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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사 체사레가 써드빌로 내려온 건 그녀의 딸 바르바라가 열여섯 살 때였다. 켈커스에서 써드빌로 내려오는 데에 꼬박 한 달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로 챙겨온 이삿짐이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마차와 말을 번갈아 타고, 때로는 도보로 걸어서 북쪽에서부터 최남단까지 여행했다. 중간에 돈이 필요하면 챙겨온 패물로 물물교환을 했는데, 그래도 돈이 부족할 때에는 주머니가 그득한 이들의 지갑을 털어서 썼다. 영락없는 체사레의 방식이었다. 

 써드빌로 내려온 마리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풍광이 좋은 빈 집 한 채를 사들이는 것이었다. 이층에 방이 다섯 개나 딸린, 써드빌로 치면 꽤나 큰 규모의 집이었다. 써드빌 인근 숲에서 베어낸 통나무로 기둥을 만들었기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그 향기롭고 달큰한 나무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 냄새를 맡으며, 바르바라는 앞으로의 삶이 어찌되었든 이전의 삶과는 무척 달라질 것임을 직감했다. 켈커스 지방에서는 결코 맡을 수가 없는 냄새였기 때문이다. 

 이사 온 이후 한동안 두 모녀는 자신들의 새로운 터전을 여관으로 꾸미는데 품을 들이기 시작했다. 목수의 집을 드나들며 가구 값들을 흥정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마나 집안과 체사레 집안이 만나던 순간은 생각보다 자연스러웠고 수상쩍은 구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열여섯 살의 바르바라 체사레는 리온 마나를 그곳에서 처음 보았다. 리온은 그 때 여섯 살이었다. 

 “지붕 보수도 이곳에서 할 수 있는 모양이죠?” 

 마리사 체사레가 묻자, 리온의 아버지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른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바르바라는 얌전히 마리사의 뒤편에 서있었다. 리온이 그녀를 응시하는 게 느껴졌다. 바르바라는 말없이 리온의 시선을 즐기다가 느닷없이 리온 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가늘게 뜨고 음침한 표정을 지었다. 리온이 깜짝 놀랐다. 바르바라는 흡족한 표정으로 쿡쿡 웃다가 문지방을 나서는 어머니를 따라 나갔다. 나중에 보자는 말도 없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그런 식으로 흐지부지 끝이 났다. 

 체사레 여관이 문을 연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더 흐른 이후였다. 애초부터 방문객이 적은 써드빌에서 여관을 여는 건 무모한 짓이라고들 이야기하는 주민도 있었다. 마리사는 걱정하지 않았다. 체사레 집안은 굶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숙달된 여관주인이 아니라 능숙한 도둑이었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장소를 옮겨 새로운 사업을 벌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녀는 새로운 체사레 여관에 따로 간판을 달지 않았다. 한동안 주민들은 두 모녀의 여관을 “그 집” 혹은 “그 여관”이라고 지칭했다. 

 마나 집안과 다시 만나게 된 건 여름이 다 흘러갈 무렵의 일이었다. 언젠가의 대화에서 예견되었던 것처럼 마나 집안의 남자들이 여관의 지붕을 보수하기 위해 연장을 들고 찾아왔다. 리온은 가장 끄트머리에 서서 연장도구가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현관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다말고 리온과 눈이 마주쳤다. 리온은 그녀를 발견하자 조금 긴장한 기색이었다. 바르바라는 그를 놀려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른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지붕 위에서 견적을 재고 있을 때, 리온은 사다리 앞에 서서 이따금 위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바르바라가 리온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안녕?” 

 리온은 조금 놀란 기색이다가 곧장 붙임성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이름이 뭐니?” 

 바르바라는 덧붙였다. 

 “마나라고 부르기에는 너희 집안 식구들이 너무 많잖니.” 

 “리온이야.” 

 “그래, 리온.” 

 바르바라가 그의 이름을 중얼거려보았다. 리온. 

 “내 이름은 바르바라야.” 

 “아까 난나라고 불리던 걸.” 

 “응, 그것도 내 이름이야.” 

 바르바라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리온은 이상하다는 듯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이름이 두 개인 사람도 있어?” 

 “바르바라보다는 난나가 더 짧고 편리하잖니. 하지만 원래 이름은 바르바라니까. 그래서 두 개가 되는 거야.” 

 “알 것 같아. 나도 비슷해.” 

 리온이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하지만 바르바라와 난나는 발음에서 전혀 닮은 구석이 없네.” 

 “그런 법도 있는 거란다.” 

 바르바라는 자신의 애칭과 같은 켈커스 지방의 사투리와 얽힌 사연들, 자신이 태어났던 날과 체사레 집안의 생활양식을 설명해주기 귀찮았기 때문에 그냥 그런 식으로 대답했다. 

 지붕에서 어른들이 내려왔다. 리온은 사다리를 붙잡고 어른들이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보조했다. 바르바라는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리온이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리온의 체구가 너무 작았기 때문에 리온은 사다리를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매달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귀엽네. 겁주기도 재밌고 손으로 제압하기도 쉬울 것 같아.’ 

 리온이 뒤쪽을 흘끔거리다 바르바라와 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바르바라는 씩 웃어주었다. 이번에 리온은 겁먹지 않았다. 

 마나집안의 어른들은 사다리에서 내려온 후에 리온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후 도면을 들고 차례대로 여관으로 들어갔다. 마리사가 응접실에 주전부리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 지붕 보수비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나눈 후에 곧장 다른 쪽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마나집안은 써드빌의 생활은 어떻고 어떤 연유로 내려왔는지. 여관을 전에도 열어본 적이 있는지 따위를 물었다. 그럼 마리사는 능숙하고 유하게 질문을 받으며 정작 핵심적인 정보는 슬그머니 미루어놓는 식으로 대답했다. 나중에는 마나집안의 질문을 모두 바르바라가 대답했는데, 그녀는 어머니보다 대화를 이끄는데 훨씬 재주가 있어서 어른들을 종종 웃게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마리사는 마나집안의 연장도구를 시선으로 쓸어보다가 습관처럼 작은 망치 하나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건 놀이 같은 것이었는데, 바르바라는 마리사가 마나집안이 현관을 나서기 전에 감쪽같이 그 망치를 원래 자리에 되돌려놓고는 자신을 향해 빈 두 손을 펼치며 깔깔 웃어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리사가 주머니에 망치를 집어넣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도 슬그머니 미소를 짓고는 딴청을 부렸다. 

 리온은 웃지 않았다. 바르바라와 마리사의 행태를 목격한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리온이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바르바라가 고개를 돌려 리온의 시선을 받아쳤다. 리온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바르바라는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바르바라는 마리사와 눈짓을 교환하고는 리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런 짓… 안 하는 게 좋아.” 

 리온이 진지하게 말했다. 바르바라는 웃는 낯으로 리온의 충고를 듣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진귀한 망치라서?” 

 “아니, 우리 부모님이 알면 마을에 소문이 날 테니까.” 

 리온이 바르바라를 무서워하는 것과 하고자 하는 말을 망설임 없이 내뱉는 건 별개의 일인 모양이었다. 망치가 아까워서 그런 말을 꺼낸 것도 아니었다. 바르바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리온을 내려다보다가 서늘하게 웃었다. 

 “너도 마나집안의 자식이잖아. 소문낼 거니?” 

 리온은 바르바라의 표정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복도의 방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창문은 모두 커튼이 쳐져있었다. 주변은 침침하고 음산했고, 나무냄새가 맹렬하게 진동했다. 리온이 다시 바르바라를 쳐다보았다. 

 “리온, 그거 아니?” 

 “뭘?” 

 불안을 감지한 리온이 작게 속삭였다. 

 바르바라의 목소리가 낮고 비밀스러워졌다. 

 “북쪽에는 남의 비밀을 함부로 이야기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사슴이 있어. 뿔 한쪽이 잘려있으니까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단다. 그 사슴은 비밀을 떠벌린 이들을 보복하기 위해 숲에서부터 그들을 찾아오곤 하지. 그런 뒤에는 

어떻게 되는지 아니?” 

 “아니.” 

 리온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 순간, 바르바라가 고개를 숙이더니 리온의 오른쪽 귀에 입술을 붙이고 소름끼치게 속삭였다. 

 “사슴이 한쪽 귀를 잘라간다!” 

 리온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그러더니 사색이 된 얼굴로 쏜살같이 계단으로 도망쳤다. 바르바라는 느긋하게 층계를 밟고 내려오다 말고 일층에 서있는 마리사와 눈이 마주쳤다. 바르바라는 자신의 귀를 가리켰고 마리사는 모든 뜻을 이해했다. 

 마나집안은 막 현관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들은 허겁지겁 뛰어온 리온을 발견하고는 어딜 다녀왔냐고 물었다. 리온이 입을 뻐끔거리는데, 어느새 리온의 뒤에 다가온 바르바라가 온화한 목소리로 대신 대답했다. 

 “놀고 있었어요.” 

 “아가, 사슴을 기억하렴.” 

 마리사가 리온에게 말했다. 리온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리사의 주머니로 시선을 내렸다. 마리사의 주머니는 홀쭉했다. 마리사가 빈 두 손을 펼쳐보였다. 

 “얼른 안 가고 뭐하니, 아가?” 

 리온은 뒤돌아보지 않고 돌아갔다. 두 모녀는 바짝 긴장한 작은 어깨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서로를 마주보며 작게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2. 

 그 뒤에도 계절이 바뀔 때면 마나 집안의 사람들이 어김없이 체사레 여관으로 찾아와 연장을 챙겨들고는 지붕으로 올라갔다. 하루는 지붕을 엮은 통나무 몇 개를 들어내야 한다기에 마리사가 그렇다면 새로운 지붕에 전나무를 쓸 수도 있는 거냐고 물었다. 전나무는 켈커스 지방 숲의 명물이다. 리온의 아버지는 나무를 구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마리사는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그 뒤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체사레 여관의 나무재질이 조금씩 바뀌었고 종국에는 써드빌의 모든 이들이 그 여관을 ‘전나무 집’이라 부르게 되었다. 바르바라는 낯설지 않은 냄새가 나는 집안에 앉아 장부를 정리하고 시트를 치우고 빨래를 했으며, 손님이 들지 않는 날에는 바닷가를 산책하다 종종 먼발치에서 보이는 검은색 리퍼코트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써드빌에는 정말로 방문객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여관을 지키며 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바르바라는 써드빌을 쏘다니다가 느닷없이 마주치게 되는 한가한 선루스 기사단을 지켜보는 데에 남은 시간 대부분을 소비하게 되었다. 바르바라가 기사가 되기로 결정한 건 그 무렵의 일이었다. 그녀는 그 생각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혼자 간직하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리온에게 그 사실을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나 선루스에 들어가려고….” 

 지붕을 보수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던 리온은 지붕에 앉아있는 바르바라를 보고 조금 놀란 기색이다가, 바르바라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는 다른 의미로 한 번 더 깜짝 놀랐다. 

 “진심이야?” 

 “안 어울리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리온은 말끝을 흐리다가 사다리를 잡고 지붕 위로 마저 올라왔다. 

 높은 지붕에서는 써드빌의 풍경이 잘 보였다. 날씨는 청명하고 깨끗했다. 드문드문 들어선 집의 지붕들과 굴뚝, 빨래를 매달아놓은 지지대와 광장으로 이어지는 중앙도로가 보였다. 먼 곳에 써드성이 보였고, 써드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선루스 기사단 본부가 있었다. 바르바라는 다리를 겹쳐 앉은 채로 그곳을 보고 있었다. 리온이 지붕을 밟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난나가 기사단에 들어가고 싶어 할 줄은 몰랐어.” 

 “그러니.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른 이유라도 있어?” 

 바르바라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마리사처럼 살고 싶지 않아.” 

 리온은 바르바라의 곁에 앉았다. 

 “그런 일이 싫어졌어?” 

 “그럴 리가.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란다.” 

 바람이 불어서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천천히 흩날렸다. 바르바라는 먼 풍경을 바라보았다. 

 “내 말은, 리온… 우리 엄마는 이미 한 번 실패했다는 거야. 도둑으로서. 난 그런 일 겪고 싶지 않아. 나도 여관을 운영하다 다른 남자랑 눈이라도 맞으면 어떡하니? 남자랑 눈 맞기 싫어. 마음을 빼앗기고 허술해지고 싶지 않아. 애 낳기도 싫고.” 

 바르바라는 드물게 진심을 이야기했고 리온은 잠자코 들었다. 

 “그래서?” 

 “그래서… 내 친구의 조언을 따라보기로 했지.” 

 바르바라는 고개를 돌려 리온을 쳐다보았다. 

 “좀 더 좋은 곳에서 좀 더 다른 일을 해보라고 그 애가 말했었던 거 있지. 이곳에 오니까 새삼 기억이 났어.” 

 바르바라는 작게 웃었다. 

 “격려해줄 거니?” 

 “난나가 원한다면.” 

 리온이 대답했다. 

 열여덟 살이 되자 바르바라는 입단식을 치르기 위하여 혼자 선루스 기사단에 방문했다. 검술을 독학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실력에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바르바라는 대련장에 올라가 시험 삼아 검을 휘둘러보고는 자신이 패배할 것을 직감했다. 얼마 뒤, 바르바라는 고배를 마시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리온과 만난 건 그로부터 몇 주 뒤였다. 지붕을 보수하러 온 리온이 현관 앞에 기대어 앉은 바르바라와 마주치고는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 

 “응, 안녕.” 

 리온이 사다리를 펼치고 지붕에 고정시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바르바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떨어졌어.” 

 “응, 들었어.” 

 리온이 상자를 열면서 대답했다. 

 “솔직히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러니.” 

 “난나는 어쩐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어.” 

 바르바라가 쿡쿡 웃었다. 

 “넌 날 무서워하니까.” 

 리온이 조금 창피한 기색으로 발끈했다. 

 “이젠 아니야.” 

 계절이 바뀌었고 두 사람이 공평하게 두 살 씩 먹었을 때였다. 리온은 열두 살이 되었고 체사레 모녀가 들려준 미신을 믿지 않을 만큼 세상을 알게 되었지만 바르바라는 리온이 종종 자신을 마주칠 때마다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 어깨, 부드러운 정수리와 크게 뜨인 눈동자 같은 것을 시선으로 쓸어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음침하게 웃어주었다. 그럼 리온이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바르바라를 쳐다보며 입모양으로 난나! 라고 중얼거리고는 했다. 

 “기사가 될 거니까 이제 도둑질은 그만둔 거야?” 

 사다리를 고정시키고는 할 일을 끝낸 리온이 바르바라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바르바라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성의 없이 대꾸했다. 

 “글쎄… 어떨 것 같니?”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야.” 

 그러자 바르바라가 리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하지 않아.” 

 …. 

 “정말이야….” 

 그런 후 바르바라는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이야기한 사람처럼 쿡쿡 웃었다. 

 곧이어 마나 어른들이 연장을 챙겨들고 도착했다. 바르바라 옆에 앉아있던 리온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작업을 할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있지, 난나. 얼마 전에 벼락이 떨어져서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마구간이 불에 그슬린 거 알아?” 

 리온이 지붕으로 올라가는 어른들의 보조를 도와주려고 연장도구를 챙기며 물었다. 바르바라는 잠시 앓는 소리를 내다가 딴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뭐라고?” 

 “벼락 말이야.” 

 리온의 시선이 느껴졌다. 바르바라는 얼굴을 찡그리다 말고 능숙하게 추임새를 넣었다. 아아, 벼락. 그래, 벼락 말이지. 하지만 며칠 전에 벌어진 그 기묘한 사건을 떠올리는 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추임새 이후 잠시 침묵하던 바르바라가 마침내 그 사건을 기억해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억나. 알고 있어.” 

 “난나도 조심해. 종종 지붕에 올라가곤 하잖아.” 

 리온이 걱정스러워했다. 바르바라는 이번에도 작게 쿡쿡 웃었다. 

 “괜찮아, 그딴 거 무섭지도 않아….” 

 “무섭지 않아?” 

 “그럼. 사실 그것도 내가 만든 거거든.” 

 “벼락을?” 

 “벼락을.” 

 못 믿겠어? 바르바라가 마녀처럼 무시무시한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자 리온이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농담은 거기서 끝났다. 바르바라가 다시 지친 것처럼 현관 기둥에 기대자, 리온은 사다리를 붙잡고 한 칸씩 오르기 시작했다. 

 “난나, 기운 내.” 

 사다리 끄트머리에 도달했을 즈음 리온이 바르바라의 머리 위에서 말했다. 바르바라는 자신이 약해보였다는 생각에 조금 짜증이 났다. 

 “무슨 소리야?” 

 바르바라가 심술궂게 대답했다. 

 “오늘 뭐라도 도둑맞지 않게 조심해.” 

 바르바라의 사춘기는 그런 식으로 권태롭게 지나갔다. 

 열아홉 살에 바르바라는 결국 선루스 써드빌 기사단에 입단했다. 기사단 숙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으므로 바르바라는 여관보다 숙소에 더 오래 머물러 있었다. 리온과 만날 일도 예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이따금 거리에서 마주치는 일도 있었다. 그 때마다 리온은 어색한 듯 혹은 익숙한 듯 바르바라의 검은색 리퍼코트를 바라보았고, 바르바라는 모른 척하면서도 리온만큼은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리온을 스쳐지나갔다. 마나 집안은 여전히 계절이 바뀌면 지붕을 보수하기 위해 체사레의 여관 꼭대기에 사다리를 놓았다. 

 

 3. 

 서네스 섬의 귀환자들이 써드빌로 돌아온 이후 바르바라는 집무실이나 오즈의 사무실에 처박혀 하루 종일 서류를 뒤적였지만 한밤중에는 밖으로 나와 해변을 걷기도 했다. 때때로 숙소 근처에 앉아서 궐련을 피우기도 했다. 작게 연기를 뿜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느라 아주 오랜 시간을 보냈다. 잠은 적게 잤다. 그전까지 바르바라는 술이든 흡연이든 잘 하지 않는 편에 속했는데 최근에는 궐련을 피우는 횟수가 늘어났고 그럼에도 바르바라는 아직까지는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리온과 마주친 건 그 즈음의 일이었다. 그날에는 리온이 먼저 자리에 나와 있었고 해변 가를 응시하며 불을 물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천천히 걷다 말고 멈추어 서서 리온을 내려다보았다. 리온은 인기척을 눈치 채고 고개를 돌렸다. 

 “안녕.” 

 “안녕.” 

 바르바라는 리온의 옆에 거리를 두고 앉아서 자신의 담배를 꺼내 물었다. 리온이 길게 연기를 뱉다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요즘 사무실에 있다며?” 

 “맞아.” 

 바르바라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밤바다가 끊임없이 바람을 보내고 파도를 실어 나르고 육지에 몸을 부딪치는 광경을 응시했다. 바르바라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모래사장을 보니 네가 춤을 추던 게 떠오르는구나.” 

 바르바라가 말했다. 

 “작년 축제?” 

 “그래.” 

 써드빌 축제 마지막 날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르바라는 리온이 처음으로 춤을 리드하던 순간을 기억했다. 그 광경을 먼 발치에서 보았다. 리온은 대장간 둘째딸 마리의 손을 붙잡고 어설프게 발을 맞추었다. 바르바라는 춤판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곁에 앉은 마나부부가 리온과 마리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으며 이따금 포도주를 홀짝였다. 해변 가에 피워 올린 불꽃이 밤하늘을 향해 자꾸만 치솟아 올랐던 것, 그 뜨거운 열기와 이글거리는 주변의 풍경 뒤에서 춤을 추던 리온과 마리가 기억난다. 바르바라는 리온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그 애가 자랐음을 느끼고는 했다. 기사단에서 리온과 마주쳤을 때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정작 리온의 얼굴을 볼 때마다 바르바라는 여섯 살의 그 모습을 찾았다. 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누군가를 돕기 위해 뛰쳐나갈 때, 혹은 제 또래의 여자아이의 손을 붙잡고 춤을 출 때 보이는 뒷모습을 마주하고는 친누나마냥 많이 컸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리온 너는 크고 있구나.

 리온이 담배를 입에 물고는 작게 웅얼거렸다. 

 “이제 다들 그 이야긴 안 해.” 

 “하지만 난 종종 그 때가 떠오르는 걸.” 

 바람이 불어서 바르바라의 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 때…,” 

 바르바라가 말끝을 흐리다 먼 풍경을 보았다. 

 “네가 계속해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어.” 

 리온이 연기를 뱉어냈다. 바르바라는 어둠 속에서 작게 타오르는 담배 끄트머리의 불꽃에 의지해 리온의 희미한 윤곽을 포착하려 애썼다.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으며 앉아있는 스무 살 청년의 어깨와 턱과 손등을 포착하고 그곳에서 여섯 살의 리온의 모습을 끌어내려고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예전과 지금을 구분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바르바라는 리온의 어딘가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리온도 바르바라에게 비슷한 걸 느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시무시한 마법을 쓴다고 믿은 건 너였는데…,” 

 바르바라가 작게 중얼거렸다. 

 “삶은 늘 이런 식으로 빗겨가곤 하는 모양이지.” 

 쏴아아, 파도가 들이닥쳐서 리온의 숨소리가 풍경에 묻혀 사라졌다. 바르바라는 희끄무레한 연기를 통해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작게 쿡쿡 웃다가 그만두었다. 마녀의 신화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 그랬다. 

201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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