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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Daybreak «로그잇기 1»
1차/old 2019. 10. 22. 15:03

 술집에서 주먹질이 오가고 있었다. 신고를 받고 도착한 바르바라는 난장판 앞에서 무엇부터 수습해야 좋을지 몰라 그대로 우뚝 멈추어서고 말았다.

 테이블이 엎어져 있었고, 깨진 술잔 몇 개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카운터 뒤로 몸을 숨긴 직원들은 얼굴만 빼꼼 내민 채로 눈앞의 싸움판을 구경하다말고 바르바라를 발견하자 입모양으로 ‘기사님, 빨리요! 빨리요!’를 외쳤다.

 두 술꾼은 가게 한가운데에서 서로 멱살을 틀어쥐고 씩씩거리며 욕지거리를 퍼붓고 있었다. 그들의 주변은 마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온전히 서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바르바라는 누굴 먼저 떨어뜨려야 좋을지 고민했다. 주먹질이나 술 취한 사내의 체취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불쾌함의 문제였다. 바르바라는 최대한 그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물론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바르바라는 혼자였고 저들은 둘이었는데 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검집을 움켜쥐고 두 남자에게 다가갔다. 술 냄새가 진해졌다. 걸출하게 마신 남자들의 피부에서는 땀 대신 술이 흘러나오는 걸지도 모른다. 코를 찌르는 시큼한, 그러나 어딘지 맥 빠진 냄새. 바르바라는 남자들의 욕지거리 속에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상대에게 술값을 떠맡기려다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알고 싶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멱살을 쥔 두 사람의 주먹을 붙잡고 힘주어 분리시켰다. 남자들이 힘에 떠밀려 강제로 주춤거리듯 밀려나자, 바르바라는 빈 검집을 들어 키가 큰 쪽의 목덜미에 겨누었다.

 “두 분 다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때요?”

 머리 위에서 비웃는 소리가 났다. 바르바라는 눈앞의 남자보다 두 뼘이나 작았다. 그러나 그녀는 기사단 복장을 입고 있었고, 방금 그들을 손쉽게 떨어뜨렸다. 남자는 술에 취해서 사리분별이 안 되는 것일까?

 “넌 또 뭐야.”

 등 뒤에서 작은 키의 남자가 거칠게 바르바라를 낚아챘다. 바르바라는 다리에 힘을 주려고 했으나, 그대로 떠밀렸다. 어깨를 붙잡힌 바르바라에게 키 큰 남자가 주먹을 날렸다. 바르바라는 허리를 숙여 피했다. 키 큰 남자는 작은 키의 남자의 얼굴에 그대로 주먹을 꽂아 넣은 꼴이 됐다. 상황파악을 하는 짧은 침묵이 흐른 뒤, 두 남자가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꼭 돼지 같구나.’

 바르바라는 두 남자를 피해 가게를 뛰어다니며 생각했다. 지원이 오지 않을까? 혼자 힘으로는 무리일 것 같다. 바르바라는 남자들을 다치게 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대지 않고 제압하려면 적어도 한 사람이 더 필요했다.

 다른 생각에 잠겨있던 그 때, 누군가 바르바라의 뒤통수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바르바라는 정신을 차렸다. 신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남자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신경질적으로 눈을 떴다.

 ‘손뼈를 부수든 눈에 혹을 달아주든 네게 손 댈 기회 같은 거 주지 마, 바랴.’

 바르바라는 이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남의 상처 같은 건 생각해줄 필요가 없어.’

 바르바라는 몸을 비틀었다. 남자를 마주본 후에 그의 배를 정확한 속도로 걷어찼다. 머리카락이 뜯겨져나가는 감각이 생생했다. 남자가 바닥에 나뒹굴며 쓰러졌다. 키 큰 쪽이었다. 작은 키의 남자는 카운터 근방에 쓰러져있었다. 제 풀에 지쳐 쓰러진 것이거나 아까 얻어맞은 주먹의 후유증 때문일지도 몰랐다. 바르바라는 시큰거리며 숨을 골랐다. 다시 온화한 얼굴을 하려고 눈을 감아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사람이 증오스러웠다.

 술집을 나오는 길에 어떤 계시처럼 이반을 만났다. 지원을 나왔다고 했다. 바르바라는 사건이 이미 끝났고 남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해주었다. 이반은 바르바라의 얼굴을 살피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바랴, 너 화났구나.”

 “그렇지 않아…,”

 바르바라는 중얼거리다 말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티나?”

 “머리 꼴은 또 왜 그래?” 이반은 다른 주제로 옮겨갔다.

 “괜찮아, 응징했어.” 바르바라는 많은 정보를 건너뛰었다.

 “기회를 주었어?” 이반이 물었다.

 “정신을 놓고 있었어.” 바르바라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지. 그래서 모든 걸 수습했고. 그게 다야.”

  바르바라는 이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는 사실을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이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뜨뜻미지근한 햇빛 아래를 걸었다. 평소보다 곤두서있던 바르바라는 이반의 손등에 새로운 멍이 들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평화롭기 때문에 업무 중에서조차 긴장을 놓거나 곧잘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금세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술꾼에게 머리채를 쥐어 잡히는 것이다. 바르바라는 이반이 어떤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지를 생각했으나 곧 그만두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일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다. 이반이 옳다. 남의 상처를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바르바라가 뒤통수를 매만지자, 이반이 한 마디를 얹었다.

 “역시 넌 너무 착해, 바랴.”

 바르바라는 비웃는 것처럼 입 꼬리를 올렸다가 결국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야, 나는 나를 건드린 사람들에게 관대하지 않아.”

 아까 그 사람들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조그맣게 덧붙이자 이반이 작게 웃었다.

 “원래 그렇게 느닷없이 진심을 이야기하는 거야?”

 “통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술집이나 소란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언젠가 밤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둘은 다음에 또 그렇게 하자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처럼 주고받으면서도 실제로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크게 슬퍼하지는 않을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마도 두 사람은 또다시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에 앉아 주전부리를 씹고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이반과 헤어지기 전에 바르바라는 눈가가 부드러워졌음을 느끼고는 온화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반은 바르바라에게 화가 풀렸냐고 물어보았다. 바르바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겠어.”

 “다음에는 샌드위치도 가져가자.”

 이반은 또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래.”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그렇게 하자.”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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