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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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밤 바르바라는 손님과 함께 창가에 앉아 우이드린 호수를 보았다. 너에게 들려줄 괴담이 있어. 그러니까 오래 머물다 가줘. 바르바라가 중얼거렸다.

 손님은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바르바라는 등불을 올리고 커튼을 걷었다. 문을 닫고 부엌으로 들어가 음식을 들고 왔다. 잘 썰린 부드러운 양고기였다. 시종일관 침묵하던 손님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축제음식이네.”

 “맞아. 오늘은 축일이잖아.”

 바르바라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먹어봐.”

 손님은 포크를 들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바르바라는 자리에 앉아 테이블 위에 두 팔을 포개고 손님의 턱관절이 움직이는 것을 주의 깊게 살폈다. 어떤 정보를 포착하려는 바르바라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가 손님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웃음과 함께 접혀 들어갔다.

 “맛있네.”

 손님이 웃었다. 바르바라도 가볍게 웃었다.

 “신경 썼으니까.”

 “이렇게 진수성찬을 차리면 주머니 사정이 곤란해지는 거 아냐?”

 “내 주머니 사정이 곤란했던 적이 있을 것 같아?”

 “남에게 베푸는 도둑이라니.”

 손님은 다시 포크를 움직여 한 점을 마저 입에 넣었다. 바르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반쯤 치고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다른 요리를 내왔다. 테이블에 접시가 하나 둘 늘어났다. 수프와 생선, 야채와 빵테이블이 가득차서 더는 아무 것도 올릴 수 없을 때까지 음식이 차려졌다. 손님은 끊임없이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였다. 조용한 오두막집에서 식기가 접시와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바르바라는 손님이 음식을 집어넣고 천천히 씹은 후 삼키는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손이 창백하네. 춥니?”

 식기를 움직이던 손님의 손이 멈추었다.

 잠시 후 손님은 어깨를 으쓱였다.

 “잘 모르겠는걸.”

 “음식은 어때?”

 “아주 맛있어.”

 “다행이네.”

 손님은 천천히 공들여 음식을 먹어치웠다. 그가 먹는 동안 바르바라는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이름을 묻거나 타지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자신의 아들 이름을 물어보기도 했다. 손님은 전부 대답했다. 그 사실이 바르바라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바르바라는 손님이 자신이 아는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판단했다. 손님은 계속해서 엄청난 양의 축제음식을 먹어치웠다. 빈 접시가 늘어날 때마다 바르바라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호수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있었다. 수면이 달빛을 받아 윤기가 흘렀다. 검은 거울처럼 보였다. 무언가를 비추고 흉내 내기 위해서는 상이 필요한데 세상이 어둠에 잠겨있다면 과연 누구를 비추고 흉내 낼 것인가. 바르바라는 생각했다.

 식사를 반쯤 마쳤을 때 손님이 말을 걸었다.

 “괴담 이야기를 해준다며?”

 바르바라는 식탁에 촛대를 얹고 촛불을 켰다.

 “맞아,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야.”

 “들개에 대한?”

 “들개에 대한.”

 바르바라는 의자를 끌어다 앉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켈커스 북동쪽에 살고 있는 개의 형상을 한 괴물의 이야기였다. 눈 속을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설견이 있었는데, 모두가 그 개의 이름을 버나디라고 불렀다. 버나디는 온몸이 하얗고 두꺼운 털로 덮여있었다. 그래서 멀리 있으면 몸통이 보이지 않았다. 눈이 아주 희지는 않은데, 버나디의 털도 그런 설산의 눈처럼 침침한 하얀색이었다.

 하지만 나그네들은 멀리서도 버나디를 알아볼 수 있었다. 버다니의 얼굴이 안과 밖이 뒤집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가죽이 피부 대신 바깥으로 나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버나디가 나타나면 새하얀 설산 한가운데에 새빨간 얼굴만 동동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버나디의 눈은 사람처럼 좌우로 길게 찢어져 있었는데, 검은자가 아주 선명하고 또렷했다. 밤에 마주치면 어떤 주술을 위해 만들어진 시뻘건 가면이 허공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버나디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길을 잃고 죽어가는 인간을 좋아했다. 버나디는 설산을 헤매다 밤을 맞이한 나그네의 앞에 반드시 나타났다. 나그네가 추위로 몰려오는 졸음을 쫓기 위해 나무에 주저앉으면, 저 멀리서부터 새빨간 얼굴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얼굴이 고개를 돌리거나 움직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나그네를 지켜보는 게 다였다.

 얼굴은 오로지 나그네가 눈을 깜빡일 때만 가까워졌다. 움직이는 시늉조차 없었는데 그 얼굴만큼은 나그네의 졸음에 맞추어 조금씩 앞으로 다가왔다. 죽기 전에 나그네는 자신의 발치까지 다가온 그 허공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뒤에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적적으로 돌아온 나그네들이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더는 이야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산에는 매년 눈을 가린 채 꽝꽝 얼어버린 시체 몇 구가 나온다.

 

 바르바라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다 말고 테이블의 접시 대부분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버나디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손님이 꾸준히 먹어치운 것이다. 바르바라는 깍지를 끼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손님이 식기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들어 그 시선을 받아쳤다.

 “흥미로웠어.”

 “그랬니?”

 “그럼. 네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지 바르바라.” 

 바르바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손님이 바르바라처럼 몸을 앞으로 숙였다. 두 사람은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얼굴을 가까이 마주했다. 시선이 서로를 샅샅이 훑었다. 둥그런 이마와 눈썹, 눈동자와 콧대, 입술과 턱바르바라는 검은 거울을 떠올렸다. 어둠속에 가려져 더는 아무것도 비추거나 흉내 낼 수가 없는 거울을. 손님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가 창밖을 보면서 말했다.

 “슬슬 가야겠어. 네 음식을 다 먹는데 사흘이나 걸렸거든.”

 “많이 만들었으니까.”

 “그래, 하지만 제때 다 먹었지. 네 속셈쯤은 알고 있어.”

 “그러니.”

 “이제 정답을 말할 시간이야.”

 손님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바르바라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 사이로 촛대 위의 촛불이 타올랐다. 이글거리는 작은 화염이 두 사람의 눈동자를 번갈아 비추었다. 둥글고 반들반들한 눈동자 위에 맺힌 상이 원통으로 일그러졌다. 바르바라는 손을 뻗어 촛대를 쥐었다. 손님이 그 위로 손을 포갰다.

 “내가 누구지?”

 손님이 속삭였다. 바르바라는 시선을 내리깔고 자신의 손 위로 포개어진 손님의 손등을 응시하며 침묵하다가, 마침내 천천히 대답했다.

 “이반.”

 바르바라는 손님을 바라보았다.

 “다음에 올 때는 좀 더 그럴듯하게 흉내를 내줘.”

 바르바라는 덧붙였다.

 “바르바라라고 부르지 마.”

 손님이 작게 웃었다.

 “그렇게 하도록 할게, 바랴.”

 그런 후 손님이 후, 촛불을 불었다. 오두막집은 순식간에 어두컴컴해졌다. 잠시 후 달빛이 들면서 조금의 빛이 들어와 서로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손님이 바르바라의 손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오두막집 밖으로 나갔다. 젖은 풀을 맨발로 밟자 흙냄새가 퍼졌다. 바르바라는 손님을 따라 호수를 향해 걸어 내려갔다. 손님은 호수 앞에서 손을 놓더니 먼저 성큼성큼 검은 물을 해치고 나아갔다. 그의 허벅지까지 차오른 수면 위로 부드러운 결이 잔잔하게 퍼졌다. 바르바라는 멈추어 섰다. 발끝으로 출렁거리는 호수물의 축축한 냉기가 느껴졌다.

 “안 올 거야?”

 손님이 뒤돌아 물었다. 바르바라는 손님을 쳐다보았다.

 “난 네가 거울이라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너는 오답을 말했잖아.”

 “맞아. 일부러 그랬어.”

 바르바라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이미 오답을 말했으니까. 그래서 호수 밑바닥이 아니라 오두막집에 앉아있었지.”

 그런 후 바르바라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차가운 호수의 물살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서늘한 기운이 그녀의 무릎을 타고 기어올랐다. 오한이 돋았다. 꿈이 이상할 정도로 생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짠 내가 밀려오더니 강한 파도소리가 들렸다. 바르바라는 번쩍 눈을 떴다.

 큰 달이 보였다. 써드빌 해변의 밤바다 냄새가 짭조름하게 밀려왔다. 바르바라는 자신이 바다로 걸어 들어가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릎까지 차오른 바닷물이 파도치며 그녀를 떠밀었다가 다시 끌고 들어갔다. 바르바라는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다말고 천천히 해변으로 되돌아왔다. 잠옷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치마폭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발목을 두드리며 발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바르바라는 신경질적으로 치마를 들추고 옷을 짜다가 젖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자 나머지 한손으로 그것을 귀 뒤로 넘겼다. 그런 후에 자신이 바깥으로 걸어 나오며 찍어놓았던 발자국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바다 따위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바랴. 잃어버린 사람이 있어?

 그래, 라고 바르바라가 중얼거린다. 그래, 있어. 아주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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