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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 번째 식사를 걸렀을 때, 바르바라는 자신이 더 이상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 내내 굶었는데도 뱃속은 조용했다. 오히려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상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신 목구멍이 타는 듯이 아파왔다. 누군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바르바라는 처음에 그것을 고통이라고 생각했다가, 한밤중에 박차고 일어나 식당으로 달려갔을 즈음에야 그것이 극심한 갈증임을 깨달았다. 물, 와인, 혹은 어떤 것. 목을 축축하게 적실 수 있는 액체가 절실했다. 바르바라는 미친 사람처럼 와인을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켰다가 헐떡이며 모조리 토해냈다. 목구멍이 꿈틀거리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빈 뱃속에서부터 격렬한 거부반응이 올라왔다. 바르바라는 몸서리쳤다. 이게 아니야!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머릿속으로 번쩍 생각이 내리꽂혔다. 하지만 이 성에 나를 도와줄 만한 게 있을 거야. 

 바르바라는 자신이 토한 와인으로 시뻘겋게 젖은 카펫을 밟으며 조용히 침실로 돌아갔다. 

 

  2. 

 바르바르는 이틀 동안 방 안에 틀어박힌 채 바깥으로 흩날리는 눈을 쏘아보았다. 북쪽의 신화와 괴담을 떠올리면서 즐거운 상상을 해보려 했다. 잘 되지는 않았다. 기억나는 건 많았지만 지금의 바르바라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게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구멍이 타는 듯이 뜨거워졌다. 바르바라는 침착하려 애썼다. 문득 늑대가 되었다가 다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던 욘디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나 욘디는 인간이 되기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괴물은 그런 식으로 탄생하곤 한다) 바르바라는 생각했다. 그럼 지금 나는 늑대가 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늑대는 갈증을 느낄 때 웅덩이에 얼굴을 처박고 물을 마시지 바르바라처럼 누군가의 목덜미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랬다, 바르바라의 마음속으로는 단 한 가지만이 강렬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이미지가 되어 바르바라를 뒤흔들고 있었다. 다른 욕망은 깡그리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그 욕망만이 사라진 욕망들의 몫까지 더욱 강렬하게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을 원했다. 하지만 아드리안 자체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속으로 아드리안을 그려보면,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의 몸을 구성하는 부위 하나하나를 포착하고 시선 안에서 난도질할 수 있었다. 아드리안의 얼굴과 어깨와 팔다리와 몸통을 분리하고 마침내는 목덜미만을 시선에 남길 수 있었다. 귀를 기울이면 그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따뜻한 개울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아드리안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 뜨겁고 따뜻한 피의 고랑. 

 바르바라의 입에서 침이 솟아올랐다. 

 

 3. 

 아드리안은 거의 나흘 만에 식당에 모습을 드러낸 바르바라를 보고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는 정제된 몸짓으로 우아하게 나이프를 움직여 생선을 잘라 먹었고, 바르바라가 곁으로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을 때도 와인을 마시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드리안은 바르바라가 낯선 상황 속에서 마음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죽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랐다. 모두는 이곳에 너무 갑작스럽게 도착했고 너무 많은 걸 기억하지 못 했는데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반면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의 곁에 앉자마자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머리카락을 모조리 쥐어뜯으면서 애원하거나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미쳐버리는 중인 것 같았다. 아드리안의 몸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촉수가 뻗어 나와 바르바라를 끌어안고 감싸고 뒤흔들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살아있음으로써 온힘을 다해 바르바라를 유혹하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번쩍 고개를 들어 아드리안을 바라보았다.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아드리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바르바라는 평소처럼(평소처럼?) 나긋나긋하게 말해보려고 애썼다. 

 “시세로.” 

 하지만 다음 템포 만에 바르바라의 목소리가 무너졌다. 

 “가까이… 가도 돼?” 

 바르바라는 가면을 벗어던졌다. 

 “거기 얌전히 있어.” 

  

 4. 

 의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드리안이 신음을 뱉으며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다 말고 주저앉았다.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을 밀쳐 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탔다. 테이블에 아슬아슬 걸쳐져있던 식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드리안과 바르바라는 서로를 오래 마주보았다. 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르바라가 아무 생각도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뭐해요? 바르바라도 그런 짓을 하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아드리안이 말했다.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의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이해하지 못 하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명령을 이해하지 못 한 사냥개가 고개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드리안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 한 것 같았다. 

아드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바르바라도….” 

 그때였다. 바르바라가 아드리안의 목덜미로 얼굴을 묻었다. 아드리안이 흠칫 몸을 떨었다. 바르바라는 바로 그를 깨물지는 않았다. 코를 박고 목덜미를 훑으면서 냄새를 맡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아드리안이 살아있기 때문에 내뿜는 생기를 모조리 빨아먹으려 했다.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바르바라는 두 손으로 아드리안의 뺨을 어루만지고 어깨를 감싸고 목덜미에 매달렸다가 허리를 조일 듯이 붙잡았다. 숨이 지나는 감촉이 느껴질 때마다 아드리안은 미약하게 고개를 비틀었다. 

 “으…,” 

 아드리안은 침착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잘 될 리 있을까? 

 마침내 바르바라가 최적의 장소를 찾아냈다. 아드리안의 목덜미는 이틀 내내 그려본 것보다 더 부드럽고 탐스러워 보였다. 바르바라는 얼굴을 묻고 아드리안의 살결 아래로 흐르는 피를 느꼈다. 뺨을 타고 느껴지는 아드리안의 맥박.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아드리안이 그녀의 품에 있어서 정말이지 행복했다. 그를 너무 강렬히 원했다. 목구멍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뜨거운 불덩이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천천히 혀를 내밀었다.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의 목덜미를 접시 핥듯이 싹싹 핥아댔다. 살을 녹여서 뼈가 드러날 때까지 핥아대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를 정말로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드리안의 살이 아니라 살이 숨기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바르바라의 욕망이 마침내 목구멍을 빠져나와 혓바닥 위에 앉았다. 난나, 이름값을 해야지. 한 건을 하는 거야. 그녀의 욕망이 말했다. 

 그래서 바르바라는 입을 벌렸다. 

 아드리안이 품에서 부르르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5. 

 아드리안은 반항했다. 바르바라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칠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반항했다. 아드리안은 바르바라에게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무엇을?) 싫다고 말했다. 떨어지라고 팔을 휘저었다. 바르바라는 그럴 때마다 아드리안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처럼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살을 파먹을 것처럼 혓바닥을 움직이면서 이를 더 깊숙하게 박아 넣었다. 오랜 시간 갈증으로 고통 받은 만큼 피를 빨아올렸다. 아드리안의 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축축했다. 쩍쩍 갈라져 있던 바르바라의 목 곳곳으로 스며들어 숨을 쉴 수 있게 해주었다. 바르바라의 욕망이 기쁨의 비명을 질러댔다. 

 아드리안의 얼굴은 금세 창백해졌다. 아드리안은 새로운 심장이 생긴 것 같았다. 일정한 리듬을 타고 온몸의 피가 한곳으로 펌프질하듯 빨려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심장은 피를 돌려주는 대신 모조리 빨아먹었다. 한 번 빨려 들어간 피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 했다. 아드리안은 급격한 현기증을 느꼈다. 반항할 힘이 없었다. 바르바라는 탐욕스러운 도둑의 기질을 타고났고 아드리안은 체념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아드리안이 작게 신음하면서 바르바라에게 중얼거렸다. 

 “그만,” 

 아드리안은 현기증 속에서도 몸을 뒤흔드는 열기를 느꼈다. 

 “그만,” 

 하지 말라는 말은 이제 목구멍을 맴돌았다. 바르바라는 아예 아드리안을 깔고 누워 온몸을 웅크리고 오로지 아드리안에게 매달렸다. 아드리안이 힘겹게 몸부림치다가 탄성을 내질렀다. 

 “바르바라.” 

 아드리안이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나를 죽일 셈이야?” 

 그 말에 바르바라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바르바라의 두 뺨은 기쁨과 흥분으로 물들어 있었고 입술은 피로 흥건했다. 아드리안의 새하얀 뺨 위로 시뻘건 핏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드리안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쥐었다. 상처부위가 화끈거렸다. 손바닥 사이로 울컥울컥 피가 새는 게 느껴졌다. 

 아드리안은 생리적인 눈물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그만해요… 죽을 것 같아.” 

 “엄살떨지 마, 시세로….” 

 바르바라는 얼굴을 찡그리며 숨을 골라보려 애쓰다 기침했다. 그녀는 몇 번 핏방울을 토해내고는 아드리안의 두 뺨을 움켜쥐었다.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드리안이 혼란스럽게 중얼거렸다. 

 “바르바라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 좀 더….” 

 “흘릴 것 같으니까 입 다물어.” 

 바르바라는 다시 아드리안의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6. 

 목구멍의 열기가 해소되자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아드리안에게서 몸을 일으킬 때,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의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궈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다리에 스치는 아드리안의 아랫도리 사정은 모른 척했다. 

 그녀는 창백하게 질려 바닥에 늘어진 아드리안이 욕망과 고통 속에서 다리를 떠는 것을 지켜보다 말고 방으로 돌아왔다. 이불을 갑옷처럼 감싸고 다리만 내놓은 채로 침대 위에 늘어졌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드리안의 피를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았다. 그걸 마시면 마실수록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희미해지고 마침내는 없는 일처럼 취급되는 것 같았다. 바르바라는 천천히 눈을 감고 몸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자신이 아드리안보다 더 성적으로 흥분한 것을 알았지만 아드리안에게 돌아가지 않으려고 온힘을 다해 자신을 제어했다. 다리 사이가 뜨거워진 것을 알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붙잡으려 몸부림쳤다.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이 자신의 아들과 비슷한 이름이라는 것을 상기함으로써 그를 인간으로 인식하는데 성공했다. 내일은 조금 상냥하게 대해줘야겠다.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바르바라는 가면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날 새벽 이불 속에서 몇 번 뒤척이던 바르바라는 밤이 끝나가도록 해소되지 않는 성적인 욕망 때문에 짜증 섞인 신음을 내질렀다. 결국 그녀는 언젠가 와인을 마시러 갈 때 그러했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식당으로 내려갔다. 맨발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하지만 아드리안은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바르바라는 찬 바닥에 웅크린 채 작게 욕지거리를 하다가 바닥에 떨어져 차갑게 말라가는 핏방울을 손으로 쓸었다. 그리고 축축해진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고 천천히 빨았다. 아드리안의 피구나. 바르바라는 황홀하게 눈을 감았다. 

 

 7. 

 그 때 아드리안이 중얼거린 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드리안은 바르바라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드리안은 과거의 바르바라로부터 어떤 상냥함,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거나 게걸스럽게 탐하지 않는 품위를 찾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이전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았고 잘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건, 과거의 그녀는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자신은 곧잘 욕망을 숨기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욕망이 숨길 수 있을 만큼 미약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바르바라가 욕망을 숨기고 상냥해질 수 있던 것은 그녀가 능숙하고 어른이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건 강렬하고 추한 욕망은 언제나 그녀의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각각의 갈래로 뻗어나가 바르바라의 삶에 녹아들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바르바라는 어떠한가? 그녀가 원하는 건 이제 아드리안밖에 없다. 원하는 것은 빼앗으면 그만이고 이제 그녀는 아드리안으로부터 아드리안이라는 존재를 빼앗을 것이다. 바르바라는 체사레의 자식이고 그 사실을 유감없이 드러낼 준비가 되어있었다. 

 

 8. 

 다음 날에도 아드리안은 바르바라를 피해 달아나거나 분노하며 침을 뱉거나 욕지거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르바라를 마주쳤을 때의 표정을 감추지는 못 했다. 아드리안은 바르바라로부터 자연스럽게 몇 걸음 떨어져서 그녀를 탐색했다. 바르바라는 은근하게 손목 안쪽을 다른 손으로 가렸다. 문양을 보여주지 않고 온순한 표정을 지었다. 아드리안은 혼란스러워했다. 

 “이제… 된 건가요?” 

 아드리안은 고작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어쩜 저렇게도 강렬한 욕망을 모를까? 탐욕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모르는 것일까? 바르바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목이 아프지 않아….” 

 “다가오진 마요.” 

 아드리안은 손을 들어 앞으로 나오려는 바르바라를 제지했다. 

 “당신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나도야.”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드리안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나다가 멈추어 섰다. 그는 바르바라를 탐색하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이 자신의 얼굴과 몸짓에서 과거의 자신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바르바라는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며 두 팔을 벌렸다. 

 “시세로….”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의 목을 감고 자신의 어깨로 끌어내려 껴안았다. 

 “많이 아팠지.” 

 아드리안이 딱딱하게 굳은 채 천천히 숨을 몰아쉬는 게 느껴졌다. 바르바라는 그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드리안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주었다. 

 “미안해, 시세로.” 

 바르바라가 속삭였다. 

 “미안해….” 

 “웃기지 마요, 방금까지 날 잡아먹고 있었잖아….” 

 아드리안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르바라는 아드리안의 어깨 너머에서 게슴츠레 눈을 뜨고 차갑게 웃었다. 

 “이제 이런 난나는 별로니?” 

 아드리안은 잠시 침묵하다가 작게 신음했다. 

 “아뇨….” 

 아드리안이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아뇨, 이렇게 해주세요.” 

 그래서 바르바라는 그렇게 해주었다.

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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