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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Stranger! «나를 받아줘»
1차/old 2019. 10. 22. 14:26

헤르만은 그림자 속에 숨어있었다. 힘썬은 아이들 틈바구니에 껴서 손을 잡고 춤을 추다 말고 그를 보았다. 왁자한 분위기에서 한 발짝 떨어져있는 게 지극히 헤르만다웠다.

외로워 보여.’

힘썬은 곧 그런 생각을 한 자신에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헤르만이 어둠속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것이 외롭다고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헤르만은 언제나 헤르만의 최선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힘썬이 조금 인간이 된 걸지도 몰랐다. 인간의 외로움을 많이 생각하고 만 나머지, 어둠을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이미지와 연결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힘썬이 헤르만에게 다가간 것은 순간적으로 그를 판단한 것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 때문일 지도 몰랐다. 어쨌든 두 사람은 옥상에서 반대 의견을 주고받은 이후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힘썬이 다가오자마자 헤르만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피하지도 않았다. 힘썬이 그늘 안으로 들어왔다. 나란히 서자 헤르만의 키가 느껴졌다. 고작해야 힘썬보다 몇 센티미터 정도 컸는데, 두 사람은 실제 크기도 꼭 그만했다.

뭘 기다리고 있어?”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역사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힘썬이 물었다.

헤르만은 무시하고 싶은 것처럼 인상을 굳혔다가 끙,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딱히 기다리는 건 없어.”

하지만 어떤 일은 반드시 벌어지고 말 거야.”

힘썬은 캠프파이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을 잡고 도는 사람들그 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는 마법사들을 보았다. 모두가 행복해보였다. 이 순간에는 염려할만한 게 한 가지도 없었다.

그래, 이미 벌어졌잖아.”

헤르만이 말했다.

네가 왔으니까.”

아하, 그건 정해진 일이었어.”

힘썬이 즐겁게 재잘거렸다.

우린 늘 그랬잖아.”

원래 차원에 있을 때에도 종종 두 사람은 정반대의 의견을 교환하며 서로를 밀어내곤 했다. 싸움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그런 게 익숙했다. 그러므로 그건 종종 싸움이라기보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인간이 된 후에는 어땠을까. 그 날 옥상에서 헤르만과 나누었던 대화를 힘썬은 잊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어느 정도 감정적이었다. 힘썬은 인간의 몸으로 있는 한 설령 마법사라고 해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내면의 온도가 발생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헤르만이 자신에게 똑같은 것을 느꼈더라면 어떡하지? 그는 요한처럼 자신을 밀어내게 될까?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일이 더는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일들은 마음 아팠다.

다행히 헤르만은 우리에 수긍했다.

알고 있었어.”

헤르만은 잠깐 생각에 잠긴 것처럼 팔짱을 끼고 바닥을 보았다.

네가 찾아올 거라는 사실은.”

힘썬은 그가 어둠이 고인 발아래가 아니라, 빛이 존재하는 눈앞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깐 침묵이 있었다. 운동장 스탠드에서부터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다.

너 잘 하고 있는 거야?”

느닷없이 헤르만이 물었다.

뭐가?”

문제는 없는 거냐고.”

힘썬은 헤르만을 돌아보지 않고 발끝을 한 번 들었다 내려놨다.

그럼, 난 잘 하고 있어.”

헤르만은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힘썬의 반응을 살피고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힘썬은 갑자기 그늘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어둠속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헤르만이 더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힘썬의 어떤 부분을 정확히 찍어 눌렀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차라리 옥상으로 가고 싶었다.

운동장 한쪽으로 교사들이 몰려들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나무 아래에 서있었다. 잠시 후 힘썬이 충동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헤르만, 사실은.”

갑자기 사방이 밝아졌다. 두 사람은 동시에 하늘을 쳐다봤다. 교사들이 불꽃을 쏘아올리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던져진 빛 무리가 사방팔방으로 몸을 쪼개면 불꽃이 꽃처럼 퍼졌다. 아이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헤르만과 힘썬은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어두컴컴한 나무 아래 두 실루엣이 미동도 없이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잠시 후 거대한 실루엣이 꿈틀거리며 한 차례 무너졌다가 단단하게 되돌아왔다.

헤르만이 고개를 돌리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

힘썬은 어쩐지 허전하다고 느끼면서 드러난 목덜미를 손끝으로 두들겼다.

나 지금 어떻게 보여?”

헤르만은 입을 다물고 힘썬을 쳐다보았다. 단발을 하고, 몸이 줄어들어 헤르만과 훨씬 균등한 키 차이를 보이고 있는 그의 친구를 말이다. 헤르만은 힘썬이 마법사다운 어떤 것을, 대표적으로 외관을 포기했음을 알았다. 마법사로서 인간과 부딪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힘썬의 몸집은 문자 그대로 줄어들어있었다. 헤르만은 다시 캠프파이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간처럼 보여.”

, 알고 있어.”

힘썬이 배시시 웃었다.

나는 포기했어.”

알고 있어.”

나쁘지 않지?”

힘썬은 캠프파이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불꽃놀이 아래 옹기종기 모여 박수를 치는 인간들과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잖아.”

힘썬이 중얼거렸다.

네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잖아.”

헤르만은 한참 뒤에나 대답했다.

그건 두고 봐야 아는 거야.”

그런가, 하고 힘썬은 생각했지만 이번엔 그녀 쪽이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그런 식으로 이따금 어둠속을 뚫고 나무그림자 아래로 침범하는 불꽃놀이의 빛과, 춤을 추며 웃는 아이들과, 그에 자연스럽게 얽혀있는 마법사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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