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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나스와 프웨이에서 돌아온 후, 아나렉샤는 꿈을 꾸었다.
요나스가 나오지는 않았다.


2.

고백하자면 가족이 있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본 적 있다.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가든 시절 로맨스 드라마를 보면서였다. (돌이켜보면, 가든 시절 보았던 이 오락 프로그램은 아나렉샤에게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매체가 그려내는 혈연관계는 꼭 한 군데 씩은 주인공과 닮아있었다. 대표적으로 눈동자나 머리카락 색이 그랬다. 사소한 습관이나 말버릇이 비슷하다고 묘사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게 시청자들이 섬세하게 찾아내야만 알 수 있는 조건들은 곧잘 배제되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아나렉샤가 깨달은 건 혈통이란 굉장히 직관적으로 인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로 닮지 않은 아이 둘을 세워놓고 오늘부터 너희 둘은 가족이라고 말해봤자 신빙성이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혈통을 증명할 게 필요했다. 그렇다면 눈동자나 머리카락 색으로 증명하는 편이 가장 간편할 것이다. 드라마란 바로 이런 틀 안에서 구조적으로 가족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게 틀림없었다.

어쨌든, 가족의 개념을 알게 된 아칸의 아이들이 한 번쯤은 그렇게 하듯이, 아나렉샤 역시 생각해본 적 있다. 자신의 혈통 말이다. 하지만 곧 그만두었다. 가족이 있다는 건 도무지 부정하거나 어찌 수습할 수도 없는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근원이 없다면 찾아나설 수도 있다. 그런 소설이나 드라마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나렉샤가 근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제국이 아나렉샤의 근원을 대신했다. 그들은 태어난 이유와 삶의 방향을, 가든-ACOTS로 이어질 생활의 터전과 적절한 교육을 제공했다. 가족의 빈자리를 체감하기에 아나렉샤는 무척 편안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원래부터 그녀는 썩 외로움을 타는 사람도 아니었다. 아나렉샤의 가족 찾기는 이틀도 채 되지 않아 종지부를 찍었다. 가든을 떠나면서 그 사안은 거의 수면 밑바닥에 침체되어 기억으로부터 소거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나스를 만났을 때, 아나렉샤는 아주 잠깐 그 삐죽 솟은 적발과 빛나는 회색 눈동자를 보며 불현듯 아, 나 불을 켜놓고 방에서 나왔던 것만 같아, 쯤의 감상을 떠올렸지만 구체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떠올렸는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아주 오래 전 만들다내다 만 가상의 오빠-언니-동생의 존재가 수면 위로 올라온 건 요나스와의 대화가 한참은 더 진행된 후였다. 그것들은 너무 오래 전에 만들어서 형태가 전부 흐물흐물했다. 얼굴을 알아보거나 형체를 어루만질 수조차 없었다. 가족이란 개념은 낯설고 미끄러워서 아나렉샤가 체감하기에는 너무 먼 것이 되어있었다.


3.

하지만 요나스가 될 꿈이기는 했다.


4.

상상의 가족들은 모두 붉은 적발에 회색 눈을 가지고 있다. 아나렉샤처럼 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여러 각도로 빛이 나는 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눈도 있다. 어릴 때에는 자신의 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호와 희망에 따라 상상력을 발휘하다보면 아나렉샤는 금방 혈통 깊은 집안의 자제가 되었다. 

요나스는 밝은 적발을 가졌고, 아나렉샤처럼 과하게 반짝거리는 눈 대신 적절한 회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나렉샤는 요나스와 자신이 파편적인 특징을 제외하고는 닮은 점이 요만큼도 없다고 생각했다. 같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을 가진다고 다 가족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걸 오히려 요나스를 통해 배웠다고나 할까. 성격적인 부분도 그렇다. 생활 습관도, 평소 태도도, 좋아하는 음식이나 색깔도 달랐고 좀 더 따지고 들어가면 훨씬 더 많을 거였다. 

하지만 아나렉샤는 요나스와 혈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을 좋아했다. 패드를 펼치고 가족의 개념을 꼼꼼하게 짚으며 함께 고민하는 그 우스꽝스러운 시간이 좋았다. 확률을 따지며 오늘의 우리가 얼마큼의 근원을 공유하는지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어릴 적에 그렇게 금방 가족 찾기 놀이를 그만둔 건 상상을 함께 할 친구가 없었기 때문일 지도 몰랐다. 느세파 가든에서 아나렉샤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고보니 다른 아이들이 서로 우리가 형제나 자매일 지도 모르겠다고 으스대는 과정에서 아나렉샤는 한 번도 소리내어 말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의기소침하게 대꾸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 없어. 근원이 있다면 제국이야. 돌이켜보니 그건 그냥 오기였던지 싶다.

그래서, 아나렉샤는 요나스와 계속해서 닮은 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조금은 노력했다. 물론 아나렉샤는 요나스와 자신이 가족일 리가 없다고 굳게 믿었다. 정말이지 한 군데도 닮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읊고 있는 60%라던가 85%는 단지 관념적인 개념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두 사람이 노력한 수치였다. 바꾸어 말하자면 요나스와 아나렉샤가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 다소 우스꽝스러운 방법에 대한 수치라고 말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린 얼마 정도의 '서로를 소중히 여길 위험'에 처해있지? 아나렉샤는 종종 그것을 이렇게 바꾸어 물었다. 오늘은 몇 %야? 


프웨이에서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가 떠오른다. 요나스가 어느 순간에는 정말로 아나렉샤가 탐구하는 '가족'의 개념에 가까워져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요나스는 아나렉샤의 두 눈을 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면 안되는 건가? 거의 다왔다고 생각했다. 아나렉샤는 요나스에게 고백할까 했다. 있지, 요나스, 우리는 정말로 가족은 아닐 거야. 나는 사실 말이야, 이 일이 단지 너와 있는 게 즐거워서 시작한 일이었단 말이지… 하지만 그러지 못 했다. 대신 요나스가 진지하게 가족의 개념을 고민하듯이, 아나렉샤 나름의 진지함으로 그 질문을 받아쳤다. 

요컨대 우리는 아칸의 아이들이라는 소리다. 가족을 찾거나 탐구할 필요가 없었다. 제국이 곧 그 근원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제국이 자리를 대체할 다른 근원을 찾는다면 앞으로가 곤란해질 지도 몰랐다.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제국이 아니라 한 사람만이 남을 테니까. 아나렉샤는 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게 될 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한 적 있다. 그리고 요나스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지도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그건 안 된다. 요나스의 손에 죽어줄 수는 있었다. 반대로 요나스를 직접 처리하거나. 

"그게 85%쯤 되는 누나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해."

그것은, 무척 슬픈 일이겠지.

아나렉샤는 책임이란 그처럼 무겁거나 괴로움에도 마땅히 짊어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프웨이에서 ACOTS로 돌아오는 셔틀 안에서, 아나렉샤는 역시 조금 후회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 걸 그랬어.

처리나 제거를 발음할 때 고개를 숙이던 요나스의 모습. 어쨌든 두 사람은 여전히 85%였다. 그건 서로를 소중히 여길 위험에 대략 85%정도 처해있다는 뜻이었고… 아나렉샤는 거기다 대고 날 죽이거나 널 죽여도 아랑곳하지 말자고 섬세한 구석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선언을 내뱉은 셈이었다.


6.

그 날 밤 아나렉샤는 물가에 앉아있었다. 아주 잔잔한 수면이었고 안개가 자욱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이 그러하듯 어딘지 풍경들이 전부 바싹 낡아있었다. 호수 중앙으로부터 무언가 솟구쳐 오르는 건 그때다. 보글보글 거품을 뿜으며 그것들이 시체처럼, 바람이 든 비누처럼, 넝마처럼, 아나렉샤를 향해 온다. 아나렉샤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들을 만져보려고 애쓴다. 축축하거나 미끄러운 그것들을. 하지만 제국은 안아줄 품이나 따뜻한 손바닥, 아름다운 적발과 투명한 회색 눈동자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육화肉化되지 못 한다. 그것들은 단지 흐물거리는 채로 거기 서있을 뿐이다. 그럼 아나렉샤는 마침내 축축한 손으로 깨닫는 것이다. 아, 이것을 근원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구나. 근원이라는 건 이토록 관념적인 것으로서 대체할 수가 없는 것이구나. 제국이 나에게 빼앗아놓고 제공해줄 수 없는 무언가를… 이 손으로 잡으려고 이토록 애썼었다니.

정말이지 이상한 꿈이었다.


7.

번뜩, 잠에서 깬 아나렉샤는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 6시 반이었다. 다시 잠들기엔 뭐한 시간이었고, 이미 창가는 푸른 새벽의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아나렉샤는 허공을 떠다니는 먼지를 세다 말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 새벽, 천천히 복도를 가로지르며 요나스 생각을 했다. 복도 끝으로 향하면서, 오늘은 요나스가 복도 중앙에서 스트레칭을 해주기를 바랐다. 요나스가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달려와 정다운 얼굴을 했는지를 제대로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가 여전히 85%라는 걸, 나의 근원은 제국이 아니라 사실 만지고 껴안을 수 있는, 나와 이 우스꽝스러운 근원 찾기를 함께 해주는 너에게 더 적합하다는 걸, 그러므로 너를 잃게 된다면 무척 슬플 것이라는 사실을 요나스에게 제대로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1학년 중반 어느 새벽, 복도를 서성거리면서 아나렉샤는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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