었다. 벌써 봄기운이 느껴지는 따스한 날이었다. 릴라는 내게 그녀의 부모님 집으로 와서 씻고, 머리 손질 하고, 옷 입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어머니를 내보내고 우리 둘만 남았다. 팬티와 브래지어 바람으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릴라 옆에는 시체같이 보이는 드레스가 있었다. 그녀 앞에는 육각형 타일 바닥 위에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물이 가득 찬 구리로 된 욕조가 놓여 있었다. 릴라가 느닷없이 물었다.

 "내가 잘못하는 걸까?"

 "뭘?"

 "결혼하는 것 말이야."

 "아직도 증인 문제를 생각하는 거야?"

 "아니. 올리비에로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어. 왜 나를 집에 들여보내지 않은 걸까?"

 "그거야 선생님은 성질이 고약한 노인네니까."

 욕조에서 반짝이는 물을 바라보며서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넌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2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해. 그러면 끝이지."

 "아니. 절대로 멈추지 마. 필요한 돈은 내가 줄게. 넌 항상 공부해야 해."

 나는 조그맣게 웃어 보인 후 릴라에게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언젠가는 학교 공부를 마칠 수밖에 없어."

 "넌 아니야.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p.691 (리디북스)


 제목의 의미를 적절한 타이밍에 오로지 작품 내에서 설명하고, 서사를 통해 제목에 힘을 실어주는 일은 모든 장편 작가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해가 지는 곳으로> 읽고 크게 실망했는데 (진짜 졸작이라고밖엔 할 수 없었던 소설..) 나폴리 읽고 기분 나아짐.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릴라가 카라치의 성에 흡수되어갈 무렵에 벌어진 이야기들. 4부 다음으로 비극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사라토레 집안을 욕하면서 분노폭발 상태로 읽게 됨. 나는 니노를 만들어낸 페란테의 재능에 충격을 받았다. 하.. 니노가 죽었어야 했는데 그 때 그 다리미에..

 장점 : 빨리 읽을 수 있음 / 단점 : 기분 좃같음

 릴라랑 절교할 거라고 막 소리 지르면서 읽었음; 릴라랑 화해 절대 못 한다고 이제 릴라 싫어한다고 막 소리지르고 레누 막 껴안고 울면서 읽음. 좋았던 장면.. 역시 메모 안 해놔서 생각나는 부분 하나만 따로 옮겨놓는다.


 알폰소는 고무줄로 묶은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다. 힘든 수업 때문에 얼굴이 야위어 있었다. 저렇게 섬세해 보이는 알폰소도 가슴속에 아버지 돈 아킬레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 걸까. 부모란 존재는 영원히 죽지 않고 자식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내게서도 언젠가 절뚝거리는 어머니의 걸음걸이가 운명처럼 나타나지 않을까.

 나는 알폰소에게 물었다.

 "네 형이 리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봤어?"

 알폰소는 수치스러워했다.

 "응."

 "알고도 가만히 있었던 거야?"

 "리나가 형을 어떻게 대하는지 봐야 해."

 "너라면 마리사에게 똑같은 짓을 하겠어?"

 알폰소는 수줍게 웃어보였다.

 "아니."

 "정말?"

 "그렇다니까."

 "왜?"

 "왜냐하면 나는 너를 아니까. 너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함께 학교에 다니니까."

 p.120


 너무 아름다워.. 전율 그 자체.. 교육받은 레누차는 나폴리에서 상징성을 가지게 됐고 릴라의 말대로 눈부신 친구가 되었다. 알폰소는 레누차에게 그것을 직접적으로 고백한다. 릴라 다음으로. 

 종종 릴라가 행복할 때 레누는 불행하고, 레누가 행복할 때 릴라는 불행하다. 이 불평등은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인생을 달리다 말고 서로를 흘끔거릴 때 발생하는데, 2부<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이 불평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서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릴라는 가난의 되물림으로부터 발생하는 폭력의 역사를 막아보기 위해 개인으로서 최대한으로 노력한다. 릴라 자신은 그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만(그리고 결국 정말 그렇게 되지만) 아다에게 스테파노의 집을 내어줌으로써 아다가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되물려 받는 것은 막아줬다는 생각. 릴라 자신의 의지로 부모와 자식 사이를 비추는 거울을 깨버린 것이다. 

 어쨌든 결말 보고 릴라 때문에 소리 지르고 막 울고 빡쳐서 막 사방팔방에 하소연했음. 그리고 릴라랑 절대로 화해 안 할 거라고 막 비명 지르면서 3부로 넘어갔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시작부터.. 릴라랑 화해했다. 그리고 브루노는 개자식이다.

 두 사람의 청년기-중년기 초반을 다루고 있는데 릴라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마치 나이를 먹을 수록 시간이 물처럼 흐른다고 느끼듯이 소설도 3부에 접어들자 더 이상 뭔가에 반응하거나 작성하면서 볼 여유가 없게 되었다. 마치 기차에 앉아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바라보듯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1부 2부 때까지는 내가 레누와 릴라의 사이에 앉아 그들의 적극적인 청자가 되는 기분이었다면, 3부는 마치 영화관에 온 사람처럼, 나는 작품 밖으로 밀려나 작가가 보여주는 장면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는 없다. 이탈리아의 정치적 격동기를 담고 있고 무척이나 혼란스럽고 음울한 동시에 소란스럽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괴로워.. 시발 나는 괴롭다.. 최종장 읽고 나서 너무 슬퍼서 소파에 엎드려서 엉엉 움 ㅠㅅㅂ이렇게 끝날 순 없다 릴라와 레누를 돌려내란 말이다 릴라랑 레누를 너무 사랑해 아직 헤어지고 싶지 않아!! 4부는 레누와 릴라 외에도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잃게 되는 편이다. 마음에 남은 부분 몇 개만 옮겨놓음.


 다음 날 프랑코는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저녁에 일약속이 있어서 노크를 하고 프랑코에게 데데와 엘사의 저녁식사를 부탁했다. 프랑코는 내게 아이들의 저녁을 챙겨주겠다고 했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보니 평소와는 달리 부엌이 엉망이었다. 나는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그 날 밤 나는 오래 자지 못하고 새벽 6시 경에 눈을 떴다. 화장실에 가려고 프랑코의 방을 지나가는데 공책에서 찢어 낸 의문의 종이 한 장이 압정으로 방문에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종이에는 '레나, 아이들을 들여보내지 마'라고 쓰여 있었다. 

 (중략)

 프랑코는 달랐다. 그는 나와 동시대를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러한 지친 퇴장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정도가 아니라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가 세상에 남긴 유일한 메모를 생각했다. 그 글은 내게 남긴 것이었다. 프랑코는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방에 들어와도 되고 자신의 모습을 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직도 나는 그가 남긴 중의적 명령에 대해 생각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명확한 명령이었고 다른 하나는 함축적인 명령이었다.

 p.286


 임마가 태어난 지 두 달이 조금 지난 어느 날 아침 어머니가 내게 가냘픈 소리로 말했다.

 "레누, 이제 나는 정말로 행복하구나. 이제 내 걱정은 너밖에 없다. 하지만 너는 너니까. 너는 언제나 네가 원하는 대로 상황을 바로잡았지. 그러니 나는 너를 믿는다."

 어머니는 그대로 잠이 든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 어머니는 그 상태로 며칠을 더 버텼다.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임마와 함께 어머니 병동에 있는데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숨소리가 멈추지 않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 소리는 병원에서 들리는 일상적인 소리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 소리를 참지 못해 그날은 울면서 집에 계셨다.

 (중략)

 나는 어머니의 무게 때문에 평생을 거대한 바위에 눌린 벌레처럼 살아왔다.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보호와 억압을 동시에 받았다. 나는 이제 그만 어머니가 헐떡거리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 당장 그렇게 되기를 빌었다.

 놀랍게도 내 바람은 현실이 됐다. 갑자기 병실에 정적이 흘렀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일어나서 어머니 곁으로 다가갈 힘이 없었다. 그때 임마가 입술을 오물오물 빨면서 정적을 깨뜨렸다. 우리 둘, 그러니까 나와 잠결에도 아직 내 자신이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느끼고 싶어 내 젖가슴을 열심히 찾는 내 아이는, 그 병든 공간에서 어머니가 남긴 것 가운데 유일하게 건강하고 살아 숨 쉬는 것이었다.

 마침 그날 나는 어머니가 20년도 더 지난 먼 옛날에 내게 선물해준 팔찌를 차고 있었다. 평소에는 시어머니 취향인 세련된 장신구를 착용했기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그 팔찌를 찬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어머니에게 받은 그 팔찌를 자주 찼다.

 p.609


나 역시 어느 날 열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내게 몬테산토에 있는 금은방에서 보내온 상자를 가져다줄 때까지 그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처음에는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는 빨간 상자와 '엘레나 그레코 선생 앞'이라고 쓰인 봉투를 보고 놀랐다. 카드를 읽고 나서야 나는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카드에는 '미안해'라는 한 마디만 쓰여 있었다.

 마르첼로는 글씨를 정성껏 눌러 쓴 다음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자기 이름의 'M'자를 멋들어진 필기체로 서명했다. 상자 속에는 내 팔찌가 들어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광을 냈는지 새것 같았다.

 p.1055


 "아이가 몇 년 살다 죽으면 죽는 거야. 그걸로 끝이지. 언젠가는 포기하게 돼. 하지만 아이가 사라져 버린다면, 그러고서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되면 살면서 그 무엇도 아이의 자리를 내신할 수 없게 돼. 티나는 돌아올까 아니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까? 돌아온다면 살아서 돌아올까 아니면 죽어서 돌아올까?"

 엔초가 속삭였다.

 p.1152


 독자들은 엔초와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된다. 릴라가 사라져 버리고, 우리는 더 이상 릴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릴라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래서 포기할 수가 없게 된다. 릴라가 티나를 잃어버린 순간부터 독자인 나는 이미 릴라를 잃어버렸던 걸지도.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레누와 릴라를 번갈아 상실한다. (글의 서두에서부터 우리는 릴라를 잃은 채로 여정을 시작하지만, 곧이어 새로운 릴라, 레누가 재구성한 익숙한 세계의 릴라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것마저 4권에서.. 잃어버렸다고 독자들은!!!) 우리가 결국 잃어버린 것은 사랑하는 릴라와 레누차고, 포괄적으로 나폴리 전체다. 나폴리를 구성하던, 우리의 유년과 익숙한 세상을 구성하던,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람들의 형태를 잃어버린다. 결국 모든 것은 릴라 말대로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경계가 해체되고 형태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시대의 흐름과 인생의 무게 앞에서 우리는 종종 그런 식으로 길을 잃거나 존재를 말살당한다.

 작중에서 릴라는 끊임없이 달아난다. 릴라는 자신의 경계와 형태를 잃는 일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그녀의 예민하고 영특한 감수성은 이 공포를 보다 감각적인 체험으로 되살려놓는다. 따라서 릴라는 자신을 지킬 무언가를 줄곧 필요로 해왔다. 하지만 자본도 사랑도 그녀를 완벽히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카라치의 이름으로부터, 사라토레의 이름으로부터, 자신을 흡수하려는 모든 이름들로부터 도망친다. 종국에 릴라는 티나를 잃어버림으로써 엔초에게조차 흡수되지 않는다. (애초에 엔초는 릴라를 흡수하려 들지 않고 그녀의 형태를 정말로 지켜주려는 쪽이었기 때문에 서사적으로는 엔초가 릴라를 떠난 것으로 받아들였음.) 그리하여 마침내 릴라는 레누차에게서조차 달아나고 만다. 레누차가 그녀를 흡수하려고 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릴라는 지금 어디 있을까? 릴라는 정말로 도망치는데 성공한 걸까? 아니면 정말 흡수당해버린 걸까. 


 레누차의 <어떤 우정>은 오랜 시간 레누를 괴롭혔던 생각, 자신은 릴라의 그림자에 가려진 존재이며 자신의 빛나는 부분들은 릴라를 흉내낸 모방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는 공포를 떨쳐내고,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릴라같은' 자신의 부분을 "오로지 나였다"고 긍정한 결과물이다. 릴라는 <어떤 우정>이 단순한 소설이 아님을 꿰뚫어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릴라는 <어떤 우정>을 자신을 흡수하려는 레누의 시도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토록 저항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릴라가 레누차의 삶이었듯 레누차 역시 릴라의 삶이었다. 삶은 끊어내거나 도망칠 수 없다. 레누는 잘라내거나 도망칠 수 없다. 그러므로 릴라가 사라져야한다. 따라서 4부 말미에 다다르면 릴라의 증발은 꼭 레누의 흡수와 연결된 사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릴라는 레누에게 인형을 돌려줌으로써 둘의 관계를 평형한 상태로 돌려놓는다. 인형은 레누에게 무한히 작용하던 릴라의 눈부시고 증오스러운 권력의 상징이다. 어쩌면 릴라는 자신을 흡수해 그녀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레누의 시도를 어느 정도는 인정한 것이 아닐까. 인형을 남기고 떠남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순간부터 레누와 나는 영영 릴라를 잃고 마는 것이다. 동시에 마음속에 흡수한 채로.



comment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