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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Daybreak «타이틀 매치»
1차/old 2019. 10. 22. 15:54

 바람이 거세게 불던 날 바르바라는 자신의 방을 완전히 정리했다. 오즈월드와 함께 집무실을 빠져나온 직후의 일이었다. 이전부터 대부분의 것을 치워놓고 있었으므로 정돈할 물품은 몇 개 남아있지 않았다. 내일이면 마차에 올라야한다. 그녀는 간만에 집으로 돌아갔고 짐은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마리사 체사레는 바르바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간에 선 그녀는 바르바라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식탁에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다. 생선요리였다. 두 사람은 하얀 뱃살을 썰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끝낸 후에는 커튼을 치고 불을 밝혔다. 그러고는 소파에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이 마를 때에는 와인을 조금 마시고, 입이 심심할 땐 치즈를 잘라서 먹었다. 두 사람 모두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지금은 아직’이라는 것처럼 미루었다. 마리사는 미래의 이야기보다는 과거의 이야기를 했다. 주로 바르바라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였다. 마리사는 마치 강의 물결 반대편으로 손을 뻗어, 그 안에 들어있는 반들반들한 조약돌을 매만지는 것처럼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건져 올렸다. 바르바라는 조용히 들으며 가끔씩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머니. 기억하고 있어요. 그 때의 저는 서툴렀죠. 하지만 지금은 너무 나이를 먹었군요. 네, 그러니까 저는 충분히 나이를 먹은 셈이죠. 

 마리사는 타지아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이름이 너무 길어서 기억하지 않았던 돈 없는 붉은 머리의 귀족소년 이야기도 했고, 라일라 이모의 이야기도 했고, 써드빌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처럼 내일 떠나기 전에 반드시 마나 집안에 들러서 인사를 하고 가라고 명령했다. 바르바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알렉스에게도 안부를 전하렴.” 

 마리사가 분명한 어조로 강조했다.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전하렴.” 

 “네, 어머니. 그렇게 할게요.” 

 그런 후 두 사람은 다시 과거의 이야기를 했고, 늦은 밤이 오자 잠을 자러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새벽에 마리사는 바르바라를 문간에서 배웅하며 가볍게 끌어안았다. 왜 헤어지거나 재회하는 이들은 반드시 바르바라를 껴안는 것일까. 바르바라는 마리사를 마주 안았고, 잘 다녀오겠다고 속삭였다. 두 모녀는 잠시 문간에서 서로를 껴안은 채 서 있다가 천천히 물러났다. 

 “네가 훔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명심해라. 나이가 들었으니 너도 알겠지.” 

 마리사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을 훔칠 수는 있어도 생명을 훔칠 수는 없단다. 명심하렴, 난나.” 

 바르바라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 어머니. 체사레가 키운 도둑은 자만하지 않아요.” 

 “알고 있다.” 

 “네, 저 역시 알고 있어요.” 

 그런 후 바르바라는 그녀에게 잘 쓰던 머리끈을 남기고 현관을 빠져나왔다. 

 바르바라는 선루스 기사단으로 향하기 전에 약속대로 마나 집안을 들러서 인사를 나누었고, 간단한 인사와 선물을 받았다. 육포였다. ‘그럼 리온도 가지고 있겠구나.’ 바르바라는 주머니에 그것들을 챙겨 넣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걸어가는 길에도 마주치는 주민들마다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 모두가 바르바라에게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고 있는 거냐고 물었고, 잘 지내라고 인사했다. 그녀를 가볍게 껴안아주는 이도 있었다. 바르바라는 그들을 이해했다. 이곳의 모두가 그녀와 십 년이 넘는 세월을 알고 지냈다. 바르바라는 돌아오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약속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진심으로 인사했다. 고맙다고 말했다.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할 자신이 있었다. 

 기사단으로 돌아온 바르바라는 마차에 오르기 전에 써드빌의 바다를 한 번 바라보았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서 머리 위의 천막이 마구 흔들렸다. 바르바라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마차에 걸터앉았다. 오즈월드가 바르바라에게 다리를 제대로 집어넣으라고 말했다. 곧 출발할 거니까 말이야. 바르바라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육포를 꺼내 내밀었다. 그러고는 웃었다. 

 “먹어.” 

 “과일인가?” 

 오즈월드가 육포 한 조각을 받아 입에 털어 넣었다. 바르바라도 육포를 입안에 집어넣고 씹었다. 조금 질기고 짭조름하지만 간이 잘 배였다.  

 오즈월드는 육포를 맛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고기군.” 

 “맞아.” 

 바르바라가 다리를 흔들거리며 대답했다. 

 “받은 거란다.” 

 조금 뒤에 마차가 흔들거리기 시작했으므로 바르바라는 다리를 집어넣었다. 써드빌의 바다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상징적으로 느껴졌다. 바르바라는 육포를 씹으며 멀어지거나 작아지는 그 풍경들을, 한없이 가까웠으나 지금 당장은 멀어지고 마는 그 영지를 지켜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201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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