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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Stranger! «갈림길»
1차/old 2019. 10. 20. 01:20

1.

심 남매의 부모는 12번 국도에서 죽었다. 이틀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운전대는 어머니가 잡고 있었고, 아버지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비탈길을 돌고 있을 때, 북서쪽에서 갑자기 사격이 시작됐다. 전면유리가 박살나며 타이어가 헛돌았다. 운전자가 즉사한 후 차는 가드레일을 뚫고 다섯 바퀴나 굴렀다. 아버지는 차가 폭발하며 최종적으로 사망했다. 무척 비극적이고 진부한 죽음이었다. 영화에는 이런 최후가 쉰 가지도 넘을 것이다.

그때 헬레나는 열네 살이었고, 당시 요한은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이었다. 갑작스럽게 고아가 된 두 남매를 거둘 아주 먼 친척조차 없었다는 게 느와르 영화 속 비극과 다른 한 가지였다. 헬레나는 자연스럽게 가장이 되었다. 장례식을 마친 뒤 헬레나는 몇 푼 되지 않는 부모의 유산을 꼼꼼히 기록해 현재 거주지의 집세로 나누어보았다. 통조림 값으로도 나누어보았다. 샴푸와 칫솔, 밀가루와 소스로도 나누어보았다. 그런 일들… 살아가는 데에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헬레나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다. 다음 달이 되자 헬레나는 요한을 데리고 학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슬럼가 아파트로 이동했다. 이사하기 전날 요한이 짐을 싸다 말고 금이 간 액자를 들어올렸다.

“누나, 이거 버려?”

헬레나는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네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응, 버려.”

하지만 요한은 액자를 등 뒤로 숨겼다가, 헬레나가 다른 물건을 뒤적이는 사이 박스 한쪽에 도로 꽂아놓았다. 이사를 끝마치고 물건을 정리하던 헬레나가 그것을 발견했다. 액자를 들고 쳐다보자 요한은 딴청을 부렸다. 헬레나는 별다른 말없이 액자를 창가 앞 탁자에 얹어두었다.

두 남매는 거기서 학창시절이 끝날 때까지 살았다.

 

2.

슬럼가에서는 종종 총성이 울려 퍼졌고, 밤이면 모두가 창문 철창을 내렸다. 철창이 없는 집은 커튼을 쳤다. 아침에 요한과 함께 학교로 걷다보면 어두운 골목에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일 때도 있었다. 헬레나는 요한이 그런 것을 보지 못하도록 골목 입구를 가리며 걸었고, 요한도 눈치 빠르게 고개를 돌리고는 딴청을 피웠다. 두 사람은 갈림길에서 항상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왼쪽이 중학교였고, 오른쪽이 고등학교였다. 요한 쪽이 늘 일찍 마쳤다. 학교가 끝나면 요한은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않고 홀로 교문을 나섰다. 갈림길에 다다를 즈음부터는 뛰기 시작해, 쏜살같이 그곳을 지나쳐 골목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침마다 헬레나가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그것들이 무엇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시체는 여전히 거기 방치되어 있을 때도 있었고, 말라붙은 피 웅덩이만 남긴 채 치워져있을 때도 있었다. 아주 가끔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땐 요한은 굳이 골목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왔다. 시체가 마피아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요한은 약속을 지켜 언제나 갈림길로 되돌아왔다. 헬레나는 요한의 손을 잡고 천천히 집으로 걸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출근을 준비해야했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부모의 유산은 바닥을 보였고, 그녀는 야간공장에 취직해 밤새 컨베이어 벨트에서 통조림을 찍어내고 있었다. 요한은 어느 순간부터 학교에 가는 것을 버거워했다. 자신도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집에 혼자 두지 말아달라고 졸랐다. 그때마다 헬레나는 무릎을 접고 앉아 요한의 두 뺨을 감싸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넌 그럴 필요가 없어. 우리는 고작 둘이야. 내가 번 돈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

헬레나가 졸업반이 되었을 때, 신식기계를 들인 통조림 공장이 야간반의 3분의 1을 해고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직권고를 받은 헬레나는 계속해서 근무하기 위해 오전반으로 스케줄을 옮겼다. 얼마 뒤 학교에 나가지 않은 헬레나는 퇴학당했고, 요한은 그 뒤로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다.

 

3.

헬레나는 스물두 살에 공장을 나왔다. 바뀐 고용주가 세달 치 임금을 체불해 대다수의 노동자가 파업 상태에 돌입했을 때였다. 그녀는 파업이나 시위의 개념을 몰랐다. 사회적인 활동과 합당히 보장받을 수 있는 시민의 권리에 무지했다. 헬레나는 당장 돈이 필요했고, 고용주가 돈을 내놓지 않겠다면 협박이라도 해야 했다. 그녀가 작은 단도를 쥐고 사장실 문 앞으로 갔을 때,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 둘이 문을 박차고 빠져나왔다. 그들이 쥔 권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헬레나는 깜짝 놀랐지만, 두 사람은 그녀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고 코너를 돌아 사라졌다. 헬레나는 열린 문틈으로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남자를 보았다. 사장은 죽어있었다.

얼마 뒤 새로운 사장이 고용되어 밀린 임금이 지급되었고, 공장은 다시 정상가동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통조림 공장은 킹우드에 돈을 상납했고, 다시는 임금을 체불하지 않았다. 그것은 폭력의 결과물이었고, 힘의 증명이었으며, 어둠의 권력이었다. 마피아들은 세력싸움을 벌이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헬레나의 부모를 죽였지만, 또한 조직 사업을 위해 악덕 고용주를 제거하고 헬레나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어둠을 증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 헬레나는 어두운 골목 안에 쓰러져있던 시체를 향해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그 뒤 공장을 나온 헬레나는 마약운반책으로 돈을 벌면서 서서히 그 바닥에 익숙해졌다. 늦은 밤마다 집으로 돌아와서 요한의 방문을 두들겼다. 요한은 대부분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만 이따금은 고개를 내밀어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했다.

“바빴어?”

요한이 물으면, 헬레나는 대답했다.

“응. 너는?”

“바빴어.”

요한 역시 대답했다.

 

4.

헬레나는 조직에 들어가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시체를 유기하는 적당한 방법을 알지 못했던 헬레나는 언젠가 요한과 함께 지나치던 골목을 떠올리고는 차 트렁크에 그것을 싣고 돌아왔다. 차를 주차하고 아파트로 들어왔을 때, 요한은 웬일로 거실로 나와 창가에 놓인 액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 간 유리 속에서 헬레나와 요한이 교복차림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학창시절 이후로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다. 불과 어제 바꿔놓은 사진이었기 때문에 액자의 풍경은 헬레나에게도 낯설었다.

“언제 바꿨어?”

요한이 물었다.

“어제.”

“얼마 안 됐네.”

“너 평소에도 내가 없으면 밖으로 나오니?”

요한은 대답하지 않다가 되물었다.

“엄마아빠랑 찍은 사진은 버렸어?”

“그 사진 뒤에 있어. 겹쳐서 넣은 거야.”

“그렇구나….”

요한은 잠깐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가 헬레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나 다쳤어?”

“왜?”

“그냥.”

“안 다쳤어.”

“진짜?”

“진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있었다. 거의 몇 달 만에 해보는 긴 대화였던 것이다. 헬레나는 아파트 불을 켜고 싶었다. 요한이 어떤 표정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지 불을 켜는 순간 요한이 사라져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이 있기에 요한도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헬레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곳에 서 있다가 어색하게 물었다.

“우리… 간만에 근처 레스토랑이라도 갈래? 너 나온 김에.”

“프라이데이스? 멀잖아.”

“누나 직장에서 받은 차 있어.”

헬레나는 입을 삐죽이다 말고 웃었다.

“타고 드라이브도 할 수 있어.”

두 사람은 마감시간이 다가온 레스토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헬레나가 계산을 하는 동안 요한은 차키를 받아 먼저 주차장 쪽으로 빠져나왔다. 주차된 자리에 서있는 가로등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깜빡이고 있었다. 요한은 조수석 문을 열다 말고 동작을 멈추었다. 트렁크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천천히 트렁크로 다가가는 동안 그 냄새는 더욱 심해졌다. 헬레나가 아파트에 들어왔을 때 희미하게 달고 있던 냄새였다. 헬레나는 다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요한은 천천히 차키를 넣고 돌렸다. 트렁크가 열리는 순간, 팍 소리와 함께 사방이 캄캄해졌다. 요한은 트렁크를 내려다보며 잠시 어둠속에 서있었다.

헬레나가 계산을 마치고 나왔을 때 요한은 캄캄한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가로등이 고장 났네”

차문을 열며 헬레나가 말했지만, 요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뚜껑을 열고 드라이브를 했다. 헬레나는 들떠서 자꾸 요한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가 아는 한 요한은 거의 반년 만에 외출하는 것이었다. 저것 좀 봐, 저건 뭐하는 데지? 저긴 왜 저렇게 줄을 많이 섰을까. 와, 간판을 보니 저긴 비싼 술집인가 봐 그치… 요한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바람에 나부끼는 요한의 머리카락이 간판들의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아까 먹은 거 때문에 체했어?”

헬레나는 콘솔박스에 얹어진 요한의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

“왜 그래, 무슨 말이라도 해….”

요한이 손을 뿌리치지도 대답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헬레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도심은 슬럼가와 달리 밤에도 눈이 부셨다. 빛에 감싸인 채로 헬레나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어두운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헬레나는 불을 키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요한이 다가와 헬레나를 껴안았다. 헬레나는 두 팔을 들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숨소리를 내며 서있었다. 요한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나, 일하지마….”

헬레나는 오래 전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한은 더는 십대가 아니었고, 헬레나는 예나지금이나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어린 동생을 두고 아파트 문을 닫는 기분을 감내하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보다 어려웠다. 살아가는 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고작 둘인데도….

헬레나는 요한을 감싸고 중얼거렸다.

“괜찮아, 나는 상관없어.”

헬레나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두 사람은 이미 폭력의 세계에 익숙했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시체가 뒹구는 골목을 지나 학교로 향했던 건 헬레나뿐만이 아니었다. 헬레나는 요한이 보지 못하게 어둠을 가리고 걸었지만, 요한은 그 어둠을 확인하기 위해 매번 갈림길을 지나쳐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그러나 헬레나는 요한이 어둠에 무지하다고 믿었다. 그것을 만지는 법을 알고 있는 건 본인뿐인 줄 알았다.

다음 날 헬레나가 출근한 뒤, 요한은 머리를 감고 면도를 했다. 새 사람처럼 차려입고 거울 앞에서 오래도록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후 언젠가 걸었던 등굣길을 천천히 걸었다. 캄캄한 골목 한구석에 남자가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었다. 요한은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가 그 시체를 앉혀놓고 쭈그리고 앉았다. 남자는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뜬 눈으로 죽어있었다. 탁한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요한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오토바이 한 대가 골목 앞을 지나쳐갔다. 매연이 걷혔을 때 골목에는 시체 한 구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5.

그 뒤로 요한은 꼬박꼬박 면도하고 옷을 갈아입었고, 헬레나는 그것에 기뻐했다. 요한의 외출은 점점 잦아졌고, 헬레나는 갈수록 바빠졌다. 헬레나는 요한이 무엇을 하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다. 한 번은 요한이 자신의 방 물건을 전부 상자에 담아 버리려고 내놓았는데, 헬레나가 출근하기 전에 슬쩍 들추어보았더니 스크랩된 신문 다발이었다. ‘총격 사건으로 20대 후반 부부 사망하다’ ‘마피아 간의 세력다툼, 이대로 괜찮은가?’ ‘대낮에 도로 앞에서 총기난사’… 헬레나는 상자를 덮고 잠시 그 앞에 서 있다가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차에 올라타며 헬레나는 요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이어지는 동안 헬레나는 초조하게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들겼다.

-왜?

“내일 뭐하니?”

헬레나는 목소리가 잠겨있다는 것을 깨닫고 헛기침을 했다.

요한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몰라. 나갈 일 있음 나가고 아님 말고.

“그럼 우리 크리스마스 파티할래? 누나가 케이크 사갈게.”

-파티?

“왜, 좋잖아.”

헬레나가 어색하게 애교를 부리다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다. 핸들을 두들기는 손가락이 빨라졌다. 잠시 후 요한이 대답했다.

-그러지 뭐.

“누나 7시까지 갈게.”

헬레나가 시동을 걸었다.

“프라이데이스 가서 저녁도 먹을 거니까 멋있게 입고 기다려, 알겠지?”

그 날 저녁 6시 반쯤에 요한은 밖으로 나와서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은 뒤 좋은 옷을 입고 거실에 앉았다. 그런 후 휴대폰을 만지며 때때로 시계를 확인했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해가 잘 들어, 노을이 지자 거실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7시가 조금 넘자 거실은 금방 침침해졌다. 요한은 불을 켜지 않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 후에 누군가 받았다.

“어디래요?”

누군가가 대답했고, 요한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래요, 뭐, 알겠어요.”

요한은 전화를 끊고 마른세수를 하며 신음소리를 냈다. 그런 후 벌떡 일어나 거실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주먹을 쥐고 신경질적으로 벽을 걷어찼다. 협탁이 흔들리더니 무언가 떨어져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씩씩거리며 고개를 돌린 요한이 허리를 숙여 그것을 주워들었다.

벌써 오후 8시가 넘어 이제 거실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요한은 깨진 액자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한참을 서있었다. 교복을 입은 헬레나는 웃고 있었지만, 요한은 이 사진을 찍은 지 일주일 뒤에 헬레나가 퇴학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헬레나가 우는 걸 요한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슬픔보다 그녀가 가진 어둠을 만지기가 더 쉬웠다. 알아보기도 더 쉬웠다… 요한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다 말고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그는 소파로 되돌아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한참 후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을 때, 요한이 말했다.

“저 내일부터 일할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 요한은 액자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6.

누나, 계속 죽일 거지

 

7.

헬레나가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후 10시가 한참 넘어있었고 거실은 깜깜했다. 요한 역시 보이지 않았다. 헬레나는 비틀거리며 현관 앞에 기대어 서 있다가 케이크 상자를 신발장에 얹어놓고 팔뚝을 움켜쥐었다. 빠르게 지혈을 하고 붕대를 잘 감아서 더 이상 피가 새어나오지는 않았다. 헬레나가 신발을 구겨 벗으며 요한을 불렀다. 집은 조용하기만 했다. 헬레나는 케이크를 거실 테이블에 얹어놓고는, 불을 켜기 위해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옷에 피가 튀어있을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케이크를 꺼내 상자에 올려두고는 소파에 앉았다. 요한의 방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헬레나는 멍하니 그곳을 쳐다보다 말고 초를 뜯어 케이크에 하나씩 꽂았다. 전부 꽂아서 더는 꽂을 게 없어지자, 하나씩 제거한 뒤 처음부터 그것을 반복했다. 요한이 오면 불을 밝히고 캐롤을 부를 생각이었다. 요한이 어디에 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금방 돌아올 것이다. 갈림길에서 기다리는 건 언제나 요한이었다.

밤 12시가 조금 넘을 무렵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현관문이 열렸을 때 찬바람과 함께 진눈깨비가 들어왔다. 요한은 천천히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어깨에 눈이 쌓여 있었다.

헬레나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케이크는 전부 세팅되어 있었다. 요한이 헬레나 옆에 앉자, 바닥이 꺼지며 무게가 기울었다. 헬레나는 자고 있지 않았지만 그에게 어디를 다녀왔냐고 묻지도 않았다. 요한은 헬레나에게 기대며 속삭였다.

“누나, 많이 기다렸어?”

“아니.”

어둠속에서 헬레나가 되물었다.

“너는?”

“별로.”

한참 침묵이 있었다. 요한이 자세를 뒤척여 헬레나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헬레나는 축축한 눈을 느낄 수 있었다. 

요한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나, 있잖아… 우리 엄마아빠가 죽었을 때.”

헬레나는 잠깐 텀을 두고 대답했다.

“응.”

“그때 누나는 너무 어렸어.”

요한은 낮은 목소리로 생각에 잠긴 것처럼 중얼거렸다.

“누나는 너무 어렸던 것 같아….”

“너를 보호하지 못할 만큼 어리지는 않았어.”

헬레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때의 자신을 떠올릴 수 없었다. 너무 까마득했다. 기억 속의 자신은 정말 어리고 작았다… 하지만 요한은 항상 그것보다 더 작았다. 지금의 요한은 헬레나보다 컸지만 대체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진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헬레나는 천장을 보았다.

“나는 언제나 너를 돌보기 충분했어.”

‘아닐 걸.’

요한은 생각했다.

‘아니야….’

어둠보다 슬픔을 들여다보았어야만 했는데. 그것을 만지는 법을 터득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두 남매는 이제 눈물을 흘리는 일보다 어두컴컴한 거실에 앉아있는 게 더 익숙했다. 그 어둠속에서, 요한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눈을 감는다. 눈꺼풀 아래 골목에는 여전히 그 남자가 누워있을 것이다. 요한은 그 앞에 서서 묻는다. 누나, 계속 죽일 거지. 시체는 대답하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어둠은 그것을 모른다.

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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