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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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법을 쓰지 마. 

 바르바라는 대체로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2. 

 바르바라와 길리언이 서로를 마주보며 서있었다. 주변은 피로 축축했다. 길리언이 검을 흔들어 피를 털어내고는 천천히 바르바라의 손을 놓았다. 바르바라는 왼손을 조금 움츠려보았다. 아프지 않았고, 화끈거리지도 않았고, 뜨겁지도 않았다. 상처는 없었다. 바르바라는 그 기적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방금 길리언이 바르바라를 위해 마법을 썼다. 

 “지금은 바르바라가……, 필요한 순간이었어요.” 

 바르바라는 길리언의 얼굴을 시선으로 매만지다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한숨을 쉬었다. 깨끗한 손바닥을 타고 출처를 잃은 핏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주변이 조용했으므로 두 사람은 모든 일이 끝났음을 알았다. 발밑에 쓰러진 시체의 창백한 손등을 내려다보던 바르바라가 시선을 흘리며 마차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참 말이 없던 바르바라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움직이자.” 

 

 3. 

 무려 5개월이다. 짧은 시간이 될 수는 없었다. 바르바라는 그곳에 두고 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지난 5개월 동안 바르바라는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밤마다 꿈에서 잃어버린 사람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왔다. 길리언도 그곳에 있었다. 

 마법과 함께. 

 

 4. 

 피를 뒤집어 쓴 바르바라가 먼저 마차에 올랐다. 그런 후 손을 내밀어 그를 끌어올려주었다. 마차에 올라탄 모두가 피곤한 것처럼 말을 아끼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마차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머리를 기대고 앉았다. 길리언이 옆에 앉는 소리가 들렸다. 바르바라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의 일들을 고민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길리언이 숨을 쉬는 게 느껴지고, 몸을 뒤척이는 게 느껴지고, 자신을 살피는 게 느껴지자 결국 천천히 눈을 떴다. 시선이 마주쳤다. 바르바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피곤한 것처럼 콧잔등을 누르며 숨을 골랐다. 잠시 후, 바르바라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생각을 하고 있단다.” 

 “무엇을요?” 

 “내가 한 터무니없는 거래에 대해서.” 

 길리언은 잠시 침묵하다 긍정했다. 

 “네, 마법을 쓰신 걸 봤어요.” 

 “그래.” 

 바르바라는 비참한 기색을 숨기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걸 나도 가지고 있단다.” 

 

 5. 

 마법이 기적의 대가로 생명을 갉아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르바라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영리한 사기꾼은 덫에 걸리지 않고, 수지에 맞지 않는 장사를 하지도 않는다. 마법이 기적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을 행하는 힘이라서가 아니라, 이때까지 우리 주변의 그 누구도 가져보지 못 했던 힘이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마법이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축에 속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을 바꿀 수는 없는 힘은 이 세상에 널려있다. 마법이 특별하게 취급되는 건 아무도 가져보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며, 이제는 누군가 가지게 되었으니 또 다른 누군가는 마법의 정체를 꿰뚫어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을 바꿀 수는 없으나 지불하는 대가는 큰 무엇”의 이름을 짧게 써야만 한다면 “마법”이 좋겠다. 바르바라는 마법을 선택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품에 숨긴 단도처럼 최후에 꺼내 쓸 선택지로 남겨두었다. 그래서 마지막 짐을 정리하기 위해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서 길리언을 만났을 때,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마법을 쓰지 마. 

 

 6. 

 마차가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차가운 마차 안에서 희미하게 피비린내가 났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의 손을 붙잡아 피딱지를 하나씩 벗겨주었다. 둘 다 말을 아꼈다. 한참을 천막 사이의 풍경을 응시하던 바르바라가 문득 떠오른 것처럼 물었다. 

 “이 모든 게 끝나면 뭘 할 거니.” 

 침묵. 

 “저는…,” 

 길리언이 피곤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몸을 뒤척였다. 

 “우선 편지를 보낼 거예요.” 

 “그러니.” 

 바르바라는 하늘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구나.” 

  

 7. 

 바르바라는 길리언의 두 손을 붙잡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마법을 쓰지 마. 그 말은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뜻이었다 : 길리언, 너를 희생해서는 안 돼. 네가 희생의 원인이 될 수는 있어도 희생의 주체가 되어선 안 돼. 바르바라는 어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관대했다. 혹은 어리고 젊은 사람들처럼 서투른 사람들에게 관대했다. 선루스 써드빌 기사단의 신입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줄 때, 나이차가 큰 어린 단원들에게 상냥한 충고를 아끼지 않을 때, 바르바라의 머릿속엔 그 사실이 항상 지워지지 않는 글씨처럼 새겨져 있었다. 너보다 서투른 이들에게 관대하라, 써드빌에선 누군가를 물어뜯거나 증오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바르바라는 생각뿐 아니라 그런 식으로 행동도 했다. 길리언에게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말을 부정하지 않겠다. 길리언은 어렸기 때문에 바르바라가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범위 깊숙이 소속되어 있었다. 길리언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기를 바르바라가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원한다면 바르바라는 길리언이 마법을 쓸 때마다 그를 겁주고 협박할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길리언은 그녀의 충직하고 온순한 제자였으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못해서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약속을 할 것이며 설령 약속을 깰 상황이 와도 주춤거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바르바라가 길리언의 두 눈을 올려다보았을 때, 

 길리언은 대답했다. 

 하지만, 

 

 8. 

 마차가 한 번 덜컹 흔들려서 두 사람의 몸이 조금씩 부딪쳤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의 손을 힘주어 쥐었다가 놓아주었다. 지리멸렬한 피로와 분노가 한 차례 몸 안을 맴돌다 지나갔다. 바르바라는 이 일이 끝나면 무엇을 할지가 떠올랐다. 그러자 자신이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마침 그녀의 곁에는 길리언이 있었고, 적어도 바르바라가 아는 한 길리언은 바르바라를 도와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바르바라는 길리언에게 말했다. 

 

 7. 

 하지만… 아시잖아요. 

 길리언은 지킬 수 없는 것은 약속하지 않는다. 

 

 8. 

 “네 도움이 필요해.” 

 그 말에 길리언이 바르바라를 돌아보았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인가요?” 

 “그럼.” 

 바르바라가 속삭였다. 

 “이건 귀족이 아닌 사람만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란다.” 

 “어째서요?” 

 “난 귀족을 믿지 않거든.” 

 바르바라는 덧붙였다. 

 “하지만 이 일에는 돈이 필요하단다.” 

 

 9. 

 길리언이 마법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자 바르바라는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다그치듯 읊었다. 내가 필요할 땐 네가 그것을 알려줘야 해. 그건 약속해야만 해. 그때까지만 해도 바르바라는 수도에 올라가서야 마법을 배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온 직후에야 바르바라는 자신의 단도를 꺼내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법은 그녀에게 포기가 가능한 선택지였지 필수적인 선택지는 아니었다. 

 길리언은 바르바라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전 언제나 바르바라의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10. 

 바르바라는 길리언에게 그 무엇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다. 바르바라는 길리언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그것을 조금 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게 전부였다. 

 “휴가를 가야겠어.” 

 바르바라는 질린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돈을 마련하는 건 의미가 없단다.” 

 그런 후 바르바라는 이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인적이 드문 호숫가, 조용한 숲과 잔잔한 물결과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길리언의 어깨에 느긋하게 기댄 채로 작게 “아깐 고마웠단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고는 가능하면 누군가의 앞에서 마법을 쓰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시 눈을 붙였다. 옅은 꿈속에서 바르바라는 미래를 보았고 그것에 만족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바르바라 체사레가 아니었고 그 무엇도 아니었다.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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