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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검을 주웠니? 내가 남긴 것들은 무사히 전달되었니? 바르바라는 생각했다. 살아있다면 어디쯤 왔는지를 묻고 싶었다. 섬에 남기고 온 그들에게. 하지만 동시에 바르바라는 생각했다.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오즈에게 짧은 인사와 보고를 마친 후에 바르바라는 일주일동안 해변을 걸었다. 다 걷지도 않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창밖을 쏘아보며 내내 생각에 잠겨있었다. 기사단의 숙소는 평소보다 두 배로 조용했다. 아무도 감히 복도를 거닐며 담소를 나누거나 소란스럽게 뛰쳐나와 곤경에 처한 자신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침묵과 고요함 속에 미세하게 스며든 불안과 분노와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미세한 입자에는 다름 아닌 바르바라의 냄새도 배어있었다. 

 바르바라는 배에 올라타 섬으로 떠나던 그 순간부터 배에 올라타 섬을 떠나던 순간을 차분하게 되풀이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주일 째에는 더 이상 해변으로 나가지도 않고 숙소에 머물렀다. 오즈가 돌아오지 못 한 자들의 숙소를 치우지 말라고 명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따금 복도를 지날 때마다 낮은 목소리들이 속삭이듯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바르바라는 비교적 침착한 얼굴을 했다. 실제로 침착하려고 애썼다. 

 한 달 뒤부터 바르바라는 무엇이든 이야기하고픈 욕망에 시달렸다. 살아있니. 죽었다면 어떻게 죽었니. 시체를 찾을 수 있겠니. 살아있다면 내가 남긴 것을 발견했니. 오즈가 보낸 배는 어떻게 되었니. 의미가 없는 질문이 많았다. 바르바라는 죽음에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실종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완전히 끝났다고 받아들이는 것과 끝났을 거라고 애써서 믿는 데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슬픔과 고통을 드러내는 인간이 아니다. 

 얼마 뒤, 바르바라는 헤일리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짧은 담소로 시작했다가 때때로 방에 앉아서 조용한 목소리로 의견을 교환했다. 대화는 저녁부터 밤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감성적인 시간대를 보낼 때에도 바르바라와 헤일리는 흥분하거나 흐느끼는 법이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고저 없는 톤으로 침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바르바라는 종종 방안을 밝혀둔 촛불을 흘끔거렸다. 빛. 타오르는 성질을 연거푸 흘끔거리면서 입으로는 “돌아오지 못 하겠지”라고 말했다. 

 “오답을 말한 쪽이라 안심한 적 있어?” 

 바르바라가 물었다. 두 사람은 그 날 오전 오즈가 써드빌을 직접 돌아다니며 돌아오지 못 한 기사들의 가족들에게 직접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헤일리는 고개를 들어 조용히 바르바라를 응시하다가 대답했다. 

 “안심했다고 말하고 싶진 않겠지만, 거짓말도 별 의미는 없겠죠.” 

 “그래.” 바르바라는 중얼거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그런 후 약속이나 한 듯이 둘 다 입을 다물었다. 

 헤일리가 아니었더라면 바르바라는 고통스럽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헤일리에게 그런 것들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헤일리가 아닌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헤일리가 아닌 누군가에게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안도한 적이 있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바르바라는 선루스 기사단에서 나쁜 의미로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은 정말로 헤일리나 오즈뿐이다. 

 “다들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해?” 

 바르바라가 묻자, 창밖을 응시하던 헤일리가 바르바라를 곁눈질하고는, 곧이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든 말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제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헤일리는 날카롭게 덧붙였다. 

 “살면서 한 번도 제 생각대로 되어본 적이 없는데.” 

 “하하… 그래?” 

 바르바라는 힘없이 웃었다. 

 “난 죽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 후 두 사람은 똑바로 마주보았다. 바르바라는 헤일리의 얼굴을 시선으로 훑었다.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부터 진한 한 쌍의 녹안, 눈 아래에 난 두 개의 점을 훑어댔다. 바르바라는 자신의 제자들이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해왔다. 헤일리와 길리언은 닮은 구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헤일리는 혼자를 원하지만 길리언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헤일리는 영특했지만 길리언은 둔했다. 헤일리는 종종 거짓을 짚어 말했지만 길리언은 종종 진실을 짚어서 말했다. 그러나 헤일리를 바라보는 그 순간, 바르바라는 자신의 두 제자가 어김없이 똑 닮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르바라는 눈앞에 앉아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진한 녹안의 소년을 볼 수 있었다. 길리언은 입가에 난 두 개의 점을 문지르다 말고 배시시 웃었다. 

 “스승님.” 

 헤일리가 차분하게 말을 걸었다. 바르바라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길리언이 눈꺼풀 뒤로 흡수되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눈을 뜨자 헤일리가 차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헤일리.” 

 바르바라가 한 박자 느리게 대답했다. 

 “밤이 늦었네요.” 

 “불을 꺼야겠구나.”

 “방이 어두워지면 저는 돌아갈게요.” 

 “그러렴.” 

 바르바라는 손을 뻗어 촛불을 쥐었다. 희미한 불빛이 두 사람 사이에 들어찼다. 바르바라와 헤일리는 불꽃을 내려다보았다. 빛. 타오르는 성질. 밝고 따뜻하고 왕성한 것. 생명. 바르바라가 후, 촛불을 불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방이 어둠으로 들어찼다. 눈을 감아도 떠도 모두 어둠이었다. 단검을 주웠니? 바르바라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고저 없는 목소리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아니오, 스승님. 그 목소리가 길리언인지 헤일리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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