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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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옥은 차갑고 딱딱했다. 바르바라는 발가락을 움츠렸다가 손을 더듬어 벽을 짚은 후, 그대로 천천히 다리를 접고 앉았다. 어둠 속에서 혼란과 분노, 피로에 물든 목소리들이 저마다 속삭이며 두 감옥을 번갈아 드나들었다. 가까이 붙어 앉은 동료들의 몸에서 쉰 가죽, 땀과 피와 철의 냄새가 났다. 쌀쌀한 공기에는 곰팡이와 이끼 냄새가 스며있었다. 바르바라는 어둠이 눈에 익기를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대한 것보다 시야가 선명해지지는 않았다. 지하였고,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초를 서는 데아의 기사는 횃불을 들고 있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고, 때때로는 자리를 비웠다. 어둠에 익숙해질 것 같으면 복도 끝에서 희끄무레한 횃불이 나타나 바르바라의 시야를 어지럽게 했다. 선써드는 그 횃불에 대해서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는 종국에 그들을 집요하게 가로막았던 데아 기사단에 대한 비난과 툴툴거림으로 변했는데 과연 감옥에 갇혀있다 한들 선써드의 이런 면모는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바르바라는 피곤해서 아무 말도 얹지 않았지만 가만히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이따금씩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다 잠시 졸았는데, 눈을 떴을 땐 아까보다 웅성거림이 잦아들어 비교적 고요해져 있었다. 벽에 난 창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가늠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바르바라는 주변의 사람들이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미루어 밤이 늦었다는 것을 짐작했다. 주변에서 규칙적이고 고른 숨소리들이 들려왔다. 아직 잠을 청하지 않은 사람들도 대화를 중단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는 지도 몰랐다. 

 그 날 바르바라는 새벽까지 깨어있었다. 

 횃불을 든 데아의 기사가 돌아오지 않은지 꽤 지났을 무렵, 바르바라는 마침내 침침한 어둠을 눈으로 익히고 주변 사물과 사람들의 윤곽을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같은 방에 갇힌 이들의 덩어리진 실루엣을 하나씩 짚어 머릿속으로 이름을 외워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과 어깨를 맞대고 있던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상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바르바라는 그를 금방 알아보았다. 이마 선을 따라 내려오는 앞 머리카락을 훑던 바르바라의 시선이 멈추었다. 이반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깼어?” 

 “내가 할 말이야.” 

 바르바라가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존 건 바랴 너지.” 

 “잠깐이야.” 

 바르바라는 잠시 침묵하다가 덧붙였다. 

 “잠이 오질 않는구나.” 

 “아까 졸았으니까.” 

 “잠깐이라니까.” 

 두 사람은 그런 시시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바르바라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이반이 했던 팔순의 이야기, 그러니까 오십 년 뒤의 미래에 대해 말도 안 되는 가정을 늘어놓았다. 주제는 어쩌다보니 타지아의 이야기로 빠졌다. 이반이 그들의 미래를 ‘세 명’이라고 지칭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몰랐다. 두 사람은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 속에 들어있는 돌멩이를 이따금씩 짚어보았고, 좋은 시절을 거쳐 드문드문 기억하고 있는 순간들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마침내 룬넨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두 사람은 언젠가 체사레의 여관집에서 했던 주사위 보드게임을 기억해냈다. 그곳에서, 아직 ‘세 사람’이었던 두 사람은 몇 번이고 이야기의 숲에 걸려든 타지아의 지루한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바르바라는 어쩌면 지금도 게임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드판은 전쟁터고, 말은 선루스 기사단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그 숲에 갇혀있는 건가. 그렇게 대답하는 이반에게서 지친 육신의 냄새가 났다. 

 바르바라는 무료한 것처럼 어깨를 타고 늘어지는 자신의 금발 끄트머리를 매만졌다. 전쟁을 각오하며 줄곧 마차에 올라있었는데, 막상 수도에 오니 깜깜한 감옥에 앉아있었다. 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눈앞에 있었더라면 훈육을 하듯 손을 붙잡고 손등을 찰싹 내려쳤을 것이다. 앞으로의 일들을 알 수 없었다. 전부 까마득하기만 했다. 마법이 나타났고, 다섯 달 동안 동료를 잃었고, 겨울이 오고, 종국에 마법을 거래하고, 심지어 검으로 사람을 베어죽인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바르바라는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일들을 상기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바르바라가 불쑥 말을 꺼냈다. 

 “숲에 들어왔으니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준비해야겠구나.” 

 “우리가 하지 않은 이야기도 있었나?” 

 “난 남아있어. 넌 더 이상 말할 게 없는 모양이지.” 

 바르바라가 물었다. 

 “도망칠 거니?” 

 “내가 그렇게 말했었나.” 

 “그렇진 않지.”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듣는 동안 잘 궁리해봐.” 

 네 남은 이야기들. 

 그런 후 바르바라는 마지막 괴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이반도 알고 있을 것이고 마리안도 알고 있을 것이고 길리언도 알고 있을 것이며 사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외의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켈커스 지방의 중부에서 시작되어 세미니온 곳곳에 전승된 이 이야기를 바르바라는 어린 시절 자신의 할머니 마미사로부터 들었다. 단 한 번 들었지만 결코 잊지 않았다. 이야기의 결말이 지역과 집안에 따라 조금씩 달랐기 때문인데, 바르바라는 체사레 집안이 믿고 있는 이 괴담의 결말을 이반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괴물처럼 무시무시하고 유령처럼 소리가 없는 도둑 브리다에 대한 이야기였다. 

 브리다의 어머니는 브리다를 낳다가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브리다는 나중에 그 일을 두고 “어머니의 다리를 훔쳤다”고 표현했다. 과연 그 말대로 브리다는 보통 아이들보다 더 빨리 걸음마를 배우더니 그 누구보다 빠르게 뛰고 그 누구보다 날래게 움직였다. 그녀는 그 다리로 장터의 모든 물건을 휩쓸고 귀족의 주머니를 털고 남의 명예를 훔치거나 이름을 빼앗았다. 

 브리다는 정말이지 훔치지 못 하는 게 없는 명석한 도둑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브리다가 훔쳐본 것과 훔치기 전의 것으로 나뉘어 있었다. 혹은 훔칠 것과 훔치지 않을 것으로 나뉘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브리다는 돈과 명예, 신분과 한 마을을 훔쳤고, 내킬 때는 형태가 없는 것도 훔쳐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사람의 마음, 기억, 한 시절과 시간을 빼앗는가 하면 아주 기분이 나쁠 때에는 상대의 수명마저 빼앗았다. 어느 날 브리다는 더 이상 인간의 세상에서 훔칠만한 게 없음을 깨닫고 신이 빚어놓은 가장 거대한 것을 훔쳐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해를 훔쳐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세상 끝으로 떠났다. 

 해를 훔치기 하루 전, 브리다는 세상 끄트머리의 마을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브리다와 마음이 잘 맞아 대화를 나누는 게 무척이나 즐거웠다. 브리다는 그에게 해를 훔치러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해가 어디쯤에 있냐고 물었다. 

 하늘에 있지. 남자가 대답했다. 

 그래, 낮에는 그게 너무 높게 매달려 있잖니, 내 말은 밤에는 그게 어디로 가냔 말이야. 브리다가 조금 성질을 내자, 남 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을을 감싼 두 개의 봉우리를 가리켰다. 

 밤에는 해를 저곳에 보관해두지. 신의 창고가 저기 있거든. 

 그날 밤 브리다는 남자가 일러준 지점을 향해 봉우리를 따라 산을 올랐다. 얼마나 올랐을까. 정말 남자의 말대로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무언가 있었다. 브리다는 봉우리 사이에 놓인 거대한 접시를 보았다. 바로 그 안에 해가 있었다. 브리다는 팔팔 끓고 있는 투명한 바닷물 안에 둥글고 아름다운 해가 잠겨 있는 것을 보았다. 

 브리다는 주머니에 해를 넣고 산을 내려왔다. 아직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주머니가 뜨끈뜨끈했다. 브리다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훔쳤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훔친 자신에게 충만한 자부심과 사랑을 느꼈다. 해를 훔쳤으니 이번엔 세상 전부를 훔쳐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을을 떠나기 전, 브리다는 해의 위치를 일러준 남자의 집에 들러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사례를 하겠다고 말했다. 원한다면 돈이나 작위를 주겠다고 했다. 영지를 원하면 땅을 훔쳐 주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마음을 훔쳐다 안겨주겠다 말했다. 남자는 관심 없다는 것처럼 웃더니 그런 것들은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브리다가 이때까지 훔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때마침 자부심으로 충만했던 브리다는 흔쾌히 그것을 수락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마주앉았다. 

 브리다는 자신이 여태껏 훔친 물건과 사람과 땅과 혹은 그 무엇도 아닌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또 늘어놓았다. 브리다의 업적은 끝이 없었다. 너무 많은 걸 훔쳤기 때문에 아무리 늘어놓아도 무용담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브리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때로 ‘정말?’ 혹은, ‘대단한 걸’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브리다가 해를 훔쳤기 때문에 창문 밖은 여전히 깜깜했고 새벽도 아침도 오지 않았다. 영원하고 끝없는 밤이었다. 하지만 이야기에 열중한 브리다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밤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하루가 채 다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몇날 며칠을 남자와 보냈는지도 모르고 브리다는 끊임없이 말하고 또 말했다. 

 어느 순간 브리다는 자신이 무언가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야기를 늘어놓던 브리다가 창백해진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가 브리다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야? 

 내 주머니가 가벼워진 것 같아. 

 그럴 리가. 

 브리다는 주머니를 확인했다. 해는 그곳에 있었다. 해를 보자 브리다는 모든 진실을 깨달았다. 브리다는 격노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내 시간을 빼앗았구나. 

 그렇지 않아. 남자가 대답했다. 그건 네가 내게 직접 준 것일 뿐이야. 

 하지만 내 주머니가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얼 빼앗긴 것 같니? 

 브리다는 잠시 고민에 빠졌고,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온몸을 더듬고 뒤지고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무사했다. 재빠른 다리도, 비범한 손도, 영민한 눈도 그대로였다. 브리다는 자신을 놀리는 남자가 괘씸해 그의 생명을 빼앗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남자의 목을 조르려는 브리다의 손이 머뭇거리다 마침내 동작을 멈췄다.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망설이니? 남자가 물었다. 

 널 죽일 수가 없어. 브리다가 화가 나서 말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맞아, 나는 네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을 빼앗았어. 남자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돌려받고 싶다면 나와 거래를 하자. 네 마음을 돌려줄 테니 해를 돌려줘. 

 남자는 신의 창고를 지키는 문지기였다. 

 

 브리다는 자존심이 상해 미친 듯이 남자를 저주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주먹으로 때리고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며 위협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뒤흔들던 자라도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오로지 단 한 사람에게 흔들리는 법. 브리다는 결국 주머니를 열었다. 해를 돌려주겠노라고 선포했다. 남자는 주머니를 받고 브리다의 마음을 돌려주었다. 

 남자가 해를 꺼내기 위해 주머니 안으로 고개를 숙이는 순간, 브리다는 해를 제외한 그의 모든 것을 그로부터 빼앗았다. 이름, 역할, 신분, 마음, 브리다의 무용담을 비롯한 브리다의 모든 흔적과 조각들, 시간과 이야기들을 빼앗았다. 그런 후… 그녀는 마을을 떠나버렸다. 

 자신의 역할을 잊은 문지기는 밤이 되면 해를 창고에 도로 집어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빼앗긴 것을 찾기 위하여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영원한 낮이 계속되었다. 끓어오르는 열이 세상을 술렁이게 만들자, 신은 차가운 달을 빚어 때가 되면 그것이 뜨거운 해를 식혀 봉우리 사이로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그 뒤로 낮과 밤이면 하늘에 뜨겁거나 차갑고 아름다운 둥근 해와 달이 번갈아 떴다. 

 

 3. 

 “그 뒤에 브리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는구나.” 

 이반이 말했다. 바르바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집안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해와 달이 만들어지고, 브리다는 복수를 하고 세상에서 몸을 감쪽같이 감췄단다.” 

 “뒤가 궁금하지 않아?” 

 “전혀. 사실 우리 집안사람들은 이 이야기의 끝을 이미 알고 있단다.” 

 바르바라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이건 나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래서 이야기는 거기서 닫혔다. 바르바라의 차례가 끝났으니 그녀는 숲을 빠져나올 것이고 이제는 이반의 차례가 되었다. 

 숲을 빠져나올 준비가 되었니, 라고 바르바라는 숲의 입구에서 이반을 쳐다보며 조용히 물었다. 

201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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