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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르바라는 수면 아래에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것은 다홍색 비늘을 가진 물고기였다. 바르바라가 눈을 가늘게 뜨자, 비늘에 반사된 빛의 파편이 일곱 개의 무지개 색으로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물고기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낚싯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힘이 실렸다.

 바르바라는 낚싯대를 조심스럽게 건져내 바늘에 떡밥을 갈아 끼웠다. 가장 크고 통통한 지렁이의 대가리를 끼운 후에 다시 바다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쥐 죽은 듯이 앉아서 따뜻한 물 아래에서 일렁이는 월척이 자신의 낚싯대에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갈매기가 머리 위로 날아갔다. 바람이 불자 파도가 잔잔하게 육지를 향해 밀려들었고, 바르바라가 앉아있는 바위 근처에도 물방울이 튀었다. 물고기의 반투명한 그림자가 점차 바르바라의 낚싯대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본 물고기의 그림자에 다홍빛깔의 파편들이 부서지다 만 보석 알갱이처럼 물그림자와 함께 일렁이고 있었다. 일순 낚싯대에 거대한 무게가 실리더니 줄이 빠르게 풀려나갔다. 고기의 턱 힘이 지나치게 셌다. 되려 낚시꾼이 물속에 가라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바르바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낚싯대를 붙잡으며 다리를 벌리고 단단하게 섰다. 눈을 뜨자 물고기가 더욱 잘 보였다. 그놈이 발버둥치고 있었다. 낚싯줄이 끊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줄이 끊어졌다. 바르바라는 신경질적으로 낚싯대를 내팽겨 치려다 말고 바위에 두 발을 모으고 서서 자신이 낚아보려던 아름다운 그 물고기가 유유히 바다 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홍색 빛깔의 저것은 이름이 무엇일까. 이토록 오래 낚시를 해왔는데도 정작 경이로운 존재를 발견했을 때에는 이름조차 부를 수가 없다니. 바르바라는 그 날 곧장 짐을 싸서 써드빌 해변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돌아오는 길에 페니를 만났다.

 페니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2.

 페니는 종종 평화로운 써드빌 해변을 지나 적당한 다이빙 장소에서 수영을 하곤 했다. 써드빌의 해안은 물의 표면은 따뜻한데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차가운 물이 피부로 느껴졌다. 변화무쌍한 수온은 페니를 감싸 안다가도 한순간 몸을 조르며 파고들었다. 그럴 때면 페니는 팔을 움직여 수면을 가르고, 두 줄기로 갈라진 물방울 사이 틈으로 얼굴을 들이민 후 다리를 이용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바다를 좋아했다. 그래서 수영하는 법과 바다가 자신을 해치지 않도록 유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 날은 유독 물이 차갑게 느껴졌다. 페니는 바위 근처에 상반신을 내민 채 수평선을 바라보다 말고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서 무언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아주 큰 그림자를 가졌고 찬란한 빛으로 감싸여 있었다. 아름다움을 체감하는데 도가 튼 페니는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존재가 경이로운 무언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잠수했고 수면 아래에서 게슴츠레 눈을 뜨고 그 존재를 확인하려 들었다. 그것은 거대한 다홍색 물고기였다.

 숨이 막혀서 수면 위로 솟구친 페니는 한동안 눈을 깜빡이며 눈동자에 들러붙은 짠 기운을 떨쳐내려 애썼다. 그러는 동안 그 물고기는 페니의 다리를 묵직하게 스치고 지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바위틈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 감각이 어찌나 서늘하면서도 기묘하던지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페니는 수면에 몸을 맡긴 채 파도와 함께 넘실거리며 한동안 바위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고기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3.

 “안녕, 위버.”

 “페니요.” 페니는 슬그머니 정정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난나.”

 “머리가 젖어있구나. 수영을 나갔던 모양이지?”

 “난나는 낚시를 하고 오던 길인가보네요.”

 “맞아.”

 바르바라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드물게 이죽거렸다.

 “마음을 정리하려 간 거였는데 되려 심란해졌단다.”

 바르바라는 페니에게 오늘 그녀가 마주한 거대하고 아름다운 물고기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바르바라가 그것을 묘사하는 동안, 페니는 고개를 끄덕이다말고 점점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마침내는 무언가 알고 있다는 사람의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혹시 그 물고기 다홍색인가요?” 페니가 물었다.

 “맞아.”

 바르바라가 긍정하자 페니는 고개를 다시 한 번 주억거렸다.

 “오늘 바위 근처에서 수영을 하다 보았어요. 난나가 놓친 녀석이 저를 찾아왔던 모양이죠….”

 “그러니.”

 바르바라는 감흥이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의기소침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딘지 묘하게 짜증난 기색인 것 같기도 했다. 페니는 슬그머니 그녀의 눈치를 살피더니 느릿느릿 되물었다.

 “그 물고기가 잡고 싶었나요, 난나?”

 바르바라는 잠시 뜸을 들였는데, 곧장 내뱉으면 쏘아붙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면 보면 모르냐는 식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그녀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 바르바라는 평소의 웃음을 달고 나긋나긋 그렇다고 긍정했다. 페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일 낚시에 동행할 수 있을까요? 도와드릴게요.”

 바르바라는 페니의 친절에서 자신의 눈치를 보는 조심스러움을 느꼈다. 정말 물고기를 잡아 난나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욕망 이전의 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바르바라는 눈을 뜨고 페니를 응시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기에 그만두었다.

 “좋아. 내일 정오에 여기서 보자.”

 바르바라가 덧붙였다.

 “밀짚모자를 쓰고 나오는 게 좋을 거야. 태양이…, (뜨겁거든).”

 “으음. 알겠어요.” 페니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짧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4.

 다음 날 바르바라와 페니는 인적이 드문 곶으로 향했다. 하얀 절벽을 등지고 판판한 바위에 앉아 수평선을 감상할 수 있는 운치 좋은 곳이었다. 페니는 그녀의 곁에 앉아서 그녀가 살아있는 지렁이에 날카로운 바늘을 꽂아 넣고 수면 위로 던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바르바라는 침묵을 지키며 앉아있었다. 다른 생각에 잠긴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곁에 앉은 페니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린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 물고기가 오늘도 나타나려나.”

 갑자기 바르바라가 말을 꺼냈다.

 페니는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흐음.”

 페니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바르바라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한 시간이 좀 지났을까, 모자를 쓰고 있어도 정수리에 땀이 찰 무렵 느닷없이 바르바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페니는 그들의 발아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면 아래를 살폈다. 거대한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다. 어렴풋하지만 분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물고기는 다홍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네 실없는 추임새가 쓸모가 있었던 모양이야.”

 바르바라는 한손으로 밀짚모자를 붙잡은 채 입 꼬리를 올렸다.

 “난나의 지렁이가 유독 통통했기 때문일 지도요.”

 페니는 바르바라에게 공을 돌려 그녀의 들뜬 기분을 더 오래 유지시키고자 했다.

 바르바라가 낚싯대를 붙잡고 섰다. 다리를 벌린 채 허리를 둥글게 숙이고 줄을 당기자, 미끼를 발견한 물고기가 그들이 앉은 바위 근처로 헤엄쳐왔다. 바르바라는 어제보다 더 침착했다. 그녀는 눈앞에 목표를 발견하고 선회하여 낮게 날고 있지만 당장 먹이를 덮치지는 않는 매처럼 보였다. 바르바라는 공을 들일수록 모험할 가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침내 낚싯대에 엄청난 무게가 실리고, 대 자체가 수면 아래로 매섭게 휘어졌다. 바르바라는 페니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욕지거리를 하며 버티고 섰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페니!” 그녀는 그 이름을 호통처럼 불렀다.

 페니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했다. 안경을 벗고는 바위에서 부드러운 몸짓으로 뛰어내린 후에 쏜살같이 수면 아래로 파고들었다.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가 어찌나 힘이 세던지 수면 위로 끊임없이 물방울이 튀었다. 수면 아래에서 올려다 본 수면 위의 풍경이 흐릿할 지경이었다. 바위에 서서 낚싯대를 붙잡고 선 바르바라도 일그러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페니는 숨을 크게 참았다가 바닥에 발바닥을 붙이고 웅크린 후, 다음 순간 박차고 솟구쳐 올랐다. 페니는 자신의 가슴팍을 스치는 소름끼치는 차갑고 미끄러운 감각과 까끌까끌하고 큼지막한 지느러미의 촉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물고기를 두 팔로 붙잡은 후 놓아주지 않으려 힘을 주었다. 오른손이 절로 흐느적거렸지만 왼손은 물고기의 어딘가를 단단히 붙잡았다. 물고기의 진액이 흘러나왔다. 페니는 그대로 물고기와 함께 바위 위로 기어 올라왔다. 

 머리 위로 통통 바위를 박차고 내려오는 바르바라의 발소리가 들렸다. 페니는 눈부신 빛을 등진 채 자신을, 정확히는 자신이 낚은 물고기를 내려다보는 바르바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바르바라가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페니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해냈음을 알았다.

 바르바라는 페니가 끌어올린 거대한 물고기를 양동이에 담았다. 너무 커서 넣자마자 철퍽 소리가 나며 굵은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바르바라와 페니는 양동이가 엎어지지 않도록 한동안 손으로 그것을 붙잡고 있어야했다. 마침내 물고기가 안정을 찾자, 바르바라는 양동이 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어서 물고기를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다홍색의 거대한 물고기. 눈알은 새파랗고 눈동자는 무척 깨끗한 하얀색이었다. 비늘이 바르바라의 손톱만 했다. 애초에 물고기를 낚기 위하여 낚시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물고기라면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지게 되어 바르바라는 기뻤다. 하지만 물고기의 얼굴이 미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고기의 얼굴이… 마치 인간의 얼굴처럼 보였다.

 ‘낚아선 안 되는 것을 낚아버린 것 같구나.’ 바르바라는 생각했다.

 “그 물고기를 잡아먹을 건가요?”

 페니가 물었다. 바르바라는 두 손으로 여전히 양동이의 주둥이를 붙잡은 채로 고개를 들어 페니를 바라보았다.

 “아니.” 바르바라가 대답하자 페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르바라는 페니에게 물고기의 얼굴에 대해 이야기했다. 페니도 양동이로 고개를 숙여 물고기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정말로 그 물고기가 특별할 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바위에 앉은 채 이따금 출렁이는 양동이를 흘끔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르바라는 양동이를 뒤집었다.

 물고기가 수면 아래에서 몸부림치다 말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두 사람은 나란히 바위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다홍색의 경이로운 무엇인가가 그들에게서 멀어져 마침내는 사라지는 것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마침내 페니가 물었다.

 “아깝지 않나요?”

 그런 후 그는 덧붙였다.

 “물론 난나가 만족한다면 저도 좋아요.”

 ‘그렇구나.’ 바르바라는 생각했다.

 ‘이 애는 나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은 걸 넘어서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모양이지. 그래서 내가 좋은 판단을 내리길 바라는 것이다.’

 피곤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페니가 밉거나 안쓰러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어쨌든 페니는 오늘 바르바라를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방금 물고기의 이름은 뭐였을까?”

 바르바라는 페니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대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제 나름의 기상천외한 지식을 짜내기를 바라며 질문을 던진 후 얌전히 기다렸다. 그러나 이번에 페니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곧장 나긋나긋하게 대꾸했다.

 “에아가 아닐까요. 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바르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모양이지.”

 그때 갑자기 강한 동풍이 불어와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마구 흩날렸다. 밀짚모자 두 개가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바르바라는 얼굴을 찌푸린 채 손을 내젓다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페니의 옆모습을 보았다. 빛이 그의 얼굴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했다. 경이로운 존재라는 게 갑자기 찾아오는 걸 수도 있고, 혹은 주변의 사물이나 누군가에게서 나타는 걸 수도 있다고. 에아가 세상 어딘가에 잠들어 있거나 혹은 우리의 주변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어쩌면 어떻게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는 구석을 가진 모든 것들에게 신이 깃들어있는 지도 모른다.

 바르바라는 그녀 특유의 단호함으로 재빨리 상념에서 벗어났다.

 “이제 가자.”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페니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그 날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두 사람 특유의 느긋한 어조로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신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와 햇빛과 다홍색의 이야기도 했다. 헤어질 때 바르바라는 페니를 다시 위버라고 불렀다. 페니에요, 페니는 정정하면서도 바르바라가 기분 나쁘지 않을 선에서 슬그머니 호칭을 고쳐주었다. 피곤하게 사는구나. 바르바라는 다시 한 번 그렇게 생각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정이 있는 걸 수도 있겠지. 그런 후에는 더 이상 그를 궁금해 하고 싶지 않아서 마음속의 양동이를 쏟아버렸다. 그러자 이름을 붙일 수 없는 페니의 무엇인가가 마치 다홍색의 경이로운 물고기처럼, 그녀의 마음 어딘가로 미끄러지듯 헤엄치며 사라지고 말았다.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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