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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종종 드라마를 보았다. 느세파 가든이 오전마다 유행이 지난 통속극 몇 편을 틀어줬기 때문이다. 영상매체 속 장교들은 종종 지나치게 변화무쌍한 감정상태를 경험했고, 운명처럼 등장한 상대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한편 나니아 출신들은 열약한 환경 속에서 항상 씩씩하게 성장했다. 그들의 굳센 성정은 훗날 자신을 사랑하는 장교가 흔들릴 때면 정신적 지지자 역할을 하게끔 사용되었다.

어쨌든, 모든 드라마가 표면적으로 사랑과 연애의 낭만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실상 뜯어보면 비슷한 이데올로기를 갖추고 있었다. 바로 그 모든 로맨스의 주인공이 함선을 탄 장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함선을 탄 자가 곧 낭만과 모험의 중심이었다. 

일상적으로 드라마를 보던 늦은 오전, 아나렉샤는 문득 그것을 깨달았다. 장차 아이들을 군인으로 길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기관이 한가로운 오전에 기꺼이 드라마 한 편을 틀어주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숨어있던 것이다. 어쩌면, 굳이 가든 아이들에게 국한된 사항이 아닐 지도 몰랐다. 아칸 제국이 원하는 가장 보편적인 인재상이란 바로 함선의 장교일 테니까 말이다.

아나렉샤는 자신의 태생에 감사했다. 그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계획된 존재이므로 노력만 하면 못 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보는 다른 아이들 역시 이 사실을 깨닫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그 후에도 아나렉샤는 종종 바닥에 엎드린 채 영상을 시청하곤 했다. 가끔 콘스탄틴이 곁에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럼 때때로 그 애에게 묻고 싶었다. 코스챠, 넌 장교가 될 거지? 너는 장교가 되어서 저런 사랑을 할 거지?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비슷한 것을 위해 올라갈 거지? 하지만… 그런 질문은 무용하다. 답은 정해져있었다.

율카에서 온 아티야는 군대에는 다소 적합하지 않은 태도를 곧잘 취했다. 자비를 베풀어선 안 될 순간에도 기꺼이 총구를 치우고, 경쟁 중에도 넘어진 아이를 향해 달려갈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느세파 가든에도 가끔 그런 애들이 있었다. 중앙 대신 모서리를, 성취 대신 양보를 선택하는 아이들은 종종 그런 식으로 말하고 움직였다. 너희들, 혹은 우리들, 이라고 말했다. 개인을 개인으로 두지 않았다. 아나렉샤는 엘리트가 되고자 하는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나있는 그들을 볼 때면 종종 생각했다. 물론 ‘우리’는 우리들이지만, 너희가 말하는 ‘우리’에 나는 포함되지 않아. 소속감을 위한다면 좀 더 빠르게 움직이는 편이 좋았다. 그것 역시 성취해야만 하는 일종의 보상 같은 감정이었다. 엘리트로서 성장하길 요구받는 아칸의 아이들이니 말이다. 아나렉샤는 아티야가 중심을 찾길 바랐다. 이곳은 모서리가 적고, 양보하기엔 아까운 게 너무 많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아이들은 벌써 행정구역으로 떠났다. 그들을 위한 로맨스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건 시시하다. 로맨스와 낭만이 좋으니까 아나렉샤는 엘리트가 되고 싶다. 그것이 더 괜찮은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티야, 넌 이곳으로 진학했고 그건 사고가 아니잖아.”

아나렉샤가 말했다.

“행정관 사람들도 내 말에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 거야. 원래는 다들 이곳에 오기 위해 태어났잖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인 걸. 향수병 같은 건 금방 잊어버리게 될 거야. 너에겐 새로운 ‘우리’가 있잖니.”

아나렉샤는 ‘우리’를, 아칸의 아이들을 발음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칸의 아이들, 을 발음하면 미묘한 우월의식으로부터 오는 소속감과 함께 필연적인 고립감이 느껴졌다.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 개인으로서 무언가 성취해나가야만 하는 존재들. 아티야의 모서리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고립감이라면 영원히 느껴야하는 향수병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모서리에 앉을 수 있는 건 혼자뿐이지만 중앙에는 여럿이 모일 수 있으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런 고립감 따위 잊어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나렉샤는 조금만 더 지나면 아티야가 중앙에 앉아있을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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