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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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바라는 연이어 마차에서 뛰어내리다 말고 미끄러운 바닥 때문에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발바닥 아래에서 서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하게 중심을 잡으며 반사적으로 칼을 빼들자, 오즈의 검날이 먼저 눈앞에서 번쩍였다. 그들 앞으로 늑대 한 마리가 캥캥거리다 말고 쓰러졌다. 오즈가 베어 죽인 것이다. 

 “늑대 밥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가는 길이 몹시 순탄해.” 

 “짐승 밥이 되는 건 사양이야, 오즈.” 

 바르바라는 검을 고쳐 쥐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횃불은 바람에 따라 일렁였고 어둠은 여전히 주변에 도사리고 있었다. 무수한 몇 쌍의 눈들… 굶주린 들짐승의 것이다. 골치 아프게 됐네, 가엾은 것들. 바르바라는 마차를 둘러싼 늑대무리의 수를 세어보다 그만두었다. 

 “난 뒤쪽으로 갈게. 아예 작정하고 둘러싼 모양이지.” 

 “발밑을 조심해.” 

 “오, 오즈. 켈커스에서 온 사기꾼은 덫을 밟지도 서리에 넘어지지도 않는단다.” 

 그런 후 바르바라는 마차 뒤쪽으로 빠졌다. 그러고는 말에게 덤벼드는 늑대를 향해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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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에 묶인 말들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날카롭게 찌르는 소리의 휘파람을 내면서 한 마리의 고삐를 붙잡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말이 헐떡일 때 피어오르는 입김과 연거푸 부풀어 올랐다 줄어드는 갈색 가죽이 잘 보였다. 말의 불안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바르바라는 말의 힘에 밀려 고삐를 한 번 놓쳤다가, 아예 고삐를 손에 친친 감고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켈커스에 봄이 찾아오면 룬넨마을의 상인들은 서리를 밟고 마차를 몰아 산을 넘었다. 바르바라는 여관 지붕에 앉아 그들이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것을 지켜보고는 했다. 가끔 말들은 눈과 서리에 미끄러져 휘청거리거나 숲속에서 들려오는 들짐승의 울음소리를 듣고 불안에 떨며 멈추어 섰다. 그럴 때면 마부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높고 찌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 말들은 처음에는 그 소리에 저항했는데, 결국은 순응하고 멈추어 섰고 마침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기억해내곤 마차를 끌게 되었다. 

 바르바라는 그 장면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었다. 말이 길게 울부짖으며 다리를 휘젓다 말고 천천히 푸르륵 숨을 토해냈다. 바르바라는 휘파람을 멈췄다. 그러고는 칭찬을 해주듯 말의 콧잔등을 쓸었다. 문득 주변이 조금 춥다고 생각했다. 늑대들이 되돌아올까.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바르바라는 뒤를 돌았다가 이반이 마부석에 오르려다 미끄러지는 것, 메이지가 그와 대화를 나누다 선뜻 마부석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바르바라는 메이지의 옆모습을 잠시 응시하가 고개를 돌렸다. 

 “다리 조심하렴.” 

 바르바라는 마차로 돌아가는 이반을 앞지르며 무심하게 덧붙였다. 

 “춤을 다리 한 짝으로만 출 순 없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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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련장으로 가시덤불의 율이 올라왔다. 그녀는 올라오자마자 주변의 호응을 유도하면서 분위기를 몰았다. 가시덤불은 적대적인 사기를 숨길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바르바라는 대련장 아래에서 오즈의 말을 되뇌어보았다. 

 ‘일 늘리지 말고 적당히.’ 

 귀찮은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바라는 대련장에 올라가기 전에 검을 시험 삼아 뽑아보고는, 도로 집어넣고 목검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얼른 올라오라고 부추기는 박수세례가 시작되었지만 손쉽게 무시했다. 

 바르바라는 마침내 나무통에서 목검 하나를 골라 뽑아냈다. 

 대련장으로 올라오자 박수소리가 멈추고 시선이 집중되었다. 율의 뒤편으로 보이는 가시덤불 무리를 훑어보던 바르바라가 생각을 고쳤다. 굶주린 늑대 떼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적군의 칼날보다는 저들을 상대하는 편이 낫다. 복잡한 일보다는 귀찮은 일을 수행하는 편이 지금의 시국에서는 훨씬 이로운 법. 사실 선루스 써드빌 기사단이야말로 귀찮음과 맞서는데 익숙한 자들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 목검을 쥔 손에 적당히 힘이 빠지면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율이 옆으로 움직였다. 거리를 유지하며 바르바라의 기색을 탐색하는 것처럼 시선을 훑었다. 바르바라는 제자리에 다소곳하게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상대 쪽이 선공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자, 율이 그대로 기합을 지르며 매섭게 덤벼들었다. 바르바라는 슬쩍 몸을 비틀었다가 발을 깡총 굴러서 그곳을 벗어났다. 율이 짧은 텀을 두고 곧장 몸을 비틀어 바르바라에게 검을 휘둘렀다. 바르바라는 검을 받는 대신 다시 발을 깡총 굴러서 그곳을 벗어났다. 주변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제대로 받아라!” 

 바르바라는 무성의하게 검을 휘휘 젓다 말고 뒤를 돌아 선써드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바르바라의 대련태도에 별로 놀라지 않았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앉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바르바라가 검을 잡을 때마다 보여주는 꼼수를 알고 있었다. 선써드의 모두가 바르바라와 한번쯤은 반드시 검을 대보았기 때문이다. 

 등 뒤에서 율의 기합소리가 가까워졌다. 뒤를 돈 채 한눈을 팔고 있던 바르바라는 율이 덤벼드는 것을 한끝 차이로 간신히 피하고는 드디어 검을 들어서 그녀의 날을 한 번 받아쳤다. 율이 흥분한 게 느껴졌다. 칼날 바로 뒤에 율의 얼굴이 숨어있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집오리는 싸울 용기가 없으신가?”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웠으므로 율이 빈정거렸다. 바르바라는 모호한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음.” 

 바르바라는 다른 생각에 잠긴 얼굴로 혼자 중얼거렸다. 

 “일 늘리지 말라니, 일을 늘린 게 누군데 그런 소릴 하는 거람.” 

 율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구겨졌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는 바르바라 때문에 약이 오른 것이다. 그녀가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바르바라를 떠밀었다. 바르바라는 밀려나는 것처럼 뒷걸음질 치다 말고 부드럽게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율은 쉴 틈을 주지 않고 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바르바라는 몇 번 더 스텝을 밟아 그녀의 공격에 맞을 듯 빠져나올 듯 굴며 대련장을 돌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던 바르바라가 일순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율이 옆구리를 찌르기 위해 자세를 낮게 숙이던 순간이었다. 

 바르바라는 율의 다리를 거는 것처럼 움직여서 율이 펄쩍 뛰어오르게 만들었다가, 곧장 그 틈새로 치고 들어갔다. 그 뒤는 아주 손쉽고 빨랐다. 바르바라는 오즈의 ‘적당히’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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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가 점점 자욱해졌다. 목구멍이 따갑고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불 바로 앞에 있는 게 아니었는데도 그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바르바라는 오즈의 뒤를 따라 달리다 오즈가 마차에 오르자 그대로 멈추어 섰다. 곤두선 얼굴로 주변을 훑자, 화재의 몸통이 보였다. 바르바라는 뒤따라 달려온 선일로 기사 한 명에게 마차 끄트머리를 가리키며 진압을 지시했다. 갑작스러운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그녀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것보다 명령하는 게 더 익숙했다. 바르바라는 큰 소리로 진원지를 알리는 선일로 기사를 지나쳐 나머지 마차에 올랐다. 불꽃의 열기가 더욱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불에 달군 혓바닥이 피부를 핥는 것만 같았다. 바르바라는 연소가 빠른 짐짝들을 손으로 붙잡아 마차 밖으로 내던졌다. 공기가 매캐했다. 땀이 솟아올랐다.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바르바라는 장갑을 낀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면서 짐을 모조리 밖으로 내던지고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진압을 위해 물양동이를 들고 오는 이들이 보였다. 양동이속 물이 마차에 뿌려질 때마다 물방울이 열기와 함께 증발되는 소리가 들렸는데 꼭 기름에 무언가를 튀길 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바르바라는 침착하게 마차에서 조금 떨어져 양동이를 가지러 숙소로 돌아갔다. 눈물과 땀을 훔치다가 공기가 점점 숨을 쉴 수 있을 만큼 차가워지자 뛰기 시작했다. 이동하면서, 바르바라는 자신의 손목이 조금 데인 것을 알아차렸지만 마법을 써야할 지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실험해보기로 했다.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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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바라는 마차에서 내려 근처를 조금 걷다가 헤일리가 졸고 있는 것을 보곤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릎 좀 빌려달라고 하면, 싫으실까요?" 

 답지 않게 어리광을 부리는 애처럼 구는 것 같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바르바라는 먼 곳을 보았다. 

"글쎄. 깨워달라고 해도 괜찮아." 

 헤일리가 바르바라의 다리에 머리를 뉘였다. 바르바라는 그의 브루넷 머리카락 가닥을 의미없이 매만지다 말고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헤일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주변은 충분히 조용했으므로 바르바라는 마음껏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땅은 어둠이 내려앉아 그 경계를 명확히 구분할 수가 없었다. 바르바라는 노이어의 영지에 대해 생각했다. 개도 살고 늑대도 살지만 종국에는 모두 죽는다. 인간이 모든 것을 죽이고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언젠가 바르바라는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앉아서 이반으로부터 그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상상 속의 노이어는 황량하거나 안개에 싸여있어서 온통 흐릿하기만 했다. 때때로 그 상상 속의 땅에 누군가 서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바르바라는 매번 그것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괴담의 온상지같구나.' 

 바르바라는 손이 심심할 때마다 헤일리의 브루넷 머리카락 가닥을 매만지면서, 이반이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을지를 궁금해했다. 그러다 문득 방금의 헤일리가 불안해했던 것인지를 고민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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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바라는 아서의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마리안이 곤두서는 것만큼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누구를 보호하고 무엇을 방어하고자 했는지가 떠올랐으나 그만두었다. 눈앞에 일제히 검이 뽑히는 순간, 거짓말처럼 생각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아주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바르바라는 사람을 찌른 적은 있어도 죽여본 적은 없었다. 그녀가 지난 십일년 간 베어온 것은 나무토막, 줄과 가죽들. 그것들은 칼날을 대면 어떤 소리를 내거나 가루를 뿜어내며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바르바라가 눈앞의 기사를 향해 칼을 휘두른 순간, 그것은 가루 대신 피를 뿜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발밑으로 구르는 누군가의 시체를 뒤로 하고 곧장 뒤돌아 자신을 방어했다. 칼을 휘두르며 자신에게 달려든 칼날을 쳐냈다. 숨이 가빴다. 그녀는 생각했다. 지금이 적기인가?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검은 로브의 남자가 덤벼들었다. 바르바라는 반사적으로 방어하며 마법을 썼다. 아무 징조도 없었다. 바르바라는 계속해서 마법을 출력하며 그를 밀어붙였다. 주변이 아우성으로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시선이 어지러웠다.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바르바라는 마법을 실어 다시 한 번 강하게 칼을 휘둘렀다. 눈앞의 남자가 옆구리를 쥐고 물러나다 뒤에서 달려든 칼에 찔려 쓰러졌다. 천천히 쓰러지는 시체 뒤에서 길리언이 나타났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으나 바르바라는 입을 움직이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손목을 타고 따끔한 고통이 느껴졌다. 바르바라는 검을 휘두르려다 잠시 주춤거리며 멈추어섰다. 하지만 고통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가라앉았다. 아무 징조도 없었다. 

 다음 순간, 뒤에서 또다른 로브의 상대가 달려들었다. 바르바라는 뒤로 물러났다가 검을 휘둘렀다. 사방이 적이었고 바르바라에게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했다.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최고의 결과를 도모해야 한다. 바르바라는 마법을 최대로 사용해본 적이 없었지만 언젠가는 그것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왔고 적기가 있다면 지금이 아니고선 그 어느 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적기인가? 바르바라는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질문하고는, 계산을 끝냈다. 

지금이 적기다. 

그래서… 바르바라는 그 짓을 했다. 

 바르바라는 몸에 마법을 두른 채로 전투에 몸을 섞었다. 몸은 놀랄 만큼 빠르고 강해졌다. 육신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움직였다.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으면 이미 몸이 먼저 그곳에 가있었다. 마법이 바르바라의 뇌를 거치지 않고 곧장 몸의 미세한 움직임에 반응해 흐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르바라는 머리를 비우고 눈앞의 상황에 따라 움직였으며, 종국에는 마법에 모든 것을 맡겼다. 육신을 마법에게 통째로 빌려준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베어죽여야하는가. 어느 순간 바르바라는 어떤 고통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고통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어떤 경고처럼 날카롭게 육신을 관통해 흐르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자신의 왼손이 축축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목을 타고 피가 흘러내려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칼을 휘두르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바르바라는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났다가 자신의 왼 손목을 쥐었다. 가벼운 이명이 찾아왔다가 차츰 가라앉더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뜨겁고 거대한 통증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바르바라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바르바라를 찢어버리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천천히 피투성이가 되어 뚝 뚝 핏물이 떨어지는 자신의 왼손바닥을 펼쳤다. 

 그곳에는 상처가 있었다. 

 그 상처는 마치 누군가 날카로운 단도로 수차례 저미고 또 저민 것처럼, 갈가리 찢겨지고 벗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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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련장이 한산해지고 노을이 질 무렵, 선루스 일로어 기사단 몇 명이 일꾼과 함께 나타났다. 그들은 마차를 수리하려고 사람을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바르바라는 그들을 위해 길을 터주고는 근처에 등을 기대고 서서 그들이 마차의 바퀴를 점검하고 이음새를 매만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인근 숲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밥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바르바라는 팔짱을 낀 채 숙소 쪽을 흘끔거리다가 누군가 말을 걸어서 다시 마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써드빌은 어때?” 

 일로어 기사는 바르바라의 옆에 자연스럽게 기대섰다. 

 “우리?” 

 바르바라는 미지근하게 웃었다. 

 “한가하지.” 

 “이젠 그렇지 않겠네.” 

 “모두가 부지런을 떨어야 할 시기란다.” 

 바르바라가 부드럽게 대꾸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가 동의했다. 

 동일한 코트를 입은 두 기사는 잠시 마차에 기대어 서서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지켜보았다. 바르바라는 이곳의 선루스들도 농땡이를 치고 한가롭게 축제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구태여 선일로의 분위기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두 단장을 비교해도 벌써 많은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전쟁에 대한 짧은 의견과 서로의 기사단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토막토막 주고받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식당으로 들어서기 전 선일로의 남자가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제시야.” 바르바라는 그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가 떨어뜨렸다. “난나.” 

 두 선루스들은 섞여 앉아 식사를 했다. 건너편 테이블에서 사라가 큰소리를 냈다. 아드리안과 마리안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오즈월드가 어린 단장 카미유의 이야기를 들었다. 낯설지만 같은 옷을 입은 선일로들도 군데군데 모여앉아 있었다. 그들은 빵을 자르며 이따금 선써드를 흘끔거렸다. 바르바라는 수프를 저으며 (늘 그렇듯)다른 생각에 잠겼다. 제시가 옆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그녀는 주변 풍경으로부터 멀리 달아나있었다. 제시가 바르바라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자 그녀는 고개를 돌리면서 생각을 모조리 머리 위로 치워버렸다. 

 “안녕.” 

 바르바라가 짧게 인사했다. 

 저 사람 시끄럽다. 제시가 고개를 까딱여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사라를 가리켰다. 바르바라는 그러다 사라랑 눈이 마주치는 즉시 시비가 걸릴 거라고 충고해주려다 말았다. 최근의 사라가 여유로워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먹다짐으로 갈 상황을 만들 것 같지는 않았는데, 사실 주먹다짐이 벌어지더라도 바르바라의 탓은 아니었다. 제시가 코가 부러지는 상상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네 코뼈가 부러지는 생각. 

 바르바라는 어깨를 으쓱이고 제시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대꾸했다. 

 “선택에 대해서.” 

 “참전과 도주에 대한?” 

 제시가 농담처럼 물었지만 바르바라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간밤에는 고삐에 쓸려 피부가 벗겨져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이반이 자신의 손을 붙잡았다가 고삐가 쓸고 지나간 자국을 더듬은 순간을 복기해냈다. 잠깐 실례. 그렇게 말한 후에 이반은 다시 한 번 힘주어 그 위를 붙잡고 덧붙였다. 손 조심해, 리드하려면 깨끗한 손으로 청하는 게 매너지. 마차 안으로 돌아온 바르바라는 생각에 잠긴 채 자꾸만 뒤로 멀어지는 천막 사이의 풍경을 응시했고 어느 순간 선잠에 빠졌다가 이른 새벽에 깨어났다. 그러자 선택지가 뚜렷해졌다. 

 “비슷하단다, 제시.”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식사를 마친 후 바르바라는 식당을 나왔다. 이반이 몇 걸음 앞서서 걷는 게 보였으므로 바르바라는 쉽게 따라잡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주변의 흙냄새와 나무냄새가 더 맹렬해지는 것 같았다. 식당과 멀어지자 소음은 금방 사라지고 걸어가는 발소리만 남았다. 바르바라는 앞을 보는 채로 조용히 말했다. 

 “계속 걸어서 보는 눈이 없는 곳으로 가야겠어.” 

 “산책이라도 하려고?” 

 “오, 무슨 소리를. 너도 같이 가야지.” 

 바르바라가 부드럽고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바르바라는 이반과 함께 숲의 입구까지 걸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흙바닥 위로 서리가 밟혀 튀어 올랐다. 마침내 바르바라가 멈추어 서서 이반을 돌아보았다. 이반의 어깨너머로 어두운 보라색 하늘과 검은 덩어리처럼 뭉쳐있는 숲의 그림자가 보였다. 이반이 숨을 쉴 때마다 그 풍경으로 입김이 번졌다. 

 잠시 후, 바르바라가 딱 잘라 말했다. 

 “넘겨줘야겠어.” 

 “무엇을?” 

 “이반,” 

 바르바라가 타이르듯 중얼거렸다. 

 “사용한다와 사용하지 않는다의 선택지를 남겨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받는다와 받지 않는다의 선택지였더구나. 깨닫게 해줘서 아주 고마워.” 

 반은 비꼰 것이었다. 

 “넘겨줄 마음이 없다면?” 

 “그런 선택지는 없어.” 

 바르바라가 말했다. 

 “넌 내게 선택지를 주지 않았잖니.” 

 바르바라는 잠깐 이반의 어깨 너머를 응시했다. 어두컴컴한 겨울 숲의 풍경. 바르바라는 전쟁이 켈커스의 겨울 숲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인가가 도사리고 있음은 명징하지만, 그것이 정말 무엇인지는 그 위험을 눈앞에서 마주하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가 없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바르바라는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을 처치하기 위하여 예상할 수 없는 힘을 쥐는 일에 대해 고민했다. 마차에 앉은 채로 매끈한 손바닥을 매만지면서, 혹은 식사를 하는 내내 수프를 휘저으면서, 바르바라는 이반 외에도 다른 사람이 또다시 그녀에게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선택이 능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는데, 모든 상황은 그 능동적인 선택으로 말미암아 수동적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아-주-고맙게도. 

 “손을 주시죠, 기사님.” 

 “훔쳐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주지는 않을 거야.” 

 이반이 밉살맞게 덧붙였다. 

 “세상엔 훔칠 수 없는 것도 있지.” 

 바르바라는 조용히 웃으며 이반의 두 손을 들어올렸다. 

 “훔칠 수 없는 건 없어, 이반.” 

 바르바라가 말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겨울이었고, 누군가는 죽거나 다칠 것이며, 도둑과 거짓말쟁이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모두가 부지런을 떨어야 할 시기였으므로 바르바라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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