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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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따라오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오른손에는 양동이를, 왼손에는 떡밥을 담은 작은 철통을 들고 있었다. 어깨에는 낚싯대 두 개(긴 것과 짧은 것)를 짊어지고 있었다. 머리에는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게 소매치기나 강도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고 햇빛이 바르바라의 둥근 정수리를 내리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바라바라는 낚시를 하러 가려던 참이다. 빈 양동이와 진흙에서 퍼 올린 신선한 지렁이 외에는 가지고 있는 게 없었다. 누군가 장난을 치려고 내 뒤를 밟는 걸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았을 때, 그곳에는 제인이 있었다.

 제인은 바르바라와 거리를 벌린 채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제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기는 했지만 크게 당황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장난을 치려다 발각된 사람의 표정은 아니었다. 바르바라는 제인이 바다로 산책을 나가려던 참에 자신을 따라오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모로 보나 낚시꾼의 행색이니 제인이 자신을 따라온다면 낚시에 흥미가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낚시를 하러 가는데 같이 갈래?”

 바르바라가 나긋나긋하게 물었다.

 제인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바르바라가 다시 앞서 걸어 나가자 조용히 그녀의 뒤를 쫓아왔다. 바르바라는 햇빛이 베이지색으로 부서지는 부드러운 모래사장 옆으로 쌓아올린 길을 걸으며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제인이 바르바라를 추월하거나 콧노래에 화음을 더하거나 혹은 거리를 줄일 지도 몰랐다. 혹은 뒤늦게 괜찮아요, 저는 그냥 갈게요, 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바르바라는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곶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날씨가 좋았다. 제인은 바르바라의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잠시 따뜻한 바위가 엉덩이를 데우는 것을 느끼며 반짝이는 수평선과 투명한 수면 아래로 보이는 에메랄드 빛깔의 물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바르바라가 철통을 열고 지렁이를 꺼냈다. 바르바라는 제인에게 일부러 그 상자를 가까이 가져가 보여주면서 물었다.

 “드와이트, 지렁이가 으깨지지 않게 바늘을 끼울 수 있니?”

 제인은 눈을 굴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바르바라는 긴 낚싯대에 낚싯바늘을 걸었다. 그리고 꿈틀거리는 지렁이가 터지지 않도록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능숙하게 잡아, 재빠르게 낚싯바늘에 대가리를 끼워 넣었다. 바늘을 통과하는 순간 지렁이의 온몸이 진동하는 것을 바르바라는 느낄 수 있었다.

 제인은 바르바라의 능숙하고 재빠른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바르바라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할 수 있다고 해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겠지. 혹은 정말 할 줄 모르거나.’

 바르바라는 미끼가 걸린 긴 낚싯대를 감아서 제인에게 넘겨주었다. 그런 후 제인에게 낚시를 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이번에 제인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저는 섬에서 살았어요.”

 그렇다면 짧은 낚싯대를 줬어도 잘 해냈을 것이다. 바르바라는 자신의 낚싯대에도 미끼를 건 뒤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제인은 바위에서 일어나 서두르지 않고 낚싯대를 젖혔다. 그리고 먼 바다를 향해 줄을 던져 넣었다. 바르바라는 자리에서 손만 휘둘렀다.

 두 사람은 다시 바위에 앉아 일렁이는 수면, 이따금 보이는 작은 물고기들의 그림자 따위를 응시했다. 파도소리가 규칙적인 듯 조금씩 어긋난 타이밍으로 땅을 향해 밀려들어왔다. 바르바라는 낚시를 하는 동안 말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다. 제인 역시 수다쟁이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침묵을 특별히 불편해하지 않았다.

 앉은 지 한 시간이 좀 지나자 햇볕이 뜨거워졌다. 바르바라가 제인의 머리에 자신의 밀짚모자를 씌웠다. 제인이 당황해했다.

 “뜨겁잖아. 쓰고 있어줘….”

 바르바라가 수줍게 손을 모으고 웃었다.

 제인은 무언가 불편한 것처럼 앉아있었다. 밀짚모자 때문에 생긴 그늘이 얼굴에 드리우자 마치 수심이 깊은 사람처럼 보였다. 몇 분이 지났을까, 결국 제인은 모자를 벗어 바르바라에게 돌려주었다. ‘빚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가?’ 바르바라는 생각하면서도 상냥하게 마음을 써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러고는 더 이상 제인에게 모자를 권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시 말이 없어졌다.

 고기가 잡혔다. 바르바라는 빈 양동이를 들고 통통 바위를 박차고 내려가 바닷물을 길었다. 그리고 그 안에 낚아 올린 고기를 던져 넣었다. 제인은 바르바라의 양동이를 들여다보았다. 물고기는 공포에 질린 것처럼 몇 번 뻐끔거리다 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헤엄치기 시작했다. 양동이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까먹은 것 같았다.

제인은 고기를 잡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몇 가지가 엉성했다. 바르바라는 제인의 낚싯줄이 파도에 떠밀려 점점 그들이 앉은 바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원래는 파도의 흐름을 보고 다시 던져주어야만 한다.

 마침내 제인이 물었다.

 “줄이 아까보다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다시 던져야 할까요?”

 바르바라는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낚싯대를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제인의 낚싯대에는 아까 바르바라가 솜씨 좋게 꽂아 넣은 지렁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먹어버렸잖아.”

 제인이 말했다.

 바르바라는 누군가가 그녀를 귀여워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르바라는 다시 지렁이를 끼워주었다. 그동안 제인은 바위 아래로 내려가 자신의 양동이에도 물을 길어왔다. 미끼를 새로 끼웠으니 슬슬 입질이 올 거라고 기대하는 걸지도 몰랐다.

 바르바라는 제인이 줄을 풀고 바다에 그것을 던져 넣는 것을 지켜보다가, 몇 가지를 더 조언해준 후에 자리에 앉았다. 제인은 한 번 바르바라에게 조언을 구한 후에는 아까보다는 어렵지 않은 눈치로 그녀에게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바르바라는 성의 있게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 바르바라는 물고기를 두 마리 더 낚았다. 제인은 아무것도 낚지 못 했지만 대화를 시작했다.

 “낚시는 신물이 나도록 해봤어요.”

 “그렇구나.”

 바르바라는 줄을 당기며 느긋하게 웃었다.

 “아까는 말이야, 드와이트. 낚시를 하려고 나를 따라온 거니?”

 “그렇다기보다는 모래사장을 걸을 셈으로….”

 제인은 바다가 좋다고 말했다. 종종 모래사장이나 바닷가 근처의 길목을 걷는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 대해서도 말했다. 사방이 물로 가득 찬 작은 땅덩어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섬에 대해 말할 때, 제인은 잠시 수평선 너머를 잠시 응시하다 고개를 돌렸다. 바르바라는 낚싯줄을 감으며 제인의 시선이 닿았던 수평선 근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어렴풋하게 점처럼 솟아오른 작은 땅덩어리가 보였다.

 이번에는 제인이 바르바라에게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제인은 바르바라가 낚시 스팟을 찾게 된 계기나 과정을 궁금해 했다. 그녀는 한 번 대화를 시작하자 무척이나 들떠보였다.

 “조용한 곳이 좋아서… 그런 곳에는 고기가 많더라. 사람이 드물어서 그런 걸 거야.”

 바르바라가 대답했다.

 제인은 육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시장과 좁은 골목들, 붉은 지붕의 집과 담을 타고 오르는 넝쿨 같은 것들을 나열하다가, 바르바라에게 시장에 자주 나가는지, 그렇다면 잘 아는 가게가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바르바라는 빵가게에 대해 말해주었다. 아침마다 속이 촉촉한 모닝빵을 굽고, 점심에는 바게트를 내놓는 빵집이었다. 바르바라는 이따금 생선으로 회를 떠서 그 집 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제인은 바르바라가 제인의 섬에 대한 묘사를 들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그러더니 좋은 가게 같다면서 그 날 처음으로 웃었다. 바르바라는 그녀의 눈꺼풀을 가로지르며 접히는 얇은 쌍꺼풀을 들여다보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너도 가보는 거야, 드와이트. 그곳은 그렇게나 맛있는데도 생각보다 손님이 적단다.

 그 날 낚시는 일찍 파했다. 제인은 한 마리도 낚지 못 했다. 제인이 한 마리도 낚지를 못 해 슬슬 몸이 달아오른 것 같은 눈치였기 때문에 바르바라 역시 일찍 파한 것이다. 두 사람은 헤어져야만 하는 구간까지 천천히 걸으면서 웃거나 떠들었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바다를 흘끔거렸다. 바르바라는 제인의 양동이 속에서 출렁이는 짠 물방울과 이글거리는 하얀 물그림자를 보았다. 양동이를 잡고 있는 제인의 단단한 손목, 손목 위로 이어지는 팔을 보았다. 바르바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응시했다. 그러자 제인의 팔을 타고 자잘하게 박힌 작은 점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수평선 끄트머리에서 보았던 희끄무레한 땅덩어리처럼 보였다.

 헤어지기 전에 바르바라는 제인의 양동이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옮겨 넣었다. 거절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제인은 고맙다고 말하더니 자신의 양동이 속으로 옮겨온 작은 생선을 살폈다.

 “일찍 죽을 거니까 오늘 저녁으로 먹어….”

 바르바라가 조곤조곤 말했다. 제인은 알겠다는 대답 대신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대답했다. 바르바라는 그녀를 껴안아줄까 고민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오른손에 양동이를, 왼손에 철통을 들고 있었고, 어깨에는 낚싯대를 짊어지고 있었다. 왼손은 아까보다 미세하게 가벼웠지만 나머지는 전부 무거웠다. 그래서 바르바라는 그냥 인사를 했다.

 “빵집에 들러줘 드와이트.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가 때때로 걱정하더라.”

 “그럴게요.”

 “안녕,”

 “내일 봐요.”

 두 사람은 노을의 기미가 보이는 분홍색 하늘 아래에서 반대의 방향으로 천천히 거리를 벌리며 걸어 나갔다. 각자의 집으로 갔다. 어느 누구의 양동이도 비지 않았다.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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