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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여자가 바르바라를 불렀다.

 바르바라는 드물게도 검정색 재킷에 완장까지 차고 있었다. 누구나 그녀가 선루스 기사단임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늙은 여자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바르바라를 불러 세운 것이었다.

 노인은 바르바라에게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을 묘사했다. 기사님이고 여자인데 머리가 복슬복슬하고 새까맣다고 했다. 노인이 말을 하는 동안, 바르바라는 노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허리를 숙였다. 그 사람 키가 어떻게 되나요? 바르바라가 묻자, 노인은 바르바라가 숙이고 있는 딱 그만큼을 손바닥으로 표시하며 대답했다. 아마 지금 딱 이 정도쯤 될 거야. 바르바라는 노인이 니아 다얄을 찾고 있음을 알았다.

 니아는 오늘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언덕 부근에 배치를 받았다. 그곳에서 한낮까지 보초를 서고 점심이 다가올 무렵 교대를 한 뒤 자유 시간을 가질 것이다. 노인이 어떤 연유로 니아를 찾는 것인지는 잘 알지 못 했지만 주민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움직이는 것이 선루스의 도리. 바르바라는 노인을 부축하거나 느긋한 발걸음을 맞추며 언덕으로 올라갔다.

 니아는 햇볕을 피하려 지어놓은 작은 오두막에 앉아있었다. 그 오두막집은 정말 모양새만 간신히 갖춘 정도라서 창도 없고 문도 없었다. 그래서 사방으로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끊임없이 밀려들어왔다. 바르바라는 입구에 두 손을 모은 채 서서 니아를 불렀다. 니아는 서두르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더운데도 제대로 정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바르바라.”

 “안녕, 다얄….”

 바르바라가 미처 용건을 설명하기도 전에 그녀의 등 뒤에 서있던 노인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니아를 무척 반갑게 맞으며 두 팔을 벌렸다.

 “기사님! 오늘은 무더운데 이곳에 계시는군요.”

 그런 후 노인은 품에서 가지런히 접힌 종이를 들어보였다.

 “저어, 아들에게 또 편지가 왔는데요.”

 “아.”

 니아는 알만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바르바라는 그녀의 인상이 한순간에 유순하고 부드러워 지는 것을 보았다. 니아가 평소에도 자주 신경 써서 웃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바라 자신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웃지 않을 때의 얼굴이 대조적이면 사람들은 멋대로 무엇이든 상상하려 든다.

 “음, 들어오세요.”

 니아는 노인의 편지를 건네받으며 슬그머니 입구에 비켜섰다. 노인은 손으로 치마 주름을 붙잡으며 오두막에 들어갔다. 니아는 바르바라를 바라보았다.

 “나는 괜찮아.”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니아는 고개를 끄덕이곤 노인을 따라 오두막 안으로 사라졌다.

 바르바라는 오두막 입구 앞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멍하니 하늘을 보면서 갈매기가 지나가기를 바랐다. 셀 수 있을 만큼의 마릿수가 하늘에 떠있길 바랐다. 오두막 안에서 드문드문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소곤거리는 듯 하다가 차츰 낭랑하고 또렷한 발음이 되었다. 파도와 바람소리에 묻히지 않고 그 목소리는 청명하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가득 차있을 것 같은 빽빽한 대기의 틈을 반드시 찾아내 찌르고 들어왔다. 바르바라는 편지의 내용을 대부분 들을 수 있었다. 니아의 입을 통해 낭독되는 누군가의 안부와 질문들… 부모를 떠난 자식과 자식을 떠난 부모들이 서로를 생각할 때 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들었다. 니아는 무언가를 읽는데 능숙해보였다. 노인의 편지를 읽는 것도 익숙해보였다. 머리 위로 갈매기가 날아갔지만 바르바라는 세는 것을 잊었다.

 ‘이런 일을 자주 하는 모양이지.’

 바르바라는 나무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생각했다.

 ‘부지런하게도.’

 얼마 뒤 노인이 오두막을 나오다 말고 바르바라를 발견했다. 바르바라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 노인을 향해 미소 지었다.

 “바래다 드릴게요.”

 노인은 고맙다고 두 번이나 말했다.

 니아는 오두막을 따라 나오다 말고 바르바라와 시선이 마주쳤다. 바르바라는 배시시 웃어보였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웃은 것이다. 니아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르바라를 응시하다 말고 곧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계셨군요.”

 “응… 바래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바르바라는 손톱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평소에는 이런 일을 하는 거니? 익숙해 보이는구나.”

 “찾으실 때 만요.”

 니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분을 모시고 와주셔서 감사해요, 바르바라.”

 “아니야, 다얄. 너야말로.”

 바르바라는 작게 후후 웃었다.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는 이들도 많은데, 좋은 일을 하는 구나….”

 니아는 금안을 슬그머니 굴리며 잠시 대답을 미루었다. 바르바라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소리가 들이닥치고 바람이 마구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바르바라는 손톱 끝을 매만졌다. 아까의 목소리가 귀에 남아있었다. 니아는 말할 때와 낭독할 때의 목소리가 달랐다. 웃지 않을 때와 웃고 있을 때가 다른 것처럼. 아까의 목소리는 지금의 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하지만 자주 웃는 만큼 낭독을 하지는 않는다. 정말로 좋은 것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포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니아는 글을 읽을 줄은 모르지만 마음을 부딪쳐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목소리를 낸다. 술집이나 골목이나 시장에서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마침내 니아가 대답했다.

 “그냥, 보통의 일이에요.”

 바르바라는 니아의 목소리에서 쑥스러운 기색을 희미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바르바라는 고개를 돌려 니아를 바라보았다. 니아는 시선을 피하는 대신 둥글게 웃었다.

 “바르바라도 좋은 일을 하고 있어요.”

 그 말에 바르바라는 조금 웃다 말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노인을 부축하며 언덕을 내려가는 동안 갈매기를 다섯 마리나 보았다. 바르바라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웃거나 웃지 않는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 쪽을 숨기거나 올바르게 사용해야 하는지.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을 신중하게 드러내야 하는지도. 하지만 그런 것을 도무지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해나가면서 답을 찾아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니아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바르바라는 그 생각을 했다. 

2018/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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