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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늑대 인간과 흡혈귀는 있다. 우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 들뢰즈 · 가타리, 『천 개의 고원』, 521쪽 

 

아홉 달 동안 바르바라가 낚시와 업무 외 시간을 할애해 썼던 것들 : 

■ 사냥꾼 욘디가 같은 마을의 소녀를 사랑했다. 그 소녀는 늑대를 몹시도 좋아해 숲으로 고기를 던지거나 휘파람을 부는 습관이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욘디는 사냥을 관두고 밤마다 늑대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정말로 늑대가 되었다. 하지만 소녀는 자신을 찾아온 늑대를 보고 겁에 질리고 만다. 당황한 욘디는 원래모습으로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숲속에서 들려온 늑대울음소리에 화답하는 바람에 결국 인간이 되는 법을 잊는다. 늑대도 인간도 아닌 그 무엇이 된 괴물은 슬프게 울부짖으며 도망쳤고 다시는 소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 검은 유리라 불리는 우이드린 호수 인근 지역에는 12월마다 사흘 간 되돌아오는 망자들을 위해 축제를 벌이는 풍습이 있다. 주민들은 되돌아온 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눈앞의 망자가 진짜인지를 확인하려고 한다. 만약 그가 가짜를 구분하지 못 한다면 눈앞의 망자에게 현혹된 것이다. 외로운 망자들은 현혹된 주민들을 호숫가로 이끌어 길동무로 삼는다. 

■ 켈커스 산맥에는 길 잃은 나그네를 잡아먹는 들개 버나디가 있다. 몸통은 하얀 털로 이루어져 있는데 얼굴만 가죽이 뒤집혀 피부가 바깥으로 드러난 괴물이다. 하얀 눈밭에 덩그러니 나타난 버나디의 붉은 얼굴은 나그네가 동사하는 동안 차츰 가까워져 마침내 나그네를 미쳐버리게 한다. 제 때 눈을 가린 나그네는 동사하여 시체로 남지만 그 얼굴을 본 나그네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 예언자는 사랑하는 이와 결합하는 순간 예지의 능력을 잃고 보통의 인간이 된다. 루소 서쪽 끝에는 아름다운 예언자가 살았는데, 어느 날 그녀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데 지쳐 자신의 첫 번째 이를 알고자 했다. 그녀는 달이 뜨지 않는 밤 그릇에 물을 떠놓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신의 상이 있었다. 예언자는 신을 본 대가로 눈이 멀고 온몸이 타들어가 재가 되고 말았다. 

■ 브리다가 땅 끝에서 태양을 훔치자 세상은 끝나지 않는 밤에 사로잡힌다. 그러자 신의 문지기가 브리다의 마음을 훔쳐 도둑맞은 태양과 맞바꾸려 한다. 배신당할 사랑에 빠진 브리다는 태양을 돌려주는 대신 문지기의 모든 것을 훔쳐 사라지고, 문지기는 도둑맞은 자신을 되찾기 위해 평생 브리다를 찾아 떠돌게 된다. 역할을 잊은 문지기 때문에 세상에 영원한 낮이 찾아오자, 신은 차가운 달을 빚어 때가 되면 태양을 식혀 땅 끝으로 굴러 떨어지게 만들었다. 

 

 1 

 바르바라는 이반의 손을 붙잡고 괴물이 사라진 숲을 되짚어 마을로 돌아왔다. 이반이 타고 온 말 때문이었다. 검은 말 한 필이 마을 입구에 서있었다. 기둥에 고삐를 매고 짐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였지만 아무도 채가지 않은 상태였다. 이 마을 인심이 좋네. 이반이 우스갯소리를 하자 바르바라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넌 나와 관련된 사람이니까. 이 마을 사람들은 나를 무서워하거든. 잠시 이반의 표정을 살피던 바르바라가 덧붙였다. 그들이 날 존중한다는 뜻이란다. 

 두 사람이 다가오자 말은 큰 눈을 끔뻑이며 바르바라와 이반을 번갈아 응시했다. 이반이 손을 올려 말의 콧잔등을 쓰다듬는 것을 보던 바르바라가 물었다. 이 애 이름은 뭐니? 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이반이 대답했다. 아직 정하지 않았어. 바르바라는 이반의 작명센스를 어느 정도 불신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도 그가 말에게 강아지 혹은 바둑이 따위의 이름을 지어줄 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이반이, 이번엔 네가 지어줄래? 라고 물었을 때, 바르바라는 조금 당혹스럽다는 듯 웃으며 되물어야 했다. 정말? 

 이런, 갑자기 고민되는 걸.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질 않나 봐. 

 물론 멍멍이보단 좋은 이름을 지어줄 자신이 있어. 

 꽤 괜찮은 이름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야. 

 생각에 잠긴 바르바라의 말이 거기서 끊어졌다. 이반은 말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거리를 걷던 주민 한 명이 바르바라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바르바라는 고개를 들고 짧게 화답했다. 주민은 두 사람을 지나치며 시선으로 이반을 훑었는데, 이반은 눈웃음을 짓다 말고 무언가 깨달은 사람처럼 어깨를 더듬었다. 

 로브를 두고 왔네. 

 아까 벗었잖니. 

 어디서? 

 호숫가에서. 

 바르바라는 이반이 리드하기 위해 자신을 들어 올리던 순간을 짧게 묘사했다. 깊고 광활한 호수가 보이는 들판에서 두 사람은 춤을 추었다. 그곳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자갈밭으로 이루어진 물가가 나왔다. 둥근 자갈들은 항상 젖어있었고 바위에는 이끼가 피어있었다. 물 냄새는 깨끗했다. 삼림이 뿜는 나무의 향기와 안개로 젖은 공기, 호숫가를 요람처럼 감싼 산맥들…. 이반은 어깨에서 로브가 미끄러지는 것도 모르고 바르바라를 들어올렸다. 바람이 바르바라 쪽으로 부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한껏 흩날렸고, 그녀의 발끝이 공중에 붕 떴다가 내려앉았다. 바르바라는 소리 내어 웃었다. 춤을 돌려받았구나, 라고 말했다. 좋아, 넘겨줄게, 라고 대답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마 들판에 그대로 있겠지. 

 이런, 말해주지 그랬어. 

 열중하느라 깜빡했지 뭐니. 

 이반이 바르바라를 내려다보았다. 바르바라는 고개를 기울였다. 정말이야. 

 두 사람은 호숫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이반은 말의 고삐를 쥐었다. 말발굽 소리는 포장된 길을 걸을 때 또각또각 소리를 냈다가 숲 어귀에 들어서자 부드러운 흙과 이끼에 묻혀 뭉개졌다. 태워줄까? 이반이 물었다. 바르바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뒤로? 물론 이반은 그녀를 앞으로도 뒤로도 태울 수 있었다. 뒤에 태우던 시절과 앞으로 태우던 시절을 번갈아 지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이반은 의외로 진지하게 되물었다. 어떻게 태워줄까? 바르바라는 다른 생각에 잠긴 얼굴로 앞을 보며 대답했다. 그냥 계속 걷자. 

 숲이 아까보다 훨씬 밝게 느껴졌다. 그 어떤 불길함도 없었다. 나뭇잎 그림자가 빛에 쪼개져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어둠은 투명해지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생각에 잠겨있던 바르바라가 갑자기 떠오른 것처럼 불쑥 물었다. 

 잠깐 우리 집에 들렀다 갈래? 

 아까 그 가게? 

 아니, 집은 따로 있어. 

 그런 후 바르바라는 이반 옆에서 고개를 흔들며 걷는 말을 보았다. 방금 저 애 이름을 정했어. 바르바라는 미지근하게 웃으며 이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근에 고양이를 한 마리를 풀어놓고 키울까 했거든… 그러니 쟤 이름은 고양이야. 

 결국 바르바라도 작명센스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름의 괴물들> 

 태초에 에아가 땅에서 솟아오른 모든 들과 짐승과 새와 인간들을 굽어보시고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으시니 에아가 일컫는 것이 그것들의 이름이 되었더라. 

 옛 말씀에서부터 이름은 생명을 받는 행위를 간접적으로 은유하는데 쓰였다. 명명命名은 사람과 짐승, 사물과 사건에 명령命令함으로써 호명呼名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것이 너다(명령)’라고 이름을 붙일 때, 그전까지 그 무엇도 아니었기에 그 어떤 것으로도 붙잡을 수 없던 익명의 존재는 생명命을 받는다. 

 이때 이름은 존재 자체를 끌어안아 다변적인 상징을 가진다. 이를테면 아르베스가 무례하게 굴거나 오만하게 명령하거나 왕성하게 자라거나 건방을 떤다고 해보자. 무례한 아르베스, 오만한 아르베스, 명령한 아르베스… 이것들은 모두 아르베스가 창조한 수많은 변체다. 하지만 우리가 그녀를 아르베스로 호명하는 한, 이 모든 변체는 아르베스라는 이름에 종속된다. 이름을 아는 한 우리가 그녀를 잃을 일은 없다. 그녀 자신이 무수한 변체로 나뉠 지라도! 

 거꾸로 뒤집자면 이름을 잃고 익명으로 돌아간 존재는 죽음의 영역에 들게 된다는 소리다. 그것에 이름이 없는 한 우리는 그를 인식하더라도 그 무엇으로도 부를 수가 없고 기억할 수도 없다. 우리가 이름으로써 붙잡을 수 있던 존재의 무수한 변체들 역시 그 공허함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만다. 

■ 욘디는 소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사냥을 그만둔다(그는 ‘사냥꾼 욘디’라는 변체를 포기했다). 중요한 변체를 잃은 그의 의식은 무의식의 영역(꿈)으로 떨어지고 만다. 꿈은 죽음의 세계다. 욘디는 그곳에서 ‘인간 욘디’라는 변체(그는 늑대가 된다)마저 상실한다. 그러나 현실은 산 자들의 세계이며, 이름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현실의 소녀는 익명의 늑대가 된 욘디를 마주하자 겁에 질린다. 

 이때 욘디에게는 아직 마지막 변체(‘소녀를 사랑하는 욘디’)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사냥꾼이기를 포기하고, 인간의 모습을 상실한 욘디는 이미 죽음의 세계와 더 가까운 존재가 되어있었다. 결국 그는 늑대의 울음소리에 화답하고 괴수가 된다. 소녀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은 최후의 변체(‘소녀를 사랑하는’)가 소실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 욘디는 완전한 익명의 존재가 된다. 완벽한 죽음이다. 

 욘디는 이름을 해체하는 자다. 변체를 하나씩 제거해 종국에 변체를 껴안던 이름 자체를 상실한 괴수가 바로 늑대인간이다. 

■ 반면 이름을 얻어 괴물이 되는 존재들도 있다. 우이드린 호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손님이 그들이다. 이미 죽음의 세계에 소속된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익명의 존재들은 이름을 얻기 위해 생전 누군가의 변체를 빌려 산 자의 지붕 아래로 숨어든다. 

 그러나 호명 받는다 한들 그것은 이미 생전 누군가 한 번 가졌던 이름이다. 만약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 아니었을 때, 손님은 이름의 진짜 주인이 생성하던 변체들을 완벽히 재현하지 못 한다. (검은 유리에 비친 상은 깨끗하지 않으므로.) 주민들이 손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자신이 기다리던 망자의 생전과 비교하는 것은 자신이 알던 변체들을 눈앞의 손님이 모두 재현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명명된 것(생전의 망자)과 인식된 것(손님)의 간극이 좁혀져 마침내 일치되면 그는 주민이 기다리던 그 자가 맞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이름의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름의 진짜 주인이 생성하던 변체들을 재현할 수 없는 손님은 어떻게 될까? 그는 그 이름을 얻는 순간 그것을 상실한다. 결론적으로 손님은 두 번의 죽음을 맞는다. 하나는 그를 호수 밑바닥에 가둔 육신의 죽음이고, 또 하나는 이름을 잃어 얻은 상징의 죽음이다. 손님은 명명과 인식 사이에 발생한 구멍으로 주민을 끌어들인다. 결국 명명한 자와 명명 받은 자 모두가 그 공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우이드린 호수의 밑바닥은 두 번의 죽음을 맞은 이들의 저승이다. 

 

 2 

 체사레의 이름을 바르바라는 단 한 번도 부끄러워해본 적이 없었다. 집안은 대대로 그들의 자손에게 재빠른 다리와 비범한 손, 영민한 눈을 물려주었고 그중에서도 바르바라는 우등하여 어릴 적부터 모두가 자랑스레 그녀의 운명을 불렀다. 영광의 한 건, 우리의 난나. 걷고 뛰고 말하는 성장의 순간마다 바르바라는 깨달았다. 원한다면 나는 세상을 훔칠 수도 있을 것이다. 재능을 물려준 체사레를 사랑하는 동안 유년시절이 끝났고, 바르바라는 마리사와 함께 최남단 써드빌로 내려왔다. 그곳에서 청소년기가 시작되었다. 마리사가 체사레의 이름을 잃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온화한 기후와 태평한 마을 분위기 속에 동화된 마리사는 손을 털겠다고 선언한 것도 모자라 자신이 쌓아온 것들을 나누려고 들었다.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듣는 딸의 의사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만이 마리사에게 남은 체사레의 마지막 면모였다. 

 남자의 마음을 훔치지 못 해 임신한 몸으로 남겨졌던 마리사의 과거는 바르바라를 수치스럽게 했다. 어머니 마리사는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하여 읊어댔는데, 그건 사실 중년기에 접어든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지나온 과거를 연거푸 되짚어, 종국에 반질반질해진 기억을 시간의 물살로 흘려보내려고 시도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바르바라에게 그것은 체사레의 영광을 훼손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마리사는 더 이상 이름을 날리던 도둑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늙어가는 육신을 가진,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며 집안의 영광을 물려받을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그러자 마리사의 키가 무척 작아 보이고 볼품없이 느껴졌다. 체사레의 이름을 잃는다는 건 그렇게도 위험했다. 마리사가 과거를 읊는 일은 바르바라와 체사레를 분리시키려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체사레의 자부심이 훼손된 순간 잉태된 존재가 바로 바르바라였으니, 실패와 함께 탄생한 바르바라 역시 언젠가는 체사레의 이름을 잃게 될 운명이라고 강조하는 것만 같았다. 바르바라는 어머니의 예언에서 벗어나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검을 잡았다. 

 문제는 집안의 이름을 물려받는 것이 그 집안의 영광과 불운을 함께 계승하는 일이라는 것을 바르바라가 미처 깨닫지 못 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감쪽같이 훔쳐낼 수 있었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영광일 수도, 불운일 수도 있었다. 바르바라는 타지아의 남자를 훔쳐 체사레의 이름을 지키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를 도둑맞은 것도 모자라 타지아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체사레의 불운이 계승되고 영광이 사라졌다. 어머니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바르바라는 분명 그 순간 한 번은 체사레의 이름을 잃었다. 해변에서 유체이탈과 같은 순간을 경험하고, 신의 눈동자를 빌어 세상을 바라보았던 그 순간이 바로 죽음이 바르바라를 관통하고 지나간 순간이었다. 그때 바르바라는 이름의 해체를 경험했다. 

 바르바라는 노이어에서 그와 아주 반대되는 경험을 했다. 그곳은 무거운 땅이었다. 이름의 해체 대신 이름의 생성이 이루어졌다. 노이어는 유령에게도 이름을 붙여주는 곳이었다. 노이어의 사람들은 횃대 옆이 스산하면 브륑굴렌이 곁에 있다고 중얼거렸으며, 미남자가 방문하면 에이프릴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망자들이 생전에 생성하던 변체를 그대로 읊어 괴담으로 만든 것이 바로 노이어의 유령들이었다. 요컨대 노이어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이름의 주인을 대신해 무수한 변체를 재생산하는 일이었다. 유령들은 사람들이 재생산한 변체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브륑굴렌은 언제까지나 보초를 설 테고 에이프릴은 객실로 숨어들어가 미남자의 꿈을 먹어치울 테였다. 

 노이어의 영지는 산 자들에게도 비슷한 일을 했다. ‘첫째인 자’, ‘계승하는 자’, ‘책임지는 자’, ‘이름을 받는 자’와 같은 변체들이 이반의 이름 속으로 흡수되었다. 집안 식솔과 영지민이 만든 변체들이 그 이름 속에 득시글했다. 문제는 노이어의 영향력이 너무나 강력해 이반 스스로가 만들어낸 변체보다 노이어가 만들어낸 변체가 더 많았다는 점이다. 이반 슈타겐 노이어는 분명히 이반의 이름이었음에도 누군가 명명하는 그것과 이반 스스로가 인지하는 그것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했다. 이반은 자신의 변체를 포기하고 타인이 만들어놓은 변체를 수행하기로 결심했다. 노이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반은 반투명해졌다. 명명된 것과 인식된 것의 간극은 그런 식으로 메꿔졌다. 노이어의 이름을 쫓으면서도 이반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있었다. 가문의 이름을 가지는 순간마다 자신의 이름을 상실했다. 

 물론 노이어가 계승하려 들었던 이 모든 불운의 속성을 바르바라가 속속들이 알지는 못 한다. 바르바라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그녀가 노이어의 영지를 밟던 순간 세상이 어두컴컴했다는 사실뿐이다. 모든 것들이 숨을 죽였던 그 순간. 밤의 대지, 그림자가 도사리는 숲,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존하는 세계는 바르바라 역시 가지고 있던 것이지만 노이어에서 도사리는 위험은 그녀에게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가 없었다. 바르바라는 이름을 해체해야만 죽을 수 있는 자였기 때문이다. 노이어는 이름을 명명 받아야만 죽을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바르바라는 무사할 것이었다. 

 노이어에서 하룻밤을 보내던 날 바르바라는 자신의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 때 바르바라는 맨발로 복도를 산책하다 말고 이반과 마주쳤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하늘은 아직 깜깜하기만 했고 복도로 쏟아지는 달빛은 어두침침한 파란색이었다. 안녕. 이반이 먼저 인사했고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안녕. 

 여기에도 유령이 있더라. 

 봤어? 

 그럼. 

 이반은 누구를 보았는지를 물었다. 바르바라는 그들에게도 일일이 이름을 지어 주냐고 되물었다. 룬넨에선 그렇게 하지 않던가? 하지 않아. 그런 후 바르바라는 덧붙였다. 원래는 이름이 있었는데 사라진 자들이 룬넨의 유령이 되는 거니까. 

 두 사람은 어두컴컴한 복도를 조금 걸었다. 어둠속에 잠긴 복도는 앞도 뒤도 온통 캄캄하기만 해서 그들이 어디쯤까지 걸었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성의 복도가 어디로 뻗어나가는지 알고 있는 건 이반이었으므로 바르바라는 그를 따라 걸었다. 그 어둠은 이반의 것이었다. 

 복도의 바닥에서부터 끊임없이 냉기가 솟아올랐다. 그 냉기는 바르바라의 맨발에 달라붙어 발등을 핥고 지나갔다. 바르바라는 창 너머로 펼쳐진 깜깜한 밤과 어두운 영지를 바라보았다. 성 내부도 성 바깥도 온통 어둠으로 꽉 차있었다. 창에 비친 얼굴이 흐릿했다. 너무 어두워서 그게 정말 자신의 얼굴인지를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검은 유리가 노이어를 감싸고 있었다. 새까만 대지로 드문드문 숲의 실루엣이 보였고, 이따금 빛나는 한 쌍의 눈동자가 몇 번 깜빡이다 순식간에 풍경을 가로질러 사라졌다. 바르바라는 지평선이 푸르게 물든 것을 보았다. 여명이 아주 힘겹게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걸음을 멈췄다. 이반은 몇 걸음 앞서가다 말고 뒤돌아 그녀를 보았다. 이반. 바르바라가 불렀다. 이반이 대답했다. 응. 

 새벽이 오려는 모양이지. 

 방으로 안내해줄게. 

 괜찮아, 되짚어갈 수 있단다. 

 다음 순간, 해가 뜨기 직전의 대지가 한순간 빛을 잃더니 모든 것들이 깊은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평선에서부터 힘겹게 기어오르던 여명이 손을 놓친 것처럼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영원한 밤이 찾아왔다. 바르바라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축축한 호수의 물비린내를 맡았다. 이반은 우이드린의 손님이 되어있었다. 바르바라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도 느낄 수 있었다. 손끝을 뚫고 자라난 발톱과 잇몸을 찢고 솟아난 이빨, 손등에 난 거친 털과 기민해진 눈과 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지평선에서부터 해가 솟아올랐다. 

 강한 빛 한 줄기가 노이어를 가로질러 성의 창문에 부딪쳤다. 황금빛이었다. 바르바라는 인간으로 돌아온 이반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잠시 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빛이 드리우는 노이어의 영지가 서서히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드문드문 나무가 솟아오른 갈색 들판으로 들개 한 마리가 달려 나갔다. 황량한 대지에도 늑대와 개와 새들이 살았다. 이곳에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다. 잊지 않기 위해서 지켜야 할 것들마다 이름을 붙였다. 

 지킬 가치가 있는 곳이구나, 이반. 

 바르바라가 속삭였다. 

 그래서 이곳의 어둠은 별로 무섭지 않아. 

 결국 두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지키는 과정에서 이름을 잃거나 얻어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인식의 괴물들> 

 타자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은 무엇인가. 

 아직 인식된 적 없는 타자는 ‘나’에게 미지未知다. 내가 알 수 없는 세계가 저편에 있는 것이다. 인식한다는 것은 타자의 세계가 그곳에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우리는 타자를 똑바로 응시하여 그 미지를 확인하려고 든다. 물론 우리가 타자를 볼 때, 타자 역시 우리를 응시한다. 우리는 인식의 과정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내야만 하는 모험을 감수한다. 그런데 반대로 타자가 나를 인식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가 자신의 미지였던 우리를 확인하려고 든다면? 

 이때 타자의 인식은 우리에게 자신의 미지未知를 선보이겠다는 선언이 된다. 우리는 타자가 내보인 미지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우리는 이제 타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인식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실상 관계맺음을 성공하는 일이고, 타자와 내가 짝을 짓는 일이다. 

 한편 우리가 타자를 인식하려고 할 때, 타자가 이에 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시선은 관계 맺지 못 한 채 그곳에 남겨진다. 관계 맺지 못 한 응시, 그것이 바로 짝사랑이다. 

■ 버나디와의 만남에 필요한 것은 상호 교환적 인식이다. 버나디가 나그네를 인식할 때, 나그네 역시 버나디를 인식한다. 버나디가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 나그네는 두 개의 선택지를 갖는다. 그와 관계 맺거나, 혹은 관계 맺지 않는 것이다. 버나디와의 관계맺음을 거부한 나그네는 눈을 가린다. 나그네는 얼마 뒤 싸늘한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 이때 버나디는 나그네가 동사 직전에 본 환각의 존재로 남는다. 그래서 그에게 실존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 

 반면 눈을 가리지 않은 나그네들은 어떻게 될까. 켈커스 지방은 설산에 올랐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들을 두고 ‘버나디에 홀렸다’는 표현을 쓴다. 버나디의 얼굴을 확인한 나그네들은 돌아오지 못 한다. 시체를 남길 수도 없다. 버나디는 관계맺음에 성공하는 순간 비로소 괴물이 된다. 다시 말해 ‘나’를 인식한 상대와의 관계맺음에 성공한 괴물이 바로 버나디다. 

■ 한편 눈이 멀어 결국 타죽고 만 예지자는 이와 반대의 상황을 통해 괴물로 재탄생한다. 예지자는 자신의 첫 번째 상대를 인식하고자 물을 뜬 그릇으로 고개를 숙이지만, 신의 얼굴과 마주하는 비극을 맞는다. 이때 신은 관계 맺을 수 없는 절대적인 무엇이다. 결국 ‘나’가 인식하려는 상대와 관계 맺지 못 한 예지자는 대가를 치루고 괴물이 된다. 인식의 실패가 예지자의 눈을 멀게 만든다. 짝사랑하는 괴물이 바로 눈 먼 예지자다. 

 

 3 

 노이어에서 시작된 순회공연을 보기 위해 도트라에 다녀온 후부터 바르바라는 꿈속에서 유령과 괴물을 보았다. 첫날 밤 그녀는 시선을 느끼고 눈을 떴는데, 머리맡에 누군가 서있었다. 달빛이 사선으로 떨어져 테이블과 의자를 비추자, 길게 늘어진 사물의 그림자가 이방인의 실루엣과 겹쳐 더욱 시꺼멓게 물들었다. 바르바라는 눈앞의 이방인이 반투명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유령이었고 바르바라는 아직 꿈속에 있었다. 

 그 뒤로 비슷한 일들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바르바라는 밤마다 유령들이 침대 맡에 앉아있거나 침대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풍경에 익숙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괴물들이 몰려왔다. 나그네를 삼킨 고래, 눈 먼 예지자와 버나디, 검은 백조와 불길함을 노래하는 달리아, 벽장 속의 2피트 넘는 괴수와 마녀들… 바르바라는 모든 유령들과 괴물들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꿈속에 방문하는 그들 모두가 이반이 쓴 극에 등장하는 이들이었다. 그 극으로 하여금 바르바라가 이반을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이 꿈속으로 침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날이 갈수록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자고 있는 중에도 깨어있는 것 같았다. 어둠에 잠긴 호수와 반투명한 존재로 가득 찬 집안이 골치 아플 정도로 선명했다. 바르바라는 관속에 자리를 잡고 누운 것처럼 침대에 몸을 누이고 생각했다. 악몽이구나. 이것들을 어쩌면 좋을까. 하지만 정말로 바르바라가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어떻게 이것들을 멈출 수 있겠는가. 

 악몽이 찾아온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무렵, 바르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창살 그림자 너머로 간간이 무언가 일렁이며 지나갔다. 유령들이 기웃거리며 바르바라가 쓰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바르바라는 계속해서 써내려갔고,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이반에게 들려주거나 이반으로부터 들은 그들의 이름이 이렇게나 많다니. 괴담을 써내려갈수록 바르바라에게 몰려드는 존재들이 많아졌다. 점점 몸을 얻고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무의식에 존재하던 그것들이 의식의 세계로 발을 디디며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이 뚜렷해질 때마다 바르바라는 어렴풋한 예감을 받았다. 이 기록을 다시 자신의 세계관으로 재구성하면, 한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르바라가 평소 제한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미처 발견하지 못 했던 사실이 마침내 의식의 세계로 진입했으니, 그녀가 할 일은 기록을 재구성하는 것. 

 유령들은 관념적이었고 괴물들은 신화적이었지만 바르바라는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그들을 묶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으로써 바르바라는 상징의 세계에 있던 존재를 인식의 땅으로 끌어내리려 했다. 모호하던 것을 명확한 사실로 이해하려고 했다. 

 그래서 바르바라는 그것을 해냈다. 

 

 <두 명의 괴물> 

■ 브리다 신화는 다변적인 키워드로 엮긴 이야기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결국 마지막에 괴물이 된 건 브리다가 아니라 신의 문지기라는 점이다. 그는 태양을 되찾는 대신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영원히 세상을 떠돌게 되었다. 브리다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그전까지 괴물은 브리다였다. 그녀는 신의 문지기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신의 문지기는 애초부터 그녀와 관계 맺을 의사가 없었다. 태양을 돌려받기 위해 그녀의 마음을 훔쳤기 때문이다. 사랑에 ‘눈 먼’(그렇다, 그녀는 이 때 ‘눈 먼 예지자’가 된다) 브리다에게는 비극이 예고되어 있었다. 신화는 직접적으로 브리다가 눈이 멀었다고 알려주는 대신 바깥의 상황을 통해 이를 은유한다. 태양이 사라진 세계가 영원한 밤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브리다는 외부적 상황을 식별할 능력을 상실하고 신의 문지기에게 매달린다. 이 상황은 그녀가 빛(태양)을 마주하는 순간 종료된다. 모든 사실을 알아차린 브리다는 분노한다. 천하를 훔칠 도둑이 인식의 영역에서 실패를 경험한 것이다. 브리다는 짝사랑의 괴물로 남기를 거부하고 신의 문지기에게 복수한다. 태양을 돌려주는 대신 그의 이름을 빼앗아간다. 문지기는 자신의 변체(‘신의 문지기’, ‘태양을 지키는’, ‘신의 사랑을 받는’)를 모두 상실한다. 그 순간 문지기는 이미 죽음의 영역에 드는 셈이다. 신에게 잊혀지고, 브리다마저 놓쳤으니 그는 살아있는 자임에도 죽은 자와 같다. 브리다 신화는 두 사람이 번갈아 괴물이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신화는 결국 인간의 핏줄로 연결되어 실존성을 획득한다. 체사레 집안이 굳게 믿는 한 브리다는 상징의 세계가 아니라 인지의 땅에 있다. 그러니까 브리다 신화는 이미 몸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다. 이 작업은 여기서 끝난다. 

 이제 모든 괴물과 유령에게 몸을 주었으니, 결국 이 모든 존재들이 그 몸을 통해 공통적으로 무엇을 실현하고자 하는지 결론지어야한다. 

 이 모든 신화적 미신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4 

 이반은 바르바라의 집에 대해 이런 감상을 남겼다 : 작아. 

 집안에 들어가서는 이런 감상을 남겼다 : 보이는 것보다 넓네. 

 바르바라는 찬장에서 통을 꺼낸 후 스푼을 넣어 찻잎을 퍼올렸다. 그것을 주전자 통에 집어놓고 물을 올렸다.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인 후 컵 두 개를 나란히 내려놓았다. 

 이반은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호수가 가까운 곳에 있었고 경사가 완만한 들판이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계절이 돌아오면 그곳에는 꽃이 피고 토끼가 뜀박질을 하거나 땅새들이 둥지를 짓기 위해 날개를 접고 내려올 것이다. 바르바라는 테이블을 두드리는 이반의 손가락을 응시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주전자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좋은 곳이지? 

 볕이 잘 드네. 

 그럼. 밤에도 어둡지 않단다. 달이 잘 들거든. 

 바르바라는 허리를 숙이고 바람을 불어 불을 껐다. 가게에선 뭘 팔아? 이반이 물었다. 바르바라는 뜨거운 차를 컵에 나누어 담고 열린 찬장에서 시럽을 꺼내며 대답했다. 무엇이든. 

 무엇이든? 

 무엇이든. 

 그런 것치곤 가게가 작던데. 

 아. 정확히는… 누군가 의뢰를 하면 그걸 구해다 주는 식이지. 

 바르바라는 티스푼을 컵에 꽂아놓고는 시럽통과 함께 들어올렸다. 이반이 창가에서 시선을 떼어내고 테이블로 다가오는 바르바라를 올려다보았다. 바르바라는 컵과 시럽 통을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달 게 먹고 싶으면 많이 넣어도 좋아. 

 고마워. 

 별 말씀을. 

 바르바라가 자신의 컵을 가지러 부엌으로 돌아간 동안 이반은 시럽을 떠서 차에 섞었다. 컵과 스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바르바라는 주전자를 기울여 컵을 채웠다. 이반이 차와 시럽을 휘젓고 섞는 소리를 듣던 바르바라가 몸을 돌리지 않은 채 문득 떠오른 것처럼 물었다. 

 언제 떠날 거니? 

 글쎄… 언젠가는. 

 바르바라는 허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곧 느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일 잠깐 가게 좀 봐줄래? 

 주인은 어디로 가려고? 

 호숫가에서 낚시를 할 생각이지. 

 오는 손님마다 주인이 놀고 있다고 전해주면 되는 건가? 

 뭐… 내 가게에 날마다 손님이 들지는 않아. 

 한가하네. 

 그럼. 써드빌과 비슷하단다. 

 머물기 좋은 곳이군. 

 그럼. 

 바르바라는 이곳의 생활을 묘사했다. 호숫가의 물살과 잘 잡히지 않는 고기, 둥근 자갈에 낀 이끼와 수면에 비친 하늘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일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또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 바르바라에게 부탁하는 일들, 그것을 해결해주기 위해 말을 달려 루소의 곳곳을 떠돌던 몇 달,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바르바라를 마녀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것… 바르바라는 자신이 쓰고 있는 몇 개의 가명들을 노래하듯 늘어놓았다. 이 마을에서는 ‘브리다’야. 이반은 차를 마시면서 웃었다. 네 조상의 이름을 그대로 빌려 쓰는구나. 그래, 근원으로 되짚어 갈 필요성을 느꼈거든.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 모든 일이 흐릿해지고 결국 잡을 수 없는 무언가가 되는 것 같았으니까. 바르바라는 상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브리다로 지내보니 어때? 

 악몽이나 꾸던 걸. 

 저런. 

 그래도 얼마 전에 답을 내렸어. 

 무엇에 대한? 

 내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예감에 대한. 

 부엌에 난 작은 창으로 햇살이 쏟아졌다. 바르바라는 자신의 컵 안으로 쏟아지는 빛과, 그 빛을 다시 반사시키는 수면을 보았다. 이반. 바르바라가 부드럽게 불렀고, 이반은 대답했다. 응. 

 원한다면 좀 더 이곳에 머물러도 좋아. 

 여기? 

 그래, 여기. 

 이반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같이 살자는 말처럼 들리는데. 

 일단은.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청혼이야? 

 비슷해. 

 그런 후에는 침묵이 있었다. 바르바라는 조용히 자신의 컵에 떠놓은 차의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그 속에서 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눈이 멀어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인식되지 못 하거나 관계 맺을 수 없는 것들은 괴물이 되기 마련이니… 하지만 결국 바르바라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가지였다. 구전되는 모든 이야기들이 한 갈래에서 탄생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정말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입으로 내뱉기 위해서는 무수한 상징의 세계를 뚫고 거슬러 올라가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침묵 속에서 바르바라가 한 번 더 물었다. 

 농담인 것 같니? 

 

 <내려놓으며> 

 결국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욕망을 잃는 순간 늑대인간이 되고, 욕망을 얻는 순간 산 자를 호수 밑바닥으로 끌어들이며, 욕망이 포착되는 순간 버나디가 되거나 욕망이 배제 받는 순간 눈 먼 예지자가 된다. 브리다는 어떠한가. 브리다와 문지기 자체가 욕망을 가지고 서로로부터 도망치거나 쫓는 이야기다. 이들 모두가 욕망을 몸의 차원에서 완전하게 실현하는 존재들이다. 

 몇 달의 악몽을 되짚어보는 일은 결국 이런 몸의 논리가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가를 되짚어보는 일이었다. 몸의 논리란 결국 사랑(욕망)을 동력으로 삼아 짜여가는 사랑의 논리라는 것이 이 작업의 결론이었다.¹ 
 어찌되었든 우리는 괴물이 되었다 돌아온다는 게 무엇인지 안다. 

 이제 마음속에 들끓던 괴물들을 세상에 풀어놓으니, 부디 당신의 밤에 스며들기를.² 
 그래서 사랑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의 행복한 악몽이 되기를.³ 


1-3. 권혁웅 : 몬스터 멜랑콜리아 中 

201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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